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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여러 형태, 여러 내용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19.02.12
신사참배로 고난 받은 분들의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호남의 순교자는 참으로 찾기가 적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나라에 파송된 선교회 중에서 미국 남부 지역에 연고를 둔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제일 보수적이며 원칙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미국의 남장로교가 전담한 호남지역에는 왜 신사참배를 승리한 사람이 적고, 오히려 호주선교부나 미국의 북장로교처럼 남장로교보다 더 자유로운 선교부가 전담한 지역에는 신사참배를 승리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순천 지역의 심봉한 순교자는 타고난 체격 때문에 고문을 더 많이 당하고도 옥중에서 죽지 않고 집으로 온 다음에 죽습니다. 안용근 목사님은 체질적으로 천식이 심하여 보다 쉽게 돌아 가시고 옥중 순교자가 됩니다. 고생을 더하고도 해방 후 출옥하여 순교자가 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고, 원래 집에 그냥 있어도 돌아 가실 만한 분이 신사참배 초기에 약간의 고난을 당하면서 바로 순교자가 되는 경우. 어떻게 봐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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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4 22:25
    초기 한국선교는 미국의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선교부 이렇게 세 선교부가 담당하고, 지역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북장로교는 북한지역을 중심으로, 남장로교는 충청도와 호남을 중심으로, 그리고 제일 늦게 들어온 호주 선교부는 경상도 그 가운데 특별히 부산 경남 거창지방을 담당합니다.
    세 선교부가 한국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교육과 의료사업을 중점으로 한 것은 공통적이라 할 수 있으나 북장로교와 호주선교부는 남장로교보다 철저한 신앙체계인 성경중심의 보수적 신학을 기초로 한 선교사업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호주 선교부의 경우는 철저한 보수적 신앙으로 말미암아 신사참배를 강하게 반대하다가 선교사가 모두 강제 퇴거를 당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호주 선교부 신앙의 영향으로 경남 지역에 신사참배 승리자가 더 많이 배출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순교를 살필 때 늘 조심할 것은 순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철저하게 따져 구별하되 순교로 결론이 나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순교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또 순교 못지않게 가치 있는 삶 즉 순생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택자가 현실을 살아가며 자기현실에서 자기의 소유, 힘, 자본, 활동을 주님과 말씀에 붙들려 사용함으로 없애는 것이 바로 순생입니다.
    순생으로 살았다고 해서 순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나 분명한 것은 순생 없이 순교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 2019-02-17 12:04
    1. 교회사적으로
    미국의 남장로교는 북장로교보다 신앙이 보수적이었습니다. 호주는 아예 백호주의가 오랫동안 버틴 정도여서 사회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교회도 그런 면 때문에 보수적이었습니다. 흔히 이 점 때문에 남장로교가 한국에 나와서도 북장로교 관할의 교회들보다 더 보수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한국에 나온 선교부만 보면
    북장로교 출신인데 남장로교 출신 선교사보다 더 보수적인 분들도 있었고, 남장로교 소속이나 북장로교보다 더 자유로운 선교사도 있었습니다. 또 호주 선교부는 해방 전에는 어느 선교부보다 더 철저했지만 해방 후에는 호주 교회들이 장로교뿐 아니라 아예 모든 교파가 연합을 해버리며 더 자유주의 신앙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각 선교부의 본부와 함께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부 및 각 선교사들의 개별 상황을 살피는 것이 한국 교회로서는 더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사과가 열렸으면 사과나무일 것이니 신사참배를 통해 각 선교부는 그들의 신앙을 나타냈다고 보입니다. 남장로교 관할 지역의 교회에서는 신사참배를 승리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이기풍 안용근 심봉한처럼 3명 정도가 눈에 띄이지만 이기풍은 평양에서 그 신앙을 미리 가졌으니 북장로교 관할 목사님이었고 안용근 목사님은 평양 신학교를 통해 그 쪽의 신앙에 연결이 있었을 것이고, 심봉한의 경우는 남장로교 선교사 외의 선교사를 모두 접하는 위치에 살았습니다. 요약하면 한국의 신사참배 투쟁사는 호주 선교부와 북장로교 선교부 관할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본국의 교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선교부 신앙은 호주 선교부와 북장로교 선교부가 더 엄했다고 보입니다.

    예를 들면, 백 목사님 생전에는 하나의 총공회였으나 1989년에 진보적인 대구공회와 보수적인 부산공회가 분열하고 오늘에 이릅니다. 그런데 부산공회 내에도 대구공회보다 진보적인 교회나 목회자가 있고, 대구공회 내에도 부산공회보다 더 보수적인 교회나 목회자가 있습니다. 분열 중에 대구공회에 소속을 뒀지만 평생 부산공회보다 더 보수적인 분이 만일 중국에 선교로 갔다면, 그리고 부산공회에 속했으나 대구공회보다 더 넓은 분이 중국에 선교를 갔다면, 중국의 공회 교인들을 비교할 때 본국 소속을 가지고 평한다면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 나온 보수적 총공회 목회자 때문에 본국의 대구공회가 부산공회보다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3. 신사참배 승리자들의 경우
    본국과 선교부의 신앙이 전혀 다를 수 있듯이, 미국의 남장로교가 확실히 보수적이고 한국에 나온 호남의 남장로교 선교부도 북장로교의 평양이나 호주 선교부의 경남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해도, 그 곳의 교회들이 만일 다른지도 살펴 봐야 합니다. 본국 교회와 해외 선교부는 보수적인데, 정작 전도를 받은 교인은 아주 진보적일 수도 있고, 또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고신 속에 있던 백 목사님이 고신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의 길을 걸었던 것과 같습니다.

    호남 지역의 교회들이 미국의 엄격한 남장로교 선교부를 강조하며 그들의 신앙은 보수적이고 신사참배에 가장 투쟁적이었다고 강조를 하면, 호남 지역의 교회들은 훌륭한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운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신사참배 성적은 너무 엉망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의 학습력이 너무 형편 없다는 말이 됩니다. 반대로 북장로교와 호주 선교부가 형편이 없었다 한다면 평양과 부산의 한국 교회의 신앙은 독자적으로 대단히 우수했다고 해야 합니다.

    4. 선교부들의 신사참배 투쟁
    한국교회사에서 선교사들의 신사참배 투쟁을 기록한 내용은 많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일본이 미국 호주와 외교 문제 때문에 한국 교인을 상대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지금 중국 내에서 공산당 공안들에게 한국 선교사가 당하는 위협과 중국인들이 당하는 위협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미국 호주 유럽을 어려워 했습니다. 지금 북한이 미국 선교사에 대해서는 남한 사람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교인은 총독부 경찰에게 가차 없이 당하는 식민지 인민들이고, 선교사는 본국의 배경 때문에 일본이 눈치만 주고 관청의 인허가 권으로 행정조처만 할 뿐이지 몸에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두 모아다 추방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신사참배 6년의 고난을 통해 선교사에게 배운 한국의 교인들은 고문 고형 순교를 가차 없이 당해야 했고, 우리를 가르친 선교사들은 불편 외에 달리 당하지 않았습니다.

    5. 순교의 차원
    앞에서 설명한 내용의 연속선이 됩니다. 원래 집에 있어도 병약하여 돌아 가실 분은 작은 고난 속에 쉽게 순교했고, 원래 강골이어서 먼저 순교한 병약한 순교자보다 10배의 고문을 당했으나 그 마지막에 실패한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누구의 복이 큰지 사실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막을 일일이 비교하고 살피는 것은 그들을 잘 아는 분들은 가능하나 역사적으로 통계만 가지고 살피는 일반 교인들로서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안용근 목사님과 심봉한 집사님은 같은 구례 지역에 있었으나 두 분의 순교 과정을 비교하면 고난을 겪은 것은 심봉한이 훨씬 컸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마20장에서 하루 종일 수고한 사람과 해거름에 와서 조금 수고한 사람을 두고 주인이 어떻게 대우를 하느냐는 것은 14절에서 주님의 주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이를 두고 백 목사님은 평생이 절반이요 죽는 것이 절반이니 평생 잘 믿고도 순교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마지막 죽을 때 이왕 죽을 그 순간을 순교로 죽는 것이 복이라고 늘 가르쳤습니다. 병약하여 죽을 사람이 그 죽는 순간에 순교의 기회를 잡아 순교자가 되면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가장 영광의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은 주님이 그런 복을 주셨으니 그 것은 은혜요 그 것은 주님이 정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런 줄 알 뿐입니다.

  • 2019-02-18 19:48
    https://www.youtube.com/watch?v=3CuoGncuAR4
    전남 영광 염산교회 77인 순교자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Qw3CV5iVVy4
    전남 영광 야월교회 6.25당시 공산당원들에 전교인 65명이 순교당함

    • 2019-02-18 19:59
      신사참배 관련은 아니지만 호남 순교에 관해 참고적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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