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목사 장례식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19.03.26
세월이 지나면서 공회의 수많은 1세대 목회자가 돌아 가시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과 비교하면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집니다. 장례식장이 일반화 되면서 사택에서 나가던 장례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나가는 것은 어디나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장례 모습만큼은 결혼이나 다른 행사와 달리 공회도 같아 보입니다.

가끔 설교록에 장례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이 방에 있다가 저 방으로 건너 가는 것과 같다, 유교는 귀신이 된다는 짐작 때문에 장례가 복잡하지만 기독교는 사용하던 자기 헌옷을 벗음과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말씀입니다. 설교록만 보면 공회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꼭 같이 간소하게 신앙 중심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결혼식은 아직도 예전처럼 밤에 간단히 끝나는 곳이 있으나 장례식은 다른 곳과 꼭 같아 보입니다. 일반 교인은 그렇다 해도 목회자의 장례식이라면 공회는 공회식 장례식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합니다.

백 목사님의 장례식은 어떠했습니까? 어떻하기를 원했습니까? 교인의 장례식에 가면 목회자가 간소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식이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런데 정작 목사의 장례식은 너무 거창했습니다. 칼빈주의 개혁교회는 무덤에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라 하여 박윤선 목사님의 무덤은 평장처럼 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우리 환경으로 본다면 목회자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라야 좋을지 모범적인 공회 신앙으로 안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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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7 14:26
    답변 담당자께서 여러 일정으로 바쁘신 것 같아 우선 답변으로 대신 안내합니다.
    혹 착오가 있거나 잘못된 것은 누구든지 바로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1.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1)변하는 장례식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상은 변합니다. 세월 속에 묻혔던 것이 드러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 지식이 점점 발달되면 사람의 욕망도 생활도 인식도 다 변합니다. 필연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여러 가지를 담아 한 말로 표현하는 문화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장례식이라는 문화도 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옛날의 장례식과 지금의 장례식은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옛날은 주로 매장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장례의 80%가 화장이라 합니다. 매장을 해도 시신은 화장을 하고 유골만 아주 작게 평토처럼 해서 매장하고 작은 비석만 땅에 남기는 것도 있고, 한 곳에 여러 유골들을 합장하는 곳도 있습니다. 수목장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장례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2)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교회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교회도 세상 속에 있으니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적응할 것은 적응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전도할 때 메가폰을 들고 길거리, 시장통을 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크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전도하면 오히려 복음운동에 방해가 되는 시대입니다. 옛날 교회의 종소리는 참 은은하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소음이라고 잘못하면 고발당하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전도는 믿는 사람이 자기 현실에서 빛으로 삶으로 주변 사람들이 감화 감동을 받아야 전도가 되는 시대입니다. 말보다는 실제가 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도방식이 바꾸어져야 하는 실례입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교회도 무조건 변할 수 없습니다. 주일은 어떤 경우도 어기면 죄가 되는데 세계 교회는 두고라도 한국의 교회들 중에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교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교회가 세상을 따라 변한 것이고 속화된 것입니다. 옛날은 남녀 반 분리도 모자라 남녀 반 사이에 칸막이를 쳤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교회들이 남녀 혼석을 합니다. 딱 잘라서 정죄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시대의 타락상과 사람의 연약성을 생각한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고 세상 따라가는 속화입니다. 찬송가를 세상 유행가처럼 부르고 있는 것도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따라가면 교회는 세상의 종이 됩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그 존재의 가치도 의미도 있게 됩니다. 교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3)장례식은 변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과거에는 가능하면 매장을 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자의 유교 때문이 아니라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성경 말씀 때문입니다. 매장을 하면서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근본을 생각하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을 돌아보는 신앙의 유익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장만 해야 된다는 성경 말씀은 없습니다. 장례식 방법은 계명이 아닙니다.

    지금은 장례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좁은 국토에 수많은 묘지들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묘지는 허가 자체가 아예 나지 않습니다. 이미 묘지를 확보해 둔 기존교회들 혹은 묘지 쓸 산을 마련해 둔 큰 교회들은 가능할지 모르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묘지 자체를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연히 화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혼식을 간소화 하듯이 장례식 또한 간소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혼식은 경사로 인식되는 반면 장례식 가족 잃은 슬픈 일로만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교인과 그 가정의 신앙 정도와 구원의 손익에 따라 조절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신앙의 가정이고 간소화를 이해 못하는 교인과 가정이라면 조금 챙길 필요가 있을 것이고, 장성한 신앙의 가정이고 간소화를 이해할 만한 교인과 가정이면 간소화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목회자나 그 가정이면 당연히 모범적으로 간소화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2. 백 목사님의 장례식

    1)백 목사님의 장례식은
    한 마디로 아주 거창했습니다. 부산이 생긴 이후로 그렇게 큰 장례식은 별로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동원된 전세버스만 100여대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총공회장, 5일장으로 치러졌고, 장례식 기간 동안 서부교인은 물론 총공회 수많은 교인들이 백 목사님 시신을 모셨던 서부교회 5층을 문상으로 다녀갔습니다. 장례식 당일은 서부교회 1층부터 3층까지 빈틈없이 다 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일 장례식장에 참석한 인원만도 5천명이 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서부교회 묘지에 있는 백 목사님의 묘는 요즘 시대 기준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큼 왕릉처럼 거대합니다. 백 목사님의 뜻은 아닙니다. 아버님을 지극히 존경하는 자녀 분 중에 한 분의 효심에서 나온 결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효심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백 목사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2)백 목사님의 장례식은
    일반 목회자들과 달리 그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서부교회 장년반 주일 단일예배 출석이 4천명이 넘었고, 공회적으로 재적 20만이라는 총공회의 설립자인데, 서부교회 교인들, 총공회 많은 교인들과 백 목사님의 관계는 단순히 목회자와 교인 그 이상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 형태로 백 목사님을 부모 이상으로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교인들이 수천 명이 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 목사님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스스로 원하고 원해서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니 장례식장도 순서도 운구행렬도 거창하게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이니 거의 한 세대 이전입니다. 당시의 장례식에 대한 일반 인식은 지금과는 또 다른 때입니다.

    그렇게 큰 장례식이었지만 장례식 기간이나 진행 과정, 마지막 하관까지 빈틈없이 진행되고 마무리되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큰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 설교, 기도 등의 장례식, 운구행렬과 차량 진행, 하관까지 모든 순서와 인선과 과정 전체를 현재 부공3을 지도하는 목사님이 당시 조사님 신분으로 총괄했습니다.

    3)백 목사님 장례에 대한 생전의 뜻은
    김현봉 목사님은 모든 물질은 악하니 물질로 된 사람의 몸도 악하다는 물질개악설 교리를 가져 당신의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가마니로 덮어서 들판에 버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신으로 이루어가는 건설구원과 기능구원 교리를 가르치신 백 목사님의 교훈과는 다른 깨달음이고 주장입니다.

    백 목사님의 장례에 대한 생전의 뜻은 간소한 장례식과 아담한 묘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서부교회 묘지로 올라가면 전체 묘지 왼쪽 입구에 서영준 목사님 묘가 있었습니다. 일반 교인들 묘보다 아주 약간 큰 정도로 아담하고 참 보기 좋았습니다. 백 목사님이 평소 여러 행정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면 생전 원하셨던 당신 묘의 모습이 그런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2019-03-27 21:31
    (오늘 공회 목사의 장례식이라면)
    백 목사님의 장례에 대한 설명은 윗글에서 충분히 되었다고 보고, 오늘 공회의 환경에서 일반 목회자의 장례만 추가해 보다면

    1. 장례 장소
    단기간의 목회자는 좀 애매한 면이 있으나 한 교회에 장기간 목회한 분이면, 자기 손으로 자기 교회 교인을 모시면서 주변에 가장 일반적으로 안내했던 장소를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가장 흔한 것이 공원묘지입니다. 목회자가 선산으로 간다거나 목회자들만의 별도 장소로 가는 것은 예배당 내 특별 좌석을 마련하지 않았던 공회 노선에 맞지 않을 듯합니다. 목회자가 '교회 중심'을 평소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에 주일의 예배도 본교회 주일만 주일이라는 정도로 공회는 소속 교회를 이 땅 위의 전부로 삼다시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살면서 그 교회 교인들이 가장 흔하게 가는 곳. 그 곳에 목회자가 장례 예배를 인도했을 것이니 그런 곳에 함께 묻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부교회라면 교회 묘지가 따로 있고 거의 그리로 가는 것이니 그리 가는 것이 맞지만, 전국의 공회 교회들은 최근 거의 주변의 공원묘지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 교인의 추세라고 보며 그 것이 교회의 지도 방향에도 맞을 것이니 목회자는 당연히 교인들에게 가장 좋다며 안내한 곳으로 가야 맞습니다.

    2. 장례 모습
    우리는 소망 없는 이들처럼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평소 목사는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슬픔에 빠져 정신 없는 이들을 위로하는 장례식 예배, 또는 불신 식구들이 불안해 하여 유교식 각종 의식을 예배로 바꾸어 시행했던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심지어 불교식의 삼오예배는 최소한 공회 목회자라면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가장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면 우리는 추도예배가 없습니다. 추도예배가 장례의 매년 계속 예배라면 장례예배는 추도예배의 첫 예배입니다.

    예배당에서 충성하다 갔으니 예배당에 관을 눕히고 나가면 좋겠으나 여름에는 문제가 있고 또 신앙 없는 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며 예배당에서 관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천주교식의 의례화까지 염려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세상식이 아니라 우리 식에 가장 좋은 것이 병원 영안실에 시신을 모셔 놓고 '장례식장'의 접견실 또는 영안실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반 교인 중에서 경제가 어렵고 또 찾아 올 분이 따로 없으며 아주 깨어 있는 가정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봤습니다. 공회의 표준형으로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목사 가정에 목사 죽었다가 남은 가족이 장례 예배로 위로를 받는다면 그 목사의 목회는 내적으로 심각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 가족 중에 반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할 수가 없겠으나 어지간하면 가신 선친이 공회 목사였으니 최대한 그 공회 목사의 목회식을 따라 장례의 어떤 행사도 없이 그냥 진행하면 공회식으로 좋을 듯합니다.

    3. 장례 부고
    결혼식의 정신을 따라 당연히 공회 목사의 장례식이면 부조란 받지 않는 것이 맞을 것이고, 또 부고도 친 직계 가족에게만 전하고 특히 직계 가족이라 해도 신앙이 없어 목사를 비판한 사람이면 부고라도 해야 하지만 신앙이 있는데 죽은 목사와 신앙적으로 길을 달리 한 경우, 특히 죽은 목사의 신앙을 신앙차원에서 비판한 이들에게는 친형제라도 부고하지 않는 것이 그 비판한 형제의 신앙을 존중하는 것이 될 듯합니다. 부공3의 경우, 현재 부공3의 길이 틀렸다고 부공3 소속 목회자 중에 형제 목회자가 형제 목회자에게 극언을 하며 비판을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부고를 하지 않는 것이 맞고 만일 부고를 낸다면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를 비판한 목회자 가족이 장례식에 얼굴을 내러 온다면 죽은 목회자의 직계 자녀들이 나가서 밖으로 밀어 내는 것이 구약의 성전 문지기적 신앙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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