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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배수윤목사님에 대한 자료 (부목사,축도,자료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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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260
작성일
2021.02.20

목사님 요즘 많이 바쁘신줄 압니다.
과거보다 2-3배 많은 질문이 올라 오고 있는 걸 보면서 이곳을 거쳐간 많은 분들이 참다운 신앙노선으로 걸어가길 바라고 믿는마음 간절합니다.

총공회 노선에서 부목사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 된 것으로 봅니다.

서부교회 백목사님께서 1주일간 예배만하여도 13-4회를 목사님 혼자 주관하신 것을 보면 부목사 제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백목사님 계실때 서부교회에도 부목사님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은 배수윤목사님이셨고.....그리고 공회내 서부교회에서 주일축도를 유일하게 하신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설교인도하시고 배목사님이 예배사회를 인도하시는 주일은 어김없이 백목사님이 부목사님이신 배수윤목사님께 축도하실수 있도록 양보하신 것으로 압니다.

또 지나간 과거이지만.... 배목사님이 강단사회를 보시던 주일 백목사님과 배목사님이 싸인이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백목사님께서 깜박 잊고 그랬는지 몰라도 백목사님이 축도하시기 위해 두손을 올려서 우리주......까지 축도하시는데 옆에서 배목사님께서 축도하시는 것을 보고 얼른 두손을 내려 배목사님께 양보하시고 축도 끝난뒤에 백목사님께서 해명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축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교회의 가장 머리 되시는분이 축도권이 있는 것으로 느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축도할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배목사님께서는 상당한 권한이 있으셨던 모양이지요?

배목사님의 자료와 축도에 관한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궁금해서요)

질문 : 2003-01-11 11:30:38 공회인
출처 : 문의답변 1260

제목분류 : [~인물~배수윤~]

내용분류 : [-인물-배수윤-]

 


답변 : 2003-01-11 20:25:15 yilee

백목사님의 목회는 죽는 순간까지 충성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부목개념이 없습니다.

 

1.서부교회의 부목제도와 배수윤목사님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일반교회 개념의 부목제도가 없습니다. 주시는 힘으로 죽는 날까지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 건강문제로 임시 다른 분에게 강단을 부탁하는 경우는 있지만 부목을 제도적으로 두고 일반 교회와 같이 목회하는 것은 불충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부교회의 경우 질문하신 배수윤목사님은, 혹 부목이라고 표현한 경우가 있었는지 확실한 기억이 없으나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워 그렇게 했다면 모를까 교회 조직상 부목으로 세운 분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고신의 대구지방 유력한 장로님이었습니다. 부자였고 세력이 대단했으며 본인의 신앙도 신사참배를 통과할 정도로 진실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청빙하는 교회가 없어 곤란을 겪을 때 백목사님이 옛정을 기억하고 서부교회로 불러 모시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실상이고 정확합니다. 서부교회에서 주일 예배 사회를 보았다고 하지만 십 수 명 장로님이 돌아가며 사회를 보는 가운데 한 분의 자격으로 사회를 보신 정도였습니다. 신앙의지가 굳은 것은 남다른 장점이었으나 목회자로서 교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면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부교회로서는 백목사님의 배려 때문에 마지 못했서 지켜봐야 했던 분이었습니다.

2.배수윤목사님의 신앙 소개

해방 후 백목사님께 은혜를 받고 목회로 출발했으나 목회자로서는 환영하는 교회가 없어 오갈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였습니다. 6.25 때 백목사님이 양육했던 교회 중 하나인 웅양교회를 맡아 생사를 넘겼고 전쟁 중 아들이 사망하자 50여리 떨어진 위천교회의 백목사님을 청하여 장례를 부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점령치하에서 백목사님은 밤 예배를 단 2회 본 강단에 서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한번이 바로 배수윤목사님 아들 장례 때문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 1950년대 말 고신에서 축출되던 마지막에도 백목사님을 따랐던 분이었는데 막상 백목사님이 1959년 고신에서 제명 당할 때는 따라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백목사님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였고 그런 중에 그분도 잠시 흔들렸지만 이후 목회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던 관계, 또 고신에서 백목사님이 몰리던 막바지에도 백목사님을 따랐던 여러 과거를 생각해서 서부교회에 그냥 모시고 있었다고 보시면 옳습니다. 추교경목사님 천세욱목사님 배수윤목사님 등은 이전 어려울 때 백목사님을 따랐던 면을 백목사님으로는 평생 잊지 않고 최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입니다. 추목사님이나 천목사님은 개교회를 맡아 목회지를 지킬 정도였기 때문에 목회에 어려움은 많았지만 목회를 하게 했고, 배목사님의 경우는 서부교회와 같이 백목사님이 직접 시무하는 곳이 아니면 몸을 의탁하기 어려웠던 분이었습니다.

3.백목사님은 부목제도를 두지 않았던 분입니다.

보통 부목이 하는 일은 교회 행정, 주교나 학생관리, 장년반 심방, 구역관리 등 업무 중 한 부분을 맡거나 아니면 담임목회자를 반장으로 친다면 모든 면에서 부반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의 경우는 일반 다른 교회로 말하면 부목을 세워 맡길 일을 교회 내 교인들에게 나누어 맡겼습니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운영되던 주일학교도 부목에 해당되는 목사님이나 조사님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반사들 중 한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뒤에 그 담당자가 목회를 나갈 정도가 되면 앞으로 목회 나갈 준비 때문에 조사님이나 혹은 목사님으로까지 안수시켜 일을 맡기는 수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개인 형편을 살펴 그를 잠깐 기를 필요가 있을 때는 외부 목회자를 부목이라고 부르면서 데리고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부목이라고 부르는 것은 달리 표현하기가 곤란할 때나 아니면 격려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용할 때 사용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1982년 서영준목사님의 경우는 정식 부목이었고 또 최초의 부목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때는 백목사님께서 곧 임종해야 한다는 시기였습니다. 그후 완쾌되신 다음 서목사님을 목회로 내보내고 이전처럼 백목사님 혼자 목회에 관한 것은 전부 걸머지고 80세 사망하게 됩니다.

1989년 백목사님 순교시점 직전까지 서부교회는 행정실 이탁원조사님, 주일학교 장영목조사님, 특수반 이치영조사님, 연구소 이민영조사님, 연구부장 이영인조사 등으로 서부교회를 5개부문 업무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외견상 5명의 전도사를 통해 서부교회 업무를 5분야로 나누어 활용했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 5명은 처음 전부 서부교회 평범한 주일학교 반사였고, 집사도 아닌 반사로서 각 분야를 맡긴 다음 그들의 신앙이 점차 자라고 장래 목회 일정이 예견되었을 때 조사로 추후 인허하게 됩니다.

4.배수윤목사님이 공회 내 서부교회에서 주일 축도를 유일하게 한 이유는

부목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십 수 명 장로님들과 함께 돌아가며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백목사님께서 배목사님 마지막 불편하던 몸을 이끌고 멀리서 왔다 가는 것을 귀하게 보시고 그분이 목사님이기 때문에 축도를 하시라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보다 나이가 위였기 때문에 깍듯하게 대우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주일 오전 사회를 볼 때도 그날 설교를 위해 사회자의 대표기도는 '준비'기도라야 하는 점을 모든 사회자들에게 늘 부탁을 하고 있지만 배목사님이 사회를 보게 되면 어떤 때는 예배 시작 묵도가 10분 이상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날 예배를 위해 필요한 준비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에게 설교자 대신 기도시간에 설교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교회 직원과 구역장들 사이에서는 배목사님의 사회를 중단시켜 주시라는 청구가 계속 들어갔지만 백목사님은 끝까지 원로 목회자로 깍듯이 예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백목사님의 자세 때문에 주일 예배만 보고 가는 정도의 일반 교인들에게는 백목사님이 존경스러웠다면 그분이 그렇게 예절을 갖추어 대우하는 배목사님의 모습도 함께 존경스럽게 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무자로서 보는 바는, 배목사님이 일반 적은 교회 하나도 맡지를 못하고 목회를 중단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교인들의 입장과 여러 상황의 앞뒤를 분별하는데 단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배목사님을 서부교회 부목 위치로 보신 듯 하여, 답변은 그 반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배목사님을 일반 평가보다 좀 높게 보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쪽에서 볼 때 지적할 수 있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분의 위치와 서부교회 부목제도에 대하여 파악하는데 필요한 말씀을 전반적으로 드렸다고 생각됩니다.

배목사님을 두고,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비록 그분이 한창 때에도 무능하여 목회도 하지 못하고 서부교회에 신세지고 살았다고 평가가 될 만한 분이지만 그분의 원래 신앙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답변하는 본인을 비롯하여 누구든지 젊은 시절 그분만큼 귀한 신앙을 가지고 또 세상적으로도 실력과 힘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실력있는 분이라도 한 두 가지 자기의 단점을 고치지 못하면 목회 훗날은 이렇게 아쉽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축도에 대하여 질문자께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시는 듯 합니다.

공회 신앙노선은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에게 축도를 허락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 교회와 같습니다. 그러나 축도의 의미에 대하여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사가 된 분의 은혜없는 축도보다 목사가 아닌 주일학생의 살아있는 기도를 더 기뻐한다는 것이 공회 신앙노선의 전반적 분위기입니다.

축도 뿐 아니라, 목사라는 직책 자체에 대하여도 타 교단보다는 그 임명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만 그것은 목사직에 대한 특별한 의미보다는 하나님 앞에 어떤 직책이든지 하나 더 책임을 가질 때 조심하는 공회의 신앙자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뒷 선자도 앞서고, 얼마나 앞 선자라도 하나님과 멀어지면 뒷 선자가 된다는 성구를 성구로만 아는 것이 아니고 공회 신앙의 전반에 실제로 그렇게 알고 인식합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직책 자체나 축도 행위 등의 '위임된 행위'의 의미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일반 교계와 적지 않은 외부 모습을 낳게 합니다.

참고로, 배수윤목사님과 관련한 내용 두 가지를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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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 전기 준비 자료 중에서)

제9편. 잊지못할 환란 중의 동지들, 각자의 곳에서 승리를

배수윤목사님은 왜정말년의 험한 마지막 분위기 때에 일본에 있었습니다. 고오배에 있는 군수철공장에 취직을 해서 다니고 있었는데 군장교들이 관리와 주관을 하고 아침조회가 있고 또 아침저녁으로 신사참배를 단체로 시켰습니다. 군관리이기 때문에 신사참배 문제도 경찰이 하는 식과 달리 군인들이 군법으로 처형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수백명의 동료 근로자들 중에서 혼자 머리를 숙이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 갈 때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저들의 눈을 감겨 주옵소서." 그래서 가면 조회가 끝났던지 아니면 적발이 되지를 않았던지 그래 가지고 서너 달이 지나갔습니다.

점점 정부시책으로 강요는 강해지고 믿음으로 이겨 나왔으나 환란이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혼자 감당할 수 없고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일본은 신사참배 반대한다고 당장에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대신 감옥에 넣어두고 굶겨 죽이거나 다른 고생을 시켜서 말려 죽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직장에서 나온 다음 배급을 타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배급을 타려면 통장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조사를 하게 되고 그러면 군수공장같이 좋은 곳에 있다가 나온 것, 이유는 신사참배 때문이라는 등으로 나온 이유가 발각되거나 아니면 신사참배 문제를 확인하게 된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배급표 받는 것도 못하게 되고 오히려 신사참배 반대자로 감옥을 가야 합니다.

배급표를 받으러 들어가도 죽고 그냥 있어도 죽는 때였습니다. 배급표를 타면 쌀은 솔방울만큼 밖에 되지 않고 한달 분량이 3일 잘 먹으면 될 만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달 배급받으면 90개로 끼니대로 나눠 놓고 그 쌀에다 재주껏 다른 것을 섞어 먹는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황이 나서 죽는 사람도 많은 때입니다.

굶어죽을 수 없고 하나님이 지켜서 배급표를 무사히 받아야겠고 사무실 문고리를 잡았다 놨다 몇 번이나 하다가 기도하여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쑥 들어가니까 물어보지도 않고 배급표를 줘서 받아 나왔습니다. 나오면서도 뒤에서 불러 세울까, 마당 통과하는 중에 그럴까 계속 두려움과 믿음의 교차 속에서 멈칫거리며 속으로는 기도하며 그렇게 나왔고 신앙 뺏기지 않고 왜정말년을 통과하여 나왔습니다. 그는 고신의 아주 유력한 장로였다. 돈도 많았고 권위나 위치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

배수윤목사님이 웅양교회에 있을 때 예배당을 군인들이 사용하겠다는 거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이 바로 총탄을 장전하고 배목사님을 앞으로 걸어가게 한다음 뒤에서 총을 발사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번이나 발사를 시도해도 총알이 나가지 않았고 그 사이 앞에서 걸어가던 배목사님은 방향이 달라지고 있었고 그 후에야 다시 발사하니까 총알이 두 번이나 다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총알을 막아버렸습니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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