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초교파적 성향을 가진 목회자?
2004-11-26 00:30:38
(개인메일)
[노선] 초교파적 성향을 가진 목회자?
목회자로서, 소속 교단을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동시에 초교파적인 입장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요?
2004-11-26 18:39:22
yilee [ E-mail ]
초교파신앙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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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세를 굳힌 단어 '초교파'
이전에는 목회자가 어느 교단 소속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 했고 또 교단의 행사를 하면서 자기 교단이 주최하는 것임을 자랑스럽게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초교파 행사라는 단어가 훨씬 상위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이 아는 개념과 이곳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장단점을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현 교계 분위기의 대세는 '초교파'라는 단어가 대기업처럼 사용되고, 교단의 내부 행사는 초라한 중소기업 차원처럼 들립니다. 어디든지 초교파적 입장을 밝히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같고 교단 소속과 그 노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 좁고 못난 시골사람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2.소속 교단과 신앙노선을 잊어버린 나쁜 의미로서의 단어 '초교파'
그러나 이곳은 '교단'이라는 의미를 '신앙노선'이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지 않고 속했다 해도 한번 속했으면 신앙노선 차원에서 자기 교단을 상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신앙노선이란 이 땅 위에 무엇이든 그 노선을 위해서는 다 포기하고 다 버릴 수 있고 마지막에는 자기 생명까지도 그것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사참배는 틀렸지만 현직 담임목회자라는 막강한 이권을 버릴 수 없어 신사참배가 틀렸다는 신앙노선을 접고 그대신 세상 어떤 것을 확보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탈선이라고 합니다.
초교파라는 단어가 가장 나쁘게 쓰이는 경우는 자기 교단 소속을 망각하고 사용할 때입니다. 목사는 하나님 종이고 다른 종교의 교리와 운동을 가로막고 그들을 이쪽으로 끌고 와야 하는 일선 전투사령관이라는 뜻인데, 소속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생명바쳐 노력할 길을 망각하니까 중들과 신부들과 한 자리에 앉아 희희낙낙 차를 마시며 '공동관심사'라는 것을 위해 같은 일을 하는 망령을 부리고 있습니다. 범위를 좁혀서 기독교 내부에서라도 각 교단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교단의 장점과 주임무가 있습니다. 교단이란 그 노선에 자기 평생과 생명을 바쳐가야 할 옳고 바른 점을 발견했고 좋아서 그 길을 걷게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만일 이런 교단이라는 의미, 이런 교파라는 뜻을 모르고 요즘 우리 교계의 가장 통큰 단어가 초교파니까 어떤 교파든지 무작정 모여서 숫자만 부풀리고 세상 정치세력처럼 힘만 과시하면 되는 줄 아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초교파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 교계에서 사용되는 '초교파'는 이곳 신앙노선에서 거의 다 잘못된 삐뚤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보험모집원으로 자주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그 중심과 사랑이 일편단심 남편 뿐이라면 그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기 남편과 가정을 위한 일입니다. 반대로 보험모집원이 사업문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고 말은 하는데 누구집 여자인지 누구 아내인지도 모를 만큼 이 남자 저 남자와 밤낮으로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면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현 교계의 초교파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모습이므로 이곳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3.자기 노선과 자기 소속이 분명하다면, 반드시 가져야 할 단어로서 '초교파'
자기가 속한 자기 교단 자기 신앙노선은 자기가 목숨 바쳐 걸어가고 싶은 자기의 구원길인데, 혹 하나님께서 다른 교회 다른 교파에다가 자기 신앙노선에서는 알지 못했던 장점을 주셨다면 그곳의 장점은 하나님 주신 것이고 그 장점을 본받고 수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자존심이고 뭐고를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면 부러운 것이고 그것이 자기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울타리가 가로막고 어떤 희생을 각오해도 그것을 가져오고 싶어 무릎을 꿇고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초교파'라는 단어가 좋은 뜻으로 사용될 때는 우리가 가져야 할 바로 이런 자세를 두고 표현될 때입니다. 고신교단의 장점이 순교적 신앙이지만 교인쟁탈전이 벌어진 마당에 합동측에서 순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싫어 억지로 외면한다면 이는 좋은 의미의 '교단'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기 중심이라는 원수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 교단을 사랑하고 자기 교단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사랑과 긍지는 불신 세상에서 불태우고 들어왔어야 할 세상의 티끌이요 더러운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습니다. 오른팔은 왼팔과 짝을 이루어야 하고 눈과 발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눈도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앉아야 할 자리, 자기가 서야할 곳을 잘못 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자기가 원래 서야할 자기 자리라고 한다면, 그는 자기 자리를 사랑하고 자기 위치는 지켜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울타리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면 거부할 일이 아닙니다.
틈틈이 눈여겨 보고 있다가 혹 자기 울타리 안으로 배워오고 가져와야 할 보배를 하나님께서 옆집에다 배달하는 수도 있고 뒷집에다 맡기는 수도 있습니다. 이 교단에 필요한 보배를 저 교단에게 주시고 이 교단에게는 저 교단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배우게 하는 방법도 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럴 때 자존심 때문에 또는 세상적 집단 대결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저 교단에게서 수입할 것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 대적이 됩니다.
바로 이런 면을 두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그 분이 원한다면 누구에게든 어느 교회든 어느 교단의 것이든 배울 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자기 교단을 사랑하고 자기 현 소속과 신앙노선을 바로 가진 상태에서도 그리 될 수 있으니 이런 경우 우리는 초교파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4.마지막으로
총공회의 오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총공회는 남들을 가르칠 것만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자기들은 남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를 보면 분명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럴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총공회는 외부에서 참고할 것 배울 것 비교할 것이 있었을 때, 티끌만큼도 주저함이 없었던 과거가 있습니다.
일반 교회와 교단들이 남의 교단 남의 교회가 하는 일은 아무리 좋아도 짐짓 모른 척하고, 혹시 따라 한다 해도 그곳에서 배운 것이 뻔한데도 마치 자기가 최근에 새로 알아낸 것처럼 써먹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교계의 이런 병폐는 우리의 민족성과 어울려 아주 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깊고 중한 상태입니다.
총공회가 오늘날 타 교단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할 지경에 이르게 된 과정에는 물론 이 노선의 앞장에 선 백목사님이 성경 하나만으로 직접 하나님께 배워 이룬 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 속에 한 지체가 되어야 할 이 노선이 이 노선과 함께 살고 있는 타 교단 타 신학자 타 신앙가들에게서 배운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이는 오히려 철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박윤선목사님에게서 배운 직계 제자들이 현재 고신과 합동측에 산재해 있고 오늘 한국교회 보수신학의 중심에 있다고들 하지만 실은 백목사님도 박윤선목사님에게서 배웠고 그에게서 배우면서 몇 가지 살펴둔 것은 오늘 이 노선을 더욱 이 노선답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윤선목사님이라는 인물 때문에 백목사님이 익혀두었던 신앙의 몇 가지 중요한 대목들은 오늘 총공회가 세상 어떤 노선과 교회와 신학을 향해서도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을 할 정도에 이르게 한 필수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이 면으로 살피려면 또 많은 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번 글에서는 총론만 적겠습니다.
자기가 걸어가 자기의 길을 우선 찾되
만일 아직까지 그런 길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과 쏠려다니다가 어중간하게 앉아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내가 이 노선 이 교단 이 신앙을 위해서는 여한이 없이 달려갈 수 있는 길인지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교단이나 소속이라는 단어로 생각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노선은 아주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소속과 위치를 바로 잡고 그 계통을 통해 주시는 것을 완전하게 받아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된 다음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른 곳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교파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잘못된 초교파적 신앙을 가진 이들의 신앙은 잡ㄴ 잡ㄴ 수준입니다.
뒷골목 깡패들만도 못한 참새 신앙이라고 혹평을 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그런 것이 싫어서 죽어도 우리편 죽어도 내편을 찾다가
예수님을 자기편이 아니라고 십자가에 못박는 이런 위험에 빠지는 것도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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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72023-10-19 12:39구 게시판 자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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