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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여자친구와 신앙문제로 싸우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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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668
작성일
2022.05.11

2003-03-28 02:31:23
궁금이

 

[결혼] 여자친구와 신앙문제로 싸우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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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제 여자친구는 자주는 아니지만 싸우게 되면 항상 비슷한 구도로 진행되고 끝이 납니다.(주로 제가 여자친구의 잘못을 지적할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가 너무 사소한것에 꼬투리를 잡는건지 아니면 여자친구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지...

저희들의 대화를 보시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마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여자친구가 겁이 많은 편이라 밤길을 혼자 걸어다니질 못하고, 밤에는 집 근처 슈퍼에도 가질 못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친한사람 외에는 사람을 무서워하기도 합니다.(심한정도는 아니고 제기준에서 봤을때 느낀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쳐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 "너 겁많고 두려워하는거 고치도록 노력해야 겠다..쉽게 되는건 아니지만 그대로 놔두는것도 엄밀히 따지면 죄가 될수도 있거든..."

- "그게 왜 죄가 돼?"

- "왜냐면 성경 말씀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매사에 두려워하는건 불순종의 죄에 포함되지 않을까?"

- "그래도 무서운걸 어떻해?"

- "그러니까 고치도록 노력하고 담대할 수 있도록 기도 해야지..."

- "그럼 내가 밤길 무서워 하는게 죄라는 말이야...?"

- "꼭 그자체가 죄라는 말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것이 결국은 죄앞에서 무릎꿇게 하는 역할을 할수 있으니까 미리 고치고 담대하도록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 "난 잘 모르겠어..."

- "......"

- "......"

- "지금 내가 너 잘못했다고 그러는게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 해보자는 얘긴데...니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것 같아서 좀 그러네..."

- "모르겠어...다른 얘기하자..."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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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끝에는 모르겠다 그러고 이런 이야기 하기 싫다고 합니다.
저는 조그만 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 해 보고 고칠건 고치자는 이야기인데...여자친구는 이런식의 대화를 힘들어 하는것 같습니다.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닌 여자친구가 이렇게 나올땐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일이 자주 있으니까 점점 대화하기가 싫어지는데 어떻하면 좋을까요...?

 

 


2003-03-28 12:37:15
yilee [ E-mail ]

 

질문자의 경우를 하나의 예로 삼아,믿는 부부들의 갈등과 대화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결혼-]


 

 

1.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는 분들은, 이곳에서 부부차원으로 대하고 있음을 먼저 이해하셨으면

 

부부로 호적에 올리지 않았고 또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이곳은 남녀 두 분이 실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한다면 호적이나 결혼식과 같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실질적인 부부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이성 친구로만 사귀는 분들께는 대단히 실례가 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부부로 상대하고 표현하는 것은 앞으로 두 분이 꼭 맺어지시라는 좋은 뜻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성경은 이성 관계의 친구는 친구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답변자가 두 분 사이를 부부로 상대하는 것은 두 분의 관계가 비록 7계명에 문제가 되는 연애지만, 차라리 호적이나 결혼식과 같은 형식적 부부는 아니더라도 내용상으로는 실질적인 부부이니 부부로 상대해 드리는 것이 두 분의 앞날에 도움이 되겠다는 뜻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연애하다가 싫어서 헤어지면 보통 그냥 친구 관계를 끝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곳에서는 이혼으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만난 것도 죄지만 헤어진 것은 더 큰 죄가 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아주 쉽습니다. 최대한 빨리 결혼을 해 버리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2.상대방을 대할 때, 특히 가까운 친구나 가족 또는 부부인 경우 이런 점을 주의하셨으면 합니다.

 

①하나님도 강제나 무리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따라 올 수 있는 거리와 강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예절을 가르치거나 인생관을 주입시키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을 사람이겠지요. 문제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부모가 자기 기준에서 보면 눈에 넣으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이나 조처는 일방적으로 다 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의 자유성을 무시한 강제 조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상대할 때 일방적으로 통고하거나 강제조처하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능력으로 한도 없는 차이가 있지만 마치 일 대 일로 만난 당사자처럼 우리의 자유성을 존중하여 상대합니다.

부모-자식, 친구-친구, 교사-학생, 이런 관계는 흔히 일방적인 통고나 조처가 아주 심한 경우입니다. 물론 상대방을 잘 알고 서로 좋아하고 또는 상대방에게 좋으라고 그렇게 하는 줄 압니다만, 문제는 방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해도 그 방편이 우리 인간이 자기 자유의사를 가지고 원하여 따라 오도록 유기적으로 상대를 하십니다. 하물며 인간이 인간을 상대할 때는 이 방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유아시절과 소년시절 청년시절 장년시절의 자녀를 상대할 때 부모가 사용할 수 있는 말과 조처는 각각 다 달라야 합니다. 젖먹이 때는 일방적으로 해야 하나 그 성장에 따라 자녀가 스스로 깨닫고 좋아서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화도 조심해야 하고 부모의 의견과 조처는 대단히 신중해야 합니다. 자녀가 충분히 이해하고 좋아서 따라 올 수 있도록 거리를 조절해야 하고 또 그 조처의 강도를 상황에 따라 반드시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길러가는 방편이며, 또 먼저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끌거나 상대할 때 꼭 지켜야 할 방편입니다.

 

 

②특히 두 분 사이는 부부사이로 접근해야 하므로, 부부사이의 위치와 책임 면을 먼저 살피셨으면 합니다.

남자는 하나님 앞에 머리의 위치와 책임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자기 남자를 머리로 모신 몸의 위치와 책임을 받았습니다. 이 두 위치를 세상 사람들은 높낮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부 둘의 위치는 남녀평등도 남존여비도 여존남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의 순위 개념에서 주신 관계가 아니고 구원에 필요하여 그렇게 만드시고 관계를 갖도록 했을 뿐입니다. 인간들이 자기중심의 시각을 가진 이후 공연히 순위를 정하는 바람에 별별 혼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자기 여자를 하나님 앞에서 앞서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따라 하나님 앞으로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여자가 신앙으로 앞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기 남자로 하여금 자기를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하고 배후에서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혹시 이런 주장을 세상 유교나 도덕에서 말하는 여성의 덕목과 혼동할 수도 있겠으나 세상이 그렇게 주장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부부를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은 몰라도 그들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세상의 상황을 간파하여 수박겉핥기를 한 발언입니다. 세상이 말을 해도 그렇게 말을 했다면 제법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치를 눈치챈 사람들이라고 평하겠습니다.

지금 질문자 부부는 남자분이 신앙에 앞서 있는 듯 하고 여자분은 뒤를 따르는 관계입니다. 여자분이 신앙에 앞서 있을 때는 그 처신과 방편이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는데 남자분이 앞서 있는 관계이니 일단 쉽게 풀어볼 수 있겠습니다. 두 분 사이를 현재 어떻게 보시는지요? 가르쳐보고 또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면은 하나님께 받은 위치와 책임에 충성하는 것이므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느 정도로 끌어야 하느냐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보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아내되는 여자분에게 대하여, 하나님이 앉으실 위치에 앉아 있는 '남편'의 위치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여자분은 질문자를 하나님 위치로 모시고 따라야 할 '아내'의 위치에 있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분이 여자분이 아니고 남자시니, 남자를 위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③남자가 아내를 인도할 때는 엡5:25 말씀대로 그리스도처럼 사랑과 희생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엡5:25에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교회를 상대할 때 먼저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머리 된 남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과 희생을 먼저 내놓으라는 당부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성도를 대할 때 먼저 사랑하시고 그 뒤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먼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그다음 우리에게 주님 위해 자신을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살피실 때도 우리의 현재 형편이 얼마나 죄인이며 고통스러우며 비참한지 그 사정을 먼저 실제 경험하며 긍휼을 가졌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도록 말하십니다. 하늘에 앉아 계시면서 지시만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밤거리가 무서운 아내의 심리상태를 먼저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며 그 사람이 벌벌 떠는 그 심리적 고통에 동참을 하여 내 가슴도 그만큼 아파야 순서입니다. 이런 순서를 가지셨는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아내의 행동이 신앙없는 잘못이라 해도 그런 아내를 향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남편의 지적과 지시도 잘못입니다. 그 말한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말하는 남편의 자세가 아내를 상대하는 자세가 잘못되었고 아내를 위해 노력하는 순서가 잘못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내의 그런 고통에 동참하여 함께 괴로워하고 어려워하며 그 사람이 마음 속으로 혼자 겪는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고통을 겪는 남편이 된 다음에야 그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앞서 인도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고통을 여자 입장에서, 그것도 특히 밤을 무서워하는 그 사람의 심정이 되어 본 다음, 이제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 사람에게 믿음을 바로 심어 담대함을 가지게 할까, 이렇게 조처해 나가야 옳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흔히 실수하는 것 중에 이런 자세 문제가 있습니다.

입원해서 누워있는 사람의 고통에 마음으로 함께 그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이 심방을 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 되기가 쉽상입니다. 환자가 속으로 '네 놈도 다리가 부러져 봐라. 네 말마따나 감사가 나오는지. 물 건너 불구경하고 앉았네.' 속으로는 이런 조롱과 반발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심방법은 그가 당한 그 고통의 원인인 죄에 대하여는 한없는 미움을 가지되 현재 그 죄로 인해서 아파하는 그 심신의 고통은 그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고 느껴 체휼을 하는 것입니다. 심방 간 사람이 다리가 부러져 고통하는 사람의 그 통증을 실감하고 오히려 그 고통을 환자보다 더 느끼는 정도가 되었다면 그 심방 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권면은 진정 사랑과 치료를 함께 할 수 있는 말씀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래도 말씀으로 일어서야 하겠다고 권면할 때, 그 심방은 바로 된 심방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여 자기를 주심같이 하는 심방입니다.

아내가 어두움이나 밤길에 대하여 가지는 특별한 공포증은 아내가 가진 단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께서는 어떤 단점도 없는가요? 사람마다 몇 가지 단점은 남보다 특별히 못하고 또 몇 가지 장점은 남보다 특별히 낫고 또 대부분의 장단점은 비슷비슷한 정도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자기 아내에게 대하여 공포증을 없애고 담대함을 주시려고 한다면, 일단 주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비참함과 곤란한 형편이 어떠한지를 먼저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형편을 몸소 다 체험하고 이해하고 그다음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처해서 희생해 놓고 나서 가장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이제 안심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순서를 특별히 새기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 뿐 아니고 부부 사이에, 또 다른 관계에서도 모든 면으로 해당되는 기본 자세입니다.

요10장 목자 비유에서는, 목자가 앞서 가면 양은 뒤를 따르는 이치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이 먼저 자기 갈 길과 해야 할 바를 하고 걸어간 것만큼 뒤에서는 따라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뒷짐 지고 뒤에 앉아서 앞에 있는 남의 집 아들들에게 '돌격!'을 외쳐서 그들은 죽고 뒤에 명령한 사령관은 승장으로 훈장받는 것은 세상식입니다. 신앙은 그 반대입니다. 주님이 먼저 죽고 우리를 따라 오라 하십니다. 남편이 먼저 자기 할 일에 앞서 나가야 옳습니다. 일이 됩니다.

 

 

④지금 질문자가 가진 담대는 혹시 '믿음의 담대'가 아니라 '남자의 용맹'일 수 있습니다.

아내의 답답한 면을 고치기 이전에 또 하나 더 자신을 살필 일이 있습니다. 현재 밤길에 두려움이 없는 남편되는 질문자가 가진 담대는 혹시 말씀 때문에 가지게 된 '믿음의 담대'인지 아니면 '남자들이 타고나는 용맹'인지를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질문자는 원래 밤길을 별로 무서워 하지 않는 일반 남자들처럼 그런 정도라고 한다면, 그리고 아내는 일반 여자분들이 밤을 두려워 하고 원래 겁이 많아서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실 이 문제는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열강할 문제가 아닙니다.

여자는 생체적으로 가정 내에서 보호를 받는 중에 살림을 맡고 자녀를 기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또 그 면으로 적응해 왔습니다. 남자는 담 장 밖으로 나가서 밀림 속의 맹수와 생사 투쟁을 하고 나보다 약한 상대를 죽여서 가져 와야 하는 투사로 하나님이 만들었고 또 그런 상태로 장기간 길들어졌습니다. 따라서 남자가 두려움을 가지면 사실 남성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여자가 어두움이나 외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몸 파는 여자든지 아니면 여성이 아니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혹시 질문자께서는 질문 내용 자체부터 잘못되지 않았나 살펴보셔야 할 점입니다. 만일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보호받고 가사에 충실하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데 그런 정상적인 여성을 밤거리에 활보하지 않는다고 담대함을 가지라고 말한 것이었다면 질문자가 이곳에 상담할 일이 아니라 아내되는 여자분이 이곳에 상담을 해야 할 일입니다.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특히 여성다움을 주셔서 밤거리가 무섭도록 해 놓았는데 우리 남편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제대로 모르고 겁도 없이 나를 밤거리나 어두움에 익숙하게 한다고 재촉을 하니 이 병을 어떻게 해야 고치겠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상태인지 모르겠습니다. 뒤에 설명을 드리겠으나 질문자가 질문 내용에서 예를 든 성구들은 질문자가 해석을 잘못 하셨습니다.

만일, 남성의 담대함으로 담대한 것이 아니라 질문자도 남자지만 원래 겁이 많았는데 말씀 때문에 담대함을 가지게 된 믿음의 체험이 있다면, 이런 경우는 아내에게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며 설명하여 자신을 따라 믿음으로 담대함을 가지도록 권해야 할 말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순종하여 가져본 체험은 아내에게 이론적 강의에 그치지 않고 실감있는 체험이 되어 아내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큰 힘이 되겠지만 또 자기가 하나님께 아내를 위해 기도하여 도울 일이 있습니다. '나에게도 과거 성령으로 주신 그 담대함을 아내에게도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면 아내에게 많은 발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내의 겁 많은 성격을 두고 나를 살피고, 그다음 내가 그를 상대하는 순서가 바로 되었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해야 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하지 못했다면 현재 아내의 단점은 그의 단점이면서도 동시에 남편되는 나의 부족과 불충을 나타내는 단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내를 구박할 일이 아니고 왜 겁이 많으냐고 몰아세울 일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내가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회개를 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흔히 우리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주일 잘 지켜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목회자들도 교인들처럼 그렇게 딱한 형편을 만나게 되면 과연 주일을 잘 지킬 사람인지 아니면 그런 어려움을 만나면 목회자 자신도 말씀을 버릴 사람은 아닌지? 평소 목회자들의 숨겨진 면들을 볼 기회들이 있다면 목회자도 다급하고 곤란하면 인간 본질이 다 나와 버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야 주일날 회사 갈 일이 없고 달리 주일을 어길 일이 없으니까 공연히 남의 사정은 식은 죽먹듯 쉽게 뱉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르쳐 설교에 긍휼과 체휼이 없다고 합니다. 남의 사정의 아픔을 겪는 것을 체휼이라 하고 그 심정을 함께 하는 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아내 되는 분이 여자로서 체질적으로 겁이 많아서 아무리 고쳐 보려고 해도 안되는 것처럼, 남편되는 질문자도 혹시 자신의 단점 중에서 고쳐야 되는 줄 알면서도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몇 가지씩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면을 고쳐보려고 노력할 때 말씀의 이치는 알지만 실행이 되지 않을 때 겪는 자기 고통과 번민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바로 그런 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남편되는 분이 충분히 이해하고 느낀 다음, 그래도 이 단점은 꼭 고쳐야 할 단점이니 어떻게 해야 고쳐 볼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두번째 해야 할 일이고, 첫번째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동정할 것이 아니라 그 현황에 대한 파악을 마치 나의 문제만큼 아프게 느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⑤'담대'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되, 강의 권면 설득을 앞세우시고 재촉 독촉 강제는 삼가셔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밤거리가 무섭지 않고 어두움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의 담력을 가진 분처럼 설명되고 있습니다. 일단 그렇다고 치고 설명하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 없이 적어도 아내에게는 신앙으로 앞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대할 때는 이런 면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두움을 이기라는 말이 아내에게 넘어갈 때 그 말하는 투가 '권면'이나 '설득'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왜 담대해야 하는지 '강의'가 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열심히 강의를 하여 설득하고 권면한 다음에는 기다려야 옳습니다. 사람의 특별한 단점은 혹 평생을 통해 고치는 것도 있습니다. 야곱의 꾀 부리는 짓은 20여년이 걸리고 얍복강가에서 비로소 고쳤습니다.

아내의 단점을 고쳐 보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은 좋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되 기계를 제작하듯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상대로 만들어 가는 것은 반드시 걸려야 할 시간이 다 걸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세월 속에 맡겨두는 것은 불충이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되 어디에 노력하고 어느 면을 먼저 힘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선에서는 기다려야 하는지를 잘 보셔야 합니다. 지금 질문은 비록 한 가지 면을 두고 말씀하셨으나 부부의 모든 면에 다 해당되는 대단히 중요한 자세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설명한 것이 과연 충분했는가? 그리고 상대방에게 설득 권면한 것이 남편으로 할 만큼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죄송함이 없을 정도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신 다음, 충분히 할 만큼 했다면, 그렇다면 그 다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재촉하고 강제할 일이 아니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조처를 기대하며 간구할 일이 우리 할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것도 내 생각에는 충분하게 했다고 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는 너무 부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충분히 말할 만큼 했다 하여 상대방을 다그치게 된다면 이는 겉으로는 재촉 같은데 속으로는 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더 나갈 수 없는데 다른 힘이 그 이상으로 끌고 갈 때를 가르쳐 '강제'라고 합니다. 이런 강제나 무리한 재촉 때문에 발생하는 충돌과 오해는 남이 보면 남편이 참 열심히 신앙으로 인도하려는데 그 아내가 따르지를 아니해서 생긴 것이라고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자세히 훑어보면 그 반대인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신앙은 권면과 설득입니다. 지겨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 말로 가르치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재촉'이 되고 '압박'이 된다면 하나님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상대방에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몰아세우는 것은 우선은 효과가 빠른 것 같아도 그 사람의 신앙의 근본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손해가 많습니다. 생명이 자라가는 것은 그 생명 내부에서 일어나는 힘이 주력이 되고 주변은 보조의 역할에 그쳐야 하는 법임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⑥부부사이 문제를 두고, 남편이 아내를 설득하고 권면하는 일은 너무 부족한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현재 두 분 사이는, 남편이 앞장서서 어두움 앞에 담대함을 가진 상태입니다. 뒤 따르는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순서는 우선 '강의'입니다. 열심히 설득하고 권면하셨으면 합니다. 말하는 측의 성질이 급한 사람은 한 자리에서 몇 마디 주르르 한 다음, '이 만큼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아직 몰라!' 이런 식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할 수 있는 양을 채웠을까? 이 면을 생각하시고 면밀하게 접근하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아내에게 담대함이 필요한 이유를 강의한 내용이 과연 충분하셨는가요? 어두움이 무엇이며 주 안에서 가져야 하는 성도의 담대가 어떤 힘을 가졌으며 왜 담대를 가져야 하는지 등을 더 연구해서 강의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질문 내용에서 대충 강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이 말 저 말 줏어대는 수준이지 강의 다운 강의를 하는 부부들을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답변자처럼 논리적으로 말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신 여건 속에 자기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애를 쓰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앞서 여자분들이 가지는 두려움이라는 심리 상태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강의를 듣는 학생의 수준과 상황을 알아야 강의를 바로 할 것 아닙니까? 물론 담대를 가져야 하겠지만, 남자가 어두움을 이기는 담대함은 사실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오는 자연스런 것이고 여자가 어두움을 두려워 하는 것은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조심시켜야 할 필수품입니다. 이렇게 여자라는 짐승은 나면서부터 나와 다른 형태로 지어졌고 길러졌다는 조건을 무시하고 남자라는 짐승이 제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상황을 객관적 상황이라고 생각해 놓고 여자에게 '이까짓 것이 무엇이 두려워서!' 이렇게 외친다면, 백성의 어려움을 모르는 궁궐속의 임금일 것입니다. 폭군이 될 소지가 다분히 많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대목에서 남자와 여자를 짐승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짐승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면이 인간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에 이런 부부의 갈등문제를 대할 때마다 사람의 이해 조정능력이 짐승만 못하다는 한탄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시대가 여자분들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과거 남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던 그 시절, 가정의 보호자가 아니라 가정의 폭군으로 군림했던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리 된 것이 아니라 폭군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가 바로 남자가 가진 힘의 우위만을 기준으로 존재의 가치 평가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반론을 해보겠습니다. 만일 아내되는 여자분이 질문자에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시며 그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리라고 했으나 남편인 나에게도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권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여 당신도 나처럼 아이 좀 낳아 보라고 재촉한다면 무엇이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물론 지나가는 태양을 멈추게도 하고 그 태양을 뒤로 후퇴도 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초자연이요 자연의 일반 질서와 법칙을 변경시킬 수 있는 분이지만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요 남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여호수아의 기도와 이사야의 기도와 같은 기도의 능력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3.두 분 사이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질문자의 말만 듣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①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까? 인용을 잘못 하셨습니다.

본문 9절에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은 어디든지 순종하며 따라간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성도들을 향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라' 하나님이 시키면 무엇이든 따라만 하는 것이 종이라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순종으로 따라가는 걸음이 되었을 때에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나는 네 하나님'이라 하시고 책임을 지실 것이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갈 때에는 우리가 이 담대함을 가져야 할 것이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진노의 하나님으로 우리를 상대하십니다. 신28:28, 28:32에서는 하나님 떠난 사람에게 경심증으로 치고 항상 두려움으로 살아야 하도록 만들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께서는 아내되는 분에게 하나님 인도를 따라 가는 길에 두려움을 가질 때는 권면을 해서 담대함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는 문제가 아닌 일반 밤길이나 어두움에 대하여는 오히려 여성으로서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악한지를 가르쳐 두려움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아다시피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고 했으며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②밤길과 어두움에 두려움을 많이 가진다는 여성분의 소식을 들으면서 답변자는 부러웠습니다.

오늘 이 말세에 어두움을 이용하여 남의 여자를 덮치는 남자라는 맹수가 떼를 지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남자들이 덮쳐주라고 발광하는 밤길의 여자들이 온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그냥 밤길을 한번 쳐다만 봐도 소돔과 고모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환장한 이 말세에, 하늘에서 유황불비로 마구 쳐서 재를 만들어 버려야 하는 이 말세에 질문자께서는 이 시대에 참으로 깨끗을 조심스럽게 지킬 수 있는 아내를 가졌습니다. 그 심성과 타고난 체질이 너무 장점이라고 극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밤만 되면 마구 튀쳐 나가려고 발광을 하기 때문에 딸년들 잡아두느라고 집집마다 신경전이 벌어지고 난투극이 벌어지는 가정도 더러 있고, 이제는 포기하고 쳐다만 보는 탕자집 아버지 같은 가정이 대부분인데, 질문자의 아내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분 같습니다.

질문자의 질문 내용은 그런 아내의 장점을 단점으로 돌려 바꾸려고 하신다고 보입니다. 가정을 지켜야 할 여자분이 하나님 주신 소임에 충실하여 가정을 지키고 혹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밝을 때만 다닌다면, 이 분은 이 말세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독한지 미리 경고하신 하나님 말씀을 바로 이해한 분이고 또 여자에게 맡긴 가정 소임에 충실한 분입니다. 아내에게 있어 밤길이나 어두움을 상대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아내 혼자 힘으로는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밤길을 지켜줄 경호원으로 지금 질문자를 발탁하여 아내에게 남편의 이름을 붙여 같이 있게 했습니다.

아내가 혹 밤길에 나갈 일이 있어도 남편은 말려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집밖에 여자분이 밤길을 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곡예입니다. 여자가 밤길에 혼자 나가는 것은 자기 몸을 도박에 돈 걸듯이 거는 일이 아닌가요? 질문자께서는 세상을 너무 선하게 보시고 답변자는 세상을 너무 악독하게 보는 것인가요? 질문자는 세상사람들을 선량한 시민으로 보시는지요? 답변자는 누가 선량한 시민이라는 표현을 하면 속으로 배를 잡고 웃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정신과 치료 받을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③비록 믿음이 없어 두려워 한다 해도, 밤길과 어두움을 두려워 하는 점은 평생에 가질 보배입니다.

귀신이 무서워 밖을 나가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평생 싸워가며 고쳐야 하고 담대함을 가지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고치는 시기는 그렇게 짧게 잡으면 안됩니다.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그만큼 많은 기도의 그릇을 채워야 합니다. 1980년 이전에는 귀신이 무서워 밖에 나가지 못했다면 1980년 이후에는 밤길에 사람이 무서워 밖을 나다니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일반인의 평상 생활에는 어두운 곳이 없도록 사회 체제가 되어 있습니다. 시골도 5집에 가로등 하나가 배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아직까지 어두운 밤길이 있다면, 그런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가지 않을 곳을 갔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있는 곳에는 그곳으로 가서 피할 것이 아니고, 아예 가지를 않아야 지혜로운 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조심해서 놀아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고 '대로가에는 가지를 말아라'고 가르쳐야 옳습니다.

어쨌든 어두움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은 단점입니다. 또 하나님 인도를 따르는 길에 나타나는 어두움은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2003년으로 말한다면 우선적으로 가르칠 급박한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면을 두고 가르친다는 것은 시기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두움, 밤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는 더욱 조심을 시키고 그런 것은 아예 피하라고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도 함께 밤길을 가지 말아라고 해야겠지요? 그 가까운 사람 속에 바로 맹수성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찬양대 연습 끝나고 돌아가는 밤길, 어두운 분위기에서 일어났던 수도 없는 죄악을 혹시 짐작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 답변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극단적인 보수 시각이라고 염증을 내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곳이 드리는 답변은 사방이 이리로 되어 있는 오늘 말세에 어린 양이 되어 있는 우리가 할 일은 목자 품에 안겨서 가지는 평안만 우리의 평안입니다. 목자 없는 상태에서는 두려워해야 할 세상입니다.

 

 

④여자 분이 대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자분의 단점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수준낮고 미련하지만 일 대 일로 만난 상대처럼 대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질문자의 차이와 질문자와 아내의 차이를 배교해 본다면 하나님이 질문자를 상대할 때 더 답답하지 질문자가 아내를 대할 때 더 답답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로 대화하자면 평생 매달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는, 누가 누구에게 사정할 일인가요?

아내가 신앙이 없고 또 이런 대화에 대하여 체질이 아닌 경우 같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도토리 키재기 정도입니다. 노력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혹 아내되는 분이 너무 이런 신앙 대화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평생 노력하며 남편으로서 그 면에 대하여는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화내지 않고 그러면서도 대화 체질이 아닌 분을 대화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신앙면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질문자에게 기르고 싶은 면이 있어 그런 단점을 주신 것입니다.

 

 

④질문 내용을 전반적으로 평해 보겠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를 떠나, 부부 사이의 갈등 중에서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옳다고 생각한 것도 혹시 잘못 알고 있는 지 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폭넓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또한 두 사람은 한번 보고 끝날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생을 함께 살도록 했으니까 살면서 발생되는 마찰이나 의견 충돌은 그 자리에서 결판내려고 생각말고 일단 대화를 하되 의견이 다르면 과제로 넘겨놓고 좀 냉정스럽게 연구해 보셨으면 합니다.

모르거나 다른 면은 서로 의논하고 따져봐야 합니다. 한쪽이 옳은 면을 가졌을 때는 상대방에게 일단 충분한 강의를 통해 설득과 권면을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부부 사이에 집중 노력할 부분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부부끼리 마주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도하며 한편으로는 세월을 통해 기다려야 합니다. 부부의 다른 점은 평생 살아가며 고치라고 그 연구와 수정의 기회를 장기간으로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이성적 만족을 가질 수 있도록 남녀로 만나게 한 것은, 평생에 고쳐가며 배워가며 기다려야 하는 난코스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갈라서지 않도록 두 사람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 재미 때문에 붙어 살게 하고, 속으로는 두 사람의 다른 면을 서로 상대방 때문에 고칠 수 있게 부부들을 만나게 하고 또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대화는 어떤 면을 가지고 대화를 하더라도 고성 방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남녀로 만난 부부의 특별한 점입니다. 연구하고 고쳐가되 평생 그렇게 노력하는 두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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