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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열린예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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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785
작성일
2022.05.26

2003-04-09 15:47:39
행복한 사람

 

[교회/예배] 토착화 신학(신앙), 구도자 예배, 열린예배에 대한 문의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교리-교회론-교회운영-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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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답변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질문을 드립니다

토착화 신학(신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백영희 신앙노선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예배라는 것도 시대와 환경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현대판 토착화 신학(신앙)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어떻게 보아야 할지요.

항상 주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2003-04-10 12:08:48
" [ E-mail ]

 

'토착화'라는 표현은, 내 고향을 중심으로 해서 기독교를 뜯어고치겠다는 뜻입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회-]/[-교리-교회론-교회운영-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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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상에서는 '토착화'라는 말을 즐기지만, 신앙에서 '토착화'는 극히 위험한 표현입니다.

①'신앙'이라는 단어의 의미

'신앙'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는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부처를 믿는다, 유교를 믿는다고 할 때 이 믿는다는 뜻은, 우선 마음으로는 그 말이 맞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믿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 마음에 인정한 대로 '행동'을 할 때 믿는다고 표현을 하게 됩니다.

불교에서 하는 말이 마음에 인정이 잘 되면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돌부처에게 과연 효력이 있을까 하여 반신반의하는 사람이면 신앙이 별로 없는 사람이고, 불교에서 하는 말이 도무지 마음에 인정이 되지 않는 사람이면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또 돌부처 앞에 불공을 드려야겠다는 것은 마음에 인정이 되는데 막상 그렇게 하려니까 힘이 들어서 불공에 정성을 별로 기우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교 신앙이 깊지 않은 사람이고, 힘이 들어도 불공을 열심히 드리는 사람은 신앙이 깊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없던 지식인데,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 지식을 따라 움직이면, 그렇게 하는 것만큼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 속에 없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 속에 있는 것과 외부에서 가르치는 것 두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이 강하냐에 따라 신앙이 있다 없다고 표현하게 됩니다.

 

 

②'토착화' 신앙이라는 단어의 의미

교회에서 '신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앞에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아도 항상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는 전혀 없었고 몰랐던 하나님을 내 마음이 받아들이고 이제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신앙'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토착화 신앙'이라는 말도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니 '토착화 신앙'에 사용된 '신앙'이라는 단어도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토착화'라는 표현은, 내가 살고 있는 내 고향의 것으로 만든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좋은 의미로 와닿는 단어입니다. 내가 자라난 내 고향, 내가 성장했던 나의 환경, 내 눈으로 보고 익혀 친숙하게 된 나의 모든 주변은 넓은 의미의 '나'입니다. 제 똥은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고슴도치가 제 새끼 털을 어루만지며 참 보송보송하다고 이쁘하는 것은 고슴도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고슴도치보다 더 악독한 것이 우리 인간인데 인간이 이렇게 악독해도 제 것에 대한 애착과 호감은 너무 지나치다는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습성 때문에, 내 것도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물론 남의 것이 나에게 불편하기 때문에 일부 수정이나 보완을 해야 더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면들이 어울려 '토착화'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문명간 국가간 사회간 이동과 모방이 극심하여 원래 제 모습은 기억도 하지 못할 만큼 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에 있는 좋은 것 편리한 것을 한편으로는 내 것을 만들고 싶고 동시에 자기의 옛 것, 자기의 고유한 것을 그리워하는 추세가 역력하게 나타나면서 그 접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토착화'라는 표현입니다. 같은 값이면 자기 것을 선호하려고 노력하되 남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기에게 맡는 방향으로 맞추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③'신앙'과 '토착화'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토착화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토착화신앙'이란, 나 좋은 대로 나를 중심해서 나에게 맞추어 '신앙'이라는 것을 수선하고 보충하겠다는 뜻입니다. 불교 신앙을 가졌다면 불교의 원래 모습을 중심으로 삼고 내가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교 신앙을 토착화시켰다는 말은 원래 불교를 한국화 했다는 말이니, 한국화 된 불교는 불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불교는 원래 남을 죽이지 못하게 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외침을 많이 받는 나라에서는 '살인'에 대한 조항은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여 폐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라는 종교가 다른 종교로 바뀌는 것입니다. 불교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까?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기독교인데, 한국적 토속신앙을 감안하여 산신령과 하나님을 적절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조직신학에서 '신관'을 재조정하겠다는 것이, 예를 들면 토착적 신앙입니다. 구약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장막절이라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추석과 같은 외형을 가졌으니까 추수감사절을 추석과 일치시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둘을 적당히 버무리는 정도로 재조정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언하고 '토착화 신앙'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힌트를 받아 새로 만들어진 민족 종교는 될 수 있어도 기독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아닌데도 기독교의 외형을 가지게 되면 우리가 '이단'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외형까지도 다르면 '이종교'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토착화신앙이라는 표현은 대이단이라고 단정해야 할 것입니다.

 

 

2.참고로, 신앙이라는 것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롬4:16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했던 것은 신앙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흐름이라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 믿고 나간 것과 다른 종류는 다른 종교라는 뜻입니다. 창12:1 이하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한 첫 명령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라는 명령입니다. 천국을 모르고 세상만 알고 살았던 모든 것이 본토였고 친척이었고 아비집이었습니다. 토착화는 커녕 토착화를 죽이고 벗고 초월하지 못하면 신앙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들판에 망아지를 매놓고 달리기를 시키면 망아지 제 마음은 달리고 있지만 옆에서 보면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그 망아지에게 달려 있는 줄을 끊어버린 후에야 망아지에게는 전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한국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이 한국을 부인하고 떠나지 못하면 한국적 기독교는 될지라도 기독교적인 기독교는 되지 못합니다. 한국이라는 요소를 천국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요? 한국인이라면 그러고 싶겠지만, 아랍인은 아랍적인 것을 천국에 가져가고 싶을 것이고, 일본인은 일본적인 것을 천국에 가져가고 싶을 것입니다. 타락 후 형성된 이 땅 위의 각양 각색이 '토착화'라는 화장을 하고 교회 안으로 다 들어오게 되면, 그 교회는 바로 세상이지요. 세상화 되었다는 말을 한자로 '속화'라고 합니다.

표현의 묘한 장난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반전'이라는 구호는 반미라는 행동이 됩니다. 북한이 참으로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38선을 넘고 서울로 기습해서 들어오던 당시에 '반전'을 말하면 그 말은 같은 말인데도 바로 북한의 심장을 찌르는 반동행위가 됩니다. 그 표현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상황에 사용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 표현 자체에 끌리게 되면, 그 표현을 가지고 낚시하는 사람에게 낚이는 신세가 됩니다.

 

 

3.'구도자 예배'나 '열린 예배'도 꼭같은 원리들입니다.

①표현은 좋은데, 실은 표현만 좋고 알맹이가 지극히 불량한 경우입니다.

우리 농산물이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좋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호랑이가 남극에서 펭귄을 먹고 살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따로 배우지 않고 설명 듣지 않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토불이의 토착화 원리를 호랑이가 아닌 기독교에다 적용시킨다는 것은 기독교를 해체하려는 아주 불손한 무리들의 장난이니 사탄의 전위대라고 서슴없이 비판하겠습니다.

그러나 '구도자 예배'나 '열린 예배'와 같은 표현은 '토착화'와는 달리 그 표현 자체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찾겠다는 뜻이 '구도자'이고, 안 믿는 사람이나 탕자에게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겠다는 뜻이 '열린 예배'이니 누가 그 표현만을 두고는 반대를 하겠습니까? 꿀단지와 똥단지의 차이는 겉포장에 있지 않고 내용물에 달려 있습니다. 비단천에 고려자기로 싸두었다 해도 속에 든 것이 똥이면 똥단지고, 누더기로 두르고 요강에 넣어두어도 그 속에 든 것이 꿀이면 꿀단지입니다. 아직까지 예배 앞에 싸놓은 보따리가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것치고 그 속에 용변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주일 예배 밤 예배 가정 예배처럼 예배보는 날자와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분류한 정도가 아니고 예배의 내용과 속성이 달라지도록 붙여진 최근 개발품은 거의 전부가 다 예배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②예배의 본질은 하나님 섬김은 없애버리고, 예배의 포장만 이렇게 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예배'라는 표현 하나만 가지고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 예배 앞에다 이 말 저 말을 자꾸 붙이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 교회는 교인 확보를 위해 세상 기업체들이 각가지 아이디어로 물건 포장, 상품명칭, 로고송, 구호, 이벤트 행사 등을 마련하고 이런 홍보를 가지고 손님을 끌고 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대속에 감격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도하고 심방해도 평생 만분의 일도 하지 못할 것인데, 대속의 은혜와 말씀의 방편 대신에 세상식 아이디어로 교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이 돈벌이를 위해 별별 상표와 포장을 개발하여 현대인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결국 현대인의 의식구조와 체질까지도 PR(홍보)제일주의로 만들어놓았는데,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어린 시절과 학생 시절을 보낸 신학생들 교육전도사들 또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운영에까지 이 세상 조류를 그대로 끌어들여다가 풀어놓았습니다. 엡2:2에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했는데 바로 이렇게 살던 때는 1절에서 안 믿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를 들어가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도 그때 그 버릇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세상 풍속을 교회 안에까지 끌고 들어와서 교회 안에 풀어놓아 버렸습니다.

세상 남녀 학생들이 난잡한 춤과 노래를 좋아하니까, 그들과 어울려 그런 짓을 하다가 이제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니까 자기들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그런 모임을 만들고 그렇게 운영하도록 지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학생회니 수련회니 CCM이니 별별 이름으로 교회를 휩쓸고 있지만 그 본질은 세상 조류와 풍속입니다. 그런 것을 싹 씻어버린다는 의미로 우리는 신앙으로 출발하는 첫 걸음에 물로 씻는 세례의식을 받는 것인데, 또 침례교에서는 아예 강 속에다 완전히 사람을 담가버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 풍조, 세상 더러운 것을 씻는 데 앞장을 서겠다는 신학생들 전도사들이 교회를 그런 식으로 아이디어 상품 개발하듯 복음운동을 하니까 교회가 강단에서부터 썩어 나자빠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세 교회입니다.

 

 

③어쨌든 '토착화'는 단어부터 나쁜 것이고, '열린'이나 '구도자'는 표현은 좋습니다.

복음운동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감격한 사람이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이 바뀌면 새로 닥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하겠는가를 연구하되 자기 속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좆아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내놓는 복음 운동의 방편들은,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이 아이들이 즐겨 먹는 쵸콜릿에는 어떤 색깔 포장이 더 좋을까, 월드컵 기간 중에는 축구공의 이미지를 어디에다 써먹을까 하여 군중의 심리를 연구해서 어느 면으로 불을 붙여야 쏠림 현상이 나타날까 하고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운동이 아닙니다. 일시에는 성경을 놓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까 모두들 은혜가 넘친다고 난리들인데, 양의 가죽을 볼 것이 아니고 그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애미 양인지 애미 양을 잡아 먹은 이리인지 그 본질 본 바탕이 문제입니다. 이런 현상이 너무 심각하고 어지러운 시대이므로 이곳은 감히 /신앙연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그런 현상을 무작정 따라 나서고 있기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시각을 특별히 중시하고 참고하고 있습니다.

 

 

④참고로, 이곳에는 이미 '열린 예배'에 대하여는 살펴본 자료가 있습니다.

'구도자 예배'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지금 답변자가 사용하는 주소창에서 '구도자 예배'라는 단어를 치고 들어가면 바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이 가능하겠으나, 오늘 수도 없이 양산되는 남대문시장의 기획상품들, 아이디어상품들과 같은 차원에서 와닿는 것이라 그 확인조차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열린 예배'에 대하여는 백영희신앙노선 내에서도 문제가 된 적이 있어 과거에 잠깐 살펴본 적이 있었고 이곳 문답에서 답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다음 문답 중에서 일부 내용이 '열린 예배'에 관련된 것입니다.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초기화면/연구실/문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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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번, 안녕하세요.. 궁금이 02/12/01

1058번, 신앙노선의 갈등이 아니라면, 현재 자기 교회는 무조건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02/12/01

459번, [공회]1.총공회 젊은 층이 부흥되지 않는 이유 2.서울의 삼일교회에 대한 의견 yilee 0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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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화면/연구실/쉬운문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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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번, '셀교회' 개념은 성경적입니다. 문제는 성경을 누가, 어디에 사용하는지입니다. 0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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