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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조사라는 용어는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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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750
작성일
2022.05.23

2003-04-05 02:02:58
테레사 [ E-mail ]

 

[공회] 시대적인 언어가 좋습니다. (열람 편리를 위해 1753번으로 옮겼습니다. - 관)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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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작은 문제가지고 시간낭비하시렵니까?
시대가 변하고 언어가 바뀌어 왔습니다.

언어나 칭은 일반 사람들에게 이해와 통용이 잘되는 것으로 변화하여 왔습니다.

이시대에 맞도록 현제의 통용상에 맞도록 쓰여져야 함니다.

조사란? 제가 아직 어린시절에 들어본 말입니다.

전도사란 말도 너무일반적이고 세속한 품은 좋은 의미와 뜻을 흐리고 있는것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좋은 언어 실용적이고 품이있는 말은 다 뽑아서 자칭으로 쓰고 있는 이시대에 기독교 언어도 뒤떨어져서는 아니됩니다.

얼마든지 좋은 존칭을 골라 내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쓰여져야 된다고 생각함니다.

뒤떨어진 구시대의 언어를 주장하고 고집할게 무엇입니까.

가장 고상하고 존귀한 언어를 구상하고 기독교가 먼저 발전해 나가야 함니다.

조사란 너무 뒤떨어지던 시대에 쓰인 말입니다.

지금도 전도사라는 명칭도 너무세인들이 흔하게 사용하고 있어 천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교회에서 사명자들에게 쓰이든 말이 이제 일반화되면서 의미를 상실한 언어가 된것 같습니다.

 


2003-04-06 18:19: 2
성도

 

전도사라는 명칭은 총공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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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 계실때 부터 전도사라는 명칭을 써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한가지 예로

비록 여자교역자였지만 구역장님이셨던 추순덕 집사님은

그묘비에는 추순덕 전도사님으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추순덕 조사님이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2003-04-06 23:20:40
yilee [ E-mail ]

 

공회에서 '전도사'로 호칭할 때는 2가지 사용 경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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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잘 지적하셨습니다. 추순덕집사님은 원래 추순덕'전도사님'이었습니다.

①모르실 분들을 위해 '추순덕'집사님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백목사님 평생에 교인 중 첫 이름은 아마 '추순덕'집사님으로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 노선, 능력, 지혜, 투쟁, 교리, 교훈, 지도, 순종, 단심, 통괄, 성적, 행정 등 모든 면에 걸쳐서 단연 제일의 교인이었습니다. 백목사님 말년만을 아시는 분들은 '4분 권사님들'이 가장 최고 교인들이라고 기억하시겠지만, 추집사님은 그분들보다 아예 한 차원 이상에 있었던 분입니다. 현재 /초기화면/총공회/총공회관련자료/인물편 31번 '추순덕'/에 간략하게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②추순덕전도사님의 호칭은, '전도사 - 집사 - 전도사' 순서로 불리웠습니다.

서부교회에서 1960년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추순덕집사님을 초기에는 '전도사님'으로 부르다가 어느날부터 '집사님'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의 서부교인들은 추순덕'집사님'으로만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묘비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전도사님'입니다.

원래 서부교회로 오기 전 그분은 고신교파의 '여전도사님'이었습니다. 보통 '전도부인'이라고 통칭하기도 합니다.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제명될 때 백목사님 노선을 따라 함께 나왔고 당시 이인재목사님이 담임으로 있었던 대구동성로교회 여전도사님으로 있다가 이인재목사님이 백목사님 노선에서 이탈 될 때 그 교회를 백목사님 노선에 붙들어 오늘까지 공회 소속으로 있도록 한 분입니다.

그후 동성로교회에서 서부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서부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그분의 평생 따라 붙든 이름인 '추순덕전도사님'으로 서부교회에서도 호칭되었습니다. 추집사님이 21세 처녀의 몸으로 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여전도사로 나섰던 것이 1949년경이었고 서부교회로 왔을 때는 1960년대였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나온 직후 장로교 행정노선의 잘못된 점들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면서 '여전도사'에 대한 개념을 폐지하게 됩니다.

이후 추순덕'전도사님'은 추순덕'집사님'으로 평생 서부교회에서 충성하다가 1983년 임종하게 됩니다. 임종 때 백목사님은 그 호칭을 전도사님으로 복원시켜 묘비에 적게 했습니다. 원래 '전도사'였기 때문입니다. 생전의 대우와 그 사람이 죽은 사후의 대우는 원래 목사님이 달리하는 면이 있습니다. 즉, 그 사람 생전은 그 사람 구원 유익을 위해 정상 이하로 낮추어 훈련을 시키지만, 사후가 되면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정상적인 예우는 하는 그런 경우로 보시면 됩니다.

 

 

③비슷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전도사님 중에 김붕금전도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원래 전도부인이었으며 고신에 있다가 백목사님 집회를 참석하고 고신을 탈퇴한 뒤 총공회 소속 창동교회 교인으로 살다가 임종하게 됩니다. 창동교회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전도사'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추집사님 같이 1960년대였습니다.

또 한 분은 현재도 계신 오은혜전도사님과 같은 경우입니다. 20대 초반에 고려성경학교에 입학하고 백목사님이 고려신학교 다닐 때 함께 공부를 했던 분이며, 평생을 복음운동에만 헌신한 여전도사님입니다. 백목사님이 고신에 있을 때부터 신앙으로 따르던 분이었고 서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었고 후에 고신대학병원 원목실 여전도사님으로 있다가 1981년 병원에서 은퇴한 뒤 다시 서부교회 교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분도 서부교회로 들어왔을 때 오은혜전도사님이었으나 서부교회 신앙노선 때문에 오은혜'집사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순간에 병원 심방을 전임하도록 하고 전도사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1980년대 말 서부교회는 초대형교회로서 병원에 심방해야 할 교인들이 대단히 많았는데 대학병원 원목실에 있었던 분이어서 그 면을 맡기에 적격이었습니다. 물론 서부교회 교인에 대한 관리 전권은 구역장에게 있지만 구역장이 병원 심방에 동행할 분이 필요한 경우는 오은혜집사님께 부탁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병원을 다니게 되면 환자 가족들 중에 타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나 그 교회 교역자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어 오은혜집사님에게는 전도사로 부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전도사라는 호칭은 공회 노선에서 금지된 제도나 호칭으로 보실 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목회하는 조사님들도 한번씩 전도사님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당회'라는 명칭과 같이 공회 행정노선에서는 완전히 없어진 개념인데 옛날부터 사용하여 입에 익어 있었던 평상 표현으로 한번씩 사용되는 정도였습니다.

 

 

④이외에도 조사님들을 '전도사님'으로 별 의미없이 한번씩 부르는 수도 있었습니다.

질문에서는 추순덕전도사님을 예로 드셨지만, 실제로는 일반 목회하는 조사님들도 한번씩 '전도사님'으로 호칭하는 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특히 조사님으로 출발할 때 '인허식'을 갖게 되는데 이 인허식은 주로 '000 전도사 인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서 볼 것은 주로 공식적이거나 형식을 지켜야 하는 그런 경우는 거의 '전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일상시에는 조사로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회나 전도사에 대하여 공회노선은 일반 장로교 행정 개념과 전혀 다른 노선을 가지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표현할 때 교계 공통적인 언어는 한번씩 채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장로교의 당회는 그 교회의 최고 기관입니다. 공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목회가 있을 뿐입니다. 당회라는 표현에 해당되는 표현을 꼭 찾아야 한다면 '공회'입니다.

1989년, 백목사님이 '당회'라고 한번씩 표현하는 바람에 일반 교회처럼 교회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목회자들이 '당회'라는 그 이름에 담긴 실질적인 장로교 '당회'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그런 제도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경향이 있어 답변자가 백목사님께 '당회' 대신에 '공회'라는 우리 행정노선에 따라 그 명칭까지도 맞추어 혼선이 없도록 해 주시라고 청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앞으로 그렇게 꼭 해야겠다고 했으나 습관이 되어 또 당회라는 표현이 한번씩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나 '신학' '치리'라는 표현을 두고도 같은 식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2.질문과 약간 다른 방향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공회의 '여전도사'에 대한 입장입니다.

①'여전도사' '전도부인'

조사님이라는 제도가 초기 한국선교 상황에서 임시로 운용된 적이 있듯이, 한국교회에는 헌법적 규정 때문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전도사' '전도부인'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원래 '전도사'는 장로교의 필수직책이 아닙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는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직책이지만 전도사는 임시직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직책입니다. 전도사는 원칙적으로 제직회에도 참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 장로교 헌법에서는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신학자들이 웃어가며 말하는, 여자들에게도 전도사직은 허락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집사직만 해도 여자들에게는 금지되고 있습니다.

선교 초기 한국교회 교인들의 구성은 양반보다는 천민이나 못난 사람 또는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 교인이었고 또 남녀 비율에 있어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교인들은 주로 여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장로교 법에 의하여 교회의 정식 직분은 남자들만 맡아야 하다 보니까 남자 교인 중에서는 '조수노릇'밖에 못할 조사를 겨우 뽑을 수 있는 정도였고, 여자들은 비록 이름에서는 하찮은 '전도사'직이었으나 이 전도사직으로 충성할 사람의 숫자는 적지 않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②여전도사님들은 특별히 은혜 받은 분들이거나 아니면 한 많은 사연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한국 여성의 특성이 몇 가지 있는 줄 우리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선교 초기까지만 해도 수백년 내려 온 이 나라 여자분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곳곳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고 헌신하고 나온 분들도 가끔 있지만, 주로 한국 사회에서 도저히 출구가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 여반 교인들 중에서 신앙 있는 분들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겸사 겸사해서 전도사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일단 전도사로 나서게 되면 그 출발 동기는 별로 상관할 것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고 또 그 열심 때문에 더 큰 은혜가 넘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과거 어려웠던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대부분 충성하고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여전도사님의 몸으로 교회를 담임하는 분들도 있었고 또 큰 교회에는 요즘 교육전도사나 부목 대신 당시는 여전도사님들이 담임목사님을 받들고 심방 전도 등 교회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평양감옥에서 출옥한 분들이 출옥 직후 찍은 기념사진에서 12명 중 3명이 여전도사님들이었다는 사실은 우연만이 아닙니다. 초기 한국교회 부흥사에서 실제로도 여전도사님들의 활동과 역할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특히 전도되는 과정이, 극단에 처한 여자들이 먼저 믿고 그 여자가 남편을 전도하거나 아니면 자식들을 길러 그 여자 밑에서 자란 남자 아이가 나중에 교회 목사나 장로로 충성하면서 교회가 전도되고 부흥되어 오는 식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상대로 직접 전도할 수 없었던 세월이 해방 뒤에도 상당히 오랜 세월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전도사님들의 역할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③그런데 이 여전도사님들은 거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특이하게 가정을 가진 분들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대부분 혼자 사는 여반 교인 중에서 신앙있는 분들이 교회일에만 전념하겠다고 출발하면 '여전도사' '전도부인'이라고 했습니다. 여전도사라는 표현은 비교적 공식적인 표현이고 현장에서는 전도부인이라고 했습니다. 일찍 결혼하던 시절, 부인이어야 할 나이에 전도사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도부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은, 고신시절에는 이 전도부인에 대하여 그렇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고신에서 제명된 후 개교회로 나가면서 주변과 마찰 될 것 없이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게 되자, 이 전도부인제도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을 하게 됩니다. 사실 백영희신앙노선의 근본 흐름입니다만, 여자가 아이를 많이 낳고 남편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가정에 치여봐야 비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남자에게는 땀흘리는 수고를 더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노동을 시켜 죽도록 일하게 만들고, 여자들에게는 가정을 원만하게 이끌면서 신앙생활을 원칙대로 하려면 남자 이상으로 고난을 겪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자들은 여자들에게 주신 그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이 되고, 그렇게 사람이 된 후에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게 되는데, 혼자 살게 된 연유는 있겠지만 나이 많도록 혼자 살면서 교회일을 하게 되니까 우선 전도하거나 또는 설교하는 등 교회의 활동면에서는 실력이 있는데, 혼자 사는 여자들의 한계 때문에 먼 훗날 교회나 자신에게 큰 후회할 일이 있으니 이런 면을 경계한 것입니다.

 

 

④따라서 아직 한국교회가 여전도사들이 주름잡고 있던 시절인데, 그 제도를 배제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이 여전도사님 제도를 없애는 1960년대라고 하면,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이 여전도사님들이 교회의 중추세력으로 아주 큰 힘을 발휘할 때인데 백목사님은 여전도사님 제도를 교회 행정노선에서 배제를 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여전도사님으로 있었던 분들은 그냥 일반 집사님으로서 교인 중 한 사람으로 충성하여 자기가 전도한 식구들에게 구역장으로서만 자기 위치를 가지게 한 것입니다.

대개 교회들마다 가지고 있던 '여전도사' 제도는 요즘 부목이나 교육전도사 개념으로 운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한 구역만을 책임지는 구역장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구역을 넘어서서 교회 전체를 이리 저리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구원계통에서 유익이 없다는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⑤'여전도사' 제도를 없앤 것은, 크게 2가지 면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전도사님들 자신의 구원에도 유익하겠다는 것입니다.

여전도사님들이 초기에는 열심히 충성하는 일만 하지만 세월이 가고 공로가 쌓여가면 교회의 어른이 되어 후임 목사님에게는 버거운 상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교회 터줏대감처럼 되어 명예도 권세도 대우도 받게 되는데, 그 전도사님이라는 표현이 교회 헌법에는 임시직이지만 교회 내에서는 경우에 따라 아주 대단한 힘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대우받고 존경받고 일반 교인에 비하여 특별한 힘을 가지던 분들에게 복음 앞에 자신을 낮추고 교인의 한 사람으로 겸손히 충성하고 이 땅 위에서는 끝까지 묻혀서 충성하라고 전도사라는 교역직명을 없애게 됩니다. 교회의 궁극적 목회 책임은 남자라야 하기 때문에 남자 한 사람으로 목사 또는 조사가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서부교회로 말하면 이런 분들이 약 20여명은 넘을 정도입니다. 그분들이 다른 교회에서는 여전도사 또는 전도부인으로 한 교회 정도가 아니고 소속 교단에서도 이름을 날리던 분들이었으나 일단 서부교회 백목사님 밑으로 들어오게 되면, 전부 밑바닥 인생부터 새로 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복순집사님 같이 요즘 카페와 같은 Milk Hall을 6.25 때 했던 분에게 연탄장사를 시켜 얼굴에 숯칠을 하고 살게 했고, 수원에서 일제 때 택시회사를 했던 집의 무남독녀 귀한 딸을 식모살이부터 하고 예수를 새로 믿으라고 남의 집 가정부로 보냈으며, 힘이 좋은 여전도사님들은 계란이나 참기름을 떼다가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도록 했습니다. 물론 목회를 원하는 남자들에게는 무조건 막노동이나 물장수를 시켜 일반 다른 교회의 목회자나 교역자가 거치는 신학 과정 대신 세상 가장 험한 것으로 밑바닥을 기게 했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최고급 여교역자 대우를 받던 분들이 서부교회 백목사님 밑으로 와서는 교인 중에서 가장 천하고 힘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은 1952년 목사님이 서부교회에 부임하면서부터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명령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 충성할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했고, 그렇게는 못할 정도의 분은 당시 교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여전도사님 제도 범위에서 모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9년 고신에서 제명이 되고 1960년대부터는 교단이나 소속 상회와 마찰 될 필요없이 자유롭게 되자, 여전도사 제도를 공회 노선에서는 완전히 배제를 시키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전도사님들이 젊어서는 첫 신앙을 유지하고 또 정신없이 교회일에 충성을 하다보니까 딴 데 눈을 팔지 않는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고독을 심하게 느끼게 되고, 결국 뒷날에는 여러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여 본인에게는 복음운동에 유익이 없다는 면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백목사님 지도를 받지 않고 다른 교회에서 여전도사님으로 출발한 분들이 백목사님 교회 교인으로 들어오게 되면, 초창기는 일부 여전도사님의 당시 교계적 입장을 고려해서 특별히 배척하지는 않았으나 1960년대부터는 공회 노선에서는 그 제도 자체를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여전도사님 제도를 배척한 결과

교회는 몇몇 여전도사님을 일반 교인으로 만든 대신 수많은 구역장들이 여전도사님은 아니지만 여전도사님 노릇을 실제로 하게 되어 더 많은 여전도사님을 얻게 됩니다. 서부교회는 그 맡은 일이 타 교회로 말하면 여전도사님 이상으로 심방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섬기는 분들의 숫자가 몇 십명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타교회로 말하면 여전도사님의 이름으로 평생 살았을 분들은 비록 집사직책으로 묻혀 살았으나 실제로는 여전도사처럼 충성했고 그 밑에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비록 독립목회는 아니지만 대형교회 목회자 이상으로 충성을 하고 끝까지 충성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백목사님 말년까지 일반 교회와 전혀 다른 시각에서 다른 자세로 목회를 한 결과, 모든 면으로 볼 때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는 것도 증명이 되고 또 성경적으로도 옳다는 것이 확정되자, 목사님 말년에는 병원 심방처럼 일부 특수한 경우 '오은혜전도사님'으로 호칭을 하나 사용해도 이제까지 잡고 내려온 방향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는 정도에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남녀 이성문제 때문에 1960년대 초기에 찬양대를 없앴다가 1980년대에 다시 찬양대의 일부 필요성이 있어 부활시키면서 이성문제가 없도록 초등학교 여학생들로만 찬양대를 구성했던 것에서 참고하시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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