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십자가상 죽으심으로 사죄가 완료되었는가? 죽음 이후 3일 동안에도 형벌 진행중이었는가?

일반질문용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20.02.15
1987년 6월 14일 주일오전 설교 말씀 (본문:요한계시록 1:10-13) 중 일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이 이것이 세 가지 문제로 죽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이니 이 일은 언제까지 완료했느냐? 금요일날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그 일을 완료하셨는데 그 완료하시기까지 무덤 아래에 있었고 사망 아래 있었고 사망 권세 아래에 대속을 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 설교에서 금요일날부터 주일날 새벽까지 무덤 아래 있었고 사망 아래 있었고 사망 권세 아래에 있어서 대속을 하시고 있었다고 한다면 십자가에 죽으신 그 날(금요일)부터 적어도 토요일 밤까지는 형벌을 받고 계셨고 사죄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십자가상 눈에 보이는 심신의 육체적 고통 이후 무형체에 가해진 신령한 우주적인 고통이 죽음 이후에도 진행중이었다는 말씀인데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위 설교를 서로 비교해 본다면 살아 생전에 이룰 대속은 다 이루어 끝이 났고 죽음 이후에 이루어야 할 대형의 형벌이라는 대속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설교 말씀인가요?

질문을 요약하자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사죄가 완료되었는가? 죽으심은 사죄의 시작이고 3일 동안 형벌을 받고 계시다가 부활로 사죄가 완료되었는가? 죽으심으로 사죄인가? 죽으심 이후 3일 동안에도 대속을 하시고 계셨다면 죽으심으로 사죄가 있고 부활하심으로 사죄가 따로 있는가?
표현상 죽으심으로 사죄인가? 아니면 죽으심으로 사죄 + 부활하심으로 사죄인가?

죽음 이후 3일 동안 육신의 몸은 무덤 안에 계셨지만 실상은 주님이 어디에 계셨는지 장소적인 개념으로 접근해 본다면
죽으신 그날 낙원에 가셨는가?
아니면 3일 동안 사망 권세 아래 음부에서 대속을 이행하시고 완료하신 그 이후에 '오늘' 낙원에 가셨는가?
죽음 이후에 음부와 낙원, 영계의 모든 시간은 항상 '오늘'로 정의해 봅니다.
전체 22

  • 2020-02-15 14:43
    고린도전서15:16-17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사도행전2:31-32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 2020-02-16 18:17
    89.08.09 수새벽 (89.8월 집회)
    설교제목: 하나님의 계약
    성경본문: 요한계시록02:08-11

    어제 어떤 사람이 여게 낙원을 묻는데 낙원은 '오늘 너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낙원을 말씀하셔서 이 낙원을 무궁세계가 이루어지기 전 무궁세계를 소망하는 대기소라고 그렇게 우리들이 다 생각을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면 낙원은 예수님과 그 강도가 세상을 떠나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대기소라고 말했는데 그 대기소를 말합니까? 또 딴 대기소가 있습니까? 그래 물었습니다. 그 진실한 성도요. 이거 똑똑히, 요래도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왜? 그 아는 거게다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막 쏟아서 지금 투자해야 될 터인데 잘못 알면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잘못 투자하는 것 안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는 자기 생명보다 가치 있어. 교리와 신조에게 자기 생명을 투자할 것이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라. 내가 생명을 다 바칠 그것이기 때문에 잘못 알면 큰일 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낙원을 물었어. 그 좀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하도 고마와서, 다른 사람 볼 때는 '목사님이 그 질문하는데 저거 이 대중을 위해서 지금 거석하면서 거기 만나 가지고 뭘 얘기를 해?' 내가 여기 주저 앉았어. 내가 주저앉으면서 그분을 만나 가지고 얘기를 내가 어북 좀 장시간 얘기를 해서 말을 했어. 내가 기뻐서. 즐거워서.

    낙원은 예수님이 가실 그 낙원인데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는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 가지고 거게서 기대하고 있을 그 낙원. 대기하고 있을 낙원. 그러면 대기하고 있으면 대기할 때에 거기서 뭣을 하고 있겠소? 그 대기한, 거게 있는 강도가 지금 대기하고 있는데 대기하고 있는 그 강도가 뭐 생각할까요? 뭐 생각하겠어? 그 낙원에 있는 강도는 '아이구, 이거 사업을 어찌 해 볼꼬? 취직을 어떻게 해 볼꼬? 어디 지금 내가 권세를 잡아 볼꼬?' 그런 것 땅의 것은 생각 하나도 없어. 땅의 거는 생각 하나도 없어. 순전히 무궁세계의 것과 무궁세계의 주인공되는 하나님만 생각하지 딴것 생각은 하나도 없어. 이랬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이 세상에 죽기 전 낙원이나 그 낙원이나 내나 한 낙원인데 죽고 난 다음에 낙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은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지만 죽기 전 낙원에서 대기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낙원에 있다 말은 일편단심이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세계만 소망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내나 다른 성경에도 그래 말해 놨어요. 이렇게 모든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리니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져야 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거게만 소망을 가지고 사모하는 자 돼라. 간절히 사모하는 자 돼라. 그러니까 소망도 거게 있고, 마음도 거게 있고, 거게 소망하고 거게서 생각한 것을 이루기는 이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이루지만 자기의 심신은 다, 다 거게 기울여져 가지고 있다 하는 그말이오. 그 말이 내나 여기 낙원에 있다는 말 한가지입니다.

    주님이 강도에게 말씀하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해석한 위 설교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음 직후 금요일날 그날 낙원에 간 그 오늘이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 주님과 강도가 대화하던 그때인 지금부터 죽기전까지 기간을 오늘이라 말하는 것 같고 '낙원'은 죽음 후 대기소 낙원이 아니라 죽기 전 구원을 이룰 여지가 있는 목숨이 붙어 있던 현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 2020-02-16 20:50
      몸은 십자가상이라는 현실에 있지만 마음의 소망은 이미 낙원에 거기 기울어져 있고 마음의 애착은 이미 낙원 거기에 가 있다.

      오늘 죽으면 너랑 나랑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는 의미보다는 낙원에 마음이 다 뺏겨 버렸다는 뜻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2020-02-16 19:53
    마태복음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1:17 - 2:1-2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2020-02-16 22:49
    답변이 조금 늦어지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 2020-02-17 00:50
    저의 견해로는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에 근거하여

    전세계 모든 기독교신앙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 '낙원'에 계셨던 것으로 믿습니다.

    이 부분은 부정하면 안 될것 같습니다.

    저는 공회가 이 부분을 부정한다면
    공회의 성경해석에 큰 오류가 있다 생각되어집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까지
    낙원에 계신것은 기본전제로 삼고
    예수님의 지옥강하설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 낙원에 계셨던것은 변하지 않는 상수로 삼고

    변수로써 1.십자가상에서 택자의 지옥의 모든 고통을 받으셨다
    2.십자가상에서 고통과 더불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 지옥에 내려가셔서 택자가 당해야 할 지옥형벌을 받으셨다

    상수(낙원 반드시 가심) + 변수(1 or 2)
    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방향의 해석이 아닌가 생각 되어집니다.

    • 2020-02-17 10:17
      교인님의 말씀대로 십자가 죽음 이후 삼일동안 낙원은 불변의 상수로, 음부는 변동 가능한 변수로 볼 수도 있겠으나 저는 그 반대로 보여 집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삼일간 고난을 인하여 부르짖은 것이 주님이 죽으신 후 스올이라는 음부에서 삼일간 계셨음을 예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것을 두고 마태복음 12장에 밤낮 사흘을 땅 속에 계셨다고 말씀하신 것이 주님의 죽으신 몸은 무덤에 계셨으나 그 외 주님의 나머지 부분은 음부에 밤낮 사흘을 계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백목사님 설교에서도 여러 군데 죽음 후 3일간 대속 중, 대신 형벌 중, 사죄 중으로 저는 깨달아집니다
      지옥에서 받아야 할 영원할 형벌을 십자가상 세상에서의 형벌로 끝이 난다는 것, 사죄가 십자가 죽으심으로 완료되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사죄의 완료 시점을 설교록에서도 명백하게 주일 새벽 이후로 보는데 저도 이것이 맞다고 동의가 되어집니다.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성구 해석은 백목사님 말씀대로 죽음 후 대기소인 우리가 갈 낙원을 주님과 강도가 함께 갈 것이라는 그 촛점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몸은 죽기 전 십자가상이라는 현실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죽음 후 낙원에 쏠빡 거기에 다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마음은 지금 살아 생전에 있지만 마치 아이들 말로 넋이 나가 멍 때리고 있다는 표현처럼 실제는 죽음 후인 낙원에 마음이 다 뺏겨 버렸다는 뜻으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성구를 저는 이해합니다.

      저는 죽음 후 삼일간 음부가 불변의 상수로, 죽음 후 낙원이 변동 가능한 변수로 보여 집니다.

  • 2020-02-17 11:44
    담당 9님의 답변이 사라져 설명을 듣기 전에 일단 댓글을 이어갑니다.
    담당 9님의 답변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제 글로 다시 한번 더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은 모두 끝이 났고 완료가 되었다.

    2. 다만 영생의 소망이라는 대속 때문에 삼일 기간이 필요하며 설교록에서 주일날 새벽까지 사망 권세 아래에 대속을 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에서 대속은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이 아니라 영생의 소망이라는 대속을 말하는 것이다.

    3. 주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지옥의 형벌까지 전부 다 받으심으로 모든 사죄는 죽으심으로 완료되었다. 그래서 표현도 죽으심으로 사죄가 맞는 것이고 부활과 사죄와는 전혀 상관 관계가 없으므로 부활로 사죄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4. 우리의 영생의 소망이라는 대속을 완료하시기 위해 주님의 몸은 무덤 속에 삼일을 계셨지만 그러나 실상 주님의 영과 혼은 낙원에 삼일을 계셨다가 영생의 소망이라는 대속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영과 혼이 몸으로 돌아와 부활하셨다.

    5. 주님이 죽으신 이후 삼일간의 행적은 음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직 몸은 무덤에, 영과 혼은 낙원에 계셨다가 부활 때 다시 신령한 영육으로 부활하셨다.

    제가 담당 9님의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2020-02-17 12:03
      '담당9'께서 글의 일부에 수정할 것이 있는데 삭제가 되었습니다. 곧 다시 등재가 되니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운영에 혼란이 있어 죄송합니다.

    • 2020-02-17 12:10
      '주님이 죽으신 이후 삼일간의 행적은 음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이 부분은 정정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지옥 형벌까지 다 받으셨다고 하셨기에 이것이 음부에 가셨다는 의미이며 죽으신 금요일 그날 강도와 함께 낙원에 가셨다고 하신다면 순식간 음부에도 가셨고 나머지는 낙원에도 가셨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 들여집니다.

      저는 십자가 죽으신 이후 삼일 동안 낙원에는 가시지 않으셨고 오로지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지옥의 형벌을 대속하셨다가 부활하신 것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2020-02-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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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제는 현재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공회적으로 정립이 된 내용이 있고, 공회적으로 정립하는 과정에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공회가 정립은 해두고 있으나 설명을 더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 글을 적는 사람의 개인 입장으로 '발언'한다는 점을 특별히 표시해야 했는데 제가 이 중요한 부분을 놓쳤고, 다시 정리하여 글을 적다보니 늦어졌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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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이 글은 공회의 최종 입장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 십자가 죽음으로 죄 값이 끝이 났는지? 3일을 더 이어 갔는지?

    1. 대속의 원칙

    대속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사활’이라 하였으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이 아니요 죽고 부활하심으로 대속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대속이 완성이 되어야 택자의 모든 죄를 해결하는 ‘사죄’가 효력을 발생하므로 사죄 완료의 시점은 예수님이 죽으신 때가 아니고 3일 후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대속의 끝은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순간입니다.

    2. 대속의 깊이

    (1) 그러나, 성경은 또한 아직 부활을 안 하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순간, 대속이 완성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2) 그리고, 부활 후 마리아에게 몸을 만지지 말라 하셨고 또 아버지께로 올라갔다 오셔야 했습니다. 이미 대속을 완성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단 말인가?

    (3)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 받을 형벌이란 살아서 심신이 받는 고통이 전부가 아니고 영계에서 받을 영원무궁 지옥의 형벌이 남아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죽으신 후에 아직 해결해야 할 지옥의 형벌이 있으면서 어떻게 우편 강도와 함께 낙원에 있을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1. 죽으시고 3일동안, 예수님의 영은 낙원에 몸은 무덤에 마음은 지옥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2. 죽으시고 3일동안, 우편 강도와 함께 낙원에 가셨다가 곧 지옥으로 내려가셔서 형벌을 다 받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등등 여러 가지 견해가 많았지만,

    # 제 개인적으로는,

    죄인이 살면서 받아야 할 형벌은 예수님의 33년과 십자가에서 받으신 온 우주적 고통으로 해결되었고, 죽어서 받아야 할 영원 지옥의 형벌은 시간적으로는 주님이 죽고나서 지옥에 가서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이나 영계는 시공초월이므로 주님이 죽으신 그 순간에 택자가 받아야할 모든 지옥의 형벌을 시공을 초월하여 즉각 받으심으로, 죽으심과 동시에 완전히 해결된 것이고 무엇보다 본래 예수님의 본체에는 죄가 없고 죄 값을 대신 담당하셨던 것이기에 십자가에서 대속이 끝났으면 그 즉시 부활이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즉시 부활하지 아니하시고 3일 동안 무덤에 갇혀 계셨습니다. 이 3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한 3일의 기간인가? 그렇다면 생전 3일이 지옥의 영원무궁의 형벌을 다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시공을 초월한 영계와 물질계의 개념을 1대 1로 연결을 시켜도 되는 것인가? 저는 이 점이 아직 받아드려지지 않고 오히려 “다 이루었다”의 말씀에 비추어 위에 설명한대로 차라리 시공을 초월하여 죽으심과 동시에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순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에 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죽으셨을 때에 즉시 부활하시면 대속이 완성되는데 어째서 3일을 무덤 안에서 기다리셔야 했던가? 어째서 3일 후에 부활하셔야 했고 또 부활 후에 어째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 하셨고 아버지께로 가장 먼저 올라갔다 오셔야 했는가? 이미 부활 후 대속은 완성이 되었는데, 끝이 났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어째서 주님은 부활 후에 인성을 벗지 아니하시고 본체 하나님으로 돌아가지 아니하셨는가? 하나님의 우편에서 인성을 벗지 아니하신 이위 성자 하나님으로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가?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대속은 돌려 말하면 택자를 위한 주님의 희생인데 그렇다면 이런 주님의 희생은 대속의 범위에 들지 않는가? 주님의 희생은 십자가 사활대속으로만 끝이 났는가? 부활 후 택자를 위한 주님의 희생과 고통은 전혀 없는가? 택자를 중생 시킨 후 예수님은 그냥 손 놓고 지켜만 보고 계시는가? 이런 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후 3일에 대하여 기존과 다르게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에 대한 개인적 깨달음은 그동안 주님의 대속을 안다고 했으나 주님의 대속의 범위와 규모와 차원이 얼마나 깊고 크고 넓은 것인지 대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택자의 모든 죄 값과 형벌을 해결을 하셨고 이제 남은 것은 부활 뿐인데 이 부활로 드디어 대속이 완성되어 사죄가 끝이 나는데, 이 부활을 늦추면서까지 3일동안 무덤 안에서 기다리셨어야 했던 이유란 무엇이었는가? 3일동안 무덤에서 기다리시는 고통은 도성인신의 고통보다 덜 하셨을까? 십자가의 고통보다 덜 하셨을까? 아니면 이제 하나님으로 자유할 수 있는데 그 자유를 억누르는 그 고통이란 그 동안의 모든 고통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셨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계속 희생하셔야 했을까?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하늘의 유업을 이을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면, 대속이란 죄와 허물로 죽은 택자를 중생시켜 다시 살려낸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 아들을 명실상부한 실력까지 갖춘 진정한 하나님의 후사로 만드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대속에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한 기본 구속의 희생만이 전부가 아니라 반드시 이 태어난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무궁토록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이 무한의 희생이 포함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3일 미루어진 것은 주님께서 받으실 형벌을 더 남아서가 아니라, 장차 태어날 아들의 실력을 위하여 대속을 완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인성을 벗고 완전한 하나님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원무궁토록 택자의 대속주로 바라볼 소망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인성을 벗지 않기 위하여 이 더욱 깊고 커다란 대속 사활의 희생을 무덤에서 3일동안 이루신 것이 사후 3일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본 대속은 끝이 났으나 무한(건설) 대속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이 중생과 건설을 피 흘려 하나로 이루신 것이 주님의 대속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0-02-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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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답변 작성 후 삭제 했으나, 연구에 필요할까 하여 지워졌던 글을 원상복구합니다.
      이 글은 저의 1차 정리일 뿐이며, 2차로 정리된 것은 위의 글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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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공회의 최종 입장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1. 기본 대속

      우리가 알다시피 인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인이 된 택자의 원죄의 본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대속으로 인하여 완전히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 대속을 간단히 살피자면,

      1. 죄인으로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택자의 모든 죄값이 해결되었고 (대형-사죄)
      2. 하나님의 아들로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하나님의 의를 주님이 대신 이루어 주심으로 택자를 의인으로 만들어주셨으며 (대행1-칭의)
      3. 법적 모든 자격은 구비되었어도 정말로 아버지와 아들로서 뜨거운 인격적 결합이 없으면 반쪽인데, 주님이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 하나님과의 뜨거운 인격적 결합의 관계가 식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으심으로 대신 화친을 이루어 주셨고, (대행2-화친)
      4. 무엇보다 택자는 이미 죄로 죽었기 때문에 주님이 대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이 대속을 입혀주심으로 대속이 완성되었습니다. (대생-부활)

      그리고, 이 모든 대속의 과정은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시는 순간 완전히 끝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주님이 받으신 형벌에 대하여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사망은 육신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댓가와 그 고통이란 육신에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육신의 고통은 고통스럽지만 영원에 비취면 잠깐인데, 그리고 사실 육신은 죽으면 끝인데. 하나님 앞에 받아야 할 죄의 댓가와 그 형벌이란 살아서는 육신의 고통이고 죽어서는 영원무궁토록 받아야 할 지옥의 고통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의 무게요 죄악의 형벌이 아니겠는가? 주님의 육신이 죽으심만으로 형벌이 끝났다고 한다면, 육신의 고통과 괴로움, 죽음만으로 모든 택자의 죄악이 해결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게 맞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십자가 죽으심만으로는 미완이라는 말인가? 이치는 무엇인가?

      분명히 주님의 십자가 사활대속으로 모든 대속은 끝났습니다. 사죄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 죄인이 살아서 받아야 할 임시 형벌은 33년과 십자가에서 주님이 받으신 온 우주적 고통으로 해결되었고, 죽어서 받아야 할 영원 지옥의 형벌은 시간적으로는 주님이 죽고나서 지옥에 가서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이겠으나 영계는 시공을 초월하므로 주님이 죽으신 그 순간에 시간적으로는 순간이나, 택자가 받아야할 모든 지옥의 형벌을 시공을 초월하여 죽으심과 동시에 즉각 받으심으로 죽으심과 동시에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2. 무한 대속

      그러나 사실 대속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부활’에 대한 부분이라 보입니다. 본래 예수님의 본체에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주님이 받으신 모든 고난은 오직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속이 끝났으면 그 즉시 부활이 되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즉시 부활하지 아니하시고 3일 동안 무덤에 갇혀 계셨던가? 죄인이 죽어서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기 위한 기간이 3일이라서 3일이었던가? 그렇다면 지상에서의 3일이 지옥의 영원무궁의 형벌을 다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시공간적인 3일이 3일인가? 그리고 대속을 완성하신 부활체이시면서 왜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 하셨는가? 어째서 대속이 끝났는데 또 다시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 했는가?

      아니면,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하늘의 유업을 이을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면, 대속이란 죄와 허물로 죽은 택자를 중생시켜 아들로 다시 살린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 아들을 명실상부한 실력까지 갖춘 진정한 하나님의 후사를 만들기 위한 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대속은 단회 단번이지만, 이 대속 안에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한 기본구속의 희생 뿐만 아니라 이 태어난 아들이 하나님의 무한을 향하여 영원 무궁토록 자랄 수 있도록 만드는 무한 대속의 희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활이 3일 미루어진 것은 주님께서 받으실 형벌을 더 남아서가 아니라, 태어난 아들이 장차 갖추어야 할 실력을 위하여, 대속을 완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인성을 벗고 완전한 하나님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원무궁토록 택자의 대속주로 바라볼 소망이 되기 위하여 인성을 벗지 않기 위하여 무덤에서 3일을 기다리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택자의 영원한 소망이 되어주시기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무궁토록 인성을 벗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영원 무궁의 대속을 하기 위하여 ,십자가 사활대속 이후 바로 부활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죽음보다 더욱 괴롭고 답답한 무덤 속의 3일을 대속의 희생으로 견디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대속은 갈수록 무한 대속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알면 알수록 무한 은혜입니다.

      1. 하나님이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 오셔야 했던 도성인신의 고통
      2. 창조주가 10개월간 마리아의 복 중에서 참으셔야 했던 고통
      3. 33년 십자가 전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받으신 온 우주적 고통
      4. 십자가상에서 받으신 죽음의 고통
      5. 지옥의 모든 고통
      6. 다 이기셨으니 홀가분하게 다 털어버려도 되련만, 택자의 영원한 소망이 되기 위하여 3일 동안 무덤 속에 참고 기다리셔야 했던 그 고통
      7. 승천 후 지금까지 택자가 무한히 닮고 자라가야 할 목적의 대속주, 바라볼 소망의 주님으로 계시기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무궁토록 인성을 벗지 않고 계신 이 무한한 고통.

      주님의 우리를 향한 대속의 희생은 지금도 유효하고, 가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낙원에 대해서

      백 목사님의 표현에는 대속의 표현처럼 1차적 표현과 2차적 표현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오해하기 쉽습니다. 낙원에 대해서도 택자가 죽어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실제 낙원이 없다는 말씀이 아니고,

      “이랬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이 세상에 죽기 전 낙원이나 그 낙원이나 내나 한 낙원인데 죽고 난 다음에 낙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은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지만 죽기 전 낙원에서 대기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낙원에 있다 말은 일편단심이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세계만 소망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모든 택자는 죽으면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행위와 관계없이 천국에 갑니다.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러니 죽으면 낙원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 낙원의 본 뜻이란 건설구원은 실패하고 하나님의 절대예정으로 기본구원을 얻은 택자라면 아무라도 가서 대기하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일편단심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 세계만 소원하는 곳이니 이 낙원을 현실에서 이루고 죽기까지 바라보며 건설구원을 이룬 택자에게 소망으로 예비하신 곳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 2020-02-17 16:19
    예수님이 죽으신후 음부에 내려가서 지옥형벌을 단번에 찰나에 받았던, 3일동안 받으셨던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에 낙원에 계셨던것은
    너무나 당연한거 아닌지?

  • 2020-02-17 16:30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음부에 내려가셨던 안내려가셨던

    낙원에 계셨던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지?

  • 2020-02-17 17:21
    사죄 완료의 시점은 예수님이 죽으신 때가 아니고 3일 후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대속의 끝은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순간입니다.

    1. 그렇다면 '죽으심으로 사죄'라는 표현에 더하여 '사활로 사죄'라고 표현해도 교리상 문제가 없겠습니까?

    2. 담당 9님은 주님이 죽으심과 동시에 순간적, 즉각적으로 음부에서 지옥 형벌을 다 받으셨고 주님이 죽으신 그날 낙원에 가셨다.
    사후 삼일 동안의 의미는 사죄의 형벌 기간이라는 부차적인 의미도 있겠으나 사후 삼일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는 근원적인 중심은 우리 영생의 소망을 이루시기 위한 기간이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 이해 했습니까?

    3. 내가 죽으면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낙원에 가시지만 실제 본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셔서 나를 위해 간구하시며 재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것처럼
    죽음 후 삼일 동안 주님의 본체는 낙원이 아닌 음부에 삼일간 계시면서 4가지 대속, 즉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소망을 이루고 계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담당 9님은 삼일간 음부도 계셨고 낙원에도 계신 것으로 답변하신 것 같은데 저는 낙원과는 상관없고 오직 음부에만 삼일간 계신 것으로 정리를 해 봅니다.

    견해 차이는 앞으로 연구 과제로 두고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연구를 통해 주님의 대속의 희생과 사랑과 눈물을 다시금 더 깊이 묵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답변을 듣거나 자기 생각을 글로 적으며 서로 토론하다 보니 생각 못했던 새로운 면이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답방 운영자에게 주신 복이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 2020-02-17 18:32
    회원님의 주장을 정리하면...

    1.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까지 3일동안 음부에서 택자의 모든 지옥형벌을 직접 받으셨다.
    (예수님의 지옥강하)
    2. 예수님은 3일동안 장소적으로 음부에만 계셨지 낙원에는 안계셨다.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말씀은

    장소적의미가 아니라 찬송가의 `내 주예수 계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가사처럼
    우편강도나 누구나 주님과 동행하면 그곳은 낙원이므로

    주님과의 동행하면 그 어디나 낙원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은

    2000년 기독교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눅23:43을 장소적으로 해석을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편강도와 함께 낙원에 실제 계신것은 너무다 당연하게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을 아무리
    읽어봐도 장소적의미이지 동행적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동행적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은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

    입니다. 마28:20과 마18:20은 아무리 읽어봐도 `장소적`의미는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읽어봐도 `동행적` 의미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눅23:43은 읽어보면 누구나 `장소적`으로 해석이 되고, 2000년 기독교의 모든 목사님들
    성도님들이 `장소적`으로 해석을 해 왔습니다.

    눅23:43은 누구나 읽어보면 `장소적`의미로 해석이 되는 것 같은데...눅23:43이 `장소적`의미가 아니라
    `동행적`의미라 주장하시니..좀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 2020-02-17 20:40
      장소적 의미와 동행적 의미에 대한 구분은 아래 설교에 대한 해석이 열쇠인 것 같습니다.

      낙원은 예수님과 그 강도가 세상을 떠나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대기소라고 말했는데 그 대기소를 말합니까? 또 딴 대기소가 있습니까? 그래 물었습니다. 그 진실한 성도요.

      낙원은 예수님이 가실 그 낙원인데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는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 가지고 거게서 기대하고 있을 그 낙원. 대기하고 있을 낙원. 그러면 대기하고 있으면 대기할 때에 거기서 뭣을 하고 있겠소? 땅의 거는 생각 하나도 없어. 순전히 무궁세계의 것과 무궁세계의 주인공 되는 하나님만 생각하지 딴것 생각은 하나도 없어.

      이랬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이 세상에 죽기 전 낙원이나 그 낙원이나 내나 한 낙원인데 죽고 난 다음에 낙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은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지만 죽기 전 낙원에서 대기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낙원에 있다 말은 일편단심이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세계만 소망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내나 다른 성경에도 그래 말해 놨어요.

      이렇게 모든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리니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져야 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거게만 소망을 가지고 사모하는 자 돼라. 간절히 사모하는 자 돼라. 그러니까 소망도 거게 있고, 마음도 거게 있고, 거게 소망하고 거게서 생각한 것을 이루기는 이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이루지만 자기의 심신은 다, 다 거게 기울여져 가지고 있다 하는 그말이오. 그 말이 내나 여기 낙원에 있다는 말 한가지입니다.

  • 2020-02-17 21:26
    저는 백영희목사님의 해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현재 백목사님의 해석보다는 제가 성경을 읽었을때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면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영희목사님이 다른 설교에서, 기록으로 남지않은 설교에서 `저와 같은 방향으로 해석을 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민수야 나랑(민수친구인 동수) 내일 도서관에서 만나자` 이 해석은 읽어보면 당연히 장소적인 `도서관`이지 않습니까?

    `민수야 나랑(민수친구인 동수) 내일 도서관에서 만나자`를 우리의 모든 삶 전체가 배우는 도서관이니, 내일 도서관에서 만나자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면 우리가 있는 어느곳이나 도서관이고, 그리고 나(동수)는 어디서나 너와 함께 하는거야. 왜냐면 나도 늘 배우는 자세로 살거고 그러면 내가 있는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야..

    이렇게 해석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 2020-02-17 21:42
      그러니까 소망도 거게 있고, 마음도 거게 있고, 거게 소망하고 거게서 생각한 것을 이루기는 이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이루지만 자기의 심신은 다, 다 거게 기울여져 가지고 있다 하는 그말이오. 그 말이 내나 여기 낙원에 있다는 말 한가지입니다.

      저는 백목사님이 교인님처럼 낙원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강조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라 동행적, 상태적 의미를 주님이 강조하셨다 생각합니다.

    • 2020-02-18 07:20
      얘야 춥다 방에 들어올 때는 꼭 문을 닫고 들어 오너라는 뜻을
      한 사람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문을 닫으면 어떻게 들어가지 하고 반문하는 반면
      또 한 사람은 방에 들어 오고 나서 꼭 문 닫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가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주님의 속뜻은
      죽음 이후 대기소인 낙원에 가 계시겠다는 장소적 의미로 말씀하신 뜻인가?
      아니면 마음의 소망이 전부 낙원에 가 있다는 동행적 상태적 의미인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언제 먹게 하신다는 말씀인가?
      이기는 자는 죽음후 낙원에 가서 생명나무 과실(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인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연결의 복)을 죽기 전에 현실에서 주어 먹게 하신다는 말씀인가?
      낙원인가? 생명나무인가? 죽음후 가는 대기소 낙원인가? 죽기전 세상 현실에서 바라보는 낙원인가?

      죽음 이후 갈 낙윈을 말씀하신 것인가? 이 세상 현실에 있으면서 죽음 후 대기소를 사모하고 동경하는 낙원을 말하는 것인가?

      한 자리에서 같이 들었던 백목사님 설교에 대한 해석도 각기 달라질 수 있으니 시간을 두고 계속 더 면밀히 살펴 봤으면 합니다.

  • 2020-02-19 06:0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2:7)

    결론적으로 교인님은 위 성구를 아래와 같이 깨닫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위 성구에서 낙원은 죽음 이후 우리가 가는 대기소인 낙원을 말하는 것이므로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은 죽음 후 낙원에 가야만 우리가 먹을 수 있다. 이 세상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죽음 후 우리가 갈 낙원에 있는 과실을 따서 내게 주실 수는 없다는 것이 교인님이 강조하시는 장소적 의미의 '낙원' 해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이 세상 현실에서 이겨 진실한 자가 되면 죽기 전에 현실에서 하나님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신다. 그 과실은 죽음 이후 대기소 낙원에 있는 그 과실이 아니라 상태적, 동행적 의미로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복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생활하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낙원 천국의 기쁨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낙원이라는 현실'에서 누리는 연결의 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 성구의 낙원은 죽음 이후 대기소인 장소를 말하기 보다 '현실 낙원'이라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는데 앞으로 제가 틀리고 교인님 생각이 맞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다시 글을 올려 수정하겠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 주신 교인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2020-02-19 08:55
    이해를 돕기 위해 백목사님 해석을 올립니다

    이랬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이 세상에 죽기 전 낙원이나 그 낙원이나 내나 한 낙원인데 죽고 난 다음에 낙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은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지만 죽기 전 낙원에서 대기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낙원에 있다 말은 일편단심이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세계만 소망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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