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건설구원] 유산된 태아의 건설구원은 어떻게 되나요?

직원내부용
작성자
*633
작성일
2019.11.08
(원제) 그러면... 건설구원은 어떻게 되는지...

갓난아이라도 택자라면 구원받는다고 하셨는데.....
그 구원은 기본구원을 말씀하는 것인지?
갓난아이가 불행하게도.....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태중에서 사산되었다면.....
택자로서 기본구원은 받았겠지만 건설구원은 어떻게 되나요?

세상은 건설구원의 시험장소라고 하던데.....
세상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태중에서 사산되었다면..... 건설구원의 기회는 없는 것이 아닌가요?

 

 

질문:행인 2002-11-08 09:29:16
출처:pkist.net/쉬운문답633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답변: 2002-11-08 11:34:45 yilee [ E-mail ]

 

비록 한 뼘의 뱃속이지만, 신앙에 필요한 모든 세상을 다 접하고 있습니다.

 

 

1.갓난아이뿐 아니라 뱃속의 태아도, 택자라면 구원을 받습니다.

갓난아이의 구원에 대하여는, 야곱과 에서가 리브가 뱃속에서부터 두 신앙노선의 갈등과 투쟁이 있었으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가 뱃속에서 6개월 되었던 시점이었음을 살펴볼 때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전적 은혜로 주어지는 기본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천국 가는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건설구원은 어찌 되겠는가 하는 것이 질문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세상에 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사산된 아이의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받았다면, 그 즉시부터 건설구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진행의 속도와 굴곡은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우선 사산된 아이의 건설구원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건설구원의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계셨으나, 세상은 어미의 뱃속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문학적 표현으로 말할 때는 아이가 출생될 때 이제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보통 말합니다만, 좀 자세하게 표현한다면 어미 뱃속에 존재할 때가 세상에 처음 나온 때입니다. 그때부터 인생 출발은 했으나 그 인생의 초창기는 어미 뱃속을 자기 현실로 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되지 않았느냐고 다시 반문할 수 있습니다만, 그 어미의 모든 심경 변화 인체 여건이 그 아이에게는 자기의 주변이며 환경이며 우리로 말하면 자기 현실입니다. 성인인 우리가 부딪히며 접촉하는 더 넓은 세상에 비하여는 범위만 축소되었을 뿐이지 성도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세상 현실이라는 점에서는 꼭 같습니다.

3.태아의 경우, 기본구원은 있어도 그 건설구원인 신앙수준은 '0'일까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불과 5종류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육신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 동방박사 3사람, 소수의 목자들, 성전에서 기도하던 안 나와 시므온입니다. 자기 현실에 찾아온 예수님을 매번 거부하고 외면하는 것이 거의 모든 믿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인데,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운 현실에서 생사 초월하고 맞았습니다. 건설구원면에서는 최고의 신앙가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구약 교회에서 가장 큰 자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출생 후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살 때였으나, 이미 어미 뱃속에서부터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기뻐 환영했습니다. 그 부모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하였던 신앙이었으니 태아 6개월의 요한의 신앙 수준은 이스라엘 전체를 통틀어 몇 손꼽을 신앙, 또는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4.태아의 신앙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앙이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고 하는 판단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과는 너무도 다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 판단은 거의 착오가 많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서 어느 정도로 함께 했느냐가 실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아는 그 어머니 뱃속에서만 거주하고 있으나 그 어머니의 시청각을 안테나로 이용하며 외부 세상을 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어머니의 생각 세계를 통하여 그 아이의 의식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은 아직 과학이 짐작만 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이 신앙노선의 교리와 교훈 세계에서는 상상 못할 차원이 전개되고 있다고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 눈에 참으로 하찮게 보이는 뱃속 태아지만, 한 뼘 뱃속에서 그들은 자기 구원을 이루는데 아무 불만 없이 또 불편 없이 우리와 똑같은 건설구원의 현장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실은 그 속에서 자기 평생의 방향을 다 확정짓고 밖에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재질문:제삼자 2002-11-08 12:33:13

그렇다면 뱃속 태아에게 자의사가 있다는 말인데요?

 

건설구원은 자의사의 주관에 의한 유기적인 구원이 아닙니까? 뱃속 태아가 건설구원을 이룬다면 자의사의 주관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인데, 특수한 경우라 한다면 몰라도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아닙니까?

전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겠지만 구원의 보편성을 생각할 때 태속에서 사산한 아이라면 일반적으로는 건설구원은 별로 없다고 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요?


답변:2002-11-08 14:05:53 yilee [ E-mail ]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예외라는 것입니다.

 

 

1.건설구원에 필요한 자아의식의 유무로만 생각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구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의식이 발달됨에 따라 건설구원에까지 나아가겠느냐는 문제가 재론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지적하신 분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는 그럴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태아 시절은 인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지 자아의식까지 존재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것은, 태아가 그 발달 상태면에서는 이제 기본 형태를 잡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그 의식도 그 사고의 기본 형태와 요소를 갖추고 있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아의 인체가 서서히 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가질 기본 구조와 기능을 발달시켜 가듯이 그 인체 내부에서는 그 의식 역시 기억 감정 양심 등 다방면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그 기본 동작을 갖추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건설구원에 필요한 기본 요건인 자아의식이 비록 미약하기 그지없으나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2.문제는, 자아의식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통계상 태아 신앙시절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확인이 어려운 태아를 상대로 하지 말고, 일단 출생하여 오늘까지 성장하고 교회 교인노릇을 하는 사람을 상대로 통계 조사를 해 보면 태아 시절의 신앙상태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우리 교인들과 교역자들이 자신의 과거 예수 믿은 시점과 그 후 신앙이 자라온 과정을 살펴본다면, 태아 시절에 벌써 건설구원에 진행이 많았다고 느낄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아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건설구원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면,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태아시절을 가졌던 사람들인데, 오늘 뚜렷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 태아시절 신앙의 발전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되짚어 새겨본다면, 아마 그 시절에는 중생도 되지 않았던지 중생은 혹 되었다 해도 신앙의 발전이란 없었다고 할 분들이 거의 전부라고 생각 됩니다.

3.건설구원에 필요한 자의식에 대하여 몇 말씀 더 첨부하겠습니다.

①건설구원의 모습은, 자기 주관 의사가 하나님 뜻을 유기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리시고 인간은 그 뜻을 알아듣고, 이해하며 자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비록 여러 어려운 여건이 있어도 옳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자원함으로 실행할 때 신앙은 자라가는 것이며, 이것이 건설구원의 모습입니다.

건설구원으로 자라가는 과정을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태아의 경우는 자기 스스로의 의식으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실행에까지 나아가는 일은 해당이 되지 않을 듯 보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나 야곱의 경우는 이방여인으로 예수님 족보에 올려진 사람들과 같이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②그러나 건설구원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자의사의 역할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공식을 설명하자면, 자의사(자기 생각)를 중심으로 위에서 말씀드린 과정들이 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을 하게 되면 우선 실행까지 가지 않고 마음의 결정에서 건설구원이 완료되는 사안들이 거의 10에 9가 되고, 실행으로 나타나야 건설구원이 되는 것은 10에 1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실행이라는 의미는, 마음에서 결정하는 마음의 행동까지를 포함한 의미입니다.

또한 마음 내부에서 말씀대로 사는 순종이 완료되는 경우도, 다시 자세하게 분석하면 알아듣고 결정하는 의사 진행 순서를 일일이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밟는 경우도 있지만, 순식간에 이 모든 내면 의식 과정이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태아의 경우, 육체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순종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건 반사를 분명히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의식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순종하는 면도, 그 의식의 발달 정도가 너무 미약하고 그 일련의 과정이 외부에서 관찰 할 때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일 것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없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있고 또 활동이 있지만 그 정도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 단순히 지렁이 꿈틀거리는 수준이겠으나, 건설구원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건설구원은 자의식의 강함과 그 순종의 결과가 커야 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하나님과 연결이 얼마나 순수하게 되어 있느냐는 것이니 이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신앙이란, 일반적인 통계와 기준이라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할 경우가 많다는 점을 덧붙여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뱃속에서부터 자라나온 신앙의 분위기를 너무 뼈 속 깊이 되뇌는 분들을 자주 접합니다. 남다른 깊은 신앙의 세계를 가진 분들을 중심으로. 현재는, 세상이 태아교육 차원에서도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입니다. 자연현상인데, 자연 계시로 참고할 문제 같습니다.


질문:2002-11-08 16:18:11 제삼자

우문 같지만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태아의 인체가 서서히 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가질 기본 구조와 기능을 발달시켜 가듯이 그 인체 내부에서는 그 의식 역시 기억 감정 양심 등 다방면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그 기본 동작을 갖추어가게 됩니다...)))

우문 같지만, 답변하신 내용 중에서 위의 내용을 본다면 태아가 인간으로서 건설구원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의식을 갖추는 시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점을 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잉태가 되면 그 즉시 한 인간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잉태된 그 즉시의 태아가 자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있다는 말인데, 위에서 답변하신 내용((("...태아의 인체가 서서히 분화되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질 기분구조와 기능을 발달시켜 가듯이...")))과 모순이 되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잉태가 되면 그 즉시 한 인간으로 보지만 잉태된 즉시의 그 인간에게 자의식이 있다고 과연 볼 수 있을까요?


답변: 2002-11-08 18:13:41 yilee [ E-mail ]

태아는 장소를 달리한,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교리입니다.

 

 

1.질문을 '우문'이라 하셨으나 '연구'일 것이고, 답변을 '정답'같이 내놓지만 실은 '연구'입니다.

항상 질문 위치에 글을 적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보다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하여, 그냥 일반 통용 표현인 '문답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질문을 '우문'이라 하셨으나 '연구'일 것이고, 답변을 '정답'같이 내놓지만 실은 '연구'일 뿐입니다.

이곳의 답변은 백목사님 설교에서 배운 기억이 많고, 20년 이상 그 설교를 직업으로 상대하고 있으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그 분 생전에 직접 문의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분이 없는 지금 그 분의 설교 세계에서 도출할 수 있는 답변을 안내하는 입장으로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인사말을 생략하는 편이어서 글마다 표시는 하지 않으나, 이곳의 모든 글은 자주 다녀본 길을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낯선 길을 문의할 때는 이곳도 이전에 그냥 지나쳤던 그 곳을 한 번 더 가서 살펴보는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길에 대하여는 모르는 바가 없도록 꾸준하게 '연구'에 매진한다는 것이 이곳의 기본 입장입니다.

2.태아의 자의식을 갖추는 시점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추론은 가능합니다.

자동차를 조립할 때는 2만여 부품이 저마다 따로 따로 준비가 되었다가, 한 자리에 모여져 조립되고, 완성차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엔진은 2개월 전에 완성된 상태로 때를 기다리게 되고, 바퀴는 어제 아침에 재료가 들어가고 어제 저녁에 완성되어 오늘 아침에 조립공장으로 배달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구성 부품에 따라 달리 진행되는 제작되고 조립되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적인 존재입니다.

몸의 눈은 온 몸의 인체 장기 전부와 연결이 되어 있고 나아가 몸과 마음은 어느 부분으로 도려내어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인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아픔이 몸의 고장으로 나타나고 육체의 고통이 마음의 스트레스로 밀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그 일체된 관계는 완벽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한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자라가는 것은 외부에 관찰되기는 따로 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각개 진행이 아니라 한 인격 존재로 진행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몸을 사람의 몸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기라면 그 마음도 사람의 마음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기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뱃속의 태아가 성인 인체를 기준 삼고 생물학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이 되기 이전 준비단계 정도밖에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태아로 존재하는 그 순간 완전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이후 뱃속의 10개월은 뱃속 밖을 나올 수 있는 준비 단계일 뿐입니다.

3.태아를 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영과 결합되는 시기입니다.

영과 육은 동시에 만들어지고 결합 되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뱃속 태아로 존재하는 시점입니다. 육이 먼저 만들어지고 영이 뒤에 투입되거나, 영이 먼저 선재하고 있다가 육이 준비 될 때 투입되는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이 뱃속에서 발달 과정을 겪고 있는 그 어떤 시점, 또는 출생되는 그 어느 시점에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존재하는 그 시점이 이미 사람으로 완성된 단계이기 때문에 영이 동시에 투입되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아란, 그 인체의 발달 정도와 수준 등이 어릴 뿐이지 사람으로서는 완전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몸과 영 사이에 있는 마음만 누락시켰다가, 태아가 출생할 때 만들어진다거나 아니면 그때부터 이제 활동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인체가 처음에는 점 하나로 출발하지만, 사실 그 점 하나 시절부터가 사람이며 그때 이미 영은 그 점 하나로 모여 있는 인체 속에 투입된 것입니다. 의식 역시 그 인체가 점 하나로 출발하듯 말하자면 그렇게 어리고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역시 그 의식도 점 하나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영과 육이 하나 되어 완전한 사람으로 출발하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보잘 것이 없어도, 심지어 현미경으로 관찰이 되지 않고 어떤 고성능 기계로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의 의식이라도, 중요한 것은 영과 육이 하나로 결합된 그 순간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은 단일성이기 때문에 분화되어 가는 성장과정이 없고 대신 그 기능 실력이 장성하는 것이고, 의식과 인체는 육이므로 외형상 여러 부분으로 모습을 갖추어가는 변화 과정이 많을 것입니다.

4.혹 실익이 없는 순수 이론 전개라고 보실 분이 계신다면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 갈 수 있느냐는 문답으로 시간을 보낸 신학계가 있었습니다. 혹 그런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 살펴보는 이 문제는, 한 사람의 구원 현장을 두고 적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태아가 뱃속에 생기는 순간부터 영과 육이 결합되고 그 육은 비록 아주 초기 형태라 해도 몸은 몸으로 마음은 마음으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필수요소를 갖추고 그 때부터 내부와 외부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모습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접하는 현실의 유일한 창구라고 할 수 있는 산모의 중요성을 너무도 중요하게 다시 봐야 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아이의 출발 시점을 모르기 때문에 결혼하는 부부를 비롯하여 아이를 가지게 될 부부들이 어느 시점부터 조심하고 살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도가니 속에 넣고 찌는 요리와 같이 그 모체는 그 출발하는 아이에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조심을 시켰지만, 삼손의 어머니에게는 삼손이 뱃속에 생기기도 전에 조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삼손은 그 뱃속의 태아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특별한 신앙지원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의 생명 중시는 개를 먹지 말자는 불신자의 자연 사랑 사상이지만, 우리는 건설구원면을 두고 조심할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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