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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89년 5월 집회 중 치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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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455
작성일
2022.04.06

2003-02-27 10:25: 9
교인

[인물] 1989년 8월 집회에 있었던일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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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집회(88년일수도 있음)시 백목사님이 설교후 휠체어 앉은 중년부인이 나와서 참석한 교인들과 함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 했습니다.

중년부인 옆에서 사람이 부축하여 일어켜 세웠지만 일어나지는 못 하였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했지만 결국 서지는 못했습니다.

그다음날 광고시 마비된 다리에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조금 나아진다는 광고를 들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신유부흥회등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며 평소 목사님의 가르침은 사람병 고치면 육신의병은 고쳐지니 인간병을 고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까지 한 연유나 아니면 특별히 알아야할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까?

총공회 정서상 맞지 않고 더물게 보는 장면이었으므로 질문드립니다.


2003-02-27 20:16:41
yilee [ E-mail ]

 

 

1983-1985년 사이에 질문하신 문제를 두고 많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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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목회 시기를 크게 셋으로 나누어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①1936-1952년의 초기 목회

백목사님의 신앙출발은 1936년이었습니다. 산골에서 성경 하나만을 가지고 믿었던 분이었기 때문에 기존 교회의 제도와 운영에 의하여 양육된 면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신학 과정에 따라 자라가지 않고 말씀대로 실행하는 면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먼저 믿는 분들의 눈에는 교회 내 질서와 예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산속에서 양 몇 마리를 잘 먹이고 있던 다윗같이 보셨을 것입니다.

사울이 가진 군사조직과 국가적 운영 체계에서 볼 때는 시골 목동이었으나 그에게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자 곰 이리를 찢어본 초자연의 능력을 많이 경험한 용사였습니다. 백목사님의 초기 목회가 그러했기 때문에 그 교인들도 말씀의 깊은 면보다는 어떤 환란 속에서도 배운 말씀대로 생사를 초월하고 걸어가는 능력이 장점이었습니다. 그 밑의 교인들은 주일학생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산 순교자들이었습니다.

 

 

②1952-1983년의 후기 목회

1952년 부산 서부교회로 부임한 백목사님에게는 이전과 크게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정과 사회의 신앙박해가 극난했던 거창과는 달리 부산은 개화가 된 곳이고 또 전쟁 중이어서 미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는데 이런 면 때문에라도 기독교에 대하여 사회가 무조건 박해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부산으느고신교단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칼빈신학에 철저했던 고신이 운영하는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던 백목사님에게는 이제 말씀대로 환란 속에서 승리한 생활은 과거가 되었고 지금 당장 눈 앞에 전개되는 투쟁은 어떤 길이 바른 신앙노선이냐는 성경 깨달음이 중요한 현실을 맞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52년 서부교회로 부임한 이후 백목사님은 개인과 교회가 걸어가야 하는 참된 신앙노선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일로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대로 살면서 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초자연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부정해서가 아니고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도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는 역사 등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그런 것은 조용하게 혼자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정도면 만족했습니다.

백목사님 자신과 따르는 모든 교인과 교회의 전체 방향은 어느 길이 교인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냐는 연구에 매진했던 시기였습니다.

 

 

③1984-1989년의 최종 시기

초기에는 환란 속에서 말씀대로 생사를 버리고 걸어가는 면이 더 중요했고
후기에는 바른 신앙노선이 무엇이냐는 것을 밝혀야 하는 연구가 더 중요했습니다.

질문하신 '병낫는 문제'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기도하여 병낫는 것이 신앙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후기에는 말씀을 연구하는 연구실과 같아서 일절 밖으로 소리가 없었다고 할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라고 하여 말씀 연구가 소홀한 것은 아니었고 후기였다고 해서 병낫기를 기도하는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러가는 단계였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하나님 인도를 따르라는 시기가 초기였고, 이제는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를 끝없이 연구하여 말세 어떤 유혹도 다 초월하도록 하라는 것이 후기였습니다.

그리고, 1984년 5월 집회 때 백목사님은 그 서론되는 첫날 저녁 설교에서 '이제는 표적이 필요한 시기'임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미 신사참배와 6.25환란 같은 시대적 환란 속에서도 온 교인들과 함께 승리했던 목사님은 그후 기독교 교리사의 획을 긋는 교리를 체계화하게 되자 자기 앞에 남은 불과 몇 년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교리 연구를 위해 병낫기를 기도하는 등의 외부 활동과 초기 신앙에 필요한 내용을 전부 망라하여 온전한 신앙으로 최종 조립을 하게 됩니다.

신앙이란, 어떻게 믿고 어떻게 걸어가야 하느냐 하는 신앙노선의 연구와 정립이 먼저이고, 그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초자연의 능력으로 동행하는 것이니 믿는 사람은 말씀과 능력을 함께 가지고 가는 길임을 가르치게 됩니다. 초기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던 때와 후기 말씀으로 연구만 하던 때가, 이제 마지막 몇 년 간에는 함께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과 능력으로 주님 올 때까지 걸어가라고 안내한 것이 백목사님이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해 소개한 신앙 노선입니다.

 

 

2.1989년 집회 때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던 분의 예를 보겠습니다.

①그 집회에서 하반신마비로 휠체어에 앉았던 분은 백목사님의 자녀같은 교인입니다.

수십년 목사님 밑에 있던 교인이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서부교회 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그분들은 수십년 서부교회를 다녀도 백목사님의 초기 목회 분위기는 모르는 분들입니다. 따라서 설교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으로 현실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치는 것으로 신앙의 전부를 삼던 시기 교인이었습니다. 이 시기 교인들은 육체의 병고를 기도하여 낫게 해 주시라는 설교를 거의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신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현실 순종면이 강했던 분입니다.

1984년 이후 백목사님은 자기가 없는 앞날 시대를 두고 최종 마무리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제 교인들에게도, 교회나 교인들이 부자가 되면 돈에 팔려 신앙을 버리기 때문에 경제를 초월하라고 강조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마치 부자가 되면 신앙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게 되었는데, 실제로는 먼저 신앙에 바로 서고 그렇게 바로 선 사람에게 물질이 더해지면 복되게 사용하는 양면을 함께 설교하게 된 것입니다. 육체의 병도 이제는 그대로 주시면 그대로 가져가고, 또 건강하게 해 주시면 증거로 삼겠다는 면을 기도하라고 양면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②한 면을 먼저 가르치고, 그다음 면을 가르칠 때만 있었던 교인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교인이 바로 그날 강단에서 병낫기를 위해 기도했던 분입니다. 간증을 하고 발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백목사님께 기도받고 죽을 병이 나은 사람의 숫자는 이루 다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다른 면으로도 그렇습니다. 역사에 없던 가뭄이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다고 발표되던 다음 날 새벽에 기도를 통해 바로 비가 오게 했던 예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나를 가르치면 그것이 전부라고 알고 저쪽을 가르치면 또 그것을 전부로 아는 면이 있어 오해가 많은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나 하지!' 이렇게 말하고 나면 운동을 하지 않아서 건강 문제가 생기고, '학생이 공부만 아니까 사람이 안돼!' 이렇게 말하고 나면 놀러만 다녀서 문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가 첫째고 주력으로 해야 될 일이지만 그 외 자기 할 일도 균형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요약했던 시기였습니다.

 

 

3.이 모든 설명이 바로 1983-198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있었습니다.

①심지어 1980년 이전 백목사님으로 1984년 이후 백목사님을 정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서부교회에서 설교를 비교적 면밀하게 들었던 분들은 여기서 설명하는 모든 설명이 어제 일처럼 기억나고 또 정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 설교를 지방교회에 있어 목회자들을 통해 정확하게 소개받지 못했던 분들은 심지어 1980년대 백목사님은 좀 타락을 했고 1980년대 이전 백목사님의 설교와 신앙이 참으로 역사에 내놓을 수 있는 시절이라고 거침없이 단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1980년대 후반에 은혜받고 믿은 분들은 자칫 순복음교회와 공회 신앙노선이 어지간히 같이 갈 수 있거나 아니면 분류표에서 사촌이 될만큼 가까운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든지 치우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비빔밥을 만들어 버리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②이 시대를 위해 초자연의 능력과 말씀 연구의 양면을 가르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초기에 백목사님을 통해 이 신앙노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로 병낫기를 구하여 그 응답을 그렇게 많이 듣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또한 백목사님을 부산으로 옮겨 이후 진리 연구에 전념시켜서 말세를 감당할 신앙노선을 완성시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 두 시기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가 배치되는 듯 하나 그렇지 않고 하나가 되는 면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라면 마지막 몇 년의 기간에 나온 최종 결론은 듣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결론에 도달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두운 심령이 많기 때문에 실제 그렇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소개하고 자기 시대를 마감하도록 하나님께서 해 주신 뜻을 또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1983-1985년 시기 설교록에는 이런 면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설교록을 통해 장기간 살펴볼 사안일 것입니다.

 

③질문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꼭같이 적용됩니다.

백목사님 초기에는 목회자를 파송했습니다. 후기에는 교인의 청빙으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목회자 신임투표를 처음에는 참고로만 했습니다. 후에는 교인 결정권으로 넘겼습니다. 이런 문제는 목회자들과 교인 간에 첨예한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기들 편리한 대로 초기 제도를 써먹는 사람이 있고 후기 제도를 들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는 신학이라는 것 자체를 아주 금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신학을 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도 한 면으로 보고 신학공부 자체를 죄로 보면 이단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권한 경우가 있었다 하여 지금 수도 없는 교역자들이 일반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이 역시 자기 지식욕심이나 목회자로서 청빙 받을 때 유리하게 경력을 쌓는 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혹 신학을 해야 할 한 두 분 중에서는 게을하여 하기 싫으니까 목사님의 지도를 내세워 신학공부를 거부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도 역시 앞에서 질문하신 내용과 같이 교인이나 목회자를 길러 가는 시기에 따라 어느 면을 강조했고 어느 면을 조심시켰는지를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④가장 대표적인 경우 중에 하나가 찬양대입니다.

서부교회 찬양대는 부산 교계 전체 교회에서도 1등을 다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중심이 아니고 찬송가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청년남녀가 자치적으로 움직이는 문제점, 남녀 이성문제의 잠재 등이 있어 학생회와 찬양대 등을 1960년대부터는 전면적으로 금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서부교회를 찾는 전국 교단과 교회들이 왜 찬양대가 없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자 주일학교를 책임진 분이 '찬양대를 운영하는 죄는 짓지 않습니다' 이렇게 발표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필요없는 교계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또 자라나는 학생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동시에 남녀 이성문제나 학생회 식의 운영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면을 고려하여 주일학교 여학생만으로 찬양대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찬양대를 다시 운용하게 되자, 지방교회에서는 서부교회도 찬양대를 만들었다 따라서 찬양대 자체가 죄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되게 운영하면 된다고 하여 이후 연세대 음대 교수를 돈주고 초빙하여 남녀 찬양대를 만드는 교회가 나오고 일반 교회들처럼 즉시 다 회귀하여 버립니다. 지금은 그룹댄싱에 드럼셋트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공회 내부적으로 말하면, 백목사님 생전부터 찬양대는 다시 허락된 것이 아니냐고 소위 공회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설명드린 모든 면에서 한쪽 면만을 잘라 내었습니다. 전체면을 함께 고려하고 나갈 시대라고 보고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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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 및 안내 말씀)

이번 질문은 질문자께서 단순히 질문으로만 주셨지만, 이곳을 찾는 분들께서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계시면 처음에는 의문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의심으로 발전시키고 결국은 자기 신앙의 폐단으로 종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면에 주의를 하셨으면 합니다.

신앙에 의심되는 문제 중에는, 세월 속에 연구를 해야 할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즉각 확인을 하여 마음에 빨리 확정을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확인 후에 확정을 해야 할 것을 마음에 확정하지 않고 그냥 넘겨두고 지나가게 되면 훗날 본인에게 생각못한 피해를 크게 입히는 경우가 있어, 질문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함께 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를 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질문을 답변하면서 이곳을 찾는 일반인들에게 함께 해당될 설명이라고 보셨으면 합니다.

 

 

4.직접 가르친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대단히 혼동스러운 예가 더러 있습니다.

①가르친 대로 사느냐는 문제를 '언행일치'라고 합니다.

언행일치라는 말은 목회자를 평가하는 가장 마지막 잣대 중 하나로 종종 사용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가르친 대로 자기는 그렇게 살기를 노력했느냐, 또 실제 그렇게 살았느냐?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하기 좋은 말로만 설교하고 살았던 거짓말쟁이냐? 이 문제입니다.

한경직목사님 등 교계 대표적인 분들을 소개할 때 '언행이 일치했던 분'이라는 소개를 한번씩 듣고 있습니다. 우리 일반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볼 때 도저히 말과 행동이 달라서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로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우러러 볼 만한 분들 중 몇몇 사람은 자기가 주장한 대로 실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면을 소개한다는 뜻입니다.

 

②이곳에서 백목사님을 소개할 때도, 언행일치를 말합니다만 그 차원은 좀 다릅니다.

이곳에서 백목사님을 외부에 소개할 때도 말씀과 행동이 함께 했던 분이라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백목사님을 그렇게 소개할 때는 교계 대표적인 인물들에게 '언행일치'로 표현되는 그 차원과는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언행일치는 일반 교인들이 일상 생활 중에서 배운 대로 행하기가 어려운데, 교계에 몇몇 지도자들 중에는 일상 생활 중에서 자기가 가르친 대로 먼저 몸소 행하는 분들이 있다는 차원에서 '언행일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언행일치는 그 한계가 '평화시' 또는 '이해관계'가 크지 않을 때입니다. 신사참배와 같이 생사가 오고갈 때에도 언행일치를 보였던 분들은 출옥성도 몇 분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출옥성도를 중심으로 출발한 고신교단 외에서는 언행일치라란 말이 사실 거의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신교단도 총회측과 전국적으로 예배당소송 건으로 대립하면서 전국의 예배당을 다 내어주어야 하느냐는 정도의 재산문제가 발생하자, 언행일치를 포기하고 말아버립니다. 또한 6.25전쟁 직후 제기된 유엔군 철수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전쟁의 참혹함을 목도한 직후였기 때문에 전쟁 재발 가능성을 두고는 언행을 일치시킬 수 없어,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유엔군철수 반대운동을 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이 '언행일치'를 힘쓰라고 교인들에게 말할 때는 평소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부스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손해를 봐도 너무 미미하여 누구든지 언행일치로 살아야 할 때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정작 언행일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은 환란의 극한 속에서 생사까지 초월하는 그때를 두고 평생 가르쳤습니다. 그 자신은 그런 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백목사님은 언행일치라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보통,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풀어 쓰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평생 설교 전부는, 말씀대로 현실에서 실행하자는 것이 그 주제였다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5.언행일치가 그렇게 엄했던 분인데, 한번씩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 혼동될 때가 있었습니다.

①마음 속의 의문을 평소에 해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2가지 병폐로 본인이 손해를 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인 총공회에 소속한 교역자나 교인들에게는 백목사님이 평소 설교한 것과 실제 지도한 것이 달랐다고 기억하는 것이 몇 가지씩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명성이 너무 크고 특히 그분은 말씀대로 가르쳤고, 말씀대로 살았던 분이라는 면이 너무 강조되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의문으로 가슴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가까운 분에게 조심스럽게 한 마디 질문해보는 정도가 고작이고 대개는 그냥 '이상한데'라는 정도로 끝나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런 문제가 별로 문제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크게 2가지로 자기 신앙에 큰 병폐가 될 수 있습니다. 속으로만 품어 둔 의문은, 언젠가 이 신앙노선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때 그 의문을 마치 기정 사실인 것처럼 사용하게 됩니다. 기정 사실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표현도 극단적이 되고 또 자신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합리화를 위해 내용을 만들고 보태는 죄를 짓게 됩니다. 또 한가지 병폐는 이 신앙노선을 따라 살다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평소 마음 속에 품었던 의문 때문에 말씀대로 살 용기를 포기하고 슬쩍 뒤로 빠져버리게 됩니다.

첫번째 병폐는 총공회 소속 중 대구공회나 부산공회(2)에 속한 분들이 노선 분립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만들었던 실수였습니다. 안타까울 뿐이었고, 두번째 병폐는 자기 현실 속에서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신앙후퇴이므로 스스로 살펴볼 일이지 외부로 예를 들기는 어렵습니다.

 

 

②백영희목사님에게는 너무도 또렷하게 모순되는 면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설교시간에는 소송을 그렇게 반대해 놓고 실제 사건이 나면 소송을 하라고 하는 경우
교회는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 놓고 출석통계를 신앙실력의 잣대로 적용한 경우

본토 칙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그렇게 해 놓고 주변에는 친인척이 다 차지하고 있다는 경우

결혼은 신앙만을 봐야 한다고 해놓고 실제 중매를 설 때는 학벌과 경제를 보는 경우

그리고 이번에 질문하신 것처럼, 일반 교회 부흥강사분들이 부흥회 때 신유치료하는 것을 그렇게 비판했던 백목사님이 자기가 집회를 하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분에게 일어서라고 하면서 강단에서 계속 힘을 붇돋우고 또 모든 교인들에게 위해서 기도하라 하고 또 주변에서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기도 했던 것은 평소 백목사님이 전혀 하지 않던 모습이어서 너무 어색하고 또 마음 속에 의문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순이라고 보이는 점들은, 어린 교인일수록 덜하고, 오래 믿은 분들이나 교역자일수록 더 많습니다. 또 나름대로 이 신앙노선에서 자신의 깨달음이 높은 수준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가 다 백목사님의 이런 모순점에 대하여 몇 가지씩은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런 점 8-9가지는 역사에 없을 정도로 훌륭했으나 이런 이런 점 1-2가지는 분명히 그분의 실수고 모순이었다, 그러나 그 장점이 많기 때문에 그런 단점 때문에 그 신앙노선을 따르는 것이라는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입니다.

 

 

③적지 않은 분들과 세월 속에서 이곳이 가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연구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역시 백목사님에 대하여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하여 아주 또렷하게 의견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백목사님에게 실제로 있는 단점이나 실수를 지적하고 그 면을 조심하는 분은 거의 보지를 못하였고, 단점이 아니고 실수가 아닌 면을 그런 것으로 착각하여 마음 속에 깊이 묻어두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제일 모범적인 사회복지사라고 단정해 놓고나니까, 눅19:24-26에서는 한 므나를 있는 자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한 말씀이 자꾸 걸립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예수님도 너무 화가 나서 실수를 한 것이거나 아니면 성경은 인간이 받아 적으면서 일부 실수가 있는데 바로 이런 면일 것이라고 둘러대는 데까지 나갑니다. 또 27절에서는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한 말씀을 두고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기독교인권주의자들은 늘 아쉽습니다. 예수님도 그만 사람이다보니까 실수를 한 것이라고.

백목사님을 예수님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인데도 이렇게 자기 주관으로 편집해서 다른 예수님을 만드는데 하물며 허물많은 인간 중 하나밖에 되지 않는 백목사님에 대하여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겠느냐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잘못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인데, 잘못된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잘못이 없는 부분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곳이 지금까지 이 신앙노선을 두고 대화해 본 사람의 숫자와 종류와 대화 내용은 참으로 적지 않습니다만, 백목사님에게 있는 진짜 단점이나 실수를 지적한 분은 만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백목사님의 단점이며 잘못된 점이라고 말한 분들치고 그 내용이 옳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 분이 없었습니다.

 

 

④이유는, 그분의 신앙차원이 너무 높고 너무 넓기 때문입니다.

실수가 많은 일반 우리같은 사람이라면 수많은 실수 중에서 몇 가지씩 눈에 띄이는 대로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그 단점과 부족한 점을 평생 말씀대로 고치고 살아간 백목사님과 같은 분은 비록 그 잘못된 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지라도, 일반 우리같은 사람의 눈에 보일 만한 단점은 고쳐버린 지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단점은 실은 우리가 잘못 본 것이라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백목사님의 단점이라고 자신있게 지적한 분들에게 대하여 이곳에서 설명해 보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 이런 면은 백목사님의 단점이 아니겠냐고 먼저 알려드려 본 적도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가는 것은 좋은 점을 보고 따라가야 자라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점을 이곳에서 설명하지 않는 것은 어떤 분들의 비판처럼 이곳이 우상화를 해야 할 의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도둑질을 해서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아버지라 해도, 그 부인은 어린 자식에게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니 얼마나 고마운 분이냐는 것을 먼저 가르쳐야 옳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사회 정의와 인생의 직업 선택을 두고 판단할 나이가 이르게 되었을 때는 비로소 자기 아버지의 벌이를 두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곳을 운영하는 답변자도, 몇몇 단점은 보고 있으나 그분을 통해 이 시대에 전달된 교훈만 연구를 해도 앞으로 몇 세대를 넘어가며 연구해야 할지 모르는 분량이기 때문에 그 단점을 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냥 넘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답변자가 사망하기 이전에 그분을 능가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 단점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되면 그때는 그분의 단점을 두고 분명히 세심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⑤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의문이 계신다면 이곳에 질문하여 푸셨으면 합니다.

마음 속에 그냥 담아두고 계신 의문은 반드시 자기에게 폐해를 입힐 것입니다. 먼저 자기가 피해를 입고 그다음 남에게 넘어가지, 자기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남에게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제공한 자료나 문답 등을 통해 의문이 풀렸기 때문에 질문이 없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마음 속에 그냥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평소에 해결하지 않게 되면 갑작스럽게 만난 현실에서 꼭 자기에게 손해가 되도록 자기를 끌고 가게 될 것입니다. 머리 속에 그냥 보관해 둔 지식은, 책꽂이에 있는 책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 보관된 지식이 스스로 마음 속에서 운동을 하게 됩니다. '활성화'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입니다. 평소 정부가 안정을 유지할 때는 몇몇 숨어 있는 간첩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건이 돌발되면, 그때 그 간첩 몇 명은 결정적으로 그 나라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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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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