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삼일예배의 기원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1.18
출처: /연구실/문의답변/344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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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수요기도회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주일을 기준으로한 삼일째 되는날, 즉 수요일에 가지는 기도회 혹은 예배에 대한 기원과 정식적인 명칭(기도회,예배)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답변) 정확한 역사는 찾을 수 없으나, 짐작은 해 볼 수 있습니다. (*내용 보충)


1.질문은 '삼일예배의 기원'이지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①새벽기도는 확실한 기록이 있지만, 밤예배 기록은 기억이 없습니다.

삼일예배나 새벽기도회 또 금요일예배 등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것은 현재 우리 교계에서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안입니다. 만일 확실한 기록이 있다면 대단히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고, 만일 기록이 확실하지 않다면 최초라는 기록을 찾기 위해 또는 만들기 위해 교회사가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게 될 만한 사안입니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회는 1906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목사님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교회기록들이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일예배나 오일예배에 대하여는 특별한 기록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 있다 해도 믿을 만한 자료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②중요한 것은, 사선을 넘나드는 선교 초기의 분위기에서 예배의 기원은 확인이 어렵습니다.

1 주일 중 어느 하루를 정해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사회에 교회가 설립되는 초기입니다. 그러나 초기 선교라는 것은 항상 환란 속에서 정말 하나님 앞에 고통 속에 생사를 넘으며 기도하고 숨어 예배드리는 가운데 시작이 되는데, 이렇게 환란이 크면 하나님의 은혜도 크게 되고, 대개 초기 복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사도행전의 역사와 같은 여러 불길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불길이 일어나게 되면 부어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주체하지 못할 만큼 열심이 일어나고 그리되면 처음에는 주일마다 한번 정도 드리던 예배로는 만족할 수 없어 저절로 예배를 자꾸 보게 됩니다.

그런 초기의 분위기는 오늘 사회적인 평안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로서는 느끼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이런 초기에 수도 없이 예배를 드리게 되다보면, 그것이 앞으로 어떤 예배의 출발이 될지 그 초기 사람들은 모르고 그냥 은혜를 주시니까 단순히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배를 가능한 한 많이 보게 됩니다. 이렇게 예배를 많이 보는 것 중에 어떤 예배가 앞으로 훗날 역사가들이 연구할 때 어떤 종류의 예배의 기원이 되느냐는 것은 그 당시로는 생각도 없고 그냥 현장의 예배가 존재했을 뿐입니다.

초창기 교인들에게는 그런 의식도 없고,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진행하게 되고 훗날 그 기원을 따져 볼 때는 대개 실체는 누락되고, 그냥 훗날 사람들의 아는 대로만 엉뚱한 자료를 가지고 가르치고 배우게 됩니다.

마치, 태아가 뱃속에 세포 하나로 시작을 하지만, 훗날 10개월을 채우고 나올 때는 사람이 갖출 것을 다 가지고 나옵니다. 언제 팔이 생겼고 언제 눈썹이 생겼느냐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날이 최초가 아니고 엑스선으로 보면 살 속에서 분화되는 과정이 또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눈으로 본 것으로 최초를 잡겠다고 기준을 만들면 되지만, 신앙은 어느 신학자나 교계가 그렇게 여론을 취합하여 결정한다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사도행전이 사도의 행전이지만 실은 성령행전인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③삼일예배와 오일예배의 기원에 대하여 가장 정통한 설명은

주일예배에서 주일예배로 이어지던 때가 있었는데, 쏟아지는 성령의 능력을 주체하지 못하여 자꾸 예배를 더 보고 싶어 이 날 저 날 크게 생각없이 예배를 드리다가, 차라리 하루를 정하자 하여, 주일과 주일의 사이에 예배를 두어, 지난 주일 예배 이후 식어지듯 은혜를 삼일예배를 통해 다시 살리고, 또 주일의 은혜는 3일을 갔지만 삼일예배의 은혜는 주일만 못하니까 오일예배로 중간에 넣은 것이라고 공회 내에 전해 내려 옵니다.

이 설명은 백목사님의 설명인데, 백목사님은 1936년 27세에 믿게 된 분인데, 그 당시 백목사님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하던 분들이 한국교회 아주 초창기 선교사들이었습니다. 당시는 믿는 사람 숫자도 몇 되지 않았고 그 최초 선교사들은 부산 경남 지역 전부를 다 합해도 목회자 10여명도 안 되던 시절에 파송되고 고생한 분들이므로, 백목사님은 한국교회 초창기 선교사들을 직접 접하며 이런 내용을 알게 된 것이므로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백목사님의 판단력과 영안은 남다른 면이 있고, 특히 신학자들의 외형적 연구와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보는 면이 있기 때문에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일예배는 구역예배라고 합니다. 오일예배는 예배당에서 모이지 않고 각 구역별로 가정에서 소모임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총공회는 가정 방문으로 예배드리는 것에 여러 폐단이 많고 또 예배당에서 목회자의 인도로 예배드리는 면이 더 낫겠다고 깨닫고 삼일예배와 꼭같이 오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 다른 곳에서도 같은 깨달음으로 그렇게 하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이 알기로는 오일철야기도회나 구역예배가 아니라 '오일밤예배'를 정식으로 드린 것은 서부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목회자가 오일예배까지 인도하는 데에는 설교실력이 따르지 못해서 밤예배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은 따라 하지 못하고, 또 가정으로 모여 구역별로 모이는 예배도 어렵다는 것을 뒷늦게 깨닫게 되자 대안으로 그 당시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든 기도불을 금요일철야기도회로 이어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금요일 저녁의 오일예배는 공회에만 있을 것입니다.


2.교회사와 최초라는 기록

①이번 질문은 약간 다른 측면에서 답변할 내용이어서 질문자께 양해를 구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기 쉬운 '최초'에 대한 기록, 또는 최초는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남겨지고 의미가 있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살펴볼 주제이기 때문에 답변이 엉뚱한 곳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질문자가 여기서 말하는 그런 의미 때문에 질문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질문한 것이겠지만, 이 문제는 일반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번 질문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반적인 면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②일반적으로, 교회사는 '최초'라는 기록들에 대하여 남다른 의미를 갖고 대합니다.

신학은 철학 의학 법학과 함께 서양의 학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 중 하나로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학문 중에 한 분야로 취급할 정도이니 신약 분야가 가지고 있는 자료나 연구체계 등은 전통이 깊고 그 양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기록은 교회사 분야입니다.

교회사는 항상 '최초'라는 표현 또는 '기원'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대단히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된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그 출발이 가지는 의미는 거의 절대적입니다. '최초'라는 것은 단 한번의 행위에 그치지만 그 최초를 기록한 사람이나 사건은 역사를 두고 늘 첫 자리를 차지하거나 또는 제일 중앙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최초라는 것은, 학자들마다 먼저 발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핵심 쟁점이 되고, 또 최초라는 것을 제작을 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면 최초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주로 명예욕심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③'최초'라는 기록은, 오직 신앙세계 안으로 들어오면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최초' 또는 '기원'이라는 의미는 어느 사회 어느 곳에서도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유독 이것이 신앙세계 안으로 들어오면 아주 독약 중에 가장 독약이 되는 이상한 것이 됩니다. 이유는 '최초'라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최초'에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이 명예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명예 뒤에 가려지게 됩니다. 세상이나 신앙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이렇게 되는 것이 하등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명예를 취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의 명예 때문에 가려지게 된다면 이를 선악과 먹는 죄로 생각합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종들이기 때문에 명예는 하나님이 가지셔야 하고, 종은 거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주인의 말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종은, 자기가 최초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또는 그것을 가졌다고 거기에 의미를 두는 일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④따라서, 교회사를 대하실 때는 '최초'라는 기록을 말 그대로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교회사의 최초는, 거의 최초가 아니라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세상 역사까지 언급을 하자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교회사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최초'라는 그 의미를 알든 모르든 '최초' 때문에 움직이는 일이 없고 최초로 움직였다 해서 기록으로 남겨두거나 기념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주님 명령 따라 움직인 것 뿐이고, 다만 움직일 때 살얼음 판을 걸었으며 생사를 걸고 또는 있는 충성 다하여 순종에만 집중했을 뿐입니다.

전공을 세우기 위해, 최초의 기록을 의식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말씀으로 살아보려고 한 사람은 지금도 그런 면에는 눈을 뜰 시간이 없습니다. 하물며 선교 초기라든지 개척 초기 또는 고대사와 겹치던 미개한 시절 목숨을 항상 내놓고 살던 그런 때겠습니까?

기독교 역사에 정말 의미 있고 신앙으로 첫돌을 쌓고 세워나온 의미 있는 사건들은 거의 전부가 그 초창기 역사를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혀 뜻하지 않게 기록들이 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록의 의미는 오늘 우리 손에 넘겨진 기록만으로 말할 때 '최초'일 수는 있지만, 그 최초가 진짜 최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⑤혹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훗날 논란이 없는 최초 기록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예를 들면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최초의 병원 세브란스, 서울 최초의 교회 새문안, 최초의 전도인, 최초의 순교자, 최초의 삼일예배, 최초의 한국인 찬양 인도자, 최초의 금요일예배, 새벽예배 등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1906년 길선주목사님에 의하여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얼른 들어봐도 그냥 기록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반 교계의 신학적 인식으로는 그들이 공인할 수 있는 그들의 범위와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가족 두 사람으로 산골짜기에서 시작할 수도 있는데, 그들이 그 깊은 산속 산막에서 하나님 앞에 고통 속에 새벽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고 하루해를 살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수년 간 이어지다가 훗날 여러 사람들이 모여지면서 예배당이 되었다면, 그런 기록들이 자세하게 기록에 남아 오늘 한국교회 새벽기도사의 최초 기록으로 올려질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특히 교회는 오늘 수도 없는 교회들이 예배당을 마련하고 눈으로 확인되는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방문 최초 교회처럼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은 쉬운데, 사실 그런 기록들은 교회사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인간놀음이기 때문에 수로 칠 가치도 없습니다. 새벽기도회처럼 삼일예배처럼 주일오후예배처럼 노방전도처럼 구역예배처럼 이런 기록들이 그 초창기 뜨거운 성령의 역사로 초기 한국교회를 불붙인 귀한 사건들인데, 이런 일들은 기록에 남겨질 성질이 아닙니다.

길선주목사님은 1906년 당시 이미 한국교계 전체를 통해 몇 명 되지 않는 초창기 목사님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새벽기도 주창은 많은 사람에게 관찰되고 기억되고 기록에 남고 또 그런 사람 밑에서 배우거나 함께 교류하는 학자들이 후세 교회사를 위해 그 기록을 적게 되는데, 그렇게 되다 보면 그쪽으로 기록이 기우려지게 됩니다. 길선주목사님은 그냥 성령의 인도로 시작했을 것인데, 후세 최초라는 의미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 분의 새벽기도 외의 새벽기도는 그들이 아는 범위에서 확인이 되지 않으니까 학자의 첫 발굴 기록을 위해 '최초'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3.일반적으로 예배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①'예배'는, 교회의 초창기 성격에서 그 유래를 보셔야 합니다.

신약교회 초기 약 313년까지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무참하게 없애고 있었습니다. 외부 환경이 맹수에게 던져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내적으로는 성령의 충만으로 말씀과 순종 그리고 순교에 모든 것을 집중한 상태입니다. 조금도 긴장을 풀 수 없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처럼 예배라는 것이 주일오전, 오후예배로 정해져 있다해도 그 고정예배로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환란이 심해지면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예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됩니다. 주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환란 속에 초기 성도들이 가지는 신앙의 본능 행위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12제자로부터 세계 각처로 흩어져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만들고 그들이 또 전도자가 되어 퍼져나가고 있었고 또 발각되는 곳은 전부 전멸을 당하는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생각한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과 실제 상황을 모르고 신학교 교과서에서 이론으로, 또는 남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방관자로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최초를 생각하고 예배를 드릴 정도로 서로 연락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최초를 만드려고 한 사람도 없었고, 최초가 되어진 행동이라도 그들이 전멸을 당하여 순교하고 그 후배들로 교회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 역사는 전해질 수가 없습니다. 남겨진 자료들은 고대사회에서 흔치 않는 기록 과정에 우연히 남겨져 전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최초는 교회사에서 거의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학문을 알지 못해도 오늘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예배'라는 것은 더욱 그 실체 확인이 어렵습니다. 훗날에 남겨질 의미를 생각하고 기록을 만드는 이들의 예배는 사실 예배라 할 수 없고, 진정한 예배는 우연히 성령의 감동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한 형태로 출발하여 여러 갈래로 나뉘거나 아니면 여기저기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버리기 때문에 그 비교조차도 불가능합니다.


②현재 이곳도 백목사님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지만, 그런 성질을 너무 잘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가 언제 건설구원 교리를 처음으로 발표했는지, 언제 밤기도를 시작했는지... 실은 백목사님 자신은 자신의 마지막 해였던 80세 1989년까지도 자신이 몇 살에 예수님을 믿었는지도 모르고 늘 2년이나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지금 총공회 소속 공회 중에서 '부산공회2'라는 공회가 홈 소개에서 그의 첫 출석을 25세로 적어 소속 모든 교회들이 따라 적고 있으나 만 26세 되던 1936년이 첫 출석입니다. 우리 나이로 27세에 믿었지만, 이 기록조차 현재 총공회 안에서도 2가지 학설로 나뉜 형편입니다.

백목사님의 사례를 제시하는 이유는, 초대교회나 과거 교회사에서 정말 신앙 다운 신앙이 살아 있을 시기에 교회사의 중요한 시작이 다 이루어졌고, 그 시작은 마치 20세기의 백영희목사님 신앙초기와 같은 성향입니다. 1900년대를 살았던 백목사님의 기록조차 그분이 초기신앙모습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 하물며 그 이전 시대겠습니까?


③예배의 시작은, 하나님께 이끌려 저절로 시작됩니다.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주님이 은밀히 이끄시고 초기 신앙의 진실했던 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 은밀한 곳에서, 또는 시골 어느 작은 이름모를 강단에서 조용히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확인이라는 것은 애당초 불가합니다.


④그래도 1906년 새벽기도회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1906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906년의 기록이 확실하다면 그때가 최초가 아니라 그때 새벽기도가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기록들이 그렇습니다. 삼일예배는 손양원목사님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오랜 전부터 믿어온 분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사에서 그 이전 일제 때 기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할 것 같으면 당시 바로 확인해서 결말을 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사와 교회사의 최초라는 의미를 이미 이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곳은 그냥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말도 있구나 하고 듣고 넘어갈 뿐입니다. 따라서 이곳에 질문하신 분이나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께도, 혹 들으면 듣고 또 궁금하시면 이번 질문자처럼 질문도 하시되, 질문자가 아셨든 모르셨든 상관없이 이곳이 권하고 싶은 것은 교회사와 그 기록은 항상 일반 교회사 서적과 학자들이 구성해 놓은 모든 것을 그냥 대충 한번 참고삼아 듣는 정도로 하셨으면 합니다.


⑤참고로,

세계교회사에서는 하루 3번씩 고정 예배를 보던 기록, 하루 5번씩 고정 기도회를 하던 기록 등이 많습니다. 이는 주로 수도원 같이 경건하게 믿으려고 숨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수도원의 역사는 초대교회 이집트 사막 같은 곳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도행전에 제 9시 기도시간이라고 기록한 것을 참고하고 또 우리의 불붙든 초기를 생각한다면, 예배의 횟수는 도무지 하루에 몇 번, 한 주간에 몇 번씩 드리는지 헤아릴 수도 또 남겨진 기록으로 추론할 수도 없는 정도입니다.

하루 몇 번씩 예배를 고정적으로 본 분들이 있다면 그들이 삼일예배 오일예배 새벽예배의 시작일 것인데, 그들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기록에 잡히지를 않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한 것은, 실제 알고 싶어 질문한 내용에 대하여는 거의 아는 바도 없는데, 엉뚱한 답변으로 길게 글을 적어 죄송합니다. 질문자가 그리 생각하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그렇다고 전제해 두고 문답을 한 것처럼 된 부분도 많습니다. 이곳을 찾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므로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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