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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구원] 고넬료의 중생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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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4668
작성일
2023.11.07

2005-01-04 22:32:50
지나가는이

[건설구원] 사도행전 10장 (고넬료의 중생시점 - 관)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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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앞글을 읽고난후 의문된점이있어서 한가지 질문드립니다.다음은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중 일부인데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한다 했고 하나님께 항상기도도 한다했는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만나게한후 다음과같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말씀등을 전하게 되는데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0장 후반절에보면 이제 겨우 예수에 대하여 사망,부활,죄사함등을 전하게되고
고넬료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혜로 이어지는데

앞부분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와 뒷부분의 예수의 죽음, 부활,죄사함,등을 다시 듣게되는 고넬료는 어떤 변화인지?

또 실질적인 기본구원의 시점은 언제인지?

간단히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아울러 평안이 항상 같이 하시길 바랍니다.

 


2005-01-05 10:18:28
yilee [ E-mail ]

중생의 시점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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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답변)

1.고넬료의 경우

이미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중생이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베드로를 만난 이후에 중생이 되었는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만나기 전이라 해도 고넬료가 중생은 이미 되었을 수 있습니다.

중생이 되었다는 것과 구원의 도를 바로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중생은 성령이 무조건 그 영을 살리는 것이니, 마음은 아직 이전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중생은 되었는데도 그 몸과 마음은 여전히 복음을 박해할 수도 있고,

중생은 되었는데도 그 몸과 마음은 자기 짐작으로 엉뚱하게 믿을 수도 있습니다.

중생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단독 역사이며 직접 역사입니다.
중생 후 건설구원으로 출발하는 순간부터는 마음과 몸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음과 몸이 복음으로 변화를 보이는 것은 중생이 이미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이미 신앙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앙활동의 흔적들을 살펴볼 때 그는 이미 중생은 되어 있었다고 짐작됩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를 출발시킨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바로 가르쳐 나가고 있었는데, 고넬료가 중생이 된 것은 어느 누구를 통해 지나가면서 우연히 복음을 듣고 그 영이 중생이 되었을 것이나, 그가 신앙생활을 바로 배워 건설해 나가는 일은 교회를 통해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베드로의 역할은 고넬료를 중생시킨 역사에 수고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중생된 고넬료가 바로 믿고 나가는 도를 알지 못했다가 베드로를 통해 기초부터 다시 바로 배워 바로 세워지게 되었다고 보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답변 보충)

2.지옥 갈 죄인이 구원받는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첫번째, 앞서 믿은 성도를 통해
두번째, '예수구원'이라는 복음을 전하고

세번째, 복음을 받은 사람의 영이 성령으로 중생되고

네번째, 중생된 영이 자기 마음에게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다섯째, 마음이 어느날 믿음을 가지게 되고

여섯째, 마음이 몸을 움직여 교회로 나가게 됩니다.

 

3.사람에 따라 과정을 거쳐가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2-3개 과정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해 보면 대개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을 대개 바로 알지 못합니다.

즉, 영을 살리는 세번째 단계까지가 기본구원이고 네번째부터가 건설구원인데

우리가 느끼고 기억하는 것은 네번째 단계부터입니다.

이미 중생된 영이 마음을 살리려고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 순간이 자기가 중생되기 위해 갈등하던 때라고 기억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4.기본구원을 받아 영이 중생되는 순간은, 우리가 모르던 시기였다고 생각하셨으면

영을 언제 중생시켰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짐작할 뿐입니다.
영의 중생은 영은 죽어 있고 마음은 살아 있는데

마음이란 물질이므로 영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라는 물질이 영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은 영이 먼저 알려야 가능합니다.

중생은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므로 마음은 영의 상황변화를 알지 못하나

중생이 된 영은 때가 되어 자기 마음에게 믿게 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우리는 마음으로 복음을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즉,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갈등을 할 때는 이미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대개 이 부분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초로 큰 은혜를 받은 시점을 자기가 중생된 시점으로 기억하고 생일이라며 날자와 시간까지 기억해 두는 교파도 있고 또 그런 순간을 자기가 처음 성령을 받은 순간이라고 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5.사도 바울의 경우

교회를 다니기 싫어 극단적으로 거부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교회를 따라 나오고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그날부터 새벽기도를 나오고 열심을 내게 되면, 흔히 주변에서나 그 본인은 그 순간을 중생의 시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개 그 사람의 과거를 차분하게 살펴보면 이미 그에게 복음은 전해졌고 그 영은 중생이 되었고 그 영이 그 마음에 돌이키라고 은밀ㅣ 게 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이 성질이 특히 강퍅하거나 많은 학문을 했거나 교회에 대하여 거부감이 심한 경우는 자기 마음 안의 영이 권하는 소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 더욱 더 복음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과정입니다. 그러나 공연히 복음을 더 박해하는 이런 사람은 사실 그 속에 혹시 중생이 시작되어 작살맞은 고래가 발버둥을 며칠씩 치듯이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는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을 죽일 때 58절에서 대장노릇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8장 1절에서 그 죽음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이러 면을 볼 때 사도행전 7장과 8장에서는 바울의 중생은 흔적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9장에 이르러서야 예수님을 직접 뵙고 회개하여 돌이켰다고 읽게 됩니다. 성경이 명문으로 기록하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 설명한 이 기록들은 성경 전체를 두고 살펴볼 때 바울을 구원하려고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을 것인데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전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바울은 교인을 죽이던 사람이어서 바울의 귀에다 대고 '예수 천국'을 외친 이들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처럼 그렇게 박해를 받아 죽어가면서 또 잡혀서 끌려 가는 이들의 그런 모습과 행동을 통해 바울은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도가 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도들 중에 어느 한 전도를 붙들고 성령은 바울의 영을 중생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마음 깊은 안에서 자기의 중생된 영이 이제는 믿으라고 속삭이면 자기의 그동안 배운 혹독한 훈련과 세뇌교육된 마음이 자기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그 소리를 거부하려고 짐짓 더 반대방향으로 미쳐 날뛰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는 바울의 심신이 거친 훈련과 사상을 바꿀 수 없었으나 때가 되매 주님이 직접 개입하여 돌아서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 다메섹 도상의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그 다메섹 도상의 순간을 꼭 바울의 중생이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이런 일은 토론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고 이제 설명드린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좀더 연구해 볼 과제로 가졌으면 합니다. 성경의 명문이 없는 경우는, 우리는 조금 생각해 볼 지혜와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런 자세를 성경은 구별 또는 거룩한 행위라고 합니다.

윗글 질문자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이 주제를 두고는 혼동하는 분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이곳을 들르는 외부 일반인들 때문에 여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2005-01-10 23:46:54
지나가는이

Re: 중생의 시점 (중생은 영이 아니고 마음이 아닌지? - 관)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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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에 감사드리며 한가지더 중요한 문제라 질문을 드립니다.
영의구원을 우리는 전혀(거의)모른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영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마음이라는 말씀하셨는데, 로마서에보면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저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에게 먼저라는 곳은 살펴보지를 못했습니다. (혹있으면 부탁드립니다.) 할례도 마음이고, 윗구절 처럼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 에게서 해방 이라 하였습니다, 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또한 성령도 우리의 마음에 주셨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하였고 그편지는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육의 심비에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도 우리마음에 비취셨다 했습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아들의 영을 분명 우리 마음 가운데 보냈다 했습니다.

저가 보기에는 구원의 말씀을 우리가 받듣지 아니받든지 역사는 마음속에다 하는 것 같은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2005-01-11 15:19: 6
yilee [ E-mail ]

이번 주제는 2가지 다른 교리 문제를 동시에 놓고 보셨으면 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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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문

차분하게 연구해야 할 대화 주제이므로, 서론도 붙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질문 속에 반론적 내용이 많은데도 질문형식으로 지적하심을 감사합니다.

누구 말이 맞느냐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정말 어느 것이 옳으냐가 우리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여러 성구들은 백영희교리체계에 대하여 일반 신학자들이
반론을 할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제기된 성구와 내용들입니다.

질문자를 상대하는 동시에, 평소 일반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들이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백영희교리체제를 비판할 때 표현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의식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질문자 한분을 직접 상대해서 답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답변이 약간 옆으로 나가더라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1.성경의 가르침 또는 해석의 발전사

①성경에 간단하게 표시되어 논란이 없는 것은, 고대교회 때부터 상식으로 내려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누구냐는 것은 성경에 명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아무 논란이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 저자가 누구냐는 것도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②성경에 분명하게 명문이 되어 있지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유다서를 기록한 분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유다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어느 야고보의 형제 어느 유다냐는 문제를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 해서 이단으로 정죄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를 설명하는 그 사람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와 방향은 알 수 있습니다.

 

③성경에 분명하게 명문이 되어 있지 않으나,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안식교애서는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주일로 바뀐 명문을 제시하라고 늘 교회를 향해 요구하지만 아직도 교회는 명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단정하는 교리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 교리 중에서 왜 66권만이 성경이냐, 왜 하나님은 삼위일체냐, 왜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는 주일이라고 주장하느냐 라는 아주 중대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이 교리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에 분명한 명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교리들은 성경에서 명확하게 찾아낼 수 있고 또 이 교리들은 기독교의 근본을 규정하는 교리들이기 때문에 이 교리에 틀리면 이단이라고 서슴치 않고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성구를 근거로 영의 중생을 기본구원으로 주장하느냐는 것은, 성경에 명문이 없지만 성경에서 명확하게 찾아낼 수 있는 교리입니다. 다만 앞에서 설명한 교리들은 그 교리들을 반대하면 이단이 되지만 '중생된 영'에 관련된 교리는 신앙의 깊이의 문제이지 이단이라고 규정지을 교리는 아닙니다.

 

④성경의 깨달음과 해석의 발전 방향

성경에 간단하게 밝혀져 있는 것은 성경 상식입니다.
성경의 표현이 서로 다르거나 성경에 관련 기록이 아예 없는데, 성경 전체를 통해서 찾아내야 하거나 찾아낸 것이 있다면 이것을 교리라고 합니다.

교회는 모든 면으로 발전하지만
교회의 모든 발전의 가장 중심에는 교리가 있습니다.

교리의 발전은 성경의 명문을 찾아내는 성경상식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고

나타나 있는 성구들을 통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66권만 성경' '삼위일체'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그러한 것이고

'중생된 영'과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가 그러합니다.

 

⑤따라서 교리를 살필 때는 '성구제시'를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 홈에서 가장 중점에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백영희교리체계'입니다. 그리고 이 교리체계에서는 성구 인용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박형룡조직신학 벌콥조직신학 등 수많은 조직신학서들을 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불만스러운 것은 성구들을 너무 쉽게 너무 생각없이 너무 난잡하게 늘어놓았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무시해서 성경을 보지 않는 죄와 성경을 옆집 똥개 부르듯이 함부로 대하고 사용하는 죄는 같은 죄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발표되는 글은 백목사님 자신이 적은 글로부터 이 홈에 적는 글까지, 정통 백영희신앙노선의 글들은 성구 인용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일반 다른 곳에서 보면 성구 인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이상스럽게 생각할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백영희신앙노선만큼 성경중심 성경절대를 생활화하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성구를 대할 때,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기 위해 성구를 아무렇게나 집어다 사용하는 면을 조심하기 때문입니다.

 

2.질문에서 소개한 성구와 그 해석 - 롬2:29, 롬6:17, 롬10:10, 고후1:22, 3:3, 4:6, 갈4:6

①상기 성구는 성구를 보시기 전에, 이분설과 삼분설의 입장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소개하신 여러 성구들은,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만 되어 있고 중생의 모든 역사는 우리 마음에 먼저 시작되고 마음이 앞서 믿게 되면 몸도 믿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방향에서 제시되는 성구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구들을 인용하기 앞서 먼저 생각하실 부분은,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몸과 마음으로만 되어 있는가 라는 삼분설과 이분설을 먼저 해결해야 이 성구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삼분설이 맞다면, 마음에 이루어지는 이 모든 작용은 이미 영의 중생이 먼저 있었고 영의 중생에 이어 마음에도 중생의 여파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세상에 다 둘 수 없는 분량이므로 우리에게 최소한으로 줄여서 적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아담이 둘만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른 자녀도 있지만 그 중에 2명에 관련된 사건을 기록했다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쫓겨날 때 또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 한 것을 보니까, 창세기4장의 2명 출생 기록은 '2명만'이 아니고 여러 자녀 중에 '2명의 기록'일 뿐이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위에 예를 든 여러 성구들은 성구의 표면만 보면 사람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고 중생은 마음에 먼저 일어나는 작용이고 마음이 믿게 되면 몸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구는 사람에게 '영이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에게 영과 마음과 몸이 있지만 그 중에 마음과 몸의 두 요소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성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인과 아벨 2명만 낳았느냐 아니면 다른 자녀들도 낳았느냐는 여부는 창4:1-2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4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위에 예를 든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여러 성구들은 성경 다른 곳을 살펴서, 사람에게 몸과 마음 2가지만 있다면 질문자께서 제기하신 내용이 바로 정답이 되겠고, 만일 사람에게 몸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영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리고 그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주격이라고 한다면 위의 모든 성구들은 전부 영이 먼저 중생되고 난 뒤 마음과 몸에 일어나는 일들이 이 성구들은 믿은 이후 우리가 어떻게 믿는 것이 옳으냐는 것을 안내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②상기 성구는, 구원이 사람의 노력인지 전적 은혜인지 라는 시각으로도 보셔야 합니다.

이번 제시한 성구와 질문 내용에 있어서는 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결과제거나 적어도 필수사항인지, 아니면 사람의 구원은 무조건 하나님이 주셔서 받게 되는 전적 은혜인지.

위의 성구들 중 일단 롬2:29, 6:17, 10:10 등 3곳의 성구들은 전부 구원은 사람의 노력해서 이루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적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고 사람은 죄를 지어 죽어 있던 존재이므로 신앙에 관한 한 스스로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고 객관의 하나님께서 살리면 살아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성구들은 전부 중생의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 후 마음에 일어나는 중생 이후의 여러 건설구원에 관련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성구 3개 이외에 말씀하신 고후1:22, 3:3, 4:6, 갈4:6 등의 성구들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친히 먼저 역사하심을 말씀했는데, 성령이 우리 마음에 역사한 이 성구들을 통해서 사람에게는 마음만 있고 마음 속에 영은 없다는 성구로만 해석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가인과 아벨의 성구처럼 조금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셨다는 이 성구는 성령과 우리 마음 사이에 영이라는 존재는 없었음을 말하는 성구일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 있는 영을 기록하지 않고 생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③성령의 중생 역사는 우리 마음에만 역사한다는 것이 성경인가?

성경은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만 된 물질만의 존재로 가르치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된 물질과 영물로 된 영의 결합 존재로 가르친다고 한다면, 위의 성구들은 '영'이 없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일어나는 구원역사에 대하여 가르치는 성구들일 뿐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물질로 된 마음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영적 존재가 따로 있다고 가르친다면 이번 질문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사실 질문할 가치조차 없다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 수도는 서울이라고 명문해 놓은 헌법조문이 없다면, 그 사실은 한국에 수도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굳이 명문으로 적을 필요조차 없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잠깐 살다가는 물질의 행동에 관련된 것을 적어놓는 헌법과 법률도 모든 것을 다 적지 못해서 최소한만 적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 은혜요 인간은 육체의 동작 뿐 아니라 마음의 수고까지도 이 구원에 어떤 인간의 노력과 수고를 개입시키지 않고 전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과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으로 된 물질만이 존재하느냐는 문제로 이번 성구를 연구해 보신다면, 의외로 모든 것은 쉽게 풀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전적 은혜라는 면과 인간의 영에 대한 삼분적 존재라는 면은 이 홈의 /연구실/정리/주제3. 교리/에서 살펴보았으므로 더 자세한 것은 그 자료를 먼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3.주신 질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직접 설명을 드린다면

①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을 존재적으로 말한다면, 영의 유무입니다.

기능의 탁월을 두고 말하지 않고, 존재 구성요소를 가지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한다면 영의 유무입니다. 짐승도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는 존재를 만일 영적 존재, 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일반 신학은 짐승도 영육으로 된 존재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는 반론이 필요없는 전제이므로, 사람의 마음은 물질임을 알 수 있고, 사람 속에는 물질로 된 몸과 마음 외에 영으로 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②죄를 짓고 즉시 죽은 부분과 죄를 짓고도 여전히 살아 있는 부분으로 구별한다면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은 것은 영이 죽은 것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몸과 마음은 동일하고, 믿는 사람도 믿기 전과 믿은 후의 마음은 여전히 그 마음 그대로입니다. 다만 믿고 나서 말씀으로 점점 깨끗하여 지고 있는 것이 믿기 이전과 다를 뿐입니다. 영의 중생은, 물질인 몸의 오른 팔은 살아 있고 왼 팔은 죽어 있는 것처럼 영의 어느 부분은 살고 어느 부분은 죽는 것으로 분리되어 진행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영이라고 한다면 우리 영의 어느 부분은 살아 있고 그 옆에 다른 부분은 죽어 있는 것으로 설명을 해야 합니다.

 

③롬8:16에서 성령이 우리의 먼저 살아난 부분을 붙들고 다음 부분을 타이르고 있습니다.

위에서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모든 지적 또는 질문에 대하여 롬8:16로 안내를 드렸으면 합니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는 성구가 있습니다. 성령은 두말 할 것 없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성령에게 붙들려 함께 역사하는 존재는 먼저 살아난 영입니다. 그리고 그 영은 지금 우리 안에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부분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을 질문자께서 고후1:22, 3:3, 4:6에서 읽으신 것입니다. 영이라는 말을 중복하지 않았지만 롬8:16에서 성령이 우리를 구원할 때 먼저 영을 살리고 그 영을 붙들고 우리 속에 그 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부분을 향해 다시 한번 더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고린도후서 말씀들에서는 성령이 마음에 직접 역사하시는 모습만 적고 영이라는 부분을 제외했는가? 성경의 단축 기록이며 중복 기록 회피 원칙 때문입니다. 또한 롬2:29, 6:17, 10:10 말씀들은 구원은 전적 은혜라는 대원칙에서 함께 풀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혹 롬8:16의 '영'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원어 단어를 가지고 반론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첫 부분부터 이어내려 오면, 한글로 번역할 때 어떤 단어로 표현되어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사람 안에서 영적 존재인 '영'과 물질로 된 '육'을 구별해 낼 수 있고, 육은 또다시 '몸'과 '마음'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에서 사용된 '육' 또는 '몸'이라는 표현은 몸과 마음을 함께 묶어 물질의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육신의 생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영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에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 부분만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이라는 말씀에서 막히게 됩니다.

 

4.평소 정리 되어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소개해 드렸습니다.

성경 중의 지극히 일부분만 가지고 잠깐 살펴보았으나, 칼빈 이후 기독교 기존 교리체제를 완전히 새로 쓰야 할 사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좋은 성구와 깨달음들이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이 노선 내부에서는 벌써 45년째 확립되고 검토되어 단정하고 있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그 10배가 되는 세월인 450년 이상을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고 버텨온 일반 교리체계로서는, 그렇게 쉽게 이 교리를 그들 교리가 발전할 다음 단계라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005-01-12 00:20:17
지나가는이

Re: 한번더 질문 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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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답변에 감사 드리며 이제 편의상 제가 쓰기 편한대로 서술하겠습니다.
양해를 바라는 바 입니다.

제가 질문한 내용이 영에 관한내용이 없어서 혹 마음과 영을 하나로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저는 성경에 영,마음,몸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는데 대하여 굳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분설,삼분설, 그런 체계, 학문, 논리등에는 접근하고 싶지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거는 다 복음이외의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대하는데 장해 요인만 될 뿐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책이요. 그분을 향하여 가는 척도요 이외에 더정확한 대안이나 다른 매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없으리라 생각함에는 이견이 없으리라봅니다.

저가 질문한 것은 영이 살아나는 것을 우리가 전혀 모른다고 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이 영이 먼저이고 그것을 우리가 알지를 못한다면 사도 바울, 베드로 스데반 집사등 이 무엇 하러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러 다녔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있다가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 주일성수,헌금,봉사등만 가르치면 되지않겠습니까? 한데 그들은 모든학문,철학,교리,율법,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 곧 예수에 대하여 그의 죽으심 부활 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목숨까지도 아끼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적하나님의 은혜라 함은 영의구원을위함이? 우리의 노력이 전혀아니라 전적은혜(공짜)라는것가 아닌가요
전적은혜라고 복음을 전하지 말고 영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말이 아닌줄로 앎니다.

이제 저가 하고싶은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전하여 졌다 하는 말이 너무 유치 할 수도 있겠으나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구원 받은 우리가 마음,몸의 구원에 자주 실패하고 더 이상 전진이 없는 성도를 향하여 바울의 간절한 권고의 말씀을 기록한 부분으로 인정되는데 여기는 영,육,영의 생각 ,육의생각 이라는 단어가 주를 이루고 27절에(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하고 마음이라는 단어는 한번 나옵니다. 그러나 영,마음,몸의 변화를 이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영의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씀이고 그런 사람은 몸은 죽은 상태이고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아있다는 말씀인데

이제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영이 살아난 것은 분명히 “의”를 인하여 살았다 했고
그 “의”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는 예수의 죽음 부활 을 믿음이 의 아니겠습니까

다시 지난번 질문에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이제드리고 싶은 말씀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함이라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그것자체가 의이고 그의로인하여
영이 살아난다는게 제의견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성경에서 인정된바를 기록한 것 뿐입니다.

곧 저의의견은 그리스도의말씀이 마음에 역사하고 그로 인하여 믿음이 생겨지고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의라 하시고 그 의로 인하여 영이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살아난 영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완전승리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영이 주인이요 제일입니다 그 다음이 마음,생각 등 이요, 그 다음이 육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구원은 영이 주체가 되어서 아직 많이 남아있는 마음과 몸을 구원하여 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데로만 말씀 드렸습니다.

앞번 답변에
(창4:1-2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4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고하심에 저도 동감하고있습니다. 제가 창4:1-2만 같이 애기하고있다면 14절과 같은답변을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는 바는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답변을 바랄뿐입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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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요청으로 해당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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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05.1.12.

번호: 4690번

글쓴: 지나가는 이

제목: 수정요

앞글에 잘못 올린 글이 있어 수정을바랍니다

앞글
<...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으리라봅니다...>

수정
<다만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책이요. 그분을 향하여 가는 척도요 이외에 더정확한 대안이나 다른 매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없으리라 생각함에는 이견이 없으리라봅니다.>

 


2005-01-12 12:13:14
yilee [ E-mail ]

성경만이라는 전제를 달아주신다면, 설명은 아주 쉽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사도행전-]/[-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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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으로만 구원의 과정을 다시 한번 설명드린다면

①죄를 짓자 바로 죽은 것(영)이 있고, 죄를 짓고도 살아 있는 것(마음, 몸)이 있습니다.

창2:17에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습니다. 롬5:12에서 이 아담의 행위는 사망의 죄였고 이 죄로 모든 사람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창3:4에서
뱀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했습니다. 이 뱀은 계20:2에서 마귀라 했습니다.

마귀는 죄를 지어도 죽지 않으리라 했고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창4:1 이하 오늘까지 인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죄를 지어 즉시 죽은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만 된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 외에 또 하나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②예수를 믿으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난 것이 영입니다.

엡2:1에서
죽었던 우리를 살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 몸과 마음이 살아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살린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니고 몸과 마음 외의 다른 것입니다.

요3:6에서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육이 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영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③성령이 가장 먼저 살린 것은 영입니다. 성령의 첫 역사는 영입니다.

요3:6에서, 부모는 영이 죽어 있고 몸과 마음만이 움직이는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 자녀가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이 그 자녀의 죽은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롬8:16에서, 성령이 먼저 살아난 영과 함께 우리를 살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우리에 포함되는 것은 몸 뿐인가? 아니면 마음도 함께 포함이 되는가? 롬8:6에서 '육신의 생각'이라고 그 범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몸과 마음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몸과 마음이 예수님 없이도 6천년 동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불신자요 우리가 믿기 전의 상태입니다. 믿고 나서도 '육신의 생각'으로 죄를 짓습니다. 몸과 마음이 합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몸과 마음을 롬8:16에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에 붙들려 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그렇다면 질문자께서 예를 든 고후1:22, 3:3, 4:6, 갈4:6에는 '영'의 역할을 뺐는가?

행28:25에서 이사야서의 기록은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행전이 기록되기 이전 사복음서인 마15:7, 막1:2, 7:6, 요12:39, 41 등에서 이사야의 글, 이사야의 말이라고 이사야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로마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행28:25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사야서를 예수님이나 바울이 인용할 때 '성령'을 빼고 그냥 '이사야'가 말했다고 해도 성령을 빼고 이사야라는 이름만 남겨둔 뜻을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이 우리 영을 마음보다 먼저 살린 것은 이미 많은 성구에서 살펴보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먼저 살아난 영과 우리 육신의 생각에게 역사한다는 성구도 살폈습니다.

바로 이 성구들이 질문자가 찾아서 소개한 본문들과 한 자리에 놓고 살피면

질문자가 이곳에 지적하신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영을 먼저 살리시고, 이 부분은 전적 은혜로 주신 구원이고
성령이 영을 통해 마음을 살리시고, 이 부분부터는 인간의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의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부분이니 고전3:10 이하의 건설구원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곳곳에 얼마든지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에 '영'의 표현이 빠지고 성령이 우리 마음에 직접 역사하는 표현이 있는 성구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이 빠진 부분을 다른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읽을 줄을 모르고 '성령이 마음에 직접 역사'했다는 질문자 제시하신 성구만 가지고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면, 이사야가 말했다는 성구들만 가지고 이사야서는 인간의 문학작품이므로 실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신신학의 논리전개와 같은 우를 범한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이제 이 홈에서 주장하는 바를 성경으로만 살펴보았습니다.

질문자께서 이 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으로만 증명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누구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은 옳지 못한 자세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66권으로 된 많은 분량이므로 누구의 말이 틀렸다고 전제하고 그 전제를 맞추기 위해 찾아내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찾기 위해 발족된 여호와의증인과 같은 집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신앙노선은 기존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지 않았고, 일반 교리체계에 문제점이 있지 않느냐는 가정을 먼저 두고 그 가정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식하고 가난하고 산골짝에만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성경 하나만 전달받고 그 성경 하나만을 가지고 읽으며 깨달으며 알게 된 것을 먼저 확립해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후에 일반 교리체계를 들을 기회가 있어 비교를 해 보았고, 비교를 하면서 성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용 중에서 유아세례나 장로제도 등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은 장로교의 상식인데도 거부했고 그대신 거의 모든 교리들은 이 노선에서 깨달은 것과 신기하게도 너무 같았기 때문에 이왕이면 그 표현과 단어를 선진들이 먼저 만들어서 일반인들이 상식으로 알게 된 것을 존중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건설구원이나 영의 중생에 관련 된 부분 그리고 마음과 몸을 차례로 성화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일반 교리가 거의 흑암 상태로 남겨두었는데 이 노선에서는 그 부분을 일찍부터 확인하고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 선진들의 단어를 활용할 수 없어 몇 가지 새로운 표현을 사용한 정도입니다.

 

3.질문자께서 성경으로만 답변을 하라 해서 그리 했습니다.

우선 원하시는 대로 답변자가 노력했으므로, 한 말씀을 덧붙이겠습니다. 이 홈은 조금만 살펴보셔도 성경유일주의와 절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줄을 파악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외에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상관이 없는 보조 참고 자료로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조 참고 자료 중에서도 백영희 관련 자료만 제공하고 있는 것은 그 자료만이 성경 유일주의와 절대주의에 참고가 될 정도이고 그 외의 자료들은 성경 유일주의와 절대주의를 너무 무시하고 신학제일주의 신학자추종주의를 철저하게 따르기 때문에 소개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성경제일주의 절대주의를 지키고 있는 홈에다가 '성경만으로 답변'을 하라 하시면, 사실 대화를 대화로 풀어가지 않고 논쟁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판사에게 법대로 판결하라고 말한다면 왜 법을 어기느냐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판사는 그리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곳은 성경을 떠난 것이라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극단적으로 없애버리는 곳입니다. 반대로 이곳에서 언급하고 사용할 때는 시간 관계상 일일이 설명을 드리거나 표시를 하지 못한다 해도 성경으로 확신을 가진 것만 발표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곳에서 질문자께 삼위일체를 성경으로 증명하라면, 질문자께서는 증명이 가능하시겠는지요? 기존 교리의 삼위일체가 성경으로 증명을 한 것이라고 인정하신다면, 이미 답변자의 설명은 질문 내용을 성경으로 증명한 것이 됩니다. 만일 답변자의 설명이 성경이 아니고 교리일 뿐이니 성경의 명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신다면 질문자께서는 현재 삼위일체를 성경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신학의 상식인 교리 수준에서 믿고 계신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말을 해야 성경 근거가 되는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최소한 성경 66권을 인정하는 것과 삼위일체 등과 관련된 논리 전개는 우리가 성경을 근거했다고 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전제가 질문자와 답변자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먼저 양해가 되고 이해가 된 상태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수많은 주제를 가지고 문답을 하고 있습니다.

자꾸 이단들을 거론해서 죄송하지만, 이단들의 공통적인 대화 방법은 자신들의 교리는 설명으로만 이어가고 정통 교회들의 교리는 성경 명문을 대라고 합니다. 이단 뿐 아니라 정통 교회 내의 교리 논쟁에서도 얼마든지 성경을 가지고 서로 연구하며 비교하는 것은 좋지만, 양측의 동일한 설명에 대하여 자신의 설명은 성경 명문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차원에서 설명하는 상대방에게는 성경에 그 말이 맞다는 단어나 표현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 노선의 건설구원 단어를 두고 성경에 '건설구원'이라는 말이 없으니 이단이라고 말한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전문가들에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으니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한국의 모든 교회를 당신은 이단이라고 정죄했는가 라고 되물은 적이 있습니다.

 

4.이 홈의 성경유일 노선을 믿지 못하신다면, 대화 자체가 곤란합니다.

지금 질문자 한 분만을 상대하지 않고 이 홈을 이용하는 일반 교계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교리체계의 선입관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지켜보는 다른 시선을 완전히 제외시키고, 질문자와 답변자 사이에 오직 성경만으로 대화를 하자고 제의한다면, 사실 설명은 너무 쉽고 간단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교훈과 교리는 신학의 기초조차 배우지 않고 성경으로만 먼저 깨닫고 확정시켜놓았다가, 이후 일반 신학교리를 접촉하며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같은 부분이 거의 전부였고, 몇 곳에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일반신학과 비교할 때 일반신학이 발전할 방향으로 한 걸?더 나간 정도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노선은 일반 신학과 일반 교계를 선진들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수많은 세월에서 증명이 된 것처럼 이 신앙노선은 교계의 비판이나 시대의 흐름에 옳고 그른 것을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옳다 하면 서슴없이 고치고 나온 것이 이 노선의 오늘까지 걸음입니다. 이런 이 노선이 그 노선의 이름에 '예수교장로회'라는 성을 고수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이런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답변자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홈은 '성경 절대' '성경 유일' '성경 전제'로만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신학의 기초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욕을 한다고 들릴까 해서 표현상 조심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홈은 신학교가 없어져야 하고, 신학교수라는 직업이 없어져야 하며, 총회 노회라는 교회 체제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표현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은, 이 홈의 처음부터 이제까지 자료제공이 그런 방향을 가르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고성까지 곁들일 것이 없어 자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성경만을 근거로 말씀하자고 하신다면, 이 노선의 교리체계와 행정방향은 더 없이 좋습니다. 사실 일반교리체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외부인들 때문에 일반교리체계를 인식하면서 설명을 드리려고 하니까 늘 사울의 갑옷에 눌려 자유하지 못했던 다윗의 삼상17:38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5.성경으로만 대화하자고 발언하실 때, 이런 점을 고려해 주셨으면

성경 해석은 성경으로만 합니다.
신학서나 설교록이나 세상 어문사전은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동의하시면 그다음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전제조차 의견을 달리 한다면 여기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이 홈은 성경 해석은 성경으로만 해야 한다고 믿는 곳입니다.

성경 해석은 성경으로만 해야 한다면
한 성구의 뜻은 성경 전체 다른 성구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한 성구 한 성구도 우리에게 주신 진리지만, 한 성구는 성경 다른 부분 전체와 진리로 하나되어 있습니다. 만일 전체 성경과 맞지 않는 한 성구가 있다면 그것은 읽은 사람이 잘못 읽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모처럼 감정적 논쟁이 아니라 연구적 토론으로 이 문제를 지적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답변자로서는 반가웠습니다. 이번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이 홈의 노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교단의 교인들이 자기 교단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듯이 성경적 검토도 없이 이 노선을 믿고 그냥 좋아서 외우고 따르는 식이 많습니다. 또 이번에 지적하신 부분들은 이 노선을 반대하는 분들이 거론할 때는 자기 귀는 막고 자기들의 입만 열고 고함만 지르다가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이번 질문자의 자세와 방향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홈의 답변 역시, 특히 교리에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는 항상 객관적인 설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공회 내부에서는 이 홈의 논조를 회색분자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2005-01-18 17:14:28
지나가는이

성경해석은 성경으로만 합니다

 

 

답변에 감사 드립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제나름 대로 열심히들 믿고 나가고 있읍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교리들도 신학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리도 신학도 완전은 없습니다.

성경만이 완전이겠죠.

특히 교리,신학등을 정립하는사람, 또는 따르는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잘 정리 한다 해도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한다면 그게 바로 이단이겠죠.

세상의 최고는 될 수 있어도 완전은 될 수가 없으니까요.

내게 맞지 않는다고 내것 만은 굳게 지키고 최고의 것이니까 남을 이해만 시킬 려고 한다면 그게 하나님 앞에서 너무 위험한 걸음이 아닐까요.

지금 세계는 신앙적으로 너무 위험한 상황입니다. 말씀의 기갈 이라 함이 실감이 됩니다.
자기하고 틀리면 일단은 이단이라 하고 봅니다.

제가 이 홈에 질문을 한 것은 다른 신앙과는 뭔가 다른점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질문을

했읍니다

그런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바로 앞번 질문의 핵심은 영과 마음 중 어느 부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접근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분설 삼분설을 질문 하는 게 아닙니다. 또 제가 영을 부인하거나 마음을 영으로 생각하는 그런 애기 아닙니다.
저는 성경의 근거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역사하고 그로 인하여 믿음이 생겨지고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의라 하시고 그 의로 인하여 영이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성구들을 예로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영이 살아 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을 증거하고 무엇을 전도 한단 말입니까? 본인도 잘 모르는 영을 어디에다 어떻게 증거 한단 말입니까?

일반적인 답변에 대하여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성경으로 답변하신 몇구절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답변에
<①죄를 짓자 바로 죽은 것(영)이 있고, 죄를 짓고도 살아 있는 것(마음, 몸)이 있습니다. 창2:17에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습니다. 롬5:12에서 이 아담의 행위는 사망의 죄였고 이 죄로 모든 사람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창3:4에서 뱀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했습니다. 이 뱀은 계20:2에서 마귀라 했습니다. 마귀는 죄를 지어도 죽지 않으리라 했고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창4:1 이하 오늘까지 인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죄를 지어 즉시 죽은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만 된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 외에 또 하나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라고 답변 하신데 대하여 제가 질문한 답은 없네요.
제가 질문한것은 영이 죽었냐 살았냐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답변을 하셨으니 한말씀 더드리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죽었읍니까? 영이먼저죽고 마음몸이 죄를 범하였음니까

아니면 마음에서 하나님 될려고 하는 교만과 그로인한 선악과를 따먹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와 행동으로 옮기고 영이죽었습니까

성경은 분명 마음에서 사단의 역사가 시작되고 그다음에 영이죽었다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이제 죽었던 모든 사람도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역사하고 영이살아 나야하지않겠습니까?

또 답변에
②예수를 믿으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난 것이 영입니다.

엡2:1에서
죽었던 우리를 살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 몸과 마음이 살아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살린 것은 몸과 마음이 아니고 몸과 마음 외의 다른 것입니다

.

답변자께서 분명 예수를 믿고 살아난 것이 영입니다.하셨고 인용한 엡2:1절에 이어 8절에도 분명 <그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무엇이 믿는 겁니까? 마음으로 믿는게 아닙니까? 진정한 믿음을 체험한자는 감히 영의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답변에 요한복음 3장 6절을 제시했는데 여기도 답은없네요.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육이 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영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③성령이 가장 먼저 살린 것은 영입니다. 성령의 첫 역사는 영입니다.

요3:6에서, 부모는 영이 죽어 있고 몸과 마음만이 움직이는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 자녀가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이 그 자녀의 죽은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하셨는데 이말씀은 니고데모가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듭나야한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관원인 니고데모가 아직 육으로 난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어떻게 거듭 날수 있느냐고 다시 묻고 있습니다.

6.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7.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여기에 주님이 성령으로 난사람 곧 영이 살아난 사람은 바람이 부는 느낌을 분명 알지마는

그러나 그 바람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게 성령으로 난사람 이라 했고, 다 이러하다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이 무언가를 몰랐읍니다. 곧 영의 살아남을 느껴 본적이 없다 함입니다.
영의 살아남을 바람의 느낌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했습니다.

죽은 영이 먼저 살아나고 그다음에 영의 인도를 받아 육이 살아난다하는 것이 세게적 교리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하는핵심은

1.그영이 살아 날 때 살아나는 영을 우리가 아느냐 모르르냐 (느끼느냐 못느끼느냐) 하는것과

2.하나님께서 마음에다 말씀을 역사 하시고 영을 살린다 하심에 대한질문입니다.

<성경 해석은 성경으로만 합니다.> 라고 하신 답변자 께서 성경으로 답변을 바라는 질문을 이상하게
생각하신다면 그게 이상하지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말씀으로 답변하심에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홈을 관리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여 이홈에서 사용하는 기본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제 다시는 어떠한 답을 하셔도 질문이나 대답을 안할겁니다.

이번 글도 올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혔으나 주님주신 마음이 있어 많은 생각끝에 올린겁니다.

주님의 진정한 평안을 바랍니다.

 


2005-01-21 17:02:27
yilee [ E-mail ]

시간을 갖고 살펴보겠습니다.

 

 

1.충분하게 답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질문자께서는 답변자의 답변이 질문과 관련이 없다며 몇 가지 예를 드셨는데
답변자 생각에는 질문하신 내용을 잘 파악하여 답변을 잘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일단 질문자께서 아니라고 하시니, 다시 한번 시간을 갖고 문답 내용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2.답변자가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여 남을 설득하려고만 든다고 하신 말씀은

이곳 게시판 성격을 참고 하셨으면 합니다.
질문자께서 이 게시판 바로 밑에 있는 '발언/주제연구'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면

서로가 같은 입장에서 토론으로 진행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께서 '문의답변'이라는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게 되면

질문자께서는 잘 몰라서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답변자는 질문자께 답변자 아는 범위에서 이 노선상의 입장을 안내하게 됩니다.

이 게시판 운영자는 이 홈의 여러 곳에서 그 수준과 시각 등 모든 면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답변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질문하실 분은 질문을 하시고, 답변자는 아는 대로 힘써 답변을 드리겠다 하여

이 게시판이 운영되고 있다면?

당연히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면을 두고 답변자가 자기 아는 대로 열심히
설득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현재까지 깨달은 것을 두고 자기 자신부터 확신이 없다면

문답방 게시판을 운영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답변자 생각입니다.

문답방에서 질문하시는 분이, 답변자에게 왜 질문자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답변자가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여 지키려고만 하느냐고 책망하신다면

답변자로서는 문답방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곳이 아니냐고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3.답변자가 혹시라도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줄 아셨다면, 오해십니다.

질문자가 말씀하신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질문자 지적이 성경을 너무 몰라서 오해를 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리고 답변자가 제시한 성구나 성경 깨달음은

답변자 생각으로 질문자의 지적에 대하여 충분히 답변이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런데도 답변자가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요?
차라리 이 홈의 답변자가 깨달음이 어려서 답변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신다면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질문자 말씀은 성경에 맞고, 답변자가 성구를 가지고 설명한 것은
무조건 틀렸으니 고치라 하시고, 답변자가 성경에 옳은 깨달음이므로

고칠 수 없다고 하니까, 완전은 없는데 왜 자기 것만 굳게 지키려고 하느냐고 위험한 길이라 하시면, 그렇다면 답변자가 성경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질문자 말씀은 무조건 따라가야 위험하지 않을 길이라는 말씀이 되는데...

현재 질문자와 답변자의 주장이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대화를 했지만 서로의 깨달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날 때에는 조금더 두고 보셨으면 합니다.

이 문답방 게시판에서 소위 '질문자'라는 자격으로 들어오신 분께
답변자로서도 답변자의 입장만 소개하고 있는데

질문자의 자격으로 들어오신 분이 답변자에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질문자가 성경은 이렇다 하면 답변자는 무조건 생각을 바꾸라고 명령한다면

답변자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을 바꿀 것으로 보셨는지요?

차라리 수고스럽더라도
토론방으로 자리를 옮겨

왜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말씀이 옳은지

좀더 자세하게 좀더 잘 설득을 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4.어쨌든 한 가지 죄송하고 양해를 구할 것은

이 홈 초기에는 어떤 질문이든, 답변자로서는 재론이 필요없을 만큼 충분하게 설명을 드려서 많은 자료가 모여지게 되었습니다. 5년 정도 세월이 지나면서 최근 질문들은 과거 이 홈에 올려던 수많은 자료와 설명을 근거로 재론이 필요없을 만큼 되었다고 생각하여, 답변을 최대한 짧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질문하신 내용은 이 노선에서는 수십 년간 너무 많이 검토해 왔고
그래서 더듬을 것이 없을 만큼 연구하고 따져본 문제이므로 답변을 하면서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질문자는 심각하신지 몰라도

답변자로서는 너무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이 되어, 질문자께서 반복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자세를 두고, 그냥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답변자의 설명이 부족하고 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답변자도 죄송스럽고
한편으로 이미 설명드린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혹시 질문자께서 무슨 선입관을 갖고 계셔서 그런가 하고 생각도 했습니다.

어쨌든, 영의 존재를 따로 인정하는 분이 하나님께서 영보다는 우리 마음에
먼저 역사를 시작한다고 반론한 것은 답변자 기억으로 처음입니다.

답변자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질문자께서는 너무 확신을 하고 계시니

다시 한번 여러 면으로 연구해 볼 과제로 두고 생각하겠습니다.

답변은 언제 올려질지 모르겠습니다.
기존 답변에 추가할 내용이 별로 없다 싶으면 그냥 이 글로 끝내고

만일 답변자가 질문자 지적처럼 잘못된 것이 깨달아진다면

이 홈은 자기 잘못을 알리는데 주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게시판 제일 앞부분에 오랫동안 공고를 계속 올려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답변자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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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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