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극단적인 불행을 당하는 사람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8.07.08
출처: /연구실/문답/628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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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님께 왜 라고 묻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SBS 방송국에서 화요일 밤11시마다 방송하는 긴급구조 SOS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들만 나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때리는 알콜중독에 빠진 아들이나 아이를 때리면서 강제로 금식을 시키는 이단에 빠진 엄마, 본드 중독자, 폭력 아버지, 알콜중독 어머니 기타 등등 정말 최악의 내용들만 나옵니다
저런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하나님께 반문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왜 저렇게 극심한 고난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드셨는지...
(답변) 너무 불쌍한 사람들은
1.주변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은
첫째, 잠재적인 나의 모습입니다.
우연한 사고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면 나도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의 뇌신경 세포 하나 잘못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 주변에서 또는 길에서 또는 방송에서 마주치는 참 불행한 분들!
우리가 먼 나라 이야기로 듣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들, 역사에나 존재한 경우들!
세상에 한번이라도 존재한 불행은 나에게 닥쳐진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현재 나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 속에는 그렇게 될 가능성 잠재성이 있으니
그 불행한 인생들은 나의 모습 일부입니다.
아직 나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며
우리의 현 상황을 두고 참으로 겸손하고 두려워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파악하고 실행하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만들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감사하라는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불행한 분들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우리에게 하고 싶은 수많은 말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 극단적 불행이 나의 현실 일부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불쌍하고 나는 현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현실에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입니다.
내 몸처럼 나만 100% 책임져야 할 분야도 있고
골목청소처럼 몇 가정과 함께 내가 일부 수고할 분야도 있고
온 세계인이 함께 사용하는 대기환경처럼 뉴스를 보고 인식을 좀 바꿀 정도의 분야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분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의 추위가 그들만 춥게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를 춥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의 추위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계산해야 합니다.
내 이웃이 그렇게 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일본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한자로 만들지 않고 유한하게 만드셨으므로
한꺼번에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2.이번 질문에서는, 존재론에 대한 궁극적 의문이 있다고 읽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왜 저들을 만드셨는지?
우리는 아지 못하나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필요한 그들의 노정이 있습니다.
요셉의 감옥생활만 한토막을 잘라서 뉴스에 내놓는다면?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가는 소식만 전달된다면?
요셉도 질문자께서 예를 든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인생 전체와 그 후시대 전해지는 기록까지를 다 훑어본다면
요셉에게는 그 고난의 순간들이 요셉을 요셉으로 만든 최고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총리가 된 요셉의 모습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맺히는 것과 같은 하나의 결과였고
팔려가며 감옥에 들어가던 그 모습은 그 사과를 맺히는데 필요한 수고 기간이었습니다.
이 홈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백영희'신앙노선의 백영희라는 인물은
20대였던 1929-36년 기간 8년간 술도가 사장으로 폐인이 될 술중독에 빠졌습니다.
전도인이 지나가면서 전도조차 필요없다고 판단하여 그냥 지나쳤던 인물입니다.
그가 역사에 비교할 인물이 없을 만큼 잘 믿는 사람이 된 배경 중 하나는
그가 그렇게 어두움 속에 헤매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어두운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게 찾아온 빛은 보통 사람에게 다가간 빛과는 그 빛의 밝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차이가 한 사람을 은혜 세계로 되돌릴 때 그 만큼 힘을 가집니다.
현재만 본다면
왜 존재하는지 저렇게 살아 있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의 불행한 분들.
그러나 그분들의 안팎 전후 사정을 잘 눈여겨 보면
하나님의 역사와 처리는 이해할 만하다고 긍정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지공지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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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님께 왜 라고 묻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SBS 방송국에서 화요일 밤11시마다 방송하는 긴급구조 SOS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들만 나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때리는 알콜중독에 빠진 아들이나 아이를 때리면서 강제로 금식을 시키는 이단에 빠진 엄마, 본드 중독자, 폭력 아버지, 알콜중독 어머니 기타 등등 정말 최악의 내용들만 나옵니다
저런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하나님께 반문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왜 저렇게 극심한 고난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드셨는지...
(답변) 너무 불쌍한 사람들은
1.주변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은
첫째, 잠재적인 나의 모습입니다.
우연한 사고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면 나도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의 뇌신경 세포 하나 잘못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 주변에서 또는 길에서 또는 방송에서 마주치는 참 불행한 분들!
우리가 먼 나라 이야기로 듣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들, 역사에나 존재한 경우들!
세상에 한번이라도 존재한 불행은 나에게 닥쳐진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현재 나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 속에는 그렇게 될 가능성 잠재성이 있으니
그 불행한 인생들은 나의 모습 일부입니다.
아직 나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며
우리의 현 상황을 두고 참으로 겸손하고 두려워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파악하고 실행하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만들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감사하라는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불행한 분들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우리에게 하고 싶은 수많은 말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 극단적 불행이 나의 현실 일부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불쌍하고 나는 현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현실에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입니다.
내 몸처럼 나만 100% 책임져야 할 분야도 있고
골목청소처럼 몇 가정과 함께 내가 일부 수고할 분야도 있고
온 세계인이 함께 사용하는 대기환경처럼 뉴스를 보고 인식을 좀 바꿀 정도의 분야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분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의 추위가 그들만 춥게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를 춥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의 추위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계산해야 합니다.
내 이웃이 그렇게 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일본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분량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한자로 만들지 않고 유한하게 만드셨으므로
한꺼번에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2.이번 질문에서는, 존재론에 대한 궁극적 의문이 있다고 읽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왜 저들을 만드셨는지?
우리는 아지 못하나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필요한 그들의 노정이 있습니다.
요셉의 감옥생활만 한토막을 잘라서 뉴스에 내놓는다면?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가는 소식만 전달된다면?
요셉도 질문자께서 예를 든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인생 전체와 그 후시대 전해지는 기록까지를 다 훑어본다면
요셉에게는 그 고난의 순간들이 요셉을 요셉으로 만든 최고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총리가 된 요셉의 모습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맺히는 것과 같은 하나의 결과였고
팔려가며 감옥에 들어가던 그 모습은 그 사과를 맺히는데 필요한 수고 기간이었습니다.
이 홈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백영희'신앙노선의 백영희라는 인물은
20대였던 1929-36년 기간 8년간 술도가 사장으로 폐인이 될 술중독에 빠졌습니다.
전도인이 지나가면서 전도조차 필요없다고 판단하여 그냥 지나쳤던 인물입니다.
그가 역사에 비교할 인물이 없을 만큼 잘 믿는 사람이 된 배경 중 하나는
그가 그렇게 어두움 속에 헤매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어두운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게 찾아온 빛은 보통 사람에게 다가간 빛과는 그 빛의 밝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차이가 한 사람을 은혜 세계로 되돌릴 때 그 만큼 힘을 가집니다.
현재만 본다면
왜 존재하는지 저렇게 살아 있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의 불행한 분들.
그러나 그분들의 안팎 전후 사정을 잘 눈여겨 보면
하나님의 역사와 처리는 이해할 만하다고 긍정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지공지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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