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죄책감?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9.02.04
출처: /연구실/쉬운문답/10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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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죄책감?
사활의 대속을 믿지만 사소한 일(?)로 죄책감을 느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대속의 은혜 안에서 온전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답변) 죄책감은 잊어버리는 데서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해결해야 합니다.
1.믿는 사람은 다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밝아질수록 작은 잘못도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을 가진 이들에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줄 때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보혈로 다 씻엇으니 지은 죄와 그 죄에 대한 두려움을 깨끗이 잊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은 죄를 더욱 키워 나가는 것이며 암덩어리를 보고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낫는다고 해 버리는 수준입니다. 우리 죄를 씻고 그 값을 도말하셨다는 대속의 법리를 오해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여 모든 죄를 해결한 것은 첫째 지옥갈 값을 해결한 것이며 둘째 어떤 죄도 해결 못한 것이 없는 완전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에서 해결하지 않으시고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은 바로 죄책감입니다. 지옥으로 가야하는 죄의 값은 해결해 주셨으나 그 대신 그 죄책감을 남겨 두시고 그 죄책감에 못견뎌 대신 죽은 주님을 위해, 대신 생명을 얻어가진 내가 늘 주님 대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십자가입니다.
2.죄책감을 해결하시는 방법은 그 죄책감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죄책감에 푹 빠져야 합니다.
불신자는 죄책감을 술로 잊어버리고 또 일부러 고개를 돌려 잊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순간이라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죄책감까지 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죄책감을 회피함은 공연히 병을 키우는 것입니다. 죄책감이 있을 때는 그 죄책감을 정면으로 붙들고 그 죄책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마음 속에 굳게 붙잡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붙들어 놓되 그 죄책감을 두고 깊이 연구를 하시면 됩니다.
이 죄책감은 무슨 죄 때문이었는가
이 죄책감을 가져오게 한 이 죄는 어떻게 짓게 되었는가
이 죄를 짓도록 유혹한 것이 무엇이며 이 유혹에 빠지게 된 자신의 단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 죄 하나 때문에 주님이 당한 십자가의 죽음은 어떠 했을까
얼마나 큰 투자와 희생이 들어간 대속인데 이 대속을 받은 내가 또 이렇게 죄를 짓게 된다면
이렇게 많은 면으로 이 죄책감을 두고 연구하되 '예수님의 대속'에 관련시켜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대속이 없는 죄와 죄책감에 대한 연구는 헤어나지 못할 곳으로 빠져들게 되는 독이 되고 반대로 대속을 가지고 대속에 연결짓고 대속을 연구하면서 죄와 죄책감을 상대하게 되면 믿는 우리에게는 필연적으로 그 죄책감 뿐 아니라 그 죄책감을 가져오게 한 죄까지도 이길 힘과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로마서 7장에 사도 바울도 연약하여 또 죄를 짓고 말았던 자신을 깊이 깊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3.그러나 이렇게 죄책감 속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의 대속을 빼버리면 '죄가 되는' 죄책감이 됩니다.
이미 지은 죄도 실은 큰 죄이지만, 죄를 지은 인간이 죄책감만 느끼고 돌이키지 않게 되면 정말로 큰 죄인이 됩니다. 소망을 포기 했다는 말이니 이것처럼 주님의 진노를 크게 사는 죄도 흔치 않습니다. 어떤 죄 구덩이 속에 있었을지라도 모든 희생 다하여 살려내려 하는 하나님 앞에 살아나 보려고 애쓰는 것만큼 큰 의인도 흔치 않습니다. 주님이 크게 기뻐합니다.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살아나 보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부모가 때릴 때 잘못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울면서 부모에게 안겨 들어오는 자식은 우선 몇개를 더 때릴지라도 속으로는 부모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또 이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매를 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리 없이 맞고만 있으면 그처럼 미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라 죄가 크든 적든 인간끼리 비교해보고 큰 죄인 작은 죄인을 구별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는 전부가 꼭같은 죄인입니다. 문제는 돌이키는 노력, 돌이키려는 사람이냐 아니면 주저 앉아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4.죄책감을 주님의 대속 속에 파묻어 버리면 죄책감이 없어지고 기쁨과 소망이 찾아 옵니다.
지은 죄를 자꾸 주님과 주님 날 위해 대속하신 그 대속에 연결을 시켜 새겨보면
너무 부족했고 뻔뻔스러웠고 낯도 들 수 없는 자신이 될 것입니다. 죄책감을 잊어버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키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대속으로 내 죄를 자꾸 살피다 보면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각오와 이유를 찾게 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식적입니다만 이렇게 찾아가지게 되면 우선 죄책감이 없어지고 자기의 연약성만 남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번 일어서서 하나님 앞에 다시 그 죄와 싸워 이번에는 이겨야겠고 그리 해 보겠다고 느낄 때 이미 죄책감은 없어지고 자기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그 죄를 이길 자신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 속의 죄책감이 대속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가 더 크게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그리고 돌아서서 이제는 죄로 더불어 싸우고 지지 않아야겠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의 변화 과정 중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이 열어주는 자기 마음 속의 개운함 밝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받아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죄책감을 잊어버리거나 죄책감 안에서만 머물게 되면 실패입니다.
죄책감을 쥐고 오히려 그 죄책감을 더 느끼게 하는 예수님의 대속을 여러 면으로 살피고 들어가면 이런 마음의 변화, 즉 기쁨과 감사로 찬송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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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죄책감?
사활의 대속을 믿지만 사소한 일(?)로 죄책감을 느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대속의 은혜 안에서 온전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답변) 죄책감은 잊어버리는 데서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해결해야 합니다.
1.믿는 사람은 다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밝아질수록 작은 잘못도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을 가진 이들에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줄 때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보혈로 다 씻엇으니 지은 죄와 그 죄에 대한 두려움을 깨끗이 잊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은 죄를 더욱 키워 나가는 것이며 암덩어리를 보고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낫는다고 해 버리는 수준입니다. 우리 죄를 씻고 그 값을 도말하셨다는 대속의 법리를 오해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여 모든 죄를 해결한 것은 첫째 지옥갈 값을 해결한 것이며 둘째 어떤 죄도 해결 못한 것이 없는 완전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에서 해결하지 않으시고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은 바로 죄책감입니다. 지옥으로 가야하는 죄의 값은 해결해 주셨으나 그 대신 그 죄책감을 남겨 두시고 그 죄책감에 못견뎌 대신 죽은 주님을 위해, 대신 생명을 얻어가진 내가 늘 주님 대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십자가입니다.
2.죄책감을 해결하시는 방법은 그 죄책감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죄책감에 푹 빠져야 합니다.
불신자는 죄책감을 술로 잊어버리고 또 일부러 고개를 돌려 잊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순간이라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죄책감까지 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죄책감을 회피함은 공연히 병을 키우는 것입니다. 죄책감이 있을 때는 그 죄책감을 정면으로 붙들고 그 죄책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마음 속에 굳게 붙잡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붙들어 놓되 그 죄책감을 두고 깊이 연구를 하시면 됩니다.
이 죄책감은 무슨 죄 때문이었는가
이 죄책감을 가져오게 한 이 죄는 어떻게 짓게 되었는가
이 죄를 짓도록 유혹한 것이 무엇이며 이 유혹에 빠지게 된 자신의 단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 죄 하나 때문에 주님이 당한 십자가의 죽음은 어떠 했을까
얼마나 큰 투자와 희생이 들어간 대속인데 이 대속을 받은 내가 또 이렇게 죄를 짓게 된다면
이렇게 많은 면으로 이 죄책감을 두고 연구하되 '예수님의 대속'에 관련시켜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대속이 없는 죄와 죄책감에 대한 연구는 헤어나지 못할 곳으로 빠져들게 되는 독이 되고 반대로 대속을 가지고 대속에 연결짓고 대속을 연구하면서 죄와 죄책감을 상대하게 되면 믿는 우리에게는 필연적으로 그 죄책감 뿐 아니라 그 죄책감을 가져오게 한 죄까지도 이길 힘과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로마서 7장에 사도 바울도 연약하여 또 죄를 짓고 말았던 자신을 깊이 깊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3.그러나 이렇게 죄책감 속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의 대속을 빼버리면 '죄가 되는' 죄책감이 됩니다.
이미 지은 죄도 실은 큰 죄이지만, 죄를 지은 인간이 죄책감만 느끼고 돌이키지 않게 되면 정말로 큰 죄인이 됩니다. 소망을 포기 했다는 말이니 이것처럼 주님의 진노를 크게 사는 죄도 흔치 않습니다. 어떤 죄 구덩이 속에 있었을지라도 모든 희생 다하여 살려내려 하는 하나님 앞에 살아나 보려고 애쓰는 것만큼 큰 의인도 흔치 않습니다. 주님이 크게 기뻐합니다.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살아나 보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부모가 때릴 때 잘못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울면서 부모에게 안겨 들어오는 자식은 우선 몇개를 더 때릴지라도 속으로는 부모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또 이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매를 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리 없이 맞고만 있으면 그처럼 미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라 죄가 크든 적든 인간끼리 비교해보고 큰 죄인 작은 죄인을 구별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는 전부가 꼭같은 죄인입니다. 문제는 돌이키는 노력, 돌이키려는 사람이냐 아니면 주저 앉아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4.죄책감을 주님의 대속 속에 파묻어 버리면 죄책감이 없어지고 기쁨과 소망이 찾아 옵니다.
지은 죄를 자꾸 주님과 주님 날 위해 대속하신 그 대속에 연결을 시켜 새겨보면
너무 부족했고 뻔뻔스러웠고 낯도 들 수 없는 자신이 될 것입니다. 죄책감을 잊어버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키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대속으로 내 죄를 자꾸 살피다 보면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각오와 이유를 찾게 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지식적입니다만 이렇게 찾아가지게 되면 우선 죄책감이 없어지고 자기의 연약성만 남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번 일어서서 하나님 앞에 다시 그 죄와 싸워 이번에는 이겨야겠고 그리 해 보겠다고 느낄 때 이미 죄책감은 없어지고 자기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그 죄를 이길 자신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 속의 죄책감이 대속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가 더 크게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그리고 돌아서서 이제는 죄로 더불어 싸우고 지지 않아야겠다고 느끼는 그런 마음의 변화 과정 중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이 열어주는 자기 마음 속의 개운함 밝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받아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죄책감을 잊어버리거나 죄책감 안에서만 머물게 되면 실패입니다.
죄책감을 쥐고 오히려 그 죄책감을 더 느끼게 하는 예수님의 대속을 여러 면으로 살피고 들어가면 이런 마음의 변화, 즉 기쁨과 감사로 찬송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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