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성구해석 - 말라기3:8

일반질문용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22.07.15
말라기3:8-10
0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0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는 구약의 제도인데 굳이 신약에 와서 소득의 십분의 일을 정확하게 정해서 드릴 필요가 있나요? 형식은 폐했다고 했으니 십의 일이 아닌 십의 이도 할 수 있고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십일조의 원리와 신령한 이치만 따져서 드리면 되고 혹시라도 어린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하다 해도 십분의 일로 정하지 말고 자유성의 원리에 따라 소득을 드려도 되는 건가요? 아니면 가급적 구약의 십분의 일이라는 이 형식은 지키는 것이 옳은가요?
전체 7

  • 2022-07-15 06:02
    소득의 10프로는 내가 일할 수 있고 내 힘으로 일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이 나의 주가 되심을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주일도 7일의 하루를 주일로 지킴으로 주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하나의 표시요 신앙고백이듯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질문의 요지는 굳이 십분의 일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

    저는 십분의 일은 믿은 이후에는 주일성수처럼 기본이고 자라갈수록 십의 이, 십의 삼, 십의 구까지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니 씨와 양식을 구분하는 비율은 다르겠지만 십의 일보다는 적게, 십의 0.5는 아닌 것 같고, 왜냐하면 구약보다는 신약이 지식이나 신앙, 모든 면에 있어서 발전했으니 더 많이 하는 방향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했으니 십의 일이든 이든 은혜받은 만큼 하는 것이겠지만 굳이 정한다면 믿은 이후 십의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 봐도 그렇고 십일조를 폐한다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 2022-07-15 06:17
    공회인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십일조하면 주님의 주권과 주인되심이 묵상됩니다. 내 것을 드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은 주의 것이요 주님의 대속은 나를 위해 주님이 주신 내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질의 십일조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시간의 십일조도 생각해 봅니다. 하루 24시간의 십분의 일인 2시간 40분 졍도 이상을 적어도 주님께 드린다. 새벽예배 1시간, 성경과 기도 합해서 1시간, 매일 전도 적어도 40분 이상, 사람마다 형편과 사정이 제각각이니 이 시간 비율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요.

    물질보다 시간의 십일조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위 성구에서 저는 십일조 앞에 온전한 이라고 하는 이 3글자가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마응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생명을 다해 아낌없이 더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온전한 십일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나는 매일 적어도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전도의 십일조, 하루 30분 기도, 기도의 십일조,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나는 아직 십일조의 온전히 한참이나 아직도 멀었구나! 갈 길이 멀다.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게 되는 아주 좋은 신앙 제도 같습니다. 시간과 물질의 십일조가십십의 이, 십의 삼, 십의 구조가 될 때까지, 양적만이 아닌 질적으로도 시간과 물질 그 외 모든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는 우리 공회인과 일반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2022-07-15 09:47
    먼저 과거 답변을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추가로 질문이 있으시면 댓글로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https://pkists.net/qna/?mod=document&uid=10353 십일조, 십의 하나인 이유(구쉬운문답5650)
    https://pkists.net/qna/?mod=document&uid=2956 주일은 그 기준을 먼저 아셨으면, 십일조는 계산법을 참고하셨으면. - 보충(구문의답변620)

  • 2022-07-16 02:20
    과거 오고 간 답변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위 두 답변을 읽고서 십일조에 대힌 담당8님의 지금 생각이나 새로운 정리, 자기만의ㅈ새로운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 2022-07-16 13:36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표시가 십일조입니다. 하나님 주권의 표시로 인간이 손댈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십일조, 그리고 주일입니다. 선악과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는 것이고 십일조는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고 주일 성수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그 유래가 에덴동산의 선악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돈의 필요치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받으십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서 정성과 동기와 중심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드리는 정성이 충성이고 의가 됩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내신 제도가 십일조입니다. 신앙의 자유성으로 원하고 원하는 단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십일조이고, 십의 구도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고후9장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무엘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한국교회 교인이 가장 잘하는 것이 십일조라고 합니다. 어느 분이 십일조를 원단위까지 계산해서 드리고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천 원단위 만 원단위에서 계산해서 드리는데 이 분의 경우 213,540원 이렇게 계산해서 드립니다. 이분이 경제와 자녀면에서 큰 복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고 인생 실패라고 합니다. 십일조를 정성껏 드리지 않는다면 경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 2022-07-20 08:16
      담당5께서 손 댈 수 없는 주권을 3가지로 설명한 것은 '성경'이나 '교리' 차원이 아니라 목회 차원의 현장 지도 때마다 주로 표현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질문자께서 '구약의 제도'라고 질문의 범위를 한정했고 구약의 제도는 타락 후부터 시작 된다는 점에서 '선악과'는 구약의 율법이 아닙니다. 다만 선악과를 통해 구약도 신약도 하나님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한 모든 명령은 전부가 선악과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제도를 두고 질문이 시작 되었으나 평소 신앙으로 지도하는 과정에 어떤 제도에든 선악과적인 문제가 발화의 시작이어서 포함했고, 이미 문답이 진행이 되어 '수정'보다는 보충 설명으로 '선악과'에 관한 문제만은 성경적 또는 교리적 입장을 적습니다.

  • 2022-07-20 08:05
    참고로,
    구약의 모든 제도는 히10:1, 9에서 오실 주님을 위해 주신 그림자였고 주님은 실상이었으니 주님이 오심으로 제도의 외형은 모두 폐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참 형상이며 실상이며 구원의 알맹이가 되고 실체가 되는 주님이 오신 상태에서도 십계명은 마19:16, 17에서 그리고 십일조 제도는 마23:23에서 폐하지 않고 살려 놓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앞에 설명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일단 근거로 제시합니다. 이 번 질문은 십일조 제도를 유지했느냐는 문제로 보입니다.

    아이가 모태에서는 숨도 식사도 모체가 대신하고 아이의 인체는 숨도 영양도 최종의 정제 된 결과만 흡수합니다. 게을러 그런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것은 자라 가야 하고 그 첫 단계여서 그렇습니다. 태어 나면 숨은 알아서 쉬지만 음식은 어머니가 씹고 소화를 시킨 상태를 젖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유아의 소화 기관에 치아가 없습니다. 젖을 빨 때 장애가 됩니다. 입술과 잇몸과 혀만 가지고 젖을 빨다가 자라 가면서 더 나아 지면 유치가 나오고 영구치로 갈아 탑니다. 구약을 태아로 보셨으면, 주님의 초림을 출생 직후의 유아로 보셨으면, 그리고 신약의 세월이 짙어 갈수록 자라 가는 성인의 과정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출생과 함께 태아 시절의 모태, 모태를 채운 양수, 모체와의 생명 줄인 탯줄은 100% 버립니다. 그 것들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앞 날을 위해 준비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산을 해도 잇몸과 혀와 입술은 가지고 나옵니다. 겉은 다 버리고 나오지만 속에 있는 것은 아직 어려서 그렇지 용도 폐기가 아니라 이제 제대로 자라 가는 데 필요한 출발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씹어 먹는 단계가 되면 유아 때 가진 잇몸과 입술과 혀는 버릴까요? 그 것은 태아 시절에도 유아 시절에도 장차 때가 되면 벗어야 할 것이 아니고 미리부터 갖춰 나가야 할 미성숙 단계이며 갈수록 더 강해 지고 더 억세 져야 합니다.

    구약의 제도들 중에 주님 초림 즉시 바로 떨어 버려야 할 1 단계 로켓 추진체도 있고 이 것이 외적으로 보면 가장 크고 중요합니다. 초림 기간에 분리 되어 내 버려야 할 2 단계 추진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1 단계와 2 단계 과정에 '떨쳐 버리는' 것만 로켓 발사의 전부라면 사람이 타고 있는 캡슐까지 지상에서 전부 폭파를 시켜 버렸어야 더 낫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기본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외부적 악행을 일단 눌러 놓습니다. 누른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나 일단 불은 끄고 봐야 합니다. 화재의 원인과 여전히 남아 있는 불씨가 문제지만 그 것을 연구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뱃 속에 무조건 1인 독방 감금을 시켜 시작하고 화재는 일단 불길을 잡고 봅니다. 타락한 인간이 끝없이 순간적으로 마구 저질러 대는 난장판을 누르는 기능이 율법의 1차 역할입니다. 불길을 잡아 놓아야 발화점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생명을 일단 살리면서 기르게 됩니다. 미약하게 시작 된 생명에게 숨을 쉬라 알아서 먹으라 했다가는 시작도 못합니다. 구약의 제도는 화재 진압의 기능과 출발 된 생명을 이어 가며 길러 가는 초기 단계를 위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 로켓의 가장 크고 중요해 보이는 1 단 추진체를 사정 없이 떨쳐 내 버립니다. 안식교는 그 1 단을 재림 때까지 붙들고 천국을 가자는 교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에 낙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1 단뿐 아니라 2 단도 3 단도 그리고 제일 앞에 사람이 타는 캡슐까지 다 불질러 버리고 싶습니다. 이 좋은 세상에 살지 가 보지도 않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저 천국, 저 멀고 먼 나라, 감도 잡기 어려운 신령한 세계를 위해 내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거침 없이 휘젓고 싶은 우리의 죄악성이 율법을 폐지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 속에 십일조, 주일, 예배, 찬송, 경배, 집회, 연경.... 전부를 다버렸으면 합니다.

    첫 은혜를 받고 신앙 생활을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경험을 해 보지 않았거나 세월 속에 신앙이 느슨해 진 상태가 되면 '구약의 율법? 주님이 오셔서 폐했다며? 그렇다면 그냥 탈탈 다 털어 버리지 왜 십일조나 예배나 신약에 적은 27 권의 잔소리는 남겨 놓았을까...' 그 누구라도 공통적으로 생각해 볼 만하고 또는 주변에서 그런 이의를 받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기저귀도 장난감도 모두 버리거나 창고 속으로 던집니다. 그렇다고 눈 2 개나 심장 1 개까지 같이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을 '본질'이라고 합니다. 탯줄이나 유치나 로켓의 1 단 2 단 3 단의 추지네나 장난감과 같은 것은 단계에 따라 다양하게 역할이 있었습니다. 십일조와 십계명만은 구약의 불편한 제도들 중에 섞여 있던 불편 중에 하나였으나 다른 것과 달리 이 것은 생명의 핵심을 지켜 내는 최소한이어서 신약에까지 살려 놓았습니다.



    십일조는 요즘 표현으로 부자들의 사회 기부금이며, 회원들의 회비로 보셨으면 합니다. 수입의 10 분의 1 정도는 자기만 사용하지 않고 주변을 위해 잘 사용하면 자기에게는 과영양으로 대사증후군에 시달리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야 하는 주변과의 연결선이 됩니다. 그래서라도 제도적으로 필요합니다. 신령하게 알아서 하라 하면 신령하게 하자는 마음 속에 귀신이 들어 와서 남의 것도 더 가지고 오고 싶은 것이 우리의 넘치는 탐욕이며 이 탐욕은 구약 시절에는 율법으로 눌러 놓았으나 그렇다고 신약이 되어 불길이 다 잡힌 것이 아니라 아직도 첫 발화점이 재림 때까지 우리의 인격과 생활을 노리고 있으니 이 발화점에 대하여 최소한 방어막이 되고 소화 기능을 가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혀 다른 기준과 시각으로 다시 보시면 별로 어려울 듯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는 교사 1 명이 모든 것을 다 일일이 진행합니다. 중고교가 되면 과목 별 교사가 있고 학생이 알아서 할 일이 생깁니다. 대학에 들어 가면 출석도 과목 선택도 졸업하는 일정도 편입도 알아서 해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손에 책은 들고 있어야 하고 모를 때 질문은 해야 할 듯합니다. 책과 질문이란 박사 과정이 끝 날 때까지 빼거나 떨어 버릴 대상이 아닐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십분의 일을 꼭 수치로 따져야 할까? 자유성의 원리에 따라 10 분의 1을 계산하는 과정이나 방법 등을 알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신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0 분의 1을 못 박아 둔 것은 신약은 더 자란 상태이니 10% 이하로 내려 가지 말고 그 이상으로 마음껏 올라 가라고 정해 준 것입니다. 20%도 좋고, 신령한 면으로 잘 따져 보고 90%도 좋습니다. 구약은 더도 덜도 말고 정한 대로! 이 것이 원칙입니다. 부자라고 더 내지 말고 가난하다고 덜 내지 말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신약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도록 폭 넓게 제대로 된 자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죄를 짓고 신앙이 후퇴 되는 방향으로는 가지 말라는 원칙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 십일조나 십계명의 경우는 구약에 준 범위는 최소화이고 이제 신약의 은혜 시대 신령한 시대가 되었으니 목숨까지 다 바쳐 마음껏 더 지켜 보라고 우리를 길러 가는 차원을 창공에 펼쳐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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