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세상에 대해 여과해서 가르쳐야 하는지?
[양육] 제목 : 지혜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질문드립니다.
김경섭 2003.6.7.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양육~]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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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이 땅의 죄악상들을 이야기하다보니 혹자로부터 저의 설교 속에 (본의 아니게도) 아이들의 심령에 겪어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저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질투의 감정을 전하려다보니 본의아닌 격한 예화들을 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또한 오늘날의 세대가 너무나 음란하다보니 그에 대한 주의를 주게되는데 이 주의가 오히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에 저으기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아가서나 에스겔서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그곳에 있는 표현들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고 말을 하는 목사님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컴퓨터 커서 하나로 모든 음란한 사이트로 들어가버리게 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자식하나는 이것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한 어린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심정도 이해해 봅니다.
한편으로 들어오는 생각은 이 시대가 얼마나 음란하고 악한지 가르치면서 동시에 성도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면서, 아이들에게 어느정도까지 세상에 대해서 여과해서 가르쳐야하는지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만 맞는 동화같은 이야기만 가르치는 것이 옳습니까? 성경의 메시지는 어느정도 여과를 시켜서 가르쳐야합니까?
지나가는이 2003.6.9
Re: 말씀한구절이 생각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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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2장 6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것은 피해서 안됩니다. 세상 것은 아이들이 이미 아는 것은 설명해야 합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양육~]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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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씀은 안면 때문에 망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민망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창19장의 롯이 두 딸로 두 민족을 생산한 경우, 창38장의 오난이 땅에 설정한 경우 시부인 유다가 며느리로 쌍둥이를 낳은 경우도 아가서나 에스겔서의 여러 내용처럼 설명하기 민망하여 고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해 주신 말씀은, 우리 생각과 느낌을 기준으로 민망하다고 하여 피할 수는 없습니다. 대전 유성구 연구단지에는 해외파 이공계 박사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 목회하는 분이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설교 중에 피한다든지, 유교 양반 세력으로 유명한 안동에서 목회하는 분이 눅9장에서 부친을 장례하고 따르겠다는 사람과 가족을 작별하고 따르겠다는 사람을 금했다는 말씀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겠습니다.
그렇다고 전할 말씀을 사람의 안면이나 형편 때문에 망설인다면 갈1:10 말씀같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민망한 말씀들을 전할 때는 삼가 기도하고, 표현에 오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①신앙없는 가정을 예로 든다면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가족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고 주님을 앞세워야 그 가족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 따르는 것을 반대하게 되는데 그 반대에 꺾이게 되면 가족도 저주를 받고 나도 저주를 받기 때문에 가족이 몰라서 반대할 때는 할 수 없이 가족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시면 됩니다.
즉, 기독교식 효도법이라야 부모도 가족도 자기도 진정 복을 받는데, 유교식 효도법밖에 모르면 우선은 웃고 즐거운 것 같아도 함께 다 망하는 비참이 있으니 얼른 이런 좋은 효도법을 배우라고 하면 오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전해야 할 말씀은 지체없이 전하되, '목회'라는 것은 어린 양의 어린 형편을 생각하여 그 신앙이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②국가나 소속 단체로 예를 든다면
국가가 신앙을 탄압한다면? 기독교를 탄압하면 국가가 망하는 줄을 몰라서 탄압하는 것이니 불쌍히 여기고 눈을 띄워달라고 기도하면서 또 교인들에게 전하는 내용은, 성경은 죄되지 않으면 국가의 명령을 복종하되 죄되는 것만은 복종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인 국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사실 이 방법만이 민족과 국가가 사는 길임을 강조하면 됩니다.
3.질문하신 남녀 관련 문제를 전하실 때는
①말씀은 전하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오랜 세월 일반교인들에게 성경을 전면적으로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잘못 읽으면 이단이 되거나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기독교는 천주교의 이런 성경관이 바로 이단으로 나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여 천주교로부터 개혁할 때 성경은 누구나 자기 나라 글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을 해서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기록된 것은 말씀이 책임을 집니다. 그 말씀을 기록할 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빈부귀천을 몰론하고 또 신불신자를 물론하고 누구에게든지 전해야 하는 복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셨습니다. 전하기 민망할 장소도 있고 그럴 표현도 성경 안에는 있는 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떤 말씀도 상대방에게 가로막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단정을 해놓고, 다만 위에서 가정이나 국가를 상대로 오해될 만한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전할지를 잠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예레미야 1장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선지자로 세울 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가서 말할지니라고 7절에서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전한 말씀 때문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깁니다. 또 구약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을 전하다가 결국 그 말씀 때문에 맞아 죽고 순교합니다. 물론 그들은 오늘 우리와 달라서 남녀 문제에 관련된 표현이 사회를 자극한다 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고 국가를 상대로 발언하다가 그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꼭 같습니다.
남녀 관계를 심하게 표현한 성구를 우리 평범한 사람이 생각한다면 아이들에게는 곤란하겠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적어주실 때는 그들이 비록 어리지만 그 말씀을 접하고 익혀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 적어주셨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언제 어떻게 유익되게 사용하실지는 우리가 자세히 몰라도 꼭 필요해서 기록했다는 것은 아셨으면 합니다.
②이런 표현은, 성경 표현 그대로가 좋습니다.
'땅에 설정했습니다' '롯이 두 딸로 두 민족을 생산했습니다' '하체를 드러냈더라' 이렇게 성경이 기록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입니다. 만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표현을 요즘 알기 쉽게 사용하는 단어로 해설을 해나간다면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한글성경을 요즘말로 번역한다고 여러 갈래로 노력하고 있는데 번역을 정확하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성경은 그 표현이 성경이라는 위치를 생각하여 경건한 분들이 조심스럽게 번역을 했기 때문에 위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만일 '하체'가 무엇인가, 또 '설정'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1차로 성경에는 모르는 단어가 수도 없이 많으므로 한꺼번에 다 알려하지 말고 일단 성경 그대로 읽고 듣고나면 차차 알게 된다고 설명하면 대개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던 아이거나 또 처음 들어도 민첩한 아이들은 끝없는 호기심으로 되물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2차로, 조금 추상적으로 설명을 덧붙이면 될 것입니다. 하체는 사람의 허리 밑을 말하고 또 설정은 남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짝짓기를 할 때 쏟는 것이라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유치원부터 성교육을 한다고 해서 가르칠 것 안 가르칠 것도 구별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늘어놓지 않은 말이 사실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만일 4-5세 아이가 어디서든지 습관적으로 계속 캐묻는 것이라면 '이전에 다른 말도 2번 3번 계속 가르쳐 주었지? 이번에도 벌써 또 한번 가르쳐 줬으니까 다음에 배우고 오늘 배울 것이 또 있으니까 넘어가자' 하는 정도라면, 아이들에게 무조건 피하는 선생님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③이렇게 성경 표현 그대로 전했는데, 알아듣는 느낌이 있다면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의 생각이 그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먼저 남녀 관계를 설명해서 그쪽으로 생각이 발달하게 할 것은 없지 않느냐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현재 성경에 나와 있는 표현은 성경이니까 그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만일 이 정도 성경의 표현에서도 무엇인가 느낌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이미 그 이상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요즘 어른들이나 선생님이 상상도 못할 만큼 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상황을 모르는 아이라면, 성경 말씀 그대로 배워두고 들어만 두면 됩니다. 그 말씀 말고 다른 말씀들도 대개가 다 그렇습니다. 일단 들어두면 다음에 그 아이에게 필요할 때 그 아이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어떤 말씀에 대하여는 특별히 민첩하게 잘 알아듣는 아이라면 오히려 밖으로 표시를 잘 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부모나 선생님 몰래 혼자 알고 있는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게 자기 혼자 알게 된 지식에다가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 이 말씀이 들어가서 그 아이 속에 잘못 자리 잡고 있는 그 방면의 인식을 씻거나 바꾸는 등 역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④삼가 조심할 것은, 성경에 있는 표현이라 해서 그 부분만 강조하거나 반복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극장에 가지 말라고 자꾸 말을 하게 되면, 극장에 한번 가보라는 권유가 됩니다. 공산주의 서적을 읽지 말라고 자꾸 강조를 하면 공산주의 서적을 한번 읽어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려면 보고 읽으려면 읽어라고 풀어놓으면 결과적으로 막은 것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막는 것이 풀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결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말에 권위가 있도록 한 두 번 하고 말아야지 너무 강조하거나 지나치거나 횟수가 많아지면 그때는 이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복음교인들은 신구약성경의 그 많은 말씀 중에서 '방언 능력 병고침 축복'이라는 표현이나 그런 주제의 성구만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또 구원파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박옥수목사님 계열은 신구약성경을 오직 '죄사함'이라는 한 주제만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가 틀렸다거나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축복도 가르치지만 축복을 받는 방편도 가르치고 축복 대신 저주를 피하라는 것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면이 소홀하게 되면 기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발만 자라고 손은 자라지 않거나, 오른 발만 자라고 왼발이 성장을 멈추면 기형이라는 말입니다. 죄사함도 그 죄사함을 받게 된 과정도 있고 그 죄사함을 가지고 남은 평생 어떻게 신앙생활 하라는 훗날을 말씀하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이 음란하여 문제지만 성경 중에서 그 방면에 대한 말씀만 계속하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피하는 것도 문제지만 몇 번이나 어떤 식으로 전하느냐는 것도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연보라는 것은 연보하는 만큼 복을 받는 것인데 목회자 입에서 연보 설교가 자주 나오면 자기 속에 돈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남녀 관계만 예를 들고 설교하고 그 성구만 자꾸 인용하게 되면 자기 속에 그런 요소가 강하여 그런 요소가 밖으로 나타나는것일 수 있습니다.
연보로 말하면 1년에 한번만 설교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유는? 교인들 마음에 하늘나라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천번을 가르쳐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번 만번을 설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하여는 우리 속에 돈욕심이 너무 크고 강하게 들어 있어 스쳐가며 살짝만 건들여도 마음 깊이 화살박히듯 돌비에 글쓰듯 남게 됩니다. 이성 문제라는 것도 우리 속에 그런 요소들이 본능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으므로 한 마디만 조심스럽게 성경적 표현으로 하고 넘어가도 마음에 크게 남게 됩니다. 또 어려도 이런 문제는 종족 번식과 유지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아주 민감하게 잘 듣게 죕니다. 이렇게 잘 알고 또 그 마음 속에 크게 들어앉아 있는 문제를 천국 설교나 대속 설교와 같이 많이 반복을 하게 된다면 기형적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4.시대 전체를 보시는 넓은 시야를 가지되, 아이들 속의 실황을 현미경으로 보듯 읽어야 합니다.
이 시대가 무엇이 문제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큰 시야를 가지지 못하면 매 순간은 충성했으나 결과가 실패로 끝납니다. 죽 쑤서 개 주는 꼴이 됩니다. 따라서 시야는 한없이 넓게 가지시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 한 마디는 그 아이들 속에 무엇이 어떻게 자리잡고 그들 세계의 구도와 움직임이 어찌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셔야 할 것입니다.
10번을 강조할 것이 있고, 1번만 강조하되 크게 할 것이 있고, 모른 척 하며 넘어가며 가르칠 것이 있고, 반발심이 생기든지 말든지 계속 반복해서 나중에는 자다가 꿈속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아주 절여야 할 내용도 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가르칠 때는 미리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 기도 내용은 '잘 깨닫게 해주옵소서'라는 식의 내용도 많이 해야하겠지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맡은 이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이 필요한지 알려 주시라고 기도하며 그들의 세계를 자꾸 보는 눈을 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 속에 조용히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떠올려보며 그들의 구원, 그들의 신앙의 앞날, 오늘 이 형편 등을 여러모로 살펴보는 상황을 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할 때는 반복할 것 함축할 것 등을 잘 정리했으면 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 나온 말씀은 피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얼마나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것은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무관심에 따라 더 강조할 것이 있고 간단히 넘어갈 것이 있으니 남녀 관계에 대한 표현은 전형적으로 성경 표현정도에서 간단히 넘어갈 문제입니다. 그들 속에 머금고 있는 폭발력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세상 아이들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수준의 것이 있을 때는 피할 것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핵심 교훈을 해야 합니다. 그 핵심 교훈은 많은 말보다 시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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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72022-08-01 11:28구 게시판 자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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