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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조사라는 호칭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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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731
작성일
2022.05.19

2003-04-02 06:13:41
강성연

 

[공회] 조사라는 호칭에 관하여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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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회2 홈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이 주장이 옳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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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조사라는 호칭에 관하여

조사에 관하여

1.조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초창기, 목사가 많이 양성되기 전, 선교사들을 도와 교역 일선에서 일정 직분을 맡아 수행했던 이들을 뜻하는 말로서 한문으로 助事(조사)라고 쓴다. 즉 정식 신학교육을 마치지는 아니했지만 선교사를 도와 전도, 치리, 순회심방등의 활동을 보좌하고, 혹은 단독으로 조직, 미조직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행하기도 했으니, 현재의 전도사나 강도사의 직분에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조사라는 직분은 초창기의 장로교 헌법에 명시된 것이기는 하나 사실상 과도기라 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사 시대의 독특한 역할의 직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사된 분들의 신앙과 그 복음적 활동은 외부적 자격만 갖추지 못한 목사라고 할 수 있을 만치 깊고 훌륭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사로 활동하다가 목사된 분들이 많이 있다. 한국교회의 초대 목사들은 거의 다 조사 출신들이다.(서 경조, 한 석진, 송 인서등)

3. 그러나 한국장로교회의 조직이 구비되고, 한국교회가 선교사 중심에서 한국 목회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조사제도는 점차 쇠퇴하였고, 1930년도에 간행된 조선 장로교회 헌법에는 조사에 관한 사항이 없어졌다.
그러나 초창기 조사에 대한 존경적 視點(시점)을 갖고 있던 한국교회는 여전히 목사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목사에 준하는 일을 하던 분들을 존경하는 표시로 조사라고 불러왔다.

4.현재는 한국장로교 헌법에 조사라는 명칭은 없다. 조사에 해당하는 직분을 말한다면 傳道師(전도사), 혹은 講道師(강도사)가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실제로 과거 조사가 하던 일을 현재의 전도사, 강도사들이 하고 있고, 일반교회들은 전부 전도사, 혹은 강도사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조사라는 말은 극히 일부의 오래된 교인들이나 보수교단의 교회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다.

5.총 공회는 목사에 준하는 존경적 심정으로 지금도 대부분 전도사를 조사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사실 우리 총공회 조사님들 중에는 일반적 의미의 전도사들 보다는 강도사에 해당하는 분들과 그 이상의 인격과 자격을 갖춘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을 그냥 전도사로 부르자니 무엇인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본인은 이제는 조사라는 호칭은 止揚(지양)하고 전도사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서는 강도사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신앙행위의 여러 가지에 이르기 까지 독특한 것이 많이 있는 교단이다. 이 독특은 일부러 가지는 독특이 아니라 교리 신조상, 또 구원에의 유익상 어쩔 수 없이 가지는 독특이요, 또 그러한 독특이어야만 한다. 일반과의 이색은 그만큼 복음전파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리신조의 문제도 아니요, 구원의 유익을 위한 것도 아닌, 심정적 차원의 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를 고집할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총공회도 전도사를 전도사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조사라고 부르지 않으면 총공회가 아닌 것 같아 눈치를 보거나, 머뭇거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또 명칭의 의미를 놓고 보면 傳道師(전도사)라는 말의 의미가 助事(조사)라는 말의 의미보다 훨씬 더 좋게 보이는데,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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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사에 관하여 - 부족한 교인 ┼

│ (질문)

│ 총공회에서는 일반 진영에서는 전도사라고 하는 분을 조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이것도 총공회 교리 신조인지요?

│ 교리신조라면 어떠한 뜻이 있는지요? 궁금합니다. 만일 별 뜻이 없다면 굳이 다른교회와 달리 부를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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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2 15:49: 7
yilee [ E-mail ]

 

총공회의 '조사님'과 일반교회의 '전도사님'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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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가 말하는 보수노선은 '꼭 바꾸어야 할 필요가 없으면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다는 노선이라는 표현으로 답변을 요약합니다.

 

 

1.자료 출처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글의 내용도 방향도 표현도 부산공회(2)의 신앙노선입니다.

부산공회(2)는, 한국장로교 5개 분파 중에서 제일 중앙에 해당되는 합동측 교단의 입장과 같다고 보시면 거의 모든 것이 쉽게 파악될 수 있습니다. 한국장로교를 신앙노선으로 대별하면 좌향에서 우향까지 5개 노선이 있고 그 중 제일 좌측 끝 자리에는 성경까지 부인하는 기장측이 있으며, 제일 우측 끝 자리에는 고신도 타락했다고 정죄하고 나간 재건교회의 극우 노선이 있습니다.

양극단을 빼고 나면 고신 합동 통합 등 3개 교단이 있는데 통합교단은 기장측과 함께 좌측 방향으로 가고 있으나 그 속도가 기장측보다 좀 느린 편이고, 고신은 재건교회와 같이 우측에 서 있으나 교리와 정통성을 함께 가지고 출발했으므로 그 출발은 옳았습니다. 합동측은 좌우 양쪽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신학과 이론으로는 고신과 같은 보수 성향에 있으나 그 행동은 통합측을 뒤따라 좌측을 향하고 있는 교파입니다.

따라서 합동측에서는 보수교계가 말하는 성경제일이라는 말도 있고 칼빈주의라는 말도 있고 순교신앙이라는 말도 고신처럼 많이 하고 있는데 교세가 고신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보수 주도권은 고신이 아니라 합동측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동측의 행동은 항상 좌측을 향하여 전진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과 주장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자기들의 주장에 의하여 자기들의 모든 행동이 정죄되는 식인데, 어쨌든 교인들을 확보하고 교계의 주도권을 잡는 데는 가장 유익한 처신이라고 판단됩니다.

 

 

2.'조사님'이라는 표현 문제는, 누구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를 수 있는 사안입니다.

한국교회는 교리나 성경적 근거보다 한국에서 목회하는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필요하여 적용시킨 몇 가지 중요한 '조처'들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학습을 요구한 것이 그렇고, 술 담배를 죄라고 하도록까지 금한 것이 그렇고, 서리집사가 집사를 대신하게 된 것도 그러하며, 조사라는 제도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우선 이 주제는 이런 상식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가볍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주제로 보이지만 조금 들어가다 보면 출구를 찾기 힘든 교리서나 신앙노선의 깊은 곳으로 연결된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쯤 정리해 두고 넘어갈 문제로 보았습니다. 표현 하나에도 조심할 것이 있을 때는 이렇게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조사님'이라는 표현은 성경이나 교리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신앙노선의 분위기 문제입니다.

조사님이냐 전도사님이냐는 표현을 선택하는 문제는 신 김치가 좋은지 묵은 김치가 좋은지, 한식이 좋은지 양식이 좋은지, 한복이 좋은지 양복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교리문제도 아니고 성경으로 따지고 근거를 대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먼저 조사님이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조사님이라 했고 또 훗날에는 한 사람이 전도사님으로 부르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따라 하고 있는 식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다시 만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으며 고칠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이냐 '성서'냐, '설교'냐 '메세지'냐, '양복'이냐 '설교용 성의'냐, 예배당 '종탑이 하나짜리' 건축이냐 '두개짜리' 건축이냐 그런 문제입니다. 교회끼리 연합 활동을 하느냐, 소속 교단에서만 활동하느냐 타교단과 강단이나 강의교류를 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도 나라마다 교단마다 시대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문제입니다.

예배시간에 성경봉독을 한 다음 아멘이라고 온 교인이 함께 외치느냐 잠잠하느냐, 세례받는 분들에게 교인들 앞에 일어서서 공중고백을 하게 하느냐 이 순서를 생략하느냐, 교역자의 강단 옷이 검정양복이냐 아니면 콤비나 케쥬얼로 입을 수 있느냐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개역한글본으로 사용하느냐 표준새번역으로 사용하느냐는 문제도, 찬송가를 공회 201곡 찬송가로 하느냐 아니면 통일찬송가로 하느냐 또 교단 명칭을 예배당 외벽에 표시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도 전부가 같은 성향입니다.

이제 말씀드린 이런 문제들은 '심정적'으로 '취향적'으로 '느낌'으로 좌우되는 문제들이지 교리나 성경문제로 선을 그어 비판하거나 토론할 문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 교계의 상식이요 공통된 인식입니다. 위에서 둘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느냐는 문제로 예를 든 것 중에서 어떤 것은 표현 문제였고 어떤 것은 행동 문제였으며 어떤 것은 취향 문제였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도 서로가 상대방의 결정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대할 문제입니다. 모두들 복음 운동을 위해 어느 것이 더 유익하겠느냐고 고민했을 것이고 그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는 그 당시로는 그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을 변경했다면 그것도 더 좋은 이유가 있어 선택했을 것입니다.

'조사님'이라는 표현과 '전도사' 또는 '강도사'라는 표현도 자기 주관의 '심정적' 선택 문제이지 교리나 성경 해석 문제가 될 수는 없다는 부산공회(2)의 글은 일반 교계에 내놓아도 사회성이 있고 객관성이 있는 의견이며 이곳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계는 강도사를 목사후보생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추세이며 또한 주기도문의 내용도 번역의 정확성이 담보된다면 새로 자라나는 교인들의 발음에 익은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추세입니다. 이런 문제까지 폭넓게 생각한다면 조사님이라는 표현을 굳이 총공회가 고집하게 될 때 교계와 교류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부산공회(2)로서는 기독교 사회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표현은 아니라는 점을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라고 평가합니다.

물론 여러 표현 문제를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부산공회(2)의 입장은 그렇게 수용하지 않고 항상 과거 사용하던 표현에 집착하는 다른 공회가 있다면 그런 공회의 결정에 대하여도 '존경심'을 갖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넓은 이해력을 가졌을 것입니다.

 

 

②'부산공회(2)'처럼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공회의 입장은 항상 객관적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신앙 교리적 입장과 목회 현장적 필요성을 적절하게 안배하고 균형잡힌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에서는 부산공회(2)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일반 교계 속으로 너무 깊이 물이 들었고 서울공회는 세상 교회보다 더 심할 정도가 되었고 그렇다고 부산공회(1)의 일부는 과거 재건교회보다 더 심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부산공회(2)는 총공회 원래 신앙노선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목회 현장의 문제점은 사랑으로 포용하여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총공회 노선의 정통성을 주장할 정도로 과거 유력한 인물들이 집결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부산공회(2)의 진로는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목회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결정해도 되는 일에 대하여는, 앞에 예를 들었던 수많은 선택 사항을 심정적으로 또 존경심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수정해가며 발전할 것입니다.

이런 형태는 주로 장로교계에서는 통합측이 취하는 태도이지만 다행히 부산공회(2)는 그 홈에서 백목사님의 설교자료에 대하여는 해설도 제목을 다는 것도 내용 분류를 하는 것조차도 허용치 않고 엄격하게 백목사님 설교 내용 그대로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이곳은 부산공회(2)를 총공회 노선 내에서는 국내 보수교단을 대표하는 합동측의 노선과 역할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답변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대로 사거리에 나가서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본다면 부산공회(2)가 조사님에 대한 표현에 대하여 가지는 의견은 균형잡힌 신앙관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③객관성에 충실한 부산공회(2)에 비하여, 이제 이 홈의 주관적인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우선 부산공회(2)의 입장은 백영희신앙노선과는 확연하게 다른 주장입니다. 물론 '총공회 소속 교회들을' 총공회로 규정한다면 전도사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이 총공회 신앙노선으로 확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이 말하는 총공회란 백영희신앙노선 상에서만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지극히 작은 문제이지만 공회의 신앙방향이 좌우를 두고 어느쪽으로 나가게 되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그 내면에 존재하는 기존 성향을 살피는 데에는 충분한 사안입니다. 일단 부산공회(2)의 홈에서 발표된 이 글은 우선 한 개인의 발표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부산공회(2)의 근본 방향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따라서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이 문제를 몇 가지 면으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며 백영희신앙노선 상의 공회란 어떤 신앙 성향을 가졌으며 어떤 면에서 일반 교회와 확연하게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이 건은 정말로 아무 문제도 아닌 문제이지만 이 건에 대한 인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백두산 천지못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동해로 가느냐 서해로 가느냐는 문제로 이어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신과 총공회의 분립이 외부로는 정치 사건 때문이라고 포장되어 있었으나 내면으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과 대처를 두고 나뉘어왔습니다.

고신에서 분리되던 초기 공회와 고신의 모습은 꼭같았습니다. 심정적으로는 둘이었으나 신앙노선에서는 동일선에 있었습니다. 고신과 합동측의 분열도 그러했고 합동과 통합측의 분열도 그러했으며 심지어 총회와 기장측의 분립까지도 그러했습니다. 전혀 둘 사이에는 다를 것이 없고 단지 심정적으로 다를 수 있는 것이니 존경심으로 서로를 대하면 문제가 될 리가 없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내면에는 한 뱃속에 야곱과 에서가 딴 길을 향해 자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꼭 같아야 하는데 다를 이유가 없는데, 정밀 분석하면 둘은 하나로 갈 수 없는 두 신앙노선이었습니다.

 

 

3.'조사님'이라는 표현, 그 역사를 신학서적이 아니라 당시 목회 현장을 중심으로 찾아보겠습니다.

①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양성하고자 했던 '목사'는 높은 학문적 소양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부산공회(2)에서 '조사' 제도에 대한 한국교회사를 잠깐 소개했지만 이는 통합측 시각의 사전식 설명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발표용으로 요약된 설명이라는 뜻입니다.

조사 제도는 한국교회 초기, 목사 양성에 엄격하던 선교사들이 목사만 목회를 하는 것이 장로교의 법인데 당시 한국교회 수준으로는 목사 과정을 학문적으로 통과할 교인이 거의 없어 목사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목회를 하도록 임시 조처로 만든 제도입니다.

선교 초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주도하던 수많은 교인들이 거의 대부분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들은 선교사가 지도하는 대로 순종은 할 수 있고 헌신은 할 수 있지만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목사 자격에는 근접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생각하는 목사란 교회를 목회하는 목자로서 인품 도덕 교양 사명감 충성심 등을 두루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목사란 신학에 대한 학문적 체계가 완전히 잡혀야 교회를 지키고 다스리고 가르칠 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의 기본 인식은, 목사란 의사자격증이나 변호사자격증처럼 신앙면을 맡아 지도하는 최고 전문직이기 때문에 일반 대학의 다른 전공분야보다도 더 학문적 깊이와 노력이 있어야 하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의 손으로 비록 한국의 미개사회를 감안한다 해도 목사라는 이름을 붙일 때는 최소한의 과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각 교회 출석 교인들 중에서 교회 일에 헌신하는 이들은 그들의 순수한 신앙만은 목사가 되고도 남을 만하지만 신학을 전공시켜 목사로서 학문적 소양을 갖추게 하기에는 불가능하거나 기약없는 세월이 소요되겠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목사 수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가 기약없이 계속되겠다고 판단되던 선교 초기에 목사 자격증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목사 노릇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목회자들을 선발하여 교회를 맡기고 목회를 시키되, 장로교 헌법에 의하여 정식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목사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고 그렇다고 목사가 아닌 사람은 목회를 할 수도 없으므로, 목사의 목회를 돕는다는 의미로 '조사(도울 조:助, 목사 사:師)'라는 이름을 주어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사님이란, 한국교회에서 목사 자격증 없이 목회를 했던 실질적인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자격증을 받지 못한 것은 장로교 헌법의 형식 논리 때문이었고 그들이 목회자로서 실질적으로 가진 실력과 자격은 장로교 헌법에 의하여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목회하던 목사님들과 비교할 때 목사 자격증이 과연 필요한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장로교의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형식논리는, 그 목회자의 실력에 상관없이 목사가 되려면 헌법이 요구하는 신학 과정을 통과하여 헬라어 히브리어를 숙지해야 했고 또 교리체계와 이단대처와 교회 행정원리와 교인 상담 심리학과 설교문안을 작성하고 교인들을 감동시키도록 내용을 구성해야 하는 신학과정을 통과해야 하고 시험을 쳐서 인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②'목사'과정을 정식으로 거쳐 임명된 목사라야 교회를 목회할 수 있다고 본 시각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전도사나 강도사는 목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도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전도사와 강도사는 의대생들이 1-2년 늦고 빠른 차이만 있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되는 것처럼 목사가 되기 전 필수 과정으로 밟고 있는데 반하여 선교 초기 조사는 목사로 올라가기 전에 거치는 오늘의 전도사 개념이 아니고 목사가 될 여망은 없는데 목사처럼 목회를 해야 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총공회의 오늘 조사님들은 목사 되는 기간이 일반 교회들보다 늦어 그렇지 되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 일반 교회들이 말하는 전도사와 꼭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조사나 전도사는 교차 사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장로교의 헌법은 목사가 아닌 사람의 목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고 있으나 총공회는 조사님들이 목회를 하는데 목사가 아니어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바로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형식 논리상에서 '목사'라는 명칭을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라는 이름만 사용하지 않을 뿐, 개별 교회를 목회하는 데에는 조사와 목사의 차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사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환자를 진료 치료 수술하는 개념은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목사가 아닌 사람이 교회를 목회한다는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 장로교 헌법입니다. 전도사나 강도사처럼 목사가 아닌 사람은 목사의 지도하에 목사의 허락을 받고 목사의 수족이 되어 목사의 목회를 보조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정식 규정입니다. 마치 의사가 수술하는데 환자를 날라다 주는 사람도 있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술 환자의 팔다리를 꽉 잡아주는 사람도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들은 조수지 의사는 아닙니다. 만일 의사의 지시에 의하지 않고 조수가 진료나 치료나 수술을 했다면 그 순간 바로 의료법 위반입니다. 돌팔이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와 상관없이 교회를 다스리고 목회를 했다면 돌팔이 불법 비법 탈법 행위라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본 생각이며 이것이 미국교회의 기본 개념입니다.

조선시대 마지막 시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한편으로는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비록 적은 숫자의 교인과 교회들이었지만 그래도 교회가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 목사 자격증을 가진 선교사들로만 관할 교회 전부를 목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선교의 원칙상 한국교회는 한국교인들을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길러 언젠가 한국사회 내에서 스스로 자립하고 복음운동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목사들을 순식간에 만들 수는 없어도 일단 목회직을 맡을 교인들을 양육할 필요가 절실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현장의 필요성과 헌법의 엄격한 목사 자격 요건 사이에서 목사를 돕는 조사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장기간 전문교육을 특별히 받은 다음 의사나 변호사처럼 사회 최상위 그룹에 진입하여야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라는 증명을 목사라는 명칭으로 교단이 부여한다는 선교사들의 신앙노선은, 해방 후 한국교단의 경쟁과 분열 와중에 완전히 파묻히게 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백영희신앙노선은 선교사들이 생각하고 있던 이런 목사라는 이름의 목회직제도를 아주 다른 시각에서 비판하고 본질적으로 수정해야 할 노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학무식한 목동 다윗을 붙들고 이스라엘의 목사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사무엘도 반대고 전장의 모든 전투체제도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꿩잡는 매에게 꿩보다 작은데 어떻게 사냥꾼이 되겠냐고 사냥꾼 자격증 교부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봐야 하겠는가? 세상은 이런 저런 모순이 있어도 그렇게 대충 지나갈 수밖에 없지만 교회의 복음운동도 그렇게 해야겠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목회할 수 있는 십자가의 도는 목회직에서 배제되고 헬라인의 지혜는 시험을 쳐서 목회자 자격증을 가지게 하는 선교사들의 초기 한국교회 체제에서 백영희목사님은 그 제도에 불만이 많지만 죄되지 않으면 복음의 선배들의 지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조사제도를 따라 조사로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목사자격증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는 단호하게 아니라는 것이 백영희신앙노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총공회의 조사제도는 비록 그 이름과 제도가 선교 초기에 시작되었지만 백영희신앙노선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던 1960년 이후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③총공회는, 일반인들이 목사라고 호칭하는 것만 빼고 조사와 목사의 차이를 없애버렸습니다.

목사만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의미는, 목사에게는 목회에 관한 전권이 주어졌다는 말이고 조사는 목사의 지도와 지휘를 받아서 움직이는 수족에 그치게 됩니다. 총공회의 조사 제도는 장로교 일반 상식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한 뒤 목사라고 부르는 목사를 이름만의 목사로 상대합니다. 조사에 대한 일반 인식은 조수일만 하는 사람이지만 목사와 내용적으로 꼭같다는 것입니다.

목사든 조사든 하나님의 능력에 얼마나 붙들렸느냐는 것으로 목회자의 실력과 자격을 가지는 것이지 인간들이 어떤 제도와 어떤 시험을 쳐서 어떤 이름을 붙였느냐는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복음운동에 있어 목사직책이 가지는 대외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부 이용하는 면은 있고 또 안수 축도 성례 등에서만 목사직을 받은 후에 하도록 하고 그 외에는 어떤 면으로든지 제한을 하지 않고 조사님으로 하여금 목회직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총공회의 조사님은 이름과 안수 축도 성례 정도만 자제하고 있는 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④다시 한번 초기 한국교회 선교현장을 면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고신과 총공회는 그 교단의 출발 중심지를 경남지방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호주선교부가 단독으로 맡아 수고하던 곳이었습니다. 목사 배출의 어려움과 산재한 교회를 목회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던 초기 상황은 다른 곳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1890년경 호주선교부는 경남지방을 맡아 선교를 시작하게 되는데 경남지역 전체를 기준으로 1년에 교회가 1-2개 혹은 2-3개 개척되는 때도 있었고 많아야 10개 안팎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1910년에 이르러 선교 20여년을 수고한 끝에 경남지역을 통틀어 100여개 교회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시 경남지역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은 오늘날 부산 경남 지역입니다. 현재 시군구가 36개이니 현 기준 1개군을 기준으로 20년이 지나면서 세워진 교회는 평균 3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교부는 경남 전체를 한 곳에서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진주와 부산진으로 선교본부를 나누어 경남 서부지방은 진주선교부에서 그리고 동부지역은 부산진본부에서 맡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선교부를 본부로 삼아 경남의 절반지역을 순행하게 됩니다. 하나는 전도가 목적이고 또 하나는 목사라야 교회를 목회할 수 있는데 목사가 없는 상태로 교회가 유지되고 있으니 목사가 한번씩이라도 거쳐가면서 반드시 목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장로교 헌법 준수 차원이었습니다.

경남 지역 전체를 통해 제일 왼쪽 위에 있던 곳이 거창군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깊은 무주구천동 건너편 산골짝 개명에 교회가 하나 서고 여기서 수백리 떨어진 김해지방 어느 골짝에 교회 하나가 서는 정도로 교회는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거리로 느껴질 정도로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전화 우편 도로망이 전혀 연결되지 않아 산길에 나귀를 타고 며칠씩 가야 이제 막 5명 모인 교회 10명 모인 예배당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선교부의 선교사 목사님들은 순회판사와 같이 그 일을 하게 됩니다. 마치 순회판사가 지방법원에 본부를 두고 근무하면서 법원이 없는 시군에는 1주일에 한번씩 순회를 하면서 간단한 재판을 맡게 됩니다. 그 재판을 만일 판사가 아닌 마을 어른이 대신한다면 이를 용납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순회 판사가 현지 법원 직원에게 서류처리 등 판사의 업무를 대폭 경감시켜 순회 때 원할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일의 성격상 맡길 수 있는 것을 시키는 것은 하겠지만 판사의 고유업무를 일반 직원이 처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식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약해도 목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은데 각 교회에 목사를 목회자로 부임시킬 수는 없고 경남지방 교인들을 이제부터 길러서 목사로 임명하기까지는 사실상 세월을 기약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1909년에 개척된 거창읍교회는 1935년에 이르러 주남선목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데 주목사님 한 사람이 거창군 함양군 합천군 등 3개군 교회를 맡아 혼자 목사로 1951년까지 교회를 관할했고 이후 1960년에 이르기까지 거창군에는 교회가 수십개가 되고 거창읍교회는 수백명의 교회로 성장하게 되지만 역시 목사는 단 1명으로 유지됩니다.

거창군에 1960년까지도 목사가 단 1명 뿐이었다는 사실은 거창군 전체 교회 수십개 교회는 목회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목사만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를 맡고 있는 조사님들은 법적으로는 항상 목사님 한 분의 목회를 각 지역에서 나누어 수종드는 성격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지역에 단 1명이었지만 그래도 생활을 하면서 상주 목사님으로 계시는 것은 주남선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이전까지를 다시 돌이켜 올라간다면 호주선교부가 경남지역에 선교를 시작했던 1890년부터로 계산을 하면 약 70여년간을 목사님 한 분이 선교부에서 순회를 맡아 움직이든지 아니면 단 1명의 목사님이 1개군을 또는 3개군을 맡아 목회를 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선교부에 대하여 선교해 준 수고는 한없이 감사할 일이지만 교회라는 것을 목사 자격증을 통해 운영할 수 있다고 본 시각에 대하여는 대단히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은 각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성경은 같아도 그 말씀 중에서 어떤 말씀을 하나님께서 가장 시급하게 원하는지에 대하여는 각자가 다 다르다는 것을 개인양심자유라고 합니다. 교회 역시 각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 교회는 자기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개별적으로 순종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교회자유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교회운영의 기본노선으로 살핀다면 개교회자유주의라고 합니다. 개교회자유주의는 장로교에서도 그 초보적인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장로교 헌법 첫페이지에 항상 근본원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초기 한국교회는 목사 임명을 지극히 어렵게 했을 뿐 아니라 각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고 있는 조사들을 목사의 목회보조원으로만 취급하고 있었다는 것은 성경과 헌법 사이에 큰 빈틈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로 안수하는 것은 늦게 하고 까다롭게 할지라도 어느 한 교회를 실제로 맡아 목회를 한다면 그에게 목회자로서 전권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 성경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총공회 신앙노선의 조사에 대한 입장은 일반 교회와 미세하지만 분명한 시각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교회가 현재는 전도사로 통칭하고 있고 당시는 조사라는 직책으로 목사를 도왔는데, 이 조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적어도 장로교 법적으로 말하면 목사 한 사람 밑에 평생 조사로만 지낼 사람들이었고, 전도사라고 부르는 오늘은 모두들 다 목사가 될 것인데 목사가 되기 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총공회는 목사를 시켜 주지 않아서 조사로 있기는 있지만 이름을 빼고는 목사와 꼭같이 전권을 가지고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되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신앙노선으로 조사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총공회 조사는 목사와 같은 평생 서약을 하고 조사로 출발을 하여 왔습니다. 평생 주님 앞에 이 복음의 사역자로 교회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나서는 이 총공회의 조사직은 기간제 취직에 해당하는 임시직이 아니고 일반 교단의 헌법이 말하는 소위 항존직이라는 의미는 참으로 적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백목사님 사후 총공회의 첫 교역자 회가 있었던 1989년 9월 심각한 찬반토론을 한번 거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를 보던 목사님은 현재 부산공회(2)의 중심에 있는데 그분은 전도사는 장로교에서는 사람도 아니라고 발언하게 되고, 답변자는 총공회 조사는 일반교회 전도사와 달리 안수받지 않았다는 점 외에는 목사와 꼭같이 개교회의 전권을 가진 목회자라고 하였으며, 당시 대구공회라는 수정노선으로 방향을 잡고 있던 회원들은 사회자의 말을 지지하면서 조사라는 것은 장로교 헌법에 임시이고 목사와 장로는 항존직이라고 하여 격론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권은 수정노선에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발언 때문에 치리까지 하겠다고 절차를 밟다가 이곳에서 제시한 다른 자료 때문에 황급하게 취소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답변자가 조사로 있었기 때문에 자기 이권확보를 위해 발언한다고 오해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답변자가 목사 안수를 받은지 13년을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오해는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총공회 조사는 비록 우리 스스로 전도사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는 조사는 조사라고 해야 할 이유가 있고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직과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를 두고 총공회는 일반 교회와 분명히 다른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총공회의 주일학교 반사는 일반교회 주일학교의 교사들과는 그냥 같다고 말하기에는 그 성격과 임무 그 모습이 너무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⑤총공회는 조사라는 이름을 백영희'조사'의 조사로서 활동했던 모습에서 크게 참고하고 있습니다.

총공회가 아직도 전도사님들을 조사님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역사적인 사안들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의 평생 걸음을 고난과 박해의 걸음이었는데 그의 반평생은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이 너무 많았습니다. 현재 그런 사실은 거의 잊혀지거나 묻혀 있지만 조사라는 명칭 문제를 두고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이 대목을 빼놓을 수는 없을 정도입니다.

백목사님은 1939년 집사로서 개명교회를 개척하고 바로 신사참배 환란을 겪게 되고 1945년 해방을 맞고 1948년 조사님 인허를 받게 됩니다. 1952년 서부교회로 부임하고 1959년 고신에서 제명이 되며 1960년경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당시 1939년에서 1959년까지 목사가 아니면서 목회를 해야 했던 만 20여년의 세월 중에서 백목사님은 단 5년만 주남선목사님에 의하여 백목사님이 원하던 조사가 목회하는 일에 지장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외의 기간은 신사참배를 독촉하는 목사님 밑에서 6년, 백목사님의 목회자관이 틀렸다고 제재하는 고신지도부의 박해가 9년이었습니다. 거창에서 목회하던 14년은 인근 지역 3개군을 통해 목사가 단 1명이었기 때문에 목회선상에서 지휘권을 가지는 목사가 신앙노선을 달리하는 경우는 외부와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내부 투쟁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목사님의 성경적 신앙노선에 의하여 장로교의 목사직에 대한 근본 시각을 달리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됩니다. 즉, 경남지역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덕유산 무주구천동 뒷자락에 겨우 매달려 연명하고 있는 개명동리에 술도가 사장이 예수를 믿고 자기 동네에 개척을 하게 되는데 그 개척하던 해에 신사참배 탄압이 본격화되고 그는 집사로서 교인들을 전도하고 신사참배 환란을 전부 다 승리시키고 해방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신사참배 6년 투쟁 중에서 개명교회의 목사는 교단헌법에 의하면 거창읍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일본의 전시 국민복을 입고 각반을 차고 설교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개명교회 목회의 지휘권을 가진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앞장서는 친일파인데 그에게 지휘를 받아 보조역할만을 해야 하는 조사직의 목회자는 누구와 먼저 싸워 이겨야 하는냐는 문제입니다.

어쨌든 당시 한국내 장로교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회법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 법에 의하면 백목사님은 집사로 신사참배를 투쟁하고 있는 모든 과정이 담임목사의 명령을 벗어나 탈법 불법이었습니다. 목사를 벗어나서 집사나 조사가 목회를 하면 돌팔이 의료 행위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교회법은 목사과정을 밟고 안수를 받은 목사에 의하여 당시 백집사님은 개명교회 사무 보조원 노릇만 해야 했습니다. 3개 군을 다 합해서 주남선목사님 1명만 목사였기 때문에 교회의 지휘를 다른 목사님에게로 옮겨 받을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일단 교회법에 불법행위를 하고 탈법을 일삼고 비법 행위가 자행되면 사이비 종교인이라고 세상이 떠들어도 할 말도 없습니다. 물론 신사참배는 한국교회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당시 행동은 지휘선상의 목사를 벗어나서 행동한 것도 옳다고 한다면, 해방 후로 연장시켜 그 문제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남선목사님이 1951년에 사망하고 백조사님은 빨치산 1년 치하에서 매일 사선을 넘고 있는데 백조사님이 목회를 하던 거창군 위천교회는 주목사님 후임인 남영환목사님만이 정식 목회자로서 백조사님을 조수로 지시하여 위천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게 하는 장로교법이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백조사님은 사지에서 순교 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아군에 의하여 완전 수복된 거창읍에 있는 남목사님은 위천교회에 대하여 전권을 가지고 있는 형태였습니다. 잘 아다시피 남목사님은 장로교 헌법에 의한 권리 행사와 절차를 평생에 신앙 제일 원칙으로 삼고 성경과 같은 차원에서 대하던 분이고 백조사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선택 문제가 있으면 자기가 깨닫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분입니다.

특히 남목사님은 주목사님 생전부터 백조사님을 모든 면에서 반대하고 있었는데 주목사님을 대신하여 거창지방 교회를 목사 직책으로 지휘를 하게 되자 사사건건 백조사님을 간섭하고 들었습니다. 물론 백조사님이 인간 관계에서는 극진하게 윗사람으로 대했으나 신앙문제에 깨닫는 바가 다를 때는 가차없이 남목사님의 지시를 거부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남목사님은 백조사님이 1952년 7월 서부교회로 이동하는 것 자체도 고신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서 적극 반대하게 되고 이후 평생을 백조사님 반대 역에 선봉을 서게 됩니다.

1952년 서부교회에 부임하게 되자 이제는 주변 교회 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서부교회 백영희조사님을 조수로 사용하여 목사직으로 서부교회를 목회하게 됩니다. 백조사님의 서부교회 목회를 옆에 교회 목사님이 목사 자격증 때문에 개입하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서부교회에 부임한 백조사님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서슴없이 앞을 향해 내달렸고 부산 지방의 유력한 교인들이 서부교회로 모여드는데 그들이 있던 교회 담임은 목사님들이었고 그분들이 서부교회 백조사님의 목회를 지휘하는 목사님들이었기 때문에 서부교회 목회를 하나님 앞에 책임진 백조사님과 고신헌법에 의하여 서부교회 백조사님을 보조로 생각하고 서부교회를 목회하려는 헌법적 권한에 의한 고신 수뇌부 목사님들과의 투쟁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기들 교회 주동 교인들이 서부교회식으로 믿어야 옳다고 갔으니 괴씸죄에 걸렸고 자기들은 목사자격증 때문에 서부교회 목회의 지휘권이 있으니 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장로교 헌법에 따라 지휘 하에 있는 조사님 교회를 탄압하려면 독안에 든 쥐를 다룰 정도였습니다. 이래서 나온 문제가 백조사는 가정을 다스려라, 교인들 중에서 여반은 만나지 마라, 서울로 이동해라는 목조르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상부 명령 불복종으로 제거한 것이 1959년입니다.

백목사님은 자신이 직접 조사로서 거쳐왔던 1959년까지 고신의 현장 경험에서 목사직에 대한 근본 개념을 전혀 달리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 앞에는 신사참배 문제 때도 그러했습니다. 총공회의 3대 행정노선을 비롯하여 모든 행정 세칙들은 백목사님의 개인 경험은 물론 백목사님의 특별한 성경 깨달음 상황분석 및 절묘한 조처가 잘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글이 '조사님'에 대한 명칭 문제인데 그 명칭에 대한 역사적 소개를 질문 내용 중 부산공회(2)측에서 통합측 노선에 있는 백과사전적 시각을 그대로 적고 있기 때문에 일단 그 역사적 시각에서부터 공회 역사에서 보는 면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 흐름을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명칭이 단순한 존경심이나 심정적 의미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신앙노선의 의미까지 덧붙일 것인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⑥물론 어느 한 사람의 경력과 경우를 가지고 일반화 법제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비록 이 신앙노선에 있어 의미가 크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개인적 형편을 가지고 다른 교회와 교역자들이 외형을 같게 맞추어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로가 다른 형편에서 다른 신앙걸음을 걸어왔을지라도 그 적용되는 원리가 있으니 이 원리를 신앙노선이라고 한다면, 백목사님이 목사가 아닌 상태에서 목회를 했을 때 목사자격증 때문에 당한 고난과 모순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꼭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조사가 목회자로 있는 교회는 목사를 목회자로 삼고 조사는 그 밑에 보조원이 되어야 한다는 원리는 개교회자유주의라는 의미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개인별로 교회에게는 각 교회별로 하나님께서는 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자기 신앙과 그 교회의 신앙은 개인과 개교회가 결정해야 하고 주변 교회는 위하여 기도하고 협조하며 권면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이 교회운영원칙의 근본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신앙노선적 입장에서 살핀다면 백목사님이 겪었던 과정은 어느 교회 어느 교역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니 이는 신앙노선의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일반 장로교의 헌법처럼 학문적 과정을 습득한 사람이라야 교회를 다스리고 교인들을 지도하며 목회자로서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집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면 그런 과정은 목회자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런 학습의 기회가 목회자에게 큰 손해가 될 수 있는 단점이기도 하다고 해야 하겠는가? 현재 장로교 교단의 교회 운영체제는 목사를 그런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오늘 한국교회의 부패와 실패의 원인을 목사로부터 거의 다 찾아야 할 시점에 있다고 보는 것이 공회의 시각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의 동기나 목적은 좋았다고 보았으나 그들이 전도하고 있던 한국교회는 헬라어 히브리어에 상식이 없는 사람들은 죽자 살자 성경을 믿고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기초가 튼튼하여 원어를 잘 아는 이들은 후에 대부분 한국교회에다 성경 부인 이론을 소개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이 개척하고 길렀던 그 한국교회는 목사에 해당될 수 있는 남자 교인들의 성향이 특별했고 교회 운영에 대한 여러 면이 다른 문화권과 특별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도 놓치고 있었습니다. 즉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 것은 교회의 헌법까지를 포함하여 한 순간 한 사건에는 적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이 바뀌면 오히려 교회법이 들어서 교회의 복음운동을 가로막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기준에 맞는 학문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을 목사로 세우려고 했던 선교 초기 시대, 목사될 사람이 없자 목사가 되고도 남을 사람들을 조사라는 이름만을 주고 한국교회를 운영하려 했던 선교사들의 시각은 사실 그들의 시각이라기 보다 당시 세계 장로교 교회들의 시각이었습니다. 법치국가에 대한 매력을 알고 있었던 선진국의 사람들이었으므로 민주주의는 절차의 투명성과 엄격한 집행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신념이 있었고 이런 서구 체질과 인식이 한국교회에 그대로 적용된 과정에서 조사라는 필연적으로 생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회용품으로 비치했던 것이 조사였는데, 백영희신앙노선은 이 조사제도를 일회용품으로 폐기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를 지키고 있어 조사의 역사를 100여년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목사가 되려면 머리가 좋아야 했고 학문에 소질이 있는 양반 명문가 계통이라야 가능했습니다. 물론 상민 출신 중에도 숨겨진 가능성이 있어 발군의 실력으로 빛을 본 사람이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한글조차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장로교 교회 내에서는 집사도 서리집사정도로 그치고 예배당의 마당 머슴 정도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믿고 살았던 이들이 배추달 변판원 선생들이었고 이런 수준의 시골 무지한 사람들이 산골마다 숨어 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선교사들의 시각에 목사감으로 보일 정도로 신사며 학자적 인품을 가진 이들은 거의 한국교계를 토막내고 교권단체로 만드는 원인자들로 양성되고 있었음을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강하게 지적하는 편입니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지만, 오늘도 한국교회가 목사를 학적으로 만드는데 정신이 없으나 진정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라는 것은 복잡한 신학 대신 단순한 성경을 붙드는 사람 중에서 나오고, 교계의 실력자들과 활동하며 모임을 갖는 것보다는 산속에서 숨어 기도하는 사람 중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언어까지 급격하게 현대화 되어 온 그동안 과정에서 '조사'라는 이름은 그 이름조차도 너무 촌스럽고 고리타분하다고 역겨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조사'라는 그 이름이 점점 더 고물이 되어갈수록 그 속에 교회가 깨끗했던 시절, 선교 초기의 선배들이 고난 속에 목회하던 그 어려운 시절, 목사라는 큰 벼슬을 평생 해 볼 수 없는 못난 사람으로 맡은 한 강단에 충복이 되어 기도하던 그때의 모습을 더 잘 떠올리는 표현이라고 보고 이 이름을 아끼고 있습니다.

 

 

⑦어쨌든 오늘 교계는 조사가 아니라 '전도사'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조사님으로 불리던 시절은 목사님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당시 목사 자격증을 받게 되면 요즘 사시합격이나 의대합격하는 정도로 그 권위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교계가 해방 후 분열과 경쟁의 시대로 접어 들면서 목사 안수를 양산하기 시작하게 되자 조사라는 의미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10년은 1951년 고신과 총회, 1954년은 기장과 총회, 1959년은 총회 내에서 합동과 통합이 각각 분리하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장로교 단일 교단이 4개 교단으로 나뉜 것은 노선 문제인데, 일단 1개교단이 4개교단까지 나뉘어지고 나니까 처음에는 교단 깨는 것이 예수님의 몸을 절반 찢는 아픔과 두려움을 가지던 교계가 이제는 뜨는 사업체 하나 만들듯이 서로가 교단을 만들게 되고 오늘은 몇 백개가 되는지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교단 분열은 목사 양산으로 바로 이어지게 됩니다. 처음 장로교 하나가 대교단으로 유지될 때는 총회의 권위도 있었고 총회 직영의 신학교 권위도 함께 유지되었으므로 목사 과정은 그 추천, 심사, 학과 과정, 졸업, 안수에 이르기까지 권위있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총회가 2분 4분 8분으로 나뉘어지니까 총회도 신학교도 자연스럽게 급조 난립되고 교단 분열로 인한 응급 상황 논리 때문에 신학교의 신학과정의 일부 폐지 중지 통합이 계속되면서 엄격하게 관리되던 학사 행정의 일정이나 적용이 대충 처리하는 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더구나 생사를 걸고 투쟁을 했던 교단끼리는 교세 선전을 위해 목사 숫자가 필요하게 되면서 일제 때 운영되던 해방 전 신학교 과정보다 해방 후 신학과정이 현저하게 느슨하게 됩니다. 특히 1960년대 신학과정은 양산체제가 됩니다.

1개 군에 1명 밖에 없던 상태로 70여년간 계속된 목사 안수과정의 엄격한 관리가 일시에 무너지면서 1960년대 한국교회는 목사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동시에 목사 과정을 밟고 있는 신학생들이 대거 전도사라는 직책을 가지면서 과거 목사가 되기 어렵던 사람들이 가지던 조사라는 직책을 대신하게 됩니다.

여기서 조사와 전도사라는 명칭은 단순하게 새시대에 따라 이름만 바꾸어 본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조사라고 불리던 한국교회 선교 초기사의 조사님들은 그들의 수준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자격증을 받는다는 것은 학문적 접근이 불가능하여 목사는 원래부터 될 수 없고 그러나 목회 은혜는 받았기 때문에 조사님으로 평생 목회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조사님 중에 일부는 신학과정을 꾸준하게 밟아 목사가 될 사람인데 목사가 되기 이전 조사직을 임시 거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전도사라는 이름이 조사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1960년대부터는 학문적 실력을 갖추지 못해 목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없는 시대가 되었고 목회를 준비하는 모든 분들이 시간 문제이지 목사가 될 것인데 그 중간 과정에서 전도사로 교회 행정을 보든 부목을 하든 목사님 없는 교회를 단독 목회하든 여러 형태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조사'라는 직책은 전도사로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폐지되었고 다만 전도사라는 직책은 과거 조사직과 비슷해 보이는데 실은 다른 차원에서 신설된 것입니다.

 

 

⑧총공회의 '조사님'

우선 일반 교회가 전도사님으로 그 명칭을 바꾸어 부른 세월은 이미 40여년 전입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조사님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아듣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회는 조사님이라는 표현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교단처럼 조사님 제도를 목사 숫자가 부족하던 시절 일시 운영했던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이 조사님으로 걸어왔던 걸음, 즉 안수를 받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축도나 성례나 안수만을 하지 않는 정도로 목사와 구별하되 실제 교회 목회자로서는 목사와 꼭같은 교역자였던 것이 공회의 조사 제도입니다. 장로교가 목사직에 대하여 너무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님은 목사가 아님을 표시하기 위해 이렇게 몇 가지를 조심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따라서 꼭같은 교역자인데 안수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것 외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 공회의 조사님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의 '조사님'은 일반 교회가 말하는 '전도사님'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들처럼 조사님들도 자기 목회하는 교회에서 목회자가 가지는 전권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입에 익어 있는 조사님입니다. 만일 조사님을 이런 의미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호칭만을 전도사님이라고 부른다면 동의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일반 교회의 전도사와 공회의 전도사의 차이가 수없이 설명되어져야 하는 불편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회에서는 공회 소속 전도사님을 조사님이라고 부르고 일반 교회 전도사님은 그냥 전도사님으로 부르게 되면 좋을 듯 합니다.

 

 

4.전도사로 개칭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면이 있습니다.

①백영희신앙노선은 꼭 필요하여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바꾸지 않는 보수의 원칙이 있습니다.

바꾸어도 되고 바꾸지 않아도 되면 공회는 바꾸지 않습니다. 바꾸어서 크게 유익되는 것이 아니면 역시 바꾸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꾸어도 되고 안 바꾸어도 되는 것을 바꾸게 되면 나중에는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바꾸는 데로 나가는 인간의 타락 본능이 나오게 될 것이고 보수하는 운동이 전반적으로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회가 사용하는 통일찬송가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도 통일찬송가의 가사가 잘못 바꾸었기 때문에 따를 수 없는 것도 있었으나 그 수는 얼마되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은 바꾸거나 말거나 차이가 없는 것을 바꾼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공회는 통일찬송가를 거부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조사로 불러 불편할 것이 전혀 없을 것이고 혹 타교단 분들과 대화를 할 때는 그들의 언어로 통역을 하여 의사소통을 원할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혹 필요하면 전도사로 번역하여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조사라는 표현이 이상해서 물어보게 되면 공회의 목사자격증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세군 성공회 감리교 등 교단에 따라 현대 교회들은 자신들의 신앙성향에 맞는 직책과 제도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책의 이름도 갈수록 분화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현재는 통일된 것이 없어지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 통합교단에는 여자 목사 여자 장로가 들어섰고 성결교에서는 남자 권사가 있으며 침례교에는 장로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지금은 도입 추진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변화무쌍한 교계 내에서 우리는 과거 것을 그 표현 하나도 될 수 있으면 바꾸지 않는 쪽인데 다행히 다른 곳들이 계속 변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함께 변화를 하려 해도 이제는 통일된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과거 해내려오던 것을 그대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심정적 의미도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사님이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공회는 다를 수 밖에 없어서 다른 점이 있을 때는 자랑스럽게 표시를 하면 했지 부끄럽게 숨기는 신앙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교만이나 자부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물 앞에 다 드러날 때를 생각하고 첫하기 때문에 옳다고 깨닫고 결정한 것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사님이라는 표현 역시 우리가 외부 다른 교단에게 우리는 원래 신앙의 근본 자세와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총공회는 일반 교회들과 다른 점들이 많은데 일반 교회와 무리해 가면서 같아지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의 장점을 오히려 부끄러워하도록 만드는 이상한 행동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총공회라는 간판이 그러했고 찬송가를 독자적으로 가진 문제도 그러했습니다. 이런 사안은 사실 일간지 1면 광고를 통해 마음껏 선전하고 자랑할 내용이었습니다. 하늘의 복이 감소되고 다른 형제들의 못난 점이 너무 부각될까 해서 참았던 것입니다. 조사님 제도는 공회의 신앙노선에서 가진 장점인데 그 표현도 자연스럽게 일반교회와 다른 것처럼 표시가 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교계가 변덕을 부려 바꾸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더욱 더 그 표현조차 바꿀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총공회가 교계와 같은 기독교이므로 한 몸에 다른 지체들이니 서로가 각자 가질 다양성이 있을 것입니다. 위치가 다르고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야 하는데도 같으려고 노력한다면 그런 인식은 인식 자체에 큰 문제점이 있다고 이곳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②만일 조사를 전도사로 바꾼다면, 다른 이름들도 앞으로 바뀔 때마다 계속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조사와 전도사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교회사에서 전혀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존재했던 것이며 그 의미도 조금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면도 있기 때문에 꼭 바꾸려면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일반 교계와 표현을 통일하려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은 따라 가려고 한다면 주일학교는 교회학교, 교사는 반사, 강도사는 목사후보생이나 기타 다른 표현 등으로 바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마 한번 교계의 변덕에 발을 딛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공회 스스로 자제하고 싶어도 통제할 수 없이 자동적으로 함께 변해나가는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외부 표현 하나가 단초되어 본질적인 면까지 반드시 문제가 될 것입니다.

 

 

③참고로, 권찰 당회 구역 전도회 등의 표현들도 폭넓게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현재 토론을 하고 있는 주제는 '조사님'이라는 호칭을 '전도사님'으로 변경하여 사용하자는 것 하나지만, 우리는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많고 또 같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굳이 표현을 달리하여 외부로부터 대단히 오해를 많이 받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공회에서 사용하는 권찰의 의미는 일반 교회의 의미와 다른 점이 있음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권찰은 일반 교회에서는 집사가 될 수 없는 분에게 권찰이라는 직책을 붙여 교회 일에 충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구역장을 권찰로 구역장을 돕는 보조 권찰을 지권찰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지권찰이 일반 교회로 말하면 권찰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당회라는 표현도 담임목회자라는 의미로 혼재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최고 통치기관이라는 의미로 일반 장로교에서 사용하는 당회는 우리가 공회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노선적으로는 구별하고 있지만 과거 습관에 따라 당회라는 표현도 한번씩 사용하듯이 전도사라는 말도 한번씩 사용할 때는 있습니다만 전면적으로 교체하고 나설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 모든 교회들이 중고등부 또는 학생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중간반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도 촌스럽다고 바꿔 부르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중고등부나 학생회가 아니라 분명히 '중간반'입니다. 이 의미도 조사님이라는 표현에 담긴 것만큼 그 역사와 의미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성가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찬양대라고 합니다. 헌금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연보라고 하며, 신학교라고 하는데 우리는 목회자양성원이라고 이름을 따로 쓰고 있습니다. 부흥회 대신 집회, 성전 대신 예배당입니다. 하나씩 손을 꼽아 헤아리려고 하다 보면 총공회는 일반 교회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반 교회와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많은데 이렇게 다른 것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80세까지 은퇴도 하지 않고 이런 단어 표현 하나까지를 백목사님이 한 손에 움켜쥐고 있었으니 숨이 콱콱 막혀 교회를 다니지 못하겠다고 열을 받는 분들을 더러 만납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다르게 된 것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일반 교회들이 다 함께 가지고 있었고 사용했던 것인데 일반 교회들이 너무 타락을 하고 변질이 되었기 때문에 변하고 있지 않은 교회가 마치 이상한 교회처럼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반 교회가 꼭 바꾸어야 좋은 것은 바꾸지 않고 있으므로 오해를 무릅쓰고 꼭 옳고 필요한 것은 누구 눈치를 보지 않고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총공회 신앙노선은 진정한 개혁교단이며 진정한 보수교단입니다. 잡은 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를 말하는 일반 교회의 보수와는 전혀 다른 보수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무조건 뜯어고치고 싶어 하나님도 바꾸자고 나서는 그런 멸망받을 수정노선이 아니라 꼭 고쳐야 할 것은 반드시 고쳐나온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이니 공회노선은 진정한 개혁노선입니다.

고쳐서 옳다고 깨달으면 즉시 고치고, 고쳐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무어라고 하든지 총공회는 보수 유지하는 것입니다.

 

 

6.결론적으로, 조사님을 전도사님으로 바꾸어 부르자는 문제는.

크게 본다면 교리문제도 아니고 성경해석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또 조처할 수 있는 지극히 하찮은 사안입니다. 그러나 조사님이라는 표현에는 공회적 '목사관'이 역사적으로 스며있기 때문에 일반 교회의 전도사 호칭과 무조건 교체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전도사로 개칭하면서 공회 전도사의 의미는 일반 교회 전도사와 전혀 달리 목사와 꼭같이 목회자라고 알고 있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 실체가 다른데 표현이 같으면 궁극적으로는 더욱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의미에 변화가 있다 해서 표현 자체를 무조건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잘 사용하고 있는 조사님이라는 표현은 그 의미까지 분명히 역사적 의미와 목회자에 대한 범위문제 등으로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노력을 하든지 최소한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특히 공회의 보수원칙이 전형적으로 적용될 사안으로 보이고 만일 이 표현 하나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해도 그럴 경우 꼭같은 차원에서 바꾸어야 할 표현들은 적지 않을 것이고 이후 통제되지 않을 상황이 너무 환하게 예견됨으로 하나의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의미로 듣고 그냥 넘어갈 문제로 보았습니다.

 


003-04-05 08:10:16
테레사 [ E-mail ]

 

시대적인 언어가 좋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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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있었던 '조사' 명칭에 대한 내용이므로 글의 위치를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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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5 Article Number : 1750 테레사 (yeonc@aok.com) Lines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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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작은 문제가지고 시간낭비하시렵니까?

시대가 변하고 언어가 바뀌어 왔습니다.
언어나 명칭은 일반 사람들에게 이해와 통용이 잘되는 것으로 변화하여 왔습니다.

이시대에 맞도록 현제의 통용상에 맞도록 쓰여져야 함니다.

조사란? 제가 아직 어린시절에 들어본 말입니다.
전도사란 말도 너무일반적이고 세속한 품은 좋은 의미와 뜻을 흐리고 있는것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좋은 언어 실용적이고 품이있는 말은 다 뽑아서 자칭으로 쓰고 있는 이시대에 기독교 언어도 뒤떨어져서는 아니됩니다.

얼마든지 좋은 존칭을 골라 내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쓰여져야 된다고 생각함니다.

뒤떨어진 구시대의 언어를 주장하고 고집할게 무엇입니까.

가장 고상하고 존귀한 언어를 구상하고 기독교가 먼저 발전해 나가야 함니다.
조사란 너무 뒤떨어지던 시대에 쓰인 말입니다.

지금도 전도사라는 명칭도 너무세인들이 흔하게 사용하고 있어 천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교회에서 사명자들에게 쓰이든 말이 이제 일반화되면서 의미를 상실한 언어가 된것 같습니다.

 


2004-03-12 19:05:13
yilee [ E-mail ]

 

일반교계 자료 인용

 

 

합동측 기관지에 올려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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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재文巢齋에서 - 신세원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91)

조사

초기 한국 장로 교회의 직분 중 하나로 ‘조사제도’란 것이 있었다.

영어로는 ‘helper’라고 하고 한자로는 조사(助師)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 역할은 ‘조사(助事)’였다. 한국인 목사가 대거 양성되기 전 선교사들을 도와 교역일선에서 직분을 맡아 수행했던 이들을 뜻한다. 즉 정식 신학교육을 마치지는 않았지만 선교사의 전도, 치리, 순회심방 등의 일체 활동을 보좌하고 혹은 그 단독으로 조직, 미조직교회에서의 목회활동을 도모하기도 했다. 현재의 전도사나 강도사가 수행하는 직분과 상통하다고 볼 수 있으나 초기 교회의 과도기적인 교직 또는 선교사 중심시기의 독특한 역할이었다.

한편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조직과 함께 조사의 피택도 규칙 규정에 넣어 노회에서 정할 일로 규정하였다(1912년 제1회 총회록 33쪽). 한국 장로교 최초의 조사는 스코틀랜드 장로회 로스(J.Ross)선교사와 협력, 성경번역에 동참하고 이후 매서인(賣書人)으로 국내에 들어와 전도와 교회설립에 공을 세운 서상륜(徐相崙), 백홍준(白弘俊)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초대 목사인 서경조, 한석진, 송인서, 방기창 등이 모두 조사로서 크게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의 조직이 강화되고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이 확립된 후 조사제도는 점차 쇠퇴하여 1930년대 간행된 ‘조선예수교 장로회 헌법 교회직원란’을 보면 조사에 대한 사항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김희돈 기자 등록일 2004-03-03

 


2003-04-05 08:24:21
yilee [ E-mail ]

 

세상에 앞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순수한 뜻은 잘 알겠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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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게 지지 말고 세상을 이겨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어떻게 해야 교회가 세상 속에서 좀 더 힘있게 복음운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열정을 담은 글로 읽었습니다.

비록 답변자와 방법은 달라도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아끼며 세상에서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면에서는 서로가 같은 생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같은 목적을 향하여 가는데 다만 방법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장로교나 침례교는 함께 복음 운동을 하는 교회들인데 그 방법과 강조하는 바가 조금씩 다른 정도입니다. 이렇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때는, 우선 서로가 주장하는 바를 충분히 설명한 다음, 세월 속에서 서로가 주장한 것이 실제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살펴볼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첫 글에서 답변가 설명해야 할 내용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올려 주신 반론 역시 잘 읽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을 두고 비교하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도 위에 있는 두 주장을 놓고 차분하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시대에 따라 교회의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언어가 교통정체가 된 것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교회나 교단마다 신앙으로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너무 나이가 많아서, 자기들 취향에 따라 될 수 있으면 언어 표현을 이전 것으로 고수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이곳은 약간 다른 시각에서 이전 것을 고수하자는 주장이지만 혹 반론측에서 다른 분들과 이유가 같다고 하면 사실 할 말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반론을 통해 교회가 사용하는 언어나 명칭 문제에 대하여 연구할 과제를 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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