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신앙 환경의 변화 모습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9.06.24
(수천 년 꼭 같던 시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주후 2천 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아직도 생존자가 남아 있는 불과 100년 전인 1900년대 초기를 살았던 분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때나 부모 때나 그들의 어린 때나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 좁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신라 때도 고려 때도 조선 때도 수천 년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초기조차 그 길은 거의 그 길 그대로였습니다. 부엌도 옷도 지붕도 농작물도 인심도 종교도 거의 다 대동소이였습니다
(급변, 또 급변의 시기)
1900년대가 들어 서면서 서양 오랭캐 이야기가 무슨 신화처럼 전설처럼 내륙 골짝 마을까지 들리던 때, 그 때에 이 노선 초기 교인들은 이 나라 반도의 남부 중심 산악 지역인 덕유산 유역에서 수천 년부터 내려 온 그 모습 그대로 지게 지고 흙을 파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쇄국 정책이 끝나고 서양의 문물이 들어 왔고 잠깐의 혼동기를 거치면서 내륙 깊숙한 골짝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선교사를 오늘도 살아 있는 우리 선배들은 외계인 보듯 신기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 호주 영국... 심지어 프랑스와 러시아와 독일 사람까지 어지럽게 넘나들던 이 나라를 우리의 이웃이던 일본이 쓱싹 먹어 치운 다음 한반도를 한 손에 틀어 쥐고 순식간에 근대 사회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천 년 내려 오던 귀족과 쌍놈의 신분이 하루 아침에 없어 지고, 지게나 지던 좁다란 외솔길이 신작로라는 대로로 바뀌어 반도를 어지럽게 관통하며, 수천 년 중국어만 가르치던 외국어 학원만 있던 이 나라에 이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미술 음악 체육이라는 초등 중등 학교가 들어 서며, 원님이 잡아 대면 되던 이 나라에 이제 법률이 반포 되고 행정 체계에 의한 운영이라는 신개념이 들이 닥쳤습니다.
독립국이 스스로 발전하여 나왔다면 그래도 좀 덜할 것인데 끝까지 쇄국 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어느 날 일본에 먹힌 다음, 그들에 의하여 실험쥐 당하듯 당하게 되니까 정상적인 발전 과정에서는 수백 년 걸릴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 졌고, 일상 생활이나 문화처럼 서양과는 서로 살아 가는 우주가 다르기 때문에 수백이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나 가도 그들을 본 받거나 그들처럼 될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불과 몇십 년 단위의 세월이 지나 가면서 숨가쁘게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한복을 벗고 양복을 입을 줄 알았겠으며, 초가와 기와를 없애고 스라브 양옥 집에 산다는 생각이 어디 일반 가정에서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남녀가 대로에서 팔을 끼고 걷고 아이들이 어른의 눈을 빼꼼히 쳐다 본다는 모습이 소설엔들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만, 그 모든 것이 급격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심지어 천지개벽의 1900년대 초기를 벗어 나서 중반에 들어 서게 되면 기술과 과학과 사회의 경제 발전 때문에 과거 몇십 년에 바뀔 것이 이제 몇 년으로, 몇 년에 바뀔 것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발을 딛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설명을 '세대차'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백 년 전이라면 수백 년 단위로 왕조가 바뀌어야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였는데 1백 년 전부터는 2-30년으로 세대 차이가 느껴 져서 지식과 습관과 가치관의 충돌이 생겼습니다. 1980년대부터 신세대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세대차의 햇수가 몇 년으로 줄어 들다가 지금은 한 해 선배와 후배가 세대 차이를 느끼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 차이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되었으니 현재 살아 있는 모두가 자기가 보고 듣는 자기의 환경 전체가 통째로 둔갑을 해 버리는 바람에, 한 사람의 어제와 그 사람의 오늘이 달라 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세대 차이에 따라 60대는 어릴 때도 젊을 때도 그리고 죽을 때도 그들끼리의 공통성을 가지고 흘러 가고 있었고 그들 뒤의 40대는 그들끼리는 어린 시절과 청년과 늙은 훗날이 일정하게 함께 가는 식이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 자체가 어제의 그 사람과 오늘의 그 사람이 달라 지게 되었습니다.
급변에 급변이 이렇게 이어 지다 보니, 현존 80대 노인들은 조선 시대 중반을 살던 이들과 별반 다름 없이 살던 어린 시절을 알고 기억하며, 그들의 20대에는 근대 국가 시민 모습을 제법 갖추고 있었고 그들의 40대에는 그들의 돌아 가신 부모들이 그렇게까지 바뀐 사회에 살 줄을 몰랐을 그런 신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재 80대 생활은 북한에만 살았던 이들이 지금 그들과 만난다면 도저히 믿지 못할 생각 습관 생활 문화 편리 경제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것!)
이런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바뀌면 바꾸어 지는 것이지 세상에 어디 바뀌는데 안 바뀌고 버틸 존재가 있습니까? 바뀔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바로 타락한 이 세상, 이 물질계의 것은 영원 불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물질계 이 우주에 유일하게 하늘에서 내려 와 있는 것이 있으니 진리의 세계입니다. 이 홈의 가치를 남 다르게 평가하는 분들이 천하 교계가 다 바뀌어도 그들과 등을 져도 끝까지 붙들고자 하는 것은, 누구의 초상이나 업적이나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이 땅 위에서만 준비할 수 있는 영원한 천국의 영생이니 진리의 길에서만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물의 재료도 바뀌고 색깔도 바꿀 수 있습니다. 찬송가의 지질도 바꿀 수 있으며 피아노의 목재 건조 방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강단의 목회자 이름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교회의 이름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에서 바꿀 수 없도록 잡은 것이 있다면 그 것은 바뀌어서 안 되니, 예를 들면 교리와 신앙의 노선 그리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교훈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지난 날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기념일이 내일이고 이 역사적 비극이 최근 수 년간 잘 보이지 않았는데 2009년도에는 정권 교체 때문인지 곳곳에 과거 사진들이 많습니다. 이 노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취향을 떠나, 우리 신앙의 과거 때문에 과거 사진을 통해 우리 신앙을 좀 깊게 연구하는 편입니다. 전쟁 시기를 거칠 때 이 신앙 노선의 환경은 어떠했는지,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이 신앙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각오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진 환경은 어떤 현실인지를 비교하는 면에 도움 되는 사진들을 찾아 올려 보았습니다.
단순한 역사 전시가 아니라, 이 신앙의 과거 시기와 오늘에 이르는 변화 과정을 감상하며 오늘 우리의 기본 자세를 돌아 보기 위함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주후 2천 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아직도 생존자가 남아 있는 불과 100년 전인 1900년대 초기를 살았던 분들은 그들의 할아버지 때나 부모 때나 그들의 어린 때나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 좁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신라 때도 고려 때도 조선 때도 수천 년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초기조차 그 길은 거의 그 길 그대로였습니다. 부엌도 옷도 지붕도 농작물도 인심도 종교도 거의 다 대동소이였습니다
(급변, 또 급변의 시기)
1900년대가 들어 서면서 서양 오랭캐 이야기가 무슨 신화처럼 전설처럼 내륙 골짝 마을까지 들리던 때, 그 때에 이 노선 초기 교인들은 이 나라 반도의 남부 중심 산악 지역인 덕유산 유역에서 수천 년부터 내려 온 그 모습 그대로 지게 지고 흙을 파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쇄국 정책이 끝나고 서양의 문물이 들어 왔고 잠깐의 혼동기를 거치면서 내륙 깊숙한 골짝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선교사를 오늘도 살아 있는 우리 선배들은 외계인 보듯 신기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 호주 영국... 심지어 프랑스와 러시아와 독일 사람까지 어지럽게 넘나들던 이 나라를 우리의 이웃이던 일본이 쓱싹 먹어 치운 다음 한반도를 한 손에 틀어 쥐고 순식간에 근대 사회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천 년 내려 오던 귀족과 쌍놈의 신분이 하루 아침에 없어 지고, 지게나 지던 좁다란 외솔길이 신작로라는 대로로 바뀌어 반도를 어지럽게 관통하며, 수천 년 중국어만 가르치던 외국어 학원만 있던 이 나라에 이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미술 음악 체육이라는 초등 중등 학교가 들어 서며, 원님이 잡아 대면 되던 이 나라에 이제 법률이 반포 되고 행정 체계에 의한 운영이라는 신개념이 들이 닥쳤습니다.
독립국이 스스로 발전하여 나왔다면 그래도 좀 덜할 것인데 끝까지 쇄국 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어느 날 일본에 먹힌 다음, 그들에 의하여 실험쥐 당하듯 당하게 되니까 정상적인 발전 과정에서는 수백 년 걸릴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 졌고, 일상 생활이나 문화처럼 서양과는 서로 살아 가는 우주가 다르기 때문에 수백이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나 가도 그들을 본 받거나 그들처럼 될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불과 몇십 년 단위의 세월이 지나 가면서 숨가쁘게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한복을 벗고 양복을 입을 줄 알았겠으며, 초가와 기와를 없애고 스라브 양옥 집에 산다는 생각이 어디 일반 가정에서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남녀가 대로에서 팔을 끼고 걷고 아이들이 어른의 눈을 빼꼼히 쳐다 본다는 모습이 소설엔들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만, 그 모든 것이 급격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심지어 천지개벽의 1900년대 초기를 벗어 나서 중반에 들어 서게 되면 기술과 과학과 사회의 경제 발전 때문에 과거 몇십 년에 바뀔 것이 이제 몇 년으로, 몇 년에 바뀔 것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발을 딛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설명을 '세대차'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백 년 전이라면 수백 년 단위로 왕조가 바뀌어야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였는데 1백 년 전부터는 2-30년으로 세대 차이가 느껴 져서 지식과 습관과 가치관의 충돌이 생겼습니다. 1980년대부터 신세대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세대차의 햇수가 몇 년으로 줄어 들다가 지금은 한 해 선배와 후배가 세대 차이를 느끼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 차이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되었으니 현재 살아 있는 모두가 자기가 보고 듣는 자기의 환경 전체가 통째로 둔갑을 해 버리는 바람에, 한 사람의 어제와 그 사람의 오늘이 달라 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세대 차이에 따라 60대는 어릴 때도 젊을 때도 그리고 죽을 때도 그들끼리의 공통성을 가지고 흘러 가고 있었고 그들 뒤의 40대는 그들끼리는 어린 시절과 청년과 늙은 훗날이 일정하게 함께 가는 식이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 자체가 어제의 그 사람과 오늘의 그 사람이 달라 지게 되었습니다.
급변에 급변이 이렇게 이어 지다 보니, 현존 80대 노인들은 조선 시대 중반을 살던 이들과 별반 다름 없이 살던 어린 시절을 알고 기억하며, 그들의 20대에는 근대 국가 시민 모습을 제법 갖추고 있었고 그들의 40대에는 그들의 돌아 가신 부모들이 그렇게까지 바뀐 사회에 살 줄을 몰랐을 그런 신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재 80대 생활은 북한에만 살았던 이들이 지금 그들과 만난다면 도저히 믿지 못할 생각 습관 생활 문화 편리 경제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것!)
이런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바뀌면 바꾸어 지는 것이지 세상에 어디 바뀌는데 안 바뀌고 버틸 존재가 있습니까? 바뀔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바로 타락한 이 세상, 이 물질계의 것은 영원 불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물질계 이 우주에 유일하게 하늘에서 내려 와 있는 것이 있으니 진리의 세계입니다. 이 홈의 가치를 남 다르게 평가하는 분들이 천하 교계가 다 바뀌어도 그들과 등을 져도 끝까지 붙들고자 하는 것은, 누구의 초상이나 업적이나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이 땅 위에서만 준비할 수 있는 영원한 천국의 영생이니 진리의 길에서만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물의 재료도 바뀌고 색깔도 바꿀 수 있습니다. 찬송가의 지질도 바꿀 수 있으며 피아노의 목재 건조 방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강단의 목회자 이름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교회의 이름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에서 바꿀 수 없도록 잡은 것이 있다면 그 것은 바뀌어서 안 되니, 예를 들면 교리와 신앙의 노선 그리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교훈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지난 날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기념일이 내일이고 이 역사적 비극이 최근 수 년간 잘 보이지 않았는데 2009년도에는 정권 교체 때문인지 곳곳에 과거 사진들이 많습니다. 이 노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취향을 떠나, 우리 신앙의 과거 때문에 과거 사진을 통해 우리 신앙을 좀 깊게 연구하는 편입니다. 전쟁 시기를 거칠 때 이 신앙 노선의 환경은 어떠했는지,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이 신앙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각오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진 환경은 어떤 현실인지를 비교하는 면에 도움 되는 사진들을 찾아 올려 보았습니다.
단순한 역사 전시가 아니라, 이 신앙의 과거 시기와 오늘에 이르는 변화 과정을 감상하며 오늘 우리의 기본 자세를 돌아 보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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