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320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 |
'문답방 이용 - ①기존문답보관실 ②비공개질문 ③비실명진행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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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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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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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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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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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 2018.02.21 | 0 | 15892 |
13783 |
New UP [조직신학] 최근 소식은?
(1)
13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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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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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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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9 | 2023.12.06 | 0 | 5 |
13782 |
New UP [직업]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1)
13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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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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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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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9 | 2023.12.06 | 0 | 3 |
13781 |
New UP [이성] 음행죄
(1)
1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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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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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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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8 | 2023.12.06 | 0 | 3 |
13773 |
New [성경번역] 아니니 / 아니냐
(1)
13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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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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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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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4 | 2023.12.05 | 0 | 9 |
13772 |
New [기타] 주님 위해 사는 생애
(1)
13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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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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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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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1 | 2023.12.05 | 0 | 6 |
13771 |
New [십일조] 십일조가 이중으로 계산되는 경우
(1)
13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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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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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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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3 | 2023.12.05 | 0 | 9 |
13770 |
New [설교록] 불신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모형
(1)
13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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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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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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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7 | 2023.12.05 | 0 | 6 |
13769 |
New [설교록] 나는 독립으로 - 한자로 표시를 해 주시면
(1)
13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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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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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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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8 | 2023.12.04 | 0 | 16 |
13768 |
New [기타] 성도의 할 일
(1)
1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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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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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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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4 | 2023.12.04 | 0 | 14 |
13767 |
New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1)
1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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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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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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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2 | 2023.12.04 | 0 | 14 |
13766 |
여호와의 궤가 20년 동안 방치된 이유
(1)
1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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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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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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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 2023.12.03 | 0 | 109 |
13762 |
[박관준] 다음 시는 누가 쓰신 것인지요?
(1)
13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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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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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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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1 | 2023.12.01 | 0 | 23 |
13761 |
[용어] 생명 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
(1)
13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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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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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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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0 | 2023.12.01 | 0 | 30 |
13760 |
[자료운영] 문의답변방 정리
(1)
13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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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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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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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8 | 2023.12.01 | 0 | 22 |
13759 |
[인물] 백 목사님 이력
(1)
1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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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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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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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0 | 2023.11.30 | 0 | 101 |
역사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앞선 가족과 신앙의 사람이 나를 위해 쏟는 그 기도가 우선 내 주관에 막혀 효력이 없어 보이지만 사55:8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결국은 열매를 맺습니다.
낙원에서 성도의 기도는 우로와 같은데
버티는 자에게는 그 은택은 없다
신앙의 사람의 기도는
결국 열매를 맺는다.
말씀 하나 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랜세월 기도의 효력이 없을때
그것은 사람이 계산한 세월이지
하나님은 뜻하신대로 정확하고 공평되게 날 수를 채우시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기도하고
하나님은 뜻대로 이루시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주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성도 혹은 성도들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해 낙원에서 기도해준다는 성경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록된 말씀 중에서 어디를 보시고서 죽은 성도들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하시는 것인지, 어떤 말씀 몇 장 몇 절에 있는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단,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이 하나님께 하루속히 심판을 집행해주실것을 구하는 내용은 있으나 지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가지시는 절대 권한을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시면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다른 성도들과 사람들을 위해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 줄 수는 있으나 죽어서 낙원에서도 살아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줄수 있다고 기록된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 전체를 전제하고 단정하실 때는 서로 신중하면 좋겠습니다. 이 문답의 답변은 어느 날 불쑥 던져 진 질문에 즉흥적으로 적은 것이 아닙니다. 이 노선의 오랜 세월 동안 살펴 왔고 가르쳐 왔으며, 이 노선은 혹 아실지 몰라도 발표 되는 토씨 하나까지 국내 최고라는 신학자들이 낱낱이 검토해서 오랜 세월 비판해 왔으나 그 비판이 모두 오해였음이 밝혀 진 사연을 이 곳에서 자료화 하여 출간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 된 수없는 비판 중에 윗글의 비판은 처음 들었습니다. 모든 학자가 모두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윗글이 발견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또 이 노선의 비판이 모두 틀렸다 해서 이 번 비판이 틀렸다는 말도 아닙니다. 수 많은 사람이 수 많은 세월에 검증을 거듭했다는 것을 참고해 주시라는 정중한 부탁입니다. 박윤선이라는 한국교회 최고의 성경학자, 그보다 성경을 더 잘 안다는 오종덕.. 그리고 이런 이들을 평생 애모하며 그들을 따르려 했던 이들이 고신 총신 합신 등등의 신학교에 석학이나 최고 원로로 존경 받는 이들이며 이런 이들이 이 노선의 교리와 성경 해석에 대해 한결같이 초기에는 오해들이 많았고 이후 모두 돌아 섰습니다.
(주님의 주권 역사와 성도의 기도)
계8:3-5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땅 위의 역사는 주님만 하십니다. 이런 역사를 주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이 것은 교리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모든 역사를 하실 때 독단으로 결정하는가?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가지고 역사하는 사례는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무수합니다. 어느 성자도 어느 의인도 주님을 제쳐 놓고 직접 역사하는 수는 없습니다. 성도의 기도가 주님께 향하고 주님은 그 기도를 들고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한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께 합니다. 그 기도를 듣고 그 기도를 모으고 그 기도를 통해 역사 하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죽으면 몸만 활동이 중지 됩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아벨의 몸은 이 땅 위에 묻혔고 원소가 되어 흔적도 없습니다. 흔적이 있다 해도 무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달라 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인체의 활동 중단과 해체를 말하는 것이지 그 몸을 가지고 살던 마음과 영의 존재적 무를 말하거나 활동 중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이 땅 위에 살 때도 몸을 통해서만 활동했습니다. 그 몸이 죽으면 그 몸만 죽는 것이고 그 몸을 사용하던 마음과 영은 낙원에 갑니다. 낙원에서 몸을 벗어 놓고 온 성도의 모습은 눅16:22 이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음부와 낙원으로 오가는 것은 천주교의 연옥설이 오해를 한 것이고, 또 낙원에 있는 성도가 이 땅 위에 직접 와서 활동하는 것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처럼 특별한 경우입니다. 한 번 죽으면 우리의 마음과 영은 낙원에서 주님 재림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이 땅의 일은 하늘에서 모를 수가 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몸을 벗고 나면 그 몸을 통해 다시는 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몸에 가려서 몰랐던 것을 더욱 밝히 알게 됩니다. 고전13:12에서 주님 앞에 선 성도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존재가 됩니다. 이 땅 위에 직접 역사하는 일만 재림 때까지 보류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표현 중에 '직접' 역사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앞서 간 성도의 기도가 주님을 제쳐 놓고 직접 이 땅 위에 쏟아 지는 것처럼 표시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미쳐 그렇게까지 읽을 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통의 일반 교인이라면 죽는 순간 이 땅 위에서의 모든 활동은 전부 중단 되고, 또 이 세상에 관련 된 활동 역시 당연히 중단 되는 것은 상식이어서 더 자세히 적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와 같다 함은, 오늘 이 땅 위에 우리의 기도는 오염 된 것도 많고 불손한 기도도 있고 알지 못하여 엉뚱한 것을 기도하는 경우도 허다 하여 기도를 해 봐야 기도의 효력을 보는 것은 참으로 적고 대부분 기도는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선 성도들은 이 땅 위에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가로 막거나 오염을 시켰던 육체를 벗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주님이 기뻐하실 기도만 합니다. 죽어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면서 출세나 바라고 돈만 바라고 기도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염두에 두고 주님이 만족할 기도만 할 것이니, 바른 기도 순수하고 옳은 기도는 그대로 다 반영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에서도 기도의 능력을 말씀하셨는데 그렇다고 주님을 비켜 놓고 우리의 기도가 직접 효력을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그 기도가 갔고 그 기도를 통해, 실제 역사는 주님만 하십니다. 이 것을 '주권 섭리' 역사라 합니다. 이 곳은 주님의 주권 섭리 역사를 어디보다 더 강하게 고수하는 곳입니다. 주일학교의 학생 공과에도 주권을 수 없이 반복하고 외우고 있습니다. 생전의 기도, 특히 부모의 자녀에 대한 기도는 참으로 망하게 될 것도 기도하는 등 엉망입니다. 이렇게 오염 된 기도가 주님께 올라 갈 때는 기도한 그대로 위에서 역사하지 않고 오염 된 것은 전부 빼버리고 옳고 바른 기도만 반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증발하는 물은 땅에 오염을 빼고 순수하게 수분만 증발이 된다 합니다. 그리고 증발 된 수증기가 다시 모여져 우로 형태로 대지를 적실 때는 오염이 빠진 상태라 합니다. 낙원에 있는 성도는 몸을 벗고 갔습니다. 육체가 이 땅 위에서 잘못 생각하고 온갖 땅에 것으로 기도를 흐려 놓을 때와 다릅니다. 그러니 낙원의 성도의 기도는 순수합니다. 주님이 그 기도는 전부 받아서 반영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표현한다면 첫 답변의 안내는 이해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밥을 먹인 것이 엄마라고 할 때 숟가락으로 먹였지 어떻게 맨손으로 먹였겠느냐고 지적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하겠습니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밥을 먹인 것이 맞다고.. 그런데 그렇게 대화할 자리는 아닌 듯합니다.
(낙원의 성도들의 호소)
계6:9-11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성도가 죽으면 숙면에 빠지는가? 이 땅 위에 두고간 몸만 두고 말한다면 부활의 그 날까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니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몸을 벗어 두고 눅16장의 아브라함과 나사로처럼 낙원에 있는 성도의 마음과 영이 낙원에서도 잠만 잘까? 아니면 이 땅 위에 일어 나는 일을 모르고 궁금하기만 할까? 아니면 천사와 함께 이 땅 위에 내려와서 직접 활동을 할까? 아니면 재림 때까지 기다리며 주님께 이 땅 위의 우리를 위해 기도할까?
순교한 성도의 호소 하나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 땅 위에 진행 되는 신앙의 박해 역사를 주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순교한 영혼들이 이 땅 위에 직접 와서 영으로 역사를 한다면 호소할 것도 없이 직접 오면 됩니다. 재림 때까지는 낙원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호소는 합니다. 순교한 영혼이 순교의 억울한 피값만 보복해 달라고 할까?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순교자 이상으로 살았던 에녹과 엘리야와 엘리사와 다윗은 낙원에서 주님께 호소할 일이 없을까요?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우리의 기도는 들어 주시고, 죄악의 몸을 벗고 더욱 깨끗한 상태의 의인과 성자와 앞 서 간 성도의 기도는 전부 함구 시켜 놓았을까?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롬8:23,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사람의 범죄로 만물과 대화가 차단이 되어 오늘은 식물과 동물과 만물과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만물이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한 존재는 아니니 속으로는 우리의 범죄와 우리의 선행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생각과 표현과 언어가 우리와는 아예 다르지만, 인간의 생각과 표현을 기준으로 동물을 벙어리로 안다면 그 동물들이 우리를 보고 웃을 것이고,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다 하여 식물을 벙어리로 안다면 좀 성급한 판단일 듯합니다.
(성경 연구의 자세)
우려 하시는 뜻은 잘 알겠지만 이 곳은 죽은 사람의 몸이 관 속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거나 아니면 낙원에 간 성도의 심령이 이 땅 위에 직접 내려 와서 활동하거나 또는 주님을 제쳐 놓고 직접 역사한다는 그런 류의 오해들을 하지 않는 곳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족들에게 들어 붙어 귀신으로 활동한다는 등등의 여러 가지 오해들 때문에 낙원에서 우리 위해 주님에게 생전보다 더욱 뜨겁게 더욱 깨끗하게 기도하고, 그 기도를 받아 이 땅 위에 모든 역사를 하시는 은혜의 흐름까지 의문하신 것은 다시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성경 전체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할 정도가 되려면 성경 전체를 면밀하게 읽어 본 다음에 표현할 사안일 듯합니다. 일단 이 번 주제를 가지고 성경 1독을 권합니다. 평소 읽은 성경을 가지고 단정하지 마시고 또는 신학서에서 다른 사안 때문에 나온 이론을 원용하다 보면 실수 할 수 있으니 다시 살피시고 혹시 이 곳의 오해를 지적해 줄 수 있는 학자나 학설의 정확한 대목을 제시해 주신다면 저희도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저희는 성경을 평소 많이 읽고 집중해 왔고 이 문제를 두고 오랜 세월 살펴 왔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보기전에는 다 알수없는 낙원이나
다행히 말씀을 수없이 배웠고 그 깨달음으로
낙원을 알고(안다는 것이 지극히 미약한 한부분도 안되는),
낙원으로 갈 우리임을 압니다
그래서 세상은 천국 준비로만 사는 것이 정상이지요.
가신 분들은 땅의 일은 다 끝내고 가셨기에 그분들을 위해 애탈 것도 슬퍼할 것도 아닌
우리의 눈물은 어쩌면 감정의 눈물이 아닐지 (너무 속된 표현일까요)
왜냐하면 사람의 나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일이 터지면 항상 그 다음 일을 생각합니다 남은 우리들은 어찌 살아야 되는지
그다음 할 일이 무엇인지 사는 것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지요.
서영준 목사님 장례식 때 백명희 사모님이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제 마음속에 박혀 버렸어요. 백목사님께서 가시고 수많은 성도들의 한서린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울고 난 후 우리는 다시 세상일에 모두 급하게 돌아가고 있더군요.
가끔씩 힘이 들어 앉아 있을 때,
챙겨드림이 힘들 때
보고 계실 백 목사님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설 때가 있지요. 주님도 우리위해 기도하시고
먼저 가신 분들도 우리를 보며 애타하실 심정을 생각하며 그곳에 가서 만나 뵐때 덜 부끄럽도록 마음을 다질 때가 많지요.
끝없는 영원의 세계를 배워도 배워도 다 알지 못하나
땅에서는 혈육의 정을 생각하나 그곳에는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주님만을 섬기는 곳이니
순간마다 현실마다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그려보며 나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순간마다 큰 전투 작은 전투가 이어집니다 슬퍼하고 퍼져 앉아있을 겨를이 없습니다.(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
세상 사는 동안 우리의 할 일을 다 하고 갈 수 있을까요?
나의 슬픈 넋두리입니다.
결코 가신 분이 없어진 것 아니니 절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미국에서 사니 공간이 나뉜 경험이 오래된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대화를 기도라 합니다.
낙원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과 막힘없이 대화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더이상 성경도 필요없고 예배당도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좋은 반론을 주신 파란구름님께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많이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생전에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을 문으로 또 창문으로 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아버님을 그리며 동시에 하늘에서 지켜보는 눈을 의식하며 살면 좋습니다.
내일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목사님 말씀이 더욱
공간이 막히지 않은 곳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