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조직신학에서의 기능구원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6.21
출처: /연구실/문의답변/474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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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기능구원과 조직신학


안녕하십니까?

조직신학적으로 기능구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답변)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신론

①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유형의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속성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 자체나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가지는 못합니다. 피조물이어서 물질 재료를 가지고 몸과 마음을 만들었으나 이 몸과 마음은 그릇과 같고, 이 그릇에 어떤 모양을 담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귀를 흉내내고 마귀시키는 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이면 몸과 마음이라는 그릇 안에는 마귀 형상이 담겨지게 되고, 우리 몸과 마음이 성령으로 움직이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실체가 몸과 마음 자체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움직여서 만드는 바로 기능입니다.


②하나님의 목적

각자 기능을 통합하면 세상에 살다 간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각자는 한 몸의 한 지체가 되어집니다. 한 몸의 한 지체로 조립이 될 때 그 부속품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가진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모습이 아니고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가진 기능의 모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평생 만들어서 천국에 가져오는 각자의 기능을 한 곳에 모으면 마치 하나의 몸과 같이 될 것이고 이 의의 기능들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최종 지휘소인 머리는 그리스도가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목적 세계가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기능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③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은 몸과 마음 자체이고 그 몸과 마음 속에 담기는 기능은 평생 살아가면서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몸과 마음을 만든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만든 것은 창조의 시작이고, 우리 각자 속에 평생 만들어가는 우리 속의 기능이 또 하나의 하나님의 창조의 연속입니다. 진화설과 창조론의 논쟁이 있어 천지창조의 첫 순간을 교리적으로 따로 보관하고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조직신학의 외부표현에서는 창조를 천지창조 첫 순간에 국한 시키고 있으나, 실은 그 창조는 알맹이 내용 창조를 위해 그릇을 만든 껍데기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2.인론

인론은 일반 조직신학이 영과 마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또 몸과 마음을 기능면으로 세분하여 살피는 면이 전무한 정도이므로 기존 조직신학의 인론 관련 제목으로는 살펴보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제목을 나누지 않고 일단 통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구성은 영물로 된 영과 물질로 된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능구원을 두고 생각할 것은, 인간을 재료와 구성형태로 분류하면 영과 마음과 몸이 되지만, 작용면으로 분류하면 몸과 마음 그 자체와 그것들이 움직여 만든 기능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별을 해야 하는 이유는, 본체는 누구나 꼭같지만,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은 그 본체가 만든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인론의 인간구성면에서 이분설과 삼분론이라는 논쟁만 있었지만 이는 이미 결론이 난 것이고 앞으로는 몸과 마음 본체와 그것들이 움직여 만든 기능이라는 존재를 따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3.속죄론

①죄의 주체

누가 죄를 짓느냐는 문제를 두고, 우리 몸과 마음이 합작하여 그냥 죄를 짓는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 안에는 과거 죄를 지어 죄의 기능이 쌓여 있으니 이 죄의 기능은 다음에 다른 죄를 지을 때 엄청난 지원병력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일단 죄를 짓는 주체이지만 이미 지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는 실제 현실에서 죄와 싸우고 죄를 상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②대속의 대상

지옥갈 죄로부터 구원하는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되어졌지만, 예수 믿기 이전에 쌓아둔 자기의 죄짓는 기능은 예수 믿고 난 후 자기 건설구원에 평생 저항세력으로 남아 자신과 싸우게 됩니다. 바로 이 부분은 몸과 마음 자체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에 쌓여있던 죄의 기능의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 자체는 한번 중생이 된 사람은 천국구원에 완전한 해결이 되지만 그 기능은 악령에게 여전히 소속이 되어 있는 악성의 종인 악습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악습 자체는 대속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생한 우리는 과거 지은 죄 때문에 지옥가는 일은 없지만 그대신 과거 지은 죄 때문에 앞으로 건설할 신앙생활에 가장 강한 적은 외부가 아니고 바로 자기 속의 죄로 만든 기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③예수님의 대속

십자가에서 죽은 것만으로 우리를 대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33년 이 땅 위에서 살았던 매 순간 전부가 우리 위해 치르야 할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 당한 순간을 시간의 흐름으로만 보지 말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장차 구원받은 이후에 건설해야 하는 죄의 기능과의 투쟁에 필요한 것까지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4.구원론

①건설구원의 내용

건설구원의 내용은 기능구원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설명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설명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중생된 성도는 중생된 순간부터는 죽는 날까지 죄만 지어도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그가 죽는 날까지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천국을 가고 못가고 문제가 아니라 이미 가게 된 천국을 가는데 무엇을 준비해서 가야 할 것인지의 문제이고, 그 문제는 바로 몸과 마음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자기 속에 의의 기능을 얼마나 만들고 어떤 종류를 만들어야 하는지입니다. 그 기능구원의 양이 바로 건설구원의 양이라고 계산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②기능구원의 형성과정

이 부분은 백영희설교록에서는 너무 많은 분량으로 거의 평생을 이 부분에 대하여 설교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도 양이 너무 많고 이곳을 이용하는 분들이 대개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요약하면 죄와 마귀와 사망의 역사는 우리의 심신을 붙들고 말씀을 어기게 하려고 노력하고, 성령과 진리와 대속의 역사는 우리 영을 통해 심신을 말씀대로 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양쪽의 전쟁이 벌어지는 일차 전장터는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위로 영에게 붙들리고 아래로 자기 몸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 우리 성도의 평생 걸음이 결정됩니다.


5.말세론

①사심판

공심판에서는 기능구원 문제가 일단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능을 따질 것 없이 공심판은 불택자는 무조건 지옥으로 택자는 무조건 천국으로 나누는 심판이 공심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택자냐 아니냐는 것만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천국갈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문제로 각자를 따로 평가하게 되는 사심판에서는, 우리 몸과 마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몸과 마음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하여 어떤 기능을 만들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 양과 그 종류와 그 성격을 평가하여 각자의 영원한 천국에서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회사 채용되기 전에 무엇을 전공해서 어떤 면에 실력을 갖추었느냐에 따라 배치해야 할 부서와 맡아야 할 분야가 나뉠 것이고, 또 대우와 활동의 범위가 천차만별로 나게 됩니다.


②지옥의 영원한 소각

인격이란 첫 창조 때 만들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그 원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출생 이후 평생 만들어 간 모습을 포함하게 됩니다. 인격에 관한 것은 한번 세상에서 존재하고 움직이고 나면 그냥 없어지는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있습니다. 말씀을 어겨 만들고 말씀과 배치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의 그 인격이 그냥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 살아 생전에 잘못 행동하여 잘못 만들어 가졌던 기능들은 그냥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옥에 던져 영원히 고통 속에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세상에서 자기 자녀를 구원하지 못한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천국에 가 있겠지만 자기 자식은 자기 보는 눈에서 지옥 고통을 겪는 것을 영원토록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천국이 그런 모습이라면 천국조차 생지옥이나 무엇이 다를까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잘못된 부모 자녀 사이의 인정과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 것이 일반 부모들이겠지만,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든 원래 목적과 이용물로 사용될 불택자들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므로 그럴 일이 없습니다. 다만 살아 생전 나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책임을 맡겨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불충해서 자녀를 믿게 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바로 자기의 그런 행동과 실책에 대한 자기 반성이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자기 기능에 대한 면도 이런 차원에서 살펴 연구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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