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성경 인물]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

기존 문답 보관실
작성자
*5134
작성일
2021.04.27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 10:41.42절)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한11:20)

위의 두 구절로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중심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르쳐주십시오.

 

 

질문: 2009-11-22 14:31:08 jdy
출처:쉬운문답5134


2009-11-22 18:02:38
yilee [ E-mail ]

 

신앙노선이 나뉘는 길목에 서서

 

 

(짧은 답변)

마리아는 구원의 주님, 그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마르다는 그 주님과 떨어 져 있었습니다. 죽어도 살겠고 하신 그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그 말씀을 받고 있었습니다. 둘 다 교회 안에서 꼭 필요한 일이지만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있습니다. 둘 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나 마리아는 본능적으로 더 복 된 입장으로 나가고 있었고 마르다는 그 현실에서 판단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마르다의 착오는 사소한 것이어서 잠깐 가르쳐 깨달으면 돌아 설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좀 더 걸어 가다 보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사회 복지 사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마리아의 신앙 노선에 철저한 교회들은 그런 일도 불가피할 때는 좀 하는 수가 있지만 있는 힘을 다해 말씀만 그대로 전하고 신앙의 본질에만 주력하려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좀 지나고 나면 마르다 계통은 지구 살리기나 북한 동포 돕기를 하는 일에 띠를 두르고 행진을 하고, 마리아의 노선을 잘 지키는 교회들은 오늘도 초대교회의 모습이 새파랗게 살아 있는 모습을 유지하게 됩니다.

-------------------------------------------------------------------------------

(보충 답변)

1. 전도인으로 예를 들면

전도인이 밥도 먹고 전도지도 인쇄하는 것은 전도를 더 잘하기 위함입니다. 먹고 나가면 더 힘 있게 더 많이 전할 수 있기 때문에 먹습니다. 전도지도 입으로 전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전도지가 남아서 그 사람에게 계속 말씀이 반복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도는 목적이며 전도지와 식사는 전도를 위한 수단이며 방법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할 때는 식사도 전도지도 생각하지 않고 사명감 하나만 가지고 뛰쳐 나가는 사람은 전도의 방법이 좋지 않아서 효율이 없을 것 같은데 좀 멀리 넓게 따져 보면 이 사람은 전도인이고 그 결실이 있고, 반대로 식사나 전도지 인쇄를 잘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개 계획만 많지 실제 전하는 열의도 식어 지고 결과도 미미합니다.

전도는 전도의 목적이며 전도지와 식사는 전도의 전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전도 자체에 주력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도 그 면에 부족은 주님이 채우시나 전도의 방법에 주력하는 이들은 그 동기는 좋았지만 세월이 가면 전도 자체로부터 멀어 져 있습니다.

2. 본문의 경우

주님은 날 구원 하러 오신 구주시니 이 구주와 가까운 것이 구원에 가까운 것이고 이 구주를 붙들어야 구원을 붙드는 것인데, 마리아는 구원을 바로 붙들었고 가깝게 다가 섰고 마르다는 그 구주를 붙들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다가 주님과 거리가 멀어 져 있었습니다. 주님의 육체에 밥을 넣어 드리는 것이 구원이었다면 마르다가 복 있는 사람이나 주님의 말씀이 요6:63에서 영이요 생명이니 마리아는 영이요 생명을 받고 있는 중이었고 마르다는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을 전하러 다니는 예수님의 육체에 식사 당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것도 필요하고 저 것도 있어야 하지만 어느 것이 목적이며 어느 것이 방편인지 그리고 어느 것이 본질이며 어느 것이 지엽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연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집회를 가서 식사 당번을 하는 것은 시시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연보를 해야 할 사람이 연보를 하되 그 연보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이고 집회를 가서 식사 준비를 하되 그 식사를 준비하다가 말씀과 멀어 지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3.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했는데 아말렉 중에 몇을 살려 제물로 드리려고 살려 놓았을 때 삼상15:22에서 사무엘을 통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이 믿음이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인데 사울은 하나님께 거역을 하면서 제사라는 제도에 필요한 제물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마23장에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셨는데 바로 그들의 모든 죄가 이런 성격이었습니다.


2009-11-24 17:31:19
jdy

 

신앙노선이 나뉘는 길목에 서서

 

 

: :
: :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한11:20)

: :

: :

: : 1. 위의 구절에 보면 마르다가 먼저 예수님을 맞이하러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고 나중에 맞이 하러 갔습니다.

이 점으로 볼때 두자매의 신앙의 차이가 아니고 성격의 차이라고 합니다.

위 구절만 해석하여 주십시요.

왜 마리아가 먼저 예수님을 맞이하러 안가고 집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요새 마르다를 신학교에서는 재평가하고 있답니다.-우리교회 목사님 말씀)

2. 개인적인 문제
가. 목사님이 새로 오면서 저하고 신앙 관점이 많이 틀려서 오후예배와 수요예배는

안갈려고 합니다. 잘하는 일일까요?

목사님이 오후예배나 수요예배때 말씀을 윤리적으로 많이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나. 그로 인해 교회에서 하는 직분도 감당하기 싫어지고 참석도 잘 안됩니다.
교회를 옮길려고 해도 특별히 인근에 말씀에 충실한 교회가 없는 것 같고

말씀으로 인해 다른 교단에서 자란 마누라하고도 가끔 언쟁이 왔다갔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참고로 저는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를 백영희 목사님이 돌아가시기전까지는 다녔으며,
지금은 총공회교단이 없는 지역에서 다른 장로교단을 다니고 있습니다.



2009-11-24 21:48:40

yilee [ E-mail ]

 

1. 신앙은 행동에 앞서 일단 생각입니다.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한11:20)

1. 두 자매의 비교

- 주신 성격
마르다는 다른 성구에서도 항상 말과 행동이 먼저 앞 서는 적극적 사람이고 마리아는 수동적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자매를 각각 다르게 만드셨고 만드신대로 성경에 기록으로 나타났습니다. 둘 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과 소망에는 한 치의 못함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르다의 행동과 마리아의 행동이 가지는 장단점은 조금 다릅니다. 이 작은 차이는 갈수록 점점 더 격차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 신앙 비교
우선 주님 오신다는 소식에 마르다는 일단 맞으러 나가는 행동파였으므로 주님 사랑의 표현과 다른 어린 신앙들에게 주님을 섬기는 본이 되는 면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랑이 표현 될 수 밖에 없는 자기 속에 주님에 대한 사랑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땔감이 많을수록 군불은 오래 땔 수 있고 강하게 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맞으러 나갈 성의와 반가움이 덜해서가 아니라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맞을 것이며 왜 맞아야 하는지 왜 이 시간에 이 곳을 오는지 내면에서 주님을 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 보기에 주님 사랑이 덜한 것 같아서 어린 신앙들에게 우선은 본이 덜 되는 듯 하지만 마리아처럼 따져 보고 생각하며 연구하며 살펴 보는 노력이 깊어야 주님과의 겉 사랑 속에 들어 있는 속 사랑이 커지는 것입니다.

- 노력의 방향
우선 생각을 먼저 하고 깊게 하는 마리아가 큰 신앙이 되는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생각의 깊이는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에 행동이 늦어 지지 않도록 주의하여 이 면을 길러야 하고, 마르다는 반사적으로 쫓아 가며 발언을 하는 자신의 열정은 넘치는 장점이므로 이 면은 되었고 앞으로는 그런 행동 속에 더욱 깊은 생각과 연구를 발전 시켜야 합니다.

- 오늘 우리는
각 교회에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확연하게 성격이 드러 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두 성격과 그로 인해 신앙에 끼치는 영향과 자기의 경우를 비교하며 자기를 고치며 길러야 할 것입니다.

2. 예배 출석

무릇 교인이란 그 교회의 일반 예배를 성실하게 참석하겠다고 서약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입교 문답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공회 교회들은 그런 문답을 하지 않는데 그 내용을 시시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약속이 그런 형식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절차를 간소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죄 되지 않으면 참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배는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오늘 강의는 평소 잘 아는 것이니까 가지 않아도 불편이 없고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학습에 주력하겠다는 그런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살펴 순종하려는 노력의 최고 절정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서 우리가 가질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성'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내 마음에 은혜 되는 면도 예배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그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정성이 문제입니다.

다만 은혜가 되지 않는 설교 시간을 자꾸 참석을 하다가 자기의 신앙이 점점 후퇴가 된다면 더 악화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시간을 출석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은혜입니다만 은혜 여부로 예배 출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특히 교회의 소속 문제는 가정의 식구와 같은 것이어서 어떤 때는 별거가 더 유리할 수도 있고 또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이혼도 할 수는 있지만 밥을 잘한다 못한다 돈을 잘 번도 못 번다는 이런 생활 속에 사소한 문제로 부부를 바꾸거나 부모 자녀를 교체하는 것은 가족의 기본 개념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가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는 더 이상의 신앙 손해를 보는 것보다 대안을 찾아야 하고 그 대안은 교회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다만 너무 쉽게 우습게 그러지 말라는 뜻입니다. 헤어질 때는 정말 견디지 못해서 나뉘었으나 훗날 돌이켜 보면 참으로 후회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전체 1

  • 2021-04-27 20:33
    구 게시판 자료화

전체 3,80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문답방 이용 - ①기존문답보관실 ②비공개질문 ③비실명진행
공지 | 직원 | 2018.02.21 | 추천 0 | 조회 13281
직원 2018.02.21 0 13281
12864
New UP [과학]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사실 (1)
12864 | #3511 | 2023.03.21
#3511 2023.03.21 0 9
12863
New UP [주해] 강도 (1)
12863 | #3510 | 2023.03.21
#3510 2023.03.21 0 7
12862
New UP [주해] 열 처녀 비유에서 등의 의미 (1)
12862 | #3503 | 2023.03.21
#3503 2023.03.21 0 11
12860
New [기타] 유대인의 성경 (1)
12860 | #3500 | 2023.03.20
#3500 2023.03.20 0 14
12859
New [주해] 여자와 원수 (1)
12859 | #3492 | 2023.03.20
#3492 2023.03.20 0 11
12858
New [주해/사회] 기독교 사상과 환경파괴 (1)
12858 | #3488 | 2023.03.20
#3488 2023.03.20 0 11
12857
비밀글 문닫는소리 (2)
12857 | 질문자 | 2023.03.18
질문자 2023.03.18 0 10
12853
비밀글 [주해] 일곱 영 (1)
12853 | #3487 | 2023.03.17
#3487 2023.03.17 0 2
12852
[교회사] BC와 AD (1)
12852 | #3486 | 2023.03.17
#3486 2023.03.17 0 17
12851
[주해] 정함이 없도다 (1)
12851 | #3485 | 2023.03.17
#3485 2023.03.17 0 19
12850
[주해] 다윗과 사울의 만남 (1)
12850 | #3484 | 2023.03.16
#3484 2023.03.16 0 24
12849
[홈운영] 검색 불편 (1)
12849 | #3479 | 2023.03.16
#3479 2023.03.16 0 54
12848
[설교록] 89년 5월 집회 말씀 요약 부탁 (1)
12848 | #3476 | 2023.03.16
#3476 2023.03.16 0 14
12846
[시편] 부활의 예표 (1)
12846 | #3469 | 2023.03.15
#3469 2023.03.15 0 23
12845
[주일] 산후조리를 주일에 해 주고 돈을 받을 수 있는지요? (1)
12845 | #3466 | 2023.03.15
#3466 2023.03.15 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