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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개]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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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880
작성일
2022.11.25

2003-10-04 21:33:20
노하우 [ E-mail ]

[기도/회개] 안녕하십니까?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 등 - 관)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교리-교회론-신앙생활-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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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1.우리가 기도할때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그런 기도를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백목사님은 어떻게 말씀하신 것이 없습니까?

2.교회에서 작정기도들을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적인 것일까요?
목회자들에 따라 어떤 분은 100일 작정기도회는 불교적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하고, 어떤 분은 21일 작정기도 처럼 홀수 날짜에 마추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듣는 중에 금시 초문입니다. 백목사님은 작정기도를 하신 적이 없는가요?

3.하나님이 개개인에게 주신 사명을 찾아 확고히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003-10-05 17:02:34
yilee [ E-mail ]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교리-교회론-신앙생활-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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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죄를 고하여 사함 받는 것

 

①죄를 고하는 것은 죄에서 돌이키는 첫 행동입니다.

 

죄를 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또 회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우리가 기도하면서 죄를 고하여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은, 죄로 싸워 이기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점점 깨끗하게 성화되는데 필요한 첫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던 것은 왼쪽 길로 걸어갔다는 말이고 고하여 사함을 받는다는 말은 오른쪽으로 걸어가도록 허락을 받는 일입니다. 왼쪽으로 걸어가서 죄를 지었던 과거는, 이미 자기에게 죄의 기능을 만들어 놓았고 또 그 죄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도 수치를 당해야 하고, 또 먼저 지은 그 죄 때문에 앞으로도 죄를 지을 때 과거보다 훨씬 죄를 짓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②죄를 고하면 주님 피공로가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죄를 고한다는 말은, 죄를 짓고 왼쪽으로 걸어가던 걸음에서 이제 돌이켜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출발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세상법을 어기는 죄인들은 자기 혼자 힘으로 새인생을 살겠다고 출발할 수 있습니다. 세상법을 어기는 것이나 지키는 것이나 크게 보면 세상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악령이 그 임금이고 그 나라 안에서 이사가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짓던 사람이 말씀대로 살겠다고 돌이키는 행동은 세상나라에 속해 살던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행동입니다. 마치 북한 내부에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가능해도 북한 외부로 탈출하는 것은 금지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던 사람이 말씀대로 살겠다고 돌이키는 것은 인간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인간보다 권세 있는 악령이 막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은, 만일 믿는 사람이 그 죄를 후회하고 죄에서 돌이켜 의롭게 살고자 원하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내듯이 예수님의 대속을 적용시켜 죄짓던 왼쪽 길에서 의롭게 사는 오른쪽 길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③고하는 방식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고하는 것은, 천주교처럼 고해성사와 같은 무슨 특별한 의식이나 격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알고, 후회하고, 이제는 의롭게 살기를 결심하는 것이 죄를 고하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보통 그렇게 하려면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로 ‘기도’하는 중에 고하여 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은 죄를 고하여 회개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기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와 회개는 따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라는 면을 중심으로 표현하면 기도가 되는 것이고 죄를 후회하고 돌이키는 면을 중심으로 표현하면 회개입니다.

고하여 회개하는 방법은 이와같이 특별한 의미가 없으나 다만 고하여 회개할 때 일일이 손가락을 헤아려 가며 꼽지는 않겠으나 대개 거쳐야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우선 자기가 행동한 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그 죄지은 행동을 ‘후회하고’, 이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각오’하는 것이 고하므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④고하여 회개하게 되면 크게 3가지 면으로 사함을 받습니다.

 

믿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매를 드십니다. 죄값으로 오는 형벌 때문이 아니고, 잘못 행동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돌이키게 하는 사랑의 징계입니다. 죄를 지으면 둘째로 오는 결과는 다음에 또 죄를 지을 환경이 닥치면 이전보다 죄를 더 잘 짓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믿는 사람의 죄는 지옥은 가지 않으나 영원토록 수치는 있게 됩니다.

고하여 회개하게 되면 이 3가지 면으로 오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고하여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던 매를 거두십니다. 죄를 느끼고 통회하는 그 정도에 따라 매가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하고 완전히 없어지기도 하고 또는 연기되는 수도 있습니다. 또 영원히 부끄럽게 수치를 당하는 문제나 세 번째 말씀드린 재범에 미치는 영향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회개하고 돌이키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단 여기서는 간단하게 말해서, 고하고 회개하면 사함을 받게 된다는 원칙은 분명히 못을 박을 수 있습니다.

 

⑤고하여 회개하는 데 있어, 아는 죄와 모르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하므로 사함을 받는 것은 원칙입니다. 쉽게 그렇게 단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하고 회개하는 그 자세나 심정이 얼마나 철저하고 간절하냐는 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낱낱이 알고 통회 자복하는 사람과 자기가 지은 죄는 엄청나게 큰데 자기 신앙이 어려서 하찮은 죄라고 알고 고하고 회개하는 경우는 그 고함과 회개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수도 없는 죄를 지어놓고도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 또는 죄인 줄은 알았으나 세월 속에 잊어버린 죄도 적지 않습니다.

그 죄를 철저히 파악하고 회개하는 경우와 그 죄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경우와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는 경우는 하나님께 고한다 해도 ‘알고’ ‘후회하고’ ‘돌이키는’ 자세 자체가 크게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지은 죄를 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해 주시고 어떻게 뒤처리를 해 주시느냐에 대하여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 줄도 모르거나 그렇게 큰 죄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만일 자기가 아는 죄는 철저히 회개하되 다른 죄는 몰라서 그렇게 낱낱이 회개하지는 못하고 그대신 자기가 모르는 죄가 많을 것이므로 떨고 그런 면의 걱정을 주님 앞에 내놓고 그런 면을 고하고 회개한다면, 죄의 내막을 샅샅이 파악하고 통회 자복하는 죄에 대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보다 클 것이고, 그 내막은 몰라도 모르는 죄까지 그렇게 걱정화고 회개하는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일단 그 죄 때문에 당할 손해는 피공로의 약속에 따라 전부 사하시겠지만, 앞으로 또 그런 죄를 지을 환경이 될 때 그 죄와 싸울 힘은 그렇게 많이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조심하실 것은, 고하면 사해 주신다고 했다는 것을 기억하여 죄를 거침없이 짓거나 또는 나중에 회개하면 될 것이니까 해독제를 믿고 독약을 예사롭게 둘러 마시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가 뒤에 기도 중에 고하고 회개를 하겠지만 그 사람의 고하는 것과 회개한다는 기도는 그 사람과 그 옆 사람들이 볼 때 그런 것이고, 그 사람의 중심을 읽고 계시는 주님 앞에는 그 죄가 후회되고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고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는 계속 짓고 싶은데 매 맞기가 싫으니까 하나님의 매를 고함과 회개라는 방패로 막는데 이용해 먹는 ‘또 하나의 죄’를 짓고 있다고 보시게 됩니다.

따라서 고함으로 사함을 받는 문제는 그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그 죄를 알고 후회하고 이제는 그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는 자기 내면의 각오와 느낌이 얼마냐에 따라 실질적인 회개가 되는지 안 되는지가 결정되고 또 그 회개의 정도도 결정이 된다는 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⑥물론, 성찬식과 같은 경우는 모르고 지은 죄까지 전부 한꺼번에 고하게 됩니다.

 

고전11:28에서 회개하지 못한 죄를 두고는 성찬을 먹지 못하도록 말씀했는데 이 때문에 성찬을 받을 때는 먼저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아는 죄는 일일이 고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 모든 부족한 것 잘못된 것 모르고 있는 모든 죄도 다 함께 사해 주시기를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구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느 한 순간을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전부 꼭 같은 차원에서 회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부족인 줄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크게 느끼는 죄와 적게 느끼는 죄, 그리고 죄인 줄도 모르는 죄를 두고 회개를 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 기준에 다 맞게끔 꼭 같은 수준에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현재 느끼고 알 때 큰 죄라고 생각하면 크게 회개하고, 작은 죄라고 생각하면 작게 회개하고, 또 모르는 죄는 모르는 죄끼리 모아서 한 마디로 한꺼번에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꼭 같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느끼고 깨닫고 통회하는 만큼 그 죄의 해독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장차 그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겠지만, 이것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은 자기가 알고 느끼면 알고 느끼는 만큼은 회개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현재 그 사람이 느끼지 못한 죄나 알지 못하는 죄를 그다음에 알려 주셔서 또 더 크게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는, 현재 아는 만큼 실행하고 회개하면 그다음에는 조금 더 크고 자세한 죄를 알게 되고, 또 그것을 회개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의 죄와 맞서 계속해서 싸우고 회개하고 승리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되면 큰 것에도 충성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단번에 해결해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신앙세계에는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평생토록 앞으로 진행해 나갈 ‘하나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현 상태로 얼마나 깨끗하게 철저하게 회개했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아는 것만큼은 정상적으로 바로 해결해 나가고 있느냐 하는 그 과정 연결상태를 더 크게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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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죄와 회개에 관련한 문제를 좀 다른 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내용은 '속죄론' 측면에서 일반 조직신학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들이 있어 약간 다른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중복 되는 내용이 있더라도 '죄사함'에 관련된 문제들을 다음 내용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①믿는 사람의 죄가 만들어 내는 죄의 기능

 

죄를 지을 때는 우리가 그 죄짓는 순간에 우리 심신이 합작해서 죄를 짓습니다. 즉, 죄는 그 사람 전체가 죄를 짓는 것인데, 그 죄로 인하여 생기는 기능은 특별히 따로 있습니다. 도둑질을 한다면, 도둑질 할 때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다 단합하여 그 사람 자체가 죄를 지었지만 특히 도둑질한 죄로 죄를 지을 때는 그 죄로 인하여 나타나는 결과는 도둑질이라는 죄의 기능입니다.

 

②회개의 진행 순서 5가지

 

물질면만을 두고 도둑질한 죄를 가지고 예를 든다면, 먼저 경제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해야만 경제적인 면으로 하나님을 닮아 깨끗한 심신으로 건설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지은 죄를 예로 들어 그 회개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첫째, 어떤 면으로 도둑질을 했는지 '죄를 알고'
둘째, 그 죄를 '후회하고'

셋째, 죄를 짓지 않고 바로 살겠다고 '각오하고'

넷째, 이제 다시 도둑질 할 수 있는 현실에서 '돌이켜서' 도둑질하지 않아야 하고

다섯째, 땀흘려 일하여 내가 먹고 이제는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③기도하면서 고함으로 회개하는 것은 '각오' 단계의 회개까지입니다.

 

늘 양심에 느끼고 있는 뚜렷한 죄는 기도한다고 눈을 감게 되면 바로 마음에 떠오르기 때문에 죄를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또 잊었던 죄라 해도 기도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깨끗해지기 때문에 잊었던 죄나 몰랐던 죄를 알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죄를 인지하게 되면 기도 중에는 후회하게 되고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게 되고 또 앞으로는 바로 살겠다고 각오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기도 중에 회개하는 것으로 회개가 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문제까지를 회개하는 것이지 회개의 본래 의미인 새 현실에서 실제 달라진 결과까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 중에 고함으로 회개하는 회개는 과거 문제까지라는 것을 우선 잘 인식해야 합니다.

 

④고함으로 회개한 것의 결과는 징계를 멈추고 새 은혜를 구하는 것

 

기도 중에 고하여 회개하는 것은 새로 돌이켜 새사람이 되는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과거 지은 죄 때문에 징계를 받아야 할 매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이켜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는 힘을 더욱 많이 주시는 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함으로 회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우선 고함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 이전 지은 죄 때문에 당하는 징계를 감하거나 피할 수 있고 고하지 않고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가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더 큰 매가 가게 됩니다. 또한 앞으로 다시 도둑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을 때 고함으로 회개한 사람은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고하지 않고 회개를 피한 사람은 다음에 또 도둑질 해야 할 환경을 만나게 되면 이전보다 더욱 도둑질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이고 주변 환경도 이전보다 자신을 도둑질하도록 더 크게 움직일 것입니다.

 

⑤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고하여 회개한 것의 효력이 어디까지냐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드렸지만, 기도하면서 고하지 않아도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죄문제로 고민해야 할 일은 오로지 건설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자기 심신의 성화에 있어 이미 지은 죄가 앞으로 건설해 나갈 신앙에 어떻게 가로막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죄문제입니다.

고하여 회개하는 사람과 고하지 않고 회개를 회피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사람의 심신 성화에 있어 회개한 사람은 깨끗하게 나아갈 힘을 얻고 회개를 피한 사람은 성화의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날 죄를 지은 것은 다시 돌이켜 의의 기능으로 되살려 내지는 못합니다. 한번 지은 죄는 그 죄를 지을 때 관계된 심신의 기능을 다시는 복구할 수 없도록 죄의 기능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 중에 고하여 사함을 받는 문제는 어떤 문제이겠는가? 바로 과거 이미 만들어진 죄의 기능이 현재 이 시간 자신에게 또 그런 죄를 짓도록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과거 어떻게 해서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현재 또는 앞으로 그런 죄가 또 다시 접근할 때 이제는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막을 수 있고 피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과거 지은 죄를 알고 후회하게 된다면 현재와 앞으로 그런 죄를 만날 때는 그 죄의 영향을 차단하게 되고, 돌이켜 이제는 그 반대의 사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⑥고하므로 '사함'을 받는다는 단어는 받을 형벌을 면한다는 것이 있지 않는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흔히 죄와 회개와 사함이라는 표현을 두고 교리학자들이 설명할 때 '법정 용어' '형사처벌에 있어 형의 면제'라는 입장으로 설명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하여 사함을 받았다면 죄인이 그 죄 때문에 직접 자기가 받아야 할 처벌을 면제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분들의 한결같은 논리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주장은 전적 맞는 말입니다만 그분들이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구별입니다.

기도하여 사함을 받고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고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그 죄 때문에 지옥을 가게 되느냐는 이 마지막 문제를 들이대면 혼동을 하게 됩니다. 이 문제 때문에 기도하여 사함을 받아야 된다는 말도 하면서 또 죽을 때는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대속의 피로 마무리 한다는 등으로 혼선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형벌은 이미 중생될 때, 단번에 완전히 또 영원히 주님이 십자가 피로 해결을 지워놓았습니다. 그 해결에는 믿은 이후 죽는 날까지 지을 죄도 다 포함을 시켜 해결을 했습니다. 따라서 지옥을 가는 문제 때문에 발생되는 모든 형사문제는 이미 중생 때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죄를 고했느냐 고하지 않았느냐는 문제로 우리가 형벌을 받느냐는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지은 죄의 기능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지만 그 한 부분이 죄의 기능이 된 문제를 두고 우리 심신 자체가 전체적으로 영원히 천국에서 부끄러움을 당해야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설구원 과정에 있는 우리 믿는 사람이 죄로 인하여 당하는 형벌입니다. 지옥 형벌은 기본구원에서 근본적으로 제거했기 때문에 우리의 회개 여부에 상관없이 해결이 되어졌으나 건설구원면으로는 죄의 기능이 된 그 부분은 한번 죄를 지으면 영원히 지옥에 던져져야 하고 또 그 부분 때문에 우리 자체는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부끄럽게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고통은 기본구원적인 차원의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인데 이는 다른 곳에서 따로 살펴본 것이 많으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약하겠습니다.

또 기도 중에 고함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 이후에 또 다른 심신의 요소들이 성화될 수 있는 기회에 앞서 지은 죄 때문에 줄줄이 죄의 기능으로 돌아서는 영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서 지은 죄를 고하여 회개하는 문제는 건설구원에 있어 자기 심신에 성화되는 그 요소 요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제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미 과거에 지은 죄는 그것으로서 그때 해당된 기능이 죄의 기능으로 완전히 포장되어 둘째사망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의 기능은 그 순간으로 말하면 죄의 기능으로 확정이 되었지만 그 죄의 기능은 그 이후 그 사람의 심신의 다른 요소들이 현실을 당할 때마다 다시 의와 죄의 갈림길에서 투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죄의 기능이 된 기능은 이후 다른 기능들을 계속해서 죄의 기능으로 돌아서도록 역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 속에서 건설구원적으로 일어나는 죄의 저항역사이고 이 죄의 저항역사가 있는 만큼 우리는 그 죄로 인하여 건설구원으로 깨끗하게 될 요소를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하고 그 지옥에 버려지는 요소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기도 중에 고하므로 회개하는 것은 이런 미래 다른 요소들의 형벌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⑦이제 기도 시간에 고하므로 사함받는 것의 성격과 그 범위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가 있습니다. 알고 지은 죄 중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죄는 모르고 지은 죄와 마찬가지로 죄는 죄인데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므로 마치 모르고 지은 죄와 같이 그 죄를 직접 구체적으로 회개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죄를 고하고 회개하되, 그 죄를 지을 때 환경과 나의 자세와 죄를 짓게 된 그 과정을 잘 알면서 회개를 하는 경우와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하여튼 내가 지은 죄는 많을 것이니 몽땅 사하여 주시라는 기도는 그 효력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죄의 내용을 파악하고 후회하고 원통히 생각하여 이제는 그 죄로 더불어 싸워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회개는 그 죄와 구체적으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고 각오와 결심도 하게 되고 대비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지은 죄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알아차리라고 징계를 통해 매를 드는 일은 감하고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자체에 대하여 후회하고 앞으로 모든 죄를 연구해서 자꾸 지식이 더하므로 과거에 몰랐던 죄도 이제 다시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매를 들고 앞서 가르치기 보다는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게 모르는 죄 중에는 죄가 너무 사소하여 모르는 경우도 있고 죄는 너무 큰 죄인데 그것이 죄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지 이런 죄는 하나님께서 고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때를 봐 가며 알려 주시고, 알게 되면 빨리 회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죄라고 알고 지은 죄는 이미 죄인 줄 알지만 자기가 그 죄에게는 약점이 있어 알면서도 잘 졌던 죄입니다. 그래서 이다음 다시 투쟁할 때도 또 실수하기가 쉬운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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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추가 - 03.10.23.)

약간 다른 면으로 질문이 있었던 다음 자료가 이번 답변에 보충이 될 것 같아 추가로 소개합니다.


 


2003-10-05 17:05:18
yilee [ E-mail ]

2.기간을 정해 놓는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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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간을 정해놓는 작정 기도의 장점

 

심지가 약한 자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게끔 챙길 수 있다는 점은 기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작정 기도의 장점입니다.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기도하면 중간에 포기를 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에게 진정 기도가 필요한 때가 고비인데 그 고비가 오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죄짓게 하던 옛사람은 집에 일이 있어 가봐야 하고 또 가스 불을 꺼야 하고 또 안 믿는 부모가 오해할까 해서 그들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등으로 수도 없이 기도를 중단시킬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기도를 중단하고 가야하는 경우도 없지 않겠으나 대개는 미혹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회개하고 새 힘을 얻게 되면 그 사람 속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할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최후 저항을 하다가 나중에는 전투를 연기하자고 꾀는 유혹입니다. 이것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간을 특별히 정해놓고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 앞에 우리는 여러 가지 서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기간도 일정 기간 정해놓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영희신앙노선에서 1957년 이후로 오늘까지 계속되는 연례집회는 그 기간과 장소가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 장소 그 기간이라야 효험이 있기 때문에 천주교나 불교 믿는 사람처럼 격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서원 차원입니다. 신앙의 일반적 경험과 현재 은혜 상황을 보며 정하는 것인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변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지켜지는 차원입니다.

 

 

2.기간을 정해 놓는 작정 기도의 단점

 

좋은 동기라 해도 무엇인가 외부적으로 하나를 고정시켜 계속 반복을 하게 되면, 사람은 그 반복되는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는데 이 적응이 초기에는 적응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 환경이 자기 주관이 되고 그다음에는 자기 속의 기준이 되어져 버립니다.

따라서 기간을 정해놓는 작정 기도는 자기의 연약함을 붙들어 줄 수 있는 차원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과 그 장정이 연속되면 다른 법이 생겨 진리의 법을 대신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신앙 유익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작정 기도의 숫자에 대하여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 때문에 예로부터 교회 내에서는 ‘40일’ 금식기도라는 것이 끊어지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그 어떤 날짜를 정하든 본인의 형편과 기도할 내용에 따라 미리 정해놓는 것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몇 일을 기도해야 좋다는 등으로 말하는 것은 극히 조심시켜야 합니다.

3일 기도는 오가는 시간을 빼면 너무 짧아서 3일 이상은 되어야겠더라는 식으로 실무계산에 따라 말하는 것은 참고할 수 있지만 홀수날짜에 맞추어야 하느니 100일 기도라야 하느니 하는 식이면 그것이 비록 불교가 좋아하는 숫자든지 아니면 그런 숫자와 관련이 없든지 상관없이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백목사님은 주로 한 주간 또는 두 주간 또는 한 달 이런 식입니다. 주일을 중심으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날짜를 두고 특별히 말하는 것은 없고 그냥 주일예배와 참석하는 교인 문제를 고려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003-10-05 17:06:16
yilee [ E-mail ]

3.자기의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정할 때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기도-]/[-교리-교회론-신앙생활-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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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개인에게 주신 사명을 확고히 찾는 방법

 

①본인 속에 본인만 아는 내적 증거, 즉 내증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깊이 기도하며 냉정하게 살아온 길과 자신에게 주어진 장단점과 자기 형편을 놓고 계산해 보면 거의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급박할 때 특별하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평소 주신 자연을 통해 또 선천 후천적 요소를 통해 또 평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자기가 걸어가야 할 특별한 길을 누구에게나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자전거 가게를 하는 집의 아들은 아주 특별한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부모가 하는 자전거 가게를 이어받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알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또 수학은 저절로 공부가 되는데 영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이 막힌다면 수학 쪽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신다고 보면 됩니다. 세상 사람은 자기 잠재력을 개발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 잠재력을 통해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적 요인은 현실을 통해 나를 인도하시는 외적 요인이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최종 판단하는 것은 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정해야 합니다.

 

 

②본인 밖에 있는 외적 증거, 즉 외증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주변에 자기를 어느 정도 알면서 자기보다 인생을 더 살아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말이면 거진 그 길이 자기가 걸어갈 길이라 보시면 됩니다. 교회 구역장과 교역자와 선배 신앙인들이 한결같이 꼭 목회길을 권한다면,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는 목회길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면 무슨 일을 날 것같이 자꾸 주저한다면, 그렇다면 못나고 힘들어도 자기 가야할 길은 이 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결혼으로 생각하면 아주 쉽습니다. 자기는 자기대로 상대방 코의 높이를 자로 재보고 눈썹길이와 그 굽어진 각도까지 재보고 자기 입맛대로 결정하고 싶겠지만, 부모도 좋다하고 집안어른들도 좋다하고 또 신앙으로 지도하는 분들도 그 정도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정답이라고 알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다면 내증 때문에 결정할 수 없겠으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

 

③내증을 참고할 때는 이런 점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평소에 자기 최면을 많이 걸어둔 경우는 내증을 믿을 수 없습니다. 죽어도 교사가 되어 보고 싶다는 사람은, 교사 외에 다른 진로를 택하려고 하면 자기 마음속에 이상한 꿈이 보이고 또 하나님께서 꼭 교사를 원하는 것 같다고 양심의 인도를 거론하는데, 대개는 자기의 욕심에 끌려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원래부터 강한 집착을 가진 경우는, 내적 증거를 찾을 때 자기 주관의 고집과 집착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꼭 인도하시는 자연스런 뜻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도 기간이 필요합니다. 조용하게 자신을 말씀으로 가지고 여러 면으로 살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신학생 중에서 해외 선교를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개 그분들이 어릴 때부터, 또는 신학교 교회사 시간을 통해 ‘선교’에 대한 첫인상을 너무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선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알아보고 접촉하다 보면 주관의 집착이 생기게 됩니다. 혹 이런 면이 아닌지를 찾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④자기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잘 서지 않으면, 최종적으로는 실제 걸어가 보면 압니다.

 

보통 앞서 드린 안내를 따라 좀 차분하게 냉정하게 계산을 여러 모로 해보면 그렇게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갈 길을 충분히 알게 됩니다. 평소 자주 일어나는 사소한 일은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찾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확실하게 이것이라고 했는데 뒤에 보면 잘못 찾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큰 질병을 두고 왜 이런 일이 왔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쉽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감고 발람처럼 아담처럼 애써 외면을 하고 나가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지, 조금이라도 양심을 기우려 본다면 생사가 걸린 문제는 그 원인과 해결이 그렇게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직업을 택하거나 결혼 상대방을 결정하거나 교회 소속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평생을 걸고 노력할 사명 같은 이런 큰 문제를 두고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대개 그 방향으로 걸어갈 때 중도에 포기하거나 또는 인내심이 없어 다른 곁길로 가는 등 실행의 문제가 문제입니다.

 

⑤그래도 확정이 잘 되지 않으면 주변을 참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질문자께서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을 놓고, 저 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저 분의 평생 사명으로 주시고 저 분은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지를 살펴보시면 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파악하기 쉬울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은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을 학생이 놀고먹는 공무원 직업을 선망하여 죽어도 시험을 쳐 보겠다며 도저히 가망없는 도전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을 더러 보실 것입니다. 또 노동이나 하면 꼭 맞을 사람이 주식 투자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 또 식모하고 결혼하면 좋겠는데 쭉쭉 빠진 개죽사발 핥아놓은 미모에게 가겠다는 사람 등 우리 주변에는 그 사람에게 주신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몇 가지 중요한 방향을 보여주시는데도 유독 그 사람만 엉뚱하게 계산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문제점을 찾아보시면 그들이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비추어 주고, 그 거울 속 모습을 통해 나를 빨리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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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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