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개혁주의와 공회의 구원론 차이는 해석의 차이인가, 실체의 차이인가?

작성자
신학
작성일
2019.01.24
개혁주의 구원론이란 천주교의 '행위로 얻는 구원'을 부인하고 전적 은혜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회의 구원론은 전적 은혜의 구원은 천국에 들어 가는 기본구원에 해당하고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은 신앙 차이가 있으니 이를 각자의 건설구원이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가는 길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와 공회의 구원론은 길은 같은데 그 길을 설명하는 해석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개혁교, 공회의 구원론은 혹시 각각 3개의 다른 길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질문합니다. 산속에서 배고픈 실종자들이 독초밭과 산삼밭을 발견했다면, 천주교는 독초를 향해 저 아름다운 풀들이 약초며 그 뿌리가 허기를 채워 줄 무우뿌리와 같은 음식이라며 교회를 인도했고, 개혁교회는 그건 약초가 아니라 독초니 그리 가면 죽는다면서 방향을 바꾸고 산삼밭으로 교회를 인도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산삼을 더덕인 줄 알고 좋은 식용풀이라 하고 또 뿌리가 배를 채우는 영양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면 공회는 우리가 가는 이 길은 더덕밭이 아니라 산삼밭이라고 설명한 것이 아닐까?


천주교는 길 자체가 멸망으로 인도하는 방향이어서 구원 자체가 없지만
개혁교의 구원론은 길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인데 그 길을 걸어 가면서 그 길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체 4

  • 2019-01-24 13:17
    (천주교 )
    우리는 그들과 교파를 달리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종교가 다릅니다. 따라서 길 자체가 다릅니다.

    (개혁교회)
    천주교는 세계 교회의 단일 지도자의 운영을 말합니다. 개혁교회는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천주교는 성령이 각 교회와 교인에게 다른 위치에서 달리 주실 사명을 교황이 붙들고 대신 집행을 한다고 비판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자리에 교황이 대신 앉았으니 구조적으로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출발 때문에 개혁교는 각 교회와 교인에게는 성령이 각각 다른 사명을 맡기고 다른 길로 인도를 할 수 있으니 그 것이 교회 자유이며 개인의 신앙 자유라 합니다. 개혁교의 출발 정신입니다.

    아프리카 교회와 한국의 교회가 교류가 없다 하여 서로 쪼개진 것인가? 주님이 두신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 순복음교회가 전도와 심방에 열심을 내고 장로교회가 진리 연구에 매진하는 것은 교파가 쪼개진 것인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다를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뉘어 남남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교회를 쪼갠 것이지 실제로 쪼개지지 않습니다. 교리가 다르면? 달라서 아니 되는 교리가 다를 때 우리는 태어 나는 아이가 문법 모른다고 바보라 하지 않고 세월 속에 배울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학교를 가지 않고 문법을 모르면 공부가 체질이 아닌가 보다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글 모른다고 우리가 원숭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구원론)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영원 전에 택한 사람은 때가 되면 무조건 중생 되고 무조건 천국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길은 틀림 없이 맞는 길입니다. '예정' '택함' '대속' '구원'이 전적 은혜이니 이 길이 구원론의 바른 길입니다. 다만 구원을 받고 난 후의 행동에 대해, 모든 성도는 다소의 차이는 있다 해도 좀 낫게 잘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현상을 두고 개혁교회는 잘 믿고 발전이 있는 사람은 그의 중생이 진짜로 보인다 하고 또 신앙생활이 엉망인 사람을 두고는 중생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 라고 합니다. 우리는 출생한 아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는 것은 같으나 성장과 학습은 다를 수 있으며 그 부분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같은 길을 가면서 같은 현상을 두고 서로 해석을 다르게 할 뿐입니다.

    해석만 다르다면 결과적으로 달라 질 것이 없지 않을까요? 정말 중생이 된 사람은 저절로 잘 믿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해석과 중생이 된 사람의 그 후 신앙의 차이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해석, 이 두 해석은 발전 과정에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음식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아는 사람과 그냥 먹으면 자라더라는 경험칙만 있는 사람이 다른 것으로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 2019-01-24 22:20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구원관이 너무 중요하지만, 구원관만큼 중요한 것이 `교회의 분위기, 신앙생활 양식` 같습니다.

    웨슬리구원관을 가졌던, 알미니안구원관을 가졌던, 워치만니구원관(지방교회)을 가졌던, 개혁주의구원관을 가졌던 모두 예수님을 잘 믿어보려는 것은 같을 터인데. 어느 구원관을 가졌던 3공회노선의 교회분위기와 신앙생활양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 나간다면 그 열매는 좋은 열매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3공회는 과거 고신의 원래 분위기인 `주일성수철저 예배중심생활 남녀이성조심하고 일찍결혼 자녀많이낳음 목회자청빈 경건한예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느구원관을 가졌던 3공회노선에서 신앙생활을 진실하게 열심히 해 나간다면 신앙의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구원관교리의 정확성이 너무 중요하지만, 지금 시대는 바른신앙노선(과거 고신의 분위기 = 현재3공회의 분위기)이 구원관교리의 정확성만큼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되어 집니다. 누군가가 웨슬리구원관을 가지고 3공회노선에서 진실하게 신앙생활 해 나간다면 그 열매가 참으로 클 것 같습니다.

  • 2019-01-25 09:37
    교회의 분위기가 좋다면 교인들이 좋게 영향을 받게 되어 일단 좋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분위기를 만든 것이 원래 사람들이 좋아 그런지 그 속에 있는 사상이 좋아서 분위기를 좋게 만든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구원관의 사상이 좋고 튼튼하면 분위기라는 것은 좋지 않아도 결국 좋게 바뀌게 되어 있고, 좋은 분위기라면 더 좋게 또는 잘 유지를 시켜 줄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좋은데 그 속에 사상이 받쳐 주지 않으면 분위기 좋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뀝니다.

    알미니안 신앙을 가진 분은, 언젠가 알미니안 사상만큼만 좋은 것을 유지하지 그 이상을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분은, 언젠가 칼빈주의 사상이 보장하는 만큼 좋은 것을 유지하지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공산주의자 중에도 양심적이거나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있으나 70년쯤 지나고 나니까 전부 망해 버렸습니다.
    자본주의자는 처음부터 뇌물 부정 부패가 만연했으나 세월 속에 나아졌고 지금은 비교 못할 정도로 깨끗해 졌습니다.

    팔과 다리처럼 각 교회에 위치와 사명을 달리 주신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는 서로 비교할 것 없이 자기 길을 매진하면 되고, 팔이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든지 발이 글쓰기도 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다면, 그 사상 때문에 처음에는 발가락으로 글 쓰는 사람이라고 각광을 받고 또 물구나무로 생활한다고 인기를 끌지 몰라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 2019-01-25 11:39
    60여년 전에는 교파를 막론하고 3공회 분위기였는데..그 분위기를 많이 잃어버린것 같아서..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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