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현 공회의 모습에 대한 감사함과 아쉬움의 토로

일반질문용
작성자
공회교인
작성일
2024.01.18

안녕하십니까? 

저는 30대 중반에 공회의 교훈을 접한지 얼마되지 않은 한 교인입니다. 본 사이트를 통해서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얻고 있어서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회이외의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했었고, 공회에서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사함과 아쉬움(안타까움)이 난립하여 항상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 공회에 감사한점은 글로 다 표현을 못하겠지만,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귀한 말씀과 교훈을 변함없이 지키고 전해주심과, 또 생활모습면에서도 이를 몸소 다 실천하심으로 말씀과 교훈의 산증인이 되시어 귀감이 되는 것에 항상 감명을 받습니다.

다만 아래와 같이 아쉬움(안타까움)이 있어 개인적인 생각의 토로와 공회 선배님들의 생각을 여쭙고자 합니다. 

 

첫째, 현 공회의 외형적 지속가능성의 아쉬움

저는 우리 공회의 교훈이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벽, 진입장벽이 너무 큽니다.

현재 각 공회마다 외형적 모습은 다르겠지만 당장에 남녀 분리배석, 개역한글 성경, 공회 찬송가의 문제 등 믿지 않는 교인이 느낄 수 있는 외형적 진입장벽 때문에 이 벽을 넘지 못하여 귀한 말씀과 교훈을 들을 기회 조차 가지지 못함을 많이 느낍니다.

이 때문에 공회별, 개교회별로 위 건에 대해 달리하고 있으나 그래도 대다수의 공회 교회모습이 이러합니다. 물론 선배님들께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연구하셨겠지만, 공회 분리 이후의 외형적, 양적 모습은 점점 작아져가고 있는 모습에 아쉬움이 큽니다.

외형적 모습은 작아져가고 있으나 우리의 내적 교훈의 밀집도는 더 클수도 있겠고, 많은 한국교회 보수 교회에서 우리의 뿌리 깊은 교훈을 또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씀전하기에 교훈전하기에 당장에 진입장벽이 있다면 이것을 좀 허물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데 벽이 없었으면 합니다. 

 

둘째, 현 공회 선배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혹시나 제 글이 무례하다면 젊은 친구의 어린 생각으로 보시고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회의 문제(법적분쟁, 분리문제 등)에 대해 각 공회별 지도자 분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시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감히 글을 적는것이 조심스럽지만 각자가 "옳다", "맞다"로만 시작되고 끝 맺어지니 아예 대화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사건과 시험이 있을 때 천하의 잘못은 결국 나에게, 우리 각자에게 있음을 궁극적으로 믿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내가 맞고 우리 각자가 맞다고 해야 할 것일까요? 현 공회 선배님들의 생각을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셋째, 현 공회 문제의 해결과 재정립은 젊은 세대를 위한 필수 과제

지금 공회의 젊은 친구들이 많지는 않지만 주님앞에 너무나도 귀한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음을 압니다. 이전에 공회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었고 현재도 있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 일 것 입니다.

교훈의 사유재산 문제나 공회의 집회장소 문제나 누가 옳고 틀리고, 다른지 판별하고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유익이 있고 무슨 덕이 있는지 감히 주님앞에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각 공회 지도자분들께서 나서주셔서 내가 맞다라는 말은 접어두고 각자의 불완전함을 인지한채 해결해야할 문제부터 좀 해결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교훈을 함께할 수 있다면 총공회를 이루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각 공회가 총공회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 정치적으로도 여야의 대립구조가 나라의 균형발전에 이바지 하듯, 우리의 각 뚝심있는 공회가 경쟁구도로 총공회를 이루어 나간다면 너무나도 한국교회와 보수신앙의 발전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분쟁과 분열의 역사가 아닌 화해와 회개의 길, 진정 아브라함의 길을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이글을 봐주시는 분께서 저에게, 또는 우리 공회의 젊은 교인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면 감사히 받아 신앙생활에 시험받지 아니하고 매진해 나가겠습니다. 제 글에 예의에 어긋나거나 무례한 점이 있다면 어린마음이라 보시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체 15

  • 2024-01-18 14:05
    1. 사이트의 가치
    어떤 분에게는 도움이 되고 어떤 분에게는 지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로서는 지장 되는 것도 결국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사람의 생각은 오류가 많습니다. 그래도 긍휼을 바라면서 일단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느낌보다는 구체적으로 이 곳의 오류를 콕 찍어 주시면 우리도 달리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여 늘 아쉽습니다. 이 번 글처럼 이렇게 적어 주시면 부족해도 격려한다고 읽습니다.



    2. 공회의 장단점
    공회는 역사적으로 늘 선명하게 걸어 왔기 때문에 정체성과 장단점이 명확합니다. 공회의 노선과 흐름은 교계에 소개할 만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에 속한 이 곳과 우리 모두는 선후천으로 당대 기준에서 미흡한 면이 많아 이 노선의 사람 때문에 이 노선이 너무 가려지기 때문에 '이 노선'과 '공회인'을 잘 구별하시면 질문자께서 연구와 신앙에 감사할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고, 질문자가 이 노선을 염두에 둘 때마다 스스로 조심해야 할 점도 함께 보여질 듯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곳은 이 노선의 원래 모습과 함께 이 노선의 부덕스러운 점을 최대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차마 읽기 곤란한 내용을 주신 점을 고려했습니다.



    3.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안내

    * 첫째, 현 공회의 외형적 지속가능성의 아쉬움

    <교훈 접촉>
    2018년 이전까지는 교계의 많은 교파로부터 이 곳의 자료 제공을 두고 너무 많고 쉽고 좋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2018년 이후 '저작권'이라는 울타리를 백영희 가족회가 만들고 경찰과 법원이 앞을 막고 있어 저희로서는 이미 데이타화 하여 교계에 전한 분량과 방법으로도 사실 충분하다는 점, 알고자 한다면 닿게 되어 있다는 현실적 접촉 가능성, 가족회가 제공하는 부산의 사이트 정도가 전부입니다. 교훈의 진입 장벽, 접촉에 아쉬운 점은 크지만 이 역시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감사하다는 이유를 이 곳에 여러 기회에 소개했습니다.

    <외형적 문제>
    남녀 분리, 개역 성경, 찬송가 등은 신앙의 본질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가 성경에 없는데도 한국 교회의 오늘을 만든 토대가 된 것처럼 공회의 토대적 중요성이 있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3가지를 중심으로 안내를 한다면 이 것이 문제가 된 것은 80년대부터이며 50여 년 지속된 논란입니다. 초기에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좋은 노선에 진입과 접촉이 어렵고 불리하다 했으나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신기하게 또는 기대를 하고 오는 분들이 계셨고 전국의 공회 교회들이 이 문제로 대처한 결과를 놓고 보면 80년대와 90년대에는 장벽이 된다는 분위기가 대세였으나 2000년대와 이후 갈수록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 되는 면이 많습니다.

    공회 내부에서 장벽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한 교회들은 현재 공회 노선 자체를 부정하고 일반화가 되었거나, 공회 정체성을 유지하는 경우 교세가 너무 축소가 되어 있습니다. 장벽의 문제점을 떠나 신앙의 노선 때문에 유지해 온 곳은 세월 속에 외부에서 찾는 분들이 오히려 늘거나 외부에 적극 소개를 해서 갈수록 그 효력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안내가 필요하면 별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신앙의 내적 중요성 때문에 외부의 진입을 희생한다고 생각했으나 그 반대였습니다.



    * 둘째, 현 공회 선배님들의 생각이 궁금

    <분쟁 대신 대화>
    공회의 교훈의 전반을 좀 살펴 보셨다면 공회는 분쟁에 대해 극단적 해결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진리는 목숨을 바치며 양보하지 못하나 교회마다 목회자마다 교인마다 사안마다 다를 수 있는 문제는 대화만 하지 어떤 강제나 분쟁도 일어 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공회의 내면을 알고 주요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자기 주변에 '나는 대화를 원한다. 상대가 도저히 저렇게 분쟁적이니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모든 공회들이 다 그렇습니다. 이 곳이 아마 가장 폭넓게 공회들을 내를 접촉하고 있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그런 입장입니다. 문제는 각자 자기가 지도하는 교인들이나 자기가 발언해야 하는 공회의 모임에 나가면 갑자기 발언이 달라 집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정말 그런지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과거에는 불가했으나 지금은 온라인, 실시간, 동영상 등의 실제 확인이 가능합니다. 내부 이야기를 외부에 무조건 비공개 하는 곳의 이야기는 믿기 어렵습니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만나, 인간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인본이라고 비판하고 산속에서 기도하고 말씀 연구로 결판낸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 공회나 각 교회도 내부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피할 때 또는 객관적으로 3자의 주선을 피할 때는 경건적 자세를 지킨다는 교훈 속에 숨는 것인지, 각 교회나 각 공회의 내부인은 소속 쪽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기술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각 공회의 자기 입장 한 줄만 발표하게 하고, 각 교회나 목회자나 교회 내 이견에는 교인 사이에 그렇게 해 보면 압니다. 두어 번 맞춰 보면 바로 해결이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이 있다면 밝혀 지고, 각자 그러니 각자 자기 길을 가도록 둬야 할 문제라면 그렇게 바로 드러 날 듯합니다.

    <잘못에 대한 자책>
    공회는 자기가 잘못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교훈적 책임이 무한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완전 포기하지 않고는 자기 잘못이 있다 해도 밝히지를 못합니다.

    '*둘째, 선배의 생각'에 대해 답변자 입장만 적었고 이 부분은 댓글에 이어 가며 누구라도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선배여서 답하고 후배여서 여쭙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 좋겠습니다.



    * 셋째, 공회 문제의 해결과 재정립에 젊은 세대

    <저작권 문제>
    이 곳의 인원은 목사님 자녀들보다 이 노선 자료가 더 많아서 저작권 시비에 처음부터 불편이 없었고, 인간적으로는 가족들이 막아 주면 저희는 희소성의 가치 때문에 더 유리합니다. 그러나 너무 소중한 자료이고 또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세상의 돈 싸움처럼 보여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습니다.


    <집회 장소 건>
    저작권과 마찬 가지로 저희는 총공회 전성기에 1만 5천 명이 회집하던 장소보다 나은 곳을 별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100%를 다 가질 기회가 와도 각 공회 별로 교회 별로 나눌 것이고 저희는 규모 때문에 저희 수익은 미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30년 만에 저희가 할 수 있는 기회가 객관적으로 주어졌고, 그래서 저작권 때처럼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이 노선 역사를 통해 이 번 집회 장소 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고 그 때마다 저희는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명확한 때 최소한 만 했습니다. 이런 것은 이 노선의 공적인 업무입니다. 세상과 달리 이런 공적 업무는, 훗날 주님이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할 일은 해 놓을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공회 역사를 아는 분들에게는 손바닥 보듯이 쉽고 명확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분들은 누구 설명을 듣느냐에 따라 여야가 나뉘고 남북이 나뉘고 미중이 나뉘듯이 복잡할 듯합니다. 가장 좋기는 공개 토론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하면 되지만, 공회들이 한사코 극비 접촉만 원하고 그마저 계속 입장을 번복하기 때문에 저희는 공회 이름에 관련 된 분들에게 알릴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최소한은 발표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조정>
    불신자도 처음에는 모를 때 분쟁하다 겪고 겪고 겪고 나면 대화로 합니다. 그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로지 나만 옳고 상대에게는 옳을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해 버리면 대화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것이 공회처럼 좋은 노선에 지도부가 된 사람들의 성향입니다. 고신이 그렇고 재건교회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좀 괜찮은 곳은 거의 다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은 훗날 이 노선이 그렇게 될까 싶어 초기에 노선의 방향을 바로 잡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질문이나 혹은 저희에게 없는 말로 비판을 한다 해도 이 노선에서는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8년 이 곳이 사이트를 개설하자 모든 공회들과 대형 교회들이 일제히 교회 게시판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저절로 공회가 하나 되고 모든 문제가 간추려 질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두가 비공개로 다 돌아 섰습니다. 교회란 공개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덕이 되지 않는다고 덮으려면 성경에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혐오적이고 자극적인 표현과 모방 범죄가 될까 싶어 비공개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불신자에게 도저히 복음이 전해질 수 없고 어린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공회는 성경 하나로만 출발한다 했으니 공회의 공개와 비공개, 대화와 타협 불가도 일단 함께 의논하는 것이 맞습니다. 질문, 또는 지적하신 이런 글을 출석하는 교회와 소속 공회 내부에서 제기한다면 아마 효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떳떳하다면, 우리 공회가 옳다면, 왜 이렇게 하고 있느냐? 주님만 바라 본다면 다 넘기고 가지 않으면 됩니다. 옳기 때문에 현장에 개입을 했다면 분쟁 대신에 대화를 먼저 촉구해 보시라 하면 됩니다. 이 곳의 입장은 이 정도로 적어 봤습니다. 이 질문은 질문의 성격상, 각 공회나 다른 입장에 계신 분들이 댓글에 알아서 적으면 될 듯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 오면 출석 교회나 소속 공회 사이트에 가서 내부 의견으로 적으시라고 했습니다. 현재 그렇게 운영 되는 곳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여 우선 이 곳의 입장을 적어 봤습니다.


    지나 가는 나그네라도 누구라도 대화적으로 적어 주시면 이어 가겠습니다.

  • 2024-01-19 18:28
    말을 하는 부분에서 늘 조심하여야 하는것이 성경적이라 배웠지만, 총공회의 늘 한결같은 답변에 총공회에서 신앙생활한 젊은 세대로써 한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pkist 사이트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자신의 신앙의 언행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고칠점을 발견하고 좋은점을 받아들이도록 많은 역할을 하는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서 총공회 모든 분들이 답변하는 내용들을 보면, 총공회의 그런 특수한 교훈과 교리
    행정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고, 그것을 알게 된다면 감사할 일이 많고 총공회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게 될것이라는 답변들이 대부분 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로써 감히 드리고자 하는 말들의 요약된 내용은, 대구공회 서울공회 부산공회1,2,3,4 기타 등등
    이렇게 총공회가 여려개로 나뉘어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주장하는 총공회가 백영희 목사님 사후부터 지금까지 그런 모습으로 지내왔기에, 변질되어 가는 총공회의 문제점은 간과한체 이제는 대화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지만,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발언이 달라진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하시면서
    최선의 노력은 다하고 있으나 어쩔수 없다는 답변만 하는 총공회로 보여집니다.

    실질적으로 총공회의 특수한 교훈과 교리에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앞선세대에서 현재 시대에 살아가는 세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접근법을 연구해야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일수 있는 기회가 될것인데, 아직 잘 몰라서 그렇다 세밀하게 접근을 하면 그 가치를 알게 될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본인이 알아서 깨닫기를 바라는 앞선세대의 답변들은 무책임하게 느껴집니다.

    위 글을 쓰신분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제가 쓰는 의견은 이렇습니다.

    1. 총공회의 교훈과 교리 그 본질을 이해하도록 앞선세대가 현 시대에 사는 세대에게 접근할수 있도록
    접근법을 제시해야 한다.

    2, 외형적인 총공회의 모습만 앞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총공회의 법이 있어야 한다.

    1번은 더 많은 교인들이 총공회의 가치를 알고 접근하여 열심히 총공회에서 신앙생활 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며, 2번은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잘못된 방법으로 가지 못하게 감사 역할을 하는 실질적인 법을 통하여 옳은 총공회의 행정과 제도대로 계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들이 총공회에 대한 감사한 부분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아쉬운 부분으로 총공회가 많은 발전이 있고, 그 가치를 알고 많은 사람들이 총공회에서 신앙생활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4-01-19 20:59
    (공회를 이해하는 접근법)
    * 1. 총공회의 교훈과 교리 그 본질을 이해하도록, 앞선 세대가 현 세대에게 접근법을 제시해야 한다.

    칼빈주의 신앙은 공회를 제외하면 5백년 동안 개신교의 제일 중심에 있습니다. 칼빈이 남긴 기독교강요가 핵심인데 대략 2천쪽에 이르는 교리서인데 제가 접해 본 주변의 신학자들 중에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칼빈이 너무 심오한 학자여서 쉽게 적는다고 해도 일반 신학자들이 초보 이해도 어려워 합니다. 이것을 더 쉽게 풀어 본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라고 하는데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총공회의 교훈과 교리의 본질은 역사의 많은 교파들 또 현존하는 여러 신앙 노선들과 비교하면 너무 쉽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보다, 성결교보다, 침례교보다, 성공회보다, 장로교 내의 이런 저런 쪽은 더 잘 알고 있는데 확실히 너무 쉽게 간략합니다. 설교록 검색을 통해 거의 모두 파악이 되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검색이 쉽게 잘 되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려워 할 분들을 위해 이 곳에서 90년대부터 노력은 해봤습니다.

    공회를 전혀 알지 못하던 외부인들로부터 많은 반응을 접해 봤습니다. 대개 쉽다, 확실하다, 다만 실천이 어려워 아쉽다.. 이런 반응이 학생이든 목회자든 어느 교파 출신이든 거의 같았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본질에 대해 너무 쉬워서 배울 것도 없다는 반응이 1980년부터 수천 곳이 넘는 방문 교회들과 대표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현 세대라 하면 20대를 중심으로 살핀다면 무난할 듯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 주시면 실제 예를 들면서 설명해 봤으면 합니다.
    사실 설교가 은혜 되지 않는다고 하면 설교자로서는 할 말은 없어야 정상입니다. 이해가 어렵고 본질에 대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하신 이상, 그 동안 노력한 것이 거의 최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 곳에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떤 접근법을 구체적으로 원하실까.. 역시 궁금한 것은 같습니다.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드려 봅니다. 더 구체적으로 사례를 좀 들어 봐 주셨으면.




    (총공회의 법이 실제 필요한가)
    * 2, 외형적인 총공회의 모습만 앞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총공회의 법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회에는 실제 운용이 가능하고 검증이 된 법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거나 서로 차이가 있다며 논쟁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공회든 여러 경로로 내부 자료와 대화와 발언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해방 후 남북의 자유민주제도와 공산사회제도를 두고 어느 것이 좋은지 사실 판별이 나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후는 명확해 진 것처럼, 공회도 2000년대 이후부터는 공회의 법, 공회의 운영 방향.. 등은 아주 명확해 졌습니다.

    다만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공회의 정체성' '공회의 노선' '공회의 법'은 더 이상 혼란이 없지만, 실제 그 원칙으로 운영을 하는 것은 교회나 공회 별로 사정이 어려워 집행의 정도만 다를 뿐입니다. 군인이 기초 체력과 단체 협조와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적을 향해 공격한다는 원칙은 정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초 체력을 갖추지 못한 군인은 있는 법이고, 성격 때문에 협조가 되지 않아 내부 분란도 있는 법입니다. 또 적을 향해 공격을 해야 하는데 막상 쉽지 않아서 주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 공회의 최고 지도부들 또는 그 주변 분들과 세월 속에 서로 허물 없이 대화할 기회는 많습니다. 원칙과 마음과 대화는 아주 좋습니다. 다만 교회나 목회자 별로 적용의 정도 차이는 확실히 발견되는데, 이런 경우 안타까움은 표시할 수 있으나 막상 어디를 딱 찍어서 비판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기 현실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시하신 구체적 방안들)
    *1번은 더 많은 교인들이 총공회의 가치를 알고 접근하여 열심히 총공회에서 신앙생활 하도록 만드는 방법

    오늘은 어느 사회든 어느 종교든 또 교회 내부의 어느 교파든 만사가 다 어렵습니다. 그런 형편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공회들은 어느 공회든 비슷한 주변과 비교하면 나아 보이는 면들은 저희가 파악하고 있습니다. 공회들 중에 저희가 규모는 확실하게 작지만 교계를 두루 깊이 접할 기회는 의외로 많습니다. 더 좋은 기회를 서로가 놓친다는 것을 두고 탄식하는 것이지 그래도 내면, 단면, 양면을 차분히 살펴 보면 이 노선이 우수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유지한다고 느낍니다. 공회 기준을 가지고 타 교단을 분석하면 너무 허무할 정도입니다.



    * 2번은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잘못된 방법으로 가지 못하게 감사 역할을 하는 실질적인 법을 통하여 계도

    공회는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또 서로 다를 때는 비교하고 설명하는 것까지만 하기로 약속하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 이상은 원래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틀린 길이라도, 실제적으로 간여를 시작하면 종교 분쟁을 피할 수가 없고, 신앙의 분쟁이란 힘에 의해 지는 수는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2024-01-20 00:26
      답변 해주신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접근법을 설명하기 이전에, 총공회의 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내용부터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자신있게 설명하실수 있다고 하신 내용에는 공회의 노선과 법은 혼란이 없으나, 실제로 그 법대로 운영하는것은 공회별로 사정이 어려워 집행의 정도가 다르다, 막상 딱 어디를 찍어서 비판하기는 어렵다,
      대화할 기회는 많다 라고 주장하시는데,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대구공회 서울공회 부산 1,2,3,4 등 이렇게 분열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회의 노선과 법에는 혼란이 없는데, 법대로 운영하는 사정이 어려워 집행의 정도가 다르면 어쩔수 없는 부분입니까? 결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수 없다는 핑계만 대면 공회의 노선과 법에 조금 어긋나더라도 용서가 되는 부분 아닙니까? 대화가 정말로 가능한 것이라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라도
      하나로 공회가 뭉쳐서 제대로된 총공회를 운영해야 되는것이 아닌가요?
      막상 대화하려면 발언이 달라진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도, 결국은 노선과 법에 대한 개념은 확고하게
      가지고 있지만 지키지 못해서 그런것 아닙니까? 세상에도 법이 있듯이 공회의 노선과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라면 징계를 하든 공회의 소속되지 못하게 하던지 제지하는 법과 행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확실한 법과 행정이 존재하지 않기에 아직도 대구공회 부산공회 1,2,3,4 등 서로 분열되어서 아직도 니가 틀렸고, 나는 옳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하려고 하는 양상을 띠게 되는것 같습니다.

      접근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려면, 위에 말했던 제대로 총공회를 운영하는 법과 행정이 있다고 가정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접근법은 일반교회처럼 속화 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총공회도 일반교회의 좋은점은 받아 들일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반교회도 대형교회들이 유지되는 교회들은 어떻게 그렇게 유지가 되는지 참고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찬송가 같은 경우도 막 요즘 세상 유행가처럼 변질된 ccm 같은곡 총공회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통일찬송가나 새찬송가등 요즘 시대에 만들어진 곡은 아니지만, 총공회의 경건한 분위기에 맞는
      옛날 복음성가 등 좋은 찬송가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찬송가를 예배시간에 사용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성경에 대한것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역한글판만 굳이 고집해야 하나? 사실 개역한글판은 고어체도 많도 성경적인 용어나 내용상 문맥이 맞지 않다던지 초보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은 더욱더 이해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이런 부분을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대로 성경을 이해시킬수 있도록 별도의 성경 전체를 상세하게 분석한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에배 분위기등 각종 행사하는 것도, 총공회가 지향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선에서 일반교회가 하는 분위기나 행사도 참고해서 허용할수 있는 부분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하는 부분도 딱딱하게 옛날 시절과 같이 한다면 했던말 또하고 또하고 이렇게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잘못된 것이다 잔소리하고 기도합시다 하는 딱딱한 설교등등

      찬송가, 성경, 예배 분위기, 행사, 설교내용 등등. 물론 총공회가 지향하는 교훈과 노선에 맞게 해야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며, 세상을 보아도 대인관계가 되려면 다른사람의 잘못된 점은 보고 스스로 저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하는 점이 있으면 보고 내 자신도 저렇게 잘할수 있도록 참고 하듯이

      총공회가 후대의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하나하나 더 많이 깨우치고 그 가치를 알게 되어 총공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할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하는데,
      총공회만의 법이나 행정이 혼란을 주는 개념없이 잡혀있다고는 하지만, 서로 분열되어 있고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아직도 밥그릇 싸움하는것 같은 총공회의 운영실태도 그렇고, 찬송가도 딱 201곡에서만 사용하고, 성경도 개역한글판, 예배 분위기는 정말 딱딱한 잔소리 같은 설교를 1시간 이상 듣고 있고, 행사 같은것은 일절 없는 지금 시대의 사람이 도저히 접근하려고 해도 접근할수 없는 그런 환경들이 조성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2번의 계도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관여를 시작하면 종교 분쟁을 피할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필요가 없다. 이말씀이 결국은 실질적인 총공회의 법이나 행정은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가 되고, 법이나 행정이 과거 70-80년대 시대에 적용했던 것처럼 그런 법대로 쭉 유지하는것이 무조건 적인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법과 행정에도 그 법과 행정의 본질을 흐리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것은 과거이나 현재에 적용할수 있는 대상이나 범위에 따라서 새롭게 추가하는 법이나 행정도 생기며, 기존에 만들어진 것중에 수정되는 것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없애는 것도 생기는 것처럼,

      무조건 토시하나 안틀리고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죄다. 총공회의 본질이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면
      2번에서 말씀하듯이 실질적인 법을 통하여 계도는 당연히 안될것이고, 아무리 총공회가 대화를 하려고 해도 첫번째 답변에서 말씀하셨듯이 막상 대화를 하려고 하면 발언이 달라진다. 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총공회가 잘못된 부분을 수용하고 좋은점은 받아들이려고 하는 준비가 안되어 있기에, 평생 대구공회 서울공회 부산1,2,3,4 이렇게 나뉘어서 너는 너대로 하고 나는 나대로 하겠다
      이렇게 된다면 내가 말하는 총공회의 본질이 맞는 사람 끼리만 우리가 총공회 입니다. 라고 할뿐
      무엇이 진정한 총공회고 지향하는 교훈이나 노선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접근법을 설명드린것은, 이제는 총공회도 일반교회의 단점은 더더욱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각별하게 유의 할수 있는 법과 행정이 당연하게 있어야 하며, 일반교회의 장점은 총공회의 노선과 교훈을 이탈하여 세상중심으로 가는것이 아니라면, 받아 들여서 개선할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 시대에 사는 저희같은 신앙인들은, 어떻게 하면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지켜나가면서
      현재 시대에 그 신앙을 버리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수 있는지, 먼저 선대에 신앙생활 하셨고, 그동안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대로 살아오신 신앙선배님들에게 질문을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깨우치고 현재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현재 시대에서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하셨기에
      아무리 질문을 하고 공감해주며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원하여도,
      총공회가 닫혀있는 마음가짐이라면, 현재 시대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후대 세대에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것이고, 후대 세대들은 점점 총공회를 멀리하게 되는 시대가 다가 올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신앙선배님들도 똑같이, 선배님들의 선배님들에게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언도 받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신앙선배의 위치에 오신것이 아닙니까?

      지금 시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급변하고 달라졌기 때문에 신앙선배님과 저희 후대의 신앙인들의 간극이 너무나도 큽니다. 접근법을 설명한 것도 후대 세대에게 총공회의 노선과 교훈을 잘 지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접근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인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원문 글을 쓰신 공회교인 님의 글의 마지막 부분중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와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분쟁과 분열의 역사가 아닌 화해와 회개의 길, 진정 아브라함의 길을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후배 세대인 저희들은 총공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신앙의 원동력을 잃게도 하며, 신앙생활의 의미가 있나 낙심하게도 합니다.
      무조건, 자기중심이다. 마귀가 역사해서 그렇다. 비판적으로만 잘못되었다 말씀하시지 말고
      지금 현실에서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적용할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 2024-01-20 09:27
    (대구공회 서울공회 부산 1,2,3,4로 분열된 이유)
    * 노선과 법에는 혼란이 없는데, 사정이 어려워 다르면 어쩔수 없는 부분입니까?

    서울공회는 총공회를 정식 탈퇴한다며 선언을 하고 이름과 법과 명칭까지 다 변경했습니다. 공회의 출발 정신이자 노선의 정체성이 '무헌법, 성경법 원칙' '다수결 금지, 전원일치 결의' '교권직 금지, 공회장은 단순 사회나 대표 명의 사용'으로 내려 왔는데 1994년? 헌법책을 정식으로 공표 발간했습니다. 연구소 이 곳의 주소록에 서울공회 이름과 소속을 모두 삭제해 달라고 사무실로 직접 연락이 왔음에도 이 곳이 언젠가 돌아 올 소망 때문에 굳이 적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서울공회를 좇아 1990년 3월에 나갔다가 10여년의 혼란으로 수없이 분열과 부분 통합과 부분 회귀와 부분 재분열을 거친 다음에 현재 총공회 200여 개 교회 중에 80개 정도가 결집하였고 공식 사이트를 통해 총공회에 대한 인식과 발표를 선언하는 바, 이 곳의 총공회 정체성 발표와 정확히 일치하는 선언문을 싣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객관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산공회들은 1989년 9월의 첫 교역자회 때부터 서로가 3대 원칙을 비롯하여 모든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고 서로 상대방이 교계로 일탈했다며 비판해 왔습니다. 2018년까지 운영된 구 사이트에서 분쟁 가운데 발표된 수많은 발표문 전단 및 활동의 언행 일지가 완전 공개 되어 있습니다. 그 자료가 너무 많고 현재 사이트는 새 운영 체계로 전환 되는 과도기여서 아직 다 싣지는 못하고 있으나 자료가 전면 공개 되었고 넘칩니다. 집행 절차에 서로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고 하지 법 자체 체계 자체 정체성 자체를 두고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콕 집어서 비판을 하자면 1992년 11월에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에서 불신임을 받게 되자 '시무투표 제도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서 목사님 지지측 간부 전부와 1천여 명 이상이 연명 날인하고 발표문을 공개했고 이 곳에도 과거 그 자료를 제공했으나, 이는 공회가 아닌 서부교회의 일부가 당시 화가 나서 했다고 넘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입니다.

    부공3, 이 곳의 경우는 공회들 사이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절차 없이 그냥 제명을 당한 경우인데 싫어서 제명한 것이라고 치면서 그들의 모임이 싫다면 굳이 들어 가서 또 분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지켜 보고 있을 뿐입니다. 서울공회와 대구공회에서 2차례 제명 당했고, 부산공회들이 3차례 제명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쪽 간부들과 만나면 그 때를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분쟁이나 넓게 보면 이 곳이 불편했다고 이해를 해 드렸습니다. 이 곳에 적는 글은 시간만 주시고 하나씩 찍어서 구체적으로 추가 설명을 부탁한다면 얼마든지 자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 공개로 운영하며 어떤 제한도 이 곳에 없습니다. 서로 체질이 달라서 그렇지 이 노선 자체에 대한 내면적 가치관은 같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지난 달에도 부공3의 대표와 서부교회가 속한 부공2 측의 대표 2명이 만나 장시간 대화를 했습니다. 그 쪽의 내부에 강경파가 있어 대화 추진이 어려우니 이해 해 달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결론은? 모두 교회들과 공회들이 내부 결정 중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공개해 버려도 바로 다 정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천주교가 공개 운영되면 천주교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타 교단들이 비밀 회의를 보장하고 유지하지 못하면 그 교단이 버티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온갖 나쁜 일을 했고 공회가 1959년에 고신으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되자 공회는 아예 첫 출발부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운영했습니다. 따라서 공개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공회의 원칙도 인정하면서 공회적이기를 노력하는 곳이라 보시며 되고, 공개를 하지 않고 철저히 다 가루고 있는가? 그렇다면 공회의 원칙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운영에서는 뭔가 고장이 생긴 것입니다. 그 고장을 나쁘게 비판하려면 질문하신 분의 비판보다 더 나쁜 현상이 나올 것이나, 크게 본다면 그 것도 자라 가는 성장통이라 봐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십대가 부모를 욕하고 가출을 한다 하고 자살을 하겠다고 설칠 때 그 나이에 모두가 그러다가 제 자리에 돌아 오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어른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최대한 떼어 놓고 봅니다. 경험이 없는 부모는 죽기살기로 해결하려 나서지만 그런다고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경험 하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여러 개 가지면서 주변에 알고 보니 가정마다 대개 그렇다는 정보를 취합하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 이 질문이 공격적이었다면 아주 원색적으로 드릴 자료와 표현이 많으나, 공회를 위해 잘 되기를 원하고 적는 지적이어서 답변도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 결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수 없다는 핑계만 대면 노선과 법에 어긋나더라도 용서가 되는 부분 아닙니까?
    이 것은 각 공회와 각 교회의 내부에서 자기들의 지도자나 중심 교인들에게 제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대구공회는 총공회 3대 원칙은 지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공식적으로 하나씩 번복도 합니다. 그런데 찬송가나 시무투표의 경우는 1990년 이후 아주 폐기했습니다. 이유는 많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를 만들 때 모두가 그 이유들을 손꼽아 가면서 오해일 뿐이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어느 날 변경을 해버렸습니다. 이제 35년이 되는 상황이다 보니 찬송가도 시무투표도 원래대로 돌아 오고 싶으나 전원일치로 돌아 와야 한다는 원칙에 걸려 일부는 돌아 가자 하고 대부분은 주저하고 있을 것입니다. 부공1과 2는 대구공회와 함께 수십 가지 소송을 벌였는데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 곳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를 했고 그 발표를 두고 저녁 7시에 개최 된 회의가 교역자회에서 밤 12시를 넘기면서 모두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확인까지 하고 끝이 났습니다. 끝이 난 것을 송종섭 목사님과 이재순 목사님이 이미 받은 서류가 있으니 그대로 한다고 처리 해 버렸습니다. 나머지는 안 된다고 해 놓고 그냥 지켜 봤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사실이며 역사이며 기록입니다. 어떻게 하겠느냐? 돈이 얼마짜리인데... 또 저 어른이 하겠다는데 어떻게 두고만 보겠느냐... 등등일 뿐이었습니다.



    * 대화가 가능한 것이라면 지금에라도 공회가 뭉쳐서 총공회를 운영해야 되는것이 아닌가요?
    질문하신 분이 소속 교회 목회자에게 또는 공회에게 그렇게 물어 보시면 어디에서 고장이 났는지 바로 확인이 됩니다. 소속 목회자가 이 곳과 다른 말씀을 하신다면, 그리고 질문하시는 분이 정말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면, 타 교단은 불가능하나 공회는 가능하도록 길이 열려 있습니다. 공개 질문이 어려우면 비번을 걸고 질문해 주시면 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소속 목회자가 말은 맞지만 나는 싫다.. 한다면 그 분이 틀린 것이고, 이 곳의 설명에 어느 부분이 틀렸다고 짚어 주신다면 이 곳에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양측의 이견은 두 번만 번갈아 가며 기회를 주시면 이 정도의 글을 적는 분이면 바로 판단이 나올 듯합니다. 한 교회의 한 교인이 이의를 하면 그 목회자는 공회에 나가서 교역자회나 노소원위원회나 총공회 회의에서 자기 교회가 전원일치로 결정하지 않은 것을 찬성하고 오지 못합니다. 한 교역자만 찬성하지 않고 보류시키면 그 공회의 결정은 전부 중단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공회 원칙에 틀린 결정을 교회도 공회도 하지 못합니다. 한 교인이 눈을 뜨면 해결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곳을 공회라 합니다. 이렇게까지 길을 열어 놓았는데도 주저한다면 그들과 동참한 것이 됩니다. 다 그렇고 그렇고 그렇게 하다가 각 공회들과 각 교회들이 오늘처럼 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지나 갔습니다. 예를 들기는 쉽습니다. 백영희 설교록이 유가족 자녀만의 사유재산이라고 고소가 들어 왔을 때 각 공회는 고소자 측을 도왔습니다. 어느 공회에서든 어느 한 교회에서든 한 사람만 그럴 수 없다고 나서면 되는데 모두가 몰랐다고 합니다. 알았지만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그런 소문에 자기를 가루고 숨었습니다. 목회자들 수십 명이 각목을 들고 난타전을 벌인 이야기까지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그 때 침묵한 교인들이 공범입니다. 그 때도 공회 원칙을 각목으로 깨지는 않았습니다. 각목으로 상대방만 뚜드렸을 뿐입니다.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또는 잘못 교육을 받아 오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곳은 각목을 들고 난투극을 벌여야 할 사안이면 일단 미뤄 놓고 기도하며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이 곳은 제명을 당하는 이유가 또 더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수십 년 진행 중인데 지금 스스로 젊은 사람이라고 표시하면서 이 곳에 질문을 하는 것도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만, 그렇다 해도 세월과 사건이 너무 복잡해서 보다 간결하게 파악하기 위해 적었다고 생각하며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적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분들이 많을 듯해서 그렇습니다.

    6.25 전쟁에 왜 남북은 형제에게 총을 겨누었는가?
    북한에서 그 말을 하면 바로 사라질 듯합니다. 남한에서만 그런 말이 한 때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남한이 북한을 먼저 침공해서 전쟁이 생겼다는 주장이 대세를 장악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전쟁 후 세대가 우리는 그 때를 살아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한다, 왜 대화로 해결하지 않느냐며 순수한 마음으로 남북의 대화를 추진하려고 평양을 방문한 대학생 대표도 있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다시 더 지났고 이제 북한이라는 저 요상한 단체를 어떻게 해야 해결을 하겠는가 이 문제로만 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금은 남한 내 어느 인간도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양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이 이 나라 대세를 휩쓴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양심이 있는 이들은 전향을 했고 양심이 없는 이들은 때를 따라 논쟁의 주제를 바꿔 가며 계속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적은 분들은 최소한 사실 파악에 중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어느 사건에 어느 쪽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도 알아 봤으면 합니다.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 막상 대화하려면 발언이 달라진다 라고 부분
    대화로 해결하자고 서로 의논을 했고 헤어 졌는데 돌아 가서 자기 소속 공회 목회자들에게 의견을 내자 대화는 무조건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 쪽으로 연락이 옵니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다른 공회의 내부 조사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곳 사이트는 모든 공회들이 은혜가 되지 않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흔합니다. 막을 수도 없는 시대지만 교역자회에서 대놓고 이 곳을 방문하는 분들을 단속하는 이야기는 1998년부터 최근까지 들어 왔고, 공회들의 최고 대표 입에서도 들어 봤습니다. '어느 부분 때문입니까?' '나를 비판한다고 들었습니다.' '비판한 글, 그 글이 제기 된 앞뒤를 읽어 보셨습니까' '.................' '오히려 극찬을 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러고 이런 질문이 있었고 이렇게 저렇게 진행이 되었으며 그 내용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으니 검색을 해서 전후좌우를 다시 확인 후 연락해 주시지요. 만일 정말 괜히 또는 복음 운동에 해되는 비판이나 글이 있었다면 사이트 전면에 공개 사과를 큼직하게 할 것입니다.'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 노선과 법에 어긋나면 징계를 하든 공회의 소속되지 못하게 하던지 제지하는 법과 행정이 있어야 한다..
    2014년에 대구공회가 아버지 설교는 아들의 사유재산이라고 고소를 했다가 대구공회로부터 제명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명 된 분이 거창지방법원에 손배 소송을 억 단위로 청구하자 대구공회는 소송한 분의 소송만은 해도 된다고 합의를 해 주고 고소가 취하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 곳 사이트에서 다 공개를 했던 일입니다. 소송 금지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억 단위의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 오자 중간에 멈춰졌습니다. 그 사정은 그 공회가 알아서 해야 하지 이 곳에서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징계나 제명에 나서려면, 교권을 쥔 쪽에서 상대방을 모두 다 배제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스스로 탈퇴를 하면 탈퇴 했다는 확인을 하고 이름을 빼지 상대가 버티는데 제명하지는 않습니다. 제명, 처리, 징계라는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나라 대장동 사건에서 보듯이 끝도 없이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사람과 마주 앉는 것이 이미 종교 분쟁만 하겠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공회는 최선을 다해 설명은 하지만, 도무지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으면 훗날에 미루고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의 방법을 공회로서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질문자께서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많은 면으로 생각해 보고 제시해 보셨으면 합니다.


    *확실한 법과 행정이 존재하지 않기에 분열되어서 틀렸고 옳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하려고 하는 양상을..
    확실한 법과 행정이 있으면, 그 법과 행정의 해석을 두고 또 끝없이 분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회는 교회 일을 가지고 서로 다를 때 서로 대화해 보고 서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론을 내리지 않고 각자 알아서 하도록 그냥 기다릴 뿐입니다.





    (접근법)
    * 일반교회처럼 속화 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총공회도 일반교회의 좋은점은 받아 들일수 있어야 한다..
    공회는 일반 교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은데, 공회는 일반 교회의 좋은 점을 너무 많이 받아 들여 왔었습니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신년행사에 세례 성찬을 하는 것도 일제 때부터 하던 일반 교회들의 관습입니다. 우리의 찬송가도 그렇고 개역성경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더 나쁜 것으로 바꾸는 바람에 우리는 그들에게 배운 것을 가지고 있게 되고, 그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을 다 없애는 바람에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공회의 '조사' '심방' '연보' '반사'라는 표현들까지 모두 일반 교회에서 배운 것입니다. 예배 드리는 방식도 마찬 가지고, 교회 부흥의 방식과 신앙 전반이 그렇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자녀분들이 70년만에 고향을 와 봤다면서 공회 교회의 예배당과 예배 분위기를 보면서 '맞아! 이 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예배야! 이 찬송 좀 봐.. 이 모든 것이 다 그래..'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국내 최고의 음악 가정이고 이 시대 청년들이 환호하는 찬양예배를 인도하는 분입니다. 그 분들은 공회를 모르던 분들입니다. 이 나라 교계가 그토록 본을 받자는 그 가정이 감탄하는 모습이 바로 공회의 원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손양원 목사님이 50년대에 돌아 가셨으니 공회와 상관도 없을 때입니다.




    *일반교회도 대형교회들이 유지되는 교회들은 어떻게 그렇게 유지가 되는지 참고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와 세계에 알려 진 대형교회들, 그 중에서도 성공한 교회들의 사례를 대략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속한 신학교의 교재에 의하면 그런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면 교회가 아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공회 기준을 적용하기 전에 그들의 신학, 그들의 신앙 노선, 그들의 기준에서 금지 된 것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예배당에 많은 교인들이 모인 것을 가지고 그들의 노선과 교리와 신학을 바꾼다면 이 것은 종교의 세계는 아닐 듯합니다.

    대형교회란, 공회가 세계적 교회를 보유했었고 세계적 기록도 가져 봤었습니다. 국내와 세계가 감탄하고 배우려 왔었고, 그 때마다 각 공회들의 지도부는 공회가 왜 훌륭한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습니다. 그런데 1989년 백 목사님을 장례로 보낸 다음 날부터 갑자기 바뀌어 버렸습니다. 1989년과 1990년이 노아 홍수가 지나 간 것도 아니고, 가나안에 들어 간 것도 아니고, 주님이 오시고 신약이 시작 된 것도 아닌데 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꿔야 한다면, 바꾸기 전에 먼저 심각히 따져 보고 비교하고 연구해 봤어야 합니다. 기도라는 말은 아예 빼겠습니다. 도둑이 도둑질을 해도 한번 들켰으면 다음에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듯합니다. 들키기 전에 미리 매번 연구를 많이 하고 움직여야 할 듯합니다. 오랜 세월 입증이 되고 국내와 세계가 환호하던 공회의 부흥법을 하루 아침에 다 바꿔야 하는가? 그렇게 할 만한 환경의 변화가 있었던가? 우리가 백영희 생전에만 적용하던 교회 운영법을 공회법이라고 했던가...





    * 찬송가 같은 경우
    201곡의 찬송가 안에서도 목회자에 따라, 교인에 따라 서로 좋아하는 찬송은 다 다릅니다. 그 것은 한 교회가 알아서 할 일일 것입니다. 성경의 절수가 3만개가 넘습니다. 어느 장절을 좋아하며 설교하는지 다 다릅니다. 201곡 찬송가 안에도 저는 개인적으로 아예 찬송가로 생각하지 않는 찬송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201곡 밖에 있는 찬송을 더 좋아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찬송'은 예배를 구성하는 '기도 찬송 말씀'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의 개인 선호도보다 또는 세대나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보다 오히려 전체와 개인과 세대와 시대를 향하여 '전도'를 하고 '심방'을 해서 찬송이라는 세계를 가르쳐 찬송을 알아 가게 해야 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공회는 201곡을 예배 찬송으로 일단 정해 놓았습니다. 이 것을 정할 때 질문자께서 원하거나 또는 지적한 그런 반론이나 의견이나 건의가 많았습니다. 모든 것을 감안하고 만든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만들고 결정했다면 자기 결정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 우선 좋다고 봅니다. 그렇다 해도 찬송 201곡이란 그 자체가 교리가 아니니 가감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소와 관련된 부공3에서는 201곡을 과거보다 더 엄하게 지키면서도 201곡 안에 뺄 곡은 뺄 준비도 하고 있고, 또 몇 가지 추가할 것은 추가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또 찬양대의 성탄이나 특송 때 사용할 찬송가를 여러 공회의 중심 인물들의 의견까지 받아서 출간한 것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찬송을 사용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찬송이 거듭될수록 점점 신앙이 말씀에 가까와 지는가, 깊어 지는가, 그의 신앙과 교회의 전반 분위기가 신앙으로 진정 더 발전이 되는가? 이 면을 알면 이 것이 바로 기준이 됩니다. 새벽예배 출석이 더 많아지고, 새벽예배 후의 기도 시간이 더 길어 지고, 밤 기도가 추가 되고, 주일을 더 엄하게 지키고, 집회가 예전보다 더 회집되는가? 세상 직장을 줄이고 세상 공부와 진학 진로를 줄이고 성경을 읽고 자기 신앙의 생활이 세상과 비교할 때 확실하게 더욱 신앙적이 되는가? 이 과정에 도움이 되는 찬송, 그 것은 찬송일 것이고 교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예배당 안에 주목과 집중과 열기는 더 뜨거워지는데 교인은 줄고 예배 자체가 줄어 들고 한번에 모인 예배가 2부 3부로 분산이 되고 주일에 한번씩 빠지는 간부들이 늘어 나가고 , 주일 대표 기도를 하는 지도적 교인들이 적어 온 것을 읽어야 하는 횟수가 늘어 나가고, 강단에 설교는 그 시간이 줄고..

    찬송 자체를 두고는 사실 논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데 찬송 때문에 이어 지는 개인과 교회 전체의 신앙 분위기가 만든 결과는 세월 속에 비교하기 쉽습니다. 지금 지적하신 부분이 선교 초기에 모든 교회들이 공회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 때문에 그렇게 찬송이 다양화 다각화 되면서, 은혜 면으로 좋게 다양화 다각화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나니 교회는 다시는 예전 같은 긴장이 없어 지고 한 세대가 지나 가고 나니 그 교회의 신앙의 초기 교인들의 눈에 지금 교인들의 예배와 찬송과 신앙은 아주 달라 졌다.. 이 것은 신앙이 아니라 세상 이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라고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세를 돌릴 수가 없어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개역한글판만 굳이 고집해야 하나? 고어체도 성경적인 용어 내용상 문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
    이 부분도 문답을 통해 많은 글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 교단에서 새 시대에 맞게 나가던 분들이 우리가 고수하는 개역한글판, 그 것도 세로 성경을 일부로 찾아 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곳은 무조건 옛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추구하되 다만 신중하게 많은 면을 비교한 다음에 결정합니다. 아동 청소년의 이해도에 대한 것도 이미 설명은 충분히 드렸습니다. 성경의 표현은 시대적 언어 환경을 따라 가기 보다 읽는 교인들이 성경의 언어 환경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 더 빠릅니다. 이 부분은 '문답방'에 구 게시판 자료에 아마 이해가 될 정도로 자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설명에 필요한 지적을 다시 해 주신다면 다시 연구해 보겠습니다.



    *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대로 성경을 이해시킬수 있도록 별도의 성경 전체를 상세하게 분석한 교재
    충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미 이런 자료는 이 곳에 소개한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백영희 설교 표현은 단 한 줄이라 해도 부친의 사유재산이라 해서 대법원이 금지를 시켜 놓았고 그 과정에 서부교회와 모든 공회들이 그 금지에 협조하는 바람에 지금 공개는 하지 못하나

    이 곳에서 백영희 전기, 백영희 10만쪽의 설교를 교리화 한 자료, 공회의 역사와 설교의 내용별 또는 분석 자료, 또 매 설교를 접하는 연경법 등을 소개했습니다. 지금도 아마 많이 남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교재를 1990년부터 함께 만들자고 공회 모든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부탁했고 심지어 이 사이트에도 늘 공개적으로 제안했고 자료를 드린다고 했으나 공회 내에서는 반응이 없어 이 곳이 독자적으로 만들었고 이 곳은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이나 어떤 교인이라도 지도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부공3 이 곳은 원래 공회 출신보다 타 교단에서 온 분들이 많습니다. 또 백 목사님을 몰랐던 분들이 더 많습니다. 안에서 자라 나온 분들이든 밖에서 오신 분들이든 사이트의 자료 때문에 인생을 바꾸고 결혼과 출산과 직업과 사는 곳을 아주 바꾼 분들이 절반 이상입니다. 아다시피 이 곳은 공회들 중에 숫자든 인재든 경제든 모든 면에서 가장 열악합니다. 시골 교회 하나로 시작한 곳인데도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면, 다른 공회들은 마음만 먹으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다른 공회들이 교재나 각종 방법론을 제시하여 제공해 주시면 우리는 신세를 지겠는데 왜 철저히 비밀로 자료를 감추는지, 이 부분도 평생 고민입니다.




    * 총공회가 지향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선에서 일반교회가 하는 분위기나 행사도 참고해서 허용..
    각 교회 목회자가 체질적으로 딱딱하게 진행을 하거나 했던 말만 반복하는 문제점은 공회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부터 늘 지적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각 교회 교인이 목회자에게 직접 지적하고 부탁해서 고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목회자들도 아마 잘 해 보려고 하려 할 듯합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밭일을 하기 어렵듯이, 송아지가 강아지처럼 짖기가 어렵듯이, 순복음교회 목회자들은 통성기도는 잘 하는데 묵상기도를 시켜 놓으면 잠이나 자 버리고, 공회 목회자들은 묵상기도는 잘 하는데 통성기도를 시키면 갑자기 벙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 별로 발생하는 문제는 어느 교단이나 다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 별로 목회자가 참고해야 할 지적 내용은 천번 만번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공회의 역사가 경남의 가장 깊은 덕유산 산골에서 무식하게 시작을 하다 보니 욕은 잘하는데 덕스러운 말은 하고 싶어도 서툴고, 째려 보는 것은 잘해도 온화하게 사람을 품는 것은 참으로 서툰 듯합니다. 포기할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두고 백 목사님도 부산에 와서 그런 지적을 받은 후 거처하는 방 안에 거울을 10개 안팎을 걸어 놓고 자기의 모습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고쳤습니다. 이 것이 공회입니다. 연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인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 받았다면 고향 출신 집안 자기의 원래 성향까지도 뜯어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토씨 하나 안틀리고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죄다. 총공회의 본질이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면)
    공회는 옳은 것이 있으면 교계가 이단이라 지목을 하고 난리를 해도 바꿔 왔습니다. 주교의 운영 편제 개편이 그런 것이고, 매2년 시무투표가 그런 것입니다. 공회는 매년 늘 바꾸고 왔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해. 다만 신앙의 근본 원리만은 처음부터 바꾸지 않아야 할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그 실제 실행 과정에서는 늘 연구했고 의견을 취합해서 반영해 왔습니다.




    (후대 시대에 사는 저희같은 신앙인들은)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 교리를 모르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주일학생도 사도신경을 외우며 삼위일체 교리를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후대를 사는 분들은 선대의 실수와 잘못을 피해 갈 수 있고, 선대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 가면 선대가 올라 간 계단의 꼭대기를 밟고 그 위에서 자기 건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80년대까지의 백영희 전성기보다 나은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백영희 전성기를 그 후 30여년 동안 혼란기를 거치며 침체가 되었다면 지금 이 글을 적는 분이 먼저 시작하여 자기 건설을 하면 그리 오래지 않아서 현재 목회자들을 쉽게 넘어 설 듯합니다. 이 곳도 이 곳의 모든 것을 이 곳에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적었습니다. 어떤 글을 자랑처럼 적혔을 것이고, 어떤 글은 남 비판처럼 된 것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참고해도 될 만하지만 어떤 것은 아예 상관이 없는 면도 있을 듯합니다. 지켜 보며 이 곳을 파악하고 도움 되는 방향으로 선용하면 아주 짧은 기간에 바로 이 곳과 같아지고, 심지어 이 곳을 지도하겠다며 나선 유 씨 성함의 대학생도 있었고 김 씨 성함의 중국 분도 계셨습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된 사람을 앞 설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급변하고 달라졌기 때문에)
    이 곳은 백 목사님 사후 30년을 생전의 설교만 가지고 복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 설교만 가진 사람이 오늘을 그냥 살면 오늘의 죄에게는 전부 삼킬 것입니다. 지금은 소돔보다 더 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롯보다 못한 신앙입니다. 80년대 공회의 절정기에 목회자로 또는 전국의 각 교회에 그 유명한 이름을 남긴 분들의 오늘을 보면 오늘의 세상에게 짓밟혀서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할 때는 아브라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앙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롯이 소돔으로 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롯은 소돔의 입구 대문 한 켠에 우두커니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롯이 소돔을 거친 후가 모암과 암몬이 되었지 롯이 소돔을 가지 전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공회의 선대나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 어느 공회든 그 공회의 원로나 지도부는 80년대에 전설처럼 신화처럼 들리는 신앙의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죄악, 이 시대의 광풍에는 과연 그 분들이 버티고 있을까?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 분들이 지도하는 그 자녀들의 오늘을 보면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듯합니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자기 자녀들은 이 노선 밖으로 빼 내어 다른 교파 다른 노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회하는 교인들에게는 이 교회가 중요하다, 공회를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야 직장이 그 교회 목사니 그 교회 교인들을 그 교회에 붙들어 두려는 것이고, 자기 자녀 자기가 지도하는 가족은 다른 곳으로 빼돌리지나 않는지? 혹 남아 있다면 어디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아서 현재를 유지하고나 있지 않은지? 공회가 전체적으로 다 알 만한 위대한 분들의 경우는 그 가족의 소재가 파악이 됩니다. 최소한 공회를 지켜 내고 있는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노선이 소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중요한 인물들 중에서는 이미 자기 자녀를 곳곳으로 피난 시켜 놓은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전쟁이 나서, 이 나라를 지키다 이 자리에서 죽겠다.. 이래야 군인인데
    남의 집 아이들은 전선에 밀어 넣으면서 제 자식들은 해외로 이미 빼돌리고 있다면,
    이런 장군들, 이런 지휘관들은 일선의 병사들이 먼저 그런 지도부를 처형해야 아마 그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곳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공회인이, 진심을 담아 적어 주신 글이라 생각하여 여러 글로 적어 봤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발언을 해야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다만, 최종 결정을 두고는 항상 조금 신중한 것이 조금 빠른 것보다는 훗날 돌아 보면 낫습니다. 그래서 전반적 분위기만 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실제 각 교회의 현장에서 또는 각 공회의 결정을 두고, 최종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으면 합니다.

    1990년 5월. 서부교회 내에서 이 번 질문을 적은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진, 정말 진실한 분들이 남정교회를 개척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그야 말로 해 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흥이 아니었고, 신앙도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남아 있는 서부교회는 신앙을 지키고 부흥을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서부교회도 과거 공회가 금지한 것을 소리 없이 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 않은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서부교회의 신앙과 분위기와 결과는 현재 숨만 헐떡이고 있는 임종 직전의 사자 같아 보입니다. 세계 10대 교회 시절에 활동하던 직원들이 그대로 월급은 받고, 아마 월급은 엄청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없다 보니 1년을 10년을 어떤 분은 30년을 일주일 내내 전국을 다니며 온갖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아서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은? 과거의 이름만 남았습니다. 남정교회는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 봤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입니다.

    남정교회는 백영희의 서부교회를 기본으로 삼고, 변화 된 세상에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한 스스로의 기준도 목표도 결과도 다 틀렸습니다. 이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그냥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서부교회는 건물 외관만 지켜 내고 있습니다. 이 곳은 질문자와 함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곳이 해결책이었다면 80년대 서부교회처럼 되었을 것이나 이 곳 역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식물로 말하면 씨앗이 될 수 있고, 다시 봄을 주시면 활짝 펴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의 환경에 휘둘리다가 종자씨를 솥에 넣고 삶은 일만은 피해 보자는 것이 이 곳입니다.

  • 2024-01-20 14:27
    총공회가 참 아쉬운것은 각 공회마다 자기가 옳고 다른 공회는 틀리다 라는 주장을 참 많이 하시는데, 그것을 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 공회가 전원일치제를 제도로 두고 있다면, 내가 옳다 라고 주장하는 부분을 전원이 인정하고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결과를 맺어야 진정한 총공회의 운영이라 생각됩니다. 무조건 과거의 엄격한 제도가 정답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일반 교단이 하는것 처럼 따라가면 속화가 되듯이, 뺄것은 빼고 더할것은 더해서 중립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지금 시대에 맞는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잘 전파하여야 되는 시대가 지금 시대라 생각합니다.

    • 2024-01-20 18:46
      각 공회가 서로 옳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은 적다는 부분에 대해서...저는 사실 공감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교단에서도 교회분열이 굉쟝히 많습니다. 저의 고향교회도 제가 어릴 때 분열하여서 결국 절반되는 성도님들이 기존의 고향교회를 나가서 따로 예배당을 세워서 교회를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어릴 때 였고, 교회가 분열당시에 저는 어렸었고 잠시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고향교회로 돌아왔고, 분열에 대해 또 따로 나가서 고향교회 근처에 세운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듣기는 했지만 저는 딱히 공감을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다시 합쳐야 한다는 분들도 계셨고 실제 다시 합치기 위해 노력도 좀 있었지만, 다시 합치는것은 거의 불가능 했던 것 같습니다.

      각 공회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서,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또 그 분열을 직접 목도해보지 못한 젊은사람들 입장에서는
      총공회의 분열이 공감이 잘 안되지 않나 여겨집니다. 굳이 다시 합쳐야 하는 생각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교회분열이라는 것이 정말 어려운 부분이어서...그래서 정통개혁주의 자들도 교회분열과 교회연합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회분열과 교회연합에 대한 기준이 되는 내용들을 설교도 많이 하였구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총공회의 각 공회는, 우리공회가 백목사님의 노선을 바르게 계대하는 노선이라고 확신하고 자부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단일장로교에서 여러개로 나누어진 한국의 장로교도, 자기들 교단이 가장 정통장로교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고신은 고신이 가장 바른 장로교이고, 합동은 합동이 가장 바른 장로교이고, 합신은 합신데로...
      그래서 이 부분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외부에서 보기에, 어느공회가 가장 바른노선이고 백영희목사님의 교리와 신앙노선을 바르게 계승하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한 방법은 각 공회의 열매를 보고 판단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총공회에서 가장 바른노선이 어디인지. 백영희목사님의 노선을 가장 바르게 계승하는 공회가 어디인지 확정이 된다면, 저의 입장에서는 그 공회의 기준에서 타공회들을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공회분열을 직접 보지 못한 저의 최선이 아닌가 합니다.

      • 2024-01-20 23:42
        후대 세대에게는 과거의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고 어떠한 노력들이 있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이라는 자부심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신학 님 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오늘날 현재 시대에서 볼때에 열매를 본다면, 총공회가 여러 공회로 분열되어 있고 그 각각의 공회들이 서로 옳다고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고 하면서, 무엇이 간과하고 있는것인지 내 자신이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기보다 내가 옳으니 나는 내 길을 가겠다 라고 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으며,
        실제 열매를 보면 내가 옳다 라고 주장하는 대구공회든 서울공회든 부산공회 1,2,3,4 그 어떤 총공회든지 이제는 더욱더 분열되는 양상을 띠고 있고,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 판단하여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게 하는 모습은 더이상 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으며 지금 시대에 맞는 총공회의 교훈과 노선을 정립할수 있도록 이제는 남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방법은 없애고, 잘못된 것은 빼고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총공회의 가치를 모든 사람 전원이 공감하고 따라갈수 있는 총공회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2024-01-21 13:20
          선생님 같은 분들이 좋은 글들을 올려주셔서 여러면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총공회 전체의 유익을 위한 글들을 올려주시면 잘 배우겠습니다. 저는 공회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어서, 외부에서 총공회를 바라보는 입장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시각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2024-01-20 18:23
    저의 생각입니다. 신학교때 번역을 많이 하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개역성경이 가장 잘 번역된 성경이라고
    하셨었어요. 교수님이 개역성경이 가장 낫다고 강조하셨어요. 제가 알기로 지금도 그분은 개역성경을 설교하실 때 예배때 사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을 보면서 너무 옛날 단어들은 개역개정을 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엄밀한 개혁주의 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도, 드럼 신디사이저 기타 등의 악기는 사용을 절대 안합니다.
    이러한 악기들이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부추기는지 나름 연구도 꽤 되어 있습니다.
    공회의 외부모습은 주일성수는 계명이고(개인적으로 본인 신앙에 맞추어 자라가며 지키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은 개역성경이 번역이 가장 잘 되었으니 개역성경을 보는 것이 좋은 것 같고, 예배는 경건한 예배를 지향하니 피아노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공회 전체적으로는 개역성경을 표준성경으로 기준을 잡고, 본인 신앙에 따라 개역개정 등의 성경을 보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양심자유이니깐요. 하지만 공회전체적으로 노선의 기준과 표준이 있어야 하니, 개역성경 - 주일성수 - 예배때 피아노 정도 이러한 기준은 명확히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총공회의 교리전파는 ...공회의 교리가 옳은 진리라면 삼위일체 교리처럼 예수님의 신인성연합교리처럼 종교개혁 당시의 이신칭의교리 처럼, 공회교리도 전 세계 기독교가 모두 알고 믿어야 하는 교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으로는 공회의 기본구원 - 건설구원 교리는 알게 모르게 한국에는 많이 전파 된 것 같습니다. 실례로 침례교의 대형교회인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님 이셨던 피영민목사님(지금은 침례신학교 총장님)은 강남중앙침례교회 강단에서 `기본구원 건설구원 백영희목사님, 예수님 믿으면 사죄 칭의 화친을 받게 된다라고 자주 설교 하셨어요. 부흥회 가서도 백목사님과 기본구원-건설구원을 설교하셨고, `칭의 - 성화`보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이 더 낫다라고 까지 설교 하셨구요.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박영선목사님이 구원을 `신분의 구원 -수준의 구원`으로 책으로 설교로 굉장히 많이 전하셨고, 현재 개혁주의노선에서도 구원을 `칭의적 구원 - 성화적 구원`으로 구별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좀 시골인데, 저희 교회(일반교단) 장로님도 오래전부터 백목사님과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알고 계셨구요. 물론 그분은 저에게 `부산에 백영희목사님이 있는데,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나누었는데, 구원이 하나면 하나지 무슨 둘로 나누냐고..` 반대하는 입장 이었구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백목사님의 기본구원-건설구원 교리는 한국교회에 굉장히 많이 전해졌는데, 피영민총장님 처럼 백목사님을 인용하면서 그대로 소개하는 분들도 있고, 또 자기나름의 용어를 가지고 설명하는 분들도 있고, 고향교회 장로님처럼 반대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영선목사님이 백목사님의 구원론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신앙에 열심있는 신학생들 목회자들은 박영선목사님의 책들을 많이들 읽습니다. 그렇다면 신분의구원 - 수준의 구원은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 오순절노선의 몇천명 출석하는 감리교회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도 구원을 신분의 구원과 수준의 구원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회교리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삼분설과 기능구원이 아닐까 합니다. 이 교리가 정말 참으로 맞다면, 이 교리들은 삼위일체 예수그리스도의 신인성연합 교리와 동급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내용들은 한국교회를 넘어 전 세계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교리라고 생각을 합니다.(제가 이 말 할 자격은 전혀 없습니다) 공회의 삼분설과 기능구원이 정말 성경적인 교리라면, 삼위일체 만큼 귀한 교리이니 한국에 전 세계에 잘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백목사님 설교와 여기 홈페이지를 접한 일반교단 분들은 공회삼분설과 기능구원에 알지만, 진정 믿느냐?는 또다른 문제 인 것 같습니다. 저희 고향교회 장로님은 기본구원 건설구원 교리를 일찍 들었지만 반대하였으니깐요.

  • 2024-01-22 23:27

  • 2024-01-23 11:52
    역시, 후대 세대의 의견은 여전히 가볍게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총공회에 대한 아쉬움을 의갼으로 제시하니 대차게 정면으로 반박은 못하고 일부 맞는 말인것처럼 루용하면서 결국은 강하게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을 절대 굽히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남정교회 서부교회 비교 하시면서 총공회의 교훈과 교리를 가지고 일반 교회 반식을 하고 싶은대로 다해도 문제고 서부교회처럼 일반교회처럼 따라가지 않도록 해도 결과는 교회의 외적인 형태가 남아있는 허무한 결과인데, 부공3이 더욱더 엄격하게 고수하는 총공회 201곡 찬송가, 개역한글 성경을 사용해야하는 이유, 세로 성경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그 논리에 대해서 자꾸 주장 하시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고수하신 결과가 어떻습니까? 전원일치제도가 총공회의 제도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와야 하는것 아닙니까? 이 질문은 대구공회 부산1,2,3 공회에게도 똑같이 하는 질문입니다. 결국은 내가 옳다 증명하고 다른사람은 틀렸다 주장해야 그 씨를 뿌리는 것이고 언잰가는 따라 올것이다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저는 회의적입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좋은글이다 좋은 취지로 올렸다 칭찬은 해주시는데,, 생각정리가 필요하겠습니다.

  • 2024-01-23 19:57
    1. 찬송가에 대하여,
    제가 질문한것은 공회 찬송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몰라서, 왜 지금까지 쓰고 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러한 배경에 찬송가의 본질을 흐리는 일반교단의 세상적인 움직임에 공회 찬송가가 제작되었다는 취지도 알고있고, 찬송가는 양보와 타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일부 찬송가 중에는 신앙가가 아닌 사람이 작곡 작사한 찬송가도 있다 라고 답변자료를 올려주셨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총공회에 관련된 많은 분들이 검토하고 의견을 내고 최종적으로 백영희 목사님의 결정으로 제작된 과정은 충분히 납득을 하겠습니다.
    물론, 찬송가 중에 일부 곡들은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않거나, 답변에서 제기한 신앙가가 아닌 사람들이 작곡 작사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곡들을 배제하지 말고 다 받아들여서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곡들도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가사의 내용이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않다면 수정을 해서 지금처럼 비매품으로 총공회만 볼수 있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답변한 내용은 총공회의 찬송가가 곡수가 너무나 적다고 생각합니다. 곡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에서 답변한 내용이였고, 타협과 양보로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어긋나는 것을 수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였으며, 무조건 적으로 우리것으로 받아 들일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것도 아니고, 이런 부분을 이미 백영희 목사님 시절에 다 이렇게 하기로 완성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와서 찬송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시면,
    서부교회 남정교회 비유 하신것처럼, 일반교단처럼 따라가겠다고 해서 옳은길도 아니였고 부흥이 안되었다 라고 하셨고, 일반교단처럼 아예 따라하지 않겠다 해서, 오늘날의 그 결과가 옳은길이 였다고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모습은 외형만 존재하는 속이 텅빈 그런 모습이라 말씀하신것을 볼때에, 다시한번 말씀 드리는 부분이지만,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를 어긋나지 않는 수준에서, 오늘날 시대에 곡수가 부족하다는 것이 제 의견이기에 나름대로 총공회의 연구와 검토를 거쳐 추가해야할 곡은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일부곡들이 문제가 있어서 그렇고, 다른곡들 중에는 성경에서 어긋나지 않은, 찬송가를 작곡한 취지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작곡된 좋은 곡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찬송가는 양보와 타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신앙가가 아닌 사람이 작곡 작사한 찬송가가 있다, 일반교단이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성경에 교리에 어긋나는 찬송가를 많이 만들었다. 물론 구별은 필요하다 생각되지만, 일부 좋은 곡들도 있는데 굳이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서 맞지 않는다고 배척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성경에 대하여
    대한성서공회의 저작권 문제와 가로성경보다 세로성경을 추구하여야 한다. 라는 답변에 제 의견을 제시한다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수정할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작권이 끝난 개역한글을 쓰고 있다 라고 하셨는데, 저작권도 끝난 개역한글이 100프로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는것도 아닌데, 왜 성경은 총공회가 번역한것이 아닌 오래전 한국교회가 번역한 성경을 그대로 쓰고 있는것입니까? 찬송가도 그러한 문제 때문에 비매품으로 총공회 찬송가를 만든것이 아닙니까? 성경의 저작권 문제로 개역한글판 외에 다른 성경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답변하신 것은 좀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찬송가는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않는다고 총공회에서 따로 쓰는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성경도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맞게 바꾸어야 하는것이 아닙니까? 그런 이유가 있기에 개역개정 성경부터는 원래의 본질이 흐려진 성경이다 라고 해서 배척하시는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세로성경을 고수하신다고 하셨는데, 가로성경을 보면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해서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바르게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까? 형식적인 문제보다 성경은 참고하는 것이며,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의 설교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와닿는 성경말씀의 내용과 교리와 신조를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찬송가 문제든 성경 문제든지 모든것을 일반교단이 성서공회가 잘못하고 있다고 해서, 원래의 본질적인 내용을 수정한것을 총공회가 받아들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정한것은 배척하되, 원래의 본질적인 내용을 수용하도록 찬송가도 좋은 곡들이 있다면 수용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성경도 위의 신학님이 말씀하신것처럼 개역개정도 참고하는 방향으로 하며, 원래는 개역한글판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되, 무조건 개역한글판 외에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한다면 솔직히 총공회에서 보는 찬송가나 성경이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에 제대로 된 것이 몇개나 되겠습니까?

    4번 세로쓰기 성경의 필요성 답변을 보면, "우리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형식주의도 아닙니다" 말씀하시는데
    무조건 옛것이 중요하다. 이미 검증이 다 끝났고 그것이 진정한 총공회의 본질이다 라고 하신다면,
    위의 답변중 남정교회, 서부교회 사례를 말씀하신것처럼, 진정한 총공회의 본질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에 동의하고 서로 분열되는것이 아니라 다 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같이 신앙생활 하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일반교단이나 남정교회 같은 사례를 들며 말씀 하셨지만, 무조건 세상적으로 자기하고 싶은대로 총공회의 교리나 신조가 무엇인지 모르고 막 나간다면, 속화되고 쇠퇴할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부교회 사례를 말씀하셨는데, 무조건 옛것을 그대로 고수하고 지킨다고 해서 후대 세대에게 어떻게 하는것이 신앙생활인가 지도할수 있는 방법인지 고민을 해보시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변화는 무조건 자기 말이 옳다. 자기가 이때까지 검증 다 해본것이고, 내가 하는것이 틀릴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수 없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면, 절대 성장과 변화는 생길수가 없습니다. 후대 세대를 이해시키고 지도하는 접근법을 연구해야 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제 의견을 여기까지 말하고 줄이겠습니다.

  • 2024-01-24 10:28
    서로 안타까운 마음을 절제하며 적느라고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이 글도 그렇고 앞에 글도 그렇습니다.


    * 찬송가에 대하여
    혹시 '부공3' 이 곳에서 만든 '가본찬송가'라고 아십니까? 윗글에서 지적하고 탄식하신 그 내용 그 부탁 그 지적을 반영하여 공회 201곡 외에 299곡을 추가로 선곡하고 2010년에 발간했습니다. 당시 지금 우리와 다른 공회에 계신 분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심지어 저희를 가장 반대하는 분이 과거 80년대 총공회 전체 집회의 찬송을 인도했고 사회적으로 우리와 아주 다른 차원에서 사셨으며 부공1과 부공2의 핵심으로 계시던 분이 거의 주도했습니다. 저희는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최선을 다해 그 의견을 반영해 드렸습니다.

    당시 모든 공회와 공회들의 교인들이 방문하는 이 곳에 오래동안 초기화면에 공지를 했고 뜻을 모았습니다. 윗글에 적은 찬송가에 대한 심정을 모두 담아 보았습니다. 공회 201곡 외에 다른 공회들에 찬송을 앞에서 지도하거나 인도하는 분들, 타 교단의 속화는 싫어하지만 201곡에만 매이는 것을 두고 윗글처럼 애타는 분들, 그 분들이 교계에서도 사회의 일반 TV까지 나와 활동하는 분들이 공회 신앙의 우려를 고려하면서 201곡에서 빠진 찬양곡, 복음성가, 심지어 최근에 유행하는 찬송 중에서도 우리가 사적으로 또는 특송으로 또는 예배 중에도 사용할 만한 찬송들을 299곡 출간했습니다. '가본'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299곡을 출간한 후 가감의 의견을 열어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곳의 '초기화면/자료/출간목록'에도 올려 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윗글에서 지적하신 분이 최소한 이 곳과의 대화에서 타 공회를 두고 함께 고민을 하면 몰라도 이 곳까지 포함을 시켜 왜 청년층의 부탁을 무조건 외면만 하려는가 라는 자세로 대화하는 것은? 돌아 보셔야 할 듯합니다. 이 곳은 총공회 원래를 토씨 하나 바꾸지 못한다고 할 때 그런 주장으로 모인 부산공회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도 있다며 가장 먼저 열거하고 활동하다 모두에게 밀려 났고 짤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것 때문인지를 두고는 함께 의논하고 또 어느 정도까지를 두고 말하는 것은 좋으나 이 곳을 다른 공회와 쉽게 하나로 묶고 모두를 기성세대처럼 상대한다면, 윗글을 적은 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는 지금도 바로 밑에 후배들에게 기성세대 못지 않은 기성세대화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염려합니다.

    그리고 공회들 중에 가장 숨이 막힌다는 부공3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곳에 여러 글을 적은 여러 분들의 여러 심정들.. 일단 지난 날에 너무 명백한 것을 먼저 대략 질문을 하시든 또는 검색을 통해 좀 살피고 나서 글을 적으면 더 좋겠습니다. 이 곳에는 지금도 소개 받고 새로 들어 오는 교계나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지적하는 분의 글만 읽다 보면 그 심정에 너무 쉽게 동감할 듯합니다. 천하의 젊은 층들, 또 새로 시작하는 분들, 또는 오래 되어 굳어 버린 곳에서도 다시 희망을 가져 보려는 분들로서는 이런 글들을 읽으면 정권에게 사회에게 옛습에게 당한 젊은이들의 심정이 느껴져서 일단 총공회라는 곳도 역시 그렇다고 할 듯합니다.

    일단 이 곳에 여러 자료를 고루 파악을 하고 나서, 시간이 없다면 질문을 먼저 간단히 해서, 그리고 해당 되는 자료를 파악해 보면 좋겠습니다. '찬송'에 대한 것만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공회들이 서로 '자기들이 옳다, 저 쪽이 틀렸다'는 것도
    너무너무 자료가 많아서 그냥 윗글의 찬송가를 이미 299곡 출간했다는 것으로, 그 299곡이 정답은 아니라 해도 지적하는 분들과 심정이 같고 그리고 최대한 노력을 했으며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도 무조건 꼭 같다고 봉함을 해버리면 대화가 어려워 집니다. 노곡동? 옳고 그른 것이 자료가 차고 넘쳐서 타 공회들이 그들 내부에서만 그들이 옳다 하지 절대로! 이 곳에 열린 광장으로 오지 못합니다. 오시기만 하면 그 때는 밝혀 드릴 것이고 오기 괴로우시면 그 쪽을 열어 주시라 하시고 이 곳에서 찾아 가서 문건을 하나씩 공개하겠습니다.


    1989년 9월에 연구부장이 서부교회 옆 건물 연구소를 백순희 큰 딸 이름으로 빼돌리고, 한 블럭 건너 백 목사님의 3층 사택 건물을 백명희 막내 딸 이름으로 등기까지 빼돌렸다는 말을 지금 부공2와 대구공회의 제일 중진 현재도 위원장 이름을 수십 년 붙들고 있는 분들이 전국에 외치고 다녀서 서부교회 5백미터 앞에 있는 등기소에 가서 등기부등본 하나만 떼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자 또 다른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지금 소속한 공회와 출석하는 교회만 말씀을 해 주신다면 이 정도의 자료를 소복하게 쌓아 놓을 수 있지만 이 곳의 더 큰 의미가 이 노선을 모르는 분들에게 이 노선의 첫 소개를 하는 곳이고, 이 노선을 알지만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분들에게 하나씩 안내를 하는 자리여서, 과격한 표현이 나갈 때 선입견이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만사 조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 곧 복구가 될 구 자료 일체가 사이트의 새 체계에 포함이 되면 어떤 사안이라도 바로바로 눈 앞에 확증들을 전개 시켜 드릴 것입니다. 그 것이 두려워 다른 공회들은 공개 운영을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발언의 기회도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완벽하게 비공개로 마음껏 글을 적도록 했다는 것만 가지고 생각해도 어느 정도 방향은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찬송가 하나만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 것이 참 많습니다. 공회란 그런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 2024-01-26 16:46
    공회들이 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하더라는 분들 때문에 사이트 초기화면에 최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대구 노곡동 기도원'의 문제를 내부 문건으로 설명해 봤습니다. '초기화면의 우측 상단에 <총공회 노선의 여러 선택들/ 노곡동>'을 한번 살펴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 동안 이 건 하나만 가지고 소속 공회의 목회자들이 주장한 내용과 비교해 보시고 이 건에 대해 반론이 있으면 이 곳이든 재 질문이든 다시 지적해 주시면 지난 날의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겠으나 가장 최근의, 그리고 지난 날 모든 사건과 비교해도 아마 일반 교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었을,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사례를 하나 가지고 이 곳에서 두어 번 오간다 해도 판단이 애매하면 윗글에서 '공회들끼리 서로 옳다고 하더라'는 말씀에 할 말이 없겠고, 이 글에 반론이 나오지 않으면 지난 날 거의 전부가 다 비슷했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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