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죄로 인한 가족의 불행 인식의 고통

일반질문용
작성자
질문
작성일
2022.07.27

가족에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저의 죄 때문인것같아 너무괴롭습니다

 

목사님께 질문드립니다

이런 생각이 거의 강박적일 정도입니다 저의 죄 때문에 자꾸 안좋은일이 일어나는것같고 회개해도 자책감때문에 괴롭습니다 앞으로도 더 안좋은 현실을 주실것같아 두렵기도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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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7 17:21
    (우선 참고) - 2003. 06. 10 yilee
    죄의 값을 지고 회개하겠다는 자세로 접근하시면, 하나님 기뻐하실 것입니다.

    1.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므로 베푼 첫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죄인에게 베푼 첫 은혜가 죄의 값을 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남자에게는 땀흘리는 고통을 여자에게는 아이와 남편으로 인한 고통을 갖게 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고통이기 때문에 저주라고 보이는데, 내면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구원하시려고 착수하신 첫 조처였습니다. 따라서 죄값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구원의 사랑이었습니다.

    여자가 아이와 남편으로 인하여 평생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죄의 결과를 뼈속 깊이 깨달아 이제는 죄와 맞서고 죄를 넘어서려는 체감적 노력이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아담에게도 자기 여자를 관리할 책임을 소홀히 했던 죄를 물어 땀을 흘리게 했지만 이 육체의 노고를 통해 에덴동산에서 은혜로 먹던 시절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었는가를 체험적으로 깨달아 먹고 살기 위해 고통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라고 회개의 길로 그 고통을 주셨습니다.


    2.지금 말세입니다. 범죄가 하늘을 찌르고 온 세상에 물넘치듯 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7계명 범죄가 넘치고 넘쳐서 이제 그 정도 차이일 뿐이지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고 7계명 범죄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시대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시대에는 7계명 범죄 때문에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큰 죄인이 아니고 그는 회개를 시작하는 의인으로 봐야 할 시대입니다. 그리고 7계명 때문에 고통 받는 마음이 없다면 그가 깨끗하기 때문에 회개할 것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양심이 화인을 맞아 무감각해졌기 때문으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7계명을 범한 분을 위로하는 뜻이 아니라, 오늘의 실상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객관적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수도 없이 7계명을 범해놓고 별별 재주를 부려 아이를 낳는 것은 피하고 있습니다. 7계명을 범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범한 이상 아이를 가져야 하고, 그 아이 때문에 두 사람이 즐거웠던 만큼 평생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7계명을 범하면 어떤 고통이 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또 체감적 고통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다행히, 비록 7계명은 범했으나 아이를 없애는 죄를 더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으니 이제 이 아이를 기르며 이 아이 때문에 여자분이 느낄 당장의 피곤함부터 과거 선을 넘었던 결과를 하나님께서 체험시키신다고 깨닫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자꾸 새긴다면 비록 죄를 지었으나 이렇게 회개하는 자세가 바로 되면, 진노는 그렇게 쉬이 끝이나고 그의 자비와 은혜는 너무 죄송할 만큼 빨리 오고 또 넘치게 옵니다.

    다윗과 사울의 범죄가, 그 죄질의 정도 때문에 두 사람의 훗날을 갈라놓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거쳐갈수 있는 것이고 또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 겸손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그 과정에 따라 다윗이 되고 사울이 되는 것입니다. 지은 죄를 대충 버무리고 묻어버리고 부러 잊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마구 들 쑤셔서 크게 일을 낼 것이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매를 자청한다면, 때린 그 매 때문에 더 큰 의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3.매를 크게 자청하면 작은 매가 오고, 오는 매를 맞으러 나가면 매가 그냥 지나갑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가졌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그 아이를 위해 더 기도하고, 그 아이를 더 깨끗하게 기르도록 마음을 모으며, 이전보다 또 정상적인 사람의 조심보다 더욱 이성면을 깨끗하게 하시면, 이것이 오는 매를 피하는 방법입니다. 매가 오기 전에 미리 스스로 작정하여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벌 주는 방법을 하나 정도 연구해 보셨으면 합니다.

    매를 자청하면 작은 매가 오고, 하나님 매를 치기 전에 내 손으로 매를 들고 나를 치면 하나님께서 매를 거둡니다. 삼가 조심하실 것은, 한 두 번은 이 방법이 통하지만, 매를 자청하면 매를 때리지 않을 것이라는 해독제까지 주머니에 넣고 죄를 짓게 되면, 그때는 해독제가 없는 매가 온다는 것입니다. 천주교 교인들로 말하면, 고해성사를 해서 죄를 없애면 된다는 배짱이 들어서 더 큰 죄를 상습적으로 범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자체도 틀렸지만 그 고해성사가 들어서 죄를 마구 양산하고 있다는 면을 기억하셨으면

  • 2022-07-27 18:28
    (과거 자료)
    2003년에 오간 문답을 참고로 다른 분이 먼저 제시해 주셨습니다. 일반적인 참고로 살펴 봐 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은 각자 특별한 사정이겠지만 답변을 드릴 때는 그 특별한 사정을 포함하면서 그와 관련 된 예상 가능한 여러 상황을 함께 적기 때문에 질문은 빼고 답변만 우선 소개한 듯합니다.

    (질문 하실 때)
    사연이 구체적이면 답변도 구체적일 수 있고, 사연이 애매하면 답변은 관련 여러 내용을 포함하게 되어 구체적 제안은 아쉽게 됩니다. 그렇다 해도 내용을 다 적을 수 없는 사연이 포함 되었다고 보고 일단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읽어 보시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 질문을 통해 원하는 방향의 안내를 받아 보시고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강박적일 때)
    건강을 위해서는 뭐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만사가 실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기계로 만들지 않았으니 적당하게 끝내는 것도 있으나 좌로나 우로나 너무 지나 칠 수가 있고 너무 지나 치면 무리가 되어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이 번 질문에 직접 들어 가기 전에 건강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만사를 대충이라는 뜻의 적당히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적당한 정도를 잘 찾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이런 것은 단번에 되지 않고 많이 해 봐야 조금 나아 집니다. 그런 면을 기르시기 위해 일을 자꾸 만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곱의 라헬 사랑이 너무 지나 치게 되자 요셉의 문제가 생겼고 그래도 돌아 서지 않으면 베냐민까지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뱃 속에서 시작 된 그 집요함 때문에 130년을 고생했는데 야곱의 130년은 비록 하나님의 복이라 해도 너무 지나 친 것은 안 됨을 가르쳤고 한 편으로 라헬이 아무리 곱고 마음에 든다 해도 너무 지나 치면 안 된다는 이 것을 가르치는 과정이었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난다 하신 마5:37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본능적으로 불쑥 솟구치는데.. 그러시겠지만 차분히 연습을 하면 조금씩 되어 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었으니 딤전4:8을 잘 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기계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그 대신 세월 속에 길들여 지게 되어 있는 자율 자유성의 존재입니다. 나라는 인격이란 나만 만들 수 있습니다. 환경이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나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만 맡겼습니다. 환경에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면 환경이 나를 만들게 되지만 그렇게 던진 것이 자신입니다. 우리는 흘러 내리는 도도한 물줄기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비록 옳은 일이라 해도 전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는 말씀을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옳은 것이라도 내게 주지 않은 단계가 오면 그쳐야 합니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할 수밖에 없게 하시면 해야 합니다. 이 것을 나의 습관 때문에, 나의 본능 때문에, 나의 체질 때문에 무조건 피하고 본다든지 덮어 놓고 하려고 드는 순간 하나님과 직접 맞서는 상황이 됩니다. 분이라도 삭여야 하고 죄책감이라 해도 떨쳐야 할 때 떨치도록 하시면 떨쳐야 합니다. 떨쳐야 하는데 잘 떨쳐 지지 않으면 인식을 바꾸고 연습을 해 보시면 됩니다.


    (죄책감)
    시골에 사는 분들, 옛날 분들일수록 웬지 죄책감이 많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그렇습니다. 내가 못나서 아이들이 이 모양이다, 나 때문에 시집 온 뒤부터 좋지 않은 일이 자꾸 생긴다, 내가 효도를 못해서 부모님이 돌아 가셨다.. 이 문제가 나오면 죽겠다고 난리가 나며 실제 거의 죽을 지경이 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불신자들은 자연의 본능으로 그러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일까요? 성경 전체를 통해 다 그렇지만 신28장을 보면 가장 집약 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 되면 나와 관련 된 가족과 주변 사람은 물론 나의 민족까지 엉망이 됩니다. 심지어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되면서 지구와 우주 상황까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소돔은 그냥 둬도 망할 곳이지만 롯이 들어 간 이후 모든 문제는 사실 롯 때문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교회는 우주의 중심이며, 우리는 개인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보면 우주의 중심임이 맞습니다. 내가 잘못 되면 나와 가까운 순서대로 문제가 생깁니다. 나를 가르치고 돌려 세우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매 맞을 짓을 하고 내 가족은 상 받을 일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때는 하나님께서 매를 들 X와 상을 줄 Y라는 2 개의 변수가 동시에 있다면 둘의 총합을 가지고 조절하십니다. 화가 그 정도에서 그친 것은 Y 때문이지 내가 매 맞을 일을 덜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한 것은 나 때문에 나 주변까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향은 가게 됩니다.

    (소망의 교리)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댓가도 정확히 계산을 하고 징계하시지만 동시에 믿는 우리의 최종은 소망으로 종결합니다. 아이의 잘못에 부모가 매를 든다 해도 그 매의 마지막 결론은 아이를 고쳐 더욱 좋게 만드려는 소망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추가 매를 줄입니다. 그리고 소망의 날을 당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견딜 수 있는 데까지만 가야 합니다. 행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다른 교인들의 연보를 보면서 따라 했습니다. 문제는 다 팔아서 바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막상 팔아서 돈을 쥐고 보니 연보의 원칙인 자유성 소원성이 따라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죽었습니다. 죽을 지경에까지는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만일 끝까지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범위가 절반이었다면 절반만 약속하는 것이 하나님 주신 범위인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공연히 다 바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자기를 드러 내 보이려는 자기 중심을 벌하신 것입니다.

    자책감이란 차량에게 연료와 같아서 우리의 신앙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에너지입니다. 죄책감이 있는 만큼 신앙은 회개를 위해 노력하고 죽도록 충성을 하고도 죄송해서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 줍니다. 자책감이 많지 못한 사람이 교회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충성 - 자책 = 교만'이 됩니다. 자책이 충성을 앞 서면 늘 겸손합니다. 충성이 자책을 넘어 서면 하나님 앞에 거만해 집니다. 다만 내가 견딜 수 있는 자책감까지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의 분량입니다. 분수에 지나 치지 말라 하신 롬12:6 말씀을 잘 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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