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31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 |
'문답방 이용 - ①기존문답보관실 ②비공개질문 ③비실명진행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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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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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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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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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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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 2018.02.21 | 0 | 15876 |
13769 |
New UP [설교록] 나는 독립으로 - 한자로 표시를 해 주시면
(1)
13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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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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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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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8 | 2023.12.04 | 0 | 5 |
13768 |
New UP [기타] 성도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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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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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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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4 | 2023.12.04 | 0 | 4 |
13767 |
New UP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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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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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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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2 | 2023.12.04 | 0 | 5 |
13766 |
New UP 여호와의 궤가 20년 동안 방치된 이유
(1)
1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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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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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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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 2023.12.03 | 0 | 81 |
13762 |
[박관준] 다음 시는 누가 쓰신 것인지요?
(1)
13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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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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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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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1 | 2023.12.01 | 0 | 21 |
13761 |
[용어] 생명 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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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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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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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0 | 2023.12.01 | 0 | 28 |
13760 |
[자료운영] 문의답변방 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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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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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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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8 | 2023.12.01 | 0 | 18 |
13759 |
[인물] 백 목사님 이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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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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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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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0 | 2023.11.30 | 0 | 36 |
13758 |
[인물] 선다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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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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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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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6 | 2023.11.30 | 0 | 18 |
13757 |
[직업]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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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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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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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2 | 2023.11.30 | 0 | 29 |
13756 |
[용어] 사활의 대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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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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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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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7 | 2023.11.30 | 0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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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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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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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6 | 2023.11.29 | 0 | 2 |
13751 |
[기도] 산기도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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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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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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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4 | 2023.11.29 | 0 | 32 |
13750 |
[귀신] 엑소시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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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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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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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0 | 2023.11.29 | 0 | 27 |
13747 |
[신신학] 예수께서 사흘 낮과 밤을 땅의 심장 속에 계셨다?
(1)
1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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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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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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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9 | 2023.11.28 | 0 | 27 |
('인격'이라는 표현)
설교록에서 '인격'이 나올 때는 항상 '생각 > 행동 > 생활 > 인격'으로 나눈 뒤에 '인격'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중에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을 설명할 때 순서이며 성경을 분석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9:16-30의 말씀이 누가복음 10:25-28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므로 쉬운 본문으로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인격성이라는 표현)
인격적일 때 인격성이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를 말합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하는 짓이 강아지와 같다면 '개의 아들 같은 사람 = 개, ㅆ ㅐ, ㄲ ㅣ'라고 합니다. 이 사람의 인격은 사람인데 이 사람의 인격성은 개입니다. 우리는 중생이 된 교인인데 우리 하는 짓이 불신자처럼 하면? 그래도 교인은 교인이나 우리의 행동이 불신자와 같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성은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는 죽은 짓을 한다, 죽었다고 표현하게 됩니다.
(인격성이 형성 되는 과정)
믿는 사람은 불신자로 살다가 어느 날 믿게 되면 '중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불신자가 가진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고 신앙의 생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걸어 다니니 살아 있는 사람이고, 속에 든 신앙으로 보면 죽은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의 인격 자체는 생명을 가졌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만들었고 성령이 우리에게 넣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중생 된 생명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고 다시 죽거나 또 다시 살아 나는 그런 반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 된 성도, 우리들의 하는 행동이 불신자처럼 살면 우리 자체는 여전히 믿는 사람이나 우리의 인격성이 불신자와 같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행동이 강아지처럼 그렇다고 욕을 하듯이, 우리가 한 번 중생이 되었으면 신앙으로는 이제 살아 있는 사람인데 우리가 말씀과 상관 없이 행동하면 우리의 하는 짓이 불신자와 같습니다. 이럴 때를 가리켜 인격성이라 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한 번 개처럼 말하고, 또 개처럼 말하고, 또 개처럼 말하다 보면 나중에는 실제 강아지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짐승화가 됩니다. 그렇다 해도 이 사람 자체는 인간입니다. 이 상태를 인격이라 합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이 인격이란 절대성이 있다고 말하는 그 인격은 이런 면을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아지처럼 행동을 한다 해도 여름에 보신탕으로 먹는다거나 시장에 내다 팔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대접하는 이유는 태어 나는 순간 사람은 인격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말을 강아지처럼 하다가, 이제는 행동도 강아지처럼 하고, 살아 가는 생활도 거의 강아지가 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틀림 없이 개가 되어 버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표현할 때 개! 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개 같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개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를 인격이 아니라 인격성이라고 합니다.
(공과 내용에)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물었습니다. 믿는 사람이니 사람 자체는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 된 사람이 믿는 사람답게 살아 가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잘 믿는 사람도 있고, 더럽게 믿는 사람도 있고, 개처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예수님께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떻게 생활을 하여, 어떤 성향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물어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먼저 '계명'을 지키라 했습니다. 계명은 믿는 사람 전체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첫째 공통 사항입니다. 어떤 공부든 한글을 알아야 이런 전공이든 저런 전공이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3끼 밥을 먹어야 무엇을 해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10계명은 모든 믿는 사람이 일단 해야 하는 공통 사항입니다.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 하니까 이 청년이 10계명은 이미 지키고 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주님은 잘했다고 했습니다. 이 것은 믿는 사람의 기본인데 대개 그 기본조차 잘 하는 사람이 없는데 잘 했으니 주님이 아주 사랑하시고 아주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10계명을 다 지킨 청년,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 합니다. 이 청년에게만 특별하게 요구를 했습니다. 10계명은 오늘도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이지만, 초등학교만 나왔다고 그만 두지 않는 것처럼 이제 이 청년에게는 특별히 경제가 좋으니 그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의 신앙을 위해 주 버리고, 그리고 나면 마지막 단계로 주님을 직접 따르면 되겠다고 발전 단계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말씀을 알아 들었습니다.
신앙의 1단계: 모든 교인은 십계명을 지킨다.
신앙의 2단계: 자기의 길은 자기 재산을 모두 연보한다.
신앙의 3단게: 가진 전부를 버릴 수 있을 때 이제 주님을 직접 따라 간다.
이 3단계에 이르러야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십계명을 통해 교인이 교인답게 되고, 자기 가진 세상을 다 털어 버릴 때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인격성이 마련 되고, 그리고 나서야 주님을 닮아서 주님은 아닌데 주님과 같은 인격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답변하는 저는 주님과 같은 인격성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지금 글을 적으면서 말은 잘 합니다. 말은 잘하고 있는데 제게 붙어 있는 제 세상 형편을 초월할 수 있을까? 이 것을 초월했다면 저는 믿는 사람다운 인격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답변만 실컷 하고 생활 속에서는 이런 저런 세상 일에 붙들려 실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실제 그렇게 살아 가지를 못한다면 믿는 사람은 틀림없는데 믿는 사람답지를 못한 것이니 신앙의 인격성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면을 제가 죽기까지 고치지 못하고 그냥 죽는다면? 저는 중생이 된 하나님의 자녀여서 천국을 가게 되지만 제가 살았던 시간, 노력, 인생, 여기에서 적어 댄 이 수고는 전부 지옥에 보내 져야 합니다. 인격성은 불신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대속으로 천국에 가는 우리 자체는 인격이니 주님이 생명을 바쳐 구원해 놓았고 이 구원 자체는 생명 = 중생, 이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받아 가진 중생 된 교인 우리들의 행동이 생활이 되고 그 생활을 통해 우리 인격이 천국에 갈 사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그 것이 바로 인격성 = 영생으로 이어 집니다.
(어려운 주제)
질문하신 내용은 신앙의 세계에서 좀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렇게도 설명해 보고, 또 저렇게도 생각하다 보면 감이 잡힐 듯합니다. 그래서 몇 말씀 더 드립니다.
영생은 생명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있었으니 신앙으로는 죽은 사람입니다. 때가 되어 믿는 사람이 되면 신앙으로는 살았다 합니다. 살았다는 이 말을 '생명'이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으로 산 사람, 불신자는 신앙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살았다고 할 때 우리에게 신앙의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생명은 육신의 생명이고 1차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다가 믿게 되어 가지는 신앙의 생명은 2차 생명이니 이 것을 '중생'이라 합니다. '2차 = 중 重' '생명 = 생 生' 그래서 우리를 중생된 성도라고 합니다.
눅10:25 이하에 질문한 청년은 중생 된 우리 교인을 말합니다. 중생이 되었고 믿기는 믿는 사람이니 십계명도 평소에 다 지켰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래서 잘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는 매 현실마다 성령으로 우리 마음 속에 새로운 자기 현실에서 뭔가 새롭게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사람은 부자니 주변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기 재산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평소 10계명조차 지키지 못하던 사람이면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이런 계명을 먼저 요구했을 것인데 십계명은 미리 다 지켰으니 교인으로서 기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이제는 네 가진 소유를 팔아 다른 사람의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라 한 것입니다. 이 부자는 돈 부자니 돈으로 도와라 했고, 오늘 지식의 부자는 지식으로, 건강의 부자는 건강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이 각자 할 일이고, 각자 할 일은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서 알려 주십니다.
(공과, 누가복음 19:25-28)
영생하는 방법을 물어 보자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하고 또 평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제 그렇게 사랑하고, 나중에는 너라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 생각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 것이 믿는 사람이라는 인격이 실제 믿는 사람다운 인격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그 인격성이 영생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했으나 말만 떠들고, 또 행동도 한번씩 하지만 과시로만 하고 생활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인격성은 없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전력하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 자체는 당연히 천국 갈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그런 인격성도 천국에 따라 갈 것입니다.
영생을 물어 본 사람에게 설명을 하시고 29절부터 강도 만난 사람을 살핀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저도 질문자도 또 우리 주변에 있는 누구라도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실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렵기는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쉬운 일은 몇 번 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행동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한 것이 아니라 연극입니다. 남들이 보고 있으니.. 그런데 음침한 산 길에서 강도를 만나 다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볼 때 나도 이렇게 당할 수 있는 위기입니다. 또 이 축 쳐진 사람을 데리고 나가 살리려면 보통 어렵지 않습니다. 이럴 때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자기가 받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여 자기가 죽기를 각오하고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력을 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의 인격성이 바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 갈 영생에 합당한 인격성입니다.
이 대화의 '공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질문에 언급한 공과 내용을 적습니다.
설교 : 80-04-20(16공과)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제목:영생
요절: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1. 생명과 영생은 다르다. 생명은 영생을 할 수 있는 생명의 본체요 영생은 생명의 작용이다.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으로 생겨지는 것이요 영생은 하나님과 결합된 자가 결합된 역사를 결합 후에 하는 행동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2.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영생하는 도리를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반문하여 성경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읽었느냐고 물었을 때 율법사 대답이 마음 목숨 힘 뜻 다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 사랑 이것이 영생이라고 대답했을 때 주님이 바른 대답이라고 인정하셨다.
영생은 세상에서 산 생애가 무궁세계에서 그대로 계속되는 그것이 영생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중생하므로 생명은 다 가졌으나 영생은 가진 자도 있고 못 가진 자도 있고 많이 가진 자도있고 적게 가진 자도 있으니 이것이 부활의 영광의 차이점이다.
3. 영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인격성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그 자체가 영육과 금생과 내세에 진정행복되기를 원하는 사랑의 욕망에서 이 일을 달성키 위하여 자기를 잊어버리고 희생의 제물로 자기를 하나님과 이웃 위하여 바치게 된 사랑의 힘 그것이 하늘나라의 실력이요 영원히이 사랑의 봉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다 부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모든 현실에서 자기를 사랑의 사람으로 사랑의 욕망을 뜨겁게 가진 사람으로 사랑과 사랑의 욕망 사이에서 자기를 이 일 달성 위하여 투자한 것만치 그것이 무궁세계의 실력이요 생애요 모든 선물이다.
설교 : 81-03-29(13공과)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제목:영생
요절: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7)
1. 인생 앞에는 자기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이 영멸하는 길과 영생하는 길 이 둘로 언제나현실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소유와 각 지체와 기능의 필요함을 느껴 귀중히알고 잘 보존하여 빼앗기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끼고 욕심내고 어떤방편으로 간직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방편 외는 다 영멸하는 것이다.
2. 영멸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것을 사랑함으로 가지고 쓴 것은 다 영멸되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에게 바쳐 하나님을 위하여 쓴 것만 영생되는것이다.
3.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것은 어떤 것인가?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보면 사람을 멸망가운데서 구출하는 것이, 모든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 구출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위하여 한 것이라면 막바로 그것이 주를 사랑함으로 주께 바쳐 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형제를 멸망과 고통 속에서구출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가 문제다. 인생은 죄와 불의와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악화되었고 심신이 무능 악 발달함을 인하여 모든 고난과 사망이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투자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용되어 영생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간을 예수님의 구속 곧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 화친의 새생명의 도인이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소유를 다 바쳐 살 것이다. 자기 쓰고 나머지기를 이렇게 쓰는 것을 회개하여야 한다. 다 바쳐 산 자로 사는 것이 자기의 생애이다. 그럴 때에 점점 이렇게바쳐 살 것을 더 풍성케 하여 하나님의 각양 충만을 끌어당겨 얼마든지 의의 열매를 충만케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