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광 케이블 시대를 열며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0.04.03
어제 2010.4.2. 이 홈을 운영하는 주소지 시골에 광랜이 들어 왔습니다. 기술적인 면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경험적으로 몇 가지 발전 단계는 겪어 아는 편입니다.
186 XT급 컴퓨터와 전화 모뎀 시절
제가 부산 서부교회 옆에 있는 목회연구소 본부에서 근무하다 1989년 3월 현재 주소지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연구소의 연구부 핵심 자료와 작업은 제 주소지와 부산 본부 사이를 오가야 했습니다. 당시 186 XT급 컴퓨터를 사용했고 본부와 전산 연락은 전화 모뎀을 이용한 일대 일 방식이었습니다.
186 XT급 컴퓨터는 제가 글을 적을 때 줄 바꾸기를 하지 않고 A4 용지 한 장 분량을 넘기게 되면 다운이 되어 버립니다. 저는 다른 책을 보고 취합하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머리에서 떠 오르는 것을 그냥 적어 나가는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일단 글을 적기 시작하면 바쁘게 타이핑을 하게 됩니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이나 줄 바꾸기 등은 내용이 어느 정도 나온 다음에 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화면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되고 그 순간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게 되면서 자료가 사라 져 버리는 일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본부와 자료나 연락을 할 때에도 전화선을 이용하여 일대 일로 연결을 하게 되는데 암호 같은 복잡한 명령어를 여러 차례 적으면 마치 요즘 팩스 소리처럼 나면서 무전이 가듯 그렇게 연결이 됩니다. 전산 기술에 서툴기 때문에 매번 배워도 잊고 실수를 하고 종이에 적은 것을 보고 따라 해도 번번이 실패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컴퓨터는 타자기였고 당시 모뎀 전송은 요즘 팩스보다 못했습니다.
286 AT급 컴퓨터와 천리안 전자 통신 시절
286 컴퓨터가 나오면서부터 최소한 타이핑 치던 자료가 다운 되어 글을 다 잊어 버리는 경우는 적어 졌습니다. 그런데 186보다 용량이 훨씬 크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A4 1-2장 분량을 날리고 말았는데 286 시절에는 수십 장씩의 자료가 쌓이다 보니까 한 번 기계 잘못으로 자료가 없어 지면 너무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습니다. 잦은 고장은 없으나 한 번 고장이 났다 하면 과거 수십 번 겹쳐야 할 분량이 없어 지곤 했습니다.
이 시기의 컴퓨터 간의 연락은 천리안과 같은 회사가 전자 통신을 운용하면 컴퓨터를 가진 개인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전산 자료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순식간에 전달 된다는 점에서 개인 대 개인의 모뎀 통신 시절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 계통의 전자 통신으로는 기독교 컴퓨터 선교회 CCM 전자 통신 게시판이 가장 활성화가 되어 있었고 1990년대 중반과 후반에 수 년간 백 목사님 자료를 올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386 486 586 펜티엄급 컴퓨터와 인터넷 시절
1990년대에 이미 인터넷이 실용화가 되었으나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로 본다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이지 그렇게 실용화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998년과 1999년까지도 각 정부 부처나 시도청 또는 시군구청의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 되었는데 시장님의 인사말과 약력 정도 그리고 불과 몇십 페이지 분량의 정보만 제공이 되고 있었습니다. 시정 기본 방향이랄까, 연간 행사 일정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아직 전국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일부였고, 인터넷에 입력해야 하는 자료가 거의 다 문서 상태였기 때문에 단순간에 활성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백영희 신앙 연구 홈을 개설해야 한다는 건의나 제안을 꾸준하게 받고 있었고 또 제 스스로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나 우리는 이런 세상 기술적인 면을 두고는 앞 서 가는 것보다는 전체 사회의 흐름에 약간 뒤를 따라 간다는 원칙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98년에 현재 인터넷 홈을 기술적으로 책임 지고 계신 분이 대학 본부에 근무하면서 인터넷을 체계적으로 배우셨고 우리 연구홈의 자료 운용의 특성을 실용화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당시 추세가 곧 인터넷이 실제 생활의 필수품이 될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에 들어 서면서 바로 내부 준비에 착수를 했고 그 해 초에 실험용으로 잠깐 운영해 보다가 1999년 12월에 오늘의 이 홈이 정식 개설 되었습니다. 이 홈의 운영으로 인해 총공회의 백영희 신앙 노선 관련 자료 소개와 연구 활동 및 관심 있는 분들의 대화 기능은 아무도 예상 못할 정도의 성과를 맺게 되었습니다. 1989년 8월의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는 보이는 조직으로서는 거의 와해가 되었거나 산산조각이 났다 할 정도가 되었는데 이 홈을 통해 인터넷 상태로서는 과거보다 더 이 노선이 강화 되었다고 증명할 정도입니다. 다행히 총공회 노선은 타 교단과 달리 가시적 조직으로 존재하지 않고 신앙 노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공회 노선의 인터넷 활용은 일반 교단의 연락상 편의 기술이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2일, 광랜이 손에 들어 왔습니다.
그 동안 인터넷의 속도가 좀 느려서 마치 과거 비포장 도로 시절의 교통처럼 그런 불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홈의 주소지 시골까지 광랜이 다 깔리게 되었고 어제는 제 사무실에도 광랜이 들어 왔습니다. 이제 실시간으로 동영상까지 불편 없이 전송 될 것이고 대용량 자료의 전달도 자유로울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기술 발전이 제가 주력하는 이 노선 연구와 전달을 위해서는 필요가 없다고 선언을 할 상황입니다.
단체 구매를 해야 카세트 테이프 60분짜리를 1천원에 구입하던 때가 30년 전이었습니다. 그 테이프 5천개로 담아 옮기던 설교 자료가 당시 돈 5백 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 비디오 테이프 6백 개를 가지려면 개당 6-7천 원짜리 테이프가 또 그 만한 돈이 들어 가게 되고 이 모든 자료를 책으로 소장하려면 권 당 1만원 짜리 설교록 182권을 182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음성 테이프 5천 개, 녹화 비디오 테이프 6백 개, 설교록 182 권을 다 소장하려면 당시 돈으로 1천만 원이니 요즘 돈으로 2-3천만 원이 필요하고 큰 책장이 열 개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량을 지금은 손톱만한 USB에 넣고 차량 열쇠에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어디를 가도 손톱만한 그 USB 하나만 들고 다니면 어느 컴퓨터에라도 꽂아서 바로 이 모든 자료를 손바닥에 놓고 돌려 댈 수가 있습니다.
지금 휴대폰을 더 작게 만들 기술이 있다 해도 현재보다 더 작으면 잃어 버릴 수도 있고 번호판을 우리 손가락으로 누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휴대폰은 기술의 발달로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어제 기계는 쓸모가 없다는 소리가 나왔으나 이제는 더 발전을 한다 해도 일반인으로서는 굳이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의 규모도 이제 더 작아지면 손으로 타이핑 하는 데 불편해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인터넷의 속도도 이제는 이 홈의 연구와 신앙 참고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별로 필요가 없다고 선언을 해야 할 단계입니다.
이 모든 과학과 기술의 발달 때문에 말세에 죄를 지을 사람들은 역사에 살다 간 모든 죄를 다 합해 놓은 것보다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이 노선을 참고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모든 발달이 우리에게 신앙에 그 어떤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령으로 살면 되는 것이 신앙인데 우리가 연약하여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목회자 입장에서 성령을 어떻게 모시고 말씀을 어떻게 모셔야 알지 소개함으로 우리에게 신앙 현실에서 도움 되는 면이 참으로 많은데, 오늘 우리에게는 이 시대에 참고할 신앙의 자료를 돈 없이 어떤 제한 없이 어떤 불편 없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환경이 이렇게 유리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에게는 요구하는 바가 과거 선배들 시대보다 더 많을 것 같습니다.
186 XT급 컴퓨터와 전화 모뎀 시절
제가 부산 서부교회 옆에 있는 목회연구소 본부에서 근무하다 1989년 3월 현재 주소지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연구소의 연구부 핵심 자료와 작업은 제 주소지와 부산 본부 사이를 오가야 했습니다. 당시 186 XT급 컴퓨터를 사용했고 본부와 전산 연락은 전화 모뎀을 이용한 일대 일 방식이었습니다.
186 XT급 컴퓨터는 제가 글을 적을 때 줄 바꾸기를 하지 않고 A4 용지 한 장 분량을 넘기게 되면 다운이 되어 버립니다. 저는 다른 책을 보고 취합하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머리에서 떠 오르는 것을 그냥 적어 나가는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일단 글을 적기 시작하면 바쁘게 타이핑을 하게 됩니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이나 줄 바꾸기 등은 내용이 어느 정도 나온 다음에 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화면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되고 그 순간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게 되면서 자료가 사라 져 버리는 일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본부와 자료나 연락을 할 때에도 전화선을 이용하여 일대 일로 연결을 하게 되는데 암호 같은 복잡한 명령어를 여러 차례 적으면 마치 요즘 팩스 소리처럼 나면서 무전이 가듯 그렇게 연결이 됩니다. 전산 기술에 서툴기 때문에 매번 배워도 잊고 실수를 하고 종이에 적은 것을 보고 따라 해도 번번이 실패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컴퓨터는 타자기였고 당시 모뎀 전송은 요즘 팩스보다 못했습니다.
286 AT급 컴퓨터와 천리안 전자 통신 시절
286 컴퓨터가 나오면서부터 최소한 타이핑 치던 자료가 다운 되어 글을 다 잊어 버리는 경우는 적어 졌습니다. 그런데 186보다 용량이 훨씬 크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A4 1-2장 분량을 날리고 말았는데 286 시절에는 수십 장씩의 자료가 쌓이다 보니까 한 번 기계 잘못으로 자료가 없어 지면 너무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습니다. 잦은 고장은 없으나 한 번 고장이 났다 하면 과거 수십 번 겹쳐야 할 분량이 없어 지곤 했습니다.
이 시기의 컴퓨터 간의 연락은 천리안과 같은 회사가 전자 통신을 운용하면 컴퓨터를 가진 개인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전산 자료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순식간에 전달 된다는 점에서 개인 대 개인의 모뎀 통신 시절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 계통의 전자 통신으로는 기독교 컴퓨터 선교회 CCM 전자 통신 게시판이 가장 활성화가 되어 있었고 1990년대 중반과 후반에 수 년간 백 목사님 자료를 올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386 486 586 펜티엄급 컴퓨터와 인터넷 시절
1990년대에 이미 인터넷이 실용화가 되었으나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로 본다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이지 그렇게 실용화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998년과 1999년까지도 각 정부 부처나 시도청 또는 시군구청의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 되었는데 시장님의 인사말과 약력 정도 그리고 불과 몇십 페이지 분량의 정보만 제공이 되고 있었습니다. 시정 기본 방향이랄까, 연간 행사 일정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아직 전국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일부였고, 인터넷에 입력해야 하는 자료가 거의 다 문서 상태였기 때문에 단순간에 활성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백영희 신앙 연구 홈을 개설해야 한다는 건의나 제안을 꾸준하게 받고 있었고 또 제 스스로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나 우리는 이런 세상 기술적인 면을 두고는 앞 서 가는 것보다는 전체 사회의 흐름에 약간 뒤를 따라 간다는 원칙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98년에 현재 인터넷 홈을 기술적으로 책임 지고 계신 분이 대학 본부에 근무하면서 인터넷을 체계적으로 배우셨고 우리 연구홈의 자료 운용의 특성을 실용화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당시 추세가 곧 인터넷이 실제 생활의 필수품이 될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에 들어 서면서 바로 내부 준비에 착수를 했고 그 해 초에 실험용으로 잠깐 운영해 보다가 1999년 12월에 오늘의 이 홈이 정식 개설 되었습니다. 이 홈의 운영으로 인해 총공회의 백영희 신앙 노선 관련 자료 소개와 연구 활동 및 관심 있는 분들의 대화 기능은 아무도 예상 못할 정도의 성과를 맺게 되었습니다. 1989년 8월의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는 보이는 조직으로서는 거의 와해가 되었거나 산산조각이 났다 할 정도가 되었는데 이 홈을 통해 인터넷 상태로서는 과거보다 더 이 노선이 강화 되었다고 증명할 정도입니다. 다행히 총공회 노선은 타 교단과 달리 가시적 조직으로 존재하지 않고 신앙 노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공회 노선의 인터넷 활용은 일반 교단의 연락상 편의 기술이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2일, 광랜이 손에 들어 왔습니다.
그 동안 인터넷의 속도가 좀 느려서 마치 과거 비포장 도로 시절의 교통처럼 그런 불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홈의 주소지 시골까지 광랜이 다 깔리게 되었고 어제는 제 사무실에도 광랜이 들어 왔습니다. 이제 실시간으로 동영상까지 불편 없이 전송 될 것이고 대용량 자료의 전달도 자유로울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기술 발전이 제가 주력하는 이 노선 연구와 전달을 위해서는 필요가 없다고 선언을 할 상황입니다.
단체 구매를 해야 카세트 테이프 60분짜리를 1천원에 구입하던 때가 30년 전이었습니다. 그 테이프 5천개로 담아 옮기던 설교 자료가 당시 돈 5백 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 비디오 테이프 6백 개를 가지려면 개당 6-7천 원짜리 테이프가 또 그 만한 돈이 들어 가게 되고 이 모든 자료를 책으로 소장하려면 권 당 1만원 짜리 설교록 182권을 182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음성 테이프 5천 개, 녹화 비디오 테이프 6백 개, 설교록 182 권을 다 소장하려면 당시 돈으로 1천만 원이니 요즘 돈으로 2-3천만 원이 필요하고 큰 책장이 열 개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량을 지금은 손톱만한 USB에 넣고 차량 열쇠에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어디를 가도 손톱만한 그 USB 하나만 들고 다니면 어느 컴퓨터에라도 꽂아서 바로 이 모든 자료를 손바닥에 놓고 돌려 댈 수가 있습니다.
지금 휴대폰을 더 작게 만들 기술이 있다 해도 현재보다 더 작으면 잃어 버릴 수도 있고 번호판을 우리 손가락으로 누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휴대폰은 기술의 발달로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어제 기계는 쓸모가 없다는 소리가 나왔으나 이제는 더 발전을 한다 해도 일반인으로서는 굳이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의 규모도 이제 더 작아지면 손으로 타이핑 하는 데 불편해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인터넷의 속도도 이제는 이 홈의 연구와 신앙 참고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별로 필요가 없다고 선언을 해야 할 단계입니다.
이 모든 과학과 기술의 발달 때문에 말세에 죄를 지을 사람들은 역사에 살다 간 모든 죄를 다 합해 놓은 것보다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이 노선을 참고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모든 발달이 우리에게 신앙에 그 어떤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령으로 살면 되는 것이 신앙인데 우리가 연약하여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목회자 입장에서 성령을 어떻게 모시고 말씀을 어떻게 모셔야 알지 소개함으로 우리에게 신앙 현실에서 도움 되는 면이 참으로 많은데, 오늘 우리에게는 이 시대에 참고할 신앙의 자료를 돈 없이 어떤 제한 없이 어떤 불편 없이 마음껏 사용하도록 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환경이 이렇게 유리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에게는 요구하는 바가 과거 선배들 시대보다 더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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