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총공회 노선의 외모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9.06.10
사진 1
밑으로 보이는 마을은 숙소 뒤 편에 있는 시골 마을이고 사진 멀리 흐미하게 보이는 곳은 작은 도시의 전경입니다.
출장을 가던 09.3.23. 나리타 공항의 대형 화물기 폭발 사고 때문에 또 09.4.4. 오던 길에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항공사가 제공하는 호텔에서 며칠 잘 먹고 잘 쉬고 주변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임이 너무 뚜렷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전혀 없는 일본인들만이 사는 옛 시골 마을과 도심 뒤 골목을 주로 다녀 보았습니다. 좀 오래 되기는 했지만 구두 밑창이 떨어져서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다는 생각이 확실하여 짧은 시간에 다리가 아프도록 작심을 하고 빠르게 많은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바로 밑에 보이는 시골 마을은 숲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난개발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도심도 숲으로 덮혀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관광용 마을인가 했습니다. 다행히 외국인은 전혀 발이 닿지 않는 그들만의 시골이었습니다.
이 홈이 연구에 집중하는 이 교훈의 백 목사님은 1925년의 16 세에서 1928년의 19 세까지 안 믿던 시절에 일본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설교록에 그 이야기는 많이 소개가 됩니다. 실은 일본이라는 표현이 없어 그렇지 인용은 그 이상입니다. 그가 신사 참배 반대자 중에서도 한국 교회에서 유례가 없을 행적을 갖지 않았더라면 친일파나 왜색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 좋을 만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기 전 일본을 가지 않았을 때에도 원래 그의 체질이 일본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많이 가진 분입니다. 그러나 선진 사회를 먼저 이룬 그 사회를 3 년간 체험하게 되면서 시야가 더 넓어 지고 확신이 강해 진 면은 있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살펴 보았습니다.
사진2 - 시골 자연 마을
마을로 돌아 들어 가자 조용하며, 깨끗하며, 고풍이 잘 유지 된 시골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참 자연스럽게 잘 유지 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천천히 걸어 가면서 모든 것을 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왼 쪽에 있는 것은 소를 기르는 축사였습니다. 최근 우리 나라 축사들이 사용하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골의 이런 축사와 주변 동네의 모습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상태여서 참 보기가 그렇습니다만 이 곳은 옛 집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보존 되고 사용 되면서도 현대 농업에 필요한 시설들은 전체 마을의 그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경탄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꼭 같은 형편에서 꼭 같은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와 이 나라는 이렇게 다를까? 한결 같이 이층집이었습니다. 도시는 땅 값이 비쌀 것이니 그렇다 치고 여기는 시골이어서 땅이 넓고 많습니다. 왜 모두 이층 집일까? 계속 의문을 가지고 동네 앞 뒤 길을 다니며 가옥의 구조를 뜯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비판하는 일본, 그들이 홍보하는 안내문, 세계 각국이 일본과 가진 선입견에서 소개하는 글들을 다 떠나서 제대로 된 사람이 목격한 모습 그대로 본 느낌은 '깨끗' '정리' '절제' '지혜'였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바로 이 노선이 지향하는 생활 모습, 이 노선이 강조하는 것들이 생활 속에서 그대로 보여 지고 있었습니다. 이 노선의 교훈은 수도 없이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미신을 믿게 하려고 악랄하게 행동한 것과 그 속에서 견뎌 낸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그 것이고 이 것은 이 것입니다.
'깨끗!', 누가 반대할 것입니까!
'정리!', 누가 무시할 것입니까!
'절제!',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요!
'지혜!', 그 가치를 누가 저평가할 수 있습니까!
이 사회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두고는 불쌍하고 안 됐고 저주스러워 안타깝지만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그들이 살아 가는 이 세상의 자기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는 비록 믿는 우리라도, 한국 사회의 전통과 체질에 익혀 진 우리에게는 무릎을 꿇고 배워야 할 면이 눈 앞에 펼쳐 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도 못난 이들이 있고, 우리 중에도 그들과 같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뚝배기 장맛입니다. 된장에 묵은 김치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달랐고, 이 노선에 관련 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장점은 원수의 것이거나 상관 없는 남의 나라의 문화 풍습으로 치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는데 좀처럼 가지지 못하고 그냥 지나 온 것들이었습니다.
신앙은 '깨끗'이 있어야 하고 '정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노선 교훈에서 한도 없이 반복하고 강조하는 가치들입니다.
신앙은 '절제'가 있어야 하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한도 없이 배워도 겉 듣고 흘려 보낸 세월이 너무 많았습니다.
불신의 그들 사회에서 이런 면들을 보면서, 저는 집회에서 말씀의 은혜를 받을 때 그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으로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회개하고 각오하던 바로 그런 심정으로 눈에 보이는 자연 마을을 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사경회를 참석하고 말씀에 빠져 들어 가는 교인처럼. 그러니 관광이 아니고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진3
한결 같이 이층집이었습니다. 도시는 땅 값이 비쌀 것이니 그렇다 치고 여기는 시골이어서 땅이 넓고 많습니다.
왜 모두 이층 집일까? 계속 의문을 가지고 동네 앞 뒤 길을 다니며 가옥의 구조를 뜯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밑으로 보이는 마을은 숙소 뒤 편에 있는 시골 마을이고 사진 멀리 흐미하게 보이는 곳은 작은 도시의 전경입니다.
출장을 가던 09.3.23. 나리타 공항의 대형 화물기 폭발 사고 때문에 또 09.4.4. 오던 길에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항공사가 제공하는 호텔에서 며칠 잘 먹고 잘 쉬고 주변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임이 너무 뚜렷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전혀 없는 일본인들만이 사는 옛 시골 마을과 도심 뒤 골목을 주로 다녀 보았습니다. 좀 오래 되기는 했지만 구두 밑창이 떨어져서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다는 생각이 확실하여 짧은 시간에 다리가 아프도록 작심을 하고 빠르게 많은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바로 밑에 보이는 시골 마을은 숲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난개발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도심도 숲으로 덮혀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관광용 마을인가 했습니다. 다행히 외국인은 전혀 발이 닿지 않는 그들만의 시골이었습니다.
이 홈이 연구에 집중하는 이 교훈의 백 목사님은 1925년의 16 세에서 1928년의 19 세까지 안 믿던 시절에 일본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설교록에 그 이야기는 많이 소개가 됩니다. 실은 일본이라는 표현이 없어 그렇지 인용은 그 이상입니다. 그가 신사 참배 반대자 중에서도 한국 교회에서 유례가 없을 행적을 갖지 않았더라면 친일파나 왜색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 좋을 만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기 전 일본을 가지 않았을 때에도 원래 그의 체질이 일본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많이 가진 분입니다. 그러나 선진 사회를 먼저 이룬 그 사회를 3 년간 체험하게 되면서 시야가 더 넓어 지고 확신이 강해 진 면은 있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배우는 자세로 살펴 보았습니다.
사진2 - 시골 자연 마을
마을로 돌아 들어 가자 조용하며, 깨끗하며, 고풍이 잘 유지 된 시골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참 자연스럽게 잘 유지 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천천히 걸어 가면서 모든 것을 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왼 쪽에 있는 것은 소를 기르는 축사였습니다. 최근 우리 나라 축사들이 사용하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골의 이런 축사와 주변 동네의 모습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상태여서 참 보기가 그렇습니다만 이 곳은 옛 집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보존 되고 사용 되면서도 현대 농업에 필요한 시설들은 전체 마을의 그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경탄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꼭 같은 형편에서 꼭 같은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와 이 나라는 이렇게 다를까? 한결 같이 이층집이었습니다. 도시는 땅 값이 비쌀 것이니 그렇다 치고 여기는 시골이어서 땅이 넓고 많습니다. 왜 모두 이층 집일까? 계속 의문을 가지고 동네 앞 뒤 길을 다니며 가옥의 구조를 뜯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비판하는 일본, 그들이 홍보하는 안내문, 세계 각국이 일본과 가진 선입견에서 소개하는 글들을 다 떠나서 제대로 된 사람이 목격한 모습 그대로 본 느낌은 '깨끗' '정리' '절제' '지혜'였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바로 이 노선이 지향하는 생활 모습, 이 노선이 강조하는 것들이 생활 속에서 그대로 보여 지고 있었습니다. 이 노선의 교훈은 수도 없이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미신을 믿게 하려고 악랄하게 행동한 것과 그 속에서 견뎌 낸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그 것이고 이 것은 이 것입니다.
'깨끗!', 누가 반대할 것입니까!
'정리!', 누가 무시할 것입니까!
'절제!',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요!
'지혜!', 그 가치를 누가 저평가할 수 있습니까!
이 사회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두고는 불쌍하고 안 됐고 저주스러워 안타깝지만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그들이 살아 가는 이 세상의 자기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는 비록 믿는 우리라도, 한국 사회의 전통과 체질에 익혀 진 우리에게는 무릎을 꿇고 배워야 할 면이 눈 앞에 펼쳐 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도 못난 이들이 있고, 우리 중에도 그들과 같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뚝배기 장맛입니다. 된장에 묵은 김치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달랐고, 이 노선에 관련 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장점은 원수의 것이거나 상관 없는 남의 나라의 문화 풍습으로 치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는데 좀처럼 가지지 못하고 그냥 지나 온 것들이었습니다.
신앙은 '깨끗'이 있어야 하고 '정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노선 교훈에서 한도 없이 반복하고 강조하는 가치들입니다.
신앙은 '절제'가 있어야 하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한도 없이 배워도 겉 듣고 흘려 보낸 세월이 너무 많았습니다.
불신의 그들 사회에서 이런 면들을 보면서, 저는 집회에서 말씀의 은혜를 받을 때 그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으로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회개하고 각오하던 바로 그런 심정으로 눈에 보이는 자연 마을을 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사경회를 참석하고 말씀에 빠져 들어 가는 교인처럼. 그러니 관광이 아니고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진3
한결 같이 이층집이었습니다. 도시는 땅 값이 비쌀 것이니 그렇다 치고 여기는 시골이어서 땅이 넓고 많습니다.
왜 모두 이층 집일까? 계속 의문을 가지고 동네 앞 뒤 길을 다니며 가옥의 구조를 뜯어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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