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고민] 전쟁이 일어난다면...? 식사기도,주먹질..

직원내부용
작성자
#892
작성일
2020.03.27
안녕하십니까 이런글 올려서 한편으론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반응하는것이 주님뜻인지 궁금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총공회 교인이고 젊은 청년입니다.

회사에서 밥먹을때 어느 한 상사가 밥먹을때 기도하지말라고합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기도하고..
다니엘의 하루3번기도가 생각나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상사와 다투더라도 식사기도는 계속해야될지..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기도해야합니까?

그리고 저는 저의 자존심을 위해선 주먹질을 하지않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식사기도계속하는게 주님의 뜻이라면... 계속기도해서 다툼이 생길때 주먹질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전쟁이 일어난다면..목회하시는분들은 전쟁에 안나가시겠지만..
저희들은 총들고 나가서 싸워야 합니까? 내목숨은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전쟁이라도 별로 살인하고 싶은생각이 없습니다.
전쟁에서 죽이는건 하나님께서 뭐라고 안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시대에선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 2002-08-25 09:43:53 하룻강아지
출처 : 문의답변 892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답변 : 2002-08-25 13:51:28 yilee [ E-mail ]

1.'식사기도'는 작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생기는 모든 마찰은 같은 원리입니다

1.배추달선생님이 순교하신 예가 있습니다.

백목사님께 은혜받고 순교신앙에 불타고 있던 분 중에 배추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6.25 때 인민군이 돼지를 끌고 가자고 하자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민군이 빗자루를 던져 주면서 마당이라도 쓸어라고 했습니다.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현장에서 총살 당하여 6.25 순교사 3명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민군들이 전투 식량으로 확보한 돼지를 끌고 가자는 말인데 이것은 인민군 식량 보급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아주 쉽게 단정할 수 있는데, 문제는 마당을 쓸어라는 명령입니다. 주일날 대청소는 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 일상 생활로 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 '생활'로 할 수 있습니다. 양치질, 세수, 화장, 침구정리, 마당쓰는 일 등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집사님이 마당쓰는 일을 거부한 것은, 주일에 보급대 사역을 하라는 것을 거부하니까 주일에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않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마당을 쓸라고 했던 것이므로 거부한 것입니다. 그 인민군이 일부러 시험을 위해 시키는 일이 아니었더라면, 배집사님이 필요해서 매일매일 청소하던 앞마당 청소로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었다면 자진해서 스스로 했을 일입니다.

식사기도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는 것이 좋고, 해야 옳다고 생각하여 기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막아서 막힌다면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피동되어 움직일 때, 막아서는 환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싸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환경을 이겨야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 선에서는 내가 피해야 하겠느냐는 문제입니다. 야외에서 기도할 때 비가 온다면 어느 정도 비라면 그 비를 맞으면서 하고 어느 정도 비라면 그 비는 피할 것인가? 이런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질문자와 같은 경우는 기도하지 말라 하더라도 기도하고 식사를 해야 옳은 경우라고 보여집니다. 만일 아직 예수 믿는 초보에 있는 분이 왜 식사 기도를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그냥 다른 교인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정도라면, 굳이 상사와 부딪히지 말라고 하겠으나 질문하시는 분은 그 정도 신앙은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2.회사에서 식사할 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우선 너무도 경우에 없는 말입니다.

①얼마나 무식한 말인지, 그 발언은 국가가 법으로 금하고 있는 불법행위입니다.

헌법의 신앙자유 원칙에도 어긋나고, 노동법상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며, 고용계약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회법규에서 다 금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 말은 식사때 기도하지 말라는 말은 국법이 금하는 '불법' 발언입니다.

②현 사회의 일반 분위기에서도 있을 수 없는 발언입니다. 정신과에서 치료받을 사람입니다.

비단 법규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 사회가 머리 쥐어박을 일입니다. 3살 먹은 제 자식도 제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이고, 머리를 7색깔 무지개로 칠갑을 해도 두고 보는 세상인데 남이야 식사를 하며 기도를 하던 말던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식사 때 기도하는 것보다 식사 때 편식한다고 나무라는 것이 옳지요. 그래도 그런 말을 제 자식도 안 듣는데 다 큰 남의 자식에게 할 말입니까?

③인체의 소화흡수 기능적으로 생각해봐도, 잠깐의 명상은 필수적인 식사법입니다.

비단 기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식사하기 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얼마나 인체를 위해서도 필요한지 모릅니다. 국가가 좀더 발전하고 깨게 되면 식사 전에 눈을 잠깐 감게 하는 일은 국민보건법으로 강제시킬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 급하기로는 우리나라 사람만큼 되는 민족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탕을 입안에서 녹여 먹는 것이 정식인데 우리 민족은 유독 바짝바짝 깨어 먹고, 커피를 입으로 불어가며 홀짝홀짝 마셔대는 것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지탄받는 미개행위로 늘 지적되고 있습니다. 춥다고 펄펄 끓는 숭늉을 벌컥벌컥 들여마시기를 얼마나 했든지 목에 오는 후두암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만은 유별나게 많다고 합니다. 후두암 수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지요?

여러가지 장점이 많은 우리에게 이런 몇가지 단점을 고치는 것은 민족개조 차원에서 필요한 일인데 하루 세끼 매일 먹는 식사시간에 무슨 먹기전쟁을 하듯이 후루룩 먹어대는 미개행위를 고치는 그 첫째 순서는 식사전 일단 눈을 한번 감고 단 몇 초라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혈압을 재러 갔다가 흰가운 입은 간호사 앞에서 순간 열을 받고 혈압이 일시 올라간 것이 고혈압으로 기록되어 평생 고혈압 환자도 아닌데 고혈압 처방 약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막으려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5번을 하라고 합니다. 다는 아니라도 대단히 크게 마음이 진정되기 때문입니다.

죽자고 바쁘게 지내는 우리에게, 특히 직장인에게는 하루 중 가장 다급한 순간이 바로 점심식사 식탁에서 밥그릇을 받아드는 순간입니다. 본능적으로 수저가 입안으로 오토바이 엔진처럼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인체의 소화기능상에도 보통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굶어죽을 사회가 아니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점심 식사 한끼 앞에서도 잠깐 눈을 감고 바쁜 오전 일과에 시달린 심신에게 순간의 고요함과 평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일부러 눈, 뇌, 심장, 허파 등 모든 바쁜 주요 기능들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④'순간의 고요함'이 인체에 주는 혜택이 크다는 것은 현대인들이 거의 다 알고 있는 바인데.

그 직장에 그 분은 이 사회에 고립을 자초하는 아주 폐쇄적 인물같습니다. 북한 정권의 평양에서는 사실 분인가?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건강을 위해서 또는 인생의 풍요로운 자기 성찰을 위해서라도 요즘은 전부 움직이는 팔다리를 꿇어놓고 눈을 감기고 일부러 명상을 시키고 있는데요. 기공이니 뇌호흡이니 아침 수련회니 뭐니 뭐니 숫자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야단들인데 자기 동료 불신사회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할 분이 아닙니까? 우리 믿는 사람을 흔히들 외골수니 사회적응이 안되는 사람이니 하는데, 이번 질문 건을 두고는 그들 기준에서도 아주 반대로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위에서 몇 가지 살핀 바와 같이 이제 식사 때 드리는 기도는 금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해야 하는 것이 현대적 지성인이라 하겠습니다. 회사의 인적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 오히려 전 직원들에게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는 잠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할 일이 아닙니까? 현충일 국가 행사로 묵념을 하는 일이며, 나라돈으로 밥먹는 군인들에게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꼭 한 마디 붙이도록 군에서 시키는 등을 생각해 봐도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아마 그 윗사람 주변에 지나치게 믿는다는 사람이 있어 그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피해망상증이라는 정신병 진단서가 발부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2.모처럼, 불신자들 없는데서 우리끼리 실컷 불신자 욕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비방 목적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불신자에게 눈총받도록 스스로 교만하여 드린 말씀도 아닙니다. 우리 신앙걸음의 기준뿐 아니라 세상 기준에서도 너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세상 사리까지 동원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경우로 살펴본 것은, 사실 질문 내용 뿐 아니라 사회생활 중에서 불신자들이 거론하는 우리의 신앙행위가 거의 다 이렇습니다. 요즘은 자기들이 먼저 설치고 있지만 술 담배의 경우도 불과 1-20년 전에는 사회의 조직생활을 위해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주5일 근무제 때문에 매주 하루 쉬는 주일정신까지도 세상이 전혀 할 말이 없도록 되었습니다.

세상이 오해하고 비방했던 우리의 신앙행위 거의 전부가 알고보면 세상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사회정서적으로까지, 이제는 과학적 실험 통계에서까지 전부 딱딱 들어맞는 것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진리에 맞는 것은 도덕과 과학에까지 다 맞게 되어 있다는 백영희목사님의 평생 설교가 세월이 지나면서 오히려 몇 시대를 앞서는 깨달음임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3.그러나, 한 가지 감안하실 일이 있습니다.

식사 때 기도하는 것은 나라의 법규로도, 사회분위기나, 과학적으로까지 계산해도 옳습니다만, 문제는 식사 때 기도를 하고 먹나 안 하고 먹나 하는 문제는 결국 본인의 현재 신앙 상태를 보고 결정할 본인의 결정입니다. 책임을 미루거나 답변이 곤란하여 애매하게 빠지는 변명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함이 옳지만, 100만원 월급에 얼마를 드려야 하겠는가 하는 것은 본인의 건강, 부부간의 의견, 월 지출되는 생활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약값에 시달리는 사람이 또 부인이 심하게 반대하는데도 또 아이들이 3명이나 되고 전부 학교를 다니는데도, 그런데도 100만원 중 50만원을 부모님께 효도비로 보낸다면 그 자체를 두고는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뒷감당이 문제입니다. 부모 효도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자기 힘껏 송금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과연 '자기 힘'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을 해보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돈을 보내고도 견딜 수 있는 자기 건강이 있고, 아내의 이해가 있고, 또 함께 생활비와 학비를 대폭 줄여도 계속해서 감사함으로 동참할 자녀들이 되어 있다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이 문제로 가출하고 그것이 부모에게 못박는 일이 된다면 두 가지 경우를 놓고 어느 정도로 액수를 조절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서울 가는 것을 차량의 성능만 살펴보고 출발했는데 연료가 부족하든지 운전하는 자신이 잠이 부족하게 되면 큰 낭패가 되겠지요? 예산과 예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이 있어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눅14:25에서는 주님 따라 갈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내놓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8절이하에서는 망대를 건설해야 하지만 들어갈 '그 비용을 예산'하라 했고, 적과 싸워 이겨야 하지만 이만명의 적을 내가 가진 일만명의 군사로 이길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고 했습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라 했습니다.

세상에게 타협하고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보존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기고 나가는 것만이 우리 할 일인데, 현재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준비를 더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준비는 못했으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 해 주시리라는 확신이 있으면 믿고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했다가 지게되고 그 후유증으로 이전보다 신앙생활이 훨씬 더 후퇴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이는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을 시험한 죄라는 증거입니다.

4.현재 직장에서 식사 기도 한 가지 문제를 두고 고민이 되신다면, 그리 큰 문제같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무슨 기도하여 능력을 구할 난제도 아닙니다. 물론 평상의 기도는 우리가 하지만 질문자께서 당한 이런 것은 그냥 당당하게 기도하고 나는 믿는 사람이라 사람에게도 감사하는데 하나님께 어찌 감사없이 먹겠느냐, 버릇없는 일이고 배은망덕이며 그렇게 하면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다, 나는 나대로 믿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그냥 봐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그러면서 호소적으로 윗사람에게 양해를 구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시려면 그 직장에서 쫓겨나도 또 쫓겨나지는 않아도 그 분에게 늘 눈총을 받아도 그 정도는 상관이 없다고 내일도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후회치 않을 것 같으면 해버려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찍혀서는 내가 오늘 양심은 편해도 내일 처신에는 어려워 견디기 곤란하고 후회하겠다 싶으면, 오늘은 져야 합니다. 그 말은 오늘은 질문자께서 자기 양심을 지키고 신앙생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준비는 어제 했어야 했는데 지난 과거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시려면 혼자 속으로 기도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일단 이번 건을 두고는 실패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제 속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번 건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또 중립으로 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는 것입니다만, 그 속으로 기도하는 중에 다음에는 이길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라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지시고, 그 대신 오늘부터 두 손을 움켜쥐고 곧 내가 열심히 믿고 배우고 또 능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그 사람의 신앙탄압을 능히 이겨보겠다 하여 이전같이 흐리멍텅하게 오고가는 신앙이 되지 마시고 이런 어려움을 통해 신앙이란 가다보면 이렇게 전투가 나오는 법이니까 평소 평안할 때도 이런 때를 생각하고 예수를 열심히 믿어야겠다는 사람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만일, 이까짓 직장이야 다시 얻어도 되고 또 그 사람에게 눈총쯤 받는 것이야 대수겠느냐는 판단이 되시면 당연히 양심을 따라 기도를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것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다 해도 마음속에 혼자 가지고 계실 자세는 바로 앞에 말씀드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슨 신사참배도 아니고 인민군 앞에 어려운 순교 순간도 아니고 내가 일하여 내가 밥을 먹는데, 요즘은 주인이 종업원 눈치를 보고 후생복지차원에서 밀어줄 일인데 이런 일로 나를 압박하는 것은, 내가 직장에서 게을렀고 사람노릇을 제대로 못했고 예수도 제대로 믿지 못하여 모든 문제가 다 복합된 것이라 생각하시고, 이제 열심히 일하여 윗사람이 놓치기 싫어하고 붙들고 싶은 사람이 우선되셔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실력있는 사람만 된다면 목탁을 뚜드리던 십자가를 쥐고 흔들던 주인이나 윗사람은 오히려 나를 붙들려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리 되었어야 했는데 그리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다른 모든 문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재질문이 계시거나 보충질문이 필요하면 다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의 설교록과 그분의 평생 설교와 교인 지도에서 수도없이 재론된 문제를 질문에 맞추어 몇가지로 예를 들면 답변드렸습니다.

5.기도 때문에 계속 시비를 걸어온다면, 주먹으로 한번쯤 해결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곳은 어떤 경우에라도 주먹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한번씩 주먹으로 해결하면 아주 해결이 속시원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배당만 습관적으로 골라서 연보궤를 도적질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잡히게 되면 순간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하여 차마 경찰에 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을 노리고 교회만 찾아다니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경찰에 보내기 전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면서 두번 다시 예배당을 찾아오지 않도록 그들의 몸에 고통을 가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다 그렇게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만 위에 예를 든 경우는 거의가 다 매가 해당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직장 상사의 경우는 주먹으로 해결할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주먹으로 해결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상대방이 폭행죄로 걸고 고소를 하게 되면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주먹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주먹으로 해결할까 기도로 해결할까 이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먹은 안된다는 말이지요.

연보궤를 훔치는 아이들은, 경찰로 넘겨봐야 대개 훈방으로 끝나버립니다. 파출소 가는 것을 겁을 내지 않습니다. 요즘 경찰은 때리지 못하니까, 몸으로 때우겠다는 의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교회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서 법보다 더 효과적인 주먹으로 상처없이 뚜드려 놓으면 그 아이들은 폭행죄로 고소는 못합니다. 그리고 파출소로 가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이 아프니까 겁을 먹고 두번 다시 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의 경우는 일단 주먹으로 해결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니까 아예 포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길이 오직 한 길 뿐이면 힘쓸 곳도 오직 한 곳입니다. 참고 견디라고 주먹 좋아하고 주먹 잘 쓰는 사람에게 약을 올리시는 것입니다. 원래 주먹이 없는 사람은 주먹으로 해결할 생각을 해 보지도 않을 것인데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이니까 이것이 고민이겠지요. 주먹 없이 해결해보시도록 하나님께서 공연히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질문자 면전에다 시험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먹을 쓰지 않아도 힘좋은 사람이 협박을 하면 효과는 같겠지만, 주먹 없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하려면 '어북 웅크리고 성'을 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겁을 먹게 하기 위해 자신이 자기 마음 속에 품어야 하는 독은 자기를 죽이고도 남는 독성이 있습니다. 자기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가 풀 수 있는 독은 다릅니다만 자기가 자기 속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서 그 독으로 상대방이 죽어야 할 정도의 독이라면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그 독에 의하여 자기가 먼저 죽을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 속으로 품는 독기가 그러합니다. 따라서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미 마귀는 이겨놓고 보는 것입니다. 식사 때 기도하는 것과 같이 이렇게 당연한 것을 막고 방해하는 그 사람보다 그 사람을 주먹과 협박으로 그렇게 못하게 하는 사람은 더 악과 독을 많이 품고 있어야 할 것이니 벌써 마귀는 목표달성을 하고 웃고 있을 것입니다.


답변 : 2002-08-25 18:46:55 yilee [ E-mail ]

2.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계산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

1.전쟁이 일어나면 목회자들도 전쟁에 나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법규는 군종장교로 입대하는 일년 수십명 정도의 목사님들에게만 군목으로 근무토록하고 있으며 그 외의 목회자들은 일반 국민과 꼭같은 조건으로 입대도 해야 하고 또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면 예비군 나이가 넘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경우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하여는 평신도나 목회자나 입장이 꼭 같습니다.

2.전쟁이 발생했을 때, 믿는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할 것

①구약과 달리 신약교회는 신앙을 위해 전쟁하는 경우는 전면 금지됩니다.

질문과는 직접 상관이 없지만, '전쟁'을 두고 말할 때는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가 신약에도 복음을 위해 칼을 들 수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구약교회가 수도 없이 전쟁을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육체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보이는 이스라엘을 위해 보이는 전쟁을 벌였고 보이는 성전을 지키기 위해 보이는 칼을 휘둘렀습니다. 구약은 신앙생활에 필요한 전투가 있었고 전투에서 얼마든지 적을 죽였으며 그것이 충성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 신앙건설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신앙을 위해서 보이는 전쟁을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믿는 사람이 자기가 속한 세상 나라와 사회가 전쟁을 할 때 어떤 처신을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만 있지, 교회가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전쟁이란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②믿는 사람은 자기가 속한 국가와 사회의 의무를 성실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통치하는 로마 점령군에게 이스라엘 사람이 세금 내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22:21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가 속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성경이 금하지 않은 것은 성실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살인이라는 행위를 직접 하거나 아니면 간접으로 지원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살인은 어떤 경우에 할 수 있는가, 살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할 수 없는가? 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는 할 수 있는가? 이 면으로 살펴볼 일입니다.

③'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조건 안된다'는 주장은 인본의 도덕주의입니다.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그 사람이 계속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막지 못할 때는 직접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때에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시도록 기도하여 막아진다면 1등 신앙일 것입니다. 매사에 항상 적용되는 원칙이 그렇습니다.

또한 법무부 행형직원이 되어 사형집행수가 되었다면, 자기 직업상 행위로 사형 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가 직업의 선택이 있는 경우 보다 나은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하필이면 사람을 계속 죽여대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은 2등 신앙입니다. 1등 신앙이라면, 당연히 직업선택의 자유권을 가지고 그 직업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논리와 같이, 어떻게 불완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재판해서 사형에 처할 수 있느냐는 논리는 우리 신앙세계와는 상관없는 세상식 무제한 도덕주의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이 개를 먹느냐는 주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채소는 어떻게 죽이고 삶고 데쳐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주장들을 쉽게 말해 '사이비'라고 합니다. 그런 것 같은데 실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④전쟁의 경우, 우리는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는 것이 첫째 할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이 막아지도록 믿어야 합니다. 사무엘과 같은 수준의 신앙이 되었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다윗 수준의 신앙이 되었다면 전쟁을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경우가 됩니다. 오늘도 바로 믿는 교인이 있고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신다면 그 한 사람을 보고 전쟁이 아예 발생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 사람의 신앙차원에도 관련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전쟁을 막을 수 없고 전쟁을 피할 수 없어 자기가 속한 국가나 사회가 전쟁에 참여를 하게 되면, 믿는 사람의 선택은 또 다시 갈랫길에 서게 됩니다. 비록 전쟁이 발생하여도 살인을 해야 하는 전투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대체 근무가 있든지 아니면 다른 불이익을 그만큼 당함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양쪽을 계산하여 가벼운 쪽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죽어도 총을 잡지 못한다는 논리는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많은 손해를 보고 다른 방법을 다 강구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전쟁에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

⑤비록 총을 들고 전투에 나섰다 해도, 우리는 우리와 관련하여 살인이 피해가도록 해야 합니다.

물만난 고기처럼,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정당방위라면서 신나게 총질을 하거나 또는 스스럼없이 총을 들 수 있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무슨 교리나 논리가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죄가 먼저 있습니다. 그 죄를 새기지 못하는 사람이면 비록 살인할 기회가 오지 않아서 살인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인의 실력과 살인의 의사를 가진 살인범이 됩니다.

모든 전투에서 자신과 관련하여서는 사람이 죽는 일이 피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 붙들려야 합니다. 6.25전쟁 등에서 그런 체험을 가진 분들을 가끔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총알을 주고받는 전투 도중에라도 단지 내 목숨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적을 죽이겠다는 생각뿐이라면 이 역시 잘못입니다. 내가 쏘아 죽여야 하는 저 사람 하나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임을 알아야 하고, 알지만 지금 내 신앙과 형편에서 하나님은 저 사람을 죽이는 현실로 밀고 가시니 죽인다는 안타까움과 인간이 죄 때문에 이런 죽이는 일들을 한다는 점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자기가 속한 국가나 사회가 그 전체적으로 전쟁을 통해 생사를 가려야 하는 일이 발생된 것은 이미 그 국가나 사회에 속한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그 면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전체적 전쟁에는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는 동참해야 하고, 또 필요하면 전투에 나가야 하고 사람을 죽이게 될 때는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의로운 것은 아니며 이런 일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피할 수는 없으나 살인하는 만큼은 복이 없는 일입니다. 복없는 현실을 주시고 복없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내 손에 총을 들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도록 몰고 나가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3.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요일3:15입니다.

이유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결국 내 손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양심의 가책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곳의 답변도 할 수 없이 전쟁에 참가하도록 현실이 되어질 때는 참가할 수 있고 또 살인을 최대한 피하고 생명을 아껴야 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는 그 사람이 자기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겠다고 판단될 때는 죽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결국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이론에 상관없이 너무 끔찍한 일이며 상상못할 비극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믿는 사람으로 자기가 죽는 것이 옳지 자기가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교리로 정리하는 것은 심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한번씩 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 이해 할 수 있고, 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의감과 동정심, 생사를 초월하는 말씀 구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일3:15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보셨다면, 그리고 출애굽기 20장의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살인에 대하여 끝까지 주저가 된다면, 더더욱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그 마음 하나 하나를 하나님은 '진정한 살인'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우리 생활 속에서 돈 몇 푼, 말 몇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수도 없이 하면서, 그때 그 미움이 하나님 앞에서는 전투에 나간 사람의 사살행위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일상 생활 속의 편리한 살인'으로 계산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일 제 부모를 미워했거나 제 부부끼리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살인과 6계명의 살인을 꼭같이 본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대충 에누리해버리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것은 살인과 같은 정도로 조심하라는 것이겠지 해버리고 쉽게 넘어가는데 성경은 분명히 그 살인을 그 살인으로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수도 없이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그리고 우리가 이런 평소의 살인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데, 이런 살인은 마음 놓고 거리낌없이 해버리면서, 우리 인간이 인간의 감정과 주관으로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전투 중 살인에 대하여는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을 한다면, 이는 참으로 우스운 모습일 것입니다.

질문자 한 분을 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분과 답변자를 포함하여 해당되지 않는 분이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투 중의 사살행위를 두고 생각할 때는, 평소 생활 속에서 미워하는 살인죄를 이기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여 어떤 사람에게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그 다음 순서로 고민되고 걱정되는 것이 내가 속한 국가와 사회가 전쟁을 하게 되면 사살행위에 가담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으면 좋겠다고 해야 정상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평소에 말씀대로 조심을 했다 하더라도 전투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몰고 가실 때는 그 곳에서 그 전투행위 중에 최소의 행위로 그치고 또한 자기 속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며 왜 이렇게 하시는지를 ?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저는 공익요원입니다. 혹사라도 제 신분들키기 싫어서 돌려서 말한것 용서해주시고 양해해주시길바랍니다.

저는 두번 정도 찍혔다가....이제는 일잘한다고 사무실에서 소문날 정도입니다.

그리고 자기보는앞에서 기도,성경책보는것,종교방송시청하지말라는 고참은
만만한 사람만 골라서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모든사람이 싫어해서 은근히 따돌림받는사람입니다.

식사기도금지의 발단은...원래 고참이 밥과 반찬을 준비해야되는데..
매일 음식점에서 시켜먹으니까...반장님이..그 고참을 꾸중했는데..
불똥이 제게 튄것입니다..

원수갚는것이 내게 있으니 ....너는 원수에게 더 잘해주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에휴~ 애도 아니고 이런일로 고민을 하다니...마귀가 반쯤 이긴것 같습니다.

주님 주신 평안으로 항상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되게해달라고 미리 기도를 드렸습니다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습니다만...
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좀 답답합니다...

그냥 고참이 하나님보다 높습니까? 내가 고참 종입니까?
이 두마디 던지고...하나님께 뒷일 맡겨야 겠습니다...

질문 : 2002-08-25 20:18:22 하룻강아지
출처 : 문의답변 895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답변 : 2002-08-26 00:00:57 yilee [ E-mail ]

그런 시집 정도는 넉넉하게 또 쉽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사를 고난 받으신 주님 생각함으로 참으셨으면 합니다.
구체적인 생활 상황을 말씀해 주시니 아주 답변도 간단합니다.
그 정도 생활에서 그 정도 어려움은 묵묵히 참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결혼하신다면 아내 되실 분이 시댁식구들과 꼭 그런 관계 그런 사연들로 얽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아내 되실 분에게 '당신이 제법 억세니까 시어미니께 한번 확 해버려!' 그러겠습니까?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겠소, 그러나 여러 면을 생각해서 좀 더 기도하고 은혜의 날을 기다렸으면 좋겠소!' 이러시겠습니까?

오늘 나는 견디지 못하여 모종의 조처를 취해놓고
훗날 그 형편에 있을 자기 아내에게는, 참으라고 한다면
자기가 자기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고참이 하나님보다 높을 수 없지요. 질문자께서 고참의 종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아는 사람으로, 그것도 귀한 복음을 귀동냥이라도 한 분으로 고난 받으신 주님 생각함으로 그 정도 시집살이는 해 보는 것도 좋고 또 할 수도 있어야 됩니다.

다만 원래 사람이 못나고 병신이라 어디를 가도 항상 안 당할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자기의 그런 못난 성격을 고쳐보는 것은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주님 생각함으로 묵묵히 자기 현실 속에 일부 어려움은 자기의 생활의 일부로 삼아 보셨으면 합니다.



답변감사드립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자는 많은 올무에 빠진다 ^^?
암튼 전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음..병신은 저보다 그고참이 더병신인데요 ㅋㅋㅋㅋ

그고참이 왕고 바로밑이라서...그의 왕고뻘이지요..
그래서 모든사람 한번씩 쿡쿡 찔러봅니다..
그중에서 자기보다 나이많은 사람한테는 꼼짝도 못하지요..
그래서 다른사람은 그 고참을 인간 쓰레기라 부릅니다.

저는 운동을 좀해서...사람을 죽일수 있는 약점도 압니다...
음..그리고 법을 피해가는 법도 압니다..고참을 화나게만든다음...
두 세대 맞아주고 싸우면 법적으로 문제될건 없습니다.

아무튼 기도는 계속하고 주먹질은 하지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발언 : 2002-08-26 04:05:56 하룻강아지
출처 : 문의답변 898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안녕하세요...제얘기 궁금하실분 없으시겠지만...
심심하고..또 앞의 부정적인 말한거...용서를 구하려고 글 올립니다...

고참하고 싸울 각오하고 식사기도했죠..
기도 끝나고 둘이있을때..뭐라고하더군요..
고참들으라고...가래침 뱉고...개기는 말투로 하니까..
고참이 꼬리를 내리네요...ㅋㅋㅋㅋ

걱정근심 염려 다 주께 맡기고...
항상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교인이 되겠습니다...ㅋㅋㅋ

발언 : 2002-08-29 14:07:57 하룻강아지
출처 : 문의답변 905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전체 1

  • 2020-03-27 09:31
    구 게시판 자료화

전체 1,07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 - '비공개 문답'의 경우
직원 | 2018.02.21 | 추천 0 | 조회 2843
직원 2018.02.21 0 2843
3131
New UP [주해] 솔로몬의 타락에 관한 질문 (1)
#960 | 2020.03.28 | 추천 0 | 조회 5
#960 2020.03.28 0 5
3130
New UP [노선] 질문입니다... (1)
#954 | 2020.03.28 | 추천 0 | 조회 3
#954 2020.03.28 0 3
3129
New UP [교계] 일반교계의 구원관에 대해서. (1)
#858 | 2020.03.28 | 추천 0 | 조회 1
#858 2020.03.28 0 1
3128
New UP [교계] 교리비교 (박옥수 관련 -관-) (1)
#944 | 2020.03.28 | 추천 0 | 조회 6
#944 2020.03.28 0 6
3127
New UP [주일/직업] 주일날의 대중교통 이용과 회사 업무시간에 인테넷등 이용에 관하여 (1)
#943 | 2020.03.28 | 추천 0 | 조회 1
#943 2020.03.28 0 1
3126
New UP [공회] 총공회 헌법 (1)
#941 | 2020.03.28 | 추천 0 | 조회 4
#941 2020.03.28 0 4
3125
New UP [교회사]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현황에 대하여 (1)
#924 | 2020.03.28 | 추천 0 | 조회 4
#924 2020.03.28 0 4
3124
New UP [목회] 사역과 학문사이에서 (1)
#921 | 2020.03.28 | 추천 0 | 조회 5
#921 2020.03.28 0 5
3123
New UP [은사]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1)
#919 | 2020.03.28 | 추천 0 | 조회 2
#919 2020.03.28 0 2
3122
New UP [주해] 요압에 대한 질문 (1)
#917 | 2020.03.28 | 추천 0 | 조회 6
#917 2020.03.28 0 6
3121
New UP [주해] 사무엘상 24장, 역대상 21장 (1)
#913 | 2020.03.28 | 추천 0 | 조회 4
#913 2020.03.28 0 4
3120
New UP [건설구원] 하늘 나라 상급의 가치에 대하여 지식으로는 알겠으나, 실감이 어렵습니다. (1)
#911 | 2020.03.28 | 추천 0 | 조회 7
#911 2020.03.28 0 7
3119
New UP [교계] 피종진목사님 외4명 소송사건 궁금합니다. (1)
#906 | 2020.03.28 | 추천 0 | 조회 4
#906 2020.03.28 0 4
3118
New UP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1)
#903 | 2020.03.28 | 추천 0 | 조회 2
#903 2020.03.28 0 2
3115
New [공회] 총공회 명칭 사용의 시기는? (1)
*1732 | 2020.03.27 | 추천 0 | 조회 12
*1732 2020.03.27 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