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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유급과 무급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19.03.26
목회자가 월급을 받지 않고 목회를 할 때 자비량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생활비를 지출할 능력이 없고 목회자는 돈이 필요하여 돈을 벌거나 가진 돈을 연보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포장할 때 사도바울의 자비량을 내세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반대로 목회자에게 월급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교회의 목회자가 자비량을 한다고 돈을 버는 경우는 보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유급과 무급을 비교하며 조심할 점 등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교인으로서는 교회 운영비의 총력을 기울여 목회자의 생활비를 최우선 지출하는 것이 복이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는 유급과 무급을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하는지 목사 입장에서도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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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7 11:24
    1. 목회의 출발과 경제

    1)자원 출발의 경우
    목회의 출발은 기본적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받은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식에 의해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 인간 구원을 위한 복음 전파의 일선에 나서겠다는 사명감에 자원함으로 나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진 소유와 시간과 노력과 몸과 최종에는 생명까지 주와 복음 위해, 형제 구원 위해서 다 바치겠다고 출발하고 나서는 것이 깨닫고 자원함으로 목회 출발하는 분들의 기본자세입니다. 목회를 계속하다 보면 세월 속에 식어지고 변해질지라도 출발 당시는 대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 출발은 자기 자신과 가진 전부를 주와 복음 위해, 형제 구원 위해서 다 바치겠다는 약속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목회 출발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물질은 출발하면서 공회나 교회로 연보하고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고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물질은 하나님과 견줄 만큼 비중이 크면서도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간 구원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자원함으로 출발한 사람이 물질을 바치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목회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거나 인식이 잘못되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드물지만 목회를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아주 잘못된 경우입니다.

    2)권유에 의한 경우
    자신은 목회에 대한 사명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공회나 교회에서 그렇게 인정을 하고 공회와 교회의 필요에 따라 권유에 의해서 목회를 출발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비록 자원은 아닐지라도 이런 분들은 대개 그 교회 교인으로서 신앙과 목회적인 실력이 가장 앞선 분들입니다. 자원은 아니지만 목회를 하다 보면 세월 속에 참 목회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과도기만 거치고 다시 교인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가장 일선의 어려운 길입니다. 주님 가신 걸음은 십자가의 걸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셔서 우리 구원 위해 당신의 전부를 다 바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주님 가신 길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최 일선의 가장 어려운 십자가의 걸음을 자원이 아닌 타의 권유에 의해서 출발하는 사람에게 가진 재물까지 다 바치라는 것은 자유성의 원칙에 맞지 않고 부탁하는 입장에서 도의적으로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 속에 본인이 깨닫고 바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고, 공회와 교회는 때를 기다리고,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그럴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자기 명의의 재산이나 재물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공회와 교회와 본인이 함께 의논해서 길을 달리 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달리 대안이 없으면 그대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만큼 본인도 교회도 유익은 적을 것입니다.


    2. 목회자의 유급과 무급

    1)유급이 원칙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고전9:7)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마10:10)

    인생의 가장 젊고 왕성한 황금기를 국가를 위해 바쳐야 하는 군인들에게 의식주까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의식주는 당연히 나라에서 책임져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합당은 급료도 지불해야 합니다. 일군에게 일을 시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먹을 것도 급료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면 일 키시는 사람이 악덕업주이고 도둑입니다. 옛날, 주인의 도구처럼 취급 받던 노예 종들조차도 연명할 수 있는 의식주는 주인이 주고 일을 시켰습니다.

    자원함으로 나섰든지 권유에 의해 나섰든지 목회자의 생활은 일단 교회서 책임져야 합니다. 목회자는 세상 직업과 달리 인간 구원에 전념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말씀 연구, 설교, 심방, 전도, 기도, 그 외에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인간 구원에 전념하는 것이 목회자의 일입니다. 개인과 가정의 의식주를 돌볼 시간도 형편도 없어야 정상입니다. 물론 목회자도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으니 가정사를 돌보고 가족도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목회에 필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참 어려운 말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교회를 뒤로 하고, 목회를 뒤로 하고 가정과 가족을 먼저 돌보고 살핀다면 목회의 바른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면 목회자 가정의 의식주는 당연히 교회서 책임져야 합니다. 목회자가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무급의 경우
    목회자의 생활은 교회서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교회 경제가 목회자 생활비를 책임 질 수 없을 만큼 어렵다면 이는 교회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럴 때는 사도 바울이 과도기에 그랬던 것처럼 목회자가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목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세상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목회 출발 전에 가진 직업이 있어도 목회에 지장되면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이 좀 힘들어도 시간을 자유로 낼 수 있는 일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막노동을 하거나 시간제로 하는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형편이 되지 않아서 목회자가 자비량으로 세상일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이라야 하고 과도기적이라야 합니다. 하다 보면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많지는 않겠지만 세상일과 돈벌이에 재미를 붙인다면 안타깝지만 목회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본업은 말씀 준비, 설교, 기도, 심방 전도, 교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일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이 일을 해서 교회가 부흥되도록 하고 세상 일은 최대한 빨리 손을 떼고 목회에 전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3. 목회자의 생활비 기준

    1)최소한의 생활비
    목회자의 생활비는 교회의 형편에 따라, 목회자의 실력에 딸라 달라질 수 있으나 공회의 원칙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대 따라 생활비의 기준은 다르니 그 시대의 형편, 그 주변의 형편을 살펴 가장 서민적인 기준으로 정하되 구차하거나 누추하게 되지 않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 생계비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공회 목회자의 생활비는 그 정도를 약간 밑도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 경제가 넉넉하고 목회자가 은혜롭고 목회 실력이 있는 교회는 교인들이 얼마든지 더 드리고 싶어 하지만 목회자 스스로 최소한으로 받고 있습니다.

    2)급료가 아닌 ‘사례’가 정상
    세상의 모든 일은 일의 대가를 ‘연봉, 월급, 급료’라 합니다. 일한 만큼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이름들입니다. 목회자의 생활비는 일의 대가를 지불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회는 목회자 생활비를 ‘사례’라고 합니다. 감사의 인사라는 뜻입니다. ‘사례’라는 이름으로 받는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드리는 교회 교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리 생각하고 드려야 합니다.

    ‘사례’라는 것은 감사의 인사라는 것입니다. 왜 월급이나 급료가 아닌 사례인가? 목회자는 자기 소유와 시간과 노력과 인생 전부를 교회를 위해서 바치는 사람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교인들’입니다. 그 교회 교인들 위해서 개인의 가정과 인생 전부를 포기하고 헌신하는 목회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드리면서 교인으로서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사은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월 500만원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월 100만원만 받고 목회로 충성한다면 매월 400만원씩을 교회로 연보하는 것이 됩니다. 경제면으로서도 교회서는 그만큼 감사할 일일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을 경제적으로 먹여 살린다 할 만큼 살피는 실력이 있지만 월60만원만 받는 분도 있습니다. 애초에 물질을 초월한 이런 분들에게 급료나 월급이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교인들로서는 최대한 정성을 담아 ‘사례’로 드리고 그 외에도 목회자에게 필요한 모든 면을 교인들이 알아서 살펴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며 교인들 스스로 복 받는 일입니다.

    3)교회가 교회라면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지상에 있는 천국이 바로 교회라야 합니다. 목회자는 월급으로 더 받으려 애쓰고 방법을 찾고, 교인들은 적게 주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어쨌든지 적게 주려고만 애를 쓰고 있다면 그곳은 이미 교회가 아닌 세상 사업장입니다.

    교회가 교회라면, 목회자가 바른 깨달음을 가졌다면 자원해 나섰든 권유에 의해 나섰든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귀한 몸된 교회의 종으로 등용해 주심에 한없이 감사하고 있는 충성을 다하고도 다시 무익한 종이 되며, 교인들은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려면 세상 일에 그만큼 손해보고 어려움을 당하는데 목회자는 하는 일이 말씀 연구, 설교 준비, 기도, 심방 전도이니 만고에 복 받는 일만 하는데 거기다가 생활비까지 챙겨주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감사할 것밖에 없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라면,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해서 한없이 감사하고 죄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를 세우셨고 그 목회자를 통해서 내가 살아갈 하늘의 양식을 매주일 매일 내려주시고, 나와 내 가정 위해, 내 사업 위해, 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염려하고 살펴 주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여겨 순종하고 섬겨야 하고, 눈이라도 빼어 줄 수 있을 만큼의 깨달음과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가 이렇게 될 때 그곳을 교회라 하는 것이고 그곳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의 모습 천국의 모형인 지상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 2019-03-27 21:36
    좋은 글이 먼저 있었습니다. 간단히 보충합니다.

    예전에는 목회자가 전도할 곳이 많고 기회가 언제든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이면 목회자가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전도에 전념하기 위해 따로 돈을 벌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럴 정도의 사명감이 없거나 그렇게 전도할 환경이 아닌 지금은 목회자가 열심히 돈이라도 벌어서 교회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목회자의 '전도 전념'이라는 1급 충성'에 미치지는 않겠지만 '2급 충성'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도에 전념하지도 않으면서
    교인의 연보만 가지고 산다고 최저 생활을 유지하면서
    교회의 경제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데 보탬 되는 그 충성조차 하지 않는 것은

    과연 목회자의 경제 초월인가, 아니면 목회자의 경제 불충인지 살펴 볼 여지가 있습니다.

  • 2019-04-01 04:29
    목회자의 자비량 일터가 곧 복음을 전하는 선교 현장이라면.
    거기서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목적과 중심이라면 과도기적으로 일시적으로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천막 만드는 업을 자비량하다가 평생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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