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의 기준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8.12.26
출처: /연구실/문답/7626번
-------------------------



(질문)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의 기준


목사님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에 대한 글을 보고 질문을 드립니다.

질문1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을 나눌때 그 핵심사안을 교리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지?
총공회교리가 마음에 확신으로 새겨져 있는 성도가 세상방향으로 살며, 넓은 문으로 갔다 하더라도 그는 아벨노선이 아닌지요?
펠라기우스나, 알미니우스 교리를 가지고 아무리 좁은길로 갔다 하더라도 그는 가인노선이
아닌지요?

*여기서 넓은길은 간단하게 예를들면-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는 교회
죄도 많이짓고, 세상을 즐기며 산 교인

여기서 좁은길은 간단하게 예를들면- 기타와 드럼을 치지 않는 교회
죄도 최대한 적게짓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된 교인

아벨노선(교단, 개교회, 개인교회 모두포함) 을 올바른 교리로 보고-칼빈교리,백목사님교리

가인노선(교단, 개교회, 개인교회 모두포함) 을 잘못된 교리로 보고-펠라기우스,웨슬리교리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을 나눌때 교리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핵심이
아닙니까?

질문2(질문1과 연결되는 질문 입니다)

한 개인이 칼빈주의 , 총공회 교리를 가지고 아무리 성화를 못 이루어도 그는 아벨노선이고
한 개인이 펠라기우스나 웨슬리 교리를 가지고 아무리 성화를 이루어도 그는 가인노선이
되는 것입니까? 개인에게 그렇게 적용된다면 개교회나 교단도 적용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무리 인격적이고 선행을 많이 베풀며, 나쁜짓을 안하고
살았다 하더라도 그는 지옥갈백성이지만, 중생받은 사람이 살인을 수천명 하고 극악무도한
나쁜짓을 했다하더라도 그는 천국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펠라기우스교리를 믿으면서 아무리 성자처럼 살더라도 그의 구원은 꽝이므로
그가 택한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는 가인노선중에 가인노선일 것이므로.

질문3.

말세가 될수로 좁은 문으로 갈자가 적다 하였으니, 총공회교리를 (삼분론,기본건설구원,절대예정,기능구원 등)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는 극히 드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을 100으로 하고 퍼센트가 얼마나 될지, 앞으로 될것인지 알고싶습니다.

질문4.

올바른 교리를 가진 성도는(아벨노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목사님 위의 저의 생각이 맞다면 올바른 교리를 가진 성도는 아무리 잘못 살아도
그 성도의 이 땅에서의 삶은 은혜중에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택자중에 택자가
될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께 교리를 배운 서부교회 성도들은 은혜받은 성도중에 성도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 홈페이지를 통해 백목사님 교리를 배운 성도는 말세지말에 은혜받은 성도중에
성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답변) 1.성경해석 방법론 2.자신을 깊이 성찰함



1.성경의 해석 범위에 관련 된 일반적 원칙

①요5:5의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신 말씀으로 예를 들면

육체의 병을 치료한 말씀으로 읽어도 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한 말씀으로 읽어도 되며
신앙의 단점을 회개한 말씀으로 읽어도 됩니다.

38년 된 육체의 병을 낫게 하셨으니
이 말씀은 주님 오실 때까지 믿는 우리의 육체가 고장 났을 때 늘 참고할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 말씀을 몸의 병 치료 말씀으로만 알게 되면
마음의 치료와 신앙의 치료에도 사용될 말씀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육체와 마음과 신앙의 모든 면을 다 치료할 말씀으로 받는 것이 옳으며
그 3가지 면를 중요성으로 본다면 신앙 치료, 마음 치료, 육의 치료 순서일 것입니다.


②창4장의 인생 두 길을 보여준 가인과 아벨의 경우는

지옥을 가게 되는 불택자의 길과 천국을 가게 되는 택자의 길, 두 길로 봐도 되고
천국을 가게 되는 택자들 중에서 신자의 길과 불신자의 길, 두 길로 봐도 되고
이미 믿는 사람들 중에서 시험에 빠지는 길과 의로 사는 길, 두 길로 봐도 됩니다.

어두웠던 고대 교회는 지옥과 천국의 두 길로만 봤고
밝아지게 되면서 믿는 세계 안에서 속화 신앙과 신본 신앙의 두 길로 보게 되었으나
이 노선은 가인과 아벨의 노선을 더욱 자세히 그리고 깊게 살핀 결과
한번 가인의 길에 섰다 하여 늘 가인의 길에 서는 것이 아니고 아벨도 그러하니
박윤선 박형룡처럼 신사참배 때는 가인의 길에 섰다가 해방 후 아벨 길에 선 경우도 있고
한상동처럼 신사참배 때는 아벨 길에 섰다가 해방 후 가인의 인본주의 된 경우도 있습니다.

평생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매 현실마다, 매 순간마다, 매 사건마다 면밀히 살펴보면
베드로가 주님을 영접한 아벨의 자리에서 순간 가인처럼 십자가를 막고 나선 적이 있으니
앞선 자가 뒤 서고 뒤 선 자가 앞서며 하루 70번씩 7번이라도 번복하고 반복하는 것이므로
통합 합동 교단처럼 신사참배를 했다 해서 항상 가인의 길에 선 교파가 되는 것이 아니며
고신 재건 교단처럼 신사참배를 승리했다 해서 늘 아벨의 길로만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신이 해방 후에 걸어온 길은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가인과 아벨의 길을 오가고 있으며
통합 합동 교단도 어떤 때는 옳을 때도 있고 아벨의 모범 길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③말씀을 한 가지에만 고정시키면 말씀 제한이 될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는
고신은 아벨의 길을 걸었고 일반 장로교는 가인의 길을 걸은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신의 착각은 1945년 이전의 신사참배 사건 하나를 두고 아벨의 길을 걸었다 해서
고신 이름만 붙으면 일반 교단처럼 세상 단체처럼 민형사간 별별 세상 죄를 다 지어도
항상 1945년 이전 신사참배 당시 아벨 노선 때문에 항상 아벨 걸음이 되는 줄 아는데
이는 큰 착각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건으로 행동한 것은 분명히 가인의 걸음이었고
사울이 왕이 될 그 당시 자세는 분명히 아벨의 걸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가인과 아벨이라는 단일 사건 하나의 기록만을 가지고도
천주교나 아리우스파가 가인의 길이므로 기독교 모든 교회는 큰 면에서는 전부 아벨이지만
기독교 내 교파별 기준에서는 성경 자체를 부인하는 한신대 자유주의 신학은 가인일 것이고
성경을 그대로 믿는 노선 안에서는 신사참배 사건처럼 한 사건적 가인 아벨이 있을 것이고
경제는 가인의 길을 걷는 사람이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서는 아벨 길을 걸을 수 있으므로

성경의 모든 기록을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사람에게 각각 고착을 시켜버리면
우선은 성경해석이 명쾌하고 개운한 맛이 있어 좋을지 몰라도
그런 해석은 성경이 전 교회 역사와 각 사람이 평생 겪는 만사에 전부 해당되는 진리인데
이런 무한한 진리를 좁은 한 사건에 가두는 문제가 생깁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지난 모든 세대가 성경 해석의 수준과 범위를 너무 어둡게 좁게 제한해 두고 있던 것을
이제 정말 끝없는 무한의 진리로 드러나게 했다는 면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역사적으로 루터라는 이름은 종교개혁이라는 점에서 루터를 기준으로 전후세대를 나누듯이
교리적으로 칼빈 이름은 보수정통 교리 관점에서 칼빈을 기준으로 이단 정통이 나뉘듯이
성경해석에서 백영희라는 의미는 성경해석이 1차원에서 바로 3차원으로 펼쳐진 기준이 된다는 것이 이 홈의 입장입니다.

매 순간, 매 현실, 매 사건마다
정말 평생을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백영희 신앙노선의 성경 해석 범위를 만난 후에 가능한 일일 것이며
아직까지 어느 교훈에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총론은 들었으나 실제 그렇게 만드는 각론을 접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참으로 성경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그 설교 세계는 전부가 교리였고, 그 모든 교리가 설교를 듣는 이들의 매 순간을 생활에서 교리대로 살도록 실행하게 만들었습니다.




2.윗글 질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①질문1 '아벨과 가인노선의 구분은 그 핵심사안을 교리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인가?'

교리는 나무로 말하면 밑둥에 직접 붙어 나오는 대목가지와 같아서
잘못된 교리에서 뻗어 있는 각종 의롭고 좋아 보이는 행동은 죽은 가지 끝의 잔가지 같고
바른 교리 밑둥에서 뻗어 있는 행동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으나
이런 경우 틀린 것은 그 부분만 틀린 것이고 이런 경우 옳은 것은 밑둥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정통 교회 예배당에서 흉칙하게 댄스를 하고 있다면 그 행동만 잘못된 것이고
이단 교회가 예배당에서 경건하게 찬송을 부른다면 비록 좋아보이지만 뿌리가 죽었으니 죽은 행동이 됩니다. 마치 천주교의 구제나 선행과 같아서 송장에게 입힌 옷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한 교회나 사람을 평가할 때 '교리'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신앙 근본 노선 문제입니다.
교리가 틀렸으면 그 틀린 교리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행동은 다 헛된 것입니다.
다만 회개를 하게 되면 그 이전에 헛된 행동이 회개 후에 바로 사용될 때 큰 힘이 됩니다.
교리가 바르다면 그 교리 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의로운 일은 전부 영생이며 상급이 되나
교리가 바르다 해도 틀린 행동이 수없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틀린 행동은 그 행동만 틀린 것이므로 정죄받고 버려집니다.


②질문2 '이단의 선행과 정통 교인의 악행'

천국과 지옥은 '택함'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니
불택자의 의행은 어떤 의행 선행이라도 그것이 유혹이나 될 일이지 가치로 칠 것이 없고
택자의 중생 후 행동만 문제가 되는데 택자의 행동은 가인과 아벨의 길을 평생 번갈아 가며 살게 됩니다.


③질문3. '이 노선의 신앙인이 얼마나 될지?'

오늘이 마24:37의 노아 때라고 한다면 이 노선에 정말 굳게 설 사람은 8명 정도일 것이고
오늘이 출14:30의 광야 때라고 한다면 2명 뿐일 것이나
오늘은 눅18:8에서 믿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고 두려워 하는 것이 옳은 자세이므로

질문자께서 말세 진정한 신앙인의 숫자를 헤아려 보라 하신다면 최대 8명 정도일 것이니
이렇게 의인이 없는 말세를 사는 질문자와 답변자가 8명 에 우리 이름을 넣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내면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왕상19:18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7천명의 숨은 성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정도 숫자 중에서는 우리 이름이 발견될 수 있을지요?
일단 공회 교단 내에서는 10명을 채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며
공회 외부에서 이 노선의 바른 길을 걷는 이도 있을 것인데 그 수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뵐 면목은 없지만
딤전2:4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니
이 글을 적는 답변자도 딤전2:4 때문에 소망은 놓치 않고 있습니다.


④질문4. '올바른 교리를 가진 성도는(아벨노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여러 말씀을 통해 여러 가지 기준으로 살펴 볼 수 있으나
이 홈의 외부 모든 분들이 함께 읽는 자리이므로 공통성 있는 면으로 소개한다면
1970년대 이후 이 노선에는 40여 년 가까이 늘 마음에 새기는 내용이 있습니다.

경제 결백 - 교회 돈 훔치지 말라
충성 결백 - 교회 일에 게으른 놈팽이 되지 말라
이성 결백 - 남녀 이성 문제를 깨끗이 하라

이 3가지는 일반 교인에게 한 말이 아니라 공회 목회자들에게 한 말이니
공회 교역자들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목회자인 제자들에게
'이 도둑놈들아!' '이 사기꾼들아!' '이 잡놈들아!' 이렇게 욕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교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수준이 성경공부를 할 때는 제법 의인 같고 성도 같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내면을 샅샅이 훑어보면 우리는 도둑놈들이요 사기꾼들이요 잡논잡년들입니다.
이런 욕을 얻어먹을 수준이 되지 않도록만 노력해도 오늘 시대에는 귀한 성자 성녀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형편이 그러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