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반소 금지 원칙

작성자
외부
작성일
2019.05.14
이곳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문답 1,2,3,4), 성경의 '반소 금지' (고전 6:1-7)에 대한 진리를 알아서, 현재 부공3의 설교록 저작권 소송에 대한 오해와 착각, 무식한 비판을 피할 수 있고, 현 상황을 하나님 앞에 정평정가할 수 있을터인데, 수 년을 이 사이트에 관심을 두고, 공회를 안다는 사람이 계속 오해와 착각을 합니다. 그리곤, 계속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부공3을 향하여 복 없는 정죄를 하게 만듭니다.

(1) 성경의 반소 금지를 다시 정립해주십시오.

(2) 부공 3의 설교록 소송의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십시오.

바쁘시겠지만, 그리하여 부공3의 설교록 소속에 대한 외부의 오해와 착각이 두번 다시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을 보고도, 똑같이 오해 하고, 무식의 말, 거짓의 말을 전하는 죄를 지으면, 그때는 오살죄가 아니라, 고살죄, 즉 살인죄가 됩니다.

그리고,

남 정죄를 잘 하는 신앙인들을 보면, 대개 원칙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떤 예외나 현실에 따른 적용의 범위를 허용할 수 없는 진리 신앙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가족, 교회, 행실, 신앙을 보면, 별난 예외가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과 틀린 것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다른 사람은 절대 예외불가이고, 성경 그대로 지켜야만 하고,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 각자 다르기에, 자기 입장에서 타인을 판단하면, 모든 것이 다 잘못됐고, 다르고, 삐뚤어져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평정가란, 자기 입장에서 남을 보고 자기 입장대로 고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두고, 앞 뒤를 살펴 차근 차근 말씀의 이치로 따져 살펴야 하는데,

이게 살짝 삐뚤어져 놓으면, '내가 가는 길이 가장 옳은 길이요. 유일한 길이니, 여기서 삐뚤어진 것은 다 잘못된 것이요. 잘못된 것을 용납하는 것이 변질이다' 이리되기 쉬운 것이 신앙의 곁길과 같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평생을 이렇게 노력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이렇게 더욱 강하게 굳어집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상황 윤리에 빠지면, 절대 진리의 세계는 없어지고, 세상에 속화되기가 쉬운 것이 또한 신앙의 곁길 같습니다.

(3) 절대 불변의 진리의 세계와, 현실 속에서 진리의 적용의 세계, 이 두 관계를 율법과 복음으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체 3

  • 2019-05-16 21:30
    '일정 때문에 답변이 조금 늦습니다.'

  • 2019-05-20 06:01
    답변이 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1) ‘고소금지’ 원칙에 대하여.

    1. 원칙

    맞습니다. 성경의 원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중생된 믿는 사람 간에는, 어떠한 분쟁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만 서로에게 덕이 되고, 서로의 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사는 사람만이 진짜 믿는 사람이요. 교회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고소, 고발과 그 대응문제 자체가 없어야 하고, 오직 말씀과 기도와 전도의 충성만 흘러 넘쳐야 합니다.

    2. 과정의 오해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고소, 고발의 문제가 없는 교회만이 참 교회이고, 고소, 고발에 대한 문제가 있는 교회는 무조건 잘못된 교회인가? 그것은 조금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투표를 해보면, 김정은에 대한 반대표가 단 1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1표도 나오지 않으니까, 북한은 진정으로 국민들과 지도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불평 불만도 전혀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이고, 남한은 맨날 서로 싸우고 다투니,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민주주의가 되는 것인가? 불만을 표시할 수 없게 꽉 누르니까, 표시하면 죽여 버리니까, 겉으로 드러난 분란은 없을지 몰라도, 속에서는 더 무시무시한 반발심과 반항심의 국민들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난 표면으로만 판단을 내리는 것은 대단한 착각과 오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소, 고발만이 교회 안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문제인가? 그건 아닐 것입니다. 배신, 간계, 편당, 탐욕, 시기, 질투, 게으름 등등, 믿는 사람이 쉽게 저지르는 모든 죄악들도, 사실은 거룩한 교회 안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우리교회는 이 모든 실수와 잘못에서, 죄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당당하다 할 수 없다면, 당당하지도 못하면서, 내막도 모르는 교회를, 단지 고소, 고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교회는 잘못되었다고 정죄를 했다면, 그 판단은 과연 옳은 판단일까?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소송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발생되었던 모든 죄악과 잘못과 실수들은, 사실은 있어서는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인데, 태초에 아담 하와 가정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 안에 그런 죄악과 실수가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불변의 목적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끝없는 인내와 무한한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본래는 안 싸워야 하고 안 싸우고 싶어도, 어린 생명들이 자라다보면 서로 싸우는 일이 생기게 되고, 원치 않아도 타에 의해서 휘말리는 일도 생기게 되니, 이런 경우 때리는 자나, 맞서는 자 둘 다 모두 말씀의 선을 넘지 않도록, 성경법으로 원칙을 세워 예방하는 목적이 바로 총공회 ‘고소금지 원칙’입니다. 노파심에 말씀 드리는데, 여기까지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런 원칙을 세우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아집을 못 버린다면, 정말 심각한 병일 것입니다.

    3. 가장 큰 오해

    누군가가 한 사람을 미워하여 누군가가 돌을 들고 그를 치려고 할 때에, 그 사람이 알아차리고 그 돌을 치는 사람의 손을 붙들면서 ‘돌을 내려놓으라’고 큰 소리를 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싸우는 줄 압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둘이 똑같아서 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자초지종을 살피면, 한명은 살인하려는 살인자요, 한명은 피해자입니다.

    부공3은 수많은 고소와 고발 속에서도, 단 한번도 ‘고소금지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맞아도, 먼저 상대방을 친 적도 없고, 그렇다고 고소 때문에, 주님 앞에 해야 할 의무가 막힐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방어를 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막기만 했습니다. 이런데도 아직도, ‘싸우니까 둘 다 똑같다’고 그럴 것인가요?


    4. 총공회 ‘고소금지’ 원칙

    제1장. 총론

    1. 원칙: 교인이나 교회의 신앙 문제는 세상이 판단할 수 없으므로 사회 소송을 금한다.
    2. 범위: 신앙이 금하는 ‘소송’이란 법제도를 포함한 세상식의 해결 방법 일체를 말한다.
    3. 권면: 교인과 교회는 신앙 외적의 사회구성원으로 생긴 분쟁도 피하거나 최소화한다.
    4. 가치: 소송에 임한다 해도 신앙의 고가치부터 지켜 내기 위해 하급 가치를 희생한다.

    제2장. 개론

    1. 일반 원칙

    a. 신앙 문제
    성경 해석이나 교리나 신앙의 본질에 속하여 세상이 알 수 없는 신앙 사안은, 세상 판단을 받는 것도 금한다. 사법 행정 체계는 물론 마을 회의는 물론 문중회에도 의뢰할 수 없다.

    b. 사회 문제
    교회의 건축이나 납세, 교인의 직업 문제처럼 신앙 외적 사안이라 해도 교회나 교인은 적극적 권리 추구를 포기하고 방어만 하되, 각자의 용인 범위 안에서 소극적 최소한에 그친다.

    c. 우선 순위
    신앙과 세상 문제가 혼재 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상황이 되면 신앙 유익을 위해 세상 이익을 우선 희생한다. 구체적 판단은 공회의 상위 원칙에 따라 개인과 개교회가 정한다.

    d. 오류 사상
    세상 자체를 부정하는 염세주의, 진리 추구를 포기하는 무저항주의, 세상 기준으로 신앙을 판단하는 세속주의는 소송금지 원칙에서도 엄히 배제하며 우리는 신앙주의임을 명심한다.

    2. 특별 원칙

    a. 범죄와 義行 사건
    성경과 신앙이 금지한 죄를 짓게 하거나 의무적 의를 막는 소송은 신앙 문제일지라도 소극적 최소한 범위 내에서 방어할 수 있다. 이런 사안은 우리에게 양보나 포기할 자유가 없다.
    낙태 이혼처럼 성경의 금지 행위와 전도 설교처럼 의무를 막는 경우는 방어할 수 있다.

    b. 타인을 위한 소송
    자기와 무관한 타인의 사건에서 타인을 돕는다면 공의 내에서는 소송금지의 소극 대처 규정을 확대할 수 있다. 십자가는 자기가 지는 것이며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이 어려 신앙 원칙을 지킬 수 없거나 가난하여 희생하기 어려운 형제는 도울 수 있다.

    c. 불의의 조장 금지
    원고의 행위가 소송금지 원칙을 현저히 악용하는데 이를 묵과함으로 불의가 크게 조장 되는 경우는 피고가 동참죄를 피하기 위해 그 불의를 차단할 최소한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불신 이웃이 소송 금지 규정을 알고 교회 재산을 요구한다면 소송금지에 적용 되지 않는다.

  • 2019-05-20 06:19
    (2) 백영희 저작권 소송 상황

    1. 세상법정까지 가게 된 단계

    a. ‘대구공회’ 소속의 A는 백영희 목사님의 성함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이영인 목사에게 백영희 성함을 사용하는 일체 외부 활동을 중단하도록 순천법원에 제소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A는 피고의 출간은 백 목사님의 저작권과 부정경쟁방지법에 위법이라고 주장했고 피고를 향해 공회로부터 36가지 거짓말의 책임 때문에 제명 된 목회 부적격자라고 주장했다.

    (고소) A목사가 먼저 세상법원으로 가서 고소했음.
    (이유) 백영희 목사님 관련 소유권 주장

    b. 원고 A는 백영희 성함 사용을 금지하는 소송을 두고 ‘소송금지와 전혀 무관한 개인의 성명사용금지 청구’라는 입장이고, 피고는 누구에게 배운 것이며 누구의 교훈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 소송은 공회 전체에 다 해당 되는 사안이므로 공회가 이 사건을 불신 법원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인지 먼저 공회적 판단을 받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판단사항) 백 목사님의 설교록 저작권 문제는, 신앙 문제인가? 세상 문제인가? 신앙문제라면 세상법정으로 절대 가져갈 수 없고, 가져간 사람이 죄인.

    c. 원고는 총공회는 이런 결정을 할 기관이 없다는 입장이고, 피고는 각 공회는 교역자회와 노소원위원회 및 총공회와 양성원이 있어 연구와 함께 이 건을 판단할 기관이 있다는 입장이다.

    (기관 부재) 백 목사님 교훈은, 그 분께 배운 분들에게는 절대절명의 신앙문제가 아닌가? 목숨 걸고 따르고 배웠던 그 말씀이, 그 분들의 신앙이 아닌가? 그것이 알고보니, 그냥 A의 소유물였던가? 결국 이영인 목사말고는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결국은 세상 재판으로 넘어가게 된 것. 모든 총공회인이 버린 것. 이것은 신앙문제라! 교회가 관할할 문제이지, 세상 법정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마디만 외쳤어도!


    2. 소송 금지 원칙 적용

    a. 총공회 교단은 백영희 노선의 교회니 장로교회와 칼빈의 이름을 뗄 수 없는 것과 같다. 장로교회를 칼빈주의라고 통칭하듯이 총공회는 칼빈주의 안의 백영희 노선이다. 백영희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그 이름을 빼면 저작 절도가 되고, 그 이름을 사용하되 내용이 다르면 성명의 오용이다. 이 판단은 신앙의 내부 문제이니 이 건은 소송금지에 해당한다.

    (신앙문제) 이 건은 100프로 신앙 문제이다. 결코 세상법정에 설 수 없다. 소송금지 사항이다.

    b. 따라서, 백영희 성함과 내용에 충실함은 공회의 의무 사항이니, 원고 A가 소송을 통해 총공회 교단의 목회자에게 백영희 성함의 사용을 금지한다면 이는 죄를 지으라는 소송이 되고, 백영희 교훈을 저작권으로 막고 나선다면 의를 행할 의무를 막는 것이니 피고는 소송에 임하며 최소 대응을 할 수 있다.

    (필수대응, 최소대응) 백영희 신앙을 연구하고 전하는 문제는 의를 행할 의무이니, 희생할 수 없다. 백영희 신앙노선의 연구와 전파에 손해가 없을 범위에서 방어하는 것이 옳다. 의를 행할 의무를 막는 것은 소송금지 원칙에 따라 ‘최소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c. 다만, 상대가 백영희 가족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예우에 최선을 다하고, 원고 A가 공회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여 시작한 행위이므로 이 점을 감안하되,

    (대응 1) 상대방이 하지 말아야 할 소송을 하고 있으나, 그래도 백 목사님 가족이니 예우하도록 노력하고, 여지는 남겨두되

    d. 원고 A가 최근 공회 내에 많은 목회자나 교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위협하였다는 점에서 원고 A가 더 이상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자제하도록 소송에 임하며 이를 참고하면 좋겠다.

    (대응 2) 더 큰 범죄를 막도록, 방어할 것

    e. 백영희 목사님은 공회 지도자로만 살았고 가족을 희생했다. 가족의 희생에 지극히 큰 감사와 함께 죄송함을 표한다. 그러나 가족이나 그 위임을 받은 사람이 백영희의 공회적 처결을 변형한다면 용인 될 수 없다. 백 목사님은 훗날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백영희목회연구소’를 설립했고 백영희 신앙 관련 권리 일체를 맡겼다. 따라서 백영희라는 이름이 신앙에 관련 된 이상 가족은 아무런 권리가 없다. 백영희의 평생은 타 목회자와 달리 사적 공간을 따로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원고 A는 백영희 성함의 사용권과 저작권을 언급하는 것은 월권이다. 피고가 백영희 명예를 훼손했다며 구체적으로 지적한 사례도 원고의 오해이다.

    (대응 내용) 인신 비판, 본인 잘못 때문이 아니라, 오직 공회의 복음 때문에, 모든 총공회 목회자가 버린 백 목사님의 교훈을 최소 방어하는 상황인 것. 방어하다가 혹여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어려운 고생의 상황인 것. 그 누구 한사람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두번 뇌졸증으로 쓰러져 죽을뻔 하기까지 처절하게 혼자 방어하는 상황인 것. 그럴찌라도, 지금 이 순간까지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이 아니라, 이 잘못된 소송을 제발 포기하시라. 눈물로 간청하며, 필사적으로 죄를 막고, 이뤄야 할 의를 이루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의 상황인 것.


    사실이 이런데도, 아직도 ‘싸우니까 둘 다 똑같다’고 그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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