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조언이 필요합니다.

일반질문용
작성자
일반인
작성일
2022.08.07

제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좀 알려주세요.


요즘 저는 심적으로 신앙생활이나 일상생활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기도를 한다고 앉아있어도 기도가 전혀 되지 않고 성경을 매일 가지고 다녀도 한절을 읽지 못합니다. 생각으로는 읽어야 되는데 읽어야 되는데 계속하지만 성경 펼치기가 너무나 힘이듭니다. 무기력증이라 해야할까요? 세상만사 아무것도 하기싫고 그냥 죽고만 싶습니다. 하루하루 인생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근데 인간 평균 수명으로 보면 살 날이 아직 많아 미칠지경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며 근심걱정이 별로 없고 너무나 평범하게 재밌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굴곡이 전혀 없이 평범한 가정에 사랑받고 자라며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착하고 말 잘듣고 이쁜 자녀들을 낳아 평범하게 신앙생활하며 세상에 빠져 살았습니다. 주위사람들과도 잘지내며 너무나 달콤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제 자녀를 데려가셨습니다. 세월이 꽤 지났지만 지금까지 하루도 생각나지 않은 적이 없고 하루도 숨을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들은 저의 상태를 아무도 모릅니다. 남편은 좀 알까요?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다른 가족들앞에서는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냉정하다 생각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제 감정을 표시나지 않게 지내다보니 더 병이 자란것 같습니다. 이젠 웃고 있어도 진짜가 아나라 속으로는 우울하고 공황장애 비슷하게 온듯 합니다. 죽는것이 소원이면서도 남은 자녀가 나의 부모님이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두고갈 세상에 빠져 있지 말고 천국 준비하라고 주신 현실인줄은 분명히 알고 기도로 응답도 받았고 신앙생활도 전보다는 나아졌는데 하루하루 고통스럽고 아이가 너무나 생각이납니다. 재산을 다 잃거나 몸에 병이 들어 아픈 것이라면 소망이라도 가지며 기도라도 하겠는데 이건 돌이킬수 없는 일이라 더 고통스러운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기싫고 아무일도 하기싫은데 왜 이렇게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지... 휴가를 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싶어도 한시도 조욤히 지내지 못하게 현실을 만드십니다.

아무일도 하기싫고 성경읽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생활이 계속되다가는 또 징계를 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가득차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이야기하면 저의 상태를 알리게 되어 이 사이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며 뭐부터 해야하는지 좀 알려주십시오.

전체 4

  • 2022-08-07 13:09
    (너무나 기쁠 때,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구체적으로 적기 전에 이런 문제를 겪는 모든 분께 또 질문하신 분께 '신앙의 지혜와 교양'을 먼저 적어 봅니다. 너무너무 기쁜 일을 가지게 되면 방심하고 교만하여 우측으로 이탈하지 않기 어렵습니다. 사울도 다윗도 그러했고 모세까지도 그러했습니다. 또 너무너무 고통스럽게 되면 엘리야도 데려 가 주시라고 했으니 생을 마감하겠다며 하나님께 버텼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람은 좌측으로 침몰하기 쉽습니다. 우리를 만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부로 만세반석으로 만들지 않고 흔들리는 갈대보다 더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 환경에 흔들리게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던져 주신 과제)
    환경에 아주 쉽게 흔들려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든 환경에 의해 하나님을 잘 닮아 가게 됩니다. 그런데 타락을 한 후 우리는 죄악 세상 속에서 죄악 환경에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과거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받아 들이며 하나님을 닮던 우리가 이제 귀신과 귀신이 조성한 죄악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겉은 그대로지만 우리의 속은 세월을 산 만큼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우리의 심신에 찌들어 져 있습니다. 중생이란 이런 심신을 고칠 수 있는 출발이지 심신이 고쳐 졌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중생 된 우리 모두에게 한 번씩 던져 주시는 큰 시험 문제를 받아 들었습니다.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 논술 문제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가져 가면서 하나님은 '이 상황을 적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우리가 너무 크게 겪으면 희로애락에 휘둘려 울고 웃을 뿐이지 이 것이 무슨 일이며, 누가 만들고, 왜 주셨으며, 이 일에 들어 있는 내용과 그 결과가 어디를 향하는지 등을 생각하지를 못합니다. 이런 생각이 '이치로 따져 보는' 이성인데 감성이 겪해지면 이성과 지성과 양심까지 모두 마비를 시켜 버립니다. 크지 않은 슬픔은 무조건 위로라는 진통제를 먹으면 해결이 되고 시간이 지나며 사그러 들면 제 정신이 납니다. 제 정신을 가지게 되면 그 기쁨을 차분히 분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보다 슬픔, 그 슬픔이 너무 강하면 나무의 큰 가지 하나가 찢겨 나간 셈이 됩니다. 이 것이 완전히 아물고 그 상처 때문에 오히려 몇십 만 원에 그칠 나무가 몇천 만 원의 고가품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몇 억이 될 수도 있는 명품이 되려면 세월이 무척 많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이치로 한 번 살펴 봅니다.)
    분재를 아십니까? 공회 교회는 강단에 장식이 필요하면 꽃 대신에 분재를 놓습니다. 꽃 장식은 그 꽃을 꺾어야 하기 때문에 미안해서 그렇고 분재는 이어 지는 생명이기 때문에 우선 보기는 좀 못해도 깊게 생각할 모습을 고려한 것입니다. 분재란 키와 덩치로 값을 따지지 않습니다. 세월과 찢겨 진 상처의 복구와 환경에 대처한 균형을 봅니다. 찢겨 졌다고 찢겨 진 그대로라면 찢겨 진 불행과 추한 모습이 전부입니다. 찢겨 진 것을 복구하고 나무의 전체 균형에 맞게 그 다음의 대처가 따라 가면서 나무 전체가 바르게 버틴다면 그 때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란 나무와는 같은 나무라도 차원을 달리 합니다.

    불신자도 세파와 대처와 훗날이 함축 된 모습을 예술로 관조하며 인생을 배웁니다. 우리는 진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평생을 찰나로 생각하고 1천 년 세월을 하룻밤으로 계산할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가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을 다쳐 1 주일 반창고를 발랐다면, 그리고 골절이 되어 수술을 하고 몇 달을 깁스를 했다면, 그리고 발이 절단 되거나 소아마비로 평생 절고 살아야 한다면? 안 믿는 사람은 이 것을 불행의 크기로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신 초등 1 학년 수학 문제, 중등 1 학년 수학 문제, 고등 1 학년의 수학 문제로 상대합니다.

    자기 소개를 통해 살아 오신 날들이 무난하다고 읽었습니다. 요즘 학교처럼 월말 고사나 기말 고사도 없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 가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1 학년부터 입학 시험을 쳐서 재수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고 중입 시험 폐지, 곧이어 고입 시험 폐지, 대입은 지금 정원 미달로 무시험 입학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벌은 남발이 되었고 학생들의 수준은 정말 형편이 없어 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의 최상위 계층은 부모의 돈과 성의를 총동원 하여 전국의 교육계가 흥청망청할 때 자기 아이들은 잰 걸음으로 아이 하나에 맞춤식으로 자유롭게 마음껏 실력을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과거 전국이 초중고를 일제 고사로 비교하고 끌고 나갈 때는 한 아이에게 맞는 학습을 해 주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너무 느슨해 진 상황이어서 한 아이에게 맞는 학습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마음껏 해 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붙들고 묻고 계십니다.)
    대충 살아 가고 별 일 없이 신앙 생활하고, 그리고 어느 날 인생이 끝 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은 이후 생활 전체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순간에 지난 날을 후회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가서 새로 시작하지는 못합니다. 거의 모든 교회와 교인들을 광야 40 년의 일반 백성들처럼 하나님은 대충 지켜 보십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냥 세월이 지나 가게 두지 않고 뼈 저린 사건을 던집니다. 큰 나무의 큰 가지 하나를 찢어 버립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며 어떻게 대처할지 적어 보라고 하십니다. 이 것이 우리가 살아 가다 겪게 되는 재앙입니다. 참화입니다. 큰 불행입니다. 이대로 그냥 살아 갈 마음까지 없어 질 만한 일입니다. 학생에게는 두 번 기회를 갖지 못할 입학 시험에 떨어 진 셈입니다.

    세상의 큰 불행은 대개 두 번 기회 잡기가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큰 불행은 그 불행을 하나의 모의 고사처럼 던져 놓으시고 오히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그 다음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과 다윗까지도 구사일생의 기회에 큰 좌절을 겪고,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이후 남은 때는 차원 다른 사람으로 살아 가게 됩니다.


    (한 가지 상식, 참고, 지혜를 가져 보셨으면)
    다 배가 고픈데 혼자 배불리 먹는다면 그 기쁨 상상 이상입니다. 요즘처럼 모두가 다 배부르게 먹는데 자기가 배부르게 먹은 것은 평범해 집니다. 그 한 끼의 식사 때문에 사람이 교만해 지지 않습니다. 집도 옷도 공부도 다 그렇습니다. 다 건강한데 혼자 발을 저는 것과 모두가 소아마비가 되어 걷지를 못하는데 혼자 절면서도 걸을 수 있다면 엄청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돌이나 기계와 달리 우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고 그 느낌은 항상 상대적입니다. 일이 크고 적은 문제에 앞 서 나의 생각 나의 기준 나의 자세가 먼저입니다. 지금 6.25 전쟁 상황에 집집마다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는 마을에 나는 아이 1 명만 빼앗겼다면 내가 느낄 감정과, 요즘처럼 모두가 건강하게 다 오래 살고 행복한데 나의 아이 1 명만 일찍 가 버렸다면, 그 1 명의 아이와 나와의 관계란 당연히 특별하다 하지만 비교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비교를 하고 말고를 떠나 본능적으로 1 명만 없어 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아쉬움과 다행스러움 그리고 통탄과 안심을 동시에 가질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일생에 이 정도의 고통을 한 번씩 꼭 주십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받느냐는 자세에 따라 한두 번에 더해 지는 사람도 있고 그 한 번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를 혼자만 낳아 본 줄 아는 것과 역사와 오늘의 모든 엄마들이 거쳐 간 일임을 인지하게 되면 체념이라 해도 좀 낫게 됩니다. 성경의 역사적인 면과 교회사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를 훨씬 낫게 해 주는 면이 있습니다.

    쪽배는 파랑에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항공모함처럼 넓고 긴 배는 태풍을 가로 질러 갈 수 있습니다. 혼자 겪는 일이라고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모두가 이 정도의 고통은 한 번씩 겪는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자신을 스스로 쪽배로 만들고 최근의 고통을 겪은 것과 달라 내나 그 고통을 그대로 겪기는 하지만 항공모함으로서 겪을 수 있습니다.


    (내심의 깊은 고민은)
    성경의 교리 모순이나 교회의 운영 난제는 한 번의 대화로 쉽게 해결 되는 수가 많습니다. 질문자가 겪는 이런 고통은 생각하는 근본 자세에 대한 문제입니다. 답이 나온다 해도 질문자께서 이해가 되어야 하고, 그 이해에 동감이 따라 가야 하고, 그 동감의 바로 뒤를 따라 오는 빛을 봐야 해결이 됩니다. 일단 서론에 그칠 만한 글로 1 차 안내를 드립니다. 읽고,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시고, 필요한 면을 다시 적어 주시면 한 걸음 더 살펴 보겠습니다.

  • 2022-08-09 10:18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의셨습니다.
    답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고 의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시면서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천국에 간 질문자의 자녀의 간절한 소원이며 바램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질문자와 같이 6년전 자녀를 먼저 암으로 보냈습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나 기운을 내어 주님의 은혜가운데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주님의 뜻에만 순종하기 위해 늘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의 상황과 저의 아내의 상황은 너무나도 같았습니다. 제가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내를 위로 하였지만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차마 엄마로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하루 하루 사는것이 너무 힘들다며 모든 절망과 공황장애로 지낸 날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아내가 늘 하는 말은 아들이 그래도 큰 고통없이 먼저 갔다면 자기가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늘 말하곤 하였습니다, 저의 아들의 암은 갈비뼈 쪽에 처음 발생하여 갈비뼈를 거의 다 들어내는 큰 수술을 2회 하였고, 인공뼈로 제거된 갈비뼈를 대신 했으며 항암제중 가장 강한 항암제를 10회 이상 맞았고 수도 없이 방사전 치료를 진행하다 암이 온 몸이 전이되어 숨을 거두는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질문자님께는 이 글이 위로가 될 수도 ,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질문자님께서 바라는 것은 님의 자녀가 지금이라도 집의 현관 문을 열고 엄마 저예요, 제가 다시 살아서 왔어요! 하면서 질문자 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을 질문자께 참되게 바라시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

    질문자께서는 지금 자녀가 살아만 있다면 주님께서 어떠한 다른 고난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잘 견딜 수 있고
    모든 소망가운데 오래 참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자녀는 어떠한 소망을 가지더라도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으니 무슨 소망으로 견디며 이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겟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자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살아 계십니까? 주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사도들과 앞서 먼저간 수없이 많은 구름같은 많은 증인(성도)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까? 아니면 살아 있는 자들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산자들과 죽은자들(잠자는 자들)의 차이를 말할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자의 자녀는 지금 죽은 것입니까? 잠자고 있는 것입니까? 질문자의 자녀는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죽은자 입니까? 살아 있는 자입니까?

    질문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를 다시는 볼 수 없어 어떠한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 님의 자녀도 영원히 살아서 님앞에 분명히 설 것인데 그때 그 자녀 앞에 질문자님깨서는 무엇이라 말씀을 하실 것입니까?

    이곳의 담당님께서 답변 글에 쓰셨듯이 우리 성도들의 삶은 사실 하룻밤 나그네 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다 내일이면 전부 천국으로 옮겨져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 그런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입니다. 질문자의 자녀는 그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님께서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입니다.

    저도 제가 가진 소망과 이 글에 어떠한 거짓도 없음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은 소망이 없다고 하셨지만 생각해 보시면 오히려 누구보다는 참된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자녀가 그립고 보고 싶은 날이 많을수록 그 소망은 깊어지고 그 소망이 이제 참되게 이루어 질 때 그 기쁨과 감사와 행복은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저와 저의 아내도 님과 같이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질문자님과 같은 동일한 기쁨과 감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죽은 모든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잠자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사 다시는 죽지 아니 하시는 것처럼 그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주님 다시 오실때 그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안에서 잠자는 모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자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망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천국에 먼저 있는 사랑하는 질문자님의 자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엄마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당당하셔야 합니다. 누구뭐라해도 질문자님의 자녀는 죽은것이 아니고 잠시 잠자고 있는 것이니, 주님 다시 오실때 그 자녀들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누구 앞에 서라도 당당하시고 강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원에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기울이시고 , 어떤 누구도 빼앗을 수 참된 소망을 가진 자임을 늘 기억하셔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질문자님의 자녀를 다시 만나게 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 사람들의 모든 죄들로 인해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으로 모든 사망과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시면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감사와 기쁨속에서 사셔야만 질문자님의 자녀를 다시 만났을때 그 자녀가 님을 안고 우리 엄마 너무 고생하셨고 믿음으로 살아주셔셔 너무 감사드리고, 그 힘든 모든 시간속에서도 낙망치 않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 주님을 많이 닮아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니.. 그때에 서로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큰 기쁨과 감사와 영광속에서 그러한 영원한 생명을 우리 모두에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끊임없는 영광과 찬송을 영원토록 돌리게 될 것입니다.

    • 2022-08-09 17:05
      천국에 먼저 가서 질문자를 지켜 보는 자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엄마로 사시라....

      먼저 간 아들은 세상에 살 때는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았을 것이고, 이제야 천국에서 모든 것을 알고 그리고 이 땅 위에 어머니의 마음까지 다 지켜 보고 있는데, 그 아들이 가장 애가 타겠습니다. 생각 하나만 바꾸면 되는 일을 가지고, 자기 때문에 고통하는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보다 더욱 애가 탈 분은 바로 어머니의 먼저 간 아들이겠습니다. 눅16장 홍포 입은 부자가 가서 보니 알게 되었고 자기 신세는 이제 바꿀 수 없지만 자기처럼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두고 온 5 명의 형제 때문에 다급해 졌습니다.

      첫 질문자, 그리고 같은 사연을 적어 주신 윗 을 읽으며 '지금 먼저 간 자녀가 이 땅 위에 계신 자기들의 부모를 향해 애 타는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아 봤으면 합니다. 두 번째 분의 글에서 이 면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 선 자녀는 더할 수도 덜 할 수도 없이 자기에게 주신 영원한 길을 이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아직 숨을 쉬고 있는 부모는 앞으로 살아 갈 날 동안 좌절로 살아도, 소망 속에 더욱 열심히 살아도 되는 '선택'이 주어 져 있습니다. 자녀를 지켜 보며 마음 고생하는 천하의 부모들의 심정을 '어머니의 노래'라는 세상 가사가 3절로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녀가 먼저 서게 되면 이 가사는 이제 반대가 됩니다. '저 어머니를! 저 아버지를! 주여, 긍휼히 여겨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저 때문에 괜한 자책하지 않고 오히려 저 때문에 없는 힘을 내고 더욱 잘 살게 해 주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남의 일을 보면 객관적이 되어 정평정가를 합니다. 정작 우리 일로 당하게 되면 지식과 내 감정은 틀어 집니다. 그렇다 해도 되돌려 상대방 입장에 서보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려서 얼러 기르고 애 타며 길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온 가지 생각... 어머니 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자식 잘 되라고, 혹 어떻게 될까...' 어머니 노래의 가사 2절 3절이 대충 이렇습니다. 이제 먼저 간 자녀가 두고 온 부모를 향해 이렇게 애가 탑니다. 그 기도와 그 호소를 그 아이들이 이 땅 위에서는 어릴 때 어머니 마음을 몰랐다 해도 이해를 할 수 있으나 지금 먼저 하늘 나라로 간 그들에게 지금 어머니가 품 안에 아이를 향하듯 애 터지는 천국의 자녀의 마음을 애 터지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앞으로 같은 문제를 가진 일로 문답을 할 때 오늘의 이 안내를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면으로 또 저런 면으로 일단 생각을 많이 해 보시는 기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2022-08-23 19:25
    정성스럽게 답변 주신 목사님, 자신의 아픔을 꺼내면서까지 애타는 글을 남겨 주신 소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넘어가기가 죄송해서 다시 글을 남깁니다.
    사실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우울함이나 무기력함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바꾸고 조금씩 나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첫 글을 적을 당시 너무나 힘들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글을 적었는데 두 분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지난 세월의 저를 돌이켜보니 자기라는 옛사람이 너무 강하고 강퍅하고 교만해서 하나님의 이 큰 징계가 아니고는 저는 절대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금의 제 현실에는 너무 아픔이라 감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꾸 슬픈 생각만 들어 저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큰일을 겪고도 나를 고치지 못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면 내가 겪은 이 일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는 마귀에게 붙들리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이 현실을 잘 극복한다면 훗날 지금의 이 슬픔과 좌절을 주님께서 어떻게 바꾸어 주실지 보고 싶기도 합니다.
    옛사람이 강해 절대 변하지 않을 저를 보며 애가 타서 사랑으로 큰 징계를 주신 주님과 천국에서 저로 인해 슬퍼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자녀의 애타는 마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천국 건설을 향해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 다시 넘어지려 할 때는 두 분의 글을 찾아보고 마음을 다잡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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