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주님 구원의 사랑과 희생을 알려면?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6.11.24
출처: /연구실/문의답변/283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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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과 희생


1.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과 구원의 희생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하여야 합니까?

2. 두 번째는 이 구원의 사랑과 구원의 희생을 믿고 이 구원대로 가져 누려야
하겠는데 어떻게 누려야 하나요?

3. 세 번째로는 구원에 사랑과 희생을 현실에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항상 생각하고 기념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답변) 십자가 통증을 실감해 보셔야 합니다.


1.예수님의 구원의 사랑과 희생을 아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구원을 위해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실감하는 것이 그 사랑과 희생을 아는 입문입니다. 길을 가시다가 혹 넘어져 다치시거든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날 위해 못박힌 십자가 통증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여자분들이면 일을 하다 손가락 끝을 바늘에 찔려 아플 때, 바로 그 순간에 십자가에서 못박힌 손바닥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생활 속에 우리 육체가 아픔과 통증을 느낄 일은 많습니다. 그때마다 그 고통을 느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고 간단한 체험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통증을 100이라고 했을 때 나 하나만을 구원했다면 나 하나 위해 100 고통을 당했겠지만, 100명을 구원했다면 나 하나를 구원하는 데 들어간 통증은 1이 아니겠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 통증은 그 통증 전부가 나 하나를 위한 통증의 양이었습니다.

여자분들이면 아이를 낳을 때 큰 고생하지 않습니까? 그 통증 가운데 주님 날 위해 못박힌 그 희생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일 최근에 몸이 아프거나 이제 말씀드린 그런 아픔을 체험할 일이 없으시다면,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보셨으면 합니다. 긴급하게 실려와서 못견디고 울부짖는 모습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또 병원 내 다른 곳과 달라 응급실은 가장 위험하고 급박한데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실제 자기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 자기 눈으로 체감할 수 있는 아픔에서 주님 희생을 느끼셔야 합니다.

조직신학 공부로는 주님의 아픔을 '우주적 고난'이라는 한 마디로 포장을 해버립니다. 그런 표현은 한번 들어두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사랑과 그 희생의 실상을 아시려면 내 육체에 가해지는 직 간접의 통증을 겪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과거 답변자를 지도하시던 분은 노동 중에 제일 힘든 노동을 시킵니다. 따로 다치거나 아픈 일이 없어도 가장 힘든 육체 노동을 통해 죄값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대신하신 주님의 희생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 고통보다 천배 만배 더 큰 그 주님의 고통을 실감하는 것이 연속되어지는 만큼 대속의 사랑과 희생을 안다는 뜻입니다.


2.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실제 누리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질문자와 답변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혀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것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면 그는 그 희생을 실제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행한 짓으로 볼 때 현재 우리 손바닥에 못을 박아 벽에 걸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느끼며 평생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고통을 대신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고통이 면제되었습니다.

감옥살이를 면제 받은 사람이 면제 받은 기쁨과 실상을 누리려고 한다면, 감옥 밖의 자유를 느끼고 그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 면제받은 것을 누리는 일입니다. 부모님이 자동차를 사주셨다면, 그리고 우리는 그 자동차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바로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대신 못박히시고 그대신 우리 손에 들어올 못을 면제시켜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 자기 손바닥을 보며 마땅히 못박혀 있어야 할 손바닥에 못이 없다는 이 기쁨, 이 감격에 전율을 느껴야 합니다. 주변에 암진단을 받고 이미 관 속에 들어간 것처럼 낙담을 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며칠 뒤에 암이 아니라는 통고를 새로 받게 되었습니다. 당장에 들판에 나가서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고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암에서 해방된 기쁨을 실제 누리는 사람입니다.

지금 토요일 오후니까 질문자와 답변자는 어느 뒷골목에서 소주를 마시며 비틀거리고 살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어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보고 오히려 불쌍하다고 동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통증 고통을 다 대신 당한 덕분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사랑과 희생을 누리는 사람이 되려면, 그 십자가 고통으로 인하여 현재 내가 어떤 상황을 가지고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면을 많이 느껴보셔야 합니다. 지금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도 감격스러워야 합니다. 지금 내 입에서 주님을 부르게 되었다는 이 사실에 정신을 잃을 만큼 기뻐야 합니다. 생각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는 데에서 그 즉시 그 희생과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3.현실에서 항상 구원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고 기념하시려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지금 자기 손에 박힌 못을 빼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못이 박혔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더욱 많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모르고 마치 마약에 취해 제 기분에 사는 사람 같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면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믿게 하려면, 나는 내가 받은 구원을 노래하고 두 발 뻗고 평안하게 천국을 기다리면 되는데, 내가 나서야 합니다. 그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또 이미 믿는 이들이면 더 잘 믿도록 하기 위해 내가 가기 싫은 심방을 나가야 합니다. 그 수고가 바로 주님이 당할 필요없는 십자가를 지셔서 날 구원한 것과 같은 수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구원에 감격하여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수고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면 바로 그 고통이 이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십자가가 됩니다. 첫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지만 그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해 놓으신 주님께서 그 구원을 자기 것으로 누리게 하는 고생과 수고는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로 따로 떼놓고 가셨습니다. 자타의 구원을 위한 수고, 그것이 바로 주님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생활을 주님 기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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