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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유고시 후임 선정에 대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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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1.06
2018년 한해에는 유달리 여러 공회의 여러 젊은 목사님들이 돌아 가셨습니다.

젊을 때 함께 신앙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나이 먹는 것도 모르고 늘 젊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요즘 60대에 가신다면 엣날에 홍순철 서영준 전성수 목사님 가시듯이 일찍 가시는 건데 그때는 백목사님이 계셔서 아무리 훌륭한 분이 가셔도 그 분들 한분 한분이 아쉽지 사실 후임 걱정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공회들이 타 교단처럼 비교적 느슨한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작 개교회들은 옛날 인식이 남아서 공회 결정을 무조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틈을 타서 눈치 빠른 정치 목사나 교회 주도권을 가지고 싶은 소수 교인이 공회 이름을 빌어 후임 결정을 해 온 것을 지난 30년을 통해 많이 느낍니다.

단언코 어느 공회에 어느 후임이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선하게 정해 졌다고 감동을 받을 만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 극언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어느 정도 실황을 말한 겁니까?

연말 연시에 여러 곳에 중요한 교회의 중요한 목회자들이 생사를 걱정할 상황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천하 없이 건강해도 우리는 오늘 갈 수 있는 사람이고 늘 장례식 준비를 하면서도 구순을 넘기신 분도 계십니다. 걱정스럽게 질문을 드리는 요지는 공회 교회가 후임을 정할 때는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공회  조직신학이나 여러 자료를 살펴 봐도 이런 중요한 원칙은 없습니다. 공회의 출발과 형성 과정과 교회사 적인 큰 의미는 우리가 배워서 아는데 전임자가 사명을 마칠 때 교회는 후임자 선정으로 결판이 나지 않습니까 서부교회처럼.

서부교회도 서영호 목사가 와서 타 교단이 되었고 애양원교회도 손목사님 반대로 가 벼렸고 산정현교회는 담임이 도망을 가버렸잖습니까.

목회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목회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회인데 교회가 목회자 선정을 두고알아야 할 공회 원칙을 정리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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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8 05:46
    1. 공회의 목회자 선정의 원칙

    ① 내부 선발이 원칙입니다.

    * ‘현실 신앙’이 모든 신앙에 기본 출발입니다.
    공회는 세상과 신앙의 모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 손에 닿는 현실에 모두 배치 시켰다는 신앙을 기본적으로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보내면 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기 태어 난 곳에서 자라고, 자란 곳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평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본 인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회 신앙은 현재 바로 자기 상황이 천국이며 에덴동산이며 구원에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상 때문에 공회는 어느 날 갑자기 먼 곳으로 떠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시도를 현실 도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셉처럼 가지 않을 수 없는 애굽행은 누가 봐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 현실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부모를 두고 아이들이 자꾸 먼 곳을 가 보려고 하는가? 여행 정도라면 공부도 되고 경험에 필요할 수 있으나 제 부모와 살고 있는 제 가정이 얼마나 좋은 천국인지 몰라서 그 어떤 꿈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면 우리는 도전이나 성장이나 탐험이라 하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쫓겨 나온 인간의 원죄성이니 귀신에게 씌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개척도, 새로운 교단의 창설도, 새로운 도서의 출간도, 교인의 이사나 전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보수’여서 보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기 현실은 자기의 천국’이라는 현실 신앙 때문에 보수 중에서도 극단적인 보수로 보여 집니다. 꼭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즉각 바꿉니다. 그 외는 어지간하면 지켜 냅니다. 꼭 몹쓸 것으로 보인다 해도 끝까지 고쳐 써 보려고 노력이라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장이든 인간이든 가족이든 주택이든 교회든 도저히 더 이상 지켜 낼 기회를 주지 않으시면 그 때는 주님 때문에 이동합니다. 이동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을 우리는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이라면? 바로 구원의 핵심 요소입니다.

    *각 교회의 지도자는 그 교회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질문하신 내용을 직접 설명하겠습니다. 무조건 그렇다고 하기는 곤란하지만 원칙적으로 한 교회에 필요한 목회자는 바로 그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면 그 교회의 담 바로 옆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부와 주변을 건너 뛰고 해외에서 전국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누구의 소개로 자기 머리가 될, 자기 교회를 앞에서 지도할 인물을 모신다는 것은 10대 소녀가 생전 모르는 멀고 먼 여행 길에서 반한 사람에게 자기 평생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현재 목사는 자기 교회의 목사입니다. 아합 정도로 역사 최고의 악인이 자기 교회 목사라면? 배척하는 것에 앞서 엘리야처럼 회개를 시켜 바르게 만들려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공회가 시무투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2년만 참고 나서 보내라는 제도가 아니라, 목사에게 2년 후에 그런 죄를 짓는 교인들이 되게 만들지 말고 또 그렇게 쫓겨 가는 비참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라는 2년의 기간입니다. 세상식으로 말하면 무조건 퇴직이라는 가장 험악한 칼을 교회가 들고 목사의 목을 노리게 만든 것은 목사의 목을 치라는 살인검으로 준 것이 아니라 목사 속에 목사를 죽이고 교회를 함께 죽이는 귀신과 죄와 세상을 끊어 내어 죽여 내침으로 그 목사를 살리는 수술칼로 줬습니다. 그래서 공회 시무투표가 결국 불신임으로 끝이 나고 새 목회자를 모셔야 할 상황이 될 때, 바로 그 때도 새 목회자의 첫 후보는 방금 불신임을 낸 그 전직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공회들마다 불신임이 많았으나 이 원리를 아는 교회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배우고도 그렇게 모르고, 복음의 칼을 가지고 세상 인사정책의 결정권자가 제 멋대로 감정풀이 하듯 하고 있으니...

    *자기 교회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실 것
    질문자께서 예를 들며 질문하신 최근 급사할 뻔한 목회자들이나 실제 그렇게 된 교회들을 염두에 두고 설명해도 마찬 가지입니다. 후임자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은 그 교회의 기존 내려온 방향과 내용을 지켜 내는 것이 순서상 1번입니다. 귀신은 상황논리로 일단 뭔가를 바꾸려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동안 기다리던 탈선을 목표합니다. 이런 곳이 교회니, 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에 급변이 생기면 일단 해오던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러면서 후임자를 선정하고 그 후임자가 과거보다 발전을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강아지는 개로 자라 가야 하고, 송아지는 소로 자라 가야 하고, 솔 씨는 소나무로 자라 가야 합니다. 침례교회로 개척하고 운영한 교회가 후임자가 바뀐 후 장로교회 출신을 모시고 장로교회로 변형을 하겠다면? 하는 것은 우리로서 환영할 일이나 알고 바꿔야 뒤탈이 없고 또 더 나은 앞날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방향이라 해도 과거를 모르고 바꾸는 과정이 ‘변형’에 관점을 뒀다면 더 나은 것을 택하고도 덜 좋은 방편 때문에 더 나은 것이 더 낫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히 봅니다. 남한이 왜 좋은지 모르고 또 남한에서 좋게 살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모르고 무턱대고 남한이 좋다는 말만 듣고 덮어놓고 탈북한 분들은, 북한과 비교되지 않을 이 좋은 나라에 와서 정작 북한에 있었던 것만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목회자 급변에 우선 순위
    10명의 개척 교회든, 목회자 부부 2명만 앉은 가정교회급 교회든, 100만 교인이 모인 세계 최대의 교회든, 그 교회에 후임이 필요하다면 일단 내부에서 찾아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분명히 그 교회에 맞는 보배가 있을 것입니다. 물고기에게는 물 속에 행복도 생명도 치료도 아마 다 있을 것입니다. 소나무에게는 현재 뿌리 박은 바로 그 땅 밑에 행복도 생명도 치료도 모두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에게 그 교회의 현재 목회자가 가장 좋은 목회자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지나 가는 어느 부부 중에 한 사람을 붙들고 옆에 있는 저 사람이 당신의 천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덕담 차원에서는 ‘예, 예’라고 하겠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라 할 것입니다. 만일 10년 산 부부라면? 만일 50년 산 부부라면? 뺨이 날아 올 듯합니다.
    현재 있는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갑자기 데려 간다면, 남은 교인들은 그 동안 자기 교회에 함께 모여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구해 보면 찾기도 쉽고 또 보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복과 지혜와 기회를 잘 받아 챙기는 교회가 없으니 교회란 이 땅 위에서 귀신과 세상이 탄압을 해서 어려운 것보다 눈이 삐어 죽고 망하고 고생할 길을 찾아 다닌 결과 때문에 고난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합은 왕상21:20에서 ‘스스로 팔려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구할 것인가? 본인이 돌아 서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가 살던 시대는 고난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② 내부 선발의 기준입니다.

    *가장 좋은 교인이 가장 좋은 목회자 후보입니다.
    교인 시절에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했으나 타고난 인물과 학습력과 세상의 여러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있다면, 교인들은 그런 사람을 선택하면 단번에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정치와 공부와 돈벌이는 그 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야 하는 목회란, 하나님이 속아 주지 않고 그런 인간 실력에 끌려 피동이 되는 일이 없으므로 금기 사항입니다. 불행히도 자기 교회와 상관이 없는 곳에서 모셔 오는 것이 가장 흔하고, 내부에서 선발한다면 세상식의 실력자를 찾지 주님이 기뻐할 평소의 신앙인을 구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공회 외에는 거의 모든 교회가 ‘목사’란 의사처럼 변호사처럼 그렇게 선발하고 양성을 한다며 일반 세상의 전문대학원 체계로 기릅니다. 맹세코, 이론만 논하는 신학자는 그렇게 길러도 아이를 실제 길러야 하는 엄마의 자리인 목회자란 평소 그 교회를 좋아하고 그 교회에 가장 자주 다니고 그 교회에 가장 정성을 기울이고 그 교회를 가장 아끼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세계 최상급의 실력을 가졌으나 그 여성이 계모라면, 그 집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비록 세계 최저 수준의 여성인데 친모를 대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내부인이 아니라 실제적 내부인을 말합니다.
    후임의 최고 기준은 내부인이라는 원칙은 그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해도, 어느 신학자와 논쟁을 해도 ‘교회의 후임’을 두고는 공회 논리를 넘어 설 수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가 됩니다. 누가 ‘내부인’인가? 그 교회 주소와 건축물 안에서 활동했던 것이 기준인가? 내면으로 볼 때 소속과 노선과 신앙의 방향과 내용이 좋아서 내부인으로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디 갖다 놓아도 성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절에서 태어났다면 보살이 될 사람인데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교회에 성자가 되는 사람은 그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의 성향을 살펴야 합니다. 과연 따져 보고 연구해 보고 실제 살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다니는 그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교회가 맞고, 그 교회에서 자기가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고 좋아서 자원함으로 교인 생활을 바로 한 사람. 그 사람이 목회자가 되면 만사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찾아 본 대상이 현재 주일학생이거나 여성이라면?
    공회는 세상이 몇 번 바뀌든지 남자는 지도자용이고 여자는 그 보조자용이라고 외칩니다. 지도자가 보조자보다 신앙이 있고 높은가? 그 것은 타락한 세상의 기준이고, 천국은 생명성의 나라이니 인체로 비교할 때 눈과 귀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을 자를 것인가 묻는다면 뭐라 하겠습니까? 남과는 비교를 해도 한 몸의 인체는 각자가 자기 위치에 자기 사명이 있고, 그 것은 하나님께서 정했으므로 귀는 귀로 사는 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귀함이 되고, 눈은 눈으로 사는 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고귀함이 됩니다.
    우선 남성을 찾아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여성 중에는 지도자감이 있고 남성 중에는 없다면 어떻게 하지요? 우선 그 여성이 교회를 지도하면서 그 여성과 그 교회 전체가 남성 중에 우리 교회의 후임이 되고 우리를 지도할 수 있는 인물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교인들을 바르게 길러 교회를 맡길 때까지 함께 노력하면 됩니다. 조선에 왕이 죽고 왕자가 어리면 어떻게 하지요? 성씨를 갈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모후나 삼촌이나 대신 왕 노릇을 하면서 어린 이 왕자가 얼른 자라도록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 기간이 1년이 될 수도 있고, 그 기간이 수십 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하면 10년이면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나무나 동물이나 어린 왕자는 세월만 지나면 일단 겉모습을 갖지만 신앙의 세계는 세월만 지난다고 되지는 않습니다. 만일 10년이 아니라 서부교회처럼 30년 동안 후임을 주지 않고, 애양원교회처럼 69년을 주지 않고, 산정현교회처럼 후임이 올 곳도 없이 없어 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없어 진 산정현교회는 북한이 해방 되는 날 북한 내에서 신앙으로 버틴 사람 중에 1순위를 구하면 될 것이고, 애양원교회나 서부교회는 지금이라도 손양원 백영희의 신앙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나온 사람 중에 구하면 될 것입니다. 없다면? 말라기 후 4백여 년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주지 않았을 때 구약 교회는 암흑기를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 맞지, 강단에 세월 사람이 없다고 헤롯을 갖다 왕으로 삼아 놓으면 예수님을 처형하는 짓이나 합니다. 교회는 그 후임이 없어 중세기 때는 1천년간 천하 교회들이 암흑기를 거치기도 했고 오늘 북한은 약 70년을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한의 일반 교회라면, 정말 바른 마음으로 찾으면 있을 것이고 정말 특이하게 그럴 인물이 없다면 몇 년만 고생하고 찾아 보면 찾든지 커 나왔든지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부교회는 1989년 8월 27일에 백 목사님이 급사하였지만, 백 목사님은 자신의 후임을 1987년 8월 15일까지는 서영준 목사님이라고 지정해 두고 있었으며, 그 분이 그 날 돌아 가시자 2년 후 자신이 돌아 가실 때까지 후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이제 설명하는 원칙을 평소 또 당시에 집중적으로 강조해 두었기 때문에 백 목사님이 갑자기 유언도 없이 돌아 가신다 해도 서부교회는 약간의 과도기를 거치면 남자 중에 서부교회를 백 목사님에 이어 지도할 인물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답변자 판단으로는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후임이 누가 되어야 할 것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정도의 표시로 드러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사후에 서부교회를 바로 지키고자 하는 현재 서부교회 측 인물들은 정작 잘 몰랐고, 백 목사님 사후에 서부교회를 생전과 완전히 반대로 만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쪽에서는 백 목사님 사후에 백 목사님의 생전 신앙을 지켜 내며 서부교회를 원래 노선에서 발전까지 시킬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1명으로 찍어 놓고 그런 인물이 후임이 될까 싶어 조직적인 제거에 들어 갔습니다. 남한에 누가 대통령이 되면 남한에게 가장 좋고 북한에게 가장 재앙이 되는지? 남한은 몰라도 북한은 압니다. 귀신은 빛을 싫어 하기 때문에 가장 빛이 강한 인물을 바로 본능적으로 배척합니다. 당시 삐라가 살포 되고 참으로 굉장한 일들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부교회와 애양원교회와 역사의 유명한 교회와 교파와 복음운동의 기관들이 초기 지도자를 이어 후임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지 않아서라는 답을 하는 것이 예정론에 정답이나, 우리 인간이 우리를 돌아 보고 우리를 고치는 차원에서 인간적으로만 볼 것 같으면 하나님은 후임을 주시는데 각 교회의 이후 세대 교인들의 눈이 삐뚤어 져서 망할 것만 보고 망할 곳으로 인도할 지도자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보입니다.

    현재 남한의 야당인 우파들은 남한이 문 정권을 출범 시킨 것이 바로 그런 사례라 할 듯합니다. 반대로 남한의 현재 여당인 좌파들은 남한이 과거 오랜 세월 우파 보수측에게 정권을 맡겨온 것이 이 나라 이 겨레의 불행인데 최근에야 정신을 차리고 이제 옳고 바른 분을 지도자로 세워 다행스럽다 할 듯합니다. 그런데 반만년 역사의 최고로 보인다는 이런 상황에 야당인 우파 보수측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어쨌든지 나라를 망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볼 듯합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이 곳이 교회니 세상 이야기는 세상에게 맡깁니다. 양측이 TV에서 말싸움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울까? 남한의 모든 사람 중에 북한 가서 살 사람을 찾아 보고, 북한의 모든 사람 중에 남한에 오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제한도 없이 가게 해 보면 어느 쪽이 옳고 맞는지 바로 판단이 될 듯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길을 찾는 경우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 것이 애가입니다. 이 것이 후에도 애가입니다. 에이, 참! 이런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2. 일반적인 상황을 두고 '목회자 선정'을 추가 설명합니다.
    * 자기 머리에 대한 자기 결정이 목회자 선정입니다.
    천하에 중요한 일이 많아도 내가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이 교회에 목회자가 어떤 분인가?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출생한 아이가 왕궁이면 왕자가 되고 역도의 손주면 끝장입니다. 이 것이 신분제도입니다. 한 아이가 그 사회의 우등생이라 가장 좋은 곳에 들어 갔는데 그 것이 북한이고 그 직장이 바로 김일성궁이라고 한다면 이 인간과 그 후손의 역사는 히틀러 측근들이나 비교될 듯합니다.
    신앙의 세계에 목회자 선정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인 각자의 자기 선택'입니다. 결정은 교인이 할 수밖에 없는데, 한 번 정하고 나면 그 머리로부터 빠져 나가거나 분리 되어 독자의 길을 걷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가장 큰 결정은 바로 '목회자 선정'입니다.

    ①시스템을 부정한? 침례교의 경우
    교회의 모든 운영을 모든 교인이 항상 직접 결정하자는 곳이 침례교입니다. 말은 좋지만, 물론 직접 민주주의적인 발상은 그 아이디어가 좋고 또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일반화 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일반화가 어렵다 말은 교리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침례교회들을 살펴보면 목회자의 주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②시스템으로 가는, 일반적인 경우
    침례교를 포함하여 모든 교회들은 목회자 선정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를 선정할 때 '방식'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시스템이란 기술과 경험의 축척에 따라 엄청나게 파급력이 크지만, 일단 '생명'이 없다는 것이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교회가 건전할 때는 시스템이 아니라 신앙의 생명성, 즉 주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교회가 말기 현상을 보이거나 세상 단체로 전락을 해 버렸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세상과 구별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만든 원인을 살펴 보면 바로 '시스템'에 의한 운영입니다. 시스템이라는 이 친구는 AI의 초기 형태와 같아서 그 시작은 서툴지만 축척이 되기 시작하면 인간을 넘어 서 버립니다. 그런데 교회에 이런 시스템이라는 것이 끼어 들면 '인간'이 없어 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데 '하나님'의 인도가 사라 져 버립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그 교회는 엔진이 꺼졌고 과거 달려 온 추력으로 약간 더 움직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줄어 들 때 대개 세상으로 아주 잘 바뀌면 교회의 사회 역할이 증대 됐다는 식으로 칭찬을 받으면서 존재하고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버티면 그 교회는 총공회의 보수 교회들처럼 또 이전에 먼저 버티던 보수적 재건교회 보수적 고신교회들처럼 사그라 져 없어 집니다.

    지금 시스템을 엄청나게 집중하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선정이 시스템에 붙들리면 목회자조차 그 산물이 되고, 아무리 좋은 목회자라도 그 시스템이라는 그릇을 헤어 나지 못하면 인간이 모인 인간 단체에 인간 지도자로 끝날 뿐입니다. 모든 교파의 모든 교회가 이런 상황입니다.

    ③ 공회의 경우
    공회는 시스템이라는 모습을 무조건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공회라는 이름을 정할 때부터 공회는 개인과 교회는 그 어떤 제도로도 제한을 할 수 없도록 ‘신앙의 자유성’ ‘현실마다 인도하는 주님을 따르는 실제 신앙’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보통 ‘자유성’이란 인간의 기본권 차원에서 접근하지만 공회는 하나님의 본체와 우리를 향한 그 첫 행위인 목적의 본질이 ‘자유성’이므로, 타 교단이 교회와 신앙의 기본을 자유성이라 할 때와 그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공회다운 교회는 만사 ‘자유성’이라는 것이 진정한 자유성인지를 살피고 구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 사람이 모인 이상 어떤 형태로 가려 하든 머리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교회가 ‘형제’라는 이름을 앞세우며 머리가 없다고 늘 강조를 해도 워치만 니는 머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도 지방교회 전체 회중 속에 주님은 누구를 가장 뜨겁게 붙들고 있는지 차이가 있으니 바로 그가 머리입니다. 그런데 투표로 정하거나 선정 기준을 통해 선발을 하거나 어떤 형태로 정한다 해도 교회의 머리는 교회의 가는 방향을 정하게 되고 나머지는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머리’ 결정이 가장 중요한데, 공회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자기의 자유성으로 자기가 교회를 두고 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자유성의 행사는 바로 머리 선정이라고 가르칩니다.

    목회자가 길을 잘못 잡아 교회가 혼선에 빠진 경우, 모든 교회들은 일제히 목사를 비판합니다. 공회는 그렇게 매도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그 목사를 누가 목사로 세웠으며, 그 목사를 그렇게 하도록 누가 오늘까지 방치를 했느냐’는 것을 묻습니다. 바로 그 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교인은 머리와 몸과 같은데 결국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니 한 사람을 앞에 세워야 합니다. 앞에 세울 때 누구를 세울 것인가? 그를 세우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머리의 방향과 결정은 그 머리 자리에 앉은 사람만의 방향과 결정인가? 그래서 일반 교인들은 평가나 하고 비판을 해도 되고 칭찬을 해도 되는 방관자인가? 그 것이 아니라, 그 머리의 방향과 결정은 바로 그 머리를 머리 자리에 올려 놓은 전체 교인의 자기 방향과 자기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아담의 원죄까지 쉽게 닿아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원죄는 누구의 범행인가? 바로 오늘 우리 각자의 자기 범행입니다. 조상을 잘못 만나, 조상이 잘못 해서 나는 후손이 된 입장 때문에 억울하게 원죄를 가지고 태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을 때, 내가 함께 직접 죄를 지었습니다. 공회의 목회자 선정은 그 중요성으로 말하면 교회의 머리니 머리가 잘못 되면 몸은 벗어 날 수가 없고 머리가 방향을 잡으면 몸은 아무리 구르고 도망을 가도 마지막에는 머리가 간 그 곳에 있다는 표현으로 요약을 합니다. 또한 공회의 목회자 선정의 원칙은 자기 자유성으로 자기가 결정해야 하니 어떤 경우도 남 탓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중심으로 살피면 어렵지 않습니다.

    * 결론적으로
    목회자 선정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우리에게는 교인으로서 자기가 결정하는 과정을 주십니다. 그 과정에서 '원하고 원하므로 현재 교회가 바로 되기를 원하고 그 길에 가장 중요한 인물을 결정해야 하므로 자기 교회의 신앙에 가장 도움 되는 인물'을 선정하려고 소원하고 노력한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이런 사람은 좋은 목회자에게 잘 배워 복을 받든지 아니면 나쁜 목회자 밑에 있음에도 그 나쁜 목회자를 초월하여 하나님께 직접 인도를 받게 됩니다.

    세상 단체의 지도자 선정처럼, 타 교단의 목회자 선정처럼, 또는 우리 모두가 살아 가면서 그렇고 그런 식으로 결정을 하면 죽기를 작정한 사람이니 잘 죽으라고 할 일이지 어떻게 막아 나설 길이 없습니다. 그냥 불쌍할 뿐입니다. 이 글은 평소 미리 적어 둠으로 향후 그런 상황이 생길 때 이 글로 인해 모두에게 복이 되기 원하는 소원 일념입니다.

    이 글의 논리와 역사와 사실 관계에 이의가 있으면 마음껏 지적해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공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타 교단에 좋은 길을 가진 분은 소개해 주시고, 이 글의 잘못은 짚어 주시고, 공회 내에 계시면서 공회의 목회자관은 이렇지 않다 하는 분이 계신다면 잘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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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안내 - '비공개 문답'의 경우
직원 | 2018.02.21 | 추천 0 | 조회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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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강단 사수? 어디까지가 충성인지..
회원 | 2019.01.20 | 추천 0 | 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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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좌파 우파라는 성경의 표현 - 소식 100번의 경우
회원 | 2019.01.20 | 추천 0 | 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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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순서에 대해 (1)
k | 2019.01.16 | 추천 0 | 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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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비밀글 고민 (2)
Novice | 2019.01.14 | 추천 0 | 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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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표현과 예배 순서 4가지 의문 (1)
개척 | 2019.01.13 | 추천 0 | 조회 152
개척 2019.01.13 0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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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34에 대하여(양과 염소) (1)
신학생 | 2019.01.12 | 추천 0 | 조회 105
신학생 2019.01.12 0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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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상 공동 투쟁을 요구당합니다 (4)
수도권 | 2019.01.11 | 추천 0 | 조회 208
수도권 2019.01.11 0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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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도서 출간'에 대한 입장 (2)
연구원 | 2019.01.10 | 추천 0 | 조회 138
연구원 2019.01.10 0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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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출석 집계.. (2)
방문 | 2019.01.09 | 추천 0 | 조회 154
방문 2019.01.09 0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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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례가 아닐지 모르겠으나 궁금합니다 - 2 (2)
외부인 | 2019.01.06 | 추천 0 | 조회 245
외부인 2019.01.06 0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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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례가 아닐지 모르겠으나 궁금합니다. (1)
외부인 | 2019.01.06 | 추천 0 | 조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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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유고시 후임 선정에 대한 원칙? (1)
원로 | 2019.01.06 | 추천 0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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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40년 동안 할례를 하지 못한 이유 (3)
회원 | 2018.12.31 | 추천 0 | 조회 160
회원 2018.12.31 0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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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성경해석질문
신학생 | 2018.12.31 | 추천 0 | 조회 9
신학생 2018.12.31 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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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천 목사님이 백태영 목사님보다 낫다는 평가에 대하여 (1)
목회자 | 2018.12.29 | 추천 0 | 조회 192
목회자 2018.12.29 0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