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믿은 이후 지은 죄는 어찌 되는지?

일반질문용
작성자
자문
작성일
2022.09.23

원제목 : 신자가 믿은 이후 지은 죄는 어찌 되는가? - 회개와 보응을 중심으로

 

죽어 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거듭남의 중생 이후 마음에 주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신자는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은 이후에도 신자는 믿기 전에 죄짓던 습관과 악성이 있어 죽을 때까지 자기의 죄악과 싸우는 것이 믿는 자의 평생 하루 일과 중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믿은 이후 지은 죄의 행위는 영원 무궁 세계에서 어떤 결과를 맺게 됩니까?

전체 15

  • 2022-09-23 05:50
    신자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주님의 피에 고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의지하여 죄를 자백하면 주님이 죄를 사하시고 모든 죄와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입으로 고해서 사함받았다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죄를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또 짓습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고쳐 갑니다. 자라가고 고쳐가면서 깨끗케 변화되고 성화되어져 갑니다.

    좀 다른 각도로 볼 때 잘했든 잘못했든 우리 신자의 모든 행위는 행동록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고 신자가 부활 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면 모든 행위를 심사해서 행한대로 심은대로 보응 받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단순하게 천국과 지옥만을 결정하지만 신자는 천국에 들어가서의 영광과 수치, 위치와 상급, 이 세상에서 산 그 모든 행위를 심사하고 평가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 창조 목적인,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의 차이가 결정됩니다.

    요한계시록의 둘째사망의 해는 불신자가 받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많이들 깨닫고 있는 것 같던데 저는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에게만 해당된다 확신합니다.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둘째사망이란 죽어 있던 자가 살아나고 한번 살아난 그 자가 다시 죽을 때를 둘째사망이라 합니다. 죄로 죽은 모든 인생은 첫째사망이고 주님의 피로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고 거듭나는 중생이 첫째생명, 그리고 살아난 그 신자가 마음에 믿고 신앙생활하다가 현실에서 죄를 지어 신앙이 죽으면 둘째사망, 사데교회에 말씀하신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말씀처럼 신자가 산 행위를 한 것은 어찌되며 죽은 행위를 한 것은 어찌 되느냐? 상급의 차이, 실력의 차이라는 단답형 이전에 과정적으로 설명을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신자의 행위에 대한 보응,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신자의 모든 민낯이 다 발가 벗겨지는 그 순간, 한사람은 잘하였도다 무한하고 광대한 영광이 있을 것이고 또 한사람은 악하고 게으론 종아 한없는 수치와 후회가 기다리고 있으니 세상에서 잘못 산 행위를 전부 다 낱낱히 드러내어 심판 받는 것이 '둘째사망의 해'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신자가 지은 죄는 영생의 소망적으로 건설적으로 자라가는 면에서는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깨끗케 되고 성화되어 사람이 변화되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은 죄를 회개해도 자기가 지은 행위에 대한, 그것이 의의 행위든 죄의 행위든 자기가 행동한 흔적, 발자취, 상처, 흉터, 죄얼은 남아서 그것에 따라 천국 무궁세계에서의 영광 구원의 영원한 차이가 결정됩니다. 회개하고 고쳤다 할지라도 신자가 지은 죄의 결과에 대한 양면을 생각해 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둘째사망은 거듭나 생명생활하는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죽을 때까지 불신자로 산 사람은 둘째사망의 해가 없고 곧바로 지옥행입니다. 인간의 영과 마음과 몸을 세가지로 각각 나눌 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정의될 수 있듯이 신자가 지은 죄의 결과와 그 향방이 하나는 회개로 깨끗해지는 생명생활, 또 하나는 행한대로 갚음이 있는 보응의 둘째사망을 발견할 때 기능구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 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죄를 자백하면 깨끗케 된다는 말씀은 소망이고 안심이라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둘째사망이라는 단어의 뜻을 바로 깨달을 때 생겨나 말뿐인 자백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육신이 약해서 또는 고의로 반복적으로 짓는 그 모든 죄를 피흘리기까지 싸워 이길 힘이 '둘째사망이라는 깨달음' 여기서 나온다고 개인적으로 정리해 봅니다.

  • 2022-09-27 09:31
    질문자께서 이미 자문과 자답을 통해 대략 답을 알고 계시니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과거 답변를 참고하시고
    조금 더 정리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추가 질문이 이어지면, 그때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022-09-27 09:32
      지옥은 1.불택자 전부 2.택자의 죄의 기능을 버리는 곳

      1. 성도의 죄 지은 기능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두 번째 생명이 주어 졌으니 이를 새 생명, 거듭 난 생명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무거울 重'이 아니라 '다시 重'이라고 하는 중생입니다.

      중생 된 사람이 다시 죄를 짓는다면 히6:4 이하에서 한 번 비췸을 얻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 하신 그대로 계2:11의 '둘째 사망'에 던져 집니다. 중생 된 사람 자체는 죄를 지어도 무조건 은혜로 천국에 가지만 죄를 지은 사람의 죄의 행위나 기능은 지옥에 분리 처리 됩니다.


      2. 회개의 정한 의미
      믿는 우리에게 주어 진 회개라는 것은 보통 회개함으로 모든 것이 다 없어 진다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것은 자기 편의주의로 자기 중심주의로 성경을 읽다가 너무 지나 치게 많이 나간 경우입니다.

      중생 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 죄로 인해 지옥을 가야 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없어 졌고 이 것은 우리가 중생이 될 때부터 미리 해결 되었습니다. 믿은 이후에 죄는 각자의 신앙 발전 또는 자기 천국의 건설에 관련 된 문제인데 중생 후 다시 죄를 지은 뒤 그 죄를 회개하느냐에 따라 달라 지는 것은 천국의 영원한 수치 여부입니다.

      다윗의 범죄가 다윗이 철저히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십자가 배신 행위도 훗날 그가 회개했지만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의 닭을 압니다.
      가룟 유다의 죄도 우리는 함께 알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죄는 회개 없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영원히 탄식하며 그는 그 죄를 영원히 부끄럽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신, 다윗과 베드로의 죄는 그 죄를 지은 사실 자체는 없어 지지 않으나 그 죄로 인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회개로 인해 우리는 다윗을 더욱 다윗답게 보고 베드로를 더욱 베드로답게 대하며 부러워 하고 존경합니다.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다윗은 다음에 과거처럼 또 죄가 밀고 들어 올 때 다윗으로 하여금 과거 그 죄와 싸우고 회개한 경험을 가지고 그 새로운 죄를 이기게 하며 베드로의 경우는 한 번 주님을 배신한 그 회개의 힘을 가지고 주님 가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는 힘을 얻게 됩니다.


      3. 생겨 진 죄의 기능
      우리가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한 것은 한 번만큼의 기능이 생깁니다. 반복하면 반복한 것만큼 기능이 강하고 자라며 능숙해 집니다. 우리의 행위는 죄와 의로 나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 나온 만큼 우리 안에는 죄와 의의 기능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미 거짓말이 입에 배였고 놀음을 하는 손가락 기능이 손에 들어 앉아 있는데 회개를 한다고 그 버릇 그 기능이 없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능은 버리고 가지 천국에 가지고 가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 거짓말과 놀음하는 버릇을 회개함으로 그 죄가 새로 오는 새 현실에서 힘 있게 죄를 짓게 하는 짓을 못하게 할 뿐입니다. 또 이미 지은 그 죄의 수치는 회개로 씻어 지는 것입니다.

  • 2022-09-27 09:37
    죄의 행위, 회개의 효력

    1. 행한 대로 갚으시는 원칙

    사람에게는 자유성을 주셔서 만물과 달리 각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든지 거역하든지 자유가 있는데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을 하든지 한 번 행한 것은 없어 지지 아니하고 영원한 보응 보상이 있으니
    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2. 죄와 죄의 기능

    죄를 지으면 죄 지은 사람은 그 죄의 값으로 지옥으로 가야 하는데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른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믿는 우리는 죄와 상관 없이 무조건 천국입니다.
    그러나 지은 죄와 그 죄로 인해 생긴 죄의 기능이라는 것은 그냥 없어 지지 않고 지옥입니다.
    불택자들은 불택자 자신과 평생 지은 죄와 그 죄를 지어 생긴 죄의 기능을 가지고 지옥에 갑니다.
    지옥의 고통은 땅 위에서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또 죄의 기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3. 회개

    믿는 사람은 불택자가 가는 지옥에 가지 않도록 예수님이 대속하여 완전히 돌아 서게 해 놓았는데
    믿은 이후에도 우리는 예전처럼 죄를 짓고 죄에 붙들려 천국을 준비할 시간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죄를 알지도 못하지만 안다 해도 스스로 죄를 이기고 끊고 돌아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죄를 끊고 이기고 돌아 설 수 있습니다.

    믿은 이후에도 죄를 짓느냐, 믿은 이후에는 회개의 능력을 받았으니 죄를 끊고 이기고 사느냐?
    이 것은 믿는 각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고 그 결정에 따라 자기의 영원한 모습은 달라 집니다.

    만일 믿은 이후에 죄를 이기고 죄의 기능을 줄이고 없앴다면 없앤 만큼 의의 실력이 있을 것이고
    믿은 후에도 죄를 짓고 죄의 기능을 길렀다면 죄 지은 행위와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천국에 가는데
    믿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갔을 때, 천국에 온 것까지는 꼭 같으나 천국에 선 모습과 실력이 다르니
    천국에 오기 전 천국에서 사용할 의로운 행위와 기능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다르고
    천국에 오기 전에 그 곳에서 사용할 의로운 행위와 기능 대신에 죄와 죄의 기능을 마련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 지은 행위와 기능을 전부 지옥에 버리고 빈털털이처럼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세상에서 언제든지 죄와 죄의 기능을 끊고 돌아 서서 의롭게 살고 의의 기능을 기르는 기회인데
    회개를 한다는 것은 지은 죄에 얽매인 나를 끊고 돌아 서게 한다는 뜻이지
    한 번 죄를 지은 그 죄의 과거 행위와 기능 자체를 없어 지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죄의 행위와 기능, 의의 행위와 기능을 누적 시켜 나가게 되고
    마지막 천국에 갈 때는 죄의 행위와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의의 행위와 기능만 천국에 가져 갈 것이니
    천국에 간 우리 모든 성도들은 땅 위에 살 때 얼마나 의로운 행위와 기능을 마련했는지에 따라
    각자 영생의 모습과 실력과 영광이 다 차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천국에 있는 우리들은 자기가 살아 생전에 의롭게 살 기회에 죄를 지었던 행위와 기능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 봐야 합니다.

    • 2022-09-27 09:39
      자유의 나라, 자기가 자기에게 드는 매

      천국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만 있고 만 성도들의 포용과 배려만 있고 만물의 존경과 감탄만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잘못 산 것을 주님이 징벌하는 매도 없고 이해와 사랑만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산 것을 모든 성도들이 다 알지만 그들이 자신들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감싸 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상에 살 때 잘못 산 것과 주님은 날 위해 어떻게 고난 당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양심이 자기 마음에 매를 들게 됩니다. 아무도 때리지 않고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지만 자기가 자기에게 매를 드는 것은 자유의 세계며 빛과 진리의 세계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남을 때리고,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밟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억울함이 있고 분노와 슬픔과 좌절이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피로 구원하신 성도만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 속에 옛 사람 우리 속에 잘못 된 것은 전부 지옥에 버리고 갑니다. 완전히 성화 된 나의 옳고 바른 모습만 남게 되면 남에 대한 원망과 억울은 완전히 없어 지고, 나의 과거에 대한 나의 후회만 남습니다. 이 후회가 들어서 주님께 더 죄송하고, 더 죄송함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와 은혜가 더하게 될수록 주님의 은혜는 더 많아 지게 됩니다. 이렇게 천국을 더욱 천국답게 만드는 그 출발에 자신의 과거 후회가 있습니다. 낙망적 후회나 지옥적 고통이 아닙니다.

  • 2022-09-27 14:30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너무 힘드니 새벽예배 안 드리고 편하게 푹 자고 주일날 돈 벌어 적당히 살고 대신 천국 들어가서 면류관 하나 적게 받겠습니다.

  • 2022-09-27 14:32
    새벽예배 참석한 의로운 행위 한번과 주일날 세상 직장일, 돈 안번 딱 한번의 거룩한 행위로 인해 이해를 돕고자, 천국에서는 50억짜리 강남아파트 타워팰리스 한채 이상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한다면 또한 잘못된 죄악 습관, 행위 한번에 든든했던 직장 짤리고 60 평생동안 번돈, 집, 전재산 다 날린다면 나이만큼의 악습이나 고범죄, 타성에 젖은 게으름이나 의욕 없는 불충이 고쳐질까요?

    영원 무궁세계에서의 와 닿는 실감을 위해 일문백답을 추천합니다.

  • 2022-09-28 21:07
    왜 자꾸 넘어지는가?
    왜 알면서도 같은 범죄를 반복하나요?
    왜 있는 힘 다하여 죽도록 충성이 안되는가요?

  • 2022-09-28 21:31
    지금 지은 죄 1건이 영원 무궁 세계에서 얼마나 큰 해가 되어 수치로 내게 돌아올지 지금 행한 의 1건이 천국에서 얼마나 큰 영광으로 돌아올지 모르니 죄 짓는데 담대하고 의를 행하는데 담대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건별로 현실에서 즉각 보응이 온다면 정신 차릴까? 원하고 원하는 자유성을 키우시려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길을 택하셨겠지요!

    지금이 좋사오니 천국에서 말단으로 살아도 좋다는 심리는 마치 죄 지어도 회개의 길이 있으니 안심이고 괜찮다는 심보와 같다 하겠습니다. 영생의 소망 교리는 죄 지으면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후회와 통탄의 마음, 이런 선한 중심의 방향성이 있을 때만 그 양심이 다시 영생의 기회라는 소망으로 이어지리라 봅니다.

    회개를 악용하거나 천국 가니 상급은 필요 없고 즐기며 적당히 살겠다는 생각은 건설구원과 기능구원을 악용하는 것이니 차라리 그런 사람에게는 고 심보 고치기 전까지 넌 지옥이니까 기본구원을 다시 생각해 보라 하실 것 같습니다.

    내 힘으로 안되는 고범죄, 악습, 불충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과 천국 가니 기본구원으로 만족한다는 것과는 그 속 중심부터가 천지 차이라 봅니다. 이런 두 방향성, 중심을 보시는 선악간에 심판이 곧 믿는 자를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심판이겠습니다.

  • 2022-09-30 05:59
    공회인과 외부인의 차이를 비교, 연구, 분석해 보는 것은 신앙에 유익합니까? 손해가 더 많습니까?

  • 2022-09-30 06:05
    답변1
    공회 교리를 연구하고 전파하는데도 한 짐입니다. 남의 집 형편 살피다가 정작 내 집도 못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적어도 10년 이상 공회를 잘 살피면 외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생각합니다. 지금 공회 연구소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비교신학은 좀 뒤로 미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주신 사명과 범위가 있겠지만 한 곳에 집중하는 면, 일반적으로는 손해가 더 많다 생각합니다.


    답변2
    외부에서 공회 내부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외부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 들어보고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안 설겆이도 내팽개치고 전도부인처럼 밖으로만 겉도는 것도 문제지만 공회만 알고 객관을 살피지 않는 것도 신앙에 있어 유익보다는 손해가 더 클 것 같습니다. 외부교인이 공회에 잘 적응하려면 그들의 신앙배경을 알고 모르고에 따라 대처와 그에 따른 반응은 달라질 것입니다. 공회의 순수성을 잘 유지하면서도 외부 유입을 어떻게 잘 필터링해서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 같습니다.

    구약만 믿던 유대인이 신약의 예수님까지 믿게 된다면 지금의 개혁교회보다 더 앞서는 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 2022-10-02 05:27
    왜 교인에게 무례한가?
    왜 불목이 화목으로 하나되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희노애락이 하나되는가?

  • 2022-10-02 05:28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으니 오만꼴을 못 봐준다.
    내 삶에 전도와 심방이 없으니 새생명을 위한 희생에 동참할 수가 없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의 잘못을 뒤로 숨긴 채 상대방 잘못만 지적하니 불목이 가중된다.
    중년에도 아이를 낳아 길러보라.
    노년에도 전도와 심방을 중단말고 계속하라.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그 영혼구원에 힘쓸 때 사람을 아끼게 된다.

    자식이 말 안듣고 부모를 애태울 때 내가 남에게 한 무례한 행동들이 생각난다.
    상대방이 자기 잘못을 인정 안하면 기도할 뿐이다.
    3번 정도 말해서 더욱 강퍅하면 이방인처럼 그냥 내비 둔다.
    세월 속에 고칠까 기도할 때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소망이 생긴다.
    나 고치라고 상대방을 악하게 만드는 면을 항상 염두해 둔다.
    설교를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상대방에게 나눠 본다.
    들은 설교를 가지고 질문과 열띤 토론을 해 봄으로 비로소 교인들은 하나된다.

  • 2022-10-02 06:46
    잘 달리고 있는 말에 왜 더욱 채찍을 가하는가?
    이만하면 되었다고 하는 자만심 방지.

    35-45세, 중년에도 늦둥이 아이를 낳아 길러본다.
    65-75세, 노년에도 전도와 심방을 중단없이 계속한다.
    임신과 출산, 전도와 심방에 힘쓸 때 영적인 권태없이 계속 사람을 아끼게 된다.

    나에게 하는 말이 곧 남에게 하는 말이요
    남에게 하는 말이 곧 나에게 하는 말이다.

  • 2022-10-09 06:13
    주일 새벽의 은혜를 나눕니다.


    교회는 세상 운동을 할 시간이 없다.
    대학내 컨닝 반대, 환경 캠페인 선도, 대선 누구를 지지하는 선거 운동, 전쟁 반대나 광화문 정치 참여, 낙태 반대나 동성애 반대 운동 등등

    복음 전하고 사람 기르는 데도 시간이 빠듯한데 세상 부조리에 대한 성명 발표는 자칫 쓸데 없는 일에 관여하여 미친 개 귀를 잡는 것과 같은 꼴이 된다.

    주일날 예배 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천국보다 세상 나라, 하나님 나라 확장과 천국 입성보다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과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사도행전1:6)


    http://pkist.iptime.org:8787/shinpoong/bbs/link.php?bo_table=st_showrerun&wr_id=2094&no=1

전체 3,593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문답방 이용 - ①기존문답보관실 ②비공개질문 ③비실명진행
공지 | 직원 | 2018.02.21 | 추천 0 | 조회 11585
직원 2018.02.21 0 11585
12492
만 나이, 우리 나이 - 신앙 생활에서는? (1)
12492 | 목회 | 2022.12.07
목회 2022.12.07 0 96
12491
왕상15 아사 왕 (1)
12491 | 소망 | 2022.12.04
소망 2022.12.04 0 86
12488
왕상13 늙은 선지자 (3)
12488 | 소망 | 2022.12.02
소망 2022.12.02 0 164
12487
[신학] 합리주의 신학이 무엇입니까? (1)
12487 | #2926 | 2022.12.02
#2926 2022.12.02 0 68
12486
[은사] 방언에 대해 (1)
12486 | #2920 | 2022.12.02
#2920 2022.12.02 0 26
12485
기드온 (2)
12485 | 소망 | 2022.12.02
소망 2022.12.02 0 109
12484
[신앙자세] 사데교회의 책망과 나아갈 길 (1)
12484 | #2919 | 2022.12.02
#2919 2022.12.02 0 20
12482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현대과학의 변론. (2)
12482 | 교인 | 2022.12.01
교인 2022.12.01 0 116
12479
[회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1)
12479 | #2918 | 2022.12.01
#2918 2022.12.01 0 51
12478
[교리] 예정 (1)
12478 | #2915 | 2022.12.01
#2915 2022.12.01 0 46
12477
[목회] 목회 준비의 조건 (1)
12477 | #2914 | 2022.12.01
#2914 2022.12.01 0 39
12475
[이분설] 이분론 (1)
12475 | #2911 | 2022.11.30
#2911 2022.11.30 0 27
12474
[삼분론] 삼분론, 다중인격? (1)
12474 | #2910 | 2022.11.30
#2910 2022.11.30 0 31
12473
[신앙자세] 자살과 음란의 영을 떼어내는 방법? (1)
12473 | #2905 | 2022.11.30
#2905 2022.11.30 0 45
12471
[기도/인물] 30분 기도, 백목사님이 대외활동 하지 않으신 이유 (1)
12471 | #2899 | 2022.11.29
#2899 2022.11.29 0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