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기도로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과 행동은?

구남단2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9.03.26
출처: /연구실/쉬운문답/19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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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기도로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과 행동



이곳을 통해서 항상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기도와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과 행동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가?
예를 들자면 미움, 시기, 질투, 게으름.....




(답변) (전체답변: 답변의 내용이 많습니다.)



(전체 답변)

1.기도에 대하여 보통 느끼는 경험은 이런 것 같습니다.

기도로는 다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로조차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어 본 선배, 신앙에 앞선 분들에게는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경험은 기도하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물론 기도했고 또 기도해서 이루어지고 되어진 것이 다소 차이는 있더라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또 다른 분들의 말을 듣고 한번 더 기도를 해보고 또 좀더 열심히 기도를 해보지만 역시 이루어지지를 아니하는 경우, 이제 물어봐야 또 같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또 기도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 성경이며 신앙 세계에서는 꼭 믿을 만한 분들이 그리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기도한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또 성경과 그분들이 '기도'하라는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전능이라 기도는 만능이라고들 하니까....

2.어거스틴이라는 분을 예로 들겠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 중 한 분으로 꼽는 이가 1600여년 전에 살았던 성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려고 있는 힘을 다 썼던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믿게 하려고 있는 힘을 다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어거스틴이 살아가는 나날을 볼 때 이루어질 수 없는 기도, 이루어지지 않을 기도라고 단정할 만큼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마음껏 탈출하여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님은 그를 직접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이켰는데 그가 유명한 것은 '은혜론'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루려고 해도, 인간이 아무리 도망을 쳐 보려고 해도, 모든 것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는데 이 하나님의 역사는 전적 은혜이며 이 은혜가 내릴 때는 아무도 거부하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전적 은혜라는 교리가 1000년 칼빈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오늘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3.기도로 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약간 다른 범위에서 아셨으면 하는 것들입니다.

①우선 고치기 위한 노력과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렇게 하셨겠지요?

미움, 시기, 질투, 게으름 등은 누구나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고치려고 해도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기 때문에 덮지를 못하고 자기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것은 알고 짓는 고범죄이니 기도로 그냥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고쳐지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고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들입니다.

질문에서 예로 드신 것은, 고쳐달라고 기도를 하되 1)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서 인간으로는 고칠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고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있는 노력을 다해도 안되면, 2)그때는 고쳐달라고 기도만 하면 됩니다. 때가 되면 갑자기 고쳐 주십니다.

우선 위에서 설명드린 이런 과정이나 이런 노력도 없이 그냥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있을 때 단순히 이런 마음은 잘못된 것이니 없애달라고만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 효력이 거의 없습니다. 아주 어린 신앙이나 특별한 경우에 들어주시는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항상 기도로만 맴돌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②우선 1)번으로 말씀드린, 자기가 할 수 있는 고칠 노력을 하면서 기도했느냐는 것입니다.

더러운 마음이 갑자기 일어날 때, 그때서야 양심에 가책도 되고 또 이런 마음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잠깐 눈을 감고 이런 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의 노력'이 너무 빠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라면 믿는 사람 우리 모두는 다 어거스틴과 같고 손양원목사님과 같으며 백목사님같은 성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전에 우선 우리에게 '네 힘으로 해 보라'고 하시니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노력을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겠습니까?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이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게으름과 같이 행동으로까지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고칠 노력을 일단은 하셔야 합니다. 미움을 눌러보기 위해 노력도 하시고 또 다른 경쟁에 있는 분을 사랑하려고 노력도 해보시고, 부지런하기 위해 몸도 움직여 보시는 등 여러가지 시도는 해보셨겠지만 한번 더 새로운 마음으로 해 보셔야 합니다.

③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도하라고 할 때, '인간이 할 일'은?

고치는 노력과 기도를 동시에 하되 우선 마음으로 연구하고 살필 것이 있습니다. 왜 미움이 생겼으며 미움이란 결국 어떤 결과를 맺는가? 세상이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그냥 상식으로 아는 것으로 얼른 넘어가지 마시고, 성경으로 또 성경을 잘 모르시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백목사님의 설교록을 참고하시면서 '미움'이 무엇이며 '시기'가 무엇이며 '질투'가 무엇인가? '게으름'이란 어떻게 인간에게 생겨졌으며 그것이 과거 어떤 문제를 일으켰으며 나에게 있어 '게으름'이란 정확히 어떤 손실을 주고 있는 것인지를 연구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 기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두고 답변드리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시되 바른 기도를 하셨는가를 의문스럽게 다시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그 할 일을 하면서 기도해야 이루어주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과연 질문자나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기도하는지, 아니면 시키는 것은 빼놓고 기도만 하면서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또 꾸준히 또 면밀하게 '미움'을 연구하게 되면,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미움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인식이 바뀌어지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 깊은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본질이 바뀌게 됩니다. 한 두 번 느끼고 좀 효력이 있다고 해도 아직 멀었습니다. 미움을 뿜어내는 우리 인격 속의 본 바탕이 녹혀지지 않으면 언제든 또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④미움을 예로 든다면

왼 팔이 오른 팔 잘 되는 것을 못 보다니! 다 아는 설교지만, 그냥 한번 듣고 아는 것이라고 넘어가시면 연구가 없고 고칠 노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 한 마디에서 천하에 바쁜 어떤 일이라도 다 제쳐놓고 잠깐 서서 깊이 좀 연상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왼 팔이..... 세상에 자기 오른 팔 잘 되는 것을......., 부모된 분이시면, 큰 아들이 작은 아들 잘 되는 것을 못 보다니........ 자녀된 입장이면, 나 합격한 것은 형님이 시기 하다니...... 깊이 깊이 생각하며 이 면 저 면으로 자꾸 살펴야 합니다. 이것을 레위기 11장에서는 '새김질'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삼킨 것을 다시 위에서 입으로 꺼낸 다음 처음 먹는 것처럼 또 씹어 삼킵니다. 소는 4번을 그리 합니다. 아무 영양가도 없는 말라빠진 짚푸라기만 먹고도 그 큰 소가 영양 유지를 하는 것은 그 짚에서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충분한 영양이 다 나오게 됩니다.

왼 팔과 오른 팔의 시기 미움의 비유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한번 듣고 지나가니까 꿀꺽 삼키고 끝나는 짐승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새김질하는 소는 먹으라고 했습니다. 미움 하나를 두고 그냥 눈 감고 기도 한번 두번 반복했다고 그것을 기도로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움 하나를 두고 얼마나 새겨 보았던지 미움을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 없고 느껴 보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다가도 '미움'이라는 말만 들리면 이가 갈리도록 마구 부모 죽인 원수로 느껴지도록 자기 마음을 연구하여 그리 만들어놓으면, 이제 비로소 미움이 그리 쉽게 내 마음을 점령하고 들어오지 못하는 단계로 올라갑니다. 수많이 지고 이기고 반복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시면, 결국 미움은 어떤 형태로도 내 마음을 요동치 못하도록 내가 완전히 장악해 버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궁구하며 노력할 때마다, 잘 연구하도록 해 주시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느껴지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미움이 미워지도록 그 미움에 대하여 실감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연구하게 해 주시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공부를 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하지 않으시고 그냥 미움만 없애 달라고 기도하신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빼고, 3년을 놀면서 다만 합격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물론 합격만을 두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신앙이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미움과 시기 등의 경우 또 공부하는 학생이 정상적으로 기도한다면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쓰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먼저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나면 결과는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4.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에는 특별한 기적을 보여 주지 않으시는가?

홍해가 가로 막을 때는 아무 일도 아무 노력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무조건 부르짖으라는 뜻입니다. 너무도 환한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전혀 주지 않으셨으니 기도만으로 해결하라는 뜻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교1학년이 된 학생에게는 3년간 놀고 시험 때 기도해서 합격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3년간 학생이니 학생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미움을 없애달라는 것도 평상의 우리 생활에서는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미움에 대하여 바로 아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또 미움이 싫어지도록 내 마음에 변화가 있기까지 미움의 해독을 느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인간이 결국 다 노력해서만 되고 하나님은 지켜만 보시는가 하는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인간이 100% 다 노력하고 하나님은 구경만 하시는 것처럼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 하라 하시니 그리 하겠다는 자세로 자기 노력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힘을 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곁눈으로는 하나님께서 구경만 하시는지, 아니면 구경만 하시는 듯 보기만 하시면서 실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일이 되도록 하고 계신지를 보셨으면 합니다.

인간에게 손도 대지 말라 하고 다 하시는 경우, 인간에게 전부 다 하라 하시면서 구경만 하시는 경우, 어떤 경우이든 결국 보면 하나님이 움직임은 내적으로는 꼭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다 하라고 해 놓은 경우도 보이지 않게 움직여 주시다가 어느 한 순간씩 직접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두고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표시를 확실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너무도 뚜렷하게 역사하여 기적이라 할 수 있는 말이 우리에게서 나오도록 하십니다.

결론은, 미움 시기 질투 게으름 등과 같은 것은 우리가 알고는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 우리 인격 깊숙히 박혀 있는 것이어서 아는 적인데도 이기지는 못하고 무기력하게 구경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은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이 '말로만 기도하는 기도'로 되지 않고, 연구하고 살펴 그야말로 사법고시 준비를 하는 학생의 장기간 노력같이, 실험실의 연구가가 많은 실험 실습을 거쳐서 하나를 추출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움을 이기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내놓으셨으니 우리는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길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보여주시는 대목을 곳곳에 많이 예비하셔서 결국 신앙은 기도와 은혜로만 되어짐을 확실히 보여주십니다.

실은 이런 문제는 많은 말씀으로 예를 들고 함께 연구하며 구체적인 문제 하나를 가지고 오랫동안 살펴볼 사안입니다. 백목사님의 목회설교록은, 교리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게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활 속에서 정말 해결할 문제, 진정 자기라는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평생 설교해야 했고 그 결과 설교록은 내용이 그리 많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모든 세세한 심리 갈등과 필요한 연구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전부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록을 조용히 그리고 오랫동안 접하다 보면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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