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노동을 배우고 익힌다면 어떤 길로?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5.24
출처: /연구실/문의답변/454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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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주일을 지키며 노동을 배우고 익힌다면 어떤 길로?
최근에야 노동의 중요성, 땀 흘리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 사람들처럼, 깔끔한 일을 하며 시간을 많이 낼 수 있고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을 많이 생각하였는데, 요즘은 그 때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고 노동이 신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며 할 수 있는 노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목회자가 생활을 위해서나 목회 현장의 필요를 위해서나 기타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회를 하며 동시에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백목사님은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사역을 하면서 자기 손으로 일을 했던 바울의 경우를 오늘날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노하우를 가지고 계실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 목회와 노동
1.백목사님의 인간 교육법은 노동에서
①노동의 '종류'
아무 노동이나 말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 중에서도 하루종일 짐을 지거나 땅을 파는 노동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주신 회개의 방법이 땀흘려 먹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말 저말 할 것 없이 땀흘리는 노동을 해 본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고 그렇게 해 볼 기회가 없으면 B급 인간 또는 불행한 인간이라고 일단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깃발이나 들고 흔드는 노동, 삽 한 자루 잡고 하루종일 이리저리 다니며 시키는 대로 치우고 나르는 건설회사 노동자들은 눈치나 보고 게으름을 찾게 되어 오히려 사람을 크게 버릴 수 있습니다. 노가다하는 사람의 수준이 노가다에서 그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방향으로 일거리를 찾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말하는 노동은 하루종일 모래나 자갈이나 철근을 나르거나 또는 땅을 파야 하는 종류의 일을 말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것은 기계가 다 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땀을 흘릴 일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대형사업장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소규모사업장에서 공사를 조금씩 떼맡는 사람 밑에서 일을 하면 땀흘려 일을 하며 사람이 될 수 있는 자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규모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장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을 야물게 일을 시키기 때문에 노동을 정식으로 하게 되는데 대형건설공사장에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 같이 남의 돈을 받는 사람이어서 일에 대하여 그렇게 애착과 집착이 없습니다.
백목사님 가장 싫어하는 직업은 옷에서 먼지 하나까지 톡톡 털어야 하고 땀은 흘리지 않는 이발사 택시 등입니다. 수십 년 전의 직업을 기준으로 했으니까 오늘로 말하면 어떤 종류가 해당될지 모르겠습니다. 보기에 멋있고 남들에게 부럽게 보이고 편하고 쉽게 보이며 먼지도 땀도 없고 좋게만 하루를 지나가는 일, 그 일은 무엇이든 아주 질색입니다. 사람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자리에 오르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면 다릅니다.
②노동의 '지속'
하루 열심히 일을 해도 다음날 일이 없다고 쉬면 노동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노동으로 자기를 단련하는데 김이 빠져버립니다. 몸에 고장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몸이 피곤한 정도라면, 쉬는 날 없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일의 강도가 강한 것을 찾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맨 땅이라도 파고 다시 묻고 하더라도 놀지 말고, 또 공짜로 남의 일을 해주더라도 놀지를 말라고 백목사님은 시킵니다. 적어도 3-4개월은 그렇게 해야 노동에 몸이 익어버립니다. 밥으로 말하면 솥 속의 온도가 최후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너무 시달려서 중간에 뚜껑을 열어버리고 찬바람을 쐬어버린 밥하고, 그 고비에 끝까지 견디고 드디어 뜸까지 다 들인 다음 퍼낸 밥하고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30분을 솥 속에 있어야 한다 치고, 20분 끓이고 5분 쉬고 20분 끓이고 다시 5분 쉬는 순서로 3번 4번을 끓인다 해도 그 밥은 선 밥이 되지 퍼진 밥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 즉 30분을 조금도 쉬지않고 고비를 넘기고 난 후에 뚜껑을 열게 되면 그 밥은 차진 좋은 밥이 됩니다. 그 밥은 저장만 잘해두면 며칠 후에 먹어도 그 밥맛을 유지하게 되지만 최종고비에 뚜껑을 열어버리고 시원한 바람을 쐬어버린 쌀은 선 밥이 되어 뒤에 다시 물을 붓고 모자란 온도를 채우기 위해 아무리 꾸준하게 열기를 가해도 한번 굳어진 것은 다시 새로 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몇 개월은 주일 말고는 무슨 일을 해도 놀지 않고 계속하는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제는 처음 몇 일 동안 그렇게 밤마다 피곤하던 육신이 일에 적응이 되어서 아무리 고단한 일을 해도 돌아서면 바로 거뜬하게 되어 이제 평생 노동으로 살아도 살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실제 자기 몸도 그럴 수 있도록 연단이 될 것입니다. 처음 며칠 하고 중단한 사람은 평생 노동이라는 것은 남의 말처럼 들립니다. 한번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은 노동에 대하여는 완전히 딴 세계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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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이렇게 막노동에 몸을 연단시킬 때 집에 있는 여자가 할 일은 아이를 많이 낳아서 아이에게 치어 죽을 지경이 되어야 사람이 됩니다. 가정 경제 형편 때문에 부득 일을 해야 한다면 식모가 좋고 아주 천한 사람들이 모인 시설 같은 곳에서 파김치가 되는 것도 같은 차원일 것입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눈을 낮추고 인간의 근본을 보게 하고 죄의 값이 어떤 댓가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앞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무적의 사람을 만드는 일, 인간세계에서 가장 쉽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작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동입니다.
③노동의 '내면'
겉으로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노동하는 내면에서는 늘 말씀 생각하고 하루를 살게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때 받은 말씀으로 하루종일 짐을 지면서 속으로는 말씀 새김질하고 겉으로는 돈을 벌고 이마에는 저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는 직업. 교사는 학생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고 남는 시간에 이런 저런 책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신앙출발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계속 새기는 일에는 아주 불리한 직업입니다. 지식인 전문인 등의 직업이 주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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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80키로 벽돌을 지고 4-5층을 하루종일 오르내리면 육체는 전혀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오직 그 무게를 버티고 나르는 일만 하게 되고 마음은 하루종일 말씀을 새기고 새겨 나무 깊이 박히는 못처럼 그렇게 새벽에 받은 말씀 하나를 마음에 심어둘 수 있습니다. 새벽 말씀 하나를 배워 앞으로 따져보고 뒤에서 되헤아려보고 본문을 외워보고 본문과 말씀을 연결해 보고 그 말씀으로 실제 살아간다면 현실 속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짐을 지면서 마음 속으로 미래 닥칠 어려운 환경과 투쟁을 하면서 하루해를 보내다 보면 노동예찬론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종일 장사를 하면서 그 세계에서 느끼고 겪는 은혜를 자랑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러하고 다른 사람은 저러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의 고비를 넘긴 사람은 장사의 그런 세계를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장사를 통과한 사람은 은혜는 자기대로 가지고 있으나 노동의 세계를 통과할 수 없는 근본 실력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배우고 교인 생활한 사람들의 실력과 자랑의 급수는 말하자면, 노동의 급수에서 가장 중요한 판결이 나버립니다. 노동을 통과한 사람이 그다음 이것 저것을 가지면 그것을 실력으로 보지만 노동을 통과하지 못하고 바로 교회 행정을 잘 보거나 반사를 잘 하거나 무슨 중요한 사명을 맡는다든지 하게 되면 그들은 늘 마음 속에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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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나온 서영준목사님도 노동을 통과하고 땅콩 장사도 다 겪고 나서 충분히 사회 밑바닥과 교인들이 고생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통과한 다음에 교회일에 전념하게 됩니다. 1979년 8월에 서목사님과 함께 부산 금정산에 기도하러 가신 목사님과 몇분 교인들의 짐을 져 내리려고 갔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몸은 참 무쇠였고 후배로서 그분의 단련된 육체를 보며 부럽고 존경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등에 짐을 지고 날라도 답변자보다 훌륭하고 실력이 있는 분입니다. 세상 다른 면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앙의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쳐다 보지도 못할 분이었습니다.
④노동의 '효력'
막 가는 최고 어려운 노동을 다 통과하고 나면, 이제 말씀대로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도 남들보다 좀더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를 들면, 꼭 같은 사례를 교회에서 지출해도 곱게 부자집 막내아들로 자란 목회자는 경제적으로 견디기가 어렵다며 자기가 그 사례 때문에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은 놀고 먹고도 이렇게 사례를 많이 받다니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는 앞의 경우 목회자가 십자가를 졌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는 십자가도 아닌데 십자가를 진 것처럼 고난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계산을 여러 면으로 잘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 때문에 오늘 목회자들은 출세를 하고 있는 판인데도 오히려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고 교인들과 하나님 앞에 엄살을 부리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 목회자치고 게을러서 굶으면 굶었지 복음 때문에 진정 굶었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대신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살을 빼느라고 정신이 없을 만큼 복음 때문에 배부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싶어도 십자가를 박물관으로 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우리는 이런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곱게 자란 사람 호강만 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오늘 이런 시대에 목회를 하면서도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는데 실은 연단을 받지 못한 자신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목회자들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나오다 보니까 환경적응력에 있어 장애자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것은 자기의 장애 때문이지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동은 이런 장애들을 일시에 해소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주를 위해 좀더 많이 드릴 수 있도록, 더 깨끗하게 바칠 수 있도록, 좀더 나은 자신을 드릴 수 있도록 하려면, 자기 연단과 절제와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꼭같은 신부라 해도, 그동안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자신을 남편에게만 솔빡 바치는 신부도 있고 그동안 기회되는 대로 여러 남자들과 어울려 실컷 재미있게 놀다가 대충 그 중에 나은 것 하나를 꿰찬 신부와, 결혼식장의 신부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 비중과 내용은 아주 다를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주님에게 바칠 자기의 몸을 어떤 역경도 어렵다고 느끼지 않고 드릴 수 있도록 만든 사람과 침대에 자지 않으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 최고급 명품 출신 목회자와 주님께 드릴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하며 나을지를 평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예를 들었지만,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⑤목회의 기본
백영희신앙노선의 목회자관은 시험을 쳐서 뽑은 학생을 교육시켜 하나님의 종이라고 내놓는 식을 싫어합니다. 그냥 교인으로 말씀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다가 목회자로 나오게 되는 방향으로 안내를 합니다.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면서 열심히 돈을 벌고 말씀으로 살면서 자기 맡은 일을 하고 말씀대로 가정생활까지 열심히 살아보게 되면 말씀을 신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을 산 신앙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 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던 중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자들의 이론을 듣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은 그 말씀으로 세상을 실전으로 살아야 할 교인들에게 아무 가르칠 것이 없다고 우려하는 편입니다.
목사 자기는 그 말씀으로 세상 속에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을 해 보지 않고 교인들에게는 참아라 말아라 한다면 그것은 신학교 교과서를 교인들에게 읽어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선은 목회를 생각하지 말고 평범하게 교인으로 세상을 살되 받은 말씀으로 자기 현실에서 실제 살아보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복이 오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능력이 오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진짜 그 말씀이 좋고 옳다고 확신이 되면 그다음부터 그렇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것이고, 그렇게 전하는 것을 주변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에게 목회를 해야 할 사람이라고 인정할 정도가 될 때 자연스럽게 목회로 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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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질문하신 내용 중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①"현실적으로 주일을 지키며 할 수 있는 노동은?'
노동의 종류는 앞에서 말씀드렸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문제는 막노동에서는 자기 마음이니까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대신 주일을 계속 빠지면 그다음에는 자기를 부르지 않아서 일이 자꾸 끊어지겠지요. 그러면 월요일부터 또 다시 공사판마다 계속 돌아다니며 일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몇 번 그렇게 하다 보면, 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심히 하다보면 진실되이 일하는 이들은 주인 눈에 들게 됩니다. 실제 해보면 주일 때문에 가끔 문제는 생기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인력시장도 대안은 되겠지만, 아침 일찍 가서 8시나 9시까지 기다리다가 일이 없을 때 그날 하루해를 대충 보내기가 쉽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이나 읽자는 마음의 유혹이 심할 것입니다. 인력시장의 사람 배분이 대충 끝나게 되면 아무 공사판이나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가서 '사람 혹시 쓰지 않습니까?' 하면서 계속 해서 묻고 다니면 아마 일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최근은 거의 모르지만 과거 20곳에서 50곳을 물어봐서도 일이 없어 못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물어보며 다니는 것이 노동판 직장 구하기의 또 하나의 훈련이며 그렇게 몇 번 해보고 나면 장사도 단번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장사의 첫 훈련은 안면을 철판으로 깔아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신앙 이유 때문에 일을 할 때는 자신의 신분을 전혀 표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게 되면 어떤 면으로든지 인정이나 사정이 개입됩니다. 완전히 그 판에서 그 수준으로 견디고 통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바울처럼 목회자가 자기 경제를 해결하는 것은?'
교인이 자기가 돈을 벌어 자기 힘으로 교회를 출발시키고 목회자가 따로 없어 자기가 목회자노릇까지 하다가 세상 일을 완전히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목회자로 나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던 분이 세상 직업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앞에서 설명한 대로 목회자가 자기 연단을 위해 노동이나 장사를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의 자기 훈련 문제이므로 별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경우 훈련이라 해서 대충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원칙은 이러하지만, 목회자가 자기가 가진 직업이 있어 그 직업을 하면서 목회를 하면 해도 그 직업을 포기하고 목회를 할 만큼은 연단이나 실력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목회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낫습니다. 공회 내에는 대구와 부산에 유명한 2명의 의사 교인이 교회의 가장 충성하는 교인으로 충성하다가 의사로 있으면서 교회를 맡아 완전히 목회자의 역할을 오랫동안 했고, 그 교회 교인들이 원해서 한 분은 의사를 완전히 그만 두고 목사 안수를 받았고 또 한 분은 병원을 계속 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유능한 의사로 아주 크게 성공한 분들인데 갑자기 목회만 전념할 때 노동만 하고 살아온 우리처럼 핍절한 경제로 버텨야 한다면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렵다고 할 때 그분들로서는 의사에서 그만큼 낮아졌으면 노동자 수준의 우리가 밥 몇 끼 더 잘 굶는다 해서 그분들보다 실력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성공한 의사로서 단번에 모든 것을 다 끊을 수가 있었다면 우리는 흉내도 내지 못할 십자가를 진 것이 될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그런 정도의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면 우리는 굶는 정도로 되지 않고 굶어 죽어야 겨우 닿을 정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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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주일을 지키며 노동을 배우고 익힌다면 어떤 길로?
최근에야 노동의 중요성, 땀 흘리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 사람들처럼, 깔끔한 일을 하며 시간을 많이 낼 수 있고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을 많이 생각하였는데, 요즘은 그 때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고 노동이 신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며 할 수 있는 노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목회자가 생활을 위해서나 목회 현장의 필요를 위해서나 기타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회를 하며 동시에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백목사님은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사역을 하면서 자기 손으로 일을 했던 바울의 경우를 오늘날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노하우를 가지고 계실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 목회와 노동
1.백목사님의 인간 교육법은 노동에서
①노동의 '종류'
아무 노동이나 말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 중에서도 하루종일 짐을 지거나 땅을 파는 노동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주신 회개의 방법이 땀흘려 먹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말 저말 할 것 없이 땀흘리는 노동을 해 본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고 그렇게 해 볼 기회가 없으면 B급 인간 또는 불행한 인간이라고 일단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깃발이나 들고 흔드는 노동, 삽 한 자루 잡고 하루종일 이리저리 다니며 시키는 대로 치우고 나르는 건설회사 노동자들은 눈치나 보고 게으름을 찾게 되어 오히려 사람을 크게 버릴 수 있습니다. 노가다하는 사람의 수준이 노가다에서 그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방향으로 일거리를 찾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말하는 노동은 하루종일 모래나 자갈이나 철근을 나르거나 또는 땅을 파야 하는 종류의 일을 말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것은 기계가 다 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땀을 흘릴 일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대형사업장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소규모사업장에서 공사를 조금씩 떼맡는 사람 밑에서 일을 하면 땀흘려 일을 하며 사람이 될 수 있는 자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규모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장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을 야물게 일을 시키기 때문에 노동을 정식으로 하게 되는데 대형건설공사장에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 같이 남의 돈을 받는 사람이어서 일에 대하여 그렇게 애착과 집착이 없습니다.
백목사님 가장 싫어하는 직업은 옷에서 먼지 하나까지 톡톡 털어야 하고 땀은 흘리지 않는 이발사 택시 등입니다. 수십 년 전의 직업을 기준으로 했으니까 오늘로 말하면 어떤 종류가 해당될지 모르겠습니다. 보기에 멋있고 남들에게 부럽게 보이고 편하고 쉽게 보이며 먼지도 땀도 없고 좋게만 하루를 지나가는 일, 그 일은 무엇이든 아주 질색입니다. 사람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자리에 오르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면 다릅니다.
②노동의 '지속'
하루 열심히 일을 해도 다음날 일이 없다고 쉬면 노동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노동으로 자기를 단련하는데 김이 빠져버립니다. 몸에 고장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몸이 피곤한 정도라면, 쉬는 날 없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일의 강도가 강한 것을 찾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맨 땅이라도 파고 다시 묻고 하더라도 놀지 말고, 또 공짜로 남의 일을 해주더라도 놀지를 말라고 백목사님은 시킵니다. 적어도 3-4개월은 그렇게 해야 노동에 몸이 익어버립니다. 밥으로 말하면 솥 속의 온도가 최후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너무 시달려서 중간에 뚜껑을 열어버리고 찬바람을 쐬어버린 밥하고, 그 고비에 끝까지 견디고 드디어 뜸까지 다 들인 다음 퍼낸 밥하고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30분을 솥 속에 있어야 한다 치고, 20분 끓이고 5분 쉬고 20분 끓이고 다시 5분 쉬는 순서로 3번 4번을 끓인다 해도 그 밥은 선 밥이 되지 퍼진 밥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 즉 30분을 조금도 쉬지않고 고비를 넘기고 난 후에 뚜껑을 열게 되면 그 밥은 차진 좋은 밥이 됩니다. 그 밥은 저장만 잘해두면 며칠 후에 먹어도 그 밥맛을 유지하게 되지만 최종고비에 뚜껑을 열어버리고 시원한 바람을 쐬어버린 쌀은 선 밥이 되어 뒤에 다시 물을 붓고 모자란 온도를 채우기 위해 아무리 꾸준하게 열기를 가해도 한번 굳어진 것은 다시 새로 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몇 개월은 주일 말고는 무슨 일을 해도 놀지 않고 계속하는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제는 처음 몇 일 동안 그렇게 밤마다 피곤하던 육신이 일에 적응이 되어서 아무리 고단한 일을 해도 돌아서면 바로 거뜬하게 되어 이제 평생 노동으로 살아도 살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실제 자기 몸도 그럴 수 있도록 연단이 될 것입니다. 처음 며칠 하고 중단한 사람은 평생 노동이라는 것은 남의 말처럼 들립니다. 한번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은 노동에 대하여는 완전히 딴 세계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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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이렇게 막노동에 몸을 연단시킬 때 집에 있는 여자가 할 일은 아이를 많이 낳아서 아이에게 치어 죽을 지경이 되어야 사람이 됩니다. 가정 경제 형편 때문에 부득 일을 해야 한다면 식모가 좋고 아주 천한 사람들이 모인 시설 같은 곳에서 파김치가 되는 것도 같은 차원일 것입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눈을 낮추고 인간의 근본을 보게 하고 죄의 값이 어떤 댓가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앞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무적의 사람을 만드는 일, 인간세계에서 가장 쉽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작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동입니다.
③노동의 '내면'
겉으로는 죽을 고생을 하면서, 노동하는 내면에서는 늘 말씀 생각하고 하루를 살게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때 받은 말씀으로 하루종일 짐을 지면서 속으로는 말씀 새김질하고 겉으로는 돈을 벌고 이마에는 저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는 직업. 교사는 학생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고 남는 시간에 이런 저런 책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신앙출발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계속 새기는 일에는 아주 불리한 직업입니다. 지식인 전문인 등의 직업이 주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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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80키로 벽돌을 지고 4-5층을 하루종일 오르내리면 육체는 전혀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오직 그 무게를 버티고 나르는 일만 하게 되고 마음은 하루종일 말씀을 새기고 새겨 나무 깊이 박히는 못처럼 그렇게 새벽에 받은 말씀 하나를 마음에 심어둘 수 있습니다. 새벽 말씀 하나를 배워 앞으로 따져보고 뒤에서 되헤아려보고 본문을 외워보고 본문과 말씀을 연결해 보고 그 말씀으로 실제 살아간다면 현실 속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짐을 지면서 마음 속으로 미래 닥칠 어려운 환경과 투쟁을 하면서 하루해를 보내다 보면 노동예찬론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종일 장사를 하면서 그 세계에서 느끼고 겪는 은혜를 자랑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러하고 다른 사람은 저러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의 고비를 넘긴 사람은 장사의 그런 세계를 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장사를 통과한 사람은 은혜는 자기대로 가지고 있으나 노동의 세계를 통과할 수 없는 근본 실력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배우고 교인 생활한 사람들의 실력과 자랑의 급수는 말하자면, 노동의 급수에서 가장 중요한 판결이 나버립니다. 노동을 통과한 사람이 그다음 이것 저것을 가지면 그것을 실력으로 보지만 노동을 통과하지 못하고 바로 교회 행정을 잘 보거나 반사를 잘 하거나 무슨 중요한 사명을 맡는다든지 하게 되면 그들은 늘 마음 속에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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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나온 서영준목사님도 노동을 통과하고 땅콩 장사도 다 겪고 나서 충분히 사회 밑바닥과 교인들이 고생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통과한 다음에 교회일에 전념하게 됩니다. 1979년 8월에 서목사님과 함께 부산 금정산에 기도하러 가신 목사님과 몇분 교인들의 짐을 져 내리려고 갔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몸은 참 무쇠였고 후배로서 그분의 단련된 육체를 보며 부럽고 존경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등에 짐을 지고 날라도 답변자보다 훌륭하고 실력이 있는 분입니다. 세상 다른 면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앙의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쳐다 보지도 못할 분이었습니다.
④노동의 '효력'
막 가는 최고 어려운 노동을 다 통과하고 나면, 이제 말씀대로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도 남들보다 좀더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를 들면, 꼭 같은 사례를 교회에서 지출해도 곱게 부자집 막내아들로 자란 목회자는 경제적으로 견디기가 어렵다며 자기가 그 사례 때문에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은 놀고 먹고도 이렇게 사례를 많이 받다니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는 앞의 경우 목회자가 십자가를 졌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는 십자가도 아닌데 십자가를 진 것처럼 고난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계산을 여러 면으로 잘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 때문에 오늘 목회자들은 출세를 하고 있는 판인데도 오히려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고 교인들과 하나님 앞에 엄살을 부리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 목회자치고 게을러서 굶으면 굶었지 복음 때문에 진정 굶었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대신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살을 빼느라고 정신이 없을 만큼 복음 때문에 배부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싶어도 십자가를 박물관으로 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우리는 이런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곱게 자란 사람 호강만 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오늘 이런 시대에 목회를 하면서도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는데 실은 연단을 받지 못한 자신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목회자들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나오다 보니까 환경적응력에 있어 장애자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것은 자기의 장애 때문이지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동은 이런 장애들을 일시에 해소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주를 위해 좀더 많이 드릴 수 있도록, 더 깨끗하게 바칠 수 있도록, 좀더 나은 자신을 드릴 수 있도록 하려면, 자기 연단과 절제와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꼭같은 신부라 해도, 그동안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자신을 남편에게만 솔빡 바치는 신부도 있고 그동안 기회되는 대로 여러 남자들과 어울려 실컷 재미있게 놀다가 대충 그 중에 나은 것 하나를 꿰찬 신부와, 결혼식장의 신부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 비중과 내용은 아주 다를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주님에게 바칠 자기의 몸을 어떤 역경도 어렵다고 느끼지 않고 드릴 수 있도록 만든 사람과 침대에 자지 않으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 최고급 명품 출신 목회자와 주님께 드릴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하며 나을지를 평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예를 들었지만,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⑤목회의 기본
백영희신앙노선의 목회자관은 시험을 쳐서 뽑은 학생을 교육시켜 하나님의 종이라고 내놓는 식을 싫어합니다. 그냥 교인으로 말씀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다가 목회자로 나오게 되는 방향으로 안내를 합니다.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면서 열심히 돈을 벌고 말씀으로 살면서 자기 맡은 일을 하고 말씀대로 가정생활까지 열심히 살아보게 되면 말씀을 신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을 산 신앙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 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던 중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자들의 이론을 듣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은 그 말씀으로 세상을 실전으로 살아야 할 교인들에게 아무 가르칠 것이 없다고 우려하는 편입니다.
목사 자기는 그 말씀으로 세상 속에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을 해 보지 않고 교인들에게는 참아라 말아라 한다면 그것은 신학교 교과서를 교인들에게 읽어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선은 목회를 생각하지 말고 평범하게 교인으로 세상을 살되 받은 말씀으로 자기 현실에서 실제 살아보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복이 오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능력이 오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진짜 그 말씀이 좋고 옳다고 확신이 되면 그다음부터 그렇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것이고, 그렇게 전하는 것을 주변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에게 목회를 해야 할 사람이라고 인정할 정도가 될 때 자연스럽게 목회로 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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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질문하신 내용 중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①"현실적으로 주일을 지키며 할 수 있는 노동은?'
노동의 종류는 앞에서 말씀드렸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문제는 막노동에서는 자기 마음이니까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대신 주일을 계속 빠지면 그다음에는 자기를 부르지 않아서 일이 자꾸 끊어지겠지요. 그러면 월요일부터 또 다시 공사판마다 계속 돌아다니며 일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몇 번 그렇게 하다 보면, 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심히 하다보면 진실되이 일하는 이들은 주인 눈에 들게 됩니다. 실제 해보면 주일 때문에 가끔 문제는 생기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인력시장도 대안은 되겠지만, 아침 일찍 가서 8시나 9시까지 기다리다가 일이 없을 때 그날 하루해를 대충 보내기가 쉽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이나 읽자는 마음의 유혹이 심할 것입니다. 인력시장의 사람 배분이 대충 끝나게 되면 아무 공사판이나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가서 '사람 혹시 쓰지 않습니까?' 하면서 계속 해서 묻고 다니면 아마 일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최근은 거의 모르지만 과거 20곳에서 50곳을 물어봐서도 일이 없어 못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물어보며 다니는 것이 노동판 직장 구하기의 또 하나의 훈련이며 그렇게 몇 번 해보고 나면 장사도 단번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장사의 첫 훈련은 안면을 철판으로 깔아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신앙 이유 때문에 일을 할 때는 자신의 신분을 전혀 표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게 되면 어떤 면으로든지 인정이나 사정이 개입됩니다. 완전히 그 판에서 그 수준으로 견디고 통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바울처럼 목회자가 자기 경제를 해결하는 것은?'
교인이 자기가 돈을 벌어 자기 힘으로 교회를 출발시키고 목회자가 따로 없어 자기가 목회자노릇까지 하다가 세상 일을 완전히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목회자로 나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던 분이 세상 직업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앞에서 설명한 대로 목회자가 자기 연단을 위해 노동이나 장사를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의 자기 훈련 문제이므로 별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경우 훈련이라 해서 대충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원칙은 이러하지만, 목회자가 자기가 가진 직업이 있어 그 직업을 하면서 목회를 하면 해도 그 직업을 포기하고 목회를 할 만큼은 연단이나 실력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목회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낫습니다. 공회 내에는 대구와 부산에 유명한 2명의 의사 교인이 교회의 가장 충성하는 교인으로 충성하다가 의사로 있으면서 교회를 맡아 완전히 목회자의 역할을 오랫동안 했고, 그 교회 교인들이 원해서 한 분은 의사를 완전히 그만 두고 목사 안수를 받았고 또 한 분은 병원을 계속 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유능한 의사로 아주 크게 성공한 분들인데 갑자기 목회만 전념할 때 노동만 하고 살아온 우리처럼 핍절한 경제로 버텨야 한다면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렵다고 할 때 그분들로서는 의사에서 그만큼 낮아졌으면 노동자 수준의 우리가 밥 몇 끼 더 잘 굶는다 해서 그분들보다 실력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성공한 의사로서 단번에 모든 것을 다 끊을 수가 있었다면 우리는 흉내도 내지 못할 십자가를 진 것이 될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그런 정도의 십자가를 지려고 한다면 우리는 굶는 정도로 되지 않고 굶어 죽어야 겨우 닿을 정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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