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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노선] 세계신학에서 삼분론 교리를 언제쯤 받아들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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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4103
작성일
2023.06.23

2004-06-25 12:43:20
학생

[공회노선] 언제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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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백목사님의 삼분론구원교리가 한국이나 세계의 신학에서
확신하며 그렇께 따라갈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령님의 감동이

동일하시다면 반드시 삼분론구원교리가 전 세계의 크리스챤들이

믿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보수 신학쪽에서는 어느정도 백목사님 교리를

수용하고 인정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최근시점으로 알고싶습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하셔서...삼분론구원교리가 전 세계에 알려지고
확립될때까지 항상 강건하시기를..그것이 하나님이 목사님께 맡긴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4-06-25 17:09:28
yilee [ E-mail ]

말세가 될수록 더욱 어두워진다는 것이 성경임을 고려하신다면?

 

 

1.세상 일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힘'입니다.

 

①단군 때는 칼잽이가 천하를 쥐고 법과 정의와 도덕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 중 대부분은 그의 말이 진짜인 줄 알고 그가 낙하산을 메고 백두산에 점프하고 내려온 산신령인 줄 실제 그렇게 알았습니다. 재주가 그렇게 많으니 그는 신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일본은 불과 60년 전까지도 천황이 그런 사람인 줄 알고 그를 위해 수도 없는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단군이 한반도 양민들에게 공연히 세금을 뜯어내던 시절 우리 조상 중 극히 일부는 그의 말이 사기인 줄 알았으나 그가 쥐고 있는 칼이 무서워 표시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은 한 칼 흔들면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수의 지식인들까지 머리를 숙이니까 절대 다수의 군중은 단군이 진짜 신성을 가진 줄 알았습니다. 지금 보니까 그 친구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는 사기꾼이었습니다.

칼잽이가 무당을 옆에 끼고 하늘의 조화를 제멋대로 해석해서 무지한 우리 조상들을 겁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칼을 쥐고 제멋대로 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단군을 이 나라 첫 독재자로 백성의 원수로 지탄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것을 좋아하는 인권주의 운동권 인사들이 단군을 재평가 하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②공자 이후로는 칼잽이 못지 않게 먹물을 휘갈기는 이들이 맞서기도 했습니다.

 

단군이 칼과 무당을 가지고 당시 세상을 말아먹었다면, 공자 이후 시대 글 읽는 사회가 되면서 이 세상은 무당 대신 말재주로 세상을 운영하게 됩니다. 물론 그들도 한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습니다. 먹물이 칼과 협력과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 조상들을 회유하고 급박하면서 착취하고 내려왔습니다. 근 1백 여년 전까지 이런 분위기가 내려 왔습니다.

단군 시절을 원시시대라고 한다면
공자 이후 그런 글읽던 시대를 고대사회 또는 중세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③2차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현 사회는 머리 숫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법도 정의도 도덕도 양심도 상식도 전부 머리 숫자에 의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소위 이것을 문명사회라고 합니다. 칼 대신 글이 낫고, 글 대신 머리 숫자가 낫다고 하는데, 이곳은 전혀 생각이 다릅니다. 칼이든 글이든 머리 숫자든 틀린 것은 틀렸고 옳은 것은 옳다는 생각 뿐입니다.

칼이 지배하면서 옳은 것을 세웠다면 이곳은 좋은 시절이라고 평가합니다.
글이 지배하면서 옳은 것이 묻혔다면 문명화가 아니라 미개화라고 표현합니다.

머리 숫자가 지배하면서 요즘 세상은 날만 세면 흑백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런 세상을 인권 평등 자유의 세상이라 부르지 않고 미친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교회가 교회답게 나갈 때는 진리만이 기준입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탈선하면 '옳기는 옳지만.....'이라고 해놓고 그다음 무슨 말을 붙이게 됩니다. 역사 이후에 옳은 쪽에서 칼과 글과 머리숫자를 다 확보하였던 때는 극히 희귀합니다. 다윗 때, 칼빈의 제네바 시절 때 잠깐 잠깐 있었습니다.

교회가 많은 숫자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거나 그 인정을 조금이라도 위로로 삼고자 한다면, 바로 그 순간이 타락과 탈선의 갈랫길을 통과하며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내딛습니다.

신앙은 의례 혼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가는 분들이 있으면 반가운 일입니다.
영문 밖 골고다로 향하는 길은 12제자도 도망가고 혼자 가야 할 길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로 들어서면 다 흩어져 넓은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외로움을 느꼈더라면 그 길의 뒷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도 그러했습니다.

이곳은 요셉이나 엘리야를 비교할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걸음의 방향을 그곳으로 잡아놓고 싶습니다.

 

 

3.백영희 삼분론과 중생 교리와 건설구원론 등은

 

옳으냐 틀렸느냐 문제로 따질 때는 지나가도 한참 지나갔습니다. 이런 교리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좀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때 도움이 되겠느냐는 단계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느 성구까지 이 교리에 의하여 어떻게 더 깊에 와닿는지 사례 발표만을 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입니다.

옳기는 옳지만 이런 부분에 대하여는 좀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고 청원서가 올라와야 할 시점입니다. 만일 지금까지도 이 교리들에 대하여 맞느냐 틀렸느냐고 시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행기라는 발명품이 과연 하늘을 나른다는 이론이 물리학적으로 가능하냐고 시비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곳 홈의 신앙노선은 외부와 접촉을 최대한 조심하고 멀리하는 곳입니다. 교계에서도 발과 손 노릇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체 외부와 활발하게 접촉하는 것을 사명으로 합니다. 그러나 심장이나 뇌는 겹겹이 둘러싸서 외부와 접촉하는 일은 있는 힘을 다해서 사양합니다. 그 기능과 사명과 중요성의 차이 때문입니다.

현 교계가 이곳 신앙노선, 특히 삼분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짐작은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 백목사님에 의하여 한국 교계에 삼분론 중생교리 건설구원론이 전해질 때 이 설명을 듣는 이들마다 한결같이 이단이라는 외마디를 다 내놓았습니다. 대충 짐작하는 바는 이전에 답변한 자료가 있으니 직접 검색을 통해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4.이번 질문은 반복된 질문이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건설구원론과 중생론은 거의 모든 교단들과 교회들이 비록 다소간의 차이는 있다 해도 거진 다 원용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한번씩 기독교서점의 설교록 출간 된 것이나 기타 신앙서적들을 읽어볼 때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이 교훈과 교리가 설교록이나 CD 등 여러 자료로 전해진 양과 장소는 대단합니다.

삼분론에 대하여는 이전처럼 딱 부러지게 반대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분설과 삼분론 사이에서 혼동하고 아직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그러나 이곳 설명을 집중적으로 듣고 토론하며 따져본 분들은 거진 삼분론으로 기울고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그 이름들이 너무 대단한 분들은 거의 다 이분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자기들 입으로 딱 부러지게 삼분론을 지지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그 태도가, 만일 오늘 또다시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당시 니고데모처럼 또는 그보다 더 바리새인쪽에 가까웠던 사람들처럼 반신반의하거나 아니면 반대쪽으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5.중요한 것은

 

이미 이분설은 이분설 학자들 스스로 이분설의 사용기한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토론이 진행 중인 이분설과 삼분론의 토론이 있다면 그 삼분론은 이곳 신앙노선의 삼분론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이분설과 늘 토론하고 내려온 삼분론입니다.

이곳 백영희신앙노선상의 삼분론은 기존 삼분론과는 이름만 같을 정도이지 내용은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이 노선의 삼분론을 가지고, 아직까지 답변자의 경험과 기억으로는 어떤 이분설과도 제대로 토론을 한번 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중에서 어느 체제가 국제경쟁력과 생산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느냐고 토론 주제를 내세운다면, 1990년대 이후로는 토론의 시작조차 할 필요가 없고 토론에 응할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로 생산을 하게 되면 매연이 많지 않겠냐는 보완론만이 있을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진리 정확성에 확고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모르는 형제들이 이 신앙노선에서 말세의 빛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질문자께서 이 삼분론이 많이 전해지기를 소원하신 의도도 바로 이런 심정과 중심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런데 공회 내부에 많은 분들이 스스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주장한 것이 아닌지 하여 이 교리들을 굉장히 불안하게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980년대 초반 해외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교수들이 총공회 양성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자 현재 총공회 중진 지도자급 목사님들이 당시 젊은 조사님들로서 그 교수님들에게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질문한 것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배우고 아는 것이 세계 신학계에도 통하는 이론인가?

너무 안타깝고 숨막히고 탄식할 일이었습니다. 이 교리가 세계신학계에 통하는가? 이 교리가 한국 교계에 먹히는가? 이런 문제는 성경 하나만을 놓고 살펴보면 금방 확인 되는 것이고, 혹 국내 기독교 서점에서 책 몇 권만 들춰보면 바로 확인이 되는 바입니다.

딤후3:14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하신 말씀을 냉정하게 붙드셨으면 합니다.

이미 이 교리는 천하를 얻었습니다. 세계교리사의 이어지는 맥을 확보하고 이 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다음 교리 발전 단계로 이어질 수 없는 성질의 교리입니다. 세계교리사와 조직신학과 교회사에 정통한 그 어떤 신학자를 상대로도 자신있게 정확성 문제를 놓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실은 토론이 시작될 필요가 없다는 정도로 이곳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 하나를 첨언드린다면, 세계신학계를 돌아다녀 보지 않아도 세계 최고의 교리 최상의 주장 최고급의 이론들은 반드시 책으로 나오게 되어 있고, 그 책이 기존 주장과 비교해서 한 차원 높은 것이라면 세계 신학계가 떠들썩 하게 되어 일반교계와 접촉이 없는 이곳 답변자가 뉴스를 통해서라도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세계신학계는 5백년 전 칼빈이 머문 곳에 머물러 오리무중의 안타까운 자세로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6.이곳 홈이 주로 맡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에 쏟아져 내놓은 이 노선의 수많은 교훈과 교리와 자료들을 이 곳에서 일단 한번 모아놓고 도서제목을 따라 분류하는 도서관 사서처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답변자는 도서관 사서일 뿐입니다. 사서가 자료를 잘 찾고 분류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해 놓으면, 어느날 하나님께서 예비한 어린 종이 이곳을 지나치다가 이곳의 자료들을 눈여겨 보고 이 자료들에 의하여 다음 시대를 감당할 큰 길을 찾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곳 연구실에서 자료 분류를 담당한 답변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종 밑에서 사서 수준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가르침을 받고 주님 앞에 서기 전 귀한 스승을 모시게 된 감사 속에 노년을 보내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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