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름'에 대한 안내
일반 공지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0.12.29
본 연구소는 1998년 개설 때부터 모든 글의 이름은 익명을 허락했습니다.
이 곳에 글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실명, 익명'에 대한 안내입니다.
(일반 원칙)
신앙의 세계에서는
연보를 포함하여 어떤 글도 행동도 결과도 실명으로 표시하는 것이 바르고 좋습니다. 자유성은 책임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면피가 아니라 어린 교인을 기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하늘의 복과 사명 때문에 익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자기 자랑을 실명으로 펼치고 자기 잘못은 익명에 숨지만 이 곳은 신앙의 연구 장소이므로 그들과 반대입니다.
참고로 백 목사님은 실명이 아닌 질문은 상대도 하지 않을 정도였고 익명 발언과 질문은 아주 나쁜 사람으로 상대했습니다.
(실명 원칙)
글에는 주인의 이름이 붙어야 글에 대한 책임도 따르고 남들에게 구체적으로 평가를 받아 글 쓴 사람의 발전에 유리합니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방종으로 타락하며 남을 해치게 됩니다. 익명은 죄의 낙을 누리고 싶은 자기를 숨겨 주는 어두움입니다.
실전보다 빠른 연습과 훈련은 없습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가서라도 주님과 직접 얼굴을 대면한 것이 복 된 것입니다.
또한 글의 주인을 표시해야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시간을 아끼게 하며 도로의 표시판과 안내판처럼 되어 효율적이 됩니다.
한국의 교단이 5백 개가 넘지만 교단 이름을 밝히면 손해 보던 시절에 합동 고신 통합 재건... 모두가 익명으로 살았습니다.
1998년 이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백영희 연구'를 간판에 붙였다 살해 위협까지 받은 적이 있었고 결국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이 곳의 실명 활동이 세월을 통해 자리를 잡게 되자 전국 총공회 교회들이 비로소 교단을 표시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연구소는 불신이든 교계든 내부든 누구에게든 언제나 어떤 주제를 두고도 늘 '백영희 신앙' 노선에서 활동을 표시했습니다.
* 약자 표시
다만 실명을 표시하는 방법은 이름을 또렷하게 적어 좋을 때는 그렇게 했고, 약자로 사용해도 알 수 있을 때는 줄였습니다.
신앙과 공회의 원칙은 외형과 방법에 대해서 늘 최소화를 추구했고 외형을 줄인 역량으로 내용과 실제 면에 주력했습니다.
약자로 표시할 때는 일관성을 유지하여 누구나 글 임자를 알 수 있게 했고 직책이 많을 때는 직명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이름을 감추려는 익명이 아니라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직명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한 실명입니다.
* 공용 표시
한 집에 가족들은 현관 열쇠를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합니다. 연구소는 직원이 많으니 공용으로 사용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동사무소가 서류 발급할 때 누가 발급하든 동장 이름으로 나갑니다. 이 것은 조작이 아니며 대표란 뜻이며 공용일 뿐입니다.
연구소 입장으로 발표를 할 때 '서기'나 '담당'이란 공용입니다. 담당1, 2, 3은 내부 직원이나 회원의 업무 분담을 표시합니다.
* 일반화 표시
이 곳은 연구 목적을 중심에 둡니다. 그런데 '연구'란 표현 때문에 공회 교인은 그 성향상 바짝 얼어 버려 적지를 못합니다.
전국 교회 현장에서 강단을 쉽게 유린하는 교인, 총공회 회의 때 험한 표현을 쏟아 내는 용감한 분들, 목숨 건다는 분들이..
막상 이 곳에 발언하면 토씨 하나까지 남게 되고 전국이 지켜 보게 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숨어 버립니다.
그렇게 용감한 분들의 패기와 신앙과 순교적 결단을 알고 보니 그냥 해 본 소리였고 무책임하고 하나의 소음이었습니다.
반면에 연구소 직원들은 총공회에서 제명까지 당하며 발언권도 얻지 못했으나 이 곳에서 할 말을 떳떳히 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 직원들을 자신 있게 정죄하고 심지어 경찰에 수백 건으로 고소한 분들이 왜 여기서는 단 한 마디도 못할까요
1998년에 사이트를 개설하자 이 곳에서 훗날 전달 될 때를 생각하게 된 분들이 각 교회에서도 모두 조용해 져 버렸습니다.
1998년 사이트 개설 후 이 곳뿐 아니라 전국의 공회와 교회들과 지도자들의 발언은 지하로 숨어 버리고 이 곳만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행동 때문에 숨는 것이고, 또 그들의 발언에 우리는 배울 것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마음껏 발표할 기회가 있는데 발언하지 않으니 저희만 글을 적게 되고 세월 속에 이 곳은 혼잣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실수했고 이 곳은 그 때 실수가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이 곳이 더 우수한 곳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총공회 지도자까지 아무도 발표를 못하게 되자 연구소는 독주하는 즐거움보다 동참을 이끌기 위해 이 곳의 말을 줄였습니다.
이 노선 연구의 발표 자체는 복음 운동이므로 줄일 수 없고 이 곳 발표자가 발표하는 글을 일반화 된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대구공회 원로가 알고 있는 말, 그 원로가 했어야 할 발표, 그런데 발표해야 할 시점에도 하지 않으면 그 원로 대신 발표했고
부공2의 수원에 계신 지도자가 뒤로는 교인들에게 침을 튀기며 설파하면서 외부에 대고는 마치 해서 안 되는 것처럼 할 때는
그 분을 짐작할 이름을 대신 사용해 가며 그 분이 적었다면 옳고 바른 글로 모두 지지하고 따라 갈 글을 이 곳이 적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타 공회인이 이 곳을 비판할 때 자료와 논리를 혼자만 가지고 알려 주지 않는 독식을 늘 말합니다.
책임도 있고 비판도 있어서 애써 발표를 하면 이 번에는 어린 ㄴ들이 건방지다는 교만죄로 막습니다. 어떻게 해야 해결할까?
(익명 사용)
실명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감추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이 땅 위에서 실명도 익명도 함께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실명의 장점도 익명 유익도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을 개설하는 초기부터 바로 익명을 보장한 이유입니다.
* 익명의 장점
앞에서 실명의 장점은 충분히 설명을 했습니다. 이 땅 위에서 그 어떤 것이든 무조건 다 좋고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익명으로 남을 해치는 사람은 신27: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이런 단점을 알면서도 익명에 담긴 장점을 살펴 봅니다. 이 노선은 이 땅 위에 그 어떤 죄와 악도 그 속에서 유익을 찾습니다.
실명으로 묻거나 발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잘못을 적겠으나 함께 지은 죄의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간음죄는 둘이 함께 발표하고 회개하면 더 좋은데 한 사람은 신앙이 된다 해도 상대가 그렇지 못하면 공중 고백은 못합니다.
교회를 살리는 발표인데 저작권 명예훼손으로 막는다면 사탄의 괴수지만 생명 운동을 위해 익명으로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이 곳은 옳은 것만 추구하자는 일념 때문에 실명 대신 익명을 허용해 왔습니다. 익명에 제한이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회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어떤 제한이 없도록 했습니다. 저희 알기에 한국 교계에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 익명의 상식
이 곳의 익명은 방문하는 분들과 회원들 익명 발표만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직원들에게도 보장합니다.
좌익 쪽으로 활동하는 불행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불법은 따지지 않고 상대방의 불법만 따집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자기 자유는 있고 상대 자유는 필요가 없고 자기 말은 여론이고 상대방 지지는 맹신이고 자기는 진리고 반대는 비진리인가?
이 곳의 글은 그 어떤 글도 운영자의 글일 수 있습니다. 이 곳 직원 글은 방문인이 직원인 듯 적고 그 속에 숨을 수 있습니다.
서부교인이 아닌 사람이 서부교인 것처럼 글을 적으면 자유지만 서부교회에 없던 일을 있었다고 적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서부교회 강단에 중이 설법을 했다는 글을 서부교인 이름으로 적었고 서부교회에 그런 사실이 없다면 관리자가 조처합니다.
이 글을 본 서부교인이 구체적으로 반론해 주면 거짓말 한 글은 오히려 서부교회 박해를 알리게 되어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전파 된다 해도 교회가 죽든지 말든지 서부교회는 임자가 없고 나그네뿐이니 대체로 방관하는 추세입니다.
관리자가 직접 이름과 글의 내용을 조처할 수는 있으나 그 교회는 목탁을 칠 수도 있는 교회니 함부로 손댈 수도 없습니다.
글이 올려 지는 순간 이미 본 사람이 있고 관리자가 쉽게 손을 대기 시작하면 연구소의 연구를 위한 공정성 문제가 생깁니다.
이럴 때 관리자가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조처하는 것은 '서부인' 정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럴 리가 없는데, 언제였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올려 버리면 이 질문이나 댓글이 먼저 올린 글의 원본과 이름을 손대지 않고도 일단 무난한 조처가 됩니다.
'관리자' 이름을 쉽게 사용하면 그 글에 대한 조처로서는 더 낫겠지만 발표한 글에 대하여 심판이 편든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관리자' 이름은 그 이름이라야 할 때 사용하고, 관리자 이름보다 연구 발표를 위해 더 은혜로운 방법이 있다면 그리 합니다.
오로지 연구소의 복음운동을 막고 나서는 목적만 가진 분들은 연구소 직원의 익명 발표를 두고 자문자답의 조작이라 하는데
익명을 무제한 허용했는데 이 정도 발언을 한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을 대상이 봅니다. 고전14:20에서 금지한 문제입니다.
1998년 이 사이트의 운영 초기부터 이런 방향을 발표했고 함께 운영했던 내부인조차 화만 나면 이런 말로 주변을 흐립니다.
이런 말에 현혹 된 사람이나 이런 말을 하는 직원이나 심지어 외부 방문인조차 이런 생각이 든다면 공개 지적을 부탁합니다.
뒤로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내막을 알기 때문에 공론화하면 바보가 될 터이라 뒤로만 사탄처럼 허는 운동을 합니다.
* 익명의 사용
사이트 운영진과 관련 회원은 익명을 사용할 때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익명을 사용할 때, 최소한 직원 등 내부 운영진을 표시하는 이름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유는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익명을 사용하는 분이 '개인'과 '단체' 는 구별하면 좋겠습니다. 서부인 서부측 부공2 등은 개인 이름으로 인식 될 것이고
서부교회, 교역자회, 교학실, 서기 등 이름은 단체 차원이 전제 된다고 보입니다. 비록 개인 이름도 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단처럼 운영자 측이 주로 적겠다고 한 곳에 정식으로 글을 올릴 때는 비직원이란 표시를 이름에 담아 주셨으면 하고
소식은 누구든지 올릴 수 있지만 가끔 각 공회나 교회가 단체 차원에서 올린다는 점에서 개인인 경우 주의해 주시면 합니다.
(진행 중)
이 곳에 글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실명, 익명'에 대한 안내입니다.
(일반 원칙)
신앙의 세계에서는
연보를 포함하여 어떤 글도 행동도 결과도 실명으로 표시하는 것이 바르고 좋습니다. 자유성은 책임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면피가 아니라 어린 교인을 기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하늘의 복과 사명 때문에 익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자기 자랑을 실명으로 펼치고 자기 잘못은 익명에 숨지만 이 곳은 신앙의 연구 장소이므로 그들과 반대입니다.
참고로 백 목사님은 실명이 아닌 질문은 상대도 하지 않을 정도였고 익명 발언과 질문은 아주 나쁜 사람으로 상대했습니다.
(실명 원칙)
글에는 주인의 이름이 붙어야 글에 대한 책임도 따르고 남들에게 구체적으로 평가를 받아 글 쓴 사람의 발전에 유리합니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방종으로 타락하며 남을 해치게 됩니다. 익명은 죄의 낙을 누리고 싶은 자기를 숨겨 주는 어두움입니다.
실전보다 빠른 연습과 훈련은 없습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가서라도 주님과 직접 얼굴을 대면한 것이 복 된 것입니다.
또한 글의 주인을 표시해야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시간을 아끼게 하며 도로의 표시판과 안내판처럼 되어 효율적이 됩니다.
한국의 교단이 5백 개가 넘지만 교단 이름을 밝히면 손해 보던 시절에 합동 고신 통합 재건... 모두가 익명으로 살았습니다.
1998년 이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백영희 연구'를 간판에 붙였다 살해 위협까지 받은 적이 있었고 결국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이 곳의 실명 활동이 세월을 통해 자리를 잡게 되자 전국 총공회 교회들이 비로소 교단을 표시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연구소는 불신이든 교계든 내부든 누구에게든 언제나 어떤 주제를 두고도 늘 '백영희 신앙' 노선에서 활동을 표시했습니다.
* 약자 표시
다만 실명을 표시하는 방법은 이름을 또렷하게 적어 좋을 때는 그렇게 했고, 약자로 사용해도 알 수 있을 때는 줄였습니다.
신앙과 공회의 원칙은 외형과 방법에 대해서 늘 최소화를 추구했고 외형을 줄인 역량으로 내용과 실제 면에 주력했습니다.
약자로 표시할 때는 일관성을 유지하여 누구나 글 임자를 알 수 있게 했고 직책이 많을 때는 직명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이름을 감추려는 익명이 아니라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직명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한 실명입니다.
* 공용 표시
한 집에 가족들은 현관 열쇠를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합니다. 연구소는 직원이 많으니 공용으로 사용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동사무소가 서류 발급할 때 누가 발급하든 동장 이름으로 나갑니다. 이 것은 조작이 아니며 대표란 뜻이며 공용일 뿐입니다.
연구소 입장으로 발표를 할 때 '서기'나 '담당'이란 공용입니다. 담당1, 2, 3은 내부 직원이나 회원의 업무 분담을 표시합니다.
* 일반화 표시
이 곳은 연구 목적을 중심에 둡니다. 그런데 '연구'란 표현 때문에 공회 교인은 그 성향상 바짝 얼어 버려 적지를 못합니다.
전국 교회 현장에서 강단을 쉽게 유린하는 교인, 총공회 회의 때 험한 표현을 쏟아 내는 용감한 분들, 목숨 건다는 분들이..
막상 이 곳에 발언하면 토씨 하나까지 남게 되고 전국이 지켜 보게 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숨어 버립니다.
그렇게 용감한 분들의 패기와 신앙과 순교적 결단을 알고 보니 그냥 해 본 소리였고 무책임하고 하나의 소음이었습니다.
반면에 연구소 직원들은 총공회에서 제명까지 당하며 발언권도 얻지 못했으나 이 곳에서 할 말을 떳떳히 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 직원들을 자신 있게 정죄하고 심지어 경찰에 수백 건으로 고소한 분들이 왜 여기서는 단 한 마디도 못할까요
1998년에 사이트를 개설하자 이 곳에서 훗날 전달 될 때를 생각하게 된 분들이 각 교회에서도 모두 조용해 져 버렸습니다.
1998년 사이트 개설 후 이 곳뿐 아니라 전국의 공회와 교회들과 지도자들의 발언은 지하로 숨어 버리고 이 곳만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행동 때문에 숨는 것이고, 또 그들의 발언에 우리는 배울 것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마음껏 발표할 기회가 있는데 발언하지 않으니 저희만 글을 적게 되고 세월 속에 이 곳은 혼잣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실수했고 이 곳은 그 때 실수가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이 곳이 더 우수한 곳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총공회 지도자까지 아무도 발표를 못하게 되자 연구소는 독주하는 즐거움보다 동참을 이끌기 위해 이 곳의 말을 줄였습니다.
이 노선 연구의 발표 자체는 복음 운동이므로 줄일 수 없고 이 곳 발표자가 발표하는 글을 일반화 된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대구공회 원로가 알고 있는 말, 그 원로가 했어야 할 발표, 그런데 발표해야 할 시점에도 하지 않으면 그 원로 대신 발표했고
부공2의 수원에 계신 지도자가 뒤로는 교인들에게 침을 튀기며 설파하면서 외부에 대고는 마치 해서 안 되는 것처럼 할 때는
그 분을 짐작할 이름을 대신 사용해 가며 그 분이 적었다면 옳고 바른 글로 모두 지지하고 따라 갈 글을 이 곳이 적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타 공회인이 이 곳을 비판할 때 자료와 논리를 혼자만 가지고 알려 주지 않는 독식을 늘 말합니다.
책임도 있고 비판도 있어서 애써 발표를 하면 이 번에는 어린 ㄴ들이 건방지다는 교만죄로 막습니다. 어떻게 해야 해결할까?
(익명 사용)
실명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감추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이 땅 위에서 실명도 익명도 함께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실명의 장점도 익명 유익도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을 개설하는 초기부터 바로 익명을 보장한 이유입니다.
* 익명의 장점
앞에서 실명의 장점은 충분히 설명을 했습니다. 이 땅 위에서 그 어떤 것이든 무조건 다 좋고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익명으로 남을 해치는 사람은 신27: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이런 단점을 알면서도 익명에 담긴 장점을 살펴 봅니다. 이 노선은 이 땅 위에 그 어떤 죄와 악도 그 속에서 유익을 찾습니다.
실명으로 묻거나 발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잘못을 적겠으나 함께 지은 죄의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간음죄는 둘이 함께 발표하고 회개하면 더 좋은데 한 사람은 신앙이 된다 해도 상대가 그렇지 못하면 공중 고백은 못합니다.
교회를 살리는 발표인데 저작권 명예훼손으로 막는다면 사탄의 괴수지만 생명 운동을 위해 익명으로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이 곳은 옳은 것만 추구하자는 일념 때문에 실명 대신 익명을 허용해 왔습니다. 익명에 제한이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회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어떤 제한이 없도록 했습니다. 저희 알기에 한국 교계에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 익명의 상식
이 곳의 익명은 방문하는 분들과 회원들 익명 발표만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직원들에게도 보장합니다.
좌익 쪽으로 활동하는 불행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불법은 따지지 않고 상대방의 불법만 따집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자기 자유는 있고 상대 자유는 필요가 없고 자기 말은 여론이고 상대방 지지는 맹신이고 자기는 진리고 반대는 비진리인가?
이 곳의 글은 그 어떤 글도 운영자의 글일 수 있습니다. 이 곳 직원 글은 방문인이 직원인 듯 적고 그 속에 숨을 수 있습니다.
서부교인이 아닌 사람이 서부교인 것처럼 글을 적으면 자유지만 서부교회에 없던 일을 있었다고 적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서부교회 강단에 중이 설법을 했다는 글을 서부교인 이름으로 적었고 서부교회에 그런 사실이 없다면 관리자가 조처합니다.
이 글을 본 서부교인이 구체적으로 반론해 주면 거짓말 한 글은 오히려 서부교회 박해를 알리게 되어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전파 된다 해도 교회가 죽든지 말든지 서부교회는 임자가 없고 나그네뿐이니 대체로 방관하는 추세입니다.
관리자가 직접 이름과 글의 내용을 조처할 수는 있으나 그 교회는 목탁을 칠 수도 있는 교회니 함부로 손댈 수도 없습니다.
글이 올려 지는 순간 이미 본 사람이 있고 관리자가 쉽게 손을 대기 시작하면 연구소의 연구를 위한 공정성 문제가 생깁니다.
이럴 때 관리자가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조처하는 것은 '서부인' 정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럴 리가 없는데, 언제였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올려 버리면 이 질문이나 댓글이 먼저 올린 글의 원본과 이름을 손대지 않고도 일단 무난한 조처가 됩니다.
'관리자' 이름을 쉽게 사용하면 그 글에 대한 조처로서는 더 낫겠지만 발표한 글에 대하여 심판이 편든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관리자' 이름은 그 이름이라야 할 때 사용하고, 관리자 이름보다 연구 발표를 위해 더 은혜로운 방법이 있다면 그리 합니다.
오로지 연구소의 복음운동을 막고 나서는 목적만 가진 분들은 연구소 직원의 익명 발표를 두고 자문자답의 조작이라 하는데
익명을 무제한 허용했는데 이 정도 발언을 한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을 대상이 봅니다. 고전14:20에서 금지한 문제입니다.
1998년 이 사이트의 운영 초기부터 이런 방향을 발표했고 함께 운영했던 내부인조차 화만 나면 이런 말로 주변을 흐립니다.
이런 말에 현혹 된 사람이나 이런 말을 하는 직원이나 심지어 외부 방문인조차 이런 생각이 든다면 공개 지적을 부탁합니다.
뒤로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내막을 알기 때문에 공론화하면 바보가 될 터이라 뒤로만 사탄처럼 허는 운동을 합니다.
* 익명의 사용
사이트 운영진과 관련 회원은 익명을 사용할 때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익명을 사용할 때, 최소한 직원 등 내부 운영진을 표시하는 이름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유는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익명을 사용하는 분이 '개인'과 '단체' 는 구별하면 좋겠습니다. 서부인 서부측 부공2 등은 개인 이름으로 인식 될 것이고
서부교회, 교역자회, 교학실, 서기 등 이름은 단체 차원이 전제 된다고 보입니다. 비록 개인 이름도 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단처럼 운영자 측이 주로 적겠다고 한 곳에 정식으로 글을 올릴 때는 비직원이란 표시를 이름에 담아 주셨으면 하고
소식은 누구든지 올릴 수 있지만 가끔 각 공회나 교회가 단체 차원에서 올린다는 점에서 개인인 경우 주의해 주시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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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 2022.03.04 | 0 | 539 |
1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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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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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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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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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 2022.03.04 | 0 | 698 |
1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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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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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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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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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 2022.05.24 | 0 | 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