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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교훈

일반질문용
작성자
111
작성일
2024.03.14

1. 요9에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전체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2. 이 말씀 해석도 부탁드립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9:4)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9:6-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9:41)

3. 왜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하셨는지?

감사합니다

 

 

 

 

전체 4

  • 2024-03-15 14:07
    또 하나, 마가복음 8절에 나오는 소경을 고치실 때는 예수님이 눈에 침을 바르시고 눈에 안수하셔서 그 눈을 뜨게 하셨고, 마가복음 10장 바디매오에게는 그냥 명령으로 눈을 뜨게 하셨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눈을 뜨게 하셨을까요?

  • 2024-03-15 14:14
    1. 요한복음 9장의 전체적인 교훈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통해서 가르치는 교훈은 위 3절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는 것인데, 특별히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기록해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41절에,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소경인가’ 할 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죄가 그저 있다는 말씀은 보지 못하는 소경이면서 보는 줄로 알고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죄 아래 있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인생도, 세상도, 사물도, 금생도, 내세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비로소 바로 보고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기록은 전체적으로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본다고 하는 것은 주관이며 착각이며 오판이며 마귀의 미혹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전부는 죄가 됩니다.


    2. 질문하신 본문의 해석

    (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낮이란 빛이 있는 동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을 낮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때이기 때문에 ‘때가 아직 낮’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절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일 즉 대속의 역사를 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일은 전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일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대속의 일입니다. 대속의 일은 예수님 혼자 하시는 일이지만, 예수님 가신 이후는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대속의 일을 이어 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한다고 복수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밤이 오리니’
    밤은 빛이 없는 어두움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세상은 빛이 있는 낮이지만 예수님이 없는 세상은 빛이 없는 어두움의 세상이 됩니다. 밤이 온다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은 밤과 같은 어두운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계시입니다. 지금도 예수님 모시지 않은 상태는 빛이 없는 어두운 밤과 같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일은 낮에 하는 것이고 밤에는 어두워 아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밤에 불을 환하게 켜고 일하지만, 원래 밤이란 일할 수 없는 때입니다. 여기 ‘일’이란 하나님의 일 즉 구원의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는 예수님을 직접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일을 하고, 예수님 가시고 난 다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셔야만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이든 부활하신 이후든 예수님이 계시고 모시면 낮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예수님이 안 계시면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예수님 가신 이후 사도들이 복음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으로 모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님을 모시지 않고는,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공부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그 무엇이라도 빛이 없는 밤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구원과 관련된 일은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6~7절)

    ‘이 말씀을 하시고’
    3~5절까지의, 소경이 소경으로 난 이유와 예수님 계시는 낮이라야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할 수 있는 것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을 기록했습니다. 진흙이 있는 땅에 예수님이 침을 뱉으셨습니다. 진흙은 하나님이 만들어 두신 자연의 물질이고, 침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침은 예수님의 요소인데 입에서 나온 것이니 예수님의 말씀 즉 진리로 해석할 수 있고, 진흙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현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흙을 침으로 섞으셨으니 모든 사람의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이고, 그 현실 속에는 예수님의 침 즉 진리가 들어 있으며, 이 진리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진흙을 침으로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셨으니, 현실 속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모든 뜻을 그 소경의 현실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침을 진흙에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고, 소경은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까 밝은 눈이 되었습니다. 소경에게 주신 현실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구주 예수님을 알아봤고 사람들을 바로 보며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눈을 뜬 소경의 모든 행적은 소경되어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논리로, 실제로 이겨버립니다. 예수님으로 눈을 뜬 보는 자와 아직 마귀에게 붙들리고 주관과 자율에 붙들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자들의 차이가 본문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경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있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전부 소경이 되었습니다. 대속주이신 예수님을 모실 때 하나님과 연결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눈이 뜨여서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연결은 자기 현실에서 예수님 말씀인 진리를 찾고 그 진리 속에 담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4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소경인가’ 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소경인데 소경이 아닌 줄 아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바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전부 사람을 구원하는 말입니다. 바로 듣고 바로 깨달으면 구원의 길을 가게 되는데, 진실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니 생명의 교훈을 듣고도 오히려 반발하고 비웃고 탈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소경이 소경인 줄 알면 조심을 합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안 보이니까 모른다고 합니다. 보지 못해서 모르면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배우면 됩니다. 소경되어 안 보이고, 안 보여서 모르는데 본다고, 안다고 하니 그 본다는 것 안다는 그것이 전부 거짓말이고 엉터리고 자타를 속이는 결과가 되니 전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소경이니 소경인 줄 알고 그렇게 처신하면 죄가 없는데,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죄가 그저 있다는 말씀은, 보지 못하는 소경이면서 보는 줄로 알고 그렇게 생각하고 인식하고 판단하고 상대하고 처리하고 말하고 있으니 그 자체가 전부 죄라는 것입니다. 본다고 보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라 못 보는 것인데, 다 엉터리인데, 주관이며 오판이며 착각이며 거짓인데, 그것을 보는 줄로 알고 본다고 하니 그이 모든 언행심사, 사리판단, 취사선택, 모든 관계는 전부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고 탈선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왜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하셨는가?

    안식일은 예수님 오시기 전 율법에 속한 날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구약의 어린 성도들에게 주신 어린 법입니다. 몽학선생이고 초등학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 오심으로 율법은 예수님 대속의 은혜 아래서 지키는 건설구원의 법이 되었습니다. 율법 중에 많은 날과 형식은 폐해졌고, 안식일은 날짜만 주일로 바뀌었고 지키는 내용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을 지키셨지만, 안식일은 사람의 구원을 위한 날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안 했다고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보면 그들도 안식일에 소와 나귀를 마구에서 끌어내어 물을 먹였고, 양이 구덩이 빠지면 건져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고 소경의 눈도 안식일에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며,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안식일이며 오늘의 주일이라는 것을 소경된 자를 안식일에 눈을 띄우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 2024-03-15 14:52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이유와 목적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라는 것, 소경된 자가 눈을 뜨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된다는 것, 예수님께서 눈을 띄워 주시는 방법은 현실에 담아 주신 진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할 때 눈이 뜨인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마가복음 8장의 소경은
    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그냥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손을 대셔서 고쳐주시기를 구했고, 눈에 바로 침을 뱉으시고 안수까지 하셨습니다. 1차로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셨고,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니까 만물이 밝히 보였습니다.

    이 소경은 자기가 눈을 뜨기를 소원하거나 노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데리고 온 사람이며, 한 번에 눈을 뜨지 못하고 안수를 두 번이나 하셨습니다. 믿음이 그만큼 어렸고 약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어릴 때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만큼 수고도 많이 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의 바디매오는
    소경이며 거지로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소경됨으로 인한 비참을 느끼고 있었고 그만큼 눈을 떠서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말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소경되어 보지 못하는 자기가 너무 비참했고, 눈을 떠서 모든 것을 바로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과 함께 자기 눈을 띄워서 보게 해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부르셔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고, 주저 없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디매오를 통해서 가르치는 교훈은,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과 그 간절한 소원의 정도가 주변 모든 방해를 능가해야 된다는 것과 모든 것을 바로 보는 눈은 주님을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눈을 띄워 주신 것은

    첫째, 하나님의 하고자 하시는 뜻에 따라 때와 장소와 형편과 방법을 그렇게 정하신 것이고,

    둘째, 각자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는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도 구원의 목적도 동일하시지만 각 사람의 믿음의 정도, 충성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대응 역사는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도 합니다.

    • 2024-03-15 14:54
      귀한 답변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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