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창조론, 노아)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있는데

일반질문용
작성자
궁금
작성일
2018.06.20
제목 : (창조론, 노아)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있는데 이 모두가 4천년 전 노아의 방주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지적인 설계자, 창조주에 대한 과학계의 논쟁이 뜨거운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인 것 같기는 합니다.

이 기사를 읽다가 노아의 방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있는데 이 모두를 4천년 전 노아의 방주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그 후에 새롭게 생겨난 생물들도 있는 것인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5&aid=0001103122&sid1=001&lfrom=kakao
전체 2

  • 2018-06-20 10:51
    질문과는 좀 관계없지만, 기사를 링크해놓으셔서 기사에 대해서만 제 의견을 드립니다.

    저 논문만 보면, 어디에서도 진화론이 틀렸다는 말도 없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말도 없고, 그냥 읽어보면 진화론을 지지하는 말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봐도, 이 기사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비웃는 얘기밖에 없는데 (심지어 논문 저자들도 뭔 소리냐고 합니다), 과학자들 상대로 과학으로 싸울려면 핵심적인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진화론자들한테는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시작부터가 잘못된거니, 그 속에서 세밀하게 들어가면 믿는 사람이 질 수 밖에 없죠.

  • 2018-06-21 04:19
    기존 각종 질의에 대한 문의 답변 자료를 편집, 정리한 것이 있어서 이 두 주제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되어 올리니 유사 질의에 대한 폭넓은 답변이 될 수 있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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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과학회의 창조론(지적설계론, 멍청설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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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진화론이 '지적설계론'을 '멍청설계론'으로 비판한 글을 읽으며


    - 표현에 대하여

    '지적설계론'이라는 아이디어는 신앙을 가진 지성인들이 바로 믿어 보려고 노력한 결과라는 점에서 가상하기는 하나, 악령의 높고 넓은 유혹을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부족한 접근입니다. 다만 최근 세상 지식을 많이 접하는 지성인들에게 하나의 참고 차원에서 예를 든다면 가끔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멍청설계론'이란 표현은 지적설계론이 열 배의 노력으로 설명해도 그 10 분의 1 정도로 훼방을 할 수 있도록 귀신이 묘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바로 가르 치려고 부모가 10 년을 불철주야 노력해도 나쁜 아이 하나가 하룻밤만 함께 자면서 속닥거리면 그만 평생 가는 나쁜 습관에 물 들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 쉽게 설명하면

    답변자가 어릴 때는 선교사들이나 선교사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분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5년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미국 초등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를 가져 와서 그 교과서로 영어를 그대로 배운 정도였습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미국 사회의 일반 생활을 옆 동네 이야기 듣듯이 많이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맹장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의 인체 중에 유일하게 필요가 없는 것이 맹장이어서 미국 아이들은 어릴 때 맹장을 미리 잘라 내 버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간이 좋지 않은 등의 상황에서 맹장이 고장을 내면 마취가 되지 않는 등의 극단적 경우를 예방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뱃살이 엷어 수술도 아주 간단하다고 합니다. 그냥 미국 사회의 일반 현상을 단순히 전한 내용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답변자는 우연히 신문에서 맹장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내용은, 의학계에서 맹장이 하는 일은 없으며 진화 과정에서 없어 져야 하는데 흔적으로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맹장이 대장 전체의 암 발생을 막는 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 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맹장 쪽으로 수술할 일이 있을 때 이왕 배를 열었으니 맹장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어릴 때 제거하는 그런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멍청한설계론'이 '지적설계론'으로 진화를 한 것입니다.

    이 노선에서는 백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두고 늘 사용하는 초보적인 자연계시 수준의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꿩 꼬리 철학이 그 것입니다. 세상 학문이란 꿩 꼬리를 주어 온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 털이 어떤 짐승의 털일까 논란이 생겼는데 털이 워낙 거대하니 이런 털은 코끼리라는 거대 동물의 털일 것이다, 사자의 털일 것이다.... 시골 동네 미개한 시대의 그들 수준에 입이 달렸다고 한 마디씩 다 줏어 댔습니다.

    이 우스꽝스럽고 아이들도 알 만한 이야기 하나를 가지고 세상 모든 인간 지식 전부를 통째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 하나면 세상 모든 인간들의 그 어떤 지식이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다 눌러 놓을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따라 가다 보면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어려운 설명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가려 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과학에 일가견이 있는 학자라 해도 그 사람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오면 가장 훌륭한 과학자지만 그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수 많은 학자 중의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보다 더 나은 과학자가 그를 누르고 있습니다. 믿는 그 학자의 믿음을 믿어야지 그 학자의 학문을 의지했다가는 그 학문보다 나은 불신의 학문이 칠 때는 교회가 그대로 당하게 됩니다.



    1.결론적으로


    진화론을 주장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멍청한설계'를 말하는 것은 상어나 고래의 호흡기관처럼 해양생물학자이 아닌 일반인들은 기초사실 자체를 잘 알 수 없는 그런 전문 지식으로 들어 가려 하지 말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쉬운 사례로 끌고 나와서 대화를 하면 금방 끝이 나 버립니다.

    진화론 학자들이 결혼을 해서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을 의대에 보내려고 열심히 공부를 시키는데 그 집 자식들은 그 부모를 가리켜 '멍청한 부모 같으니! 의대 교수가 친구니까 그냥 나를 입학할 수 있도록 돈을 주든지 부탁을 하지 이렇게 수십 년 공부하도록 만들어!'라고 할 것이고, 그 생물학자인 부모는 '야 이 놈아! 내가 돈이나 부탁으로 너를 의대 진학 시켜서 훌륭한 의사로 평생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네가 그런 마음 먹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네 놈이 스스로 아둥바둥 노력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쉽게 만사를 밟아 나가면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네 애비를 따라 정말 제대로 된 학자를 만들고 싶어 그런 거다!'라고 속으로 그 아들을 향해 '저러니 애들은 바보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 말씀으로 설명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과거 피카소 그림이나 비행기 부품 등으로 예를 든 경우가 있어 다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피카소 그림을 본 초등학교 미술 교사가 '아니, 이 그림에 코가 삐뚤어 졌네' 라고 하면서 선을 하나 더하거나 칠을 가감하게 되면? 피카소가 멍청한 그림쟁이어서 코를 삐뚤게 그린 것이 아닌데 수준이 낮은 사람이 그런 그림을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라고 하면 좋을 터입니다.



    ■ 노아의 방주와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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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과학'이라는 시각에서 여러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우선, 성경은 자연과학이 아닙니다. 자연과학을 없는 가운데서 만든 능력입니다.



    ①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것을 자연과학이라고 하여, 오늘 진리처럼 되어 있습니다.



    1리터 통에는 1리터 내용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1리터 통에 2리터를 넣을 수 없는 것이 과학입니다. 이런 것은 수 천 년 동안 과학의 진리라고 모두들 알았고 이런 것은 절대로 손을 댈 수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자연 과학의 이치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이 세계사에서는 '르네쌍스'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미개하여 미신과 과학을 혼동하였기 때문에 종교가 사람들을 협박하여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중세는 사람들이 어둡게 살았다 하여 '암흑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가지고 세상 만물을 다 이해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자연과학으로 세상을 밝게 좋게 만든다고 하여 '계몽주의'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허황된 종교와 신으로부터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만들었다고 하여 '인문주의'라고도 합니다. 중학교에서 세계사를 공부할 때, 서양역사를 고대와 현대로 나누고 그 중간에 있었던 중세 암흑기와 그 암흑기를 깨트려서 오늘 현대에 이르도록 전환점을 마련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천주교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늘 기독교도 잘못되었다고 해괴망측한 논리로 교회 욕을 하는 교사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과학자가 종교를 이겼기 때문에 오늘도 종교는 미신이고 과학은 진리라고 말하는 교사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말이 문장으로 성립이 되는지 확인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인데, 어쨌든 수없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혼동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②과학의 깊은 것은 몰라도, 그 헛점을 짚어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1리터 물통에 1리터 내용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은 자연과학, 인문주의, 계몽철학에 심취한 사람들이 즐겨쓰던 논리였습니다. 최근까지도 이런 주장은 아주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그들이 항상 써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고하여 발달시킨 그들의 현대 과학은 1리터 통에다 2리터 3리터의 내용물도 주입하고 있습니다. 액체를 그 구성 상태와 결합 조건에 변형을 주면 수 백 배의 용량으로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합니다.



    알고보니까, 과학조차도 현재 그 사람이 그 사람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의미와 본질과 그 범위가 시대마다 달랐고 사람마다 달라져 왔었던 것입니다. 지금 과학자들이 본다면 계몽주의 시대 과학은 미신이었습니다. 뉴튼의 과학이 달랐고 아인쉬타인의 과학은 또 달랐습니다. 이렇게까지 그 자체가 달라지고 근본 개념이 변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 눈치 빠른 과학자들은, 과학이 과학 위의 범위에 의하여 통째로 달라질 수 있는 하위 개념의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실감하고 있음도 우리가 한번쯤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즉, 자연과학의 초보만 아는 사람은 과학만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자연과학만을 아는 사람이라 해도 그 과학의 깊은 면을 조금 본 사람은 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과학의 원인을 느끼게 됩니다. 과학을 알아 갈수록 초보 과학에서는 부정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흐미하게라도 인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건방진 소리나 철없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됩니다.





    ③노아방주는 2만톤 정도이며 그 배의 규모는 이전 초등학교 콘크리이트 3층 건물정도입니다.



    성경기록 중에서 노아방주만큼 과학에게 웃음거리가 된 것도 많지는 않습니다. 에덴동산 기록과 함께 노아방주는 아주 대표적인 신화라고까지 조롱을 받는 것입니다만 조롱은 인간의 자유지만 그 인간을 조롱하고 비웃으시는 하늘에 계신 분을 보는 사람도 있으니 곧 이곳 신앙노선에서 예수 믿는 우리들일 것입니다. 일단 기록에 관련된 것으로 몇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노아방주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점을 우선 단정해 놓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별별 학설이 있고 주장들이 있으나 그냥 학자들이 교수요 박사기 때문에 무엇인가 한 마디를 해야 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무엇인가 하나를 남보다 더 안다는 표시를 내야하는 그런 심리까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시비를 막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대충 기억에 편하게 수치를 생각해 보시려면, 길이가 120미터 폭이 20미터 높이가 12미터로 된 3층 짜리 1만톤 정도의 선박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고학자들은 성경 기록과 고대 중동지방 등의 여러 측정 단위를 가지고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는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성경은 정확하게 수치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기록이 없는 것은 '대충'의 짐작 정도에서 일단 그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창6:15에서는 성경은 길이 300규빗, 폭이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규빗은 40센티에서 55센티까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측정단위라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시대마다 지방마다 또 그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 3천년전 여리고에서 한 되짜리 도량기구가 나왔다는 등으로 뉴스를 보실 때는, 그것은 그 지방 그 시대 그런 형편에서 그렇게 쓰일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짐작해 두셔야 합니다. 단, 대충 참고는 할 수 있겠지요.



    작은 중소도시의 초등학교나 중학교 중에서 건축한 지 20여년 안팎 되는 비교적 큰 본관 건물들을 생각해 보시면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 건물들이 대개 3층 정도에 길이가 50-70미터 폭이 10여미터 정도될 것입니다. 높이는 비슷할 것입니다. 운동장 길이가 보통 120-150미터가 되니까, 위에서 설명드린 규모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규빗을 55센티로 잡는다면, 노아 방주는 길이 165미터 넓이 27미터 높이 16미터로 약 4만톤 배가 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렇게 규모를 최대한 넓게 잡는 신학자들은 그 배에 모든 동물의 종류가 다 타고 또 배의 안전성이나 여러 기술적인 면을 고려해서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으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그러나 노아방주를 두고는 근본적으로 시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노아방주 문제를 두고는 혼자 조용히 성경을 읽어도 이런 저런 과학적 모순들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더구나 안 믿는 사람 또는 한신대학처럼 자유주의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오류만 찾기 위해 전공을 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이는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고 꾸준히 말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의문점이든 밖에서 들려지는 의문점이든, 이런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는 신앙 근본적인 시각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는 사람입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천지를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방주 안에 동물들을 집어넣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이 어렵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규빗'이라는 단위를 최대한 큰 것으로 적용시키려고 애를 쓰는데 그렇다고 해서 과학에 맞추어 성경을 재구성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성경 내용에 대하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고,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그다음부터는 과학의 어떤 이론도 하나님이 원해서 하신 일에는 맞다 안 맞다고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이 세상에 두신 것도 상식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있냐 없냐를 결정하고 성경이 옳다 그르다를 결정하는 최종 잣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여러가지 피조물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중에 하나라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든 다음, 그 세상이 돌아가는 일반 법칙으로 '과학'이라는 것을 세상 속에 잠깐 넣어 두신 것이니, 넣어 두신 분이 다시 빼낼 수도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차량 제작업자가 엔진을 넣었다가 빼냈다가 수리했다가 정지시켰다가 또 필요하면 몇 시간 몇 일이라도 계속 돌아가게 했다가, 빠르게 돌아가게 했다가 느리게 돌아가게 했다가, 심지어 후진으로 가게도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는 과학 위에서 과학을 통째로 이렇게 조절하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그 엔진이 돌아가는 횟수만 헤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잘 속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평소에는 꼭 같은 방향으로 꼭 같은 횟수로 엔진이 돌아가도록 해 두십니다. 눈여겨 보면 그 돌아가는 것에서 공식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세가 가나안 갈 때 필요하면 또 다니엘에게 한번 사자굴을 경험시킬 필요가 있으면 또 노아 때 세상을 한번 엎어야 할 필요가 있으면 평소에 그냥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 과학을 한번 뒤틀어버립니다. 세상은 이것을 기적이라 우연의 일치라 하여 난리들이지만, 묘하게도 하나님은 정확하게 계산하고 그 움직인 결과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계산될 것까지 미리 아시고 손을 댑니다.



    신앙있는 사람은, 그런 면을 보고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감탄을 하게 되고, 멸망받을 사람들은 그런 면을 보고도 자연의 신비니 우연의 일치니 하고 끝까지 빠져나갑니다. 복없는 사람들이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과학과 신앙에 관련된 근본 문제를 제일 깊은 면에서 잠깐 살펴보고 있습니다. 과학이란, 하나님이 세상에 넣어 두신 하나의 부속품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자유자재하십니다. 인간은 그 과학에 의하여 지배를 받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과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하나님은 그기에 매이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과학의 초보적 안목으로 살펴보려면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틀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과학이 어려서 그렇지 과학이 알만큼 알게 되는 어느날이 되면, 과학에서 볼 때도 성경의 모든 역사는 다 이해가 되고 맞아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사람이 과학의 극히 일부만 붙들고 있기 때문에 성경과 과학은 일치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덕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도덕 다운 도덕이 되고 나면 신앙은 최상의 도덕이요 도덕의 절대 목표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자의 초보적 도덕을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기독교는 도덕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이치는 도덕과 과학의 물리에까지 다 맞아지도록 해 놓았는데,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 둘 알아가는 그 도중에 선무당 사람잡듯 섣불리 신앙이치란 과학과 도덕에 모순이 많다고 하는 것 뿐입니다.





    ⑤하나님이 원하신면, 세상 자체도 해체했다가 재조립을 하시고, 과학이치도 교체할 수 있습니다.



    노아 방주의 규모와 모든 동물들이 그 속으로 다 들어갔다는 성경을 두고 지금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겠다는 입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이것을 믿을지라도 또 주변에 이 문제로 고민하는 어린 신앙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언제가 그런 분들을 접하면서 지도를 해야 하는 문제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을 생각해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여러 면을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과연 가능했겠느냐고 한다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믿는 사람이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는 사람입니다. 없는 세상을 만들 때 과학으로 만들었습니까? 과학도 없던 때에 세상과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세상 물질을 움직이는 원리를 현재는 과학으로 넣어두셨지만 당신이 필요하면 다른 이치로 교체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원하신다면, 세상 자체를 회수하여 없애고 새 세상을 새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과연 하나님은 전능이겠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성경의 과학적 모순을 연구할 때는 필수요건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 '창조과학회'라 하여 예수 믿는 과학자들이 성경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은 비록 그 동기는 순수하다 해도 미련하기 그지없고 그들의 노력은 이미 악령의 고급 수단에 말려 들었다고 보시면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전능자를 찾아 해결할 일을, 그들이 과학밖에 모르기 때문에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수단과 방법은 이미 악령을 이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⑥방주를 없애고 아예 방주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배 안에 들어가야 동물들이 살아 날 수 있다는 것도 실은 인간의 과학적 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있어 일부러 방주를 통해 구원하는 역사를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말한다면 방주가 없이도 필요한 동물들과 노아를 구원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자체를 믿지 못하거나, 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자로 믿는 것 자체를 부인하는 분이라면 불신자일 것이고, 불신자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성경에 있는 사실을 사실로 연구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최소한 하나님은 믿는 사람이라면 또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 세상을 만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하면 노아 방주 속에 지상 모든 동물 전부를 몰아다가 넣을 수도 있고, 또 스스로 오게끔 할 수도 있고, 또 노아에게 모든 동물을 끌어다가 올 수 있도록 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게 하지 않고 그냥 물 위에 모든 동물들을 떠다니며 살게도 할 수 있고 세상이 물로 다 덮였는데 그 수중에서 생존하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22장까지, 성경은 과학에 지배를 받거나 과학에 의하여 움직여졌거나 과학에 맞추려고 노력했거나 아니면 과학에 이해가 되어져야 할 역사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만물은 과학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과학을 초월할 수 없고 과학 이치에 따라서만 움직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구원 위해 성경을 기록하고 구원역사로 섭리한 모든 역사를 하실 때, 과학 자체를 초월하여 역사해 왔습니다.





    ⑦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와 관련하여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과학 자체를 초월하고 역사하였기 때문에 과학이란 필요하면 참고하고 필요없으면 무시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만, 특별히 필요있는 일이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과학을 참고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과학을 자연계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 과학을 초월한 모든 역사를 성경은 이적이라 표적이라 기적이라는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방주를 두고, 지금 고고학자들이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등 여러 뉴스들을 접하게 되지만 전혀 무시하는 것이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규빗에 대하여도, 고고학적으로 발굴해 봤자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것이 그 성경에 기록된 그 도량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짐작하도록 했습니다.



    삼17:4에 골리앗을 그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한 규빗을 50센티로 잡으면 골리앗의 키는 3미터가 넘어야 합니다. 한 규빗을 30센티로 잡으면 골리앗의 키는 180센티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규빗은 그 중간 어디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상11:23에서는 몸집이 아주 좋은 사람에 대한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키가 다섯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한 규빗이 30센티라면 1미터 50센티가 되고 한 규빗이 40센티면 2미터가 됩니다. 모두가 사울과 다윗 때에 기록들입니다. 삼상10:23에서 사울이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었는데 이런 면을 통해 짐작해 보신다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1미터 50센티의 난장이 마을에 어깨 위나 더 큰 사람이 1미터 80센티라고 할 때, 그의 키 1미터 80센티는 오늘 중고등학생 중에서 아주 흔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로 재어 나오는 수치 자체의 의미가 큰 것이 아니라 그 성경을 기록하던 때 그의 키가 비록 1미터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비하여 장대했다면 그 장대한 키가 구원이치를 깨닫는 데에는 필요한 것이고, 또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신장이 바로 그 당시로만 말한다면 2미터가 평균이었다면 장대한 사람의 키가 2미터 50센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수치를 오늘 우리 계산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지 않고 성경을 기록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알 수 있는 데까지마나 알고 나머지는 왜 이 말씀을 기록해 주셨는지를 살피는 것이 옳습니다.



    참고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정탐한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과 이스라엘 정탐꾼과 덩치를 비교할 때 정탐꾼들은 메뚜기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포도송이 하나를 장정 둘이 메고 왔다는 것도 참고해야 합니다. 성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성경기록을 위해 오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 운용했는지를 알 수 없으나 예사롭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오늘 기준의 시각과 기술로 과거를 전부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시도는 반신앙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2.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가게 된 것은



    ①성경 기록을 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창6:19에서 '방주로 이끌어 들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6:22에서는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모든 동물들을 이끌어 들여 넣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창7:2-3에서 '취하여' 라고 했고 7:5에서는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7:9에서 '암수 둘 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라고 했습니다. 창7:15에서도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앞에 두번에서는 노아가 동물들을 취하여 이끌어 들인 것이 되고, 뒤에 두번에서는 동물들이 자기 발로 모여들어 그리로 들어갔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스스로 방주를 구원처로 알고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쪽으로 가게 했고 노아는 오는 동물들을 방주 안으로 넣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②질문하신 내용은, 성경의 행동 하나를 두고 누가 했느냐는 표현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땅에게 풀과 채소와 과목을 내라 할 때 땅이 그렇게 내었습니다. 그렇다면 땅이 식물을 만들었다고 해도 맞는 말이고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땅은 식물을 낼 때 시공업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시공업자를 통해 그 집을 건축한 건축주였다는 것이 창1:11입니다.



    왜 직접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지 않고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드시는가? 이것은 앞서 만든 것을 통해 뒤에 것을 만들어가는 '구원의 유기적 단일성' 때문입니다.



    서부교회 예배당을 두고 누가 건축했느냐 할 때, 모래를 지고 날랐던 인부들이 저 예배당은 내가 지었어, 해도 맞습니다. 그때 도목수로 일했던 이기철집사님이 저 예배당은 내가 지은 것이야 라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백목사님이 서부교회 예배당은 제가 목회할 때 제가 건축했습니다 해도 맞습니다. 하나님이 서부교회 예배당은 사실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해도 맞는 말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람은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웠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간단하게 하나님이 직접 해 버리든지, 또 사람에게 맡겼으면 일임하고 하나님은 손을 떼버리면 좋겠는데,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시켜 놓고 뒤로는 표시나지 않게 하나님이 하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를 기계로 기르지 않고 인격존재로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이 스스로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아버지께서 들어라고 해놓고 아들이 들려고 할 때 그 아들이 자기 힘을 다 하면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힘을 보태어 그 돌을 들어버립니다. 아들은 아버지 말씀 순종이면 다 된다고 경험을 얻어 힘을 얻고 그다음부터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점점 자라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못할 돌을 들어라고 해놓고 그것을 들려고 순종하는 아들에게 뒤에서 도와준 다음 그 돌을 들 때 아버지가 보탠 힘을 그냥 가져가지 않고 그 아들 속에 넣어주어 그 아들의 힘으로 삼게 합니다.



    이래서 아들이 스스로 원하여 순종하고, 순종을 통해서 자기가 한 것처럼 인식을 하게 되고 또 힘을 얻어가는데, 실은 자기 스스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인식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아버지의 도움이었고 지도였고 실은 100% 아버지가 한 것이라는 것까지 실감하는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아주 손쉽게 복을 내려 받지 못하고 우리 있는 힘을 다해야만 살 수 있도록 하시는 이유입니다. 말씀대로 우리가 그 현실 한번 한번을 통과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지 무조건 항상 공짜로 통과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려운 중에 말씀대로 살고, 살아보고 나면 그다음 신앙이 자라게 되면서 하나님을 새로 한번 체험하게 하는 방편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 전체의 방향이요 성질입니다.



    유기적 단일체로 만들어, 기계가 아니고 자라가고 자원하여 쌓아간 육체의 기능처럼 하나님의 지체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 부분과 그 정도는 하나님과 떨어져 존재하는 실력있는 사람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몸의 일부가 되어 하나님의 지체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③노아가 동물들을 어떻게 모았느냐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성경에 동물들이 전부 제 발로 와서 들어갔다는 표현만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도 우리는 노아가 120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동행하고 순종하였던 점을 볼 때, 노아는 유일하게 하나님께 붙들려 살았던 당대의 의인이며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손이나 입으로 한번도 수고를 하지 않아도 노아의 그 순종 그 의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니, 그 동물들이 모여들게 된 데에는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순종한 힘으로 보게 되는 것이고 그 상급이 있게 됩니다. 물론 동물들이 그렇게 움직인 데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되는 수도 없습니다.



    만일 성경에 노아가 일일이 천하를 다니면서 모든 동물을 하나씩 끌어다가 넣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면 몰라도, 여기 노아가 모든 짐승들을 취하였다고 했고 또 끌어 들여더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동물들이 움직이도록 하셨고, 그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므로 따로 움직여 방주를 향했고, 노아는 분명히 '이끌어 들여'라고 했으니 그 수고한 거리가 방주 바로 앞에서 문 안내만 했더라도 노아의 수고는 그 수고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노아 앞으로 천하 모든 동물이 다 모일 수 있도록 역사할 수 있는 노아가 되었다는 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노아가 발로 움직인 거리는 몇 km냐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대문에서 입구 정리만 했더라도 또 천하를 다 돌아다니면서 멱살을 잡고 왔더라도, 노아가 자기 수고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실은 환란에서 승리하는 모든 종들의 수고요 그 수고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결과적으로 세상이 놀랄만한 역사가 나타나는 이면에 있는 모습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할 때 모세가 손을 들어 머리털 하나라도 날릴 수 있는 장풍으로 힘을 보탰다면 하나님과 모세가 협력하여 홍해를 갈라지게 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100% 했고, 모세는 홍해 바다 앞에서는 손만 들었고, 바위에서는 막대기로 쳤고,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흔들고 다니는 수고도 했습니다. 그 당시 모세는 멀리서 손만들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칼날로 이긴 것이고, 모세가 손만 들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이긴 것이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기게 한 것입니다. 인간의 활동, 인간이 움직여 수고한 범위는 외부로 나타날 수도 있고 숨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아 방주에 천하 모든 동물들이 다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노아의 수고는 위에서 말한 수고 중 어느 정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입구에서 활동한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함으로 던질 때 하나님은 물 밑에 있는 고기들을 그 그물 속으로 다 밀고 들어가도록 만들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이 멀리서 봤을 때는 베드로의 그물 솜씨였고, 재수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 말씀 순종한 행위로만 그물을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까 인간에게 손 한번 흔들라고 해놓고 하나님께서 몽땅 밀어넣어버렸습니다.



    오늘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 유사 문제해결에 있어서 참고사항

    ① 문제해결점이 잘 파악되지 않으면 주권예정론 교리로 적용 →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의 절대성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인간이 단독으로 노력하고 기술을 사용한다고 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교리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타나고 드러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으며 이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고 또 그분의 주권으로 이루어졌다는 교리입니다.



    ②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우리이며, 우리는 하나님 유일주의로 , 성경제일주의로 세상을 향해서는 눈빛 한번주지 않고 나가는 진정한 신앙주의 경건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게 맡긴 것을 세상 그들이 거기까지 하는구나 하고 듣고 지나가는데 ,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되지 않는 교회가 자연,사랑, 돕기, 평화,촛불, 복제 등에 대해서 반신앙, 불신앙의 인본주의 흐름을 따라가고 이루어야 할 구원을 실패하고 맙니다.



    ③ 오늘 과학의 이치로 끝없이 나가는 세상을 보면서 해당되는 물질 이치라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끝까지 밝혀내어 저희들 원하는 별별 모습의 생활을 다 누리고 있는데, 물질의 이치보다 무한히 차원높고 영원한 이 신앙이치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우리들은 오늘도 세상에 잠들고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빛의 아들들이 밝혀내고 준비해야 하는 천국건설은 팽개치고 있습니다.



    ④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되며 과학의 이론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성경을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그 태도 자체를 주의해야 하며 과학적인 유추적인 해석이나 가설이나 증빙이 되어도 성경의 절대무오 정확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⑤ 발표관련 발표가 나오면 믿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믿을 바가 되지 못합니다. 연구중이고 확인중인 사실이 있을 때는 항상 한 걸음 떨어져 보셔야 하며, 역사가 과학과 어울려 세상을 어지럽힌 일은 어제 오늘이 아니며 꿩꼬리철학, 남대문 문턱이 박달나무라는 논쟁을 통해서 보듯이 , 미개국이 무조건적으로 발표로 진리로 믿어버리듯 과학이 발표를 하면 우리는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우리 심사법을 가지고 따로 분석하며 과학으로 명백하게 틀린 것이 증명되어도 성경이 말한 것은 사실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⑥창1:1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말씀이 창조과학회 회원들에게는 진화론과 맞서 싸울 때 이 성구가

    제일 중요한 성구일 것입니다. 기상 관측 역사상 최강의 태풍 속에서 집이 통째로 날라갈까 밤새 떨고 있었던

    분들 중에 믿는 가정이 있었다면, 그들 역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이 창1:1 말씀에서 평안함과 담대함을 가졌 을 수도 있습니다.



    ⑦ 때로는 넓게, 때로는 깊게 즉, 백목사님께 배운 것중 하나가 목숨을 걸고 끝까지 파헤쳐 나가야 할 사안과 그냥 목록만 보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나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한례로 목록으로 넘어가야할 것이 ‘교회는 말씀이다 말슴은 성경이다 성경은 원어로 되어 있다 원어는 히브리어 헬라어다.. 그 길로 가면 무저갱의 길입니다 ’ 원어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것 옳고 , 목숨을 걸고 끝까지 파헤쳐야할 사안이 성경입니다. 성경의 한구절가지고 한달..그 이상을 살펴 그 한성구가 성경전체와 다 연결이 될 수 있음을 깨닫도록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⑧ 어려운 주제를 때할 때는 문턱에 서서 조금 생각하는 여유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시고 우리를 가르 칠 때 항상 적용하는 원칙 중에는 '명백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자연계에 속한 이런 생물학적 문제는 자연계시 차원에서 상대하면 됩니다. 자연계시는 별도의 공부가 없다 해도 조금의 관찰력과 조금의 생각을 가진다면 다 해결이 되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⑨ 우리에게 성경을 주실 때는 우리 신앙의 유일 기준으로 주셨습니다. 성경으로 아는 것만 알고, 성경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알 필요가 없으며 성경을 쫓아 가다 보면 각자에게 추가로 필요한 것은 각자의 현실에서 성령의 조명 역사를 통해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되도록 해 놓았습니다.

    성경을 성경 외의 자료로 보충하고 협조를 받고 만일 해석을 하려 든다면 우리 수준에서는 이해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만 절대요 완전이나 성경 외의 자료들은 불완전한 것인데 '완전 + 불완전'으로 성경을 접근하면 '완전을 향한 이해'로 다가 서는 것같으나 그 내용에는 '불완전의 본질적 내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즉, '완전 + 완전 = 완전'이지만 '완전 + 불완전 = 불완전'이라는 쉬운 결론 때문입니다.





    ■ 창조과학(회)에 대한 정평정가

    ① 창조과학회가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며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으나 그 신앙의 충정은 인정할 수 있고 또 이들로 인하여 한번씩 과학을 비웃을 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신앙을 과학으로 증명하고 나서려는 것은 진화론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신앙을 허물고 있는 행위입니다. 진화설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해체하려고 노력하고 이에 맞선 창조과학회는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허물고 있다고 이곳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② 창조과학회라는 곳은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겠다는 기이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 동기는 이해하지만 그 가는 과정은 실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창조과학회에서 성경 표현에서 과학에 꿰다 맞출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맞추고 있는데, 물론 알든 모르든 꿰 맞추다 보면 한 두 곳은 맞게 되어 있고 또 자기들이 잘못 짚은 것은 실수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과학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면 성경 억해라는 습관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매무지한 일입니다. 과학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는 부분은 참고로 그렇다고 알려 줄 수 있고, 또 확신이 없는 것은 그냥 숙제로 두어야 합니다. 놔 두고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자연현상에 관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저절로 너무 명확하게 나타나도록 보여주십니다. 그때 가서 말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③ 창조과학회와 같은 활동은 정말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조심해야 하고 극히 일부 내용만 짐작 정도로 참고하고 그쳐야 할 문제인데, 현재 교회들은 지성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세상의 과학 발전은 너무 빠르게 되자 이를 성경으로 해결하지 않고 성경과 과학을 중재시켜 화해를 시키려는 엉뚱한 위험이 많습니다.



    ④ 창조과학회 등의 이름으로 나온 글들을 종종 접한 경우가 있었는데, 대개 무신론자들을 상대로 과학 이론의 깊은 것을 가지고 변론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과학의 그물 안으로 들어 간 다음 그 안에서 투쟁하는 경우였습니다. 일단 접근의 방향이 이렇게 되면 과학적 기독교가 되어 그 결과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낚시바늘에 걸리지 않더라도 최종적으로 그물안에 있으면 반드시 사로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편집자주)



    ⑤ 노아 방주가 전설이지 어찌 역사적 사실이겠냐고 과학이 한 소리 하자, 창조과학회에서는 노아 방주 판대기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앞에 말낸 귀신과 뒤에 변증하는 귀신이 실은 한 귀신입니다. 아마 교계가 펄쩍 뛰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성경이 어찌 성령이 쓴 것이며 정확무오하냐고 불신자와 불택자들이 한 소리하자 교회와 신학자들이 발끈하여 이 말 저 말을 수도 없이 갖다 대고 있습니다. 앞에 말한 귀신도 귀신이지만 그 귀신에게 충동받고 피동받은 교회와 신학자들도 함께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뱀이 '참으로' 먹지 말라 하더냐 하여 좌측으로 밀어버리니까 밀리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다가 중심을 잃어버리면서 우측으로 한발 기우뚱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 해버렸고 그다음 순서는 삼켜진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신앙을 신앙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성경에 나타 나는 다윗이나 아브라함이나 바벨론이나 사도들의 행적,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 등의 흔적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하고 증명하려는 노력이 '신학'계의 성경학자들의 필생의 전념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실 때는 우리 신앙의 유일 기준으로 주셨습니다. 성경으로 아는 것만 알고, 성경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알 필요가 없으며 성경을 쫓아 가다 보면 각자에게 추가로 필요한 것은 각자의 현실에서 성령의 조명 역사를 통해 각자 자기 길을 가면 되도록 해 놓았습니다.



    성경을 성경 외의 자료로 보충하고 협조를 받고 만일 해석을 하려 든다면 우리 수준에서는 이해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만 절대요 완전이나 성경 외의 자료들은 불완전한 것인데 '완전 + 불완전'으로 성경을 접근하면 '완전을 향한 이해'로 다가 서는 것같으나 그 내용에는 '불완전의 본질적 내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즉, '완전 + 완전 = 완전'이지만 '완전 + 불완전 = 불완전'이라는 쉬운 결론 때문입니다.





    제 부모를 자기 주변의 자연스런 상황에서 알려 한다면 충분한데 굳이 유전자 검사와 호적 신고 당시의 문서 검증 방법을 사용하여 고도의 전문성으로 접근하면 부모 자녀 사이에 벌써 이상한 상황이 벌어 지고 그런 방법으로 확인을 했다면 이미 그 과정과 그런 방법을 사용한 가정의 부모 자녀 사이는 일반 가정의 분위기와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성경이라는 것은 믿는 우리 속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확정하는 것이지 신학교 교과서나 교리나 누구의 가르침이나 고고학이나 창조과학으로 밝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과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진화론의 곳곳에 숨어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도둑 아닌 사람을 도둑이라 할 때 도둑이라고 뒤 집어 씌운 사람의 과거 위증 습관과 위증 범죄를 제시하고 또 제출 된 증거가 조작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창조과학이라면, 창조과학은 조작 된 증거임을 말하는 것까지일 뿐이지 창조과학이라 해도 '창조'과학의 창조'과학'이 창조를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의 위증에 대처하려고 교인이 성경이 아니라 과학으로 무장하고 맞상대를 하면 과학만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과 성경과 신앙의 세계가 아닌 과학의 경기장에 과학의 기준과 법칙을 준수하기로 하고 등장한 꼴이 됩니다. 일반 과학이 창조과학을 우습게 생각하여 일부 과학자들만 창조과학을 맞상대하기 때문에 마치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자와 일대 일의 대결에서 계속 이기는 것처럼 보이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과학 기준으로 과학의 링 위에 올라 가서 과학만 가지고 과학자를 상대하겠다는 것은 내 손에 든 검을 상대방에게 넘겨 주는 것입니다.



    전술이 아니라 전략적인 큰 시야로 보셔야 할 듯합니다. 창조과학은 진화론자들에게 작은 것을 이기고 큰 것을 지고 나가는 중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이 과학적 반론을 할수록 좋아 합니다. 애당초부터 세상은 악령에게 넘겨 준 세계입니다. 우리는 남의 나라에 나그네 신세로 지나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야 할 앞만 보고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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