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보증을 서야 할 경우는?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8.10.15
출처: /연구실/문답/744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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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동료의 부탁
교사입니다.
시간도 많고 급할 때 서로 봐주기도 하고
교무실에서 함께 오래 사귀고 서로 돕고 살다 보면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믿는 사람이니까 다른 교사들을 전도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데
며칠 전에는 동료 한 분이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만일 거절을 하려면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하는지?
참 난감합니다. 고견을 부탁합니다.
(답변) 보증의 내용과 결과
1.보증이란
남이 돈을 사용하다가 갚지를 못하면 내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법적 약속이니
보증의 본질은 '기증'입니다.
신앙관계에서 기증을 하게 되면 우리가 '연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보증의 의미는 '미래 조건부 연보'입니다.
2.보증의 내용
①도둑질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돈을 사용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도둑질인데
성경이 금하는 도둑질은 세상 형법상 도둑질이 아니고 이 넓은 의미의 도둑질입니다.
내가 사용할 돈을 남이 갚도록 법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도둑질이 되고
남이 그렇게 하도록 내가 보증을 선다면 나는 그 도둑놈을 도와준 공범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증'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액수가 엄청나게 큰 경우의 보증만 보증 문제로 따지고 있으므로
보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큰 도둑질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생각하도록 자기를 세뇌 시켜놓아야 합니다.
②미래를 팔아먹는 사기
인간은 미래를 두고는
단 1초 뒤가 어찌 될지 모르니 무지자이고 또 미래를 방지할 수 없으니 철저한 무능자인데
보증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미래의 자기가 돈을 틀림없이 갚을 것이라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니
보증을 서 달라는 사람이 미래를 두고 전지와 전능이 아니라면 그 말은 사기가 됩니다.
보증을 부탁하는 사람이
솔직한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으나 만일 실수로 못 갚게 되면 제게 연보하십시오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증을 선 사람이 있다면
이는 우리 주변에 흔하게 생기는 보증 문제가 아니고 능력 이상으로 연보를 해서 생기는 별개 문제입니다.
즉 보증이라는 것은
미래에 나는 틀림없이 그 돈을 갚게 되어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 동원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보증이라는 것은 미래를 팔아먹는 행동이며
이런 행동은 대동강 팔아먹은 김선달처럼 애초부터 남의 돈을 훔칠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③보증이란 대량범죄를 보증
하나님은 각자에게 맡긴 실력과 범위가 있습니다.
보증은 현재 자기가 가진 실력과 통제 범위를 넘는 금액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증이란 단어는 그 단어 자체에서 이미 자기 실력과 자기 범위를 넘어선 행동
즉 이미 도둑질할 가능성과 위험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보증이란 나중에 돈을 못 갚으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것이니
보증이란 우선 눈 앞에서는 돈을 두고 보증을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죄를 짓겠다는 범죄 각오서가 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십일조만 해도 집사 이상의 신앙이라고 평가되는데
보증이라는 것은 벌어놓은 돈의 10%를 떼내는 십일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
즉 벌어놓은 돈 1년치 전부 또는 10년치 전부를 통째로 연보하겠다는 약속이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이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고
또 자기와 온 가족이 그 돈 때문에 마음의 죄 생활의 죄가 수도없이 발생할 것이므로
보증이란 대량범죄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행동입니다.
④유교 신앙의 쓴뿌리
더 안타까운 것은 보증이란
맨 정신으로는 남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부탁한다 해도 해 줄 수 없는 것인데
이 나라 우리들에게는 공자님을 아직도 충실히 따르는 유교 신앙 사상이 진하게 베어 있어
마음으로 보증을 해 주고 싶어 해 주는 사람은 없고
마음으로는 정말 싫은데 차마 상대방의 안면을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보증을 서게 됩니다.
마음에 없는 것을
그것도 훗날에 엄청나게 죄를 짓고 후회할 일을
눈 지끈 감고 손을 내미는 상대방에게 자기 속 마음을 솔직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심성
이런 심성은 성경은 외식이라고 하고 유교는 대의명분이라 하여 생명을 걸고 그렇게 하라고 칭송합니다. 유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일을 얼마나 표시내지 않고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신앙이 성숙했다고 호평을 하고 장려를 하며 평생 그것을 연습합니다.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보증을 금하고 있는데
유교는 감당하지도 못할 것을 양반체면에 친구라는 안면에 걸리면 죽어도 하는 척 해라고 시키니 믿는 사람이 보증을 설 때는 제1 제2계명을 어기며 유교인으로서 또는 유교인의 후예로서 보증을 하는 것이지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럴 리가 없는 것입니다.
3.보증의 결과
①자기와 가족 구원 포기
전체 구원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죽어도 해야 할 일도 우리에게는 있지만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사명도 있으니
내 돈에는 나와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금액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팔아 도둑질을 하는데 덜렁 동참했다가 감당 못할 금액을 손해보면
그 돈 속에 나와 내 가족의 구원에 필요한 씨종자가 통째로 없어지고
상대방은 남의 소중한 생명을 없애는 일에 점점 익숙하게 만들어 그 구원도 막는 일이니
믿는 사람은 자타 구원을 위해서, 특히 자기와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보증은 설 수 없습니다. 만일 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나와 내 가족이 보증을 부탁하는 저 사람을 위해서 얼마 금액까지는 무료로 연보하듯 줄 수 있는지 액수를 계산한 다음 그 돈 범위 안에서만 어떤 형태로든지 도울 수 있고 그 이상이 넘으면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②실제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
보증이라는 것은
실제 자기와 가족의 생활에 엄청난 문제가 생기는데
안면 때문에 한번 부탁 거절한 것은 순식간이지만 잘못되면 1년 10년 또는 그 이상 세월을
매일 그 보증빚에 눌려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니
중풍에 3개월 효도가 없다는 인간의 연약성을 생각할 때 장기간 계속될 생활고는 실제 생활에서 엄청난 문제를 가져옵니다.
특히
한 집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나 한 가정이라도 든든하게 잘 지키고 있어야
부모나 형제나 친구가 망해서 오갈 데 없으면 그때 그들을 도와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데 나와 내 가족의 경제까지 뿌리를 뽑아 놓으면
내가 정말 희생해야 할 때는 구원을 위해 희생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③보증 선 사람과도 원수
모든 돈을 다 잃어도 돈보다 귀한 것이 사람인데
이미 보증을 서므로 그 사람을 미래 팔아먹는 도둑으로 만들었고
더하여 보증을 서지 않아서 섭섭한 것은 잠깐이지만 보증을 서 주게 되면 향후 보증 갚는 돈 문제가 두고 두고 서로 불편한 사이로 바뀌어 결국 보증 선 사람은 형제든 누구든 원수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돈 뿐 아니라 사람까지 잃습니다.
보증이 급한 사람은 그때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누구에게라도 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하게 되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만 미안할 뿐입니다. 만일 내가 보증을 서게 되면 그때는 나를 가장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순간이고 그 다음부터는 일을 크게 벌여서 또 다른 사람에게 보증을 요구하거나 나에게 추가 보증을 요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기 사촌 안에 이런 문제로 얽히고 섥혀서 남 모르는 원수와 고통을 겪는 경우가 없는 집안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없다면 부모나 할아버지 시절을 물어서 조사하면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4.참고로
①잠언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이 말씀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 말씀도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이니
십계명의 비중이나 이 말씀의 비중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②한번 더 강조하지만
보증을 서든 그냥 돈을 주든
자기가 남의 구원을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과 그 정도의 돈이 있어서
'기증' 또는 '연보' 하겠다는 뜻으로 보증을 선다면 그것은 보증이 아니라 인인관계를 돈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자기 범위 안에서 희생하는 것이므로 별도의 문제입니다.
자기 실력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자기가 책임질 구원의 희생이 아닌 경우
설마 저 사람이 사업에 실패할 리야 있겠느냐는 짐작으로
속 마음은 없는데 안면 때문에 마지 못해서 보증을 서는 경우
이런 경우를 금하는 보증이라고 표현하여 금하는 것입니다.
③이자를 받고 오가는 돈은 예외입니다.
이번 설명에서 이자를 받고 오가는 돈을 떼이는 경우는 제외해야 합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면서 내가 이자든지 어떤 이익이든지 덕을 보는 것이 있는 분들의 경우는 금융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은행은 큰 규모의 금융회사이고 우리가 동네나 집안에서도 작은 돈을 굴리면서 여러 형태로 재주를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노모시' '계' '사채놀이' '이자놀이'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금융업의 구멍가게들입니다.
과거 금리가 높았을 때는 이런 구멍가게 금융업을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 경우 돈을 떼먹고 떼이는 관계는 마치 마치 제조 유통업의 물건 파손이나 불량품 발생처럼 사업을 하다가 당연히 발생하는 손해비용입니다. 은행도 고금리로 대출하고 저금리도 이자를 주면서 차액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돈을 많이 남기는 고객도 있고 어떤 고객에게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에게 돈이나 보증을 서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덕보는 것이 있다면 이는 금융업이므로 금융업을 서툴게 하다가 사업에 실패한 경우이니 돈 떼먹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을 두고 한 사람이 이익을 좀더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더 볼 수도 있는 뒷골목 장사치들의 이해관계일 뿐입니다.
5.보증 부탁이 올 때 거절하는 방법
①미리 보증을 잡아 놓는 방법
자신있게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미리 담보를 잡아서 자기 돈을 다 묶어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일 미개한 방법이지만 사실 제일 든든한 방법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고슴도치의 털로 부장을 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 경우도 멋모르고 잘못 잡아 놓았다가 더 큰 맹수에게 한 입에 틀어넣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잘 살피고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며 연구해야 할 일입니다.
②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막는 방법
처가쪽에서 보증을 부탁하면
저는 해 주고 싶은데 안 그래도 제 쪽에서 수도 없이 부탁이 있었습니다.
한번 해주면 저쪽에도 해 줘야 하는데 이쪽은 갚을 분이지만 제 쪽에는 무참하게 해 먹고 다니는 분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친가 쪽에서 부탁하면 처가 쪽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이 없었다 해도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급하면 아는 사람에게 보증 세우는 것을 예사로 하기 때문에 다 잠재적으로는 이모 고모 외가 처가 친가 직장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이렇게 얽히고 섥히게 되어 있으므로 이쪽으로 저쪽을 막고 저쪽을 가지고 이쪽을 막는 수가 있습니다. 실제에도 맞고 도의적으로도 사실 그렇게 말을 해야 맞고 행동도 그렇게 해야 지공지성의 법의 성격에도 맞는 일입니다.
③최선의 방법은
평소 주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서
자기 인격이나 생활이나 행동이나 말이나 일처리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면
아예 파리나 생쥐가 들끓지 않습니다.
밤길에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나 그 골목을 택한 귀가길이나 그 시간까지가 종합적으로
치한을 불러서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있도록 세상을 허술하게 만들고 운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론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폭넓게 살펴보면 당할 사람이 당하고 죽을 사람이 죽고 도장 하나에 다 날릴 사람이 날립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이들까지도 제 정신을 차리고 정평정가를 하게 되면 나는 여기서 요렇게 사는 것이 옳고 지당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옥에 오게 된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하는 일이 없게 하십니다.
6.결론적으로 질문은
경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면에 주력하므로 볼 수 없는 세계에서 건설되고 있으나
그 볼 수 없는 내면이 외부로 비추어져 나오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는 표시판이 더러 있으니 그 중에 가장 쉽게 간단하게 확실하게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바로
신앙성공은 경제성공으로 표시가 나고
경제실패는 신앙실패라고 하는 등식이 있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는 예외였고
아브라함의 경우도 어느 한 때는 경제로 궁한 때가 있으므로
경제와 신앙을 무조건 바로미터로 바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신앙어린 우리가 통계적으로 본다면
경제성공이 신앙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신앙성공이 경제성공으로 표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거의 참고해도 될 정도이고
경제실패가 신앙실패를 나타낸다는 등식은 더욱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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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동료의 부탁
교사입니다.
시간도 많고 급할 때 서로 봐주기도 하고
교무실에서 함께 오래 사귀고 서로 돕고 살다 보면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믿는 사람이니까 다른 교사들을 전도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데
며칠 전에는 동료 한 분이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만일 거절을 하려면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하는지?
참 난감합니다. 고견을 부탁합니다.
(답변) 보증의 내용과 결과
1.보증이란
남이 돈을 사용하다가 갚지를 못하면 내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법적 약속이니
보증의 본질은 '기증'입니다.
신앙관계에서 기증을 하게 되면 우리가 '연보'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보증의 의미는 '미래 조건부 연보'입니다.
2.보증의 내용
①도둑질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돈을 사용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도둑질인데
성경이 금하는 도둑질은 세상 형법상 도둑질이 아니고 이 넓은 의미의 도둑질입니다.
내가 사용할 돈을 남이 갚도록 법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도둑질이 되고
남이 그렇게 하도록 내가 보증을 선다면 나는 그 도둑놈을 도와준 공범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증'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액수가 엄청나게 큰 경우의 보증만 보증 문제로 따지고 있으므로
보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큰 도둑질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생각하도록 자기를 세뇌 시켜놓아야 합니다.
②미래를 팔아먹는 사기
인간은 미래를 두고는
단 1초 뒤가 어찌 될지 모르니 무지자이고 또 미래를 방지할 수 없으니 철저한 무능자인데
보증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미래의 자기가 돈을 틀림없이 갚을 것이라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니
보증을 서 달라는 사람이 미래를 두고 전지와 전능이 아니라면 그 말은 사기가 됩니다.
보증을 부탁하는 사람이
솔직한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으나 만일 실수로 못 갚게 되면 제게 연보하십시오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증을 선 사람이 있다면
이는 우리 주변에 흔하게 생기는 보증 문제가 아니고 능력 이상으로 연보를 해서 생기는 별개 문제입니다.
즉 보증이라는 것은
미래에 나는 틀림없이 그 돈을 갚게 되어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 동원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보증이라는 것은 미래를 팔아먹는 행동이며
이런 행동은 대동강 팔아먹은 김선달처럼 애초부터 남의 돈을 훔칠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③보증이란 대량범죄를 보증
하나님은 각자에게 맡긴 실력과 범위가 있습니다.
보증은 현재 자기가 가진 실력과 통제 범위를 넘는 금액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증이란 단어는 그 단어 자체에서 이미 자기 실력과 자기 범위를 넘어선 행동
즉 이미 도둑질할 가능성과 위험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보증이란 나중에 돈을 못 갚으면 내가 대신 갚겠다는 것이니
보증이란 우선 눈 앞에서는 돈을 두고 보증을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죄를 짓겠다는 범죄 각오서가 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십일조만 해도 집사 이상의 신앙이라고 평가되는데
보증이라는 것은 벌어놓은 돈의 10%를 떼내는 십일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
즉 벌어놓은 돈 1년치 전부 또는 10년치 전부를 통째로 연보하겠다는 약속이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이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고
또 자기와 온 가족이 그 돈 때문에 마음의 죄 생활의 죄가 수도없이 발생할 것이므로
보증이란 대량범죄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행동입니다.
④유교 신앙의 쓴뿌리
더 안타까운 것은 보증이란
맨 정신으로는 남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부탁한다 해도 해 줄 수 없는 것인데
이 나라 우리들에게는 공자님을 아직도 충실히 따르는 유교 신앙 사상이 진하게 베어 있어
마음으로 보증을 해 주고 싶어 해 주는 사람은 없고
마음으로는 정말 싫은데 차마 상대방의 안면을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보증을 서게 됩니다.
마음에 없는 것을
그것도 훗날에 엄청나게 죄를 짓고 후회할 일을
눈 지끈 감고 손을 내미는 상대방에게 자기 속 마음을 솔직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심성
이런 심성은 성경은 외식이라고 하고 유교는 대의명분이라 하여 생명을 걸고 그렇게 하라고 칭송합니다. 유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일을 얼마나 표시내지 않고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신앙이 성숙했다고 호평을 하고 장려를 하며 평생 그것을 연습합니다.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보증을 금하고 있는데
유교는 감당하지도 못할 것을 양반체면에 친구라는 안면에 걸리면 죽어도 하는 척 해라고 시키니 믿는 사람이 보증을 설 때는 제1 제2계명을 어기며 유교인으로서 또는 유교인의 후예로서 보증을 하는 것이지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럴 리가 없는 것입니다.
3.보증의 결과
①자기와 가족 구원 포기
전체 구원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죽어도 해야 할 일도 우리에게는 있지만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사명도 있으니
내 돈에는 나와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금액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팔아 도둑질을 하는데 덜렁 동참했다가 감당 못할 금액을 손해보면
그 돈 속에 나와 내 가족의 구원에 필요한 씨종자가 통째로 없어지고
상대방은 남의 소중한 생명을 없애는 일에 점점 익숙하게 만들어 그 구원도 막는 일이니
믿는 사람은 자타 구원을 위해서, 특히 자기와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보증은 설 수 없습니다. 만일 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나와 내 가족이 보증을 부탁하는 저 사람을 위해서 얼마 금액까지는 무료로 연보하듯 줄 수 있는지 액수를 계산한 다음 그 돈 범위 안에서만 어떤 형태로든지 도울 수 있고 그 이상이 넘으면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②실제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
보증이라는 것은
실제 자기와 가족의 생활에 엄청난 문제가 생기는데
안면 때문에 한번 부탁 거절한 것은 순식간이지만 잘못되면 1년 10년 또는 그 이상 세월을
매일 그 보증빚에 눌려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니
중풍에 3개월 효도가 없다는 인간의 연약성을 생각할 때 장기간 계속될 생활고는 실제 생활에서 엄청난 문제를 가져옵니다.
특히
한 집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나 한 가정이라도 든든하게 잘 지키고 있어야
부모나 형제나 친구가 망해서 오갈 데 없으면 그때 그들을 도와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데 나와 내 가족의 경제까지 뿌리를 뽑아 놓으면
내가 정말 희생해야 할 때는 구원을 위해 희생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③보증 선 사람과도 원수
모든 돈을 다 잃어도 돈보다 귀한 것이 사람인데
이미 보증을 서므로 그 사람을 미래 팔아먹는 도둑으로 만들었고
더하여 보증을 서지 않아서 섭섭한 것은 잠깐이지만 보증을 서 주게 되면 향후 보증 갚는 돈 문제가 두고 두고 서로 불편한 사이로 바뀌어 결국 보증 선 사람은 형제든 누구든 원수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돈 뿐 아니라 사람까지 잃습니다.
보증이 급한 사람은 그때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누구에게라도 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하게 되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만 미안할 뿐입니다. 만일 내가 보증을 서게 되면 그때는 나를 가장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순간이고 그 다음부터는 일을 크게 벌여서 또 다른 사람에게 보증을 요구하거나 나에게 추가 보증을 요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기 사촌 안에 이런 문제로 얽히고 섥혀서 남 모르는 원수와 고통을 겪는 경우가 없는 집안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없다면 부모나 할아버지 시절을 물어서 조사하면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4.참고로
①잠언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이 말씀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 말씀도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이니
십계명의 비중이나 이 말씀의 비중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②한번 더 강조하지만
보증을 서든 그냥 돈을 주든
자기가 남의 구원을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과 그 정도의 돈이 있어서
'기증' 또는 '연보' 하겠다는 뜻으로 보증을 선다면 그것은 보증이 아니라 인인관계를 돈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자기 범위 안에서 희생하는 것이므로 별도의 문제입니다.
자기 실력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자기가 책임질 구원의 희생이 아닌 경우
설마 저 사람이 사업에 실패할 리야 있겠느냐는 짐작으로
속 마음은 없는데 안면 때문에 마지 못해서 보증을 서는 경우
이런 경우를 금하는 보증이라고 표현하여 금하는 것입니다.
③이자를 받고 오가는 돈은 예외입니다.
이번 설명에서 이자를 받고 오가는 돈을 떼이는 경우는 제외해야 합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면서 내가 이자든지 어떤 이익이든지 덕을 보는 것이 있는 분들의 경우는 금융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은행은 큰 규모의 금융회사이고 우리가 동네나 집안에서도 작은 돈을 굴리면서 여러 형태로 재주를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노모시' '계' '사채놀이' '이자놀이'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금융업의 구멍가게들입니다.
과거 금리가 높았을 때는 이런 구멍가게 금융업을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 경우 돈을 떼먹고 떼이는 관계는 마치 마치 제조 유통업의 물건 파손이나 불량품 발생처럼 사업을 하다가 당연히 발생하는 손해비용입니다. 은행도 고금리로 대출하고 저금리도 이자를 주면서 차액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돈을 많이 남기는 고객도 있고 어떤 고객에게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에게 돈이나 보증을 서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덕보는 것이 있다면 이는 금융업이므로 금융업을 서툴게 하다가 사업에 실패한 경우이니 돈 떼먹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없습니다.
서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을 두고 한 사람이 이익을 좀더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더 볼 수도 있는 뒷골목 장사치들의 이해관계일 뿐입니다.
5.보증 부탁이 올 때 거절하는 방법
①미리 보증을 잡아 놓는 방법
자신있게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미리 담보를 잡아서 자기 돈을 다 묶어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일 미개한 방법이지만 사실 제일 든든한 방법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고슴도치의 털로 부장을 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 경우도 멋모르고 잘못 잡아 놓았다가 더 큰 맹수에게 한 입에 틀어넣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잘 살피고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며 연구해야 할 일입니다.
②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막는 방법
처가쪽에서 보증을 부탁하면
저는 해 주고 싶은데 안 그래도 제 쪽에서 수도 없이 부탁이 있었습니다.
한번 해주면 저쪽에도 해 줘야 하는데 이쪽은 갚을 분이지만 제 쪽에는 무참하게 해 먹고 다니는 분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친가 쪽에서 부탁하면 처가 쪽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그런 일이 없었다 해도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급하면 아는 사람에게 보증 세우는 것을 예사로 하기 때문에 다 잠재적으로는 이모 고모 외가 처가 친가 직장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이렇게 얽히고 섥히게 되어 있으므로 이쪽으로 저쪽을 막고 저쪽을 가지고 이쪽을 막는 수가 있습니다. 실제에도 맞고 도의적으로도 사실 그렇게 말을 해야 맞고 행동도 그렇게 해야 지공지성의 법의 성격에도 맞는 일입니다.
③최선의 방법은
평소 주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서
자기 인격이나 생활이나 행동이나 말이나 일처리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면
아예 파리나 생쥐가 들끓지 않습니다.
밤길에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나 그 골목을 택한 귀가길이나 그 시간까지가 종합적으로
치한을 불러서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있도록 세상을 허술하게 만들고 운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론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폭넓게 살펴보면 당할 사람이 당하고 죽을 사람이 죽고 도장 하나에 다 날릴 사람이 날립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이들까지도 제 정신을 차리고 정평정가를 하게 되면 나는 여기서 요렇게 사는 것이 옳고 지당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옥에 오게 된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하는 일이 없게 하십니다.
6.결론적으로 질문은
경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면에 주력하므로 볼 수 없는 세계에서 건설되고 있으나
그 볼 수 없는 내면이 외부로 비추어져 나오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는 표시판이 더러 있으니 그 중에 가장 쉽게 간단하게 확실하게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바로
신앙성공은 경제성공으로 표시가 나고
경제실패는 신앙실패라고 하는 등식이 있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는 예외였고
아브라함의 경우도 어느 한 때는 경제로 궁한 때가 있으므로
경제와 신앙을 무조건 바로미터로 바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신앙어린 우리가 통계적으로 본다면
경제성공이 신앙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신앙성공이 경제성공으로 표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거의 참고해도 될 정도이고
경제실패가 신앙실패를 나타낸다는 등식은 더욱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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