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사마리아 비유와 관련하여 성경 해석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8.06.17
출처: /연구실/문답/557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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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마리아 비유



사마리아 비유에서 주막을 백목사님은 교회로 비유하셨습니다.
총신대같은 보수적인 신학대나 세계적으로 보수 신학교에서는 주막을 교회로 해석하는 것은 무식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만 주막이라는 단어는
신구약성경에 한번 밖에 안나오므로 주막을 그렇게 해석하면 알레고리해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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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주막이 교회가 아니라면 맥주집을 말하는 가!



1.성경 해석

첫째, 성경기록 원칙
요21:25에서, 성경은 최소한의 함축기록이며
딤후3:15에서, 성경은 우리 구원에 어떤 면을 가르치는지 살펴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둘째, 성경해석 원칙
사34:16에서, 성경은 빠진 것이 없고 짝없는 것이 없으니 자세히 읽어보라 했고
벧후1:20에서, 성경은 자기 마음대로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라고 했습니다.

셋째, 결론을 내면
성경은 성경을 기록한 성령에게 물어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이 나옵니다.


2.눅10장의 강도만난 이웃을 예로 든다면

25절에서, '영생'을 질문한 사람이 있고
28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가르친 다음 이웃사랑의 예를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고 주막으로 데려간 다음 주인에게 치료비를 주며 살펴달라고 한 이야기입니다.


이 눅10장의 기록을 두고 지금 우리는 문답을 하고 있습니다.
눅10장은, 서울역 앞에 버려진 노숙자를 썩는 양식으로 먹이고 입혀 치료하는 것이냐?
눅10장은, 인간 구원에 필요한 지혜를 주신 말씀이냐?

요6:27에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 했고
마4:4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으며
암8:11에서, 양식과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눅10장의 강도 만난 이웃에게 우리가 베풀 사랑은 무엇인가?
썩는 양식을 줄 수는 없지만 치료해도 썩어야 하는 육체 치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먹어도 죽고 치료해도 죽는 육체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영생의 문제를 두고 그 인간의 천국 구원에 관련된 치료를 말하는 것인가?

성경을 정말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 초기에 단번에 해결될 질문으로 생각합니다.
강도 만난 이웃의 이야기를 왜 '영생' 문제를 두고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성경 기록의 원칙과 해석의 원칙을 성경이 말씀한 그대로 한다면
강도 만난 이웃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야기인가 아니면 절대 진리를 가르치는가?


겉으로는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 이야기로 적혀 있고
그 내용은 우리에게 복음 운동의 내면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의 '강도' '기름' '포도주' 술파는 '주막'이 무엇인지 성경 전부가 말씀했으므로 신학교에서 신학 관련 공부를 하는 분에게는 더 이상 답변할 필요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3.성경은 질문하신 본문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에덴동산에 만들어 놓았던 인간의 모습이 정상의 모습인데
마귀가 죄를 짓게 하여 인간의 모습이 다 망가졌으니
마귀는 강도요 망가진 인간의 참 모습이 바로 강도만나 죽게된 사람입니다.
구원하러 나타난 분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치료의 방법은 '포도주'와 '기름'이었으니
포도주는 교훈을 말하고 기름은 성령의 신령한 역사를 말하는 것이니 곧 영감입니다.

일단 죽을 것을 살려놓은 다음 완치를 위해 그 사람이 주막에 맡겨 놓았으니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명된 인간을 맡아 그 예수님이 다시 올 때까지 회복의 과정을 맡은 곳, 그곳을 본문은 주막이라 했으니 이 주막은 소주집 맥주집인지 아니면 기생 장구치는 옛날 술집인지 아니면 고급 양주집인지 아니면 사칠이나 성단인지, 아니면 교회를 말하는지?

각자 해석해서
맥주집이라고 생각하면 죽는 날까지 호프집에 가서 퍼마시고 살면 될 것이고
기생집이라고 생각하면 예배당에서 남녀 뒤섞어 그리 만들면 될 것이고
주막의 술은 교훈을 가르친 것이니 예수님의 교훈으로 예수님이 살려 놓고 맡긴 교인을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돌보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하면 이 노선의 교회들처럼 교회가 교회로 움직이면 될 것입니다.


4.이곳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찌니라 하신 말씀은
고전9: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소가 아니라 복음의 일꾼을 소로 가르친 것이 신명기라고 성경이 성경 해석법을 이렇게까지 잘 해석해 놓고 알리고 있으니, 주막이나 포도주나 기름은 우리 구원에 어떤 면을 가르치는가 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데,

신학교의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알레고리'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니까 그 영어 단어에 막혀서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이치 앞에 주저하는 것은 불신자 차원의 초보 신앙이 처음 한번 정도 헷갈릴 일이지, 두번 세번 그런 말에 주저하면 결단코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신학교들이 떼거리로 들고 나서리라 생각합니다만


5.신신학자와 불신자급 신학자

첫째, 신신학자

악령이 교회를 허무는 방법을 크게 2가지 사용하니
하나는 대외전으로, 교회 밖에서 무신론이나 타종교를 통해 교회를 반대하고
하나는 대내전으로, 교회 내에 사람을 보내서 밑둥치를 흔들고 있습니다.

교회 내로 들어온 악령의 운동을 가만히 들어온 자 또는 적기독이라 하는데
하나는 교회 내에서 교회를 밀어서 넘어뜨리려 하니 이단으로 나타나고
하나는 교회 내에서 교회를 당겨서 넘어뜨리려 하니 신신학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불신자급 신학자

이단도 신신학자도 아니고 순수하게 잘 믿으려는 분들 중에서
불신자급 신학자라고 표현해야 하는 분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가는 길은 우리와 같고 그 목적과 동기는 우리보다 더 뜨거울 수도 있으나
본인들의 신앙 수준과 경험이 너무 어려서 멋모르고 발언을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수준은 예배당 교인 좌석에 앉으면 될 집사급이나 그 이하 수준인데
세상학교에서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해서 교수가 되고 학자가 되듯이
꼭 그런 방법으로 교회 내의 신학교에서 신학자가 되고 박사가 된 사람들입니다.
신학박사나 신학교수라는 이름을 신앙과 혼동하는 것이 거의 모든 교회들입니다.
박사와 교수는 불신사회 교육부가 정해준 불신자 수준의 학적 단위를 말하지
천국과 구원을 두고 말하는 '신앙' 기준과는 전혀 별 다른 것인데
오늘 말세 교회가 신앙도 그런 세상 학문 기준에 따라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불행입니다.


셋째, 신학자와 박사 중에는 신앙가가 거의 없습니다.

신앙가는 신학자나 박사 과정을 밟지 않는 내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신학자나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은 신앙의 핵심을 팔거나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100% 다 그렇다고는 말을 할 수 없으나
신학박사나 신학교수는 신앙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거의 맞는 말입니다.
이 홈에서는 이단도 아니고 신신학자도 아니고 우리처럼 정통교회의 순수한 교인들 중에서 신학자나 신학교수를 하는 거의 모든 분들을 대할 때 밑바탕에 늘 '불신자급 신학자'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있습니다.

세상 학교 공부하듯 공부는 하지만 공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신앙의 세계, 말씀의 세계에 관하여는 그분들의 수준이나 지식이나 평가가 마치 안 믿는 사람의 안 믿는 발언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6.과거 1980년대 말 총공회양성원에서도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템플대학교를 10년 유학한 교리사 관련 신학박사님이 총공회 양성원에서 성서해석학을 강의하면서 이번 질문자 소개한 알레고리 같은 발언을 하다가 공회 내부에서 아주 불신자급 신학자로 취급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본인은 신학의 고급 지식을 공급한다며 자부심을 가졌지만 그분은 이 노선 외로 나가는 신학자이고 이 노선은 질문자가 소개한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 관련 표현 또는 성서해석학에서 보통 이런 저런 언급되는 내용들에 대하여 불신자급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이렇게 나가는 것이고 저렇게 믿으면 저렇게 나가는 것이니
그분은 지금 외부 일반 교계 신학교로 출강을 하고 있고
이 노선은 그런 분들을 신신학자로 표현하는 것은 주저하지만 불신자급 신학자라 비판하는 데는 주저 하지 않습니다.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지 않는 행복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할 시기에 듣지 않는 행복

일반 신학을 접하면서 고통하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속으로 탄식하며 한숨짓는 이 홈의 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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