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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재림이 임박한데 저의 모습을 보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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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493
작성일
2022.04.08

2003-03-08 12:38:57
장현정

[고민] 정립하지 못한 의문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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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음속에 남겨둔 질문하나로 괴로운 가운데 용기를 내어 질문합니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중에 어떤사람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사람있고 tv속에서 만난 한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으로 힘든 저 현실을 감당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저런 현실이 닥친다면 어떻게 살아갈까?(물론 감당못하는 사람이기에 주시지 않았겠지요)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녀라는 사람들은

조그만 어려움에도 낑낑거리는데.....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받고 싶은 사람중에는 믿는 사람보다도 불교인 사람이 많거나
믿지않는 아직은 무종교인이 다수입니다.어떻게보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속이 더 악하거나 이기적이고 욕심많고 시기많고 오만 더러운 쓰레기같은 요소가 있음을 느낄 때 회의가 듭니다.

사람이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기에 그렇다지만 만약 그러다가 죽게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소금과 빛의 구실은커녕 다른 사람까지 지옥자식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까?

목사님!
주님의 오실 시간은 임박한 것 같은데(정말 그런 것 같은데 해 논 것이 없어서 두렵습니다)저를 포함한 믿는 자들이 어찌 살아야 할까요?!세상사람들과 거진 똑같이 살아가는 저의, 믿는 사람의 모습에 답답합니다.


2003-03-08 16:47: 5
yilee [ E-mail ]

 

1.우리의 '원래 수준'을 늘 고려하시고 2.재림이 내일 있어도 오늘은 묘목을 심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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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 믿는 사람보다 더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①세상에 속담처럼, 교회 내에 흔한 표현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예배당을 건축하고 나면 배척받는다,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이 더하다, 첫 신앙은 남비 끓듯 한번씩 지나간다, 목회자는 교인 시집살이에 말라 죽는다, 목회자가 아무리 잘해도 3년은 못간다 .... 등의 표현들이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이 보고 느낀 것이면 그렇게 많이 오르내리지 않을 것인데 수많은 교회에서 수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보고 느낀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세상으로 말하면 속담과 같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속담이 되었다는 말은,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통계라고 생각하여 섣불리 듣고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②'믿는 사람이 더 심하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믿기 전 바탕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부르는 사람들은 크게 2가지 과정을 거쳐 교회를 나오게 됩니다. 첫째는 사람의 수준은 악하고 못나고 천한지만 세상에서는 아무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라도 나가보자고 하여 믿고 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로는 세상에서 큰소리치며 살던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어떤 기회에 인생을 망치게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의 근본은 천했든지 귀했든지 간에 교회로 출석하는 그 순간에는 인생의 밑바닥에 빠져 절망 속에서 믿게 되었다는 점이 동일합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혹 믿는 가정에서 그냥 다니다 보니까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주변 권유 때문에 별 불편없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도 오가는 정도로 교회를 출석할 때는 그렇지만, 어느날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혼자 내면으로 겪게 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기회를 통해서 비로소 믿는 사람답게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교회를 좀 다니는 사람이라고 표시가 나는 분들은, 세상으로 수준이 낮아서 그렇든지 아니면 수준은 높은 사람이지만 크게 일을 낼 만큼 큰 단점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믿는 우리들은 세상으로는 대개 아주 나쁜 놈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아도 속으로 살펴보면 무엇인가 괴짜같은 성격이 있든, 저질이었든, 남모르는 흠이 크게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③한번 은혜를 받고 새롭게 신앙출발은 했지만, 평생 그렇게 성자로 살 정도는 아닙니다.

바울이 믿기 전에 표독스럽고 잔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난 뒤, 그는 죽는 날까지 중단없이 달려갔습니다. 따라서 바울을 만난 사람들은 바울이 안 믿을 때 그렇게 나쁜 인간이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고 바울은 원래 착한 사람이어서 복음을 위해 또 착한 일을 한다고 오해들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원래 그렇게 착한 사람이어서 예수님을 믿고 또 남을 위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라는 것을 누누히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달리, 우리 일반 교인들은 첫 신앙 때는 나름대로 큰 은혜를 받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도 되고 생활도 바꾸었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시커먼 들판에 흰눈이 덮이니까 제법 며칠 동안은 천지가 거룩하고 깨끗하게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그 속에 본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도 첫 은혜를 받고 열심을 가지던 것이 몇몇 세월이 지나가면서 원래 인격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은혜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사님도 되고 장로님도 되는 수가 있으며 또 직책에 상관없이 남들이 볼 때 그 사람은 어느 교회에 중심 교인처럼 또는 열심 교인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런 은혜시기가 지나면서 어떤 기회에 옛날 믿지 않을 때 모습이 주변에 띄이도록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분들이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더하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계산법을 하나 제시하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꼴찌를 하며 10점 맞던 학생이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2학기 때부터는 90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올라가면서부터는 60점 정도로 평균 점수가 자리를 잡고 30등 정도로 졸업 때까지 그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40명 중에 30등 하는 학생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입니다. 중학교 3학년 선생님이 이 학생을 두고 30등밖에 못한다고 쥐어박아도 이 학생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의 이전 기록을 잘 살펴본 선생님이라면 '제법 잘 하고 있네. 조금만 더 열심을 내 봐라.' 이렇게 말을 해도 맞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더하네'라고 말을 들을 때마다 답변자는 또 믿는 사람이 큰 사고를 쳤거나 아니면 주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일을 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동시에, '그 사람이 만일 믿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나쁜 인간이었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마음 한 쪽에서는 '아마 그 말 하는 사람과 그 말 듣는 사람을 한 자리에 놓고 사실 전부를 다 들어보면 괜히 믿는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하는 애매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토를 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믿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에 대하여 변명이나 설명을 하는 것보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자신과 우리 믿는 사람 스스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여기서 설명드리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또 질문자께서는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우리끼리 주고받을 말을 해 보았습니다.

 

 

⑤이런 예는, 사실 믿는 사람을 좋게 보고 기대했다는 배경도 깔려 있습니다.

믿는 사람을 원래부터 도둑놈들로만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무신론자 반기독론자들이라 해도 자기들 양심 깊은 곳에서는 자기들도 모르게 믿는 사람들을 무엇인가 좀 고상하게 보았고 또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100점 만점이 되지 않으면 비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더욱 더 부끄럽기도 하고 또 욕하는 그분들에게 대하여 그분들은 우리를 좋게 보는데 우리가 부족하니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교회를 박해하고 습관적으로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혀의 독이 계속 움직이면 어린 사람들을 많이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가 있을 때는 이제 이곳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이 만일 믿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나쁜 인간이었을 것인데, 그래도 믿었기 때문에 좀 나아진 것이라'고 알려 줄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판사나 검사나 시민운동가나 종교인이나 교장 등 교사들이 돈을 받고 부정하게 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판사가 되면 저절로 깨끗해집니까? 교육대 사범대를 지원하면 그 순간부터 그들의 양심은 깨끗해집니까? 신학교를 지원하고 시민운동에 뜻을 두면 갑자기 이리가 늑대로 바뀝니까? 그런 직업에 있는 이들이 부정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너무 철없이 보았고 소녀들이 꿈속에 왕자를 그리듯 그렇게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범대 교육대 신학교 사법시험을 지원하면 그 순간부터 양심이 깨끗해진다는 말도 말이 될 수 없는 말이고, 지원자들은 별별 사람이 다 있다 해도 그런 과정을 밟게 되면 그래도 깨끗해져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그런 과정이 세탁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철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런 직업에 있는 사람들의 부정을 듣게 되면 일반인들이 놀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비록 착각이지만 그런 직업을 좋게 봤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믿지 않는 세계에서도 본 받을 만한 일들이 있음을 보셨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①호랑이 독수리를 좋아하고, 난과 소나무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찰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뱀의 민첩함도 배울 수 있고, 호랑이의 담대함도 배울 수 있고, 독수리의 기상도 부럽기 때문에 미국의 기장에 또 각 대학들의 깃발 속에 독수리는 아주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추위를 이겨내는 그 가녀린 난이 좋아서 온 집에 난 그림에 난 화분을 둘러놓은 분들도 있고 그 추운 겨울 바위 산 꼭대기에 홀로 섰는 소나무가 좋아서 시를 읊으며 소나무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역사 이후에 그렇게 많았습니다.

 

 

②그렇다고 그 짐승들과 그 식물들과 바꾸어 살아라고 한다면, 그럴 사람이야 있겠습니까?

우리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알 것은, 사람이 뱀보다 호랑이보다 독수리보다 난보다 소나무보다 못하겠습니까? 그것들을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은 그 자체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 한 가지씩만 떼어놓고 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일 정말로 사람보다 소나무가 좋다면, 당장에 그 소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자기 허리를 심고 팔을 위로 뻗고 소나무 대신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랑이의 담대함이 부럽다고 한들, 인간치고 호랑이와 너를 바꾸어 살아라고 한다면 그렇게 살겠습니까?

질문하신 분과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답변자 역시 안 믿는 사람보다 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많았고 최근에도 답변자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군담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이곳 많은 글들을 통해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고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곳이 한 두곳이 아닙니다. 이곳의 글은 너무 단정적이고 그 표현이 과격하여 읽는 분들이 그냥 듣고 지나갈 수 없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이 동물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꼭 비교를 한다면 심판 너머 지옥이 있기 때문에 불신자의 경우는 동물만도 못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일반 형편을 두고 상식적인 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③김구, 세종, 이순신, 김유신, 함석헌, 성철, 김수환 등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질문하신 분께서 불교나 무신론자 등 안 믿는 사람들 중에서 존경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씀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충 위에 나열한 이런 종류의 분들이라면 우리 사회에 사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손 꼽을 수 있는 예가 될 것입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인생관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대충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린이 전기전집에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예를 들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한 평생 살아온 김구선생, 만백성을 위해 그렇게 다재다능했던 세종, 국난을 한 몸으로 버텨낸 이순신, 민족의 첫 통일을 이룬 영웅 김유신, 20세기 최고의 철학과 양심을 가진 행동가, 용맹정진으로 불신자까지 감탄케 한 성철, 한국 민주화 현장의 성지를 대표하는 김수환 등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은 위에서 소개한 분들을 그 소개 한 내용처럼 말하면 어디에 내놓아도 그럴 듯 한 이력 소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 이 세상 기준에서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이 세상에서도 우리 나라 기준으로 영웅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함석헌 김구 성철 김수환 등을 좋아하는 분들과 김유신 이순신 세종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뚜렷하게 세상 사는 입맛이 다른 분들입니다.

 

 

④죄송스럽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도 넓은 범위에서 새롭게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이제 위에서 여러 사람을 소개한 이유는, 그들을 볼 때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나 난처럼, 호랑이 독수리 뱀처럼, 어느 한 쪽 면만을 가지고 그들을 평가한다면 양심가 영웅 애국자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주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만을 전부로 알고 살았던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송장들이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설명드리는 것은 그들이 위대한 사람으로 우리 사회에 알려진 그 면만을 두고 말씀드립니다.

호랑이의 용맹을 칭찬하자면 그 입이 열개라도 부족하겠지만 호랑이는 호랑입니다. 답변자가 다리 밑에 거지로 산다 해도 호랑이와 그 신세를 바꾸겠냐고 묻는다면 거절입니다. 독수리의 기상이 하늘에 닿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또 시로 적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독수리가 될 기회가 온다면? 단연코 거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더 잘 믿으면 더 좋은 것이고, 믿는 사람이 신앙에만 전념했는데도 세상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다윗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윗같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다m은 커녕 주변 사람들에게서조차 저런 것이 교회를 다녀! 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국가에서 어느 한 시각에서 볼 때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그런 불신 사회 속의 한 인물상이 부러워서야 되겠느냐는 말씀을 올리고 있습니다.

 

 

⑤시84:10 말씀을 소개드립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과 이번 질문을 주신 분께 이곳이 간곡하게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믿기는 하지만 바울같지 못하고 다윗같지를 못하여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세상만을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그런 형편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를 하는 것보다 마당 쓰는 사람이 더 낫겠고, 그 보다 주인의 청지기가 되었으면 더 좋겠고, 그 보다 주인의 아들이 되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렇게 힘쓰고 노력하는 것은 두 말 하지 않아도 우리가 평생 노력할 일입니다. 그러나 막판에 둘을 놓고 그 중에 하나를 가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집 밖에 평안한 집에서 1천일을 사는 것과 하나님의 집 문앞에 1일 문지기를 놓고 물어본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시84:10의 말씀으로 정답을 내렸으면 합니다.

이곳에서 그 신앙노선을 집중 연구하는 '백영희'목사님이 50여년 전 주기철목사님을 배출한 진해 웅천교회를 사경회 인도차 방문했을 때 주목사님이 남겼다는 글 한 줄을 읽고 평생 마음에 새기고 또 설교에 종종 소개했습니다. '천하를 얻는 것보다 주를 위해서 죽겠노라' 우리의 포부이며 우리의 시각일 것입니다.

 

 

3.재림을 두고 시각이 촉박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급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하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오늘 하루에 처리하고 마무리 짓도록 맡긴 일의 양은? 오늘 하루 전부를 다 동원하여 순간도 헛눈 팔지 않고 전력하면 딱 끝나도록 각자에게 하루 일거리를 각각 배정시켰습니다. 내일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고 오늘 수고할 일은 오늘 하루를 전부 다 동원해야 겨우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는 통고서를 만일 오늘 아침에 받게 된다면 오늘 하실 일은? 내일 오실 주님을 영접하느라고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데 오늘 하루에 할 일이 먼저 배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따로 낼 수가 없어야 정상입니다. 내일 주님이 오신다는 통고서가 배달이 되어도 고3학생은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오늘 학교를 가야 하고, 내일 결혼식이 예정된 분은 오늘 결혼 준비에 분주해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순간,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출근 길에서, 밭에서, 부엌에서, 또는 예배 준비를 하다가 각각 맞을 것입니다.

 


2003-03-09 13:00: 9
장현정

전기 속의 위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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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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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질문이어서 질문의 위치를 조정했습니다.

2003/03/09 Article Number : 1497 장현정 Lines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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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중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인물은 하나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동네 아줌마중에 지금은 타종교이나 저런 것은 닮았으면

좋겠다는 요소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그 사람을 전도하려고 말을 건넨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전에 교회를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자기하고는 맞지않더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보기를 설교내용이 이상해서 그런것인지 하나님께서 불택자로 예정하셔서 그런것인지 만약 후자라면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지만
전자라면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꼭 믿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저 같이 못난

자도 주님이 택하셨거늘 그 사람 믿지 않으면 지옥가야 되는 거 아닙니가!

강단에서 연보에 관한 말씀등등 교회로 나오는 발걸음을 붙잡는 게 아닌가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런 것은 아닌가?

그리고 tv속에서 만났던 한 사람은 자식 셋다(정확한 병명은 기억나지 않음)
죽을 때까지 뒷바라지 해야 하는 옆에서 계속 수발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을 보면서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그런데 그

사람이 저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렇겠습니까? 그런데 저희들은 조그마한 고난에도 주님께선 크신 뜻이 있어서 제일 좋은 현실을 주셨는데 좀 없애달라 그러고

도피하기도 하고 나태하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낯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두껍기가 철판을 깐 듯.

제가 탄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을 향해 큰 소망을 안고 좁은 길,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약해서 되겠냐는 것이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오늘도 변함없이 맡겨주신 사명다하기 위해 교회로 발걸음 향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주님의 능력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2003-03-09 23:40:25
yilee [ E-mail ]

 

이곳 답변은 질문자를 중심으로 하되, 동시에 모든 방문인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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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답변은 질문자를 중심으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을 고려하여 적고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내용은 질문자의 질문 때문에 시작하지만, 답변 자체는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을 가상의 질문자들로 생각하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자신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영웅이나 위인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을 두고 답변할 때는 그 분들 마음 속에 생각하는 인물들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든 것입니다.

혹 이곳에 질문을 했다가, 답변자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항의가 있을까 하여 특별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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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자세] 교만을 극복할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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