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홍포입은 부자의 구원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6.12.27
출처: /연구실/문의답변/314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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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에 관한 질문
백목사님의 성경해석중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불택자라는 가르침을 견지하다가 후에 기본구원은 받았으나 성화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능의 정력이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는 가르침으로 돌아서신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관련해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자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부자는 중생되었으니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할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부자의 영은 나사로와 함께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으로 보는것이 마땅한지요?
둘째로 기본구원을 받았아도 신앙의 행위가 없었으니, 다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 구원에 이르는 정력에 이르지 못하고 죄에 이르는 기능으로 화하여 나아간많큼 성경에 기록된대로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부자의 기능의 정력만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고 있는 것이 되는데 제 견해로는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 문제는
위와같은 견해를 견지하면 한사람의 인격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네이버백과사전에서 인격의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동경향 ---요컨대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한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인격에 수반되는 필수요건중 하나는 의식의 단면이 통일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시간상의 변화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통일성이라고 볼것 같으면
부자의 인격의 중심은 그의 중생된 영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 부르는 기능의 정력에 있는 것입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어느면에서는 진실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호랑이는 인격으로 표현할수 없는 흙으로 돌아갈 존재로 흙뿐인 가죽만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이 말에는 이름이 바로 그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현기관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어디에나 편재하시고 인격적으로도 여러 사람을 얼마든지 상대하실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주님은 보좌우편에도 계시고 내 마음에도 계시고 저 사람마음에도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하면 그는 지금 현재 중생된 영의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의 인격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바로 하나님나라는 곳에 현재 시간적으로 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바울의 정력이 얼마많큼 구원이 이루어지고 안이루어졌는지는 주님 강림시에 부활한 몸을 받아봐야 알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도 바울의 기능의 정력이라고 하는 심신 그것도 백목사님의 교훈대로라면 심신은 물질인데 여기에 바울의 인격이 거할수 있겠는지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같은 바울의 경우을 예를 들어 부자의 경우를 본다면 부자가 지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하고 부르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격이라는 통일성이 완전히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중생한 사람이라면 그 중생된 영은 아브라함품에 있을것이고 그 기능의 정력은 지옥에 있는 것이 되는데 부자의 중생된 영이 아브라함품에서도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도 심신의 기능이 아버지여 불렀다고 하면 한사람의 인격이 두인격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인격의 필수 요소인 통일성이 상실되는 것 아닙니까?
이같은 문제는 영과 혼을 하나로 보고 몸을 다른 하나로 보는 견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나사로는 분명 불신자이며 그 영혼이 지옥에서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그 인격의 중심이 바로 지옥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능구원이라는 말은 순종으로만 표현 하면 아주 쉬운 문제이고 이 순종의 문제만으로 이끌고 가면 얼마든지 성경이 보여지는데서 힘을 얻지만 제자신이 무엇좀 알아보겠다고 이렇게 저럴게 따져보면, 앞 뒤가 잘 맞지 않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면들이 제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이와같은 추론이 맞기나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목사님 지적대로 아직 기능구원의 개론도 파악 못하고 있는 것인지 도움을 청합니다.
(답변) 안 믿는 세상이 알고 있는 인격의 통일성과 성경의 인격 언급은 아주 다를 것 같습니다.
기능구원론과 관련된 문제는 이곳 홈에서 여러번 소개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번 질문은 비교적 소상하게 문제점을 지적하셨기 때문에 혹 재론이 되더라도 자세하게 답변해 보겠습니다.
1.질문하신 내용은 '홍포입은 부자'의 예화에서 살펴본 '기능구원' 문제입니다.
①'기능구원론'이란?
우선, 질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1980년대 말, 백목사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기능구원론' '중생의 본질' 등 몇 가지 중요한 교리를 마지막으로 집중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그 중에 하나인 기능구원론에 관련된 것입니다.
기능구원론은, 조직신학에서 구원론을 둘로 나눌 때 건설구원에 속하는 분야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되는 순간 무조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받아 가지는 것이므로 이를 기본구원이라 하고, 그 믿는 사람이 각자 평생 노력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길러가는 것은 건설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건설구원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전처럼 죄를 지어 죄의 실력을 쌓아가느냐 아니면 이제 중생된 이후에는 의의 실력을 건설해 가느냐는 것으로 각자의 실력은 결정됩니다.
의를 행한 만큼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의를 행하는 기능이 생기고 자라가는 것이니 이를 기능구원이라고 다시 세분하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 기능이 얼마나 의를 행할 수 있도록 의의 기능을 많이 가지고 또 강하게 가지고 있느냐는 것에 따라 믿는 각 사람의 신앙건설은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갈 때는, 자기가 만든 의의 기능은 가지고 가게 되는데, 자기가 만들어 둔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이 지옥에 버려진 죄의 기능이 집에서 갖다 버린 쓰레기처럼 그냥 소각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죄의 기능이 끝없이 계속되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원망하며 애통하게 될런지?
백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의 예화를 통해, 믿는 사람이 비록 천국에 가게 되더라도 자기가 만들어 놓은 죄의 기능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물 한 방울을 찾으며 고통받게 될 것을 생각하여, 오늘 죄와 의를 두고 망설이는 믿는 사람들에게 심은 대로 거두는 훗날을 생각하고 의로 살기를 죽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쳤습니다.
②이 기능구원론에 대한 반론은 공회 내에서부터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단일성이기 때문에 기능의 분리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보다 분리된 기능이 호소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공회내에서도 강력한 반론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은, 1980년대 말 기능구원론을 가르치던 당시 백목사님 소속 교단인 총공회 내부의 신학교수들과 공회의 최 선임 목회자들 그리고 공회 전체 교역자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소장층 주도 인물들이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그분들은, 인격이란 단일성이므로 둘로 나뉘어 희로애락을 표시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백목사님 밑에서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일반 직원이나 교인들은 반론이 왜 나오는지를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③또 한 가지 반론은 기능구원론이 나오기 이전의 삼분론과 건설구원론을 반대한 것입니다.
'기능구원'에 관련된 반론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곳은 공회 내의 반론보다 1996년 교계 월간지 '교회와 신앙' 6월호에서 최삼경목사님이 이곳 신앙노선을 비판한 글을 더 관심있게 대하고 있습니다. 공회 내에서 반론하는 이들은 삼분론과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교리를 다 인정하고 있는데 홍포입은 부자의 기능이 호소한다는 것만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기능의 호소를 부인하려면 삼분론,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교리를 먼저 부인해야 논리적으로 맞는데, 공회 내부의 반론은 반론하는 자신들의 말만 가지고 듣는다 해도 스스로 모순이어서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삼경목사님의 반론은 지금까지 공회 외부에서 나온 반론들과 달리 따져봐야 할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도 처음에는 '교회와 신앙'이라는 월간지에서 상담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공회 신앙노선을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죄를 했었는데 이에 대하여 공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사과를 했고 이어 신학적으로 보다 냉정하게 이 교리에 대하여 살펴보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후에 그가 강의하는 신학교 학생들에게 삼분론과 중생론 그리고 건설구원론에 대하여 '인격의 단일성'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문제를 제시하였고 그 자료를 이곳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자료/의 제일 마지막 4개 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분의 지적에 대하여 이곳에서 답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총 35개 정도의 자료가 있습니다.
그 반론 내용은 이제 질문하신 분과는 정확하게 일치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같은 시각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단일성이므로 인격의 분화 또는 분리를 전제로 제시된 백영희 교리체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우선 그분의 글 2개를 바로가기로 볼 수 있도록 여기 소개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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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공회/교리]"거듭(중생)난 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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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에 관한 질문
백목사님의 성경해석중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불택자라는 가르침을 견지하다가 후에 기본구원은 받았으나 성화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능의 정력이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는 가르침으로 돌아서신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관련해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자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부자는 중생되었으니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할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부자의 영은 나사로와 함께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으로 보는것이 마땅한지요?
둘째로 기본구원을 받았아도 신앙의 행위가 없었으니, 다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 구원에 이르는 정력에 이르지 못하고 죄에 이르는 기능으로 화하여 나아간많큼 성경에 기록된대로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부자의 기능의 정력만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고 있는 것이 되는데 제 견해로는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 문제는
위와같은 견해를 견지하면 한사람의 인격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네이버백과사전에서 인격의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동경향 ---요컨대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한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인격에 수반되는 필수요건중 하나는 의식의 단면이 통일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시간상의 변화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통일성이라고 볼것 같으면
부자의 인격의 중심은 그의 중생된 영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 부르는 기능의 정력에 있는 것입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어느면에서는 진실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호랑이는 인격으로 표현할수 없는 흙으로 돌아갈 존재로 흙뿐인 가죽만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이 말에는 이름이 바로 그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현기관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어디에나 편재하시고 인격적으로도 여러 사람을 얼마든지 상대하실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주님은 보좌우편에도 계시고 내 마음에도 계시고 저 사람마음에도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하면 그는 지금 현재 중생된 영의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의 인격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바로 하나님나라는 곳에 현재 시간적으로 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바울의 정력이 얼마많큼 구원이 이루어지고 안이루어졌는지는 주님 강림시에 부활한 몸을 받아봐야 알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도 바울의 기능의 정력이라고 하는 심신 그것도 백목사님의 교훈대로라면 심신은 물질인데 여기에 바울의 인격이 거할수 있겠는지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같은 바울의 경우을 예를 들어 부자의 경우를 본다면 부자가 지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하고 부르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격이라는 통일성이 완전히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중생한 사람이라면 그 중생된 영은 아브라함품에 있을것이고 그 기능의 정력은 지옥에 있는 것이 되는데 부자의 중생된 영이 아브라함품에서도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도 심신의 기능이 아버지여 불렀다고 하면 한사람의 인격이 두인격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인격의 필수 요소인 통일성이 상실되는 것 아닙니까?
이같은 문제는 영과 혼을 하나로 보고 몸을 다른 하나로 보는 견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나사로는 분명 불신자이며 그 영혼이 지옥에서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그 인격의 중심이 바로 지옥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능구원이라는 말은 순종으로만 표현 하면 아주 쉬운 문제이고 이 순종의 문제만으로 이끌고 가면 얼마든지 성경이 보여지는데서 힘을 얻지만 제자신이 무엇좀 알아보겠다고 이렇게 저럴게 따져보면, 앞 뒤가 잘 맞지 않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면들이 제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이와같은 추론이 맞기나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목사님 지적대로 아직 기능구원의 개론도 파악 못하고 있는 것인지 도움을 청합니다.
(답변) 안 믿는 세상이 알고 있는 인격의 통일성과 성경의 인격 언급은 아주 다를 것 같습니다.
기능구원론과 관련된 문제는 이곳 홈에서 여러번 소개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번 질문은 비교적 소상하게 문제점을 지적하셨기 때문에 혹 재론이 되더라도 자세하게 답변해 보겠습니다.
1.질문하신 내용은 '홍포입은 부자'의 예화에서 살펴본 '기능구원' 문제입니다.
①'기능구원론'이란?
우선, 질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1980년대 말, 백목사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기능구원론' '중생의 본질' 등 몇 가지 중요한 교리를 마지막으로 집중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그 중에 하나인 기능구원론에 관련된 것입니다.
기능구원론은, 조직신학에서 구원론을 둘로 나눌 때 건설구원에 속하는 분야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되는 순간 무조건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받아 가지는 것이므로 이를 기본구원이라 하고, 그 믿는 사람이 각자 평생 노력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길러가는 것은 건설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건설구원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전처럼 죄를 지어 죄의 실력을 쌓아가느냐 아니면 이제 중생된 이후에는 의의 실력을 건설해 가느냐는 것으로 각자의 실력은 결정됩니다.
의를 행한 만큼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의를 행하는 기능이 생기고 자라가는 것이니 이를 기능구원이라고 다시 세분하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 기능이 얼마나 의를 행할 수 있도록 의의 기능을 많이 가지고 또 강하게 가지고 있느냐는 것에 따라 믿는 각 사람의 신앙건설은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갈 때는, 자기가 만든 의의 기능은 가지고 가게 되는데, 자기가 만들어 둔 죄의 기능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이 지옥에 버려진 죄의 기능이 집에서 갖다 버린 쓰레기처럼 그냥 소각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죄의 기능이 끝없이 계속되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원망하며 애통하게 될런지?
백목사님은 홍포입은 부자의 예화를 통해, 믿는 사람이 비록 천국에 가게 되더라도 자기가 만들어 놓은 죄의 기능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물 한 방울을 찾으며 고통받게 될 것을 생각하여, 오늘 죄와 의를 두고 망설이는 믿는 사람들에게 심은 대로 거두는 훗날을 생각하고 의로 살기를 죽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쳤습니다.
②이 기능구원론에 대한 반론은 공회 내에서부터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단일성이기 때문에 기능의 분리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보다 분리된 기능이 호소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공회내에서도 강력한 반론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은, 1980년대 말 기능구원론을 가르치던 당시 백목사님 소속 교단인 총공회 내부의 신학교수들과 공회의 최 선임 목회자들 그리고 공회 전체 교역자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소장층 주도 인물들이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그분들은, 인격이란 단일성이므로 둘로 나뉘어 희로애락을 표시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백목사님 밑에서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일반 직원이나 교인들은 반론이 왜 나오는지를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③또 한 가지 반론은 기능구원론이 나오기 이전의 삼분론과 건설구원론을 반대한 것입니다.
'기능구원'에 관련된 반론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곳은 공회 내의 반론보다 1996년 교계 월간지 '교회와 신앙' 6월호에서 최삼경목사님이 이곳 신앙노선을 비판한 글을 더 관심있게 대하고 있습니다. 공회 내에서 반론하는 이들은 삼분론과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교리를 다 인정하고 있는데 홍포입은 부자의 기능이 호소한다는 것만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기능의 호소를 부인하려면 삼분론,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교리를 먼저 부인해야 논리적으로 맞는데, 공회 내부의 반론은 반론하는 자신들의 말만 가지고 듣는다 해도 스스로 모순이어서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삼경목사님의 반론은 지금까지 공회 외부에서 나온 반론들과 달리 따져봐야 할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도 처음에는 '교회와 신앙'이라는 월간지에서 상담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공회 신앙노선을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죄를 했었는데 이에 대하여 공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사과를 했고 이어 신학적으로 보다 냉정하게 이 교리에 대하여 살펴보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후에 그가 강의하는 신학교 학생들에게 삼분론과 중생론 그리고 건설구원론에 대하여 '인격의 단일성'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문제를 제시하였고 그 자료를 이곳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자료/의 제일 마지막 4개 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분의 지적에 대하여 이곳에서 답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총 35개 정도의 자료가 있습니다.
그 반론 내용은 이제 질문하신 분과는 정확하게 일치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같은 시각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단일성이므로 인격의 분화 또는 분리를 전제로 제시된 백영희 교리체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우선 그분의 글 2개를 바로가기로 볼 수 있도록 여기 소개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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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공회/교리]"거듭(중생)난 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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