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 거듭남의 3요소
2004-04-27 08:27:52
노하우 [ E-mail ]
[기본구원] 거듭남의 3요소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안녕하십니까?
백목사님의 요3장의 설교를 보면 거듭남의 3요소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때 거듭난다고 알고 있고, 거듭난 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성화되어 가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피공로, 성령의 감화와 진리로 거듭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용어설명과 영은 단번에 거듭나지만 심신은 계속 거듭나냐 한다는 말을 계속 성화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면 안되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004-04-27 09:59:43
yilee [ E-mail ]
1.신학의 성경적 발생 과정 2.우리가 거듭나는 중생에 필요한 3가지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1.우선 '신학의 발생학적 성격'을 말씀드립니다.
①'신학의 발생학적 연구'를 위해 우선 성경의 보편성과 충족성을 안내합니다.
성경은 교회사 교과서로 기록한 것도 아니고 조직신학의 교리서로 적어주지도 않으셨고 성경신학 강의에 필요한 교안으로 작성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언제 당해도 이 말씀 전체와 이 말씀 한 토씨 하나가 그를 인도하여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안내하도록 적어주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보편성과 충족성이라고 합니다.
②신학의 여러 과목들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발생한 과정을 살핀다면
우리가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서라도 우리가 알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싶으면 이 성경 안에서 다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이 면을 확실히 기억한 다음 각 신학과목들을 예로 든다면
성경기록이 완성 된 신약교회가 세월이 흘러가게 되자 교회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사라는 과목이 교회 안에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사학'을 모델로 삼아 교회사를 세상 사학을 연구하는 기준과 방법과 시각을 가지고 교회 안을 그렇게 시대적으로 살피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학은 넓은 의미로 자연계시 중 일부로 참고한 다음, 교회사는 성경에서 그 시각과 원리와 방법론을 찾아 교회사를 성경적 교회사로 살피는 분들도 있습니다.
조직신학이나 성경신학도 성경을 기록하던 당시 교회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성경기록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 신앙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걸어갈 길에 대한 안내가 있기 때문에, 성경기록 이후 신약교회는 신약교회의 복음운동에 있어 교리적 체계와 성경적 깨달음을 바로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에서만 찾은 것이 '성경적 조직신학'이며 '성경적 성경신학'입니다. 그리고 세상 학문의 기준과 시각과 방법론을 가지고 성경을 분해하여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③교회 타락의 중심에는 신학을 세상식 학문으로 변질시킨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시대 자기 교회의 복음운동에 필요한 것을 성경 안에서 찾아내다 보니까 그것이 교회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성경 전체 가르침의 일관성이 되기도 하고 성경자체에 대한 연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순수하게 성경에서 자기 시대 가야 할 길을 찾은 이들은 그 수가 너무 적고, 그 반대로 성경 연구를 세상식 학자들의 세상식 학문으로 탈바꿈을 시킨 이들은 거의 대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질문과 관련하여 드릴 말씀은, 성경은 조직신학 교리서가 아니라는 것을 우선 아셨으면 해서 잠깐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각 시대의 교회들이 복음운동 과정에서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찾다보면 자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다 찾아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성경 여러 곳에서 자기 시대에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을 찾게 되면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를 하게 되는데, 그 정리한 것이 전체 교회가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필요한 정도일 때 소위 '신학'의 내용이 하나 추가 되는 것입니다.
2.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중생'은 3가지 요소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①중생의 요소가 3가지라고 요약한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 중생을 두고 3가지 요소가 중생을 시켰다는 말이 없는데 어떤 근거로 성경에서 3가지 중생의 요소를 주장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질문자를 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한번씩 그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번 답변을 드리면서 이왕이면 그 면에 대하여 한번 설명해두고 싶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중생에 관련하여 어떤 역사가 있었는가? 어떤 성구에서는 중생의 요소를 하나로 말씀하시고, 어떤 성구에서는 둘로 말씀하시고, 어떤 성구에서는 전혀 다른 표현으로 다른 요소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책이 이렇게 기록되었으면 거짓말 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셨으니 차분하게 성경 전체를 통해 중생에 대하여 깨닫고 알아야 할 시대가 되면 중생에 대하여 어떤 요소가 역사를 했고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를 알려 주시려고 성경 어디를 찾아도 찾아보면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②요3:5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중생이 있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고 거듭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된 일은 니고데모가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고 받은 대화가 그 당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들은 있었지만 성경에 기록은 하지 않았으나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일부로 기록을 해두셨습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 기록으로 인하여 그 이후 시대 신약교회는 어느 시대 어느 형편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에서도 이 말씀을 읽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 중에 '중생'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시대가 된다면 이 성구는 이 성구 기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면을 배우는데 또 한 사람은 중생의 요소를 알 수 있도록 고려해서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 성구는 중생의 요소만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성구가 아니라는 것을 반복해서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하나만 자세하게 잘 살펴 알게 되면 성경 전체를 무한한 진리로, 자기 복음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이 안내를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③엡5:26에서 '물'은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역시 에베소서 교회에 전할 내용이 있어 바울이 편지를 한 사실이 있는데 그 편지 속에 기록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것은 전부 성경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적은 글 중에 하나님께서 성경기록을 위해 적게 한 것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에베소서입니다. 그리고 이 에베소서에 이 내용을 기록할 때는 에베소 교회에게도 당시 필요해서 적었고, 그 이후 신약의 모든 교인들이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가르침이 필요할 때는 이 내용을 통해 절대 진리의 구원으로 상대할 수 있게 적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내용을 '중생'의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서 이 성구를 통해 중생의 요소의 일부를 알아내고 있습니다. 요3:5에서 영이 중생될 때는 '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하수 샘물을 말하거나 온천수나 약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기가 쉽습니다. 영은 물질이 아닌데 물질인 물로는 물질인 몸을 씻는 것입니다.
물질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물이므로, 죽은 영물인 영의 죄를 씻어내는 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신령한 종들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던 중 바로 이 엡5:26에서 '말씀'을 물로 대구(對句)시키며 교회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에베소교회를 가르치는 다른 말씀 중에 이 내용을 미리 적어 훗날 중생에 관련하여 그 요소를 알아야 할 교회나 교인들에게 알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입니다.
④벧전1:23에서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했음을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느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기록해 주신 성경입니다. 이 기록은 베드로가 가르치던 그 교회 교인들에게는 그 당시 베드로의 목회의 일부였는데, 이 베드로전후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확정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를 중생시켜 거듭나게 하는 것 중에는 '말씀'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데 필요한 것은 '성령' '물' '말씀' 이런 표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⑤요11:25에서 '예수'의 이름은 부활과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대속하시므로 우리가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은 성구는 따로 하나 둘 제시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죄로 죽은 것은 우리의 영이고,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단절되어 더 이상 추가 공급이 없으므로 물질로 된 우리의 몸과 마음은 태어날 때 가진 것을 평생 소모하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치르고 우리가 행할 의를 마련하기 위해 십자가 사활의 대속으로 구원하셨는데,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 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아니면 '십자가'나 '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요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했는데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도 예수님이고 우리 몸이 앞으로 죽은 후 다시 부활하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입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도, 살아난 것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생명을 한번 더 갖는다는 것이요 새생명을 얻는다는 것이요 죽은 것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3.요일5:8에서 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단순한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모든 운동은 천지를 없는 가운데에서 만든 것부터 그 유지 관리 등 모든 활동이 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증거'는 세상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말'이 아니고 절대 불변의 역사를 말합니다. 성경의 '증거'는 '활동'과 '결과'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하면 결국 되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모든 활동과 역사와 결과는 이 3가지가 하는 것이니 '성령과 물과 피'는 떼놓을 수 없는 하나입니다. 성령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물'은 앞에서 살핀대로 깨끗이 씻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우리 행위가 씻어지고 인격이 씻어지며 우리의 말과 생활과 모든 것이 씻어집니다. '말씀'으로 표현하지 않고 물로 표현할 때는 말씀의 이런 기능적인 면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려는 또 하나의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죽었던 우리를 살린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살려내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이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미 죄를 지은 우리의 죄값을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 3가지가 다 있어야 우리는 중생됩니다.
2004-04-27 10:00:27
yilee [ E-mail ]
2.성화라는 표현의 사용 문제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1.윗글 질문에서 2번째로 말씀하신 내용
'영은 단번에 중생되고, 심신은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표현을 '성화'로 바꿀 수 있는지'라는 내용입니다. 최근에는 '성화'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성화'라는 표현을 오랫동안 수도없이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2.'성화'라는 표현을 최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
①구원론에 관련된 표현 몇 가지에 대한 기본 설명
믿게 되면 즉시 살아나면서 해결되는 '영'이 있고, 그후 평생 조금씩 발전해야 하는 '심신'이 있는데, 앞의 경우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라 하고 뒤의 경우는 사람마다 그 건설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영의 중생은 기본구원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건설구원의 경우는 각 사람의 몸과 마음의 신앙차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구원론에 대한 설명은 이미 45년을 넘기고 있는데 '기본구원'에 대한 설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냥 '기본구원' 하나로 거의 사용되고 있는데, '건설구원'은 초창기부터 '성화구원'이라는 단어와 거의 같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성화라는 표현이 건설구원을 표현하는 데에 너무 적당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쌓아나가며 진행된다는 뜻으로 '건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그 건설의 모습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것이므로 '성화'라고 한 것입니다.
②'성화'라는 표현의 한계
성화구원이 이처럼 건설구원과 나란히 사용될 만큼 널리 사용되다가 도중에 그 표현이 점차 줄어들게 된 이유는 건설구원의 내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진 것이 그 일차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구원론을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때는, 구원론의 진행이 2단계라고 표현하고 설명하는 그 자체가 과거에 듣지 못한 것이라 해서 이단시비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믿는 순간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있고, 구원 받은 사람에게 각자 달리 진행되는 것이 있다는 이 설명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건설구원의 존재는 확고하게 다져지는데, 건설구원의 내면에 대한 성격이 추가로 연구되면서 건설구원은 어느 한 사람의 평생을 놓고 믿은 이후 죽는 날까지 점점 성화되어진다는 이 표현 하나로 만족할 수 없는 데 이르게 됩니다.
한 사람의 믿은 이후 평생을 통째로 평가하고 관찰할 때는 '성화되어져간다'고 표현하면 되는데, 그런 표현은 사실 총론적인 표현이고 초보 이론입니다. 성화가 되어지는 내면을 살펴보면, 한 현실마다 물질로 구성된 몸과 마음에는 그 현실에 해당된 요소들이 그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면 그 부분은 성화가 되고 그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해당되는 부분은 죄로 죽었던 상황에서 다시 살아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성도 안에 있는 요소로 존재하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는 천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지옥에 버려두고 가야 할 부분이 됩니다.
이렇게 성화라는 것은, 한 사람의 평생을 간단하게 한 마디로 표현하고 그칠 수도 있으나, 실제 한 성도의 생활은 매 현실에서 생사를 건 전투로 평생 계속되는데 그 매번의 현실 전투에서 말씀대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각 요소가 성화가 되느냐 성화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느냐는 숨가쁜 내면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거의 모든 내용은 안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면보다 이미 믿게 된 우리가 평생 투쟁해야 할 이 현실 전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전투의 성격과 이기는 방법과 주의할 점 등 전쟁백서요 전쟁교범이요 전쟁백과사전입니다.
건설구원의 내면을 이렇게 심층적으로 살펴들어가게 되자 '성화'라는 표현은 점점 그 사용빈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건설구원 전체를 하나로 볼 때는 건설구원이나 성화구원은 비슷하게 사용되었고, 다만 어느 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두 단어가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백목사님의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건설구원의 내면, 성화가 이루어지는 그 깊은 내면을 강조하게 되자, 건설구원은 하나의 큰 개념으로 또는 구원론의 총론적 표현으로 사용될 일은 적어지고, 그보다는 매 현실 속에서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는 면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따라서 말씀대로 몸과 마음의 기능이 하나씩 의의 기능으로 변화되어가는 면을 강조하게 되면서 성화구원보다는 건설구원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③일반 교계가 사용하는 '성화'와 혼동
성화구원의 사용을 줄이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단어가 일반 신학계에서도 이 신앙노선과 비슷하게 사용하는데, 두 단어의 개념은 총론적으로는 유사한 점이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 교계의 구원론에서는 구원의 순서를 7가지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소명 - 중생 - 회심 - 믿음 - 칭의 - 성화 - 견인'
여기 비해서 공회의 교리체계는 구원론을 둘로만 보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구원론의 7가지 단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분리해야 할 필요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실제 우리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둘로 나눈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질문과 관련하여 표현하자면
'기본구원 - 건설구원'입니다.
'기본구원'은 '소명 - 중생 - 회심 - 믿음 - 칭의'까지입니다.
'건설구원'은 '성화 - 견인'입니다.
물론 이렇게 나누는 것도 한 가지 측면에서만 설명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일반교리에서 말한 7가지는 실은 전부가 기본구원에만 해당됩니다.
그런데도 얼른 윗쪽 도표를 보면 일반 교계가 '소명'으로부터 '견인'까지 7단계가 있는데 그 중에 '중생'과 '성화' 두 부분을 강조한 것이 이 신앙노선의 교리처럼 보이는 오해가 많습니다. 공회 내에서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 교계가 사용하는 '성화'라는 단어와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사용하는 '성화'라는 표현은 그 범위가 분명히 다릅니다. 다른데, 백영희 교리가 외부로 알려지게 되자 처음에는 덮어놓고 이단으로 정죄했다가 이제는 분명하게 가치성이 있는 교리라고 판단되자, 마치 일반 교계가 이전부터 알고 내려온 '중생'과 '성화'가 이 노선의 '중생'과 '성화' 표현과 일치된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많아서 성화라는 표현을 조금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우리 발명품(?)의 이름을 독특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구원론의 전개 과정에서 자꾸 깊게 알아가게 되면서 '성화'라는 표현보다 더 정밀하고 실상에 가까운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꼭 '성화구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실질적으로도 일반 교회의 '성화'라는 표현과 이 교리의 '성화'라는 표현은 단어모양은 같아도 그 교리적 관할 범위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3.질문 내용에 집중한다면
질문자 표현은
>백목사님의 피공로, 성령의 감화와 진리로 거듭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용어설명과 영은 단번에 거듭나지만 심신은 계속 거듭나냐 한다는 말을
>계속 성화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면 안되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변자 안내는
'심신은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계속 성화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는 문제'에 대하여는, 최근에 그렇게 잘 사용할 일이 없어 그렇지 원래 공회 내에서는 그렇게 사용한 것이 많습니다. 몸과 마음이 평생토록 말씀대로 살아서 꾸준하게 성화되어나가야 한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심신이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표현도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어질 때가 있으니 그런 때에는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신의 요소는 물질적 요소이므로 복합체입니다. 여러 요소들로 모여진 것이므로 현실마다 해당되는 요소가 다르고 우리의 매 현실에서 해당된 그 요소들의 생사를 건 전투가 있는데 이 면을 강조할 때는 '심신은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2004-04-27 18:39:19
나그네
Re: 거듭남의 3요소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거듭남이란 무엇일까?
이말씀은 성경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은 늘상듣고 또 믿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새로남 이지요.
새로난다.
어것은 먼저난것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
물과 성경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관주성경(요3:3) 난하주에 보면 거듭남 이라는 단어 옆에 작은 숫자가 있지요 그것을 ?아
보면 "위에서"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말은 위에서 난다는 말입니다. 밑에서
난것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위에서 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물로 태어나야 된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의 양수에 싸여서 10달을 지나다가 태
어났습니다. 고로 물로 태어나는것은 침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침례는 옛
사람을 물속에 장사하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로마서 6장에서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로 태어나는 것은 믿고 침례를 받는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구원관에는 "칭의" "성화" "영화" 가 있습니다.
칭의는 믿고 침례를 받을때 주어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래서 칭의(稱義)는 거저주시는 의 또는 입혀주시는 의 입니다.
그러나 성화(聖化)는 나누어 주시는 의 입니다. 이 의는 우리가 구원의 결국에 이를때까지
이루어야 할 의 입니다. 이 의는 우리스스로 이루는 의라기 보다는 예수님과 동행할때 말씀
안에서 순종할때 이루어 주시는 의 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평생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가? 어떤 말씀에 순종하란 말인가?
예수께서는 상산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살전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요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의 요지는 무었인가?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
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마1
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
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마22: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22: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위에서 보는봐와 같이 말씀의 요지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로 성화란 율법을 따라 순종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잘못간 사람을 빗대어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5장 1-12절 까지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입
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생활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세월을 잘못 살았다는 말입니다.
기름은 있었는데 그 기름을 미리 사다가 예비를 했어야 했는데 성령의 감화를 무시하였으며 말씀의
역사를 외면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의 재림은 지체되었으며 생각지 않은때(마24:44눅
12:40)에 주님의 재림은 이르러왔으며 그때에 기름은 떨어져 불이 꺼져갔습니다.
항상 교회의 문은 열려있으며 말씀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읽을수 있는 우리곁에 있지만 다른 것에
시간을 빼았겨서 마음은 무디어지고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질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의를 나에게 적용하여 믿고 주장할 때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이 의를 매 순간 나에게 적용하며 살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어 지는 것이며 따라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의 믿음이 주님이 재림때까지 연결될 때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마25:32-42) 양의 무리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영광의 자리에 함께함이며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2004-04-27 19:27:24
yilee [ E-mail ]
몇 말씀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1.'나그네'께서 신중하게 올리신 글일 것이므로 전체적인 면은 좀더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교리 문제는, 조금만 표현을 달리 해도 적은 분의 입장을 고려하여 충분히 읽고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글이면 올리신 분량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나 '교리' 관련 의견이므로 시간을 갖고 살펴보겠습니다.
2.그러나 잠깐 읽으면서 이곳과 다른 입장이 있는 듯 하여 몇 말씀드립니다.
①'물로 태어난다'는 말씀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물에 쌓여 있다가 태어났다고 표현하시고, 이어 침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물로 태어난다고 표현하시는 면은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침례로 중생된다는 뜻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표현에서 물이라는 것은 중생의 요소요 작용인자인데, 침례가 중생의 절대적 전제가 된다면, 침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혹시 지옥간다는 정도로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글을 적은 분께서 깨닫고 주장하는 바를 이번 글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려워 단정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올린 글의 내용을 평범한 사람으로 읽는다면 이런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을 듯 합니다.
②'성화'에 대한 설명은 이해하기 좀 곤란했습니다.
③'침례'에 대한 표현을 너무 집착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이번 올리신 글은 '발언/주제연구'로 옮겼으면 합니다.
일단 이곳과 다른 면으로 생각하셨다고 보입니다. 비슷한 점도 많고 또 조금 애매한 부분도 있고,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올리신 글이 '건설구원'에 관련된 내용이므로, 이곳 홈에서는 관심이 많습니다. '발언/주제연구'로 올려 혹시 추가 글이 이어진다면 그곳에서 대화를 했으면 합니다.
또 글을 올리신 분도 추가로 하실 말씀이 계실 것 같고, 또 이곳을 찾는 분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곳은 문답방이어서, 답변자의 답변을 안내로 생각하겠다는 전제로 올려지는 분들을 위해서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잠깐씩 올려지는 글은 상관하지 않고 있습니다. 글의 진행 과정에서 여러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도 윗글 문답에 바로 이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더 대화가 필요하다면 이곳보다는 '발언/주제연구'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
담당72023-05-25 11:31구 게시판 자료화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 |
'문답방 이용 - ①기존문답보관실 ②비공개질문 ③비실명진행
공지
|
직원
|
2018.02.21
|
추천 0
|
조회 15876
|
직원 | 2018.02.21 | 0 | 15876 |
13769 |
New UP [설교록] 나는 독립으로 - 한자로 표시를 해 주시면
(1)
13769
|
#4858
|
2023.12.04
|
#4858 | 2023.12.04 | 0 | 5 |
13768 |
New UP [기타] 성도의 할 일
(1)
13768
|
#4854
|
2023.12.04
|
#4854 | 2023.12.04 | 0 | 4 |
13767 |
New UP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1)
13767
|
#4852
|
2023.12.04
|
#4852 | 2023.12.04 | 0 | 5 |
13766 |
New UP 여호와의 궤가 20년 동안 방치된 이유
(1)
13766
|
교인
|
2023.12.03
|
교인 | 2023.12.03 | 0 | 81 |
13762 |
[박관준] 다음 시는 누가 쓰신 것인지요?
(1)
13762
|
#4851
|
2023.12.01
|
#4851 | 2023.12.01 | 0 | 21 |
13761 |
[용어] 생명 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
(1)
13761
|
#4850
|
2023.12.01
|
#4850 | 2023.12.01 | 0 | 28 |
13760 |
[자료운영] 문의답변방 정리
(1)
13760
|
#4848
|
2023.12.01
|
#4848 | 2023.12.01 | 0 | 18 |
13759 |
[인물] 백 목사님 이력
(1)
13759
|
#4840
|
2023.11.30
|
#4840 | 2023.11.30 | 0 | 37 |
13758 |
[인물] 선다씽
(1)
13758
|
#4836
|
2023.11.30
|
#4836 | 2023.11.30 | 0 | 18 |
13757 |
[직업]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데
(1)
13757
|
#4832
|
2023.11.30
|
#4832 | 2023.11.30 | 0 | 29 |
13756 |
[용어] 사활의 대속
(1)
13756
|
#4827
|
2023.11.30
|
#4827 | 2023.11.30 | 0 | 19 |
13752 |
![]()
13752
|
#4826
|
2023.11.29
|
#4826 | 2023.11.29 | 0 | 2 |
13751 |
[기도] 산기도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1)
13751
|
#4824
|
2023.11.29
|
#4824 | 2023.11.29 | 0 | 32 |
13750 |
[귀신] 엑소시즘
(1)
13750
|
#4820
|
2023.11.29
|
#4820 | 2023.11.29 | 0 | 27 |
13747 |
[신신학] 예수께서 사흘 낮과 밤을 땅의 심장 속에 계셨다?
(1)
13747
|
#4819
|
2023.11.28
|
#4819 | 2023.11.28 | 0 |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