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학생 지도방법 문의 (선택의 자유, 죽음)

일반질문용
작성자
질문
작성일
2022.07.06

 


삶이 주어진 것은 선택의 자유가 없었지만 죽음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면 될까요?

 

우울증이 있는 대학생이고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은 별로 없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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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8 16:06
    1. 상식적으로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전9:4-5).

    살아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일단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며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죽으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일단 살아야 합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낙망의 죄, 절망의 죄입니다. 소망을 끊어버리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더 이상 회개도 할 수 없고 구원도 건설할 수 없는 아주 끔찍한 죄가 스스로 소망을 저버리는 죄입니다. 바로 자살이라는 죄입니다. 살인은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살인죄에 소망을 포기하는 죄까지 더하는 참으로 큰 죄가 됩니다. 이런 사실을 대화를 통해서 인식시켜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죄는 큰 죄입니다. 그보다 더 큰 죄는 그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소망을 스스로 끊어버린 죄입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죄를 회개했어야 합니다.


    2. 성경적으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만물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뿐만이 아니고 태어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 생애의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주권 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심히 교만한 말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무서운 말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머리털 숫자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사람을 세상에 사는 동안 낱낱이 살피고 인도하시다가 마지막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정하신 장소에서 정하신 모습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인간의 죽음입니다. 참새 한 마리의 죽음까지도 하나님이 다 주관하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은 신앙의 상식입니다. 하나님만이 가지신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권을 다른 것에게 돌리면 그것을 가리켜서 우상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죽음을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 중에 가장 큰 우상이 바로 이 우상입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가장 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대화를 통해서 인식을 시켜야 합니다.


    3. 현실적으로

    대개 아는 상식으로, 사람의 모든 것은 지식으로 인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수많은 잘못된 지식에 의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이해와 설득과 권면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바른 지식으로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동시에 보호자가 먼저 생과 사의 주권에 대한 인식을 실제로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인간 생사의 주권을 가지셨다는 것을 실제로 인식하고 그 인식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그 뒤는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좀 모질고 독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사실대로 알아야 합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도 필요하고 이해와 배려와 포용이 다 중요하나 그것이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외부의 여러 보살핌과 함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학생의 인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 매였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나게 하신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천국의 구원을 이루라고 보내신 것이지 힘들다고, 괴롭다고, 어렵다고 포기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좋은 말도 아니고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사람이 세상 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사는 것이 중요하고 일단 살아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야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모두 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비겁한 것이 소망을 포기하고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하는 말을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맞지도 않고 멀리까지 계산해 보면 별로 유익이 없는 말입니다.

    당사자의 인식을 바꾸는 동시에 보호자의 인식도 돌아봐야 합니다. 정말 사람의 생사가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있는지? 정말 이렇게 알고 믿는다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놀라지 않아야 하고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사는 하나님께 매여 있으니, 제가 죽고 싶다 한다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개 부모는 자녀가 죽고 싶다 하면 가슴이 덜컥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 그런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작 놀라야 할 것은 그 자녀가, 또는 그 학생이 그런 인식을 가지기까지, 그런 말을 하기까지 부모나 주변 보호자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그 면을 돌아보고 놀라야 합니다.


    4. 결론적으로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자도 아니고 전능자도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이 사람의 할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해 봐야 되는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먹는 것과 같은 죄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두어야 합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할 수 있는 데까지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그것을 아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거나 입에 담는 자녀나 학생이나 주변 사람이 있을 때도 같은 원리입니다. 최대한 대화를 통해서 이해시키고 권면하고 설득해서 인식을 바꾸도록 하고,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살피고, 보호하고, 주변에 부탁도 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그 이후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일부러 더 어렵게 만드십니다. 신앙이 장성할수록 이런 면은 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덜컥 저지르고 봅니다. 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는 경우보다 관심을 끌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대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주관과 환경에 의한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억장 무너지는 일들이 많겠지만, 감정은 추슬러야 하고 인식은 바로 가지고 원칙은 지켜나가야 합니다. 감정이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별로 많지 못합니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죽고 싶다고, 죽고 싶다 한다고, 죽으려고 한다고 마음대로 죽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식을 바르게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2022-07-09 07:10
    (윗 글에 감사, 또 다른 면으로)
    공회의 신앙으로 적어 주셨으니 저는 다른 면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응급실의 경험담 하나)
    1980년대 주일학교가 한창이던 시절에 주일학생 가정에 여러 번을 시도해서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 간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학생 때문에 응급실로 달려 갔는데 의료진은 '이 환자? 또 왔네..' 알고 보니 10여 회 가깝게 시도를 했는데 성공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 부모님의 속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의료진 이야기로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는다고 설쳐 놓고 응급실에 오면 살려 달라고 난리들입니다. 사람 죽는 것? 제 멋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니까 마음을 먹으면 모두가 되는 줄 아는데 거의 다 실패합니다. 사람의 명이 질겨요, 죽는 것?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 내리든 무엇을 먹든 실패하면 몸이 엄청 망가 집니다.

    성경과 교리적으로 앞에서 설명하신 '담당4'의 글처럼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 믿는 세상의 응급실 의료진이 이런 종류로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그의 경험담을 전해 듣게 된 것을 이 번 글에 추가해야 제 양심이 좀 낫겠습니다.


    (언론의 몰이라는 것)
    * 표현이 괘씸합니다.
    자동 검색에 사이트 운영이 불편할까 싶어 '자+살'이라는 표현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해서 불만스럽습니다. 태아 살해는 여성의 존속 살인이어서 일반 살인보다 더 끔찍한데도 '여성의 자기 결정'이라고 표현을 둘러 놓으니 양성 종양 하나 떼 내듯 합니다. 마음이 좀 이상해 지면 '여성의 자기 결정'이라며 자기 체면을 시켜서 쉽게 결정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표현을 돌려서 집단 살해에 나서는 배후를 보면 평소 입에다 '인권' '자연' '민주' '사형 폐지'를 외치는 ㄴ들입니다. 지렁이 한 마리를 위해 KTX 공사를 막아 선 사람들.. 자기 발 밑에 밝힐 개미들을 위해 발걸음은 어떻게 떼 놓는지 모르겠고 바이러스를 몰살 시키는 백신은 어떻게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차 대전에 독일이 5 ~ 6 년에 걸쳐 가스실로 보낸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몇백 만 명이라는데 그 정도의 세월에 태아를 살인한 숫자가 맞 먹을 정도입니다. 독일의 학살이 오늘 인권주의자 자연주의자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법적으로 진행 된다는 것이 참 괘씸합니다.

    표현 하나로 인류 전체를 뒤집어 놓는 이런 일을 늘 경계했으면 합니다. 표현 때문에 이 곳의 신앙의 분들이 세상 속에서 직접 투쟁하는 것은 말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알기는 알아야 좋겠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인간들이 교회 안에서는 '자유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자유는 믿을 자유만 자유입니다. 믿지 않을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가 아니라 귀신이 준 자유입니다. 사람과 생명의 권리는 생존과 잘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생명을 주실 때는 잘 살 자유와 권리를 주셨습니다. 표현에서 지면 참으로 허무하게 당합니다. 선악과를 두고 하나님은 죽는다! 했지만 귀신은 하나님 된다! 라고 뒤집었습니다. 표현을 뒤 집어 눈이 뒤 집어 지고 그리고 다시 보니 먹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귀신이 할 일은 표현만 하나 던지고 지켜만 보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멸에 나섭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 간다! 이 표현 하나에 70여 년 넘게 이 땅 위에 정말 좋은 사람들의 순서로 인류의 절반이 광분을 하며 죽기를 노력했습니다. 속으로는 당해도 싸다 싶지만 인류의 보편 양심으로 보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그 입이 밉상입니다. 그 입이 택자의 입이었다면 그 입의 그 표현과 그 생각은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 밑 바닥에서 불에 탈 것입니다. 불택자가 한 말이라면 그 입과 생각의 주인과 함께 지옥의 밑 바닥에서 함께 영원히 불에 탈 것입니다.

    태어 나는 것은 자유지만 가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 않느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 가는 사회를 만들자?

    말이란 손 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3 장에 그 말에 돌아 다니며 만들어 내는 참화가 많습니다. 좋은 표현은 '복음'이 되고, 좋지 않은 표현은 천하를 불 살라 버림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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