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모방 - 순기능과 역기능
구남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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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6.23
1. 사람의 본질
- 자유성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의 가장 중요한 본질로서 자유성을 주셨고 이 자유성이 가지는 약점을 보완하시려고 대척 위치를 가진 모방성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만물과 다르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가장 다른 본질적인 차이는 '자유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장난감과 다른 차원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때 힘 센 종처럼 유능한 직원처럼 성능 좋은 기계처럼 사용 되지 않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아들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우리 스스로 원하고 원하므로, 좋아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여 우리의 앞 날 전부를 단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계보다 종보다 직원보다 만물 그 어떤 종류보다 낫고 비교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 됩니다. 바로 이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우리는 그 목적의 유일의 대상입니다.
- 모방성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의 존재 이유인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우리가 그 목적에 맞는 존재가 되려면 앞 서 설명한 대로 자유성을 가지고 자원함으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완전자가 아니므로 이 자유성을 받은 이후 이 자유성을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가진 자유성으로 하나님을 자원함으로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자유성으로 자기를 위한 자기로 방향을 돌려 버렸습니다.
바로 이런 역기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타락 이전에 원래 자유성을 주실 때 우리에게 모방성을 함께 주셨습니다. 받아 가진 자유성이 바로 사용 될 수도 있고 잘 못 사용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 때 모방성도 함께 주셨으니 원래 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 진 아담은 내면으로는 하나님과 연결 되어 하나님만 모시고 살고 외부로는 하나님께서 만든 만물을 접하며 그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또 다른 자연 섭리에서 복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타락 전에 안팎으로 하나님만 접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고 있었으니 아담에게 주어 진 모방성은 하나님을 내면으로는 직접 또는 외면으로는 만물을 통해 간접으로 상대하며 저절로 하나님을 향해 닮아 가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자기 자유성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악령을 따라 자기 자유성으로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사는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아담과 끊어 졌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접하던 신령한 영안도 사라 졌으니 이제 아담에게는 안팎으로 악령만 접하고 그 접촉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모방성 때문에 악령을 닮게 되었고 오늘 우리는 6천 년 동안 악령을 닮아 왔습니다.
2. 모방의 순기능과 역기능 - 한국교회의 사례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행
박형룡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교계의 보수 진영에서 정통 신학으로 자유주의 노선을 맞서 진리 투쟁을 한 1세대 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일제 때 미국에 유학을 했고 평생 박사 학위를 사용했고 이들은 한국의 교회를 오늘 보수정통 교회가 대세를 잡도록 기초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교회역사에 영웅적 활동이 기록 되어 후세대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보수교단에서 학자가 될 자질이 있는 신앙인들은 박형룡 박윤선이 늘 눈 앞에 있는 모범이며 목표였습니다.
순기능으로 본다면,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자기들이 실제 그렇게 살든 말든 한국 보수교단의 학자적 자질이 있는 신앙인들은 '개혁주의 신앙' '정통보수 신앙' '칼빈주의'라는 구호 가 평생 입에 달고 다니는 사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냄비 끓는 성격과 추세까지 더하여져 이 나라 자유주의 신학은 세계 교회사에서 한국처럼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여전히 보수정통 칼빈주의를 경쟁적으로 열창하는 사례가 없으므로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교계적 분위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무슨 욕을 얻어 먹는다 해도 성경 그대로 믿는 것이 옳다는 대외적 분위기가 유지 되고 그런 분위기 안에서 2세대 3세대 4세대가 여전히 동일 분위기에서 이어 지고 있음은 정말 한국교회가 가진 큰 복 중의 복일 것입니다.
역기능으로 본다면, 순기능의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들은 미국의 신학 박사 과정에 목을 매달았고 미국에서 한국 학생들의 신학 비자를 무조건 거부하자 화란으로 독일로 영국으로 심지어 남아공으로까지 몰려 들어 해외 보수신학교의 박사학위를 넘치게 했습니다. 미국의 일반 교계에서는 이름조차 잘 모르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한국교회는 미국교인들이 기독교계의 하바드 대학처럼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보수교단에 학자적 소질이 있는 신학생들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얼마나 몰려 들었든지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전교생 6백여 명에 2백여 명이 한국학생으로 짐작 되는 정도입니다. 이런 추세는 카브난트신학교 칼빈신학교 페이스신학교 등에도 다소의 차이만 있지 비슷합니다. 모두가 박형룡 박윤선이 되어 한국교회를 신학자로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몰려 드는 신학생들이 봇물이 터지고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유의 냄비 끓는 바쁜 성격이 미국의 사회 제도 특히 유학에 첫 관문이 되는 미국 대사관 비자 발급 과정에서 서류 조작과 귀국 약속 위반 등 수도 없는 불법 무법 행동이 계속 되자 197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무부에서 한국대사관에게 한국인의 미국 유학에서 신학이나 목사 이름은 무조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미 불이 붙은 국내 교계의 신학 수요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대사관을 두드렸고 그럴수록 대사관 비자 거부는 더 완강해 집니다. 결국 대안을 찾은 것이 '화란'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일제 말기 미국 유학을 하고 6.25 전쟁 후 잠깐 화란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귀국 후 화란 신학을 소개했으므로 그후 일부는 화란으로 가고 대다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노력하다가 70년대에 미대사관이 미국 유학을 막자 미국 유학을 향하던 수요가 화란으로 바뀌어 현재 한국보수 교계의 유력 인물들의 구성이 미국 화란 순서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란의 보수신학교들은 공부를 철저히 시키기 때문에 또 독일 신학도 학문적으로는 난이도가 정평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화란 중심의 유럽 유학이 한 때 유행을 하다가 학문적으로 화란이나 독일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영국이나 영어권인 남아공으로 유학의 경향이 넓어지고 다양화하게 됩니다.
박형룡 박윤선 두 신학자는 한국 교계의 보수정통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 한국교회의 간판이자 울타리 방어벽을 철저하게 만든 공로자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배우고 그 분들의 소식을 듣고 자란 한국교회의 신학자들은 그 분들 때문에 정통보수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모방성의 순기능에 크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을 스승으로 모신 한국 보수정통 교단들은 그 분들이 가진 학력 유학 학위 신학의 방법론을 접하면서 모방성의 역기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한 나머지 오늘 한국의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해외 유학처럼 한국 보수정통 신앙가들의 해외 유학 바람은 한국교회의 내부를 크게 썩고 부패 시키는 내면적 병폐가 되었습니다.
- 한경직 강신명의 신사도 유행
박윤선 박형룡과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 신학가들은 채필근 김재준 등인데 이들은 불신자 수준이므로 이 노선에서는 교인 취급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이 노선에서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면 통합 교단에서 유명한 강신명 한경직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교회는 교회고 교인은 교인이나 그 행동이 교회와 세상을 넘나 들기 때문에 교회 내를 자유주의화하는 데 더 문제를 많이 일으킨 분들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을 유학하고 국내에 들어 와서 한국의 보수정통 교회 내에서 신사적 신앙,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멋있게 보이고 점잖게 보이는데 문제는 신앙의 내부를 소리 없이 허무는 대표적 인물들이었습니다. 박윤선 박형룡의 노선은 지닐를 위해 투쟁적이며 생사를 건다 할 만큼 좁은 신앙이었는데 이들은 그들처럼 신앙의 원칙은 비슷하게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며 세상 그 어떤 정치가와 사회주의자와 타 종교인들과도 자리를 함께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니 세상 보기에도 좋고 교회도 좋아하고 자기들도 좋고 만인이 좋아할 분들이었습니다.
주일이나 2계명을 바로 지키려면 가정 파탄이 나고 감옥을 가야 하고 사회와 교회가 일전을 불사해야 하는데, 이들은 책에서는 그런 정신을 가진 듯하나 행동으로는 그리고 중요한 고비에서는 약간 김을 새게 하여 믿는 사람이 힘 닿는 대로 열심히 믿되 세상과 문제가 생기면 모두 빠져 나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평생 우리 사회의 불신자들도 모를 수가 없도록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방면에 화려하게 활동했던 분들입니다. 멋 있게 보이고, 지성적으로 보이며, 인품이 있고, 배려와 용서와 화평을 두루 가졌으니 보수정통 신앙계를 빼놓으면 기독교계 안팎으로 종교계 안팎으로 세상 정치계까지 다 좋아할 모범생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보수정통 신앙계에서 조금 넓게 믿고 쉽게 믿고 대충 믿으면서도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 좋게 살아 보려는 교회와 신앙가들에게는 이들은 그들 평생에 표본이며 표준적 인물이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사회활동 정치활동으로 부패하고 썩어 들어 간 책임의 거의 전부가 바로 이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한국 최대 교파로 꼽히는 통합측 교단을 이끈 지도자였고, 이들이 그들을 추종하는 분들에게 모범이 되어 제자들 교인들 후배 목회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 났다고 하겠습니다. 해외 유학의 경험을 가지고 또 인품과 행동에서 불신자가 봐도 늘 신사처럼 보이며 교회 운영과 설교를 상류층이 선호할 수 있도록 하여 세상이 볼 때 명품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한국교회에서 예배당 건축을 보란듯이 하고, 목회자의 경력과 사회적 활동이 화려하며, 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수준 급 이상으로 모이며, 그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한 교회들과 인물들은 거의 다 이 분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한국교회가 초기 상놈 출신들이 많아서 사회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아도 될 언행이 많았는데 그런 면을 순화 시키고 성화 시킨 면에서는 그들이 모방성의 순기능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 내면에서는 그들을 모방한 한국교회 대형교회들 소위 스타 목회자들 화려한 사회 활동가들 훌륭한 교계 지도자들 거의 전부에게 지극히 해로운 모방성의 역기능을 보여 준 사례였습니다.
- 조용기 축복과 기적주의 유행
1950년대에 시작했으나 당시는 가까운 주변만 알았고 1970년대부터는 한국교회 전체가 모를 수가 없는 인물로 순복음교회 운동을 주도한 분입니다. 학력 유학 보수정통 사회활동 등의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종류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한국교회에 수 많은 모방을 불러 일으킨 인물입니다.
무조건 찬송을 크게 하고, 무조건 기도를 목청껏 하며, 무조건 기적을 봐야 하고, 무조건 병은 나아야 하며, 무조건 세상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한 면으로만 평생을 외치고 모범을 보인 분입니다. 축복주의, 그 말 자체는 좋은 뜻이나 그 '복'이 두고 갈 세상 중심으로 확연하게 치우 쳤으므로 이 노선에서는 위험스럽게 보아 왔습니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며 기적주의이므로 '기적' 자체는 좋은 뜻이나 순복음교회의 기적주의는 미신주의로 비판을 받기 쉬울 정도였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순복음교회는 단기간에 몇만 명에서 몇십만 명, 결국 80만 명의 교인이라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그 실적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알려 지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기성 교단들이 일제히 이단으로 비판하여 무릎을 꿇리려 했고, 물리력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1980년대부터는 그 분을 모방하는 운동은 한국교회 강단에 '예수'가 '예슈'가 되고 '믿사옵나이다'가 '믿샤옵나이다'가 되며 예배시간에 밴드가 동원 되고 주일날 체육관 행사가 예사가 되어, 말씀을 지켜 그대로 사는 문제는 부차적 선택적 여가적 문제가 되고 오로지 열심만 부흥만 성과만 신앙과 교회의 전부가 되는 유행을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에는 감리교 성결교가 바로 뒤를 따랐고, 다음에는 통합 교단이 그리고 합동 교단이 그리고 1990년대가 되어서는 고신교단도 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신학교와 교단의 역사와 교리서에서는 딴 소리를 하나 소속 교회의 지도자나 전국 교회와 교인들의 입과 행동과 마음은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적 신앙이 그들의 마음을 다 채웠으니 순복음교회는 외부적으로는 하나니의 성회라는 교단과 순복음이라는 교회 간판에서 소속을 구별할 수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한국교회 거의 모든 교단 거의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을 다 점령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모방의 순기능으로 본다면 잠든 한국교회를 깨워 열심 충성 기도 전도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고, 잠든 자를 깨웠다 할 정도였습니다. 글나 역기능으로 본다면 한국교회가 교회인지 미신집단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조용기 목사님의 내면 신앙이 철저한 신앙가요 성경 그대로 살려는 분이므로 일반 교단들이 초기에 이단이니 사이비니 한 것은 다 잘못이었으나, 신앙의 건설면에서는 한국교회의 단단했던 내면을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여 외면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나 내면으로는 모래 위의 집이 되어 한국교회의 철저한 신앙을 통째로 없애 버렸다는 점입니다.
부흥만 할 수 있다면 교리 성경 예배 하나님 신앙 순교 계명 그 어떤 것이든지 내 놓을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노선 총공회 교단에까지 이 사상이 한 때 거의 다 점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노선의 본류에는 잠깐 얹혀 있다 사라 진 흙 먼지처럼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김현봉의 경건주의 유행
1950년대까지는 별로 알려 지지 않았다가 1960년대에 들어 서면서 서울 한복판의 제일 큰 교회를 유지하되 그 내용이 너무 신앙적이고 철저하여 한국교회에 큰 충격을 준 인물이 김현봉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전부이고 그 실천이 극진하여 신앙세계 내에서도 잘 믿는 이들일수록 그의 경건 깨끗 절제 초월은 역사에 가끔 전해 오던 도인의 경지에 이른 분을 현실 세계에서 본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머리를 단장하는 것을 볼 수 없어 바리깡으로 완전히 밀어 버리고 평생 살았고, 검정 무명 옷으로만 살았고 예배당은 판자촌의 가옥 하나씩을 사들여 지붕만 이어 가고 벽은 털어서 예배당이 거지 수용소보다 못한 정도였는데 한국 교회 최고의 성경 해석과 성령의 은혜와 경건과 말씀 실행 실천이 능력 있게 행해 졌고 교회의 부흥은 커녕 교인 한 명이라도 유지가 되겠느냐고 생각할 상황에서 한국 최대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런 도인들은 더러 있었으나 부흥 면에서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주변 몇 사람끼리만 좋아 하는 소그룹에 그쳤으나 김 목사님은 그 행적이 너무 높고 뚜렷하여 이후 한국교회에 세상을 멀리하고 기도와 성경으로만 살아 가는 염세적 경건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은 소리 없이 믿는 분들이어서 외부로 드러 나고 알려 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김현봉의 순기능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큰데도 외부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사례를 들 수가 없고 오직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오늘도 한국교회에 독특한 신앙가들이나 그런 성향의 연세 많은 분들이 있어 그 뒤를 살펴 보면 김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김 목사님의 역기능으로 말한다면, 김 목사님 본인은 그렇지 않았으나 교인이나 제자들이 보기에 그 분은 지상에 계셨던 주님 정도였으므로 그 분의 절대적인 주도권 지도권을 섣불리 흉내 내다가 세상 뉴스에 기이한 이단으로 도배가 돨 만큼 대형 사건들을 일으킨 이들이 나옵니다. 아가 동산이나 이리 주현교회 사건 등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 진 것도 있고 일부 과장 된 면도 있으나 한국교회와 뉴스라는 성질상 재림 때까지 되풀이를 해도 늘 첫 손가락에 꼽을 이야기거리가 될 사안임은 틀림 없습니다.
- 백영희 신앙노선의 유행
이 홈에서 평소 소개하고 있으므로 간단히 줄이겠습니다.
그 어디에 비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오해와 박해를 많이 받았으나 결국 한국교회의 언론이 너무 높여서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되었습니다. 부흥 면에서는 순복음교회의 장년반 부흥의 세계적 기록에 비하여 주일학교 면에서 세계적 기록을 가졌고, 성경 중심의 정통보수 신앙 면에서는 박윤선 박형룡을 잇는 이들이 책에서만 정통 신앙을 이야기하고 그쳤으나 백영희 노선에서는 그들의 지식이 실제 생활 속에서 끝까지 이어 지는 실제 정통보수를 견지하고 있고, 생활과 실천 면의 경건에서는 김현봉 목사님 계통이 일시였고 치우 친 면이 있었으나 이 노선에서는 균형을 가지면서도 오늘까지 이어 지는 면을 가졌습니다. 지금 홈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성경과 신앙 자료는 그 분량과 내용에 있어 세계 기독교사를 논할 정도입니다.
물론 역기능도 있습니다. 훌륭한 신앙가가 너무 가까이 너무 오래 동안 그리고 기록과 전파가 너무 용이했던 시대에 살았던 연고로 그 신앙의 내용을 본받지 않고 흉내만 내거나 일부만 조잡하게 활용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 정도가 넘쳐서 정말 필요한 내용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되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원래 원본 자료인지 어디부터가 그 자료를 가지고 활용한 2차 자료인지, 출처를 확실하게 밝히면 정체가 드러 나고 자신의 공허한 내면이 그대로 알려 질 것이므로 모두들 출처를 묘하게 감추고 삭제하고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든 다음, 대량으로 불량 복제품 문제 있는 복제품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을 하나 지적하고자 합니다.
3. 결론적으로
오늘 새벽에 기도 중,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부터 모방성을 주셔서 하나님을 닮고 자기에게 배울 것 고칠 것을 빠르게 실행하도록 좋은 속성을 주셨는데, 이 모방성에 폐단을 주의하지 않으면 유익한 점보다 몇 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점을 특별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박윤선 박형룡으로 인해 이 나라 정통보수 신학계가 지켜 진 것은 다행이나 모두가 학자가 되고 유학을 하려 하고 박사 학위에 목이 타게 된 유행을 탄식하며, 한경직 강신명으로 인해 이 나라 보수정통 신앙가들이 신앙의 생명을 손해 보고 그 대신 외형의 신사도를 가지려다가 한국교회의 오늘이 기반조차 흔들리게 되었고, 조용기로 인해 한국교회는 기도와 열심은 불이 붙었으나 말씀 그대로의 새 움과 희망의 기회조차 다 잃어 버렸다는 모방 증후군, 모방 유행병을 지적했습니다. 김현봉이라는 초인적 신앙과 삶은 한국교회에 아직도 잔잔히 흐르고 남아 있어 크게 다행스러우나 경건 신앙의 특성상 외부 관찰이 어렵고 한 편으로는 그런 분 밑에서 한국 사회가 문선명 박태선과 동일하게 비판하는 인물들이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보다 이 홈은 이 노선의 백영희라는 인물의 신앙 세계가 더 큰 의미와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방성을 가지고 이 홈에서 소개하는 설교 자료를 통해 이 시대의 시대적 선지의 증거를 실감 있게 접하여 모두가 그 분처럼 주님을 다 닮고 흉내 내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각과 자세와 목적이 잘못 되면 이 분에게서 배우고 따른 것이 자신과 주변에 큰 폐해를 끼치는 것은 모방성의 역작용이고 이 역작용은 없는 곳이 없으므로 우리 함께 주의하여 순기능으로만 짧은 생을 달려 가기를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이 홈의 역기능을 지적한 분 때문에 이런 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 자유성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의 가장 중요한 본질로서 자유성을 주셨고 이 자유성이 가지는 약점을 보완하시려고 대척 위치를 가진 모방성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만물과 다르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가장 다른 본질적인 차이는 '자유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장난감과 다른 차원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때 힘 센 종처럼 유능한 직원처럼 성능 좋은 기계처럼 사용 되지 않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아들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유'가 주어 졌습니다.
우리 스스로 원하고 원하므로, 좋아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여 우리의 앞 날 전부를 단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계보다 종보다 직원보다 만물 그 어떤 종류보다 낫고 비교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 됩니다. 바로 이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우리는 그 목적의 유일의 대상입니다.
- 모방성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의 존재 이유인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우리가 그 목적에 맞는 존재가 되려면 앞 서 설명한 대로 자유성을 가지고 자원함으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완전자가 아니므로 이 자유성을 받은 이후 이 자유성을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가진 자유성으로 하나님을 자원함으로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자유성으로 자기를 위한 자기로 방향을 돌려 버렸습니다.
바로 이런 역기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타락 이전에 원래 자유성을 주실 때 우리에게 모방성을 함께 주셨습니다. 받아 가진 자유성이 바로 사용 될 수도 있고 잘 못 사용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 때 모방성도 함께 주셨으니 원래 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 진 아담은 내면으로는 하나님과 연결 되어 하나님만 모시고 살고 외부로는 하나님께서 만든 만물을 접하며 그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또 다른 자연 섭리에서 복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타락 전에 안팎으로 하나님만 접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고 있었으니 아담에게 주어 진 모방성은 하나님을 내면으로는 직접 또는 외면으로는 만물을 통해 간접으로 상대하며 저절로 하나님을 향해 닮아 가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자기 자유성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악령을 따라 자기 자유성으로 자기가 하나님 되어 사는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아담과 끊어 졌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접하던 신령한 영안도 사라 졌으니 이제 아담에게는 안팎으로 악령만 접하고 그 접촉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모방성 때문에 악령을 닮게 되었고 오늘 우리는 6천 년 동안 악령을 닮아 왔습니다.
2. 모방의 순기능과 역기능 - 한국교회의 사례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행
박형룡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교계의 보수 진영에서 정통 신학으로 자유주의 노선을 맞서 진리 투쟁을 한 1세대 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일제 때 미국에 유학을 했고 평생 박사 학위를 사용했고 이들은 한국의 교회를 오늘 보수정통 교회가 대세를 잡도록 기초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교회역사에 영웅적 활동이 기록 되어 후세대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보수교단에서 학자가 될 자질이 있는 신앙인들은 박형룡 박윤선이 늘 눈 앞에 있는 모범이며 목표였습니다.
순기능으로 본다면,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자기들이 실제 그렇게 살든 말든 한국 보수교단의 학자적 자질이 있는 신앙인들은 '개혁주의 신앙' '정통보수 신앙' '칼빈주의'라는 구호 가 평생 입에 달고 다니는 사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냄비 끓는 성격과 추세까지 더하여져 이 나라 자유주의 신학은 세계 교회사에서 한국처럼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여전히 보수정통 칼빈주의를 경쟁적으로 열창하는 사례가 없으므로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교계적 분위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무슨 욕을 얻어 먹는다 해도 성경 그대로 믿는 것이 옳다는 대외적 분위기가 유지 되고 그런 분위기 안에서 2세대 3세대 4세대가 여전히 동일 분위기에서 이어 지고 있음은 정말 한국교회가 가진 큰 복 중의 복일 것입니다.
역기능으로 본다면, 순기능의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들은 미국의 신학 박사 과정에 목을 매달았고 미국에서 한국 학생들의 신학 비자를 무조건 거부하자 화란으로 독일로 영국으로 심지어 남아공으로까지 몰려 들어 해외 보수신학교의 박사학위를 넘치게 했습니다. 미국의 일반 교계에서는 이름조차 잘 모르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한국교회는 미국교인들이 기독교계의 하바드 대학처럼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보수교단에 학자적 소질이 있는 신학생들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얼마나 몰려 들었든지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전교생 6백여 명에 2백여 명이 한국학생으로 짐작 되는 정도입니다. 이런 추세는 카브난트신학교 칼빈신학교 페이스신학교 등에도 다소의 차이만 있지 비슷합니다. 모두가 박형룡 박윤선이 되어 한국교회를 신학자로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몰려 드는 신학생들이 봇물이 터지고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유의 냄비 끓는 바쁜 성격이 미국의 사회 제도 특히 유학에 첫 관문이 되는 미국 대사관 비자 발급 과정에서 서류 조작과 귀국 약속 위반 등 수도 없는 불법 무법 행동이 계속 되자 197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무부에서 한국대사관에게 한국인의 미국 유학에서 신학이나 목사 이름은 무조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미 불이 붙은 국내 교계의 신학 수요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대사관을 두드렸고 그럴수록 대사관 비자 거부는 더 완강해 집니다. 결국 대안을 찾은 것이 '화란'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일제 말기 미국 유학을 하고 6.25 전쟁 후 잠깐 화란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귀국 후 화란 신학을 소개했으므로 그후 일부는 화란으로 가고 대다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노력하다가 70년대에 미대사관이 미국 유학을 막자 미국 유학을 향하던 수요가 화란으로 바뀌어 현재 한국보수 교계의 유력 인물들의 구성이 미국 화란 순서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란의 보수신학교들은 공부를 철저히 시키기 때문에 또 독일 신학도 학문적으로는 난이도가 정평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화란 중심의 유럽 유학이 한 때 유행을 하다가 학문적으로 화란이나 독일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영국이나 영어권인 남아공으로 유학의 경향이 넓어지고 다양화하게 됩니다.
박형룡 박윤선 두 신학자는 한국 교계의 보수정통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 한국교회의 간판이자 울타리 방어벽을 철저하게 만든 공로자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배우고 그 분들의 소식을 듣고 자란 한국교회의 신학자들은 그 분들 때문에 정통보수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모방성의 순기능에 크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을 스승으로 모신 한국 보수정통 교단들은 그 분들이 가진 학력 유학 학위 신학의 방법론을 접하면서 모방성의 역기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한 나머지 오늘 한국의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해외 유학처럼 한국 보수정통 신앙가들의 해외 유학 바람은 한국교회의 내부를 크게 썩고 부패 시키는 내면적 병폐가 되었습니다.
- 한경직 강신명의 신사도 유행
박윤선 박형룡과 대척점에 있는 자유주의 신학가들은 채필근 김재준 등인데 이들은 불신자 수준이므로 이 노선에서는 교인 취급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이 노선에서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면 통합 교단에서 유명한 강신명 한경직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교회는 교회고 교인은 교인이나 그 행동이 교회와 세상을 넘나 들기 때문에 교회 내를 자유주의화하는 데 더 문제를 많이 일으킨 분들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을 유학하고 국내에 들어 와서 한국의 보수정통 교회 내에서 신사적 신앙,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멋있게 보이고 점잖게 보이는데 문제는 신앙의 내부를 소리 없이 허무는 대표적 인물들이었습니다. 박윤선 박형룡의 노선은 지닐를 위해 투쟁적이며 생사를 건다 할 만큼 좁은 신앙이었는데 이들은 그들처럼 신앙의 원칙은 비슷하게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며 세상 그 어떤 정치가와 사회주의자와 타 종교인들과도 자리를 함께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니 세상 보기에도 좋고 교회도 좋아하고 자기들도 좋고 만인이 좋아할 분들이었습니다.
주일이나 2계명을 바로 지키려면 가정 파탄이 나고 감옥을 가야 하고 사회와 교회가 일전을 불사해야 하는데, 이들은 책에서는 그런 정신을 가진 듯하나 행동으로는 그리고 중요한 고비에서는 약간 김을 새게 하여 믿는 사람이 힘 닿는 대로 열심히 믿되 세상과 문제가 생기면 모두 빠져 나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평생 우리 사회의 불신자들도 모를 수가 없도록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방면에 화려하게 활동했던 분들입니다. 멋 있게 보이고, 지성적으로 보이며, 인품이 있고, 배려와 용서와 화평을 두루 가졌으니 보수정통 신앙계를 빼놓으면 기독교계 안팎으로 종교계 안팎으로 세상 정치계까지 다 좋아할 모범생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보수정통 신앙계에서 조금 넓게 믿고 쉽게 믿고 대충 믿으면서도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 좋게 살아 보려는 교회와 신앙가들에게는 이들은 그들 평생에 표본이며 표준적 인물이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사회활동 정치활동으로 부패하고 썩어 들어 간 책임의 거의 전부가 바로 이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한국 최대 교파로 꼽히는 통합측 교단을 이끈 지도자였고, 이들이 그들을 추종하는 분들에게 모범이 되어 제자들 교인들 후배 목회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 났다고 하겠습니다. 해외 유학의 경험을 가지고 또 인품과 행동에서 불신자가 봐도 늘 신사처럼 보이며 교회 운영과 설교를 상류층이 선호할 수 있도록 하여 세상이 볼 때 명품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한국교회에서 예배당 건축을 보란듯이 하고, 목회자의 경력과 사회적 활동이 화려하며, 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수준 급 이상으로 모이며, 그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한 교회들과 인물들은 거의 다 이 분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입니다.
한국교회가 초기 상놈 출신들이 많아서 사회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아도 될 언행이 많았는데 그런 면을 순화 시키고 성화 시킨 면에서는 그들이 모방성의 순기능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 내면에서는 그들을 모방한 한국교회 대형교회들 소위 스타 목회자들 화려한 사회 활동가들 훌륭한 교계 지도자들 거의 전부에게 지극히 해로운 모방성의 역기능을 보여 준 사례였습니다.
- 조용기 축복과 기적주의 유행
1950년대에 시작했으나 당시는 가까운 주변만 알았고 1970년대부터는 한국교회 전체가 모를 수가 없는 인물로 순복음교회 운동을 주도한 분입니다. 학력 유학 보수정통 사회활동 등의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종류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한국교회에 수 많은 모방을 불러 일으킨 인물입니다.
무조건 찬송을 크게 하고, 무조건 기도를 목청껏 하며, 무조건 기적을 봐야 하고, 무조건 병은 나아야 하며, 무조건 세상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한 면으로만 평생을 외치고 모범을 보인 분입니다. 축복주의, 그 말 자체는 좋은 뜻이나 그 '복'이 두고 갈 세상 중심으로 확연하게 치우 쳤으므로 이 노선에서는 위험스럽게 보아 왔습니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며 기적주의이므로 '기적' 자체는 좋은 뜻이나 순복음교회의 기적주의는 미신주의로 비판을 받기 쉬울 정도였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순복음교회는 단기간에 몇만 명에서 몇십만 명, 결국 80만 명의 교인이라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그 실적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알려 지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기성 교단들이 일제히 이단으로 비판하여 무릎을 꿇리려 했고, 물리력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1980년대부터는 그 분을 모방하는 운동은 한국교회 강단에 '예수'가 '예슈'가 되고 '믿사옵나이다'가 '믿샤옵나이다'가 되며 예배시간에 밴드가 동원 되고 주일날 체육관 행사가 예사가 되어, 말씀을 지켜 그대로 사는 문제는 부차적 선택적 여가적 문제가 되고 오로지 열심만 부흥만 성과만 신앙과 교회의 전부가 되는 유행을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에는 감리교 성결교가 바로 뒤를 따랐고, 다음에는 통합 교단이 그리고 합동 교단이 그리고 1990년대가 되어서는 고신교단도 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신학교와 교단의 역사와 교리서에서는 딴 소리를 하나 소속 교회의 지도자나 전국 교회와 교인들의 입과 행동과 마음은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적 신앙이 그들의 마음을 다 채웠으니 순복음교회는 외부적으로는 하나니의 성회라는 교단과 순복음이라는 교회 간판에서 소속을 구별할 수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한국교회 거의 모든 교단 거의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을 다 점령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모방의 순기능으로 본다면 잠든 한국교회를 깨워 열심 충성 기도 전도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고, 잠든 자를 깨웠다 할 정도였습니다. 글나 역기능으로 본다면 한국교회가 교회인지 미신집단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조용기 목사님의 내면 신앙이 철저한 신앙가요 성경 그대로 살려는 분이므로 일반 교단들이 초기에 이단이니 사이비니 한 것은 다 잘못이었으나, 신앙의 건설면에서는 한국교회의 단단했던 내면을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여 외면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나 내면으로는 모래 위의 집이 되어 한국교회의 철저한 신앙을 통째로 없애 버렸다는 점입니다.
부흥만 할 수 있다면 교리 성경 예배 하나님 신앙 순교 계명 그 어떤 것이든지 내 놓을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노선 총공회 교단에까지 이 사상이 한 때 거의 다 점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노선의 본류에는 잠깐 얹혀 있다 사라 진 흙 먼지처럼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김현봉의 경건주의 유행
1950년대까지는 별로 알려 지지 않았다가 1960년대에 들어 서면서 서울 한복판의 제일 큰 교회를 유지하되 그 내용이 너무 신앙적이고 철저하여 한국교회에 큰 충격을 준 인물이 김현봉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전부이고 그 실천이 극진하여 신앙세계 내에서도 잘 믿는 이들일수록 그의 경건 깨끗 절제 초월은 역사에 가끔 전해 오던 도인의 경지에 이른 분을 현실 세계에서 본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머리를 단장하는 것을 볼 수 없어 바리깡으로 완전히 밀어 버리고 평생 살았고, 검정 무명 옷으로만 살았고 예배당은 판자촌의 가옥 하나씩을 사들여 지붕만 이어 가고 벽은 털어서 예배당이 거지 수용소보다 못한 정도였는데 한국 교회 최고의 성경 해석과 성령의 은혜와 경건과 말씀 실행 실천이 능력 있게 행해 졌고 교회의 부흥은 커녕 교인 한 명이라도 유지가 되겠느냐고 생각할 상황에서 한국 최대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런 도인들은 더러 있었으나 부흥 면에서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주변 몇 사람끼리만 좋아 하는 소그룹에 그쳤으나 김 목사님은 그 행적이 너무 높고 뚜렷하여 이후 한국교회에 세상을 멀리하고 기도와 성경으로만 살아 가는 염세적 경건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은 소리 없이 믿는 분들이어서 외부로 드러 나고 알려 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김현봉의 순기능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큰데도 외부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사례를 들 수가 없고 오직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오늘도 한국교회에 독특한 신앙가들이나 그런 성향의 연세 많은 분들이 있어 그 뒤를 살펴 보면 김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김 목사님의 역기능으로 말한다면, 김 목사님 본인은 그렇지 않았으나 교인이나 제자들이 보기에 그 분은 지상에 계셨던 주님 정도였으므로 그 분의 절대적인 주도권 지도권을 섣불리 흉내 내다가 세상 뉴스에 기이한 이단으로 도배가 돨 만큼 대형 사건들을 일으킨 이들이 나옵니다. 아가 동산이나 이리 주현교회 사건 등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 진 것도 있고 일부 과장 된 면도 있으나 한국교회와 뉴스라는 성질상 재림 때까지 되풀이를 해도 늘 첫 손가락에 꼽을 이야기거리가 될 사안임은 틀림 없습니다.
- 백영희 신앙노선의 유행
이 홈에서 평소 소개하고 있으므로 간단히 줄이겠습니다.
그 어디에 비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오해와 박해를 많이 받았으나 결국 한국교회의 언론이 너무 높여서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되었습니다. 부흥 면에서는 순복음교회의 장년반 부흥의 세계적 기록에 비하여 주일학교 면에서 세계적 기록을 가졌고, 성경 중심의 정통보수 신앙 면에서는 박윤선 박형룡을 잇는 이들이 책에서만 정통 신앙을 이야기하고 그쳤으나 백영희 노선에서는 그들의 지식이 실제 생활 속에서 끝까지 이어 지는 실제 정통보수를 견지하고 있고, 생활과 실천 면의 경건에서는 김현봉 목사님 계통이 일시였고 치우 친 면이 있었으나 이 노선에서는 균형을 가지면서도 오늘까지 이어 지는 면을 가졌습니다. 지금 홈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성경과 신앙 자료는 그 분량과 내용에 있어 세계 기독교사를 논할 정도입니다.
물론 역기능도 있습니다. 훌륭한 신앙가가 너무 가까이 너무 오래 동안 그리고 기록과 전파가 너무 용이했던 시대에 살았던 연고로 그 신앙의 내용을 본받지 않고 흉내만 내거나 일부만 조잡하게 활용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 정도가 넘쳐서 정말 필요한 내용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되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원래 원본 자료인지 어디부터가 그 자료를 가지고 활용한 2차 자료인지, 출처를 확실하게 밝히면 정체가 드러 나고 자신의 공허한 내면이 그대로 알려 질 것이므로 모두들 출처를 묘하게 감추고 삭제하고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든 다음, 대량으로 불량 복제품 문제 있는 복제품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을 하나 지적하고자 합니다.
3. 결론적으로
오늘 새벽에 기도 중,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부터 모방성을 주셔서 하나님을 닮고 자기에게 배울 것 고칠 것을 빠르게 실행하도록 좋은 속성을 주셨는데, 이 모방성에 폐단을 주의하지 않으면 유익한 점보다 몇 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점을 특별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박윤선 박형룡으로 인해 이 나라 정통보수 신학계가 지켜 진 것은 다행이나 모두가 학자가 되고 유학을 하려 하고 박사 학위에 목이 타게 된 유행을 탄식하며, 한경직 강신명으로 인해 이 나라 보수정통 신앙가들이 신앙의 생명을 손해 보고 그 대신 외형의 신사도를 가지려다가 한국교회의 오늘이 기반조차 흔들리게 되었고, 조용기로 인해 한국교회는 기도와 열심은 불이 붙었으나 말씀 그대로의 새 움과 희망의 기회조차 다 잃어 버렸다는 모방 증후군, 모방 유행병을 지적했습니다. 김현봉이라는 초인적 신앙과 삶은 한국교회에 아직도 잔잔히 흐르고 남아 있어 크게 다행스러우나 경건 신앙의 특성상 외부 관찰이 어렵고 한 편으로는 그런 분 밑에서 한국 사회가 문선명 박태선과 동일하게 비판하는 인물들이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보다 이 홈은 이 노선의 백영희라는 인물의 신앙 세계가 더 큰 의미와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방성을 가지고 이 홈에서 소개하는 설교 자료를 통해 이 시대의 시대적 선지의 증거를 실감 있게 접하여 모두가 그 분처럼 주님을 다 닮고 흉내 내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각과 자세와 목적이 잘못 되면 이 분에게서 배우고 따른 것이 자신과 주변에 큰 폐해를 끼치는 것은 모방성의 역작용이고 이 역작용은 없는 곳이 없으므로 우리 함께 주의하여 순기능으로만 짧은 생을 달려 가기를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이 홈의 역기능을 지적한 분 때문에 이런 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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