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교회와 세상 정치의 관계는?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2.09
출처: /연구실/문의답변/3682번
-----------------------------
(질문) 탄핵정국
탄핵 정국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인으로써 어떤 시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사회 참여는 어느 정도 까지가 적당합니까?
사실 어디 까지를 기독교 사회주의로 봐야 하는 건지도 헷갈립니다.
투표도 기독교 사회주의가 되나요? 된다면 할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참여 행위까지를 바람직하다고 말할수 있는지.. 쉽게 질문 드리자면, 지금 나라 상황에서 기독인이 할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위는 무었인가요?
(답변) 사회와 신앙, 정치와 교회의 관계
/초기화면/연구실/남단에서2/에서 관련 내용이 잠깐 소개되었습니다.
-------------------------------------------------------------------------
294번, 세상에 변란이 있을 때는 조용히 숨어 기도하는 지혜를! 04/03/12
-------------------------------------------------------------------------
1.마22:2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원칙
①'정치와 교회', '사회와 신앙'은 분리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정권자입니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과 같습니다. 짐승들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독립운동은 대단히 격렬하게 계속되었고 독립운동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짐승들이 다스리는 것도 상관하지 말고 믿는 사람은 신앙생활만 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정치와 교회, 사회와 신앙의 관계는 서로 저렇게 살아가고 저렇게 운영되는구나 하고 쳐다 보는 것으로 그칠 일이지 교회가 정치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나 또는 정치나 사회가 교회 안을 간섭하고 들어오는 것은 금했습니다.
②독재정권 폭압정치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등의 반인륜적 정권 치하라면?
독재정권이 반인권적이냐 아니냐는 것은 세상이 알고 있는 세상의 의견일 뿐입니다. 폭압정치나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정권이 반인륜적인 범죄집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역시 세상이 자기식으로 자기 기준으로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표현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민주정치나 공산정치나 무정부주의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민족주의나 세계주의나 그 어떤 사상 어떤 체제나 단지 세상일 뿐입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기독교를 인정하기 때문에 성경적이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는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기독교를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실상은 다른 형태로 복음을 막는 면이 있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가 교회를 탄압하는 듯해도 복음의 본질은 그런 세상 체제 자체나 다른 체제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호의적이거나 호전적이거나 동일한 환경과 현실을 제공합니다.
다만 하나는 이런 면으로 더 손해를 끼치고 하나는 저런 면으로 손해를 더 끼치며, 하나는 이런 면으로 이용할 때 유익이 있고 다른 것은 저런 면으로 잘 사용하면 장점이 많은 그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세상 어떤 체제든 꼭같이 상대하고 꼭같이 조심하며 꼭같이 신앙생활의 현실이요 환경이라고 보면서 그 속에서 믿음 생활이 중단되지 않고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 일만 할 뿐입니다.
③지금 현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두고 교회도 의견이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상황은 1945-1987년까지는 일방적 독재체제였고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급격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인이나 시골로 갈수록 보수적이어서 독제체제를 선호하고 젊은층이나 도시로 나올수록 진보적이엇 민주주의를 선호합니다. 지역으로는 충청 경상지역이 보수라면 서울 호남지역이 진보로 분류됩니다.
현 이 사회의 정치상황은 보수측이 완벽하게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가 1987년을 기준으로 진보측에게 꾸준하게 밀려왔고 현 정권은 완전히 진보의 본류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에 대하여 반대측의 반발로 현재 정권 자체가 진공상태로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변란이라고 합니다. 누가 잡든 잡은 상태라면 안정이라고 하는데, 현 상태는 대통령의 탄핵이 정식 절차를 밟고 있어 결론이 날 때까지는 어떤 세력도 확고하게 사회를 통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 체제 자체는 작동하고 있어도 그 체제를 장악한 세력이 없는 상태를 '변란'이라 합니다.
교회로 말하면 고신 합동 등 보수교계는 현저하게 세상정치에 대하여도 보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통합 기장과 같이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는 곳은 뚜렷하게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교계는 계속해서 호전적인 정권이 잡고 있다가 이번에 일단 중단이 되었기 때문에 이 변란 상황을 내심 기대하며 보수정권이 들어서기를 원할 것이고, 진보성향의 교계는 잡았던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변란상황을 원상태로 돌리려고 온갖 힘을 다할 것입니다.
이곳이 안내하는 바는, 세상을 누가 다스리든 또 안정적 정권이 변란으로 요동하든 세상은 세상사람들이 결정하고 운영하도록 버려두고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일에만 전념해야 옳다는 주장입니다. 현 세상정치권의 개혁세력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고 또 세상정치권이 과거 보수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두고 우리 신앙이 보수성을 지키는 일인 줄 아는 것도 무식하기 그지 없습니다.
참고로, 현 국내 상황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면에서 과거처럼 미국에 의존하여 미국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자는 주장과 그 반대로 나가는 것이 옳다는 세력들 간에 일어나는 투쟁입니다. 굶어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것이며 또 굶어죽어도 자존심을 지키고 국민이 힘을 합하면 굶지도 않을 뿐더러 더 좋은 앞날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 정권의 시각입니다. 야당에서는 대체로 그 반대 의견을 가졌거나 아니면 중간정도의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롬13:1-7에 신앙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와 지방과 각 사회에 다시리는 '권세'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그 권세를 맡은 자들은 불신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세상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게 맡겼으므로 교회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맡긴 하나님을 생각해서 그 맡은 인간들은 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원수처럼 미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 권세에 순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여당이 다스리든 야당이 다스리든 믿는 사람은 데모를 하거나 조직적 반항을 하는 것은 신앙이 어리거나 강퍅하다는 증거입니다. 요셉이 원수의 나라 아브라함 때로부터 가서는 안 되는 애굽나라에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왔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 우상의 나라 불신 독재체제 하에서 노예들에게 인권을 고취시키거나 반애굽운동을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애굽의 노예주인이나 법무부 산하 교도관들이 볼 때 요셉은 애굽의 일등 모범 노예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적성국에서 반역의 수괴가 된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성공은 요셉이 처해진 자기 현실과 환경 속에서 불신자 우상종교 원수의 나라 착취자 반인륜의 폭거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을 다스리도록 맡긴 이상 솔선수범해서 순종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요셉에게 신앙에 손해되는 일을 시킬 때는 거부했습니다. 신앙에 금하는 일을 시키지 않는 이상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것이 섞임없는 순수한 신앙입니다.
2.이곳 신앙노선의 세상관계를 참고하시도록 구체적으로 설명드린다며
①이곳은 이상은 진보성을 가지고, 방편은 보수성을 가집니다.
외형적으로는 현 국내 정치상황은 이곳 신앙노선과 완전히 반대방향입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현 집권세력은 이곳 신앙노선과 적대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되어 있고 과거 군부독재 세력은 이곳 신앙체질에 딱 들어맞는 듯 보입니다. 어린 신앙이나 세상 사람들이 알고 느낄 외면을 가지고 따진다면 이곳은 보수독재세력이 가장 좋아할 종교계 중 일부일 것입니다. 그런 만큼 현 진보성향의 정치세력과는 도저히 맞을 수 없을 듯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사상적이고 보다 철학적이며 보다 높은 이상향으로 나간다면 오히려 현 정치세력과 통하는 바가 많고 동지적 느낌까지도 가질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곳은 이념과 철학 차원으로 올라가면 현 진보성향이고, 현실적으로 처리하는 방편으로 내려온다면 보수 독재체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이곳의 정체는, 신앙 유일주의이며 신앙 절대주의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극단적인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서도 국내 교회 중에서 전 교인이 신사참배를 이긴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 통치하의 우리 생활은 그들에게 크게 혜택을 입었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따로 표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로 욕얻어 먹기 꼭 알맞겠지만 백영희신앙노선만큼 강하게 일본의 신사참배를 반대한 곳도 없습니다.
문제는 일본의 신사참배는 신앙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국내 교회 중에서 가장 강하게 투쟁을 했지만, 신앙 문제 이외에 다른 평상 생활에 관련된 것은 일본이 비록 적국이며 점령국이었지만 그들의 앞선 문화와 기술과 경험을 배우고 이를 감사하는 마음에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6.25전쟁 기간에 전 교인이 인민군에 맞서 교회를 끝까지 지키며 전혀 그들에게 협조조차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던 유일한 교회였지만 이승만박사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선거지원하는 일은 단언코 거부했고 비판했습니다. 동시에 기독교인으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박사를 국부로 칭송하고 오늘 그를 비판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박사는 이 나라를 없는 가운데 세워 올린 공로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심취한 박대통령의 청와대를 향해 군부독재로 나라를 먹여살리고 국방을 잘 해서 정치를 잘한다며 모든 교계와 등을 대면서 독재정권을 옹호하면서도 새마을운동에 종교지도자들의 협조를 구할 때는 한 마디로 거절해서 정권의 뒷조사를 받는 등 보복을 당해야 했습니다. 국기배례문제를 두고는 유신정권과 맞서 목회자가 6개월 옥고를 치르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해서 기어코 이겼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민주화 운동에 공로자라고 칭송하는 이들 또 그들이 투쟁한 과거 역사를 두고 백영희신앙노선은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학벌철폐 지방감정해소 개혁 평등 자유의 절대성 등을 실제로 이루어 낸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따라서 백영희신앙노선은 알고보면 진정한 진보주의자이며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며 진정한 진보와 보수가 어울리고 협력하여 만들어낸 모범적 산물이며 그러면서도 타협과 흥정으로 적당하게 버무린 방식이 아니고 가장 옳고 바른 길을 찾아 단호하게 목적과 방편을 원칙대로 고수하여 얻어낸 노선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시간이 없고 가치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현 한국과 세계의 모든 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이곳 신앙노선처럼 한다면 진정한 세계평화와 민족번영과 보수와 진보가 다 같이 만족할 이상세계를 건설할 모범 답안으로, 실제 상황으로 백영희신앙노선을 소개할 실제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③이는 이 노선이 특별해서가 아니고 성경이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행한 결과일 뿐입니다.
누구든 믿는 사람과 믿는 교회가 성경을 읽고 자기 아는 양심대로 차분하게 실행해 나가보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은 진리이고 이곳 신앙을 신앙노선 차원에서 살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세상의 변란을 두고 교회가 행동할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요셉이 애굽에서 어떻게 처신했고 어떤 일을 삼가했고 어떤 일을 목숨걸고 했으며 당시 요셉의 마음 자세와 시각이 어떠했는지 창세기 후반부에서 너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자기 땅에 와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격으로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다스리게 해 놓았기 때문에 가이사의 법에 의하여 그 집행관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도 그 십자가 처형을 뒤집어 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간디처럼 무저항주의로 저항했든가요? 세상은 세상의 것으로 주었으니 세상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속한 예수님의 인체와 활동을 그들이 통제하는 것에는 순종했고 항거하지 않았고 세금도 냈고 죽으라면 조용히 죽어주는 것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되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죽어도 안했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의를 위해서는 죽어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께 붙들려 그 말씀대로만 살았고, 겉으로는 세상을 맡긴 그들에게 자기를 내맡겨 때리면 맞았고 모시면 얻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
④현 정권을 지지하는 분들이라면, 또 현 정권의 변란을 즐기는 분이라면?
현 정권이 양심적이고 개혁적이며 이 나라를 먹이고 살리고 자존심을 세운다고 확신하는 분들이 젊은 이들로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개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이 쉬운 분들인데 이런 분들일수록 현 정권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권을 상대로 야당에서 탄핵을 했다고 분개를 하신다면, 요셉과 예수님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요셉이고 예수님이고 성경이고 따질 것 없이 화딱지 난다고 뒤엎고 싶다면 교인이라는 이름을 떼놓고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내 마음에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다스려도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에 좋아 하는 사람이 다스려도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세운 하나님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 좋아하는 사람이 쫓겨나고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와 앉아도 우리는 그 앞뒤 전임과 후임의 교체가 세상법의 기준에 정당하냐, 세상도덕 기준에 옳으냐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성계라는 도둑놈이 나라를 들어먹고 왕이라고 앉아도 우리는 이성계일파와 그 호적상 자녀들에게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웠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그 이성계가 들어먹은 고려나라를 세운 왕건이 삼국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고려를 세웠다고 해서 우리는 고려를 밉게 보고 반항하지 않습니다. 그 고려에게 나라를 빼앗긴 천년고도 신라의 경주가 평민들을 모아 국가체제를 만들어 이 나라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해서 신라에 사는 교인이 신라의 통치를 항거하지 않습니다. 그 신라가 불교국으로 내려와도 그것은 신라가 할 일이고 우리는 예수믿는 것만 우리 할 일입니다. 예수믿는다고 박해하면 죽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죽으면 우리는 순교라 해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감사할 일입니다. 순교할 배짱도 실력도 준비도 갖추지는 못했으나 우리의 사상과 이론은 그렇습니다.
이렇게 도둑놈들이 빼앗아 세운 나라들이 벌써 몇 개나 지나가는 중 일제 식민지는 물건너 도둑놈이 와서 36년을 다스렸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면 순종하지 왜 하나님께서 한민족의 국토를 왜놈들에게 줬느냐고 항의하지 않습니다. 그 일본사람들도 하나님 앞에는 조선족들이나 똑 같은 아담의 후손 하나님 만든 인간들이고 한 혈통입니다. 한반도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왜놈들은 왜놈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의 속좁은 시야에 함께 요동하지 않는 분입니다. 이렇게 별별 도둑과 강도들이 이 사회를 거머쥐어도 우리는 그들이 옳아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순종하라 하신 하나님 때문에 입닥치고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3.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간도 없고 쓸개도 없는가?
우리는 3가지 정도 내심을 가지고 우리대로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을 상대하는 취향이 있습니다. 세상 기준이 아니고 우리 신앙기준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세상정권자들을 향해 우리가 기대할 것, 우리가 내심으로 바라 볼 면을 간단하게 나누어본다면
①잘 먹여 살리면 좋은 정권입니다.
나쁜 정권이라도 순종은 하겠지만, 세상 정권을 향해서 천국길을 안내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소경들에게 천국길은 기대할 수 없으나 소경이 손으로 쥐고 아는 것이 이 세상이니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을 잘 하라고 말하는 정도, 기대하는 정도는 우리 믿는 사람의 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배가 불러 전부들 미쳐 있습니다. 이렇게 배가 부르다고 배부른 짓을 하면 그다음 배고픈 꼴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천국 준비 기회는 세상 뿐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조건은 숨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것이 목숨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살 수 없는 가난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기 피를 팔아서라도 먹을 것을 확보해서 가족들을 살아남게 하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교과서나 소설에서 보지 않고 실제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가 정치를 하든 세상 정치는 결국 꼭같은 것이고 정치하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위해 자기가 휘두르고 싶어 정치하는 것이니 밑에 기고 사는 우리로서는 먹고 사는 것이라도 좋아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독재를 하든 친일을 하든 친미를 하든 공산주의를 하든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이 잘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권이 좋다 나쁘다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공산주의를 그렇게 반대하고 특히 이 신앙노선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일에 가장 맹렬한 것처럼 보이는가? 그들이 믿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출발한 집단이고 역사적으로 그러했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하라고 한 것이며 또 그들이 하는 나눠먹기식은 뒤에 남겨둘 종자까지 다 먹어치우는 일이므로 굶어죽게 되면 이 세상에서 구원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가 비록 독재는 하더라도 끝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잘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적어도 첫째 조건으로만 본다면 합격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은 과거 교회가 독재정권을 향해 비판을 할 때도, 독재하지 않는 것들이 다스리면 천국으로 인도하는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꼭 같은 놈들이고, 하나가 독재하나 여럿이 독재하나 다수가 독재하나 인간이 독재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그렇게 반대할 것도 찬성할 것도 없고 그냥 세상이 나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라는 입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독재가들은 적어도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에는 민주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기대할 첫째 조건인 '먹여 살리는 능력'을 기준으로 호평을 합니다.
②잘 지켜서 피흘리는 일이 없게 되면 좋은 정권입니다.
칼을 가진 강도보다 총을 가진 강도가 더 위험합니다. 칼을 가진 강도에게 주인이 반대로 총을 들고 있으면 도망을 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늑대가 자기 이빨을 스스로 뽑았다고 해서 호랑이가 자기 발톱과 이빨을 같이 뽑는 양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국제조약이니 뭐니 해도 그것은 종이조각일 뿐입니다. 이솝은 2천년 전의 사람이지만 이미 그런 세상 원리를 간파해서 동화책에 아이들 교육용으로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 나라이니까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누가 되든지 상관없이 이 나라에 사는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도록 미리 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외부로부터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잘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5백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은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준비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10만 대군을 양성하자 할 때 일본의 양심을 믿고 선린의 우호관계를 신뢰하자고 입으로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겨서 그냥 있다가 그후에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정권이면 그 정권이 김씨든 박씨든 이씨든 독재든 민주든 제 고향사람만 많이 쓰든 동창을 모조리 갖다 쓰던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탓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정권을 잡은 쪽이 조금 지나치게 나가면 우리가 손을 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손을 댑니다. 국방을 잘하는 정권이 있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벌여놓은 사업 때문이 아니고 내 피를 이어갈 자식들 때문이 아니고, 천국을 준비하는 일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좋은 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③만약에 예수 믿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찌 더 이상 기대하겠습니까?
세상은 의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자기들 하는 일입니다. 몰라서 박해하고 오해를 해서 박해하고 잘해준다는 것이 박해로 나타납니다. 물론 박해가 오면 순교라는 단어로 준비하면 되지만 교회의 통계는 그런 신앙이 적습니다. 또 어린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는 준비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면 내부적으로 썩고 부패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가 박해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상대방의 평안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상대방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일단 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에게 교회를 박해하고 가로막지 않도록 구하는 것도 기도의 순서입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해방 후 한번도 교회를 박해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위협한 적은 더러 있었으나 그것은 일을 하다보면 그 정도는 몰라서 나올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연을 무시하고 교회가 정권을 잡으려고 반정부 데모를 하다가 박해를 받은 것은 세상이 교회를 박해 한 것이 아니고 정권이 반대파를 박해한 것이므로 이는 교회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목사가 정치가로서 활동하다가 감옥을 갔다면 이는 목사로서 신앙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고 정치가로서 정적에게 실력이 없어 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방 후 오늘까지는 적어도 이 나라에 정권이 180도로 바뀌어 온 적이 많았으나 우리는 우리 사회를 다스려 온 정권들에게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찌 바뀔지 모르겠으나, 바뀌는 정권이 이 나라 사람들을 먹고 사는 일에 손해를 끼친다면 내심으로 대단히 나쁜 정권이라고 비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겉으로 표를 내고 반정부 데모를 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또 결과적으로 6.25와 같은 대규모 살상이 일어나게 했다면 그 정권은 크게 나쁜 정권입니다. 과거 6.25는 남한 정권이 무력을 적게 보유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입니다. 따라서 수십년 만에 한번씩 일어날 수 있는 유혈사태를 두고 발생하기 전에 미리 국방에 전력을 다하는 정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국방이란 결국 막판의 최후 힘을 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몸무게가 현재 10키로 정도이고 일본과 중국은 70-80키로 나가는 장정들입니다. 이럴 때는 내적으로 힘을 기르면서 우선 급하니까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깡패인 미국에게 얼른 화친을 해서 그 밑에 기어들어가는 것이 생존의 이치일 것입니다. 자존심이 있는데 어찌 그 밑으로 들어가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존심이란 잘 죽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앞장 서서 죽으면 되고, 자존심을 버려도 일단 살아남아야겠다는 우리 못난 서민들은 어느 누가 잡더라도 이왕이면 잘먹여 살리고 잘 지켜 죽지 않게 하고 그리고 예수님이나 실컷 믿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맺겠습니다.
④마지막으로 질문자께서 직접 말씀하신 '사회참여'는?
내 가정 먹여 살리고 내 식구 편하게 하룻밤 잠 잘 수 있도록 하는 정도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이 믿음의 가정에 호주로서 세상 사회문제를 두고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하겠는가 라는 기준을 정하는데 가장 좋은 원칙입니다. 마치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가지는 자세와 원리가 같습니다. 3.1독립만세 운동을 하다가 호주가 죽고 그 처자식이 빌어먹고 산다면, 그 호주를 두고 국가는 애국선열로 포상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 처자식의 피눈물은 앞서 죽은 사람이 갚을래야 갚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삼일만세운동에 나 하나가 죽어도 이 운동을 통해 승산이 있고 그래서 나 하나가 죽는 대신 결국 내 처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다면 안 믿는 사람으로서 그런 일을 한다 해서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일종의 정권자의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면 가족이 함께 끝까지 곤란해도 그 어려운 처지에서 끝까지 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을 맞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부모를 모신 자식이라면 내가 사회참여를 위해 움직일 때 그것 때문에 내가 취직시험을 못한다거나 아니면 취직한 회사에 전념하지 않아서 회사에게 손해를 끼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면 나머지 큰 문제는 저절로 되도록 해 주신다는 약속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나라 이 사회를 통째로 쥐고 흔들 영웅과 호걸들은 따로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서로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해 자기 평생과 가족의 생명까지 걸고 칼부림을 서슴치 않는 무사들입니다. 그들이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 우리를 보고 나서서 도와 달라한다고 그들을 도와서 나설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에는 네가 수고해서 네가 정권을 잡거든 네 정권일 것이고 나는 누가 다스리든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예수 잘 믿게 하면 그만인, 소시민이고 서민이니 이런 우리를 평민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영웅과 호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냐 하고 사양했으면 합니다.
사회참여는 자고로 세상을 쥐고 흔들고 천하를 어지럽게 할 군왕의 재목이 될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도 없는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히고 사는 도살자들입니다. 그들이 남의 힘을 빌려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선동을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지혜라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현 우리 사회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 독재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내심으로 미리 평가할 수도 있지만 더 확실한 것은 조금만 세월이 지나가면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런 세상 정권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시급하게 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여당이 옳든 야당이 옳든 우리의 관심은 누가 먹여 살리는 데는 좀더 낫겠는가, 누가 안보를 더 잘하겠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 믿는 일에 훼방을 덜 하겠는가? 이것이 관심일 뿐입니다.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못난 사람은 나섭니다. 못날수록 어디든 나서는 법입니다. 조용히 엎드려 오늘같은 시대를 미리 알고 지혜롭게 주의를 준 이 시대의 선지자 백영희목사님의 경고에 귀를 기우려보셨으면 합니다. 그냥 조용히 기도나 하고 성경이나 읽고 교회나 다니고 처자식 먹여살리고 남편 자식을 따뜻하게 먹여 살리는 못난 이가 되셔야 지혜로운 분이 되실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성도가 성도의 이름으로 나서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엄금할 일이지만, 성도가 세상의 조직원의 하나로 나선다 해도 적극적으로 만류합니다.
-----------------------------
(질문) 탄핵정국
탄핵 정국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인으로써 어떤 시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사회 참여는 어느 정도 까지가 적당합니까?
사실 어디 까지를 기독교 사회주의로 봐야 하는 건지도 헷갈립니다.
투표도 기독교 사회주의가 되나요? 된다면 할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참여 행위까지를 바람직하다고 말할수 있는지.. 쉽게 질문 드리자면, 지금 나라 상황에서 기독인이 할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위는 무었인가요?
(답변) 사회와 신앙, 정치와 교회의 관계
/초기화면/연구실/남단에서2/에서 관련 내용이 잠깐 소개되었습니다.
-------------------------------------------------------------------------
294번, 세상에 변란이 있을 때는 조용히 숨어 기도하는 지혜를! 04/03/12
-------------------------------------------------------------------------
1.마22:2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원칙
①'정치와 교회', '사회와 신앙'은 분리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정권자입니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과 같습니다. 짐승들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독립운동은 대단히 격렬하게 계속되었고 독립운동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짐승들이 다스리는 것도 상관하지 말고 믿는 사람은 신앙생활만 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정치와 교회, 사회와 신앙의 관계는 서로 저렇게 살아가고 저렇게 운영되는구나 하고 쳐다 보는 것으로 그칠 일이지 교회가 정치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나 또는 정치나 사회가 교회 안을 간섭하고 들어오는 것은 금했습니다.
②독재정권 폭압정치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등의 반인륜적 정권 치하라면?
독재정권이 반인권적이냐 아니냐는 것은 세상이 알고 있는 세상의 의견일 뿐입니다. 폭압정치나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정권이 반인륜적인 범죄집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역시 세상이 자기식으로 자기 기준으로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표현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민주정치나 공산정치나 무정부주의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민족주의나 세계주의나 그 어떤 사상 어떤 체제나 단지 세상일 뿐입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기독교를 인정하기 때문에 성경적이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는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기독교를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실상은 다른 형태로 복음을 막는 면이 있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가 교회를 탄압하는 듯해도 복음의 본질은 그런 세상 체제 자체나 다른 체제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호의적이거나 호전적이거나 동일한 환경과 현실을 제공합니다.
다만 하나는 이런 면으로 더 손해를 끼치고 하나는 저런 면으로 손해를 더 끼치며, 하나는 이런 면으로 이용할 때 유익이 있고 다른 것은 저런 면으로 잘 사용하면 장점이 많은 그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세상 어떤 체제든 꼭같이 상대하고 꼭같이 조심하며 꼭같이 신앙생활의 현실이요 환경이라고 보면서 그 속에서 믿음 생활이 중단되지 않고 천국을 준비하는 우리 일만 할 뿐입니다.
③지금 현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두고 교회도 의견이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상황은 1945-1987년까지는 일방적 독재체제였고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급격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인이나 시골로 갈수록 보수적이어서 독제체제를 선호하고 젊은층이나 도시로 나올수록 진보적이엇 민주주의를 선호합니다. 지역으로는 충청 경상지역이 보수라면 서울 호남지역이 진보로 분류됩니다.
현 이 사회의 정치상황은 보수측이 완벽하게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가 1987년을 기준으로 진보측에게 꾸준하게 밀려왔고 현 정권은 완전히 진보의 본류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에 대하여 반대측의 반발로 현재 정권 자체가 진공상태로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변란이라고 합니다. 누가 잡든 잡은 상태라면 안정이라고 하는데, 현 상태는 대통령의 탄핵이 정식 절차를 밟고 있어 결론이 날 때까지는 어떤 세력도 확고하게 사회를 통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 체제 자체는 작동하고 있어도 그 체제를 장악한 세력이 없는 상태를 '변란'이라 합니다.
교회로 말하면 고신 합동 등 보수교계는 현저하게 세상정치에 대하여도 보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통합 기장과 같이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는 곳은 뚜렷하게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교계는 계속해서 호전적인 정권이 잡고 있다가 이번에 일단 중단이 되었기 때문에 이 변란 상황을 내심 기대하며 보수정권이 들어서기를 원할 것이고, 진보성향의 교계는 잡았던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변란상황을 원상태로 돌리려고 온갖 힘을 다할 것입니다.
이곳이 안내하는 바는, 세상을 누가 다스리든 또 안정적 정권이 변란으로 요동하든 세상은 세상사람들이 결정하고 운영하도록 버려두고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일에만 전념해야 옳다는 주장입니다. 현 세상정치권의 개혁세력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고 또 세상정치권이 과거 보수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두고 우리 신앙이 보수성을 지키는 일인 줄 아는 것도 무식하기 그지 없습니다.
참고로, 현 국내 상황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면에서 과거처럼 미국에 의존하여 미국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자는 주장과 그 반대로 나가는 것이 옳다는 세력들 간에 일어나는 투쟁입니다. 굶어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것이며 또 굶어죽어도 자존심을 지키고 국민이 힘을 합하면 굶지도 않을 뿐더러 더 좋은 앞날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 정권의 시각입니다. 야당에서는 대체로 그 반대 의견을 가졌거나 아니면 중간정도의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롬13:1-7에 신앙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와 지방과 각 사회에 다시리는 '권세'를 나누어 맡겼습니다. 그 권세를 맡은 자들은 불신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세상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게 맡겼으므로 교회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맡긴 하나님을 생각해서 그 맡은 인간들은 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원수처럼 미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 권세에 순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여당이 다스리든 야당이 다스리든 믿는 사람은 데모를 하거나 조직적 반항을 하는 것은 신앙이 어리거나 강퍅하다는 증거입니다. 요셉이 원수의 나라 아브라함 때로부터 가서는 안 되는 애굽나라에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왔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 우상의 나라 불신 독재체제 하에서 노예들에게 인권을 고취시키거나 반애굽운동을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애굽의 노예주인이나 법무부 산하 교도관들이 볼 때 요셉은 애굽의 일등 모범 노예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적성국에서 반역의 수괴가 된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성공은 요셉이 처해진 자기 현실과 환경 속에서 불신자 우상종교 원수의 나라 착취자 반인륜의 폭거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을 다스리도록 맡긴 이상 솔선수범해서 순종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요셉에게 신앙에 손해되는 일을 시킬 때는 거부했습니다. 신앙에 금하는 일을 시키지 않는 이상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것이 섞임없는 순수한 신앙입니다.
2.이곳 신앙노선의 세상관계를 참고하시도록 구체적으로 설명드린다며
①이곳은 이상은 진보성을 가지고, 방편은 보수성을 가집니다.
외형적으로는 현 국내 정치상황은 이곳 신앙노선과 완전히 반대방향입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현 집권세력은 이곳 신앙노선과 적대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되어 있고 과거 군부독재 세력은 이곳 신앙체질에 딱 들어맞는 듯 보입니다. 어린 신앙이나 세상 사람들이 알고 느낄 외면을 가지고 따진다면 이곳은 보수독재세력이 가장 좋아할 종교계 중 일부일 것입니다. 그런 만큼 현 진보성향의 정치세력과는 도저히 맞을 수 없을 듯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사상적이고 보다 철학적이며 보다 높은 이상향으로 나간다면 오히려 현 정치세력과 통하는 바가 많고 동지적 느낌까지도 가질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곳은 이념과 철학 차원으로 올라가면 현 진보성향이고, 현실적으로 처리하는 방편으로 내려온다면 보수 독재체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이곳의 정체는, 신앙 유일주의이며 신앙 절대주의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극단적인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은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서도 국내 교회 중에서 전 교인이 신사참배를 이긴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 통치하의 우리 생활은 그들에게 크게 혜택을 입었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따로 표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로 욕얻어 먹기 꼭 알맞겠지만 백영희신앙노선만큼 강하게 일본의 신사참배를 반대한 곳도 없습니다.
문제는 일본의 신사참배는 신앙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국내 교회 중에서 가장 강하게 투쟁을 했지만, 신앙 문제 이외에 다른 평상 생활에 관련된 것은 일본이 비록 적국이며 점령국이었지만 그들의 앞선 문화와 기술과 경험을 배우고 이를 감사하는 마음에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6.25전쟁 기간에 전 교인이 인민군에 맞서 교회를 끝까지 지키며 전혀 그들에게 협조조차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던 유일한 교회였지만 이승만박사를 교회가 조직적으로 선거지원하는 일은 단언코 거부했고 비판했습니다. 동시에 기독교인으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박사를 국부로 칭송하고 오늘 그를 비판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박사는 이 나라를 없는 가운데 세워 올린 공로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심취한 박대통령의 청와대를 향해 군부독재로 나라를 먹여살리고 국방을 잘 해서 정치를 잘한다며 모든 교계와 등을 대면서 독재정권을 옹호하면서도 새마을운동에 종교지도자들의 협조를 구할 때는 한 마디로 거절해서 정권의 뒷조사를 받는 등 보복을 당해야 했습니다. 국기배례문제를 두고는 유신정권과 맞서 목회자가 6개월 옥고를 치르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해서 기어코 이겼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민주화 운동에 공로자라고 칭송하는 이들 또 그들이 투쟁한 과거 역사를 두고 백영희신앙노선은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학벌철폐 지방감정해소 개혁 평등 자유의 절대성 등을 실제로 이루어 낸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따라서 백영희신앙노선은 알고보면 진정한 진보주의자이며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며 진정한 진보와 보수가 어울리고 협력하여 만들어낸 모범적 산물이며 그러면서도 타협과 흥정으로 적당하게 버무린 방식이 아니고 가장 옳고 바른 길을 찾아 단호하게 목적과 방편을 원칙대로 고수하여 얻어낸 노선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시간이 없고 가치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현 한국과 세계의 모든 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이곳 신앙노선처럼 한다면 진정한 세계평화와 민족번영과 보수와 진보가 다 같이 만족할 이상세계를 건설할 모범 답안으로, 실제 상황으로 백영희신앙노선을 소개할 실제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③이는 이 노선이 특별해서가 아니고 성경이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행한 결과일 뿐입니다.
누구든 믿는 사람과 믿는 교회가 성경을 읽고 자기 아는 양심대로 차분하게 실행해 나가보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은 진리이고 이곳 신앙을 신앙노선 차원에서 살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세상의 변란을 두고 교회가 행동할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요셉이 애굽에서 어떻게 처신했고 어떤 일을 삼가했고 어떤 일을 목숨걸고 했으며 당시 요셉의 마음 자세와 시각이 어떠했는지 창세기 후반부에서 너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자기 땅에 와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격으로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다스리게 해 놓았기 때문에 가이사의 법에 의하여 그 집행관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도 그 십자가 처형을 뒤집어 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간디처럼 무저항주의로 저항했든가요? 세상은 세상의 것으로 주었으니 세상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속한 예수님의 인체와 활동을 그들이 통제하는 것에는 순종했고 항거하지 않았고 세금도 냈고 죽으라면 조용히 죽어주는 것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되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죽어도 안했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의를 위해서는 죽어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께 붙들려 그 말씀대로만 살았고, 겉으로는 세상을 맡긴 그들에게 자기를 내맡겨 때리면 맞았고 모시면 얻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
④현 정권을 지지하는 분들이라면, 또 현 정권의 변란을 즐기는 분이라면?
현 정권이 양심적이고 개혁적이며 이 나라를 먹이고 살리고 자존심을 세운다고 확신하는 분들이 젊은 이들로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개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이 쉬운 분들인데 이런 분들일수록 현 정권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권을 상대로 야당에서 탄핵을 했다고 분개를 하신다면, 요셉과 예수님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요셉이고 예수님이고 성경이고 따질 것 없이 화딱지 난다고 뒤엎고 싶다면 교인이라는 이름을 떼놓고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내 마음에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다스려도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에 좋아 하는 사람이 다스려도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세운 하나님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 좋아하는 사람이 쫓겨나고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와 앉아도 우리는 그 앞뒤 전임과 후임의 교체가 세상법의 기준에 정당하냐, 세상도덕 기준에 옳으냐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성계라는 도둑놈이 나라를 들어먹고 왕이라고 앉아도 우리는 이성계일파와 그 호적상 자녀들에게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웠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그 이성계가 들어먹은 고려나라를 세운 왕건이 삼국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고려를 세웠다고 해서 우리는 고려를 밉게 보고 반항하지 않습니다. 그 고려에게 나라를 빼앗긴 천년고도 신라의 경주가 평민들을 모아 국가체제를 만들어 이 나라 인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해서 신라에 사는 교인이 신라의 통치를 항거하지 않습니다. 그 신라가 불교국으로 내려와도 그것은 신라가 할 일이고 우리는 예수믿는 것만 우리 할 일입니다. 예수믿는다고 박해하면 죽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죽으면 우리는 순교라 해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감사할 일입니다. 순교할 배짱도 실력도 준비도 갖추지는 못했으나 우리의 사상과 이론은 그렇습니다.
이렇게 도둑놈들이 빼앗아 세운 나라들이 벌써 몇 개나 지나가는 중 일제 식민지는 물건너 도둑놈이 와서 36년을 다스렸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면 순종하지 왜 하나님께서 한민족의 국토를 왜놈들에게 줬느냐고 항의하지 않습니다. 그 일본사람들도 하나님 앞에는 조선족들이나 똑 같은 아담의 후손 하나님 만든 인간들이고 한 혈통입니다. 한반도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왜놈들은 왜놈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의 속좁은 시야에 함께 요동하지 않는 분입니다. 이렇게 별별 도둑과 강도들이 이 사회를 거머쥐어도 우리는 그들이 옳아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순종하라 하신 하나님 때문에 입닥치고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3.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간도 없고 쓸개도 없는가?
우리는 3가지 정도 내심을 가지고 우리대로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을 상대하는 취향이 있습니다. 세상 기준이 아니고 우리 신앙기준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세상정권자들을 향해 우리가 기대할 것, 우리가 내심으로 바라 볼 면을 간단하게 나누어본다면
①잘 먹여 살리면 좋은 정권입니다.
나쁜 정권이라도 순종은 하겠지만, 세상 정권을 향해서 천국길을 안내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소경들에게 천국길은 기대할 수 없으나 소경이 손으로 쥐고 아는 것이 이 세상이니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을 잘 하라고 말하는 정도, 기대하는 정도는 우리 믿는 사람의 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배가 불러 전부들 미쳐 있습니다. 이렇게 배가 부르다고 배부른 짓을 하면 그다음 배고픈 꼴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천국 준비 기회는 세상 뿐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조건은 숨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것이 목숨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살 수 없는 가난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기 피를 팔아서라도 먹을 것을 확보해서 가족들을 살아남게 하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교과서나 소설에서 보지 않고 실제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가 정치를 하든 세상 정치는 결국 꼭같은 것이고 정치하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위해 자기가 휘두르고 싶어 정치하는 것이니 밑에 기고 사는 우리로서는 먹고 사는 것이라도 좋아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독재를 하든 친일을 하든 친미를 하든 공산주의를 하든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이 잘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권이 좋다 나쁘다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공산주의를 그렇게 반대하고 특히 이 신앙노선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일에 가장 맹렬한 것처럼 보이는가? 그들이 믿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출발한 집단이고 역사적으로 그러했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하라고 한 것이며 또 그들이 하는 나눠먹기식은 뒤에 남겨둘 종자까지 다 먹어치우는 일이므로 굶어죽게 되면 이 세상에서 구원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가 비록 독재는 하더라도 끝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잘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적어도 첫째 조건으로만 본다면 합격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은 과거 교회가 독재정권을 향해 비판을 할 때도, 독재하지 않는 것들이 다스리면 천국으로 인도하는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꼭 같은 놈들이고, 하나가 독재하나 여럿이 독재하나 다수가 독재하나 인간이 독재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그렇게 반대할 것도 찬성할 것도 없고 그냥 세상이 나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라는 입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독재가들은 적어도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에는 민주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보다 더 나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기대할 첫째 조건인 '먹여 살리는 능력'을 기준으로 호평을 합니다.
②잘 지켜서 피흘리는 일이 없게 되면 좋은 정권입니다.
칼을 가진 강도보다 총을 가진 강도가 더 위험합니다. 칼을 가진 강도에게 주인이 반대로 총을 들고 있으면 도망을 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늑대가 자기 이빨을 스스로 뽑았다고 해서 호랑이가 자기 발톱과 이빨을 같이 뽑는 양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국제조약이니 뭐니 해도 그것은 종이조각일 뿐입니다. 이솝은 2천년 전의 사람이지만 이미 그런 세상 원리를 간파해서 동화책에 아이들 교육용으로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 나라이니까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누가 되든지 상관없이 이 나라에 사는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도록 미리 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외부로부터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잘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5백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은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준비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10만 대군을 양성하자 할 때 일본의 양심을 믿고 선린의 우호관계를 신뢰하자고 입으로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겨서 그냥 있다가 그후에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정권이면 그 정권이 김씨든 박씨든 이씨든 독재든 민주든 제 고향사람만 많이 쓰든 동창을 모조리 갖다 쓰던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탓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정권을 잡은 쪽이 조금 지나치게 나가면 우리가 손을 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손을 댑니다. 국방을 잘하는 정권이 있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벌여놓은 사업 때문이 아니고 내 피를 이어갈 자식들 때문이 아니고, 천국을 준비하는 일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좋은 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③만약에 예수 믿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찌 더 이상 기대하겠습니까?
세상은 의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자기들 하는 일입니다. 몰라서 박해하고 오해를 해서 박해하고 잘해준다는 것이 박해로 나타납니다. 물론 박해가 오면 순교라는 단어로 준비하면 되지만 교회의 통계는 그런 신앙이 적습니다. 또 어린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는 준비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평안하면 내부적으로 썩고 부패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가 박해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단 상대방의 평안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상대방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일단 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에게 교회를 박해하고 가로막지 않도록 구하는 것도 기도의 순서입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해방 후 한번도 교회를 박해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위협한 적은 더러 있었으나 그것은 일을 하다보면 그 정도는 몰라서 나올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연을 무시하고 교회가 정권을 잡으려고 반정부 데모를 하다가 박해를 받은 것은 세상이 교회를 박해 한 것이 아니고 정권이 반대파를 박해한 것이므로 이는 교회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목사가 정치가로서 활동하다가 감옥을 갔다면 이는 목사로서 신앙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고 정치가로서 정적에게 실력이 없어 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방 후 오늘까지는 적어도 이 나라에 정권이 180도로 바뀌어 온 적이 많았으나 우리는 우리 사회를 다스려 온 정권들에게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찌 바뀔지 모르겠으나, 바뀌는 정권이 이 나라 사람들을 먹고 사는 일에 손해를 끼친다면 내심으로 대단히 나쁜 정권이라고 비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겉으로 표를 내고 반정부 데모를 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또 결과적으로 6.25와 같은 대규모 살상이 일어나게 했다면 그 정권은 크게 나쁜 정권입니다. 과거 6.25는 남한 정권이 무력을 적게 보유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입니다. 따라서 수십년 만에 한번씩 일어날 수 있는 유혈사태를 두고 발생하기 전에 미리 국방에 전력을 다하는 정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국방이란 결국 막판의 최후 힘을 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몸무게가 현재 10키로 정도이고 일본과 중국은 70-80키로 나가는 장정들입니다. 이럴 때는 내적으로 힘을 기르면서 우선 급하니까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깡패인 미국에게 얼른 화친을 해서 그 밑에 기어들어가는 것이 생존의 이치일 것입니다. 자존심이 있는데 어찌 그 밑으로 들어가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존심이란 잘 죽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앞장 서서 죽으면 되고, 자존심을 버려도 일단 살아남아야겠다는 우리 못난 서민들은 어느 누가 잡더라도 이왕이면 잘먹여 살리고 잘 지켜 죽지 않게 하고 그리고 예수님이나 실컷 믿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맺겠습니다.
④마지막으로 질문자께서 직접 말씀하신 '사회참여'는?
내 가정 먹여 살리고 내 식구 편하게 하룻밤 잠 잘 수 있도록 하는 정도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이 믿음의 가정에 호주로서 세상 사회문제를 두고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하겠는가 라는 기준을 정하는데 가장 좋은 원칙입니다. 마치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가지는 자세와 원리가 같습니다. 3.1독립만세 운동을 하다가 호주가 죽고 그 처자식이 빌어먹고 산다면, 그 호주를 두고 국가는 애국선열로 포상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 처자식의 피눈물은 앞서 죽은 사람이 갚을래야 갚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삼일만세운동에 나 하나가 죽어도 이 운동을 통해 승산이 있고 그래서 나 하나가 죽는 대신 결국 내 처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다면 안 믿는 사람으로서 그런 일을 한다 해서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일종의 정권자의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면 가족이 함께 끝까지 곤란해도 그 어려운 처지에서 끝까지 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을 맞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부모를 모신 자식이라면 내가 사회참여를 위해 움직일 때 그것 때문에 내가 취직시험을 못한다거나 아니면 취직한 회사에 전념하지 않아서 회사에게 손해를 끼치는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면 나머지 큰 문제는 저절로 되도록 해 주신다는 약속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나라 이 사회를 통째로 쥐고 흔들 영웅과 호걸들은 따로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를 서로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해 자기 평생과 가족의 생명까지 걸고 칼부림을 서슴치 않는 무사들입니다. 그들이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 우리를 보고 나서서 도와 달라한다고 그들을 도와서 나설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에는 네가 수고해서 네가 정권을 잡거든 네 정권일 것이고 나는 누가 다스리든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예수 잘 믿게 하면 그만인, 소시민이고 서민이니 이런 우리를 평민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영웅과 호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냐 하고 사양했으면 합니다.
사회참여는 자고로 세상을 쥐고 흔들고 천하를 어지럽게 할 군왕의 재목이 될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도 없는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히고 사는 도살자들입니다. 그들이 남의 힘을 빌려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선동을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지혜라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현 우리 사회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 독재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내심으로 미리 평가할 수도 있지만 더 확실한 것은 조금만 세월이 지나가면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런 세상 정권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시급하게 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여당이 옳든 야당이 옳든 우리의 관심은 누가 먹여 살리는 데는 좀더 낫겠는가, 누가 안보를 더 잘하겠는가, 그리고 누가 우리 믿는 일에 훼방을 덜 하겠는가? 이것이 관심일 뿐입니다.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못난 사람은 나섭니다. 못날수록 어디든 나서는 법입니다. 조용히 엎드려 오늘같은 시대를 미리 알고 지혜롭게 주의를 준 이 시대의 선지자 백영희목사님의 경고에 귀를 기우려보셨으면 합니다. 그냥 조용히 기도나 하고 성경이나 읽고 교회나 다니고 처자식 먹여살리고 남편 자식을 따뜻하게 먹여 살리는 못난 이가 되셔야 지혜로운 분이 되실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성도가 성도의 이름으로 나서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엄금할 일이지만, 성도가 세상의 조직원의 하나로 나선다 해도 적극적으로 만류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